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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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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파업은 불법이 아닐까?
왜 파업은 불법이 아닐까?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파업, 화물연대 파업, 노란봉투법 대립. 이 세 가지 이슈의 공통점이 무엇일까요? 크게 두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최근 한국 사회의 극단적인 노사갈등이 드러난 이슈라는 점, 다른 하나는 노동자 측 쟁의행위의 불법성 여부가 핵심 쟁점 중 하나였다는 점입니다. 쟁의행위의 불법 여부는 위의 세 가지 이슈뿐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의 노사갈등을 구성하는 거대한 축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노동자 측은 대부분의 파업이 불법이 되는 한국 사회의 모순을 지적하고, 사용자 측은 불법 파업을 절대 용인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결국 ‘쟁의행위’와 ‘불법’의 관계에 관해 대화해나가는 것이 이미 엉킬 대로 엉켜버린 노사갈등 문제를 풀 열쇠일 것입니다.   여기서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쟁의행위가 왜 ‘합법’인 걸까요? 쟁의행위가 합법이라는 것은 당연한 상식처럼 여겨지지만, 사실 쟁의행위는 명백한 불법행위처럼 보입니다. 업무를 방해함으로써 상대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인데요. 합법이 아닌 것이 곧 불법이므로, 특정 쟁의행위가 불법인지 아닌지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쟁의행위가 합법인 이유를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쟁의행위가 어떤 원리에 따라 합법적인 행위로 인정받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쟁의행위의 기반이 되는 법리적 배경을 이해한다면 개별 쟁의행위의 불법성을 판단하는 것은 물론, 쟁의행위에 대한 현재의 법리적 해석이 옳은지에 대한 시민 차원의 사회적 대화 역시 가능해질 것입니다. *쟁의행위란? 노동자 또는 사용자가 주장을 관철할 목적으로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노동자 측의 파업·태업·준법 투쟁 등과 사용자 측의 직장폐쇄·대체고용 등이 쟁의행위에 해당합니다. 본 글에서 사용하는 쟁의행위라는 단어는 노동자 측의 쟁의행위를 의미합니다. 범죄 성립의 요건들   가장 먼저 살펴볼 것은 ‘무엇이 범죄인지’입니다. 물론 무엇이 범죄인지는 상식으로서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형법은 범죄를 훨씬 구체적으로 규정하는데요. 다음의 세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할 때 범죄가 성립한다고 봅니다.    첫 번째는 구성요건해당성입니다. 구성요건은 법에 적혀 있는 범죄의 유형을 말합니다. 예컨대 살인죄 조항에서 “사람을 살해한 자는”이 살인죄의 구성요건입니다. 누군가의 행위가 바로 이 구성요건에 해당할 때 그 행위는 범죄가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특정 행위가 부도덕하더라도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처벌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위법성입니다. 이는 전체 법질서의 입장에서 봤을 때 행위가 불법이라고 볼 수 있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더라도, 법질서와 충돌하지 않는다면 위법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구성요건해당성을 충족하더라도 위법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유들을 위법성 조각 사유라고 하며, 정당방위, 긴급피난, 자구행위, 정당행위 등이 이에 속합니다.   세 번째는 유책성입니다. 이는 행위자에게 법적 비난을 물을 수 있는지, 즉 불법을 행위자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는지를 묻는 요건입니다. 구성요건해당성과 위법성을 충족하더라도 강요받은 행위라거나 행위자의 나이가 어린 경우 등 행위자의 책임으로 돌리기 어렵다면 범죄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결국 쟁의행위도 위의 세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하지 않기 때문에 범죄 행위로 보지 않는 것인데요. 과연 어떤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 것일까요?    쟁의행위는 정당행위   쟁의행위가 불법이 아닌 이유는 이것이 위법성 조각 사유 중 하나인 정당행위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정당행위는 형법 제20조에 다음과 같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법령에 의한 행위 또는 업무로 인한 행위 기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법에 쓰여 있어서 했거나, 업무 때문에 했거나,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정당행위는 전체 법질서의 이념, 또는 그 배후에 있는 사회윤리에 근거하여 정당화됩니다.    정당행위 중에서도 노동자의 쟁의행위는 법령에 의한 행위에 속합니다. 법령에 의한 행위는 법이 규정한 권리 또는 의무를 행사하거나 법을 집행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전체 법체계는 당연히 통일성이 있어야 합니다. 형법이 아닌 다른 법에서 적법하다고 인정한 행위를 형법상 위법하다고 평가한다면 법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없겠죠. 쟁의행위 역시 다른 법을 통해 적법하다고 규정되어 있으므로 형법상 허용됩니다. 이 같은 법령에 의한 행위로는 노동자의 쟁의행위 이외에 공무원의 직무집행 행위, 상관의 명령에 대한 복종행위, 일반인의 현행범체포 행위 등이 있습니다.   쟁의행위는 헌법에 의한 기본권인 노동삼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인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에 따라 정당화됩니다. 노조법 제4조는 “형법 제20조의 규정은 노동조합이 단체교섭∙쟁의행위 기타의 행위로서 제1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한 정당한 행위에 대하여 적용된다. 다만,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이나 파괴행위는 정당한 행위로 해석되어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여 쟁의행위가 정당행위에 속함을 명시하였습니다.    현재까지의 내용을 간략히 정리해보겠습니다. (1) 범죄가 성립하려면 구성요건해당성, 위법성, 유책성을 충족해야 한다. (2) 정당행위는 위법성이 없으므로 범죄가 아니다. (3) 쟁의행위는 정당행위다. (4) 쟁의행위는 범죄가 아니다!   정당한 쟁의행위의 요건들   쟁의행위는 정당행위로서 적법하다고 인정되지만, 현실에서 전개되는 모든 쟁의행위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위의 노조법 제4조를 자세히 보면 “제1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한 정당한 행위”에 대해서만 정당행위로 인정된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제1조는 노동삼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의 조항입니다. 결국 쟁의행위는 헌법상 노동삼권의 보장 취지와 쟁의행위의 목적 및 수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정당하다고 판단되어야만 적법한 것입니다.    쟁의행위가 형법상 정당행위가 되기 위한 요건들은 이미 다수의 대법원 판례를 통해 제시되어 있습니다. 크게 네 가지 요건이 있는데요. 첫째, 쟁의행위의 주체가 단체교섭의 주체가 될 수 있는 노동조합이어야만 합니다. 이는 일반 조합원이 아닌 노동조합 집행부가 쟁의행위를 주도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둘째, 쟁의행위의 목적이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한 노사 간의 교섭을 조정하는 데에 있어야 합니다. 근로조건과 상관이 없는 정치적∙이데올로기적 목적의 쟁의행위 등 애당초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사항을 달성하려는 쟁의행위는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기업이 경쟁력 강화를 위해 실시하는 구조조정, 사업조직 통폐합, 합병 등의  사안에 대해서는 사용자의 경영 관련 사안으로 보아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따라서 이를 목적으로 하는 쟁의행위도 정당행위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셋째,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는 구체적으로 쟁의행위를 하기 이전에 우선 사용자와 단체교섭을 시도해야 하고, 쟁의행위를 개시하기 전 조합원 찬반투표, 노동위원회의 조정절차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함을 의미합니다.   넷째, 쟁의행위의 수단과 방법이 사용자의 재산권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고, 폭력적이어서도 안 됩니다. 예를 들어 직장 또는 사업장 시설의 일부를 점거하는 것은 정당한 행위이지만, 전면적∙배타적으로 점거하여 조합원 이외의 출입을 막거나 사용자의 관리지배를 방해하는 것과 같은 행위는 정당성이 인정되지 않습니다. 한편 노동조합 차원의 쟁의행위와 조합원 개인 차원의 행위는 구별해야 합니다. 쟁의행위에 참가한 일부 소수의 노동자가 위법행위를 하였다고 해서 전체 쟁의행위가 위법하게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쟁의행위가 불법이 아닌 이유를 법리적으로 설명해드렸습니다. 그러나 이는 절대 정답이 아닙니다. 법이란 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시민들이 끊임없이 토론하며 함께 최선을 찾아가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쟁의행위의 법적 성격, 취지와 이념, 정당성 판단 기준 등은 오늘날의 노사갈등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더더욱 시민들이 활발히 이야기해야만 하는 주제입니다. 의문, 비판, 제안, 단상 무엇이든 좋습니다. 댓글을 통해 여러분의 생각을 들려주세요! 
노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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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지는 좋지만, 현장에서는 소용없어요" 장애인 노동 정책 어떻게 변해야 할까요?
(노동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드는 5월이 다 가기 전에, 장애인 노동 정책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인터뷰 기사를 준비했습니다. 세 명의 인터뷰이를 만났습니다. 모두와 익명을 약속했기 때문에 임의로 A, B, C라고 지칭하여 글에 적습니다. A님은 장애인 노동자로 중간관리자를 맡고 있고, B님은 평사원으로 일하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C님은 근로지원인입니다.) 몇 년 전 일했던 직장이 장애인표준사업장이었는데, 근무하는 동안 장애인식 개선을 포함한 법정의무교육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사업주가 무심코 내뱉는 차별적인 말을 들으면서 ‘천사 기업’이라고 적힌 장애인표준사업 인증 현판이 단단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었죠. 사장님은 왜 장애인 인권에 관심 한 조각도 없으면서 굳이 장애인표준사업장을 운영하는 것인지 궁금했어요. 이유는 간단하더군요. 관련 지원 제도를 이용하면 경제적 부담이 줄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인터넷에 장애인표준사업장을 검색하면, 비용 지원 예산이 증가하며 기업들이 관심을 가지고 몰린다는 기사가 줄줄이 보입니다. '장애인 표준사업장' 세우면 지원금…내년 예산 23.2% 증대 A “장애인사업장은 안 망해요.”  “사업을 하려는데 장애인표준사업장으로 하겠다, 하면 자기 자본이 30%만 있으면 돼요. 나머지 건물 짓는 거, 설비 넣는 거 다 장애인 공단에서 해줬어요. 지금 제가 일하는 곳에도 설비에 잘 보면 장애인 공단에서 사줬다는 딱지가 붙어 있어요. 모르면 그냥 넘어가지만, 알면 다 보이죠. 남의 돈으로 사업하는 거예요.”   장애인의무고용제는 기업들이 고용 의무를 불이행하는 대신 벌금을 내고 넘어가는 일이 많아 실효가 없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반면 장애인 고용 기업에 지원을 해주는 장애인표준사업장 제도는 인기가 있는 편입니다. 그래프를 보면 매년 인증업체가 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양적 성과만 봐서는 안 됩니다. 인터뷰이 A님은 ‘몸이 아파서 쉬는 동안에도 전화해서 안부는커녕 언제 출근하냐고’ 묻는 등 고용주가 직원들을 기계 부품 취급을 한다며 하소연했습니다. 사업주가 장애 인권 감수성이 전혀 없는 경우가 많다면, 현장에서는 정책의 존재 의미를 거스르는 여러 어려움이 발생할 것입니다. 제가 전 직장에서 느꼈던 것처럼 말이죠. 장애인 표준사업장이 많아지는 것은 성과로 보이지만, 양질의 일자리를 보장받고 있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B “이제는 익숙해져가지고 일은 힘들어도 할 만해요. 나름대로 힘들면서도 좀 재미있고.”    “적응하는 게 문제인데, 많이들 적응을 못하더라고요. 여기가 공장이라서 여름에는 이제 기계가 다 돌아가잖아요. 그럼 막 시끄럽고 덥고, 일단 더우니까 사람들이 좀 힘들고 그러니까는 많이 좀 나가고 그러더라고요. 적응을 못 해서 나가는 사람들도 좀 있고 성격상 또 사람들하고 있던 일을 속에 꽝 담아두고 있다가 그걸 못 이겨서 나가는 사람도 있고 별사람 다 있어요.” C “어떤 분한테는 좀 다가가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어요. 그분 성격일 수도 있지만 인사를 해도 받아주지도 않고, 무표정으로 반응이 없더라고요.. 근데 그래도 계속 인사를 했어요. 그러니까 어느 날 마음의 문을 열어주더라고요. 시간이 지나니까. 다른 근로지원인분들도 처음엔 어렵겠지만 그냥 조금만 참고 다가오도록 기다려 주면 될 거 같아요. 상처받지 않고 그냥 기다려 주면 그쪽에서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오니까요.” 사람마다 성향과 상황이 다르다 보니 어렵게 느끼는 부분도 제각각일 것 같습니다. 중증장애인의 경우는 어떨까요?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는 ‘중증장애인 근로자가 담당업무를 수행하는 능력을 갖추었으나 장애로 인하여 업무를 수행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위해 ‘근로지원인 서비스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근로지원인들은 매칭된 중증장애인이 업무를 위해 이동하거나 원활한 의사소통을 돕는 등 업무를 지원하는 역할입니다. 하지만 수요에 비해 근로지원인의 수가 많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중증장애인에게는 원활한 업무 수행을 지원하고, 근로지원인에게는 수당을 지급하여 1+1 고용 창출이 가능한 근로지원인 제도, 조사할수록 아쉬운 평이 많이 보였습니다. 근로지원인 제도 있는데…장애인들 “어렵게 취직해 놓고 퇴직 고민”   C님은 평생 전업주부로 생활하다가 지인을 통해 근로지원인 제도를 알게 되었습니다. 3일 동안 장애인고용공단에서 각종 교육을 받고, 담당 장애인을 배정받아 일을 시작했습니다. 공단에서 받은 교육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의견을 주셨습니다. C “도움이 많이 됐죠. 네, 그 교육이 저는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왜냐면 저 같은 경우는 장애인을 만나서 인간적으로 겪어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좀 막연했거든요. 그런 여러 가지 성격 유형이라든가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대해야 한다든가 그런 거를 가르쳐주셔서 그게 많이 도움이 됐어요.” 한편 이수 교육 시간이 늘어나면서 근로지원 인력이 줄고 고령화되는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10시간의 온라인 교육을 이수하면 근로지원인을 할 수 있었지만, 교육이 강화되면서 더 많은 시간 교육을 듣고 교육비도 직접 결제해야만 근로지원인 자격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임금은 최저시급 수준이라서, 근로지원인력을 수급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거꾸로 가는 장애인 근로지원인 제도 C “아쉬운 점은.. 저희가 본래 계약을 하루 8시간 근무로 해요. 근데 이제 회사 측에서 일을 일찍 끝내줄 때가 있어요. 그러면 계약할 때 이야기했던 것보다 근무 시간이 적어져요. 그러다 보면 급여가 줄어들잖아요.  그거를 이제 보장 못 받는 게 그게 좀 아쉽더라고요.” “최저 시급으로 알고 있어요. 거의 최저 시급이에요.” 기업에는 장애인 표준사업장 설립 시 자금 융자까지 지원해 주는 데 반해 중증장애인의 업무 수행을 돕는 근로지원인들의 임금은 다소 낮게 책정된 듯 합니다. 근로지원인은 장애인고용공단에 소속된 노동자로, 임금도 장애인고용공단에서 받습니다. 고용공단이 노동의 가치를 보상해 주어야 하죠. 기업이 장애인 고용에 몰리는 것처럼 근로지원인 제도에도 사람들을 불러 모을 장점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인터뷰이들이 들려준 사례 중에는 곤란한 상황도 더러 있었습니다. 근로지원인은 중증장애인의 업무를 돕는 게 일이기 때문에 중증장애인이 출근하지 않으면 사업체에서 단독으로 근무는 불가능합니다. 원칙적으로 문제가 없는 상황이지만 가뜩이나 아쉬운 최저임금을 받는 입장에서는 급여가 더 줄어드는 일이 반갑지 않습니다. C “한 달을 만근하면 연차 하루가 생겨요. 그건 제가 필요할 때 쓸 수 있어요. 매칭된 장애인과 상관없이요. 하지만 이제 장애인이 아프거나 결근 한다거나 그럴 때는 제가 못 나가는 거죠. 나가게 되면 부정 수급이죠.” “이미 출근했는데 장애인이 못 나온다고 하면요? 그러면 이제 도로 들어와야 하죠.” A “근로지원인 제도는 제가 볼 때는요, 장단점을 비교했을 때 5:5라고 봅니다. 중간관리자 일을 하다 보니까 그런 입장에서 말씀드릴게요. 장애인 근로자 한 명이 병가라든지 개인적인 볼일로 하루 쉬게 될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근로지원인은 담당 장애인이 쉬면 같이 쉬어야 해요. 그러면 회사 입장에서는 한 사람만 비는 게 아니고 두 사람이 없어지다 보니까 손이 부족해요. 근로지원인 제도 자체는 중증장애인을 서포트한다는 그런 취지인데, 현장에서는 실제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담당 장애인을 서포트하는 게 아니고, 장애인도 일을 하고 있고 근로지원인도 일을 하고 있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렇습니다.” C “본래 근로지원인은 보조 업무잖아요. 근데 저희 경우는 이제 같이, 옆에서 이렇게 서로 도와주고, 같이 하죠.” A “취지대로 하면은 회사에 도움 되는 거 하나도 없어요. 근로지원인들 빠지면 지금 생산되는 양의 20분의 1밖에 안 나올 거예요. 근로지원인 없으면 일 안 돌아갑니다.” 원칙대로라면 근로지원인은 별도로 업무를 할 수 없습니다만, 현장에서는 그게 잘 지켜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단순 업무를 여러 사람이 협력하며 진행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같은 장소에 있을 뿐 각자 일을 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근로지원인이 주 업무를 맡고 중증장애인이 그 옆을 보조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제도가 거꾸로 가는 것을 넘어 산으로 가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가 되는데요. 물론 모든 사업장이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정책이 현장에서 어그러지는 이유는 무엇인지 더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좀 더 많은 당사자의 목소리를 제도 개선에 반영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장애인 노동 정책은 어떻게 변화하면 좋을까요? 여러분의 생각을 함께 나눠주세요.  (끝으로 노동을 통해 얻는 긍정적인 경험에 대해 인터뷰이들에게 물었습니다.) A “저는 장애인들이 좀 잘 됐으면 하는 거 그 바람뿐이에요. 저는 사람들 불러놓고 그래요. 나도 여러분들처럼 최저시급이다. 똑같다. 하지만 누군가는 좀 더 앞서서 일을 해야 하니까, 그 총대를 내가 메고 있을 뿐이다. 그 대신에 요렇게 요렇게 하자. 그러면 따라는 줘야 한다. 그렇게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안 따라주면은 여러분들 완전히 여기 난장판 됩니다! 그러니까 예, 예. 그러더라고. 대답은 잘해요." B “사람들하고 만나면서 대화도 많아졌고, 좀 성격이 밝아졌다고 할까요? 그전에 혼자 알바했을 때는 아무래도 좀 스트레스 많이 받았는데, 그래도 여기서는 과장님이나 옆에 언니들하고 얘기하게 하면서 그냥 흘러버리고 그래요. 맥주 한 잔 마시면서 오늘은 이랬구나~ 이러고서 내일부터 또 시작이구나~ 그렇게 하는 편이에요.” C “제가 전업주부 하다가 처음으로 경제활동에 뛰어든 건데, 하다 보니까 좀 삶이 좀 활력이 있어서 좋고요. 손주, 손녀들한테 용돈 줄 수 있어서 좋아요. 그리고 어떻게 보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거, ‘이렇게 나도 뭔가를 나도 할 수 있구나.’ 조금이라도 이렇게 나를 쓸 수 있다는 거, 그런 게 감사하더라고요."
노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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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4.0과 미래를 위한 민주주의
 한국 사회는 얼마나 건강하고, 튼튼한 경제 시스템을 갖고 있을까? 건강한 사회에 대한 개념이 다양할 수 있겠지만, 필자는 사회 구성원의 의지가 많이 반영되어 운영되고, 그 결과로서 번영하는 사회라고 본다. 번영이라는 것은 경제적인 풍요와 풍요를 누리는 사회 구성원이 많은 상태이다. 경제적 혜택을 받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더 혜택을 받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회는 튼튼한 경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튼튼한 경제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일반적으로 경제 시스템 또는 생산을 구성하는 3요소를 토지, 자본, 노동이라고 한다. 농업사회에서는 토지의 중요성이 매우 컸으나, 산업사회로 오면서 토지는 자본의 일부가 되면서 자본의 중요성이 더 커졌다. 그리고 현대 사회로 오면서 ‘지식’이라는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지식은 과학기술이면서 이를 체화하고 있는 주체인 인재(지식노동자)이거나 숙련된 노동력은 의미한다. 미래는 지식 노동이 중요해지고, 이러한 3 또는 4요소가 조합되어 작동할 때 경제는 번영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정설이다.  그럼 한국 사회는 이러한 경제 시스템이 잘 작동하고 있을까? 한국의 근대화, 산업화 전략은 추격 경제이다. 미약한 자본을 키우고 자본의 역할을 강화하는 과정이었다. 국가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논리에서 농업과 농민을 희생시켜 저임금 노동자를 양산하고 관치 금융으로 자본 축적을 도왔다. 결국 우리는 몇 개의 글로벌 대기업이 이끄는 경제 발전을 달성하였고, 이는 한편으로 불균등 성장과 혜택, 즉 양극화라는 사회 문제를 가져왔다. 역사의 후발 주자로서 피하기 어려운 한계였다.  문제는 산업사회에서 디지털 사회 또는 4차산업혁명 사회로 넘어가면서 이러한 문제점이 극복되지 못하고 악화될 수 있다는데 있다. 한때 우리 사회는 4차산업혁명이 화두, 키워드였다. 두려움의 키워드이면서 기회의 키워드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4차산업혁명 화두는 또 한 번 심각한 불균형을 드러냈다. 4차산업혁명은 독일의 산업(Industry) 4.0에 기원을 두고 있다. 주로 자본의 입장에서 디지털 전환을 어떻게 산업 전반으로 확산시키고, 경제 시스템을 전환시킬 것인가에 대한 전략을 다루고 있다.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여 생산을 지능화(스마트 팩토리)하는 것이 핵심이다. 지능화라는 것은 자동화, 즉 노동력의 감소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는 실업에 대한 위기 의식이 커졌다. 그러나 실업에 대한 개인적 위기 의식은 커졌지만, 사회적으로 노동, 일자리에 대한 논의는 제대로 일어나지 못했다. 4차산업혁명(산업 4.0)에 대한 책이 백여권이 넘게 출판되는 동안 ‘노동 4.0’에 대한 책은 필자의 책 1권뿐이었다. 심각한 자본과 노동의 불균형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저출산 고령화라는 숙련된 노동력 감소의 문제와 독일의 제조 경쟁력을 위협하는 미국 주도의 디지털화에 대응하여 독일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한 전략이 ‘산업 4.0’이다. 기업, 자본의 주도로 추진되는 생산의 자동화의 고도화라는 산업 4.0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노동의 개혁, 변화가 동시에 수반되야 한다는 것을 인식한 독일 정부는 산업 4.0 시대에 노동 정책을 새롭게 수립하는 과정을 시작했다. 그 방법은 사회적 논의였다.  독일 정부는 “노동 4.0 녹서”를 통해 산업 4.0을 통해 변화할 미래 노동에 대해 논의해야 할 사항들을 전 국민적 토론 주제로 상정했다. ‘노동 4.0 녹서’에는 산업 4.0의 차원에서 미래의 동향을 디지털화, 글로벌화, 노동 인구 구조의 변화, 문화와 가치관의 변화 등으로 정의하고, 독일이 이에 대응하기 위해 감당해야 할 과제들을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 질문의 형태로 제시했다. (1) 모두를 위한 일자리 마련이 가능할 것인가? (2) 인생 주기에 따라 노동 형태는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 (3) 노동과 임금 체계와 관련된 사회 안전망은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4) 숙련 노동의 미래와 훈련 체계는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5) ‘좋은 노동’은 어떠한 형태로 이루어져야 하는가? (6) 고용 문화는 어떻게 조성돼야 할 것인가?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하여 2015년 4월부터 2016년 말까지 2년에 걸쳐 독일 내 사회 각계각층을 아우르는 열띤 토론이 전국 각지에서 열렸다. 이 토론에는 노동계뿐만 아니라 기업, 협회, 학계 전문가, 일반 시민이 참여했다. 시민들과의 대화를 이끌기 위해 '미래'라는 명칭의 영화 시리즈를 독일 전역의 18개 도시의 극장에서 상영하고 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시민들은 “디지털화되어가는 사회적 변동 속에서 '좋은 노동'이라고 하는 이상은 어떻게 유지되고 강화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도전에 직면하여 각자의 생각을 나누면서 함께 해결책을 찾아 나가는 과정에 동참하였다. 그리고 미래 디지털 시대에 과연 ‘좋은 노동’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좋은 노동이 가능한 조건을 갖추기 위해서 어떠한 일들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 사항과 합의점, 더 논의가 필요한 사항들을 정리하여 노동 4.0 백서에 담았다.  노동 4.0 백서에서 주목하는 가장 큰 화두는 ‘노동의 유연화’다. 산업 4.0, 디지털 전환이 가져오는 가장 큰 변화도 ‘노동의 유연화’다. 노동 시간의 유연화, 노동 장소의 유연화는 노동자에게 새로운 기회임과 동시에 위기를 가져오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였다. 특히 주목한 위기는 노동의 양극화다. 새로운 능력을 갖춘 노동자에게는 고소득의 기회가 주어지지만, 많은 노동자들은 새로운 기술, 자동화에 의해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다. 저숙련 노동자들이 사회보장의 사각지대인 플랫폼 노동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것을 전망하기도 했다. 독일보다 먼저 우리나라에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 플랫폼 노동의 문제는 이미 독일에서 시민과 노동자들에게 인지되고, 논의된 예견된 미래였다. 늘어난 생산성에 맞추어 노동 시간을 줄여 고용을 유지하고, 새로운 생산 방식(스마트 팩토리)에 맞춰 산업계와 노동계가 협력하여 새로운 기술 교육을 강화하는 등의 대책이 논의되었다. 노동 시간의 단축, 노동시간 계좌를 통한 생애 주기별 노동 시간의 조정 등에 대한 대책이 제안되고 정책으로 실현되고 있다. 이 외에 디지털 시대의 전문인력, 새로운 일자리를 위한 교육 등 산업 4.0의 성공을 위한 한 축으로서 노동의 역할을 새롭게 모색하고 있다.  나아가 디지털화 되어가는 사회구조 속에서 노동의 수준을 높게 유지하기 위한 생산이익의 분배, 플랫폼형 대기업들의 이윤에 대한 세금 부과 문제, 공공재와 서비스의 현대적 인프라 구축 등 거시 경제적인 차원에서 틀을 만들고, 그에 따라 노동정책을 짜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노동정책과 사회정책을 긴밀히 연결하는 노력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노동 4.0’의 최종 목표는 국민 100%의 근로라는 것을 천명하고 있다. 많은 노동 정책이 제안되고, 정치권에서 입법화 과정을 거치고 있다. 독일의 상황이 한국과 같지 않기 때문에 독일 정책이 한국에도 적합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배울 점은 노동 정책의 수립에 노동자만이 아니라 시민, 국민이 함께 합의를 해나가면서 사회적 갈등을 줄이고 정책의 수용성을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독일의 노동 시간에 대한 합의 과정을 보면 한국의 상황은 여전히 일방 통행이다. 산업의 파트너인 노동은 없고, 여전히 자본과 정치권의 일방 통행이다. 주 52시간 노동 정책에서 순식간에 주 69시간, 2주 최대 80.5시간 노동 정책이 강요된다. 그러면서 ‘디지털에 가장 앞선 나라’, ‘디지털 전환’이 논의된다. 선출된 권력이 무엇을 국민에게서 위임받았고, 무엇을 국민이 결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제도나 문화는 여전히 개도국 수준이다. 노동의 주체인 노동자는 노동에 영향을 미치는 노동 정책의 결정 과장에서 여전히 소외되어 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자신의 문제를 자신이 결정할 때 가능하다. 특히 변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앞으로 닥칠 문제를 인지하고, 서로 일방적인 주장만을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양보하고 노력해야 할 부분을 찾아서 더 나은 관계로 발전시켜 나가는 방안을 결정하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독일의 민주주의는 사회적 합의를 통하여 노동의 이상향을 찾아 가고 있다. ‘노동 4.0 백서’ 서문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된다. “하루 8시간·주 36시간의 노동, 근무 조건의 개선 및 보장, 아동 노동의 금지. 이런 사항들이 미래의 노동이 지향할 이상향으로 그려졌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이상향은 완전히 다르다. 시원한 바닷가에 편안히 앉아 노트북을 무릎에 놓고 일하는 창의적 지식 노동자, 혹은 컴퓨터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원하는 작업 스케줄을 짜는 생산직 노동자 등이 현재 우리의 이상향이다.”    독일의 이상향이 우리의 이상향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접근 방식은 정반대다. 변화된 시대에는 변화된 방식이 필요하다. 디지털 전환 시대에 산업 시대의 사고 방식으로는 전환에 성공할 수 없다. 디지털 시대의 맞는 노동 정책으로 전환하기 위한 산업계와 노동계의 대화, 사회적 대화를 통하여 새로운 관계를 모색해야 하는 이유이다.  
노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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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속 부당노동행위, 이대로 괜찮을까요?
tvN <서진이네>는 <윤식당> 시리즈에서 이사로 활약한 이서진이 사장으로 승진하여 해외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예능 프로그램입니다. 장사에 진심인 이 사장을 필두로 정 이사, 박 부장, 최 인턴, 김 인턴까지 5명이 나름의 직급 체계를 갖추고 가게를 운영하는 컨셉입니다. 2화에서 PD가 “지금 노조 결성이 코앞이에요”라고 하자 (과몰입한) 이 사장은 “서진이네에 노조는 용납할 수 없어”, “노조가 결성된다 싶으면 얘를 임원으로 올릴거야”라고 말 합니다. “임원은 노조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노동조합은 근로자가 주체가 되어 자주적으로 단결한 단체 및 연합단체입니다. 근로자가 주체가 되어 근로자를 위한 역할을 수행해야하는 단체인 만큼 ‘사용자 또는 항상 그의 이익을 대표하여 행동하는 자의 참가를 허용하는 경우’는 노동조합으로 보지 않습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구체적으로는 대표이사, 이사회, 본부장 등 사업의 경영담당자를 비롯하여 근로자의 인사, 급여, 후생, 노무관리 등 근로조건 결정 또는 업무상 명령이나 지휘・감독을 하는 등의 사항에 대하여 사업주로부터 일정한 권한과 책임을 부여받은 자, 근로자에 대한 인사, 급여, 징계, 감사, 노무관리 등 근로관계 결정에 직접 참여하거나 사용자의 근로관계에 대한 계획과 방침에 관한 기밀사항 업무를 취급할 권한이 있는 자 등을 의미합니다. (고용노동부, 2022 집단적 노사관계 업무 매뉴얼, 29-30쪽)  한편, 우리 노동조합법 제81조에서는 사용자가 할 수 없는 행위로 불이익 취급, 노동조합에 대한 지배 개입, 단체교섭 거부 등의 ‘부당노동행위’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방송에서 나온 것과 같이 ‘승진’을 통해 ‘노동조합 활동을 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을 ‘부당노동행위’로 볼 것인지 판단 기준을 제시한 사례가 있습니다. 사용자가 근로자의 노동조합활동을 혐오하거나 노동조합활동을 방해하려는 의사로 노동조합의 간부이거나 노동조합활동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근로자를 승진시켜 조합원 자격을 잃게 한 경우에는 노동조합활동을 하는 근로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행위로서 부당노동행위가 성립될 수 있을 것인바, 이 경우에 근로자의 승진이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 의사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인지의 여부는 승진의 시기와 조합활동과의 관련성, 업무상 필요성, 능력의 적격성과 인선의 합리성 등의 유무와 당해 근로자의 승진이 조합활동에 미치는 영향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대법원 1992. 10. 27., 선고, 92누9418, 판결)  앞서 본 것과 같이 <서진이네>의 사용자는 사업장에 노동조합을 용납할 수 없고, 노동조합이 생긴다면 직원을 승진시키겠고 밝혔습니다. 따라서 <서진이네>에서 직원의 노동조합 결성과 관련하여 사장이 직원을 승진시켰다면, 그 승진은 부당노동행위 의사에 따른 승진, 노동조합 활동을 방해하려는 취지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예능을 예능으로 보자’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스쳐간 10초의 방송 그 이상의 고민을 주는 지점인만큼 한 번은 짚어보고 싶습니다.  헌법이 보장한 권리를 부정하는 내용까지도 예능으로 수용해야 할까요?  현행법상 금지되는 행위의 구체적인 방법을 발언하고 방송하는 것이 세계를 선도하는 K-콘텐츠의 내용이어도 괜찮을까요?
노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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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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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노동 4.0’,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챗GPT’ 열풍입니다. 인간이 일자리를 빼앗기고, 허위조작정보를 구별하기 어려워지고, 심지어는 AI의 통제 아래 놓일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반면 AI의 도움에 힘입어 인간이 새로운 차원의 일을 할 수 있고 그에 따른 새로운 일자리들이 창출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기도 합니다. AI는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지만, 이에 대응하기 위한 AI 관련 윤리의 정립, 법과 제도의 도입은 늦어지고 있습니다. 챗GPT의 등장으로 인한 구체적인 사회변화의 맹아들을 살펴보고, 대응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사회적으로 논의 할 필요가 있지만, 이 글은 AI보다 좀더 넓은 범위에서 디지털 기술의 혁신에 따른 사회의 구조적 변화에 직면해 있다는 것을 재인식하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시작해 보려 합니다.  챗GPT로 인해 한층 앞당겨지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 이전부터 우리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고립된 비대면 상황에서의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소통과 협업의 급속한 진전을 확인했습니다. ‘4차산업혁명’, ‘산업4.0’ 등의 이름으로 수년간 그 이야기되고 있던 일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실제로 진행중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자각하게 된 것입니다. 이 변화는 AI뿐만 아니라 로봇, 플랫폼, 사물인터넷, 스마트 팩토리, 빅데이터, 공유경제, 자동화 등 각기 다르면서도 겹치거나 연결된 단어들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른 사회 변화의 장면들 이제 식당에 가면 키오스크와 로봇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테이블에 앉아 키오스크로 메뉴를 고르고 결제하여 주문을 하면 로봇이 음식을 가져다 줍니다. 식당에서 사람을 대면할 일이 없어졌습니다. 카페에서 키오스크로 커피를 주문하면 바리스타 로봇이 커피를 내리고, 배달 로봇이 가져다 주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로봇이 치킨을 튀기고 떡볶이를 만듭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경제위기 등 악조건 속에서 인건비라도 줄여보고자 로봇을 반기는 자영업자들의 인터뷰가 쏟아져 나옵니다. 대형마트 또한 키오스크를 도입하고 있는데 지난 5년간 1만여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고 합니다.(MBC, 2023.2.7) 2023년 기준 최저임금이 월 200만원이 넘었는데, 키오스크 월 대여비는 5만원이라고 하니 바꾸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고 여겨질 상황입니다. 소자영업자와 노동자의 구조적으로 강제된 생존 대립 구도 속에서 소자영업 영역에서의 일자리가 사라져 가고 있는 듯 보입니다. 화이트 칼라의 노동 형태 또한 이전과는 달라졌습니다. 일은 반드시 사무실에서 해야 한다는 생각은 점점더 낡은 것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집이나 카페에서 ‘줌zoom’이나 ‘구글 미트'를 활용하여 화상회의를 하고, ‘슬랙’이나 ‘잔디' 등의 업무 소통 툴을 활용하여 일하는 것은 전혀 어색하지 않은 당연한 일이 되었습니다. 구글 캘린더로 서로의 일정을 공유하여 확인하고, 구글의 문서, 시트, 슬라이드 등을 활용하여 일을 하고, 구글 드라이브 등의 웹드라이브에 문서를 저장해두고 어디서든 꺼내 작업하는 모습은 이제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 되었습니다. 노트북이 앞에 있지 않아도 스마트폰으로 거의 모든 것을 확인하며 일을 하고, 심지어는 운동을 하다가도 스마트워치로 급한 일을 처리하기도 합니다.  이런 비대면 노동의 확산에서 시간과 장소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운 유연성이 가장 큰 장점으로 여겨지고, 노동자의 만족과 생산성 향상이 기대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집중력 저하, 동료와의 소통 역량 약화, 사회적 고립 가능성의 증대와 같은 우려를 하기도 합니다. 앞으로의 노동의 변화는 어느쪽에 가까울까요? 이미 놀랄 정도로 변했지만 기술의 발전에 따라 더욱 급변할 것입니다. 이를테면 생성형 AI를 활용한 노동의 급격한 변화는 이미 예정되어 있는 셈입니다. 변화발전하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노동을 잘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은 이제 필수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빠르게 적응 할 수 있는지에 따라 생겨나는 ‘디지털 격차'에 의해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라 지속적으로 재교육되는 노동 시스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작업장, 공장의 변화는 더욱 놀랍습니다. 쿠팡 물류센터에서는 무인운반차 로봇이 택배 물품을 나르고, 분류로봇 ‘소팅봇'이 물건을 분류하고 있습니다. 쿠팡은 전 과정에서 자동화 기술을 도입해 노동력과 시간을 1/3로 줄였다고 합니다. 이미 AI와 로봇이 상당부분 사람을 대신하고 있는 셈입니다. 네이버 쇼핑과 협업하는 물류업체 파스코의 작업장에는 사람이 다니는 길 자체가 없다고 합니다. CJ대한통운, 롯데쇼핑 역시 이미 자동화 한 상태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기계가 인간에 비해 정확도가 높고 속도도 더 빠르고 드는 비용도 적기 때문에 이는 효율도 높다는 논리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MBC, 2023.2.7) SF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 AI와 로봇에 의해 자동으로 돌아가는 작업장이 실현되고 있는 중입니다. 경제ㆍ산업의 급속한 디지털화/자동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인 것 같습니다.  플랫폼 경제의 확산은 이미 많은 분들이 인식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배달의 민족’ 앱을 통해 음식을 주문하면 빠른 시간 안에 배달 노동자가 음식을 가져다 줍니다. 배민 안의 ‘비마트’로 주문하면 슈퍼에 가지 않고서도 생활 물품들을 빠르게 받을 수 있습니다. 비마트에 원하는 물건이 없다면 쿠팡을 통해 장을 보면 ‘로켓배송'으로 물건을 빠르게 받을 수 있습니다. 일이 너무 많아 청소 할 시간과 여유가 없다면 청소 도우미 서비스 앱에서 사람을 부를 수도 있습니다. 플랫폼을 통해 법률상담도 받고, 약을 배달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수많은 일들이 플랫폼의 매개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플랫폼 경제의 발전은 플랫폼 노동의 확산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배달의 민족 등 배달 플랫폼을 통해 배달 노동을 수행하는 라이더 노동자들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플랫폼 노동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앱으로 택시를 부르거나, 법률 자문, 집청소 등 다양한 다양한 노동이 플랫폼 노동이 될 수 있고 또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플랫폼 노동은 팬데믹을 거치면서 대도시에 인구가 극도로 몰려 있는 한국 상황과 결합되어 급격하게 늘어났습니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고용하는 사람과 일을 하는 사람이 조건에 따라 매칭으로 연결됐다 흩어지는 형태로 일을 하며, 이는 전통적인 회사 개념에 들어맞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노동입니다. 적재적소에서 원하는만큼 일 할 수 있어 효율적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사회 안전망의 보호을 받을 수 없는 상태에서 불안정한 노동을 하고 있다는 우려가 훨씬 큽니다. 플랫폼 자본주의 시대의 프레카리아트들은 긱 워크, 즉 단기적인 계약을 맺고 수행하는 일회성 노동, 플랫폼 노동이라는 이름의 불안정 노동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플랫폼 노동자들의 권리는 무엇이며 이들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은 어떻게 구축해야 할까요? 택배를 분류하는 쿠팡의 소팅봇(쿠팡 뉴스룸) 독일의 대응, ‘산업 4.0’과 ‘노동 4.0’ 앞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른 사회변화가 급격하게 진행중이고, 대응을 위한 사회적 논의가 시급함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른 불평등과 양극화의 심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디지털 기술을 독점하고 있는, 이를테면 플랫폼을 소유하고 있는 최상위 계층이 부를 독점하게 될 것입니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계층이 그 다음 계층이 되고,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사회적 안전망의 도움을 받을 수 없고 불안정 노동을 하는 프레카리아트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심지어 프레카리아트조차 될 수 없는 사람들은 실업 상태에 놓일 것입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라 일자리의 총량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난다면 더욱 심할 것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인간의 노동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관한 논의가 시급합니다. 일자리의 양도 중요하지만, AI가 핵심적인 일을 맡고, 사람은 기계의 부속품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점, 즉 노동의 질 문제에 대해서도 논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른 급격한 사회변화가 이루어지는 시대를 ‘4차산업혁명', ‘산업 4.0’ 등의 용어로 지칭하고 있습니다. 특히 독일은 지구적인 디지털화, 고도의 자동화에 대응하는 국가적 전략 차원의 연구 및 사회적 대화 프로젝트로 ‘산업 4.0’를 추진해 왔습니다. ‘산업 4.0’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제조업의 완전 자동 생산체계를 구축하는 산업 정책입니다. ‘노동 4.0’은 그 논의의 결과로 제시된 것입니다. ‘노동 4.0’을 도출하기 위한 핵심 질문은 ‘디지털 기술에 따른 사회변화 속에서 모든 국민의 노동, 좋은 노동은 어떻게 가능한가?’입니다. 우리도 같은 질문에 누가 어떻게 대답할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독일은 2012년에 ‘2020 액션 플랜’을 발표하며 ‘산업 4.0’을 제시했습니다. 목표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전 국가 차원의 스마트 팩토리 구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2015년, ‘플랫폼 인더스트리 4.0’을 정부, 기업, 연구소, 민관학 공동으로 구성하여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표준화-참조 체계 구축, 연구와 혁신, 네트워크 시스템의 보안, 법적 체계, 노동-직업 교육” 5개의 워킹 그룹이 구성되었습니다. 이는 ‘산업 4.0’이 기업 중심을 넘어 정부-기업-노동의 사회적 차원으로 논의하고 진행하게 되었고, 사회 정책 플랫폼 역할을 하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논의를 통해 먼저 <노동 4.0 녹서>를 내놓고 미래의 노동에 대한 국민 토론 주제 상정하여 사회적 논의를 이어갔습니다. ‘노동 4.0’의 목적은 디지털 시대의 ‘좋은 노동’의 의미와 조건을 밝히는 것이었습니다. 기업, 협회, 학계, 노동계, 일반 시민 등이 2년간 논의하여 그 결과물로 <노동 4.0 백서>를 발간했습니다. ‘산업 4.0’과 ‘노동 4.0’은 동시에 추진되어야 성공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이명호, 2018 20~22p.)   사회적 논의의 결과로서의 <노동 4.0 백서>는 ‘양질의 노동’을 달성하기 위해 ① ‘양질의 노동’을 달성하기 위한 소득과 사회안전망 확보, ② 안정적이고 직업적 상승이 가능한 ‘양질의 노동’ 기회 제공, ③ 생애단계에 따라 변화하는 다양성이라는 새로운 표준의 인정, ④ 노동의 질 유지, ⑤ 공동결정, 참여, 기업문화 논의라는 다섯 가지 목표를 제시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목표에 따라 사회적 대화 및 연구를 거쳐 ① 실업보험에서 고용보험으로의 전환, ② 유연하지만 자기주도적인 근로 시간, ③ 서비스 부분에서 양질의 근로조건 확보, ④ 산업안전보건 4.0을 위한 접근법 마련, ⑤ 근로자 정보보호기준의 강화, ⑥ 공동결정과 참여의 지속과 사회적 파트너십에 기반한 전환, ⑦ 자영업자를 위한 사회적 보호의 증진, ⑧ 미래지향적 복지국가의 구축이라는 여덟 가지의 구체적인 정책방안을 제시합니다.(제제, 2023) 독일에서의 ‘노동 4.0’ 사회적 논의의 결과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우리가 그대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우리도 그 내용을 참조하며 사회적 논의를 해야만 한다는 점은 깨달을 수 있습니다. 디지털 기술 혁신에 따른 산업의 재구조화, INDUSTRY 4.0(pixabay) 한국판 ‘노동 4.0’의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소위 ‘디지털 기술에 의한 혁신’은 창조적이고도 효율적인 경제 성장의 장미빛 미래를 그리는 관점과, 기술에 의한 인간의 일자리 상실 및 종속이라는 디스토피아를 그리는 관점 사이에서 진동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정한 디지털 기술 존재 자체로는 대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디지털 기술은 자연·인간과 관련하여 누가 어떤 맥락 속에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비윤리적이거나 사회문제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챗GPT의 등장에 따라 ‘AI 윤리'를 제도적으로 갖춰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면, 그것은 ‘AI의 윤리'가 아니라 ‘AI와 관련한 인간이 지켜야 할 윤리'에 대해서일 것입니다.   한국사회에 지구적인 디지털 기술 혁신과 관련한 대응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디지털 기술 혁신이 ‘경제성장을 위한 신성장 동력 발굴'을 목표로 기업과 산업, 정부와 전문가 중심으로 기업간의 경쟁이나 국가간의 경쟁 차원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시민의 권리와 민주주의보다는 자본의 이윤이나 국가의 통제 논리에 따라 발전 방향을 결정하고 그 성과를 특정 주체가 독식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입니다. 기술 그 자체가 위험한 것이 아니라 기술을 발전시키고 활용하는 특정 주체가 독점적인 이윤과 통제를 추구한다는 점이 위험한 것입니다. 디지털 기술에 힘입은 새로운 산업 체제의 구축은 국가와 자본이 아닌 시민·노동자·사회적 소수자 등, 시민사회 차원의 다양한 주체의 대응이 없다면 불평등과 양극화를 심화하고 고착화 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4차산업혁명, 산업 4.0등의 표현은 그 자체로 좋거나 나쁘다고, 옳거나 틀렸다고 판단할 수 있도록 고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여러 갈래의 가능성을 지닌 디지털 기술에 의한 사회변화의 총체적인 흐름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서 묘사한 여러 장면들은 우리가 이미 그러한 변화의 한 복판에 있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기업은 달리고 정부는 일부 지원하고 있는데, 시민사회는 우왕좌왕하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는 독일에서의 사회적 대화를 통해 도출 된 ‘노동 4.0’에서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정부, 기업, 학계, 노동계, 시민 등 다양한 주체들에 의해 연구, 토론 등 다양한 방법으로 사회적 논의를 거쳐 정책 방안을 도출하는 대응 전략을, 한국사회의 버전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습니다. 디지털 기술의 혁신에 따른 한국사회에서의 변화 양상에 대한 탐구, 그에 따르는 민주주의와 노동 차원에서의 문제점의 인식, 사회변화에 대응하는 사회안전망의 변형 및 제도화 대안 마련,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현 시대에 적합한 디지털 민주주의의 실현 등 다양한 이슈에 관한 국가 차원의 사회적 논의를 할 수 있는 공론장과 거버넌스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글 : 람시 / 사회적협동조합 빠띠, 캠페인즈팀 / ramsci@parti.coop <노동 4.0>의 상세한 내용은 ‘독일의 '노동 4.0'을 알고 계신가요?’에서 찾아보실 수 있고, 훨씬 더 상세한 내용은 <노동 4.0 백서(요약 번역본)>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플랫폼 노동에 관한 노동 4.0에서의 논의는 ‘노동 4.0이 예측한 플랫폼 기업의 이윤 독식'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플랫폼 노동의 문제에 대한 시민사회적 대응의 최근 사례는 ‘비가 내리는 어린이날 연휴, 배민라이더의 파업’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노동 4.0>의 한국적 함의를 담은 또 다른 글은 '한국형 , 진정한 노동개혁을 위하여'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의 급격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는 ‘시민들’에 의한 ‘공론장’이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디지털 공론장을 만드는 집단지성과 인공지능'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은 빠띠의 블로그, 홈페이지,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되었습니다. 
노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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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노동4.0>, 진정한 노동개혁을 위하여
노동4.0. 솔직히 말해 우리의 입장에서는 아직 언감생심인 개념이다. <노동4.0>이라는 표현은 독일에서 나왔다. 독일의 산업계가 미국의 IT기업들이 주도하는 디지털 시대의 도래를 맞아 자신들의 위기의식을 <산업4.0>이라는 개념에 담아 주창하며 현실의 한계를 타개해 나갈 것을 천명하자, 독일의 노동계가 이를 받아 그에 더하여 산업4.0뿐 아니라 노동4.0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나서면서 생긴, 하나의 시대전환의 키워드이면서 개혁 프로그램이면서 또 사회적으로 합의된 방안이 바로 노동4.0이다. 노동4.0의 독일어는 <Arbeiten(아르바이텐)4.0>이다. 아르바이텐은 동사로 ‘일하다’라는 말도 되고 동명사로 ‘일하기’라고도 할 수 있다. 이를 노동이라고 다소 딱딱하게 번역할 수도 있지만, 원어 그대로 ‘일하기’라고 칭한다면, 그 뉘앙스는 어쩌면 더 살려질 수도 있을 것 같다. 한마디로 새로운 디지털 기술의 확산이 형성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환경에 맞추어 일의 사회적 존재방식, 일자리의 구성요소들을 새롭게 정비하자는 취지와 방안을 담고 있다. 이는 자연스럽게 노동력의 거래를 매개하는 방식 – 대표적으로 고용 - 의 변화까지 포괄할 여지가 있다. 한마디로 디지털 시대에 맞게 대대적으로 노동개혁을 하자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도래는 모든 나라들에서 심도 깊은 노동개혁의 필요성을 추동하고 있다. 문제는 무엇을(what), 어떻게(how to), 어디로(where to) 바꾸어갈 것이냐에 있다. 여기에는 한 사회에서 노동이 존재하는 방식과 관련한 기본적인 사회계약을 어느 정도로 유지해 가면서, 새로운 환경에 맞는 요소를 어떻게 새롭게 도입할 것인가가 합의되어야 한다. 합의를 누가(who) 주도하느냐도 전환의 중요한 관건이다. 독일의 아르바이텐4.0은 우리로서는 따라하기 힘들 정도로 발전된 사회적 파트너쉽(Sozialpartnerschaft)을 형성, 구가하는 독일이라는 나라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 시도이다. 특히 대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폭넓고 체계적인 사회적 소통을 활성화시켜 간 것이 인상적이다. 먼저는 녹서(green book)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사회구성원들로 하여금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는데, 그것은 1-2년의 시간을 요했다. 이후 백서(white book)라는 이름으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사회적 소통의 노력을 기울였다. 다 합쳐서 약 3년의 시간을 들여 미래에 우리가 일자리에서 받아들여야 할 변화는 무엇이고 우리가 여전히 유지해 가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해 다양한 소통을 전개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독일의 노동4.0 프로그램인 것이다. 이미 녹서와 백서 모두 출간이 되어 전세계인들이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해당 내용을 보면, 독일인들은 디지털시대를 맞이하면서 미래에 일하기와 관련하여 기본적으로 존중되어야 할 가치에 대해 5가지로 정립했다. 그것에 기초해 미래의 좋은 일자리가 지향해야 할 8가지의 기본적인 준칙들을 정립했는데, 그것은 독일의 노사관계, 노동시장제도, 사회복지제도 상의 일정한 변형과 재구조화를 천명한 것들로 구성되었다. 예컨대, 산별단체교섭이나 공동결정제 등의 방안들은 새시대에도 유지, 계승되어야 할 것이라고 규정되었고, 여타 직업훈련과 관련한 측면에서는 새로운 쇄신안들이 담겨졌다.   ‘넘사벽’인 독일식 노동개혁 시도와 한국에의 함의 필자가 서두에서 독일의 노동4.0이 우리에게 언감생심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 내용과 방식 모두를 놓고 한 말이다. 앞서 언급한 <노동4.0 백서>를 살펴보면, 노동1.0이 노동조합의 탄생, 노동2.0이 복지국가의 탄생, 노동3.0이 공동결정의 정립으로 이해가 되고 있고, 그것을 계승, 발전시키는 것이 바로 노동4.0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주지하듯이 노동조합, 복지국가, 공동결정 모두 우리 사회의 일자리들의 상당수에서는 별 의미를 지니지 못하고 있다. 과연 노동1.0에서 3.0까지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 나라에서 노동4.0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무조건 비관만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기술발전이나 경제적 번영을 이루는 데에 있어서도 ‘따라잡기’가 가능했듯이, 사회시스템, 특히 노동시스템의 재구조화도 새로운 모멘텀을 맞이하여 제대로 설계를 하고 타당한 정치의 배에 실어 간다면 도약의 여지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걸림돌은 우리 스스로 우리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지향해야 할 가치가 무엇이 되어야 할 지에 대해, 그것을 위해 어떤 것을 쉽게 합의할 수 있고 어떤 것을 오랜 논쟁을 거쳐 정돈해야 할 지에 대해 아예 모르고 있고 또 알려고도 하지 않는 데에 있다. 노동4.0에 대한 담론은 한국에서 이미 굉장히 빨리 수입되고 소비되어 이제는 솔직히 거의 폐기되어진 듯한 느낌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실상은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은 채 그저 머리 속에서 외국에서 만든 사고와 행동을 파악하고 마치 그것을 우리가 다 이룬 듯이 행동하는 데에, 혹은 우리가 하기엔 불가능하다고 단정짓고 마는 데에 익숙하다. 후에 재차 그것을 꺼내어 무언가를 이야기하자고 하면 이미 낡은 것처럼 사고되기도 한다.   한국형 노동4.0의 설계와 노동개혁의 방향성 현재 우리의 노동시장은 이중화를 넘어 심지어 삼중화되어가고 있어 보인다. 종래의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고임금의 안정적인 일자리를 향유하는 근로자들이 1차 노동시장을 이룬다면, 중소기업의 정규직이더라도 임금상승의 기회가 낮은 곳들, 또 여타 기간제, 파견근로 등 고용불안이 전제가 된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2차 노동시장을 형성한다. 그리고 지금 디지털 기술의 적용을 매개로 고용이 아닌 형태를 취하면서 노동력의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는 플랫폼 노동 등의 영역은 말하자면 3차 노동시장으로 별도로 범주화해도 무리가 아니다. 1, 2차까지 그래도 근로계약을 맺고 노동력의 댓가로 임금을 받았다면, 이들은 임금이 아니라 수수료를 받는, 이른바 ‘수수료 노동자들(fee workers)'이다. 그들의 경우 노동에 결부된 사회적 시민권은 사실상 발가벗겨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하는 방식의 변화와 노동개혁은 한국 노동시장의 이 삼분된 세계를 새롭게 통합시켜 낼 수 있는 방안이어야 한다. 그것은 비용이 들어갈 것이고 하단부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해 주어야 하며, 우리의 노동인구가 지속가능하고 편안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정도의 노동조건을 제공해 주는 것이어야 한다. 물론 노동이 역할을 하는 혁신의 전략 역시 그 안에 오롯이 담겨져야 한다. 한마디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개혁의 기본은 일터 민주주의와 일터혁신의 동시적 신장에 있다. 우리의 노사관계는 주로 분배를 위한 과정에서만 작동을 하고 있고 생산에의 노동의 참여기회에 대한 제도적 기반은 허약하기 그지없다. 분배와 관련한 단위도 개별기업으로 설정되어 있는 것이 대부분이라, 끊임없이 일터대결주의(workplace antagonism)의 함정에 빠지곤 한다. 노동시장 전반에 포괄적으로 적용되는 임금체계 – 필자는 이를 ’사회적 직무급‘이라고 칭한다 – 를 만들고 그것을 위한 분배교섭을 효율화시켜 초기업 수준에서 도모하고, 일터에서는 노동자들의 민주적 이해대표 체계를 꼼꼼히 정비해서 협력과 참여를 촉진시켜 결국 일터혁신을 일상화하는 방안을 보편화하는 것이 타당할 수 있다. 이는 사실 일터대결주의를 극복한 독일식 방법이기도 하다. 개혁의 길이 무엇이 되어야 할 지에 관해 사회적 소통을 대대적으로 전개하고, 그것을 정돈해 필요한 방안을 마련해서 사회적 합의를 도모하는 작업도 중요하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작업에 정권의 명운을 걸고 매진할 것을 결단할 정부가 필요하고, 그 리더쉽 하에서 한국형 노동4.0의 길을 그려 지속가능한 미래의 청사진을 마련하고 추진해 가야 할 것이다.   귀납적인 길은 어떨까 현실 정치에서는 또 다시 노동개혁이 화두로 부상해 있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우리에게 노동개혁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지만 전문가들 몇 사람이 부실한 안을 만들고 정부 부처가 그것을 받아 정책을 추구하다가 사회 일각에서 강한 반대가 일면서 대통령이 그것을 부정해 버리는 식의 방식은 그 내용과 과정 모두에서 이미 실패한 것이다. 어쩌면 과연 노동개혁에 대한 진정성 자체가 있기나 했나 싶은 실망스런 모습이다. 과거에도 쉽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가 도모한 한국판 뉴딜 역시 경제관료들 주도로 만들어진 정책패키지였고, 결국 정권이 바뀌면서 아무런 사회적 지지도 없이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박근혜 정부 하에서의 이른바 9.15합의는 어쩌면 개혁의 모양새와 내용을 더 갖춘 면이 있지만, 그 역시 의제의 편향적 입법화를 시도하면서 정권의 종말을 부추기고 말았다. 이렇게 우리의 현대사에서 성공한 노동개혁은 좀처럼 찾기 어렵고 그만큼 공을 많이 들여야 하는 일이다. 노동개혁이 어려운 것은 한방에 답을 찾으려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필자는 귀납적 방법이 오히려 현실적일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지역을 단위로 해서 민의들을 모으고 그것을 집약해서 작은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가면서 청사진의 퍼즐조각들을 맞추어 가는 것이다. 독일에서 노동4.0 녹서를 만들려 했던 시도에 적극적으로 주목한다면 충분히 이러한 기획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날 광주형 일자리와 같은 사회적 소타협의 경험은 그러한 류의 방안이 불가능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수용가능한 조건의 일자리 모델을 만들고 그것을 중심으로 새롭게 인구구조와 세대적 요구의 변화와 차이를 반영해 일하는 사람들이 존중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의 디자인. 그것은 전환기 민주주의의 역량이 발휘되고 고양되었을 때 가능하다. 그것을 위해 누군가는 깃발을 들고 첫 단추를 끼고 나서야 할 것이다. 과연 우리 사회 어디에서 그러한 울림이 시작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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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가 청소노동자를 해고했습니다
며칠 전 누군가 청소노동자에게 피로회복제 두 박스를 선물하는 모습을 봤다. 노동자들끼리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힘내세요”라고 응원한 사람은 정규직 노동자였다. 몇 분 뒤에는 정규직 노동조합의 간부가 노동자들을 찾아왔다. 그는 회사에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노조 성명서를 최근 발표했고, 예정된 노사교섭에서도 이 문제를 다룰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참을 노동자들과 함께했다. EBS(한국교육방송공사) 청소노동자 이야기다. 이 노동자들은 태어나 처음으로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투쟁’이라는 것을 하고 있다. 수백명의 노동자들이 점심식사를 하러 나오는 시간에 청소노동자들은 로비에 모여 피켓을 든다. 피켓에 적힌 내용은 이렇다. “내가 쓸고 닦은 EBS에서 동료들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일방적으로 인원감축하는 EBS 규탄한다.” “노예계약 요구하는 EBS 규탄한다.” “미화노동자도 사람이다.” 구호가 정확히 알려주듯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선 이유는 간단하다. EBS는 5월 들어 청소용역업체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청소노동자 TO를 27명에서 24명으로 3명 줄였다. 그런데 3명 전부 노동조합 간부다. 게다가 평일 노동시간을 줄이고 주말 특근을 아예 없앴는데, 이로 인해 임금이 50만원 이상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해고, 노동강도 강화, 일방적 노동시간 단축과 임금삭감… 누구의 밥줄이 끊길 줄 모르는 상황에서 각자도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EBS 노동자들은 용기 있게 ‘노동조합’으로 뭉쳤다. 그리고 해고된 동료와 함께 ‘투쟁’하는 길을 결심했다. 노동자들이 단단하게 뭉쳤고(공공운수노조 경기지역지부 EBS분회), 정규직 노조가 함께하고(전국언론노동조합 EBS지부), 미디어 전문 언론들이 꾸준히 이 사태를 보도하고 있는 만큼 청소노동자들이 결국 웃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태가 며칠 만에 해결되지는 않을 것 같다. 왜냐면 이 사태는 ‘원청이 주도하는 구조조정-노동개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EBS 사측이 전형적으로 악덕-원청의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EBS는 재정 위기가 심각하다는 이유로 제작비와 제작인력을 줄이고 있고, 청소용역비도 이런 맥락에서 줄였다. 회사의 논리는 대략 이런 식이다. 우리 회사는 오래 전부터 재정 압박을 받아왔다. →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위기상황을 맞았고, 전사적으로 비용절감을 해야 한다. → 고통분담에 예외는 없어야 한다. → 청소노동자들 요구를 받아들이면 비용절감 기조가 흔들린다. 굉장히 익숙한 주장과 논리다.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모든 회사, 모든 원청이 이렇게 선동한다. 그래서 우리는 익숙하게도 이런 선동의 효과를 정확히 안다. EBS의 주장은 고통분담을 해야 할 정규직 노동자 일부 또는 다수에게 이렇게 다가간다. ‘회사가 망해가는데 청소노조가 떼를 쓴다.’ 회사는 또 이런 여론을 명분 삼아 구조조정을 강행할 것이다.  불과 몇 개월 전 덕성여대의 모습이다. 2022년 청소노동자들은 시급 400원 인상을 요구했다. 그러자 학교는 노동시간을 줄이거나 2022~2026년에 걸쳐 TO를 줄일 것을 요구했다. 청소용역비 예산을 증액할 수 없다는 것이 학교 입장이었다. 노동자들이 투쟁하자 학교는 이렇게 주장했다. ‘모두가 고통분담을 하고 있는데 청소노동자들이 특혜를 바라며 억지농성을 하고 있다.’ 학교는 담화문에 달린 댓글, 게시판에 올라온 노조 비난 글을 명분으로 노동조합과는 대화조차 하지 않았다. 올해 2월 졸업식 때 청소노동자들이 세 시간 동안 길바닥에 드러누워서야 대화가 시작됐고, 일 년이 넘은 갈등이 끝났다.  나는 EBS가 악덕-원청의 전철을 밟지 않으면 좋겠다. 하지만 지금까지 EBS가 보인 모습은 전형적이다. EBS는 다른 공공기관들이 일정 수준에서 진행한 정규직화를 계속 미뤄왔다. EBS는 다른 기업이 그런 것처럼 청소노동자들을 ‘비용’으로만 다뤘다. EBS는 노동부의 용역노동자 보호지침을 위반했다. EBS는 노동자들 그리고 노동조합과 어떠한 협의조차 하지 않은 채 구조조정-노동개악을 추진했다. EBS는 노동조합 간부들에 대한 표적해고에 “용역업체가 한 일”이라며 뒤로 숨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에 있는 EBS가 왜 충북 청주에 사무실이 있는 직원수 25명의 청소용역업체와 계약했는지, 왜 청소노동자들부터 해고하고 임금을 삭감하는지, 원청이 친 사고인데 왜 원청이 수습할 수 있는 방안이 없다고 주장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다.  경험적으로 그리고 상식적으로 나는 해고된 노동자들이 결국 현장에 복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궁금한 것은 EBS 청소노동자들과 정규직 노동자들이 앞으로 어떻게 싸워나갈지다. 정규직-비정규직이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하면 좋겠다. 그리고 이들이 EBS의 예산 운용과 경영방향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대응하면 좋겠다. 함께 EBS의 현재를 만들고 미래를 고민하면 좋겠다.  나는 EBS의 구성원들이 충분히 그럴 역량이 있고, 그렇게 해야 할 책임도 있다고 생각한다. 검색사이트에 ‘EBS+청소노동자’라는 키워드를 입력하면, 그간 EBS가 청소노동자들의 노동환경과 이들의 투쟁을 다룬 뉴스리포트와 다큐멘터리가 결과창을 가득 채운다. 이중 다큐멘터리 <세상을 잇는 다큐 it> 시리즈인 <휴게실, 어디에나 있지만 아무 데도 없는> 편은 대학, 빌딩, 옥외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휴게실에 주목한 내용이다. EBS의 이 다큐멘터리는 청소노동자들의 휴게실을 바꾸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 다큐멘터리의 마지막에는 이례적으로 제작진의 당부가 적혀 있다. 촬영하는 동안 청소노동자들은 행여 들킬세라 그림자처럼 움직여야 했습니다. 얼굴이 알려지면 일자리를 잃을까 봐 인터뷰를 하면서도 신분을 감춰야 했습니다. 취재진을 따라다니는 감시의 눈길도 있었습니다. 당연한 요구를 하면서도 해고되지 않을까 걱정부터 해야 하는 청소노동자들이 방송이 나간 후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제작진의 걱정은 현실이 됐다. 바로 EBS 로비에서 말이다. 노동자들은 해고됐고 불이익을 당했다. 경제위기의 시대, 많은 기업과 원청이 청소·보안 노동자들부터 수를 줄인다. EBS도 그 중 하나다. 그래서 우리는 EBS 문제가 어떻게 정리될지 더 관심을 갖고 연대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고민과 토론을 시작하면 좋겠다. 나는 청소노동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과 토론이 노동자 전체의 권리를 끌어올리는 시작점이라고 믿는다.  청소노동을 왜 외주화해야 하는가. 직접고용하면 안 되는가.청소노동자들의 노동은 왜 저임금이어야 하나.청소노동자의 휴게실은 왜 발밑에 있어야 하나.청소노동자들의 휴게실에는 왜 창문이 없나.청소노동자들을 ‘어디에나 있지만 아무 데도 없는’ 존재로 만든 것은 누구인가.청소노동자들은 왜 다른 구성원들이 출근하기 전 새벽 5~6시에 출근해야 하는가.
노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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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재해에 대한 집단지식을 모으다.
매일매일 뉴스가 쏟아집니다. 어이없고, 때로는 화나는 이야기들 속에 안타까운 이름들이 아주 잠깐 스쳐갑니다. 하루 평균 2.3명. 오늘 아침 일터로 나섰다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노동자들의 산재 사망 수치입니다. 대단히 큰 사고가 아니면, 기사 한 줄 없이 통계로만 파악되는 노동자들의 죽음에 사회가 그나마 관심을 가지고 2022년 1월 27일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원 이상) 사업장에서 근로자 사망 등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합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 1년이 지났지만 이것으로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법에서 말하는 경영책임자의 의무가 모호'하다거나, 중대산업재해의 기준을 노동자 '1명 이상'에서 '2명 이상'으로 늘려달라는 등 처벌 규정이 과도하다며 개정을 요구하는 경영계의 목소리에 정부가 더 귀를 기울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동자의 날이 있는 5월. 기본적인 안전 조치만 했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죽음이 수십년 째 반복되는 것에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누군인가. 일터에서 안전하게 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왜 당연하지 않는가. 우리는 계속 질문을 던져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그때그때의 기사나 자료로는 꾸준한 관심을 갖기도, 끈질기게 질문을 던지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매일매일 일어나고 있는 산업재해에 내가 얼마나 관심을 가질 수 있을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매번 고민으로만 그쳤는데, 이번에는 그 고민 앞에 ‘함께'를 두고 힘을 모아보았습니다. 5월 12일, 월요일 저녁 빠띠 활동가 5명이 “산업재해"로 위키문서를 만들기 위해 모였습니다. 모든 사용자가 개방된 협업을 통해 항목을 완성시켜 가는 위키피디아처럼 공동작업으로 ‘산업재해'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모아보기로 한 것이죠.  '산재' 둘러싼 지식들 모으다 보니 알게 된 사실들 우선 산업재해 문제에 대해 평소 어떤 관심을 갖고 있었는지 이야기를 나누며 산업재해를 줄이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지키는 일에 기여하고자 하는 바람을 모았습니다. 본격적인 공동작업에 앞서 항목을 잡았습니다. 개요, 법령, 통계, 기사, 자료, 주요 사고, 관련활동으로 정한 항목을 각각 나눠 우선 자료를 모아보기로 했습니다.  자료를 찾다가 다른 사람이 맡은 항목에 해당되면 붙여놓기도 하고, 일단은 할 수 있는 만큼의 자료를 찾아 모았습니다. 우선 첫 시간에는 자료를 모으고 본인이 찾은 자료를 어떻게 분류, 정렬을 하면 좋을지 제안하고 서로 의견을 나눴습니다. 이런 몇 번의 공동작업으로 문서의 흐름을 잡고, 항목을 추가하거나 조정하고, 추가된 항목에 자료를 다시 찾아 정리하는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당신의 일터는 안전합니까... 일상과 가까운 산재 산업재해에 대해 관심을 꽤나 갖고 있었다 생각하고,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에도 참여하며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생각했는데 위키 문서를 만드는 작업을 하면서 더 구체적으로 문제를 파악하고 전체적인 맥락과 과정을 더 알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산업안전보건법이 있는데 중대재해처벌법이 필요하게 된 이유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서 기업이라는 이름은 빠지게 된 것이나 하는 사실들 말이죠.  또 산업재해 데이터를 가지고 구인공고를 낸 기업의 산업재해 사고 현황을 살펴볼 수 있도록 정보공개센터의 일하다 죽지 않을 직장 찾기 프로젝트와 2020년부터 지금까지 이달의 산재 사망 사고 기록을 해 온 노동건강연대의 이달의 기업살인 활동은 우리의 일상이 이 문제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알려주어 감동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이렇게 위키를 만들 수도 있겠지만 [추모 캠페인] 끼임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SPC 제빵노동자를 추모합니다. 같이 산재 사고에 대해 추모의 마음을 모아보는 것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활동이겠구나 생각도 들었고요.   우리가 시작한 위키문서는 아직 빈곳이 많습니다. 위키로 우리가 모은 것은 정보나 지식만은 아닙니다. 그 문제에 대해 함께 하고 관심을 계속 기울이겠다는 마음도 쌓여있습니다. 산업재해에 대해 당신은 얼마나 알고 있나요? 당신은 얼마나 마음을 낼 수 있나요? 당신의 자리를 비워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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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띠가 보는 '노동과 민주주의'] 행복하게 일하는 방법을 찾고 싶다면
우리는 왜 일을 할까요? 보통은 ‘먹고 살기 위해(돈을 벌기 위해)’라고 답하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실제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도 (어느 정도는) 동의하는 부분이고요. 하지만 ‘돈이 전부’라는 명제에는 고개를 끄덕이기가 어렵더라고요. 일로 맺는 관계, 일로 얻는 성취감은 때때로 돈을 잊게 만들기도 하니까요. 물론 저와 다르게 생각하는 분도 계시겠죠? 이처럼 ‘일이 무엇인지, 왜 일을 하는지’에 대한 답은 무궁무진합니다. 100명에게 물어보면, 100개의 답이 나올지도 몰라요. 다양한 일터에서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다만, 우리는 모두 행복하게 일하고 싶어합니다.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 분은 없을 거예요. 오늘 이 글에서는, 함께 머리 맞대고 행복하게 일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이들의 사례를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청년 조합원이 만드는 일터와 노동조합의 조직문화,  ‘BLAH in the 공청’ 2021년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이하 공공운수노조)은, 청년 조합원이 일터 혹은 노조 내에서 겪고 있는 다양한 노동 문제와 필요한 변화를 이야기 할 수 있는 ‘BLAH in the 공청’이라는 공론장을 운영했어요. 이를 통해 조합원들과 새로운 소통 방식을 실험하고, 산발적이고 비공식적으로 진행되던 논의의 장을 조직 내부로 끌어와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려 했는데요. 조직문화, 임금격차, 노동조합의 역할 등 주요 논의 의제를 정해 조합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보다 풍성한 논의를 위해, 공론장 행사 전에는 사전토론 콘텐츠를 온라인 플랫폼에 게재하여 조합원들의 의제 학습을 도모하기도 했는데요. 부득이한 사정으로 행사에 참여하지 못하는 참가자들은 사전토론 게시글에 댓글과 공감을 남기면서 자신의 의견을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일터에서의 내 권리 찾기,  ‘일하는 서울시민 노동톡Talk’ 2021년 서울노동권익센터는, 일하는 시민이 자신의 노동 경험과 문제를 나누고 함께 대안을 찾아보는 ‘일하는 서울시민 노동톡Talk’을 운영했습니다. 특히, 여성/성소수자, 청(소)년/노인/장애인, 프리랜서/플랫폼 노동자, 30인 미만의 노동사업장 등 그동안 노동 관련 논의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노동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고자 했는데요. 대상/의제별 공론장 행사를 진행하고, 사전토론 콘텐츠를 온라인 플랫폼에 업로드해 참여자들이 의제에 대해 미리 학습하고 투표와 댓글로 토론할 수 있게 했습니다. 특히 ‘1차 온라인 사전토론 - 1차 공론장 행사 - 2차 온라인 사전토론 - 2차 공론장 행사’의 과정으로 논의가 단계적으로 숙성될 수 있는 프로세스를 마련했습니다. ‘일하는 서울시민 노동톡Talk’은 지방정부 차원의 노동정책을 살펴보고 대안을 모색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는데요. 논의 결과는 서울시 노동정책에 참고 자료로 활용되었다고 합니다. 집단지성의 힘으로 노동 문제 대안을 찾다,  ‘플랫폼 노동 건강 아이디어톤’ 대리운전, 퀵서비스, 가사관리, 배달서비스 등 플랫폼 노동은 우리의 일상에 굉장히 깊숙하게 들어와 있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빠르고 편리한 서비스를 누릴 수 있지만, 플랫폼 노동자들은 정부의 각종 보호체계에서 비껴나 있어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2021년 연세대 긱업스 연구팀은 열악한 노동 환경에 노출된 플랫폼 노동자의 건강 증진을 위한 아이디어톤(참여형 포럼)을 개최했습니다. 아이디어톤은 짧은 시간 동안 압축적으로 논의하여 결과물을 도출하는 해커톤 형식에서 영감을 받았는데요. 당사자인 플랫폼 노동자, 의료/노무/법률/보건 분야 전문가, 시민이 하루를 함께 보내며 아이디어를 모으고 대안으로 발전시키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를 통해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집단지성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을 증명했습니다. 내 고향에서 꿈을 펼칠 수 있다면,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청년위원회 지역소멸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립니다. 특히 많은 지역이 인재 유출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설사 지역에 남는 청년이 있다고 하더라도,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현실에 부딪혀 여러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요. 2021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청년위원회(이하 청년위)는, 광주/대구/부울경(부산, 울산, 경남) 등에서 당사자인 지역 청년들과 함께 지역의 노동 문제와 대안을 찾아보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공론장 행사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진행되었는데요. 본 행사에 앞서,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공론장을 만들기 위해 디지털 도구 활용 교육, 관련자료 배포 등을 진행했습니다. 공론장이라는 문화가 아직 낯선 분들을 위해 디지털 투표 플랫폼을 활용해 문턱을 낮추려고도 했는데요. 덕분에 참여자들은 쉽고 편하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었습니다. 네 가지 사례, 모두 잘 살펴보셨나요? 눈치채셨겠지만, 모두 빠띠가 함께 기획하고 진행했던 공론장입니다. 네 공론장은 다루는 의제도, 참여주체도 모두 다릅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공통점이 있답니다. 발견하셨나요? 빠띠는 모든 공론장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데에, 아래의 공통 원칙을 적용했습니다. 보통 ‘노동 문제’라고 하면, 대립이나 투쟁 등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데요. 노동 관련 논의도 충분히 재미있고 의미있게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① 보다 더 나은 대안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보장한다. - 문제에 대해 가장 잘 아는 당사자의 참여 보장 - 다양한 관점을 위한 시민, 전문가 등의 참여 보장 ② 보다 더 많은 참여를 위해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한다. - 온라인 공론장 플랫폼 빠띠 믹스를 활용하여 사전토론 및 의견수렴 - 온라인 투표 플랫폼 빠띠 타운홀을 활용하여 참여의 문턱 낮춤 ③ 더 풍성한 논의를 위해 충분한 정보를 제공한다. - 온라인 공론장 플랫폼 빠띠 믹스를 활용하여 사전정보 제공 - 디지털 도구 활용 교육, 의제 관련 자료 배포 ④ 평등하고 안전한 대화와 숙의 환경을 만든다. - 참여자 모두의 참여를 독려하며, 평등한 발언권 제공 - 그라운드룰을 함께 정하고, 그에 따라 토론하며 안전하게 대화 처음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우리는 다양한 일터에서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일을 합니다. 하지만 행복하게 일하고 싶은 바람은 매한가지입니다. 여러분은 노동에 어떤 행복을 녹이고 싶으신가요? 이 당연한 권리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함께 모여 의견을 나누는 것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이런 자리가 하나둘씩 늘어나면 대안과 실천으로 이어지고, 언젠가 우리 모두가 행복한 일을 할 수 있는 사회가 오지 않을까요? ✏️ 글 : 소이 / 사회적협동조합 빠띠 공론장팀 활동가 / soy@parti.coop  ——  모두가 민주주의 위기를 말할 때, 빠띠는 디지털 기술로 민주주의를 혁신합니다.더 많고 더 나은 일상의 민주주의를 위해 빠띠를 후원해주세요!—> 빠띠 후원하기 : bit.ly/빠띠즌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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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일터의 죽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스즈메의 문단속’ 보셨나요? ‘스즈메의 문단속’은 ‘스즈메’가 ‘소타’와 함께 재난을 막기 위한 여정을 떠나는 내용의 영화입니다. 일본 각지의 폐허에 재난을 부르는 문이 열리고, ‘스즈메’는 문을 닫기 위해 애씁니다. 그러다 고향에서 자신이 잊고 있었던 상처를 마주하게 됩니다.  “12년 전에 일어난 재해지만 아직 끝난 건 아니거든요. 지금도 수천 명의 사람들이 집에 돌아갈 수 없어서 피난 중입니다.” “제 딸이 12살인데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했던 해에 태어났거든요. 그 재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셈이죠. 제 딸처럼 재해에 대한 아무런 기억이 없는 세대들이 일본엔 점점 늘어나고 있고요.” 이 영화는 12년 전 동일본대지진을 소재로 제작되었습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서 “오래도록 잊지 않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 이를 다뤘다고 밝혔습니다. 사람들의 기억을 ‘돌려주며’ 재난을 막아내고, 또 나아가는 과정을 통해 ‘치유’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배경과 함께 영화를 보니 재난에 대한 생각이 깊어졌습니다. 재난은 사회에 상처를 남깁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흐려집니다. 재난 피해자의 이야기를 터부시하는 분위기도 생깁니다. 이는 산업재해와도 연결 지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자연재해와 산업재해는 다른 측면이 있지만, 우리에게 남는 고민은 닿아있습니다. 피해자를 어떻게 치유할지, 그 과정에서 공동체의 역할은 무엇인지 말입니다. 어떤 죽음을 기억하고 있나요? 안전보건공단 산업재해 통계자료에 따르면, 2020년 재해자 108,379명 사망자 2,062명 2021년 재해자 122,713명 사망자 2,080명 2022년 재해자 130,348명 사망자 2,223명 하루에 여섯 명 이상의 사람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오늘도 누군가는 일터에서 돌아오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1년에 1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일하다 다치고, 아프고, 2천 명이 사망한다니, 믿어지시나요? 이것이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건 우리가 아는 죽음이 많지 않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심지어 통계자료에 모든 산업재해가 담긴 것도 아닙니다. 기록되고, 기억되고, 사건화되는 죽음은 적은데 우리는 그마저도 잊어가고 있습니다. 2016년에는 서울 지하철 구의역에서 일하던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가 사망했습니다. 스크린도어 수리는 안전을 위해 2인 1조로 작업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적어서 혼자 수리에 나섰고, 전동차에 치여 사망했습니다.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하청업체로 위험을 외주화하는 사회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지만, 여전히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2017년 전주 콜센터에서 일하던 홍수연 님이 업무 스트레스로 자살했습니다. 해당 업체는 시간 외 근무 수당을 지급하지 않으면서도 실적을 채우지 못하면 퇴근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현장실습’을 명목으로 끊임없는 감정노동과 실적 압박에 시달리는 공간에, 분초 단위로 노동자를 통제하는 공간에 보내졌던 홍수연 님은 그렇게 죽음으로 내몰렸습니다. 2018년에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 노동자 김용균 님이 사망했습니다. 2년 전 구의역에서의 죽음과 마찬가지로 2인 1조 근무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김용균 님은 암흑 속에서 휴대폰 불빛에 의지한 채, 홀로 개구부 안 문제를 확인해야 했습니다. 보고할 사진을 찍기 위해서 안전장치가 없는 컨베이어 벨트 위로 머리를 밀어 넣어야 했습니다. 위험을 외주화하는, 비정규직에게 더 잔혹한 현장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2020년에는 한익스프레스 물류센터 건설 현장 화재로 38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다쳤습니다. 한익스프레스는 공사 기간을 단축하고자 폭발 위험이 있는 작업을 동시에 하도록 했습니다. 냉동창고의 결로를 방지한다며 비상구 대피로를 폐쇄해 피해가 커졌습니다. 시공사에 벌금, 관리자 2명 실형이 선고되었으나 한익스프레스는 면죄부를 받았습니다.  2021년에는 평택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이선호 님이 사망했습니다. 300kg이나 되는 컨테이너의 벽체가 무너졌고, 깔렸습니다. 일정 규모 이상의 컨테이너 작업을 할 때는 사전 계획을 세우고 안전조치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안전관리자는 물론 기본적인 안전핀, 장비조차 없었습니다. 이전에도 같은 문제로 인해 사고가 있었음에도 개선되지 않았고 결국 산재 사망까지 이어졌습니다. 불과 며칠 전에도 사망사고가 있었습니다. 경남 제지업체 공장에서는 20대 노동자가 끼임 사고로 치료 중, 양산 제조 공장에서는 압력 용기 부품에 맞아 치료받던 중 사망했습니다. 김해 제조공장에서 지게차가 전복되며 깔려 사망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올해 1분기에만 128명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처럼 매일 수많은 사람이 일터에서 사망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죽음은, 사회에 제기되는 죽음은 많지 않습니다. 반복되는 죽음, 여전한 사회 죽음이 쌓이고, 분노가 모여 중대재해처벌법을 제정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법 시행 이후 첫 재판이 있었습니다.  건설노동자가 공사 현장에서 추락, 사망한 사건에서 원청 법인은 1억 6천만 원, 하청 법인은 1천만 원의 벌금을 받았습니다. 원청 대표이사는 징역 2년(집행유예 3년), 안전보건 총괄책임자(현장소장)는 징역 8월(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이어진 한국제강 사건에서는 한국제강 법인 벌금 1억 원, 대표이사가 징역 1년, 법정 구속되었고 협력업체 대표는 징역 6개월(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이전에도 같은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중대재해가 발생했음에도 재판부는 최저 형량을 선고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인해 진짜 책임자인 원청의 책임이 강화되었습니다. 이는 분명 의미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먼저, 전체 사업장의 68% 이상에 해당하는 5인 미만 사업장은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받지 못합니다. 430만 명이 넘는 노동자가 보호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 법이 적용된다고 하더라도 기소조차 되지 않습니다. 2022년에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는 사고만 250여 건이 발생했음에도 기소된 것은 14건이 전부입니다. 또 앞서 본 것처럼 기소되어 판결이 나온다고 해도 너무나 낮은 처벌에 그치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경총은 ‘매우 엄중한 형량’이라며 처벌 규정이 과도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사람을 죽여도 벌금 몇 푼이 고작이고, 징역은 1년, 그마저도 다른 책임자들은 집행유예에 그쳤습니다. 안전이 우선되었다면 막을 수 있었던 죽음인데도 말입니다. 이게 과도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중대재해를 처벌하는 것은 ‘안전한 일터’의 중요성을 공유하고 안전에 책임이 있는 기업이 그 책임을 이행하도록 하기 위함일 겁니다. 이윤을 위해 안전을 방기한 기업을 처벌하고, 다음, 그다음의 산업재해를 막고자 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사건과 처벌에 주목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슬프게도 결국 사회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반복되는 죽음은 숫자로만 기억되고, 우연하고도 불행한 사고로 여겨집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대해 쉬이 이야기하기도 어려워집니다, 해결된 것이 없어 반복해서 말하는데도 불구하고 사회는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스즈메의 문단속’ 영화에서 ‘스즈메’가 만난 사람들은 그에게 역할을 줍니다. 그저 시혜적으로 동정 어린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스즈메’가 할 수 있는 일을 줍니다. 그렇게 사람들을 만나고 역할을 하며 ‘스즈메’는 치유의 과정으로 나아갑니다. 숨겨두던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합니다. 재난을 겪은 사회의 역할은 무엇일지 생각해 봅니다. 우선, 사회는 그 이전과 달라야 할 것입니다. 누군가의 사망으로 괴로워하는데, 다음날 똑같은 죽음을 맞는 이가 생긴다면 어떠한 희망도 찾을 수 없을 테니 말입니다. 사건 조사 과정에서 피해자 권리를 보장하고, 은폐·조작·피해자 탓 없이 원인을 밝히고, 책임자를 분명히 처벌하는 것은 당연히, 또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참사가 발생한 우리 공동체의 구조를 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같은 죽음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 안의 우리는 피해자와 주위 사람들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며 사회가 변화할 수 있도록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법을 제정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의 과제가 많습니다. 끊임없이 주목하고, 슬픔을 넘어서서 사건의 본질을 짚어내고, 바꾸기 위해서는 우리의 역할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요? 사회 구성원으로서 우리는 어떠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남은 사람들의 이후 삶이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자유롭게 의견을 남겨주시면 좋겠습니다.
노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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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과 그럴듯한 말들
출처 : 중대재해처벌법과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자료 - 고노부 본문 8, 9쪽개인사업주나 경영책임자 등에게 관리상의 조치 의무를 부과한다. 노동자 사망 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자연인에 대한 처벌은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이다. 법인의 경우 50억 원 이하다. 2022년 1월 27일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1년이 넘어가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에 대해 경영계와 노동계 그리고 전문가들이 여러 의견을 주장하고 있는데 살펴보자. 경영계와 노동계 출처 :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 방향에 대한 노사 및 전문가 토론회 개최 경영계는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에 대한 모호성을 이유로 산업현장 혼란이 심각해 시행령 개정을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직업성 질병 범위 축소와 안전 보건 관계 법령을 산업안전보건법 등으로 특정하며 모호한 표현의 삭제를 주장하고 있다. 또한, 법률상 위임근거가 없어도 법 시행에 필요한 사항이면 하위법령에 규정할 수 있게 하여 경영책임자 개념을 구체화하고 실질적 지배, 운영, 관리 책임이 있는 경우에 대한 구체적 판단 기준을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영계 입장에서 모호한 표현은 부담된다. 법 적용의 범위가 넓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영책임자 구체화에 사활을 거는 것으로 생각한다. 현재 내용으로 하면, 기업 사장까지 처벌이 가능하지만 실질적 운영 관리 책임이 있는 경우로 한정 짓는다면 현장 반장 수준에서 처벌이 끝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노동계는 중대재해처벌법상의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는 명확성이 낮지 않고, 중처법 시행 1년도 안 된 법령 개정은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단, 시행령을 개정한다면 직업성 질병의 범위 확대와 안전 보건 관계 법령을 포괄적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증받은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 이행에 대해 의무 이행을 갈음하자는 의견에 대해서 반대를 주장하고 있다. 그럴듯한 말말말 김성룡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송치까지 평균 약 9개월을 넘기고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근로감독관의 업무 부담이 매우 커지고 있고, 현장에서는 높은 처벌을 피하기 위해 로펌이나 고문변호사의 고용 등을 통해 수사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거나, 무조건 혐의를 부인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근로감독관 업무 부담 감소와 24년 50인 미만 확대 적용에 대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고, 근로자의 안전과 생명을 대가로 한 이익은 허용할 수 없다는 원칙 위에 경제적 제재의 방법을 검토하는 것 또한 백안시해서는 안 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 2021년 기준 근로감독관 1인이 2600여 개의 사업장을 담당한다.)전형배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영계는 안전보건경영체계를 구축하려는 노력보다는 법률을 지킬 수 없다는 집단적 의사표시를 하고 있고, 노동계는 처벌 수준의 강화만을 주장하고 있고 행정의 측면에서는 감독관이 사후적 수사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투입하는 부작용이 생기고 있다“라며 앞의 의견들과 비슷하게 발언했다. 또한, ”수사가 장기화되고 있고 재판 결과도 늦어질 것으로 예상됨을 고려할 때 형사처벌 수준을 높여 산재를 예방하려는 철학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면서 ”현재 9+4개로 구성된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의 수를 줄일 필요가 있고 산안법을 통해 일반 중대재해를 처벌하고 중대재해처벌법은 상습, 반복, 다수 사망사고를 가중처벌하는 등 산업안전법령 체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라고 발언했다. 출처 : 고용노동부,‘지속가능한 중대재해 예방체계’를 주제로 토론회 개최특히, 권기섭 고용노동부 차관과 전형배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속 가능한 중대재해 예방체계’를 주제로 한 토론회에서 다른 발언도 했다. 기업이 안전보건관리 시스템 구축과 이행이라는 기업의 자율을 강조하며 정부는 뒷받침한다는 의견도 피력했다.( *전형배 교수는 현재 중대재해처벌법령 개선 TF에 속해있다.)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정진우 교수는 “대기업조차 안전역량을 체계적으로 향상시키기보다 당장의 형사 처벌을 피하는 데 관심이 집중되어 자율안전의 의지와 움직임이 오히려 위축되고 있다”라고 발언했다. 그리고 “현재 처벌 위주 산업안전 법령과 정책은 기업 스스로 산업재해를 예방할 수 없게 한다”라고 말했다.중대재해처벌법 자체가 기업의 자율적인 사업장 환경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한 중대재해 때문에 생긴 법안이다. 그런데, 관련자 및 전문가들 의견은 다시 기업 자율에 안전을 맡기자는 것 아닌가. 처벌이 없다면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를 기업들이 할 확률이 있는 것인가. 기업의 목적은 이윤 창출이다.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강제 사항이나 처벌 조항이 없다면 기업들은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서 이윤만 창출하고자 할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있는 지금도 처벌을 피하기 위해 로펌을 드나든다고 하지 않나. 기업 자율권 보장을 위해 중대재해처벌법을 개정한다면 반대급부로 노동자들도 얻는 게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정부는 노동자를 위해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기업에게 산업재해 예방에 대한 자율권을 보장하는 것은 노동자의 죽음을 불러올 뿐이다. 법 위반 처벌 수준이 강하기 때문에 안전에 대한 기업의 의지가 약해진다는 논리가 상식적인 것일까? 처벌 수준이 약하다면 안전에 대한 기업의 의지가 강해진다는 논리의 출처는 어디인가. 상식적으로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 법이 문제일까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문제일까.출처 : 고용노동부 장관, 전국 산업안전보건 감독관과 현장 밀착형 중대재해 감축 방안 격의 없이 논의중부청 우도윤 광역중대재해관리과장은 “그간의 정책은 사업주에 대한 규제에 집중되어 근로자 개인의 안전 인식 전환에는 한계가 있던 것이 사실”이라며, “범국민 캠페인을 강화하고, 근로자의 안전 인식·행동 제고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 발언은 산업 현장에서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분들에게 모욕적이다. 산업재해가 노동자들의 안전에 대한 인식 부재로 발생했다는 뜻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돈을 벌기 위해 산업 현장에서 일하는 것이지. 죽음을 벌기 위해 산업 현장에 가는 것이 아니다. 산업현장에서 노동자는 철저하게 을의 위치에 있다. 기한이 정해져 있고, 현장 환경이나 분위기도 노동자 개인이 바꿀수 없다. 노동자들이 안전에 대한 충분한 인식을 가지고 있어도 산업 현장 조건이 안전하지 않다면 소용없다. 관계 부처 담당자의 입에서 나온 발언이 아니었어야 했다.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에 대한 여러 의견을 보다 보면 최저임금이 떠오른다. 최저임금 인하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지불 역량이 부족한 영세업자를 이유로 든다. 중대재해처벌법에서는 안전 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을 이유로 들어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을 주장한다. 우리 사회의 일부 전문가들은 왜 이렇게 경영계의 불편을 잘 해결해 주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다.
노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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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노동은 자유로운 삶을 제공할까요?
플랫폼 노동은 자유로운 삶을 제공할까요? 플랫폼 기업이 등장하면서 공유경제나 긱워커와 같은 단어들이 나타났습니다. 공유경제는 여분의 경제적 이득을, 긱워커는 노동에 얽매이지 않을 자유를 제공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기도 했습니다. 누군가는 긱 이코노미에서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시간과 업무 일정을 직접 관리할 수 있고 전통적인 형태의 장기 고용 계약에 얽매이지 않고도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것이 긱경제라고 설명합니다. 더해 긱 이코노미 속의 기술 발전을 바탕으로 유연한 근무 시간과 여유로운 일정을 즐기며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의미 있는 커리어를 쌓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례에서 플랫폼 노동자는 불안정 고용과 저임금, 고강도 노동에 노출 되어 있었습니다. 플랫폼 노동은 노동자들에게 자유와 효율적으로 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까요?  자유와 여유보다, 불안하고 바쁘고 아픈 노동자가 더 많아 한국노총 중앙연구원과 한국플랫폼프리랜서노동공제회가 진행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음식 배달·대리운전 등 플랫폼의 ‘일감 강제 배정’ 알고리즘이 플랫폼 노동자를 옥죄고 있다는 실태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10명 중 6명은 출·퇴근은 물론 휴게시간도 스스로 정할 수 없었습니다. 알고리즘 배차를 100% 따르면 곧바로 과로에 노출됐습니다. 자동 배차를 100% 수락한 라이더들은 지역배달대행사 주문을 자율적으로 선택한 라이더들보다 평균 주행거리가 25%(30㎞) 늘었습니다. 이 같은 과로는 라이더들의 과속·교통법규 위반의 주요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또한 알고리즘 배차를 거부한 순간부터 ‘좋은 콜’ 배정이 줄어드는 예도 있었습니다. A씨가 꺼리는 콜을 거부한 지 이틀째인 실험 4일차에는 서울 압구정 한복판에서 점심 피크타임인데도 약 20분간 콜을 전혀 받지 못하는 공백이 두 차례나 생겼습니다. 우아한청년들 관계자는 “배차 거절에 따른 패널티는 없으며 평점, 등급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 않다”며 “배차 1건을 거절한 데 대한 압박이나 휴식을 중단하라는 취지로 배달종사자에게 연락을 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경향신문 2022.11.02) 플랫폼노동자를 떠올리면 흔히 배달 노동자를 많이 떠올리지만, 플랫폼을 통해 가사노동이나 돌봄을 제공하는 노동자 역시 이에 해당됩니다. 외에도 대리운전기사, 프리랜서 종사자 등도 해당 범위안에 포함 됩니다. 한국가사노동자협회에 따르면 가사돌봄유니온·한국플랫폼프리랜서노동공제회와 지난해 7월부터 8일간 가사·돌봄 노동자 100명을 대상으로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사례조사’를 실시한 결과 10명 중 1명 꼴로 성희롱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가사 돌봄 노동자 63명 중 9명, 아이 돌봄 노동자 37명 중 1명이 "업무 중 성희롱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주변에서 성희롱 경험을 들었던 응답자까지 포함하면 가사 돌봄 노동자 63명 중 16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성희롱 등 고충을 겪은 가사·돌봄 노동자가 전문기관에 도움을 받았다는 응답은 거의 없었습니다. 응답자들의 38.8%가 ‘혼자 처리하거나 삭인다’고 답했고, 8.5%는 ‘하소연할 상대가 없다’고 응답했습니다. ‘노동자상담센터나 여성단체를 찾아간 적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2.3%에 불과했습니다.  가사 돌봄 노동자 중 절반 가까이가 근골격계 질환을 겪고 있었습니다. 가사 돌봄 노동자 63명 중 38명(49%)이 관절염 등 근골격계 질환을 겪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또한 락스나 세제 등 청소용품으로 인한 호흡기 질환 및 두통은 21%, 디스크나 타박상이 각각 12%, 3.9%를 차지했습니다. 아동 돌봄 노동자도 35명 중 19명인 54%가 근골격계 질환을 겪었다고 답했습니다.  (아주경제 2023.01.19) 중개업체나 플랫폼 기업은 이들을 보호해야 합니다. 하지만 매뉴얼과 규정 업체마다 제각각인 성폭력 예방 교육, 사후 대응 매뉴얼, 가해자 관리 규정은 현실에서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익명의 가사노동자 플랫폼 업체 관계자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서비스 제공자는 범죄 조회를 하지만 이용자는 하지 않는다”며 “성폭력 가해자에게는 강제 이용 정지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이 약관에 있지만, 개인정보보호법 때문에 다른 업체와 ‘블랙리스트’를 공유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경향신문 2023.03.07) 플랫폼 노동, 종속노동으로 근로조건 저하 가능성 높아 플랫폼 노동자 대부분은 플랫폼에 종속되기 쉬운 상황에 노출됩니다. 국제노동기구(ILO)의 연구보고서(2018)는 플랫폼 노동이 노동자들을 지나치게 착취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플랫폼 방식에 종속된 노동자들이 사용자 측과 충분한 협상력을 갖지 못해 노동조건이 나빠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습니다.  ‘공유경제는 공유하지 않는다’의 저자인 알렉산드리아 J.레브넬 노스캐롤라이나대학 조교수 역시 저서를 통해 긱이코노미 생태계의 최첨단 플랫폼은 노동자를 초기 산업사회로 데려간다고 주장합니다.  “초기 산업사회에는 노동자가 장시간을 일하더라도 시간이 아니라 생산량을 기준으로 임금을 받고, 산업안전이란 개념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긱 이코노미도 종사자는 중계인만 있고 고용자가 없습니다. 소속된 직장도, 정식 계약도, 병가 휴가와 육아휴직도 없으며 노후를 위한 연금, 퇴직금도 없습니다. 플랫폼은 수수료만 가져갈 뿐 그 외의 책임을 일체 지지 않는 구조입니다. 서비스 처리 건수 기준으로 돈을 지급합니다. 심지어 요구에 늦게 응답하면 일을 주지 않거나 고객의 나쁜 평가를 검수하지 않고 노동 정지 처분을 일방적으로 내립니다. “ 알렉산드리아 J.레브넬은 책에서 “공유경제라는 말이 처음으로 대중의 어휘속으로 들어왔을 때, 돈을 적게 쓰면 돈을 많이 벌지 않아도 되고, 그만큼 여가 시간이 늘어나 가족, 친구와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나홀로 볼링' 현상의 성장세도 꺾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공유경제가 일으킨 파괴는 전진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경제적 불안정성과 노동자의 취약성만 키고 있을 뿐이다. 노동자들은 임시 노동을 전전하면서 말이 독립적인 사장님이지 실상은 플랫폼의 독단적인 피벗과 이용 정지 처분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합니다. 미국, 프랑스, 영국 등 노동자 안정성 보장하는 추세 '증가' 2021년 2월19일, 영국 대법원은 우버 운전기사를 ‘노동자’로 인정하는 최종 판결을 내렸습니다. 5년 간의 법정 다툼 끝에, 노동의 종속성을 주장한 우버 기사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영국 재판부는 우버 기사들을 노동자로 판단한 핵심 근거로 우버 측에서 기사들이 택하는 운전경로, 책정요금 등을 철저히 통제한다는 점을 꼽았습니다. 즉 ‘종속성’이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됐습니다. 이후에도 스위스, 프랑스 등 유럽에선 우버 기사가 노동자라는 판결이 잇달아 나오기도 했습니다. (MBC 2021. 02. 19) 미국 뉴욕시는 2018년 말 우버·리프트 등 차량호출서비스 앱(애플리케이션)에서 일감을 받아 일하는 운전기사에 최저표준운임(Minimum Pay Standard)을 보장하는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저임금에 시달리던 플랫폼 노동자들이 임금인상을 수년간 요구한 임금협상을 받아들여진 것입니다. 물론 플랫폼 노동자를 위해 별도의 최저임금을 도입한 도시는 미국에서 뉴욕이 처음입니다. 이후 뉴욕시에선 우버·리프트 기사뿐 아니라 우버이츠·도어대시 등에서 일감을 받는 배달 노동자들에게도 최저임금을 보장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기도 합니다. (경향신문 2023.05.10) 또한 프랑스는 우버이츠, 딜리버루 등에서 자전거, 스쿠터 등을 타고 음식 등을 배달하는 배달 플랫폼 노동자들에게 최저 임금을 보장합니다. 4월 20일, 자영업자를 대표하는 노동조합 FNAE는 배달 플랫폼들이 배달노동자에게 최소 11.75유로(약 1만7000원)의 시급을 주기로 합의했습니다. 이는 올해 1월 1일 기준 프랑스 세전 최저임금인 11.27유로(약 1만60000원)보다 0.48유로(약 700원) 높습니다. 그레구아르 르클레르 FANE 대표는 이번 합의가 음식뿐만 아니라 모든 배달 부문에서 현존하는 플랫폼은 물론 앞으로 생길 플랫폼에도 적용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조선비즈 2023.04.21) 플랫폼 노동은 누구에게 자유와 효율을 줄까? 플랫폼 노동은 누구에게 자율적이고 효율적으로 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있는 걸까요. 음식을 팔아도 1000원이 채 남지 않는 상인들, 불안정하고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지만, 노동환경을 보호받지 못하는 플랫폼 노동자들. 플랫폼 노동은 고용주와 노동자가 있는 전통적인 방식과는 다르기 때문에 정책적인 논의가 더 필요합니다. 미국의 경우 플랫폼 독점방지 규제 5법을, 유럽의 경우 플랫폼 독과점을 규제하는 디지털시장법(DMA) 도입을 논의중이라고 합니다. 한국은 어떤 방식으로 이를 조정하는 고민이 필요 할까요? 
노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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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이 최고의 복지라는데, 엔데믹과 함께 유연근무도 회귀해야 하나요?
코로나19는 우리 삶의 많은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가장 큰 혁신은 바로 노동현장이었습니다. 글로벌 팬데믹 상황으로 인해 재택과 원격근무와 같은 유연근무제가 탄력을 받았습니다. 날마다 겪는 출근전쟁을 벗어나 편안한 공간에서 아이도 케어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유연근무는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했습니다.  HR테크 기업 인크루트가 직장인 830명을 조사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설문자의 60%가 협업 및 소통에 있어서도 재택근무를 더 선호한다고 답했으며, 응답자의 77.5%가 사무실 출근과 재택을 병행했을 때 업무에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2022.7.1. 재택근무 경험자 60% "사무실 출근보다 협업 수월", 출처 뉴시스).  또한 유연근무는 육아휴직보다 워킹맘과 워킹대디의 죄책감과 부담을 덜어주고, 어느 저출산 복지정책보다 일·가정 양립에 기여하며, 기업의 인력손실도 덜어준다는 점에서도 효과적이었습니다. 신입 구직자의 경우에도 사무실 출근과 재택을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근무를 선호하는 경우가 64.7%로 과반을 차지하며 변화된 근무형태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변화를 보여줬습니다(2023. 4. 13 취준생이 원하는 기업? “100% 재택보다 출근·재택 병행, 점심 제공”, 출처 조선일보). 그러나 엔데믹 이후 많은 기업들이 직원들의 사무실 복귀를 요청했습니다. IT 기업의 경우 “‘판교등대’가 다시 밝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실적 악화를 이유로 재택근무를 축소했습니다. 넥슨, 엔씨소프트 등 주요 게임사들은 엔데믹 이후 사무실 출근 체제로 전환을 했고 카카오 공동체도 근무 체제를 변경했습니다. 상시 재택근무와 워케이션을 내세웠던 야놀자 역시 돌연 재택근무를 종료해 직원들 사이에 큰 분쟁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직원들은 경기 침체로 인한 수익 저하를 재택을 핑계로 댄다는 소리가 나올만큼 일방적인 기업의 결정에 납득하기 어려움을 토로했고, 여파는 IT기업 노조 설립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2023.5.1. '판교등대' 재현에 촉각…재택 양극화도 불만, 출처 뉴스토마토). 그렇다면 유연근무는 기업의 말처럼 업무 효율성과 실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까요?  실제로 재택근무가 동료 및 멘토와 연결되지 않아 다양한 성장 기회를 놓치고 자발적인 아이디어 생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결과도 있습니다.(2023.4.23. 원격근무가 생산성이 높다고? "헛소리", 출처 포춘코리아).  그래서 최근 엔데믹 이후에는 이러한 단점을 상쇄할 ‘워케이션(Workcation)’ 실험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실험은 현재까지 기업과 직원, 지역경제까지 모두를 만족시키는 결과를 보여줍니다. 한국관광공사가 기업 인사 담당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워케이션 제도가 업무 생산성 향상에 긍정적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61.5%에 달했습니다. 직무 만족도 증대(85%), 직원 삶의 질 개선(92%), 복지 향상(98%)에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직원이 다 따로 떨어져 일하는 재택근무와 달리 워케이션 제도는 한시적 기간에 일부 직원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도 부담이 덜하다는 장점도 있었습니다(2023. 3. 25 재택근무는 줄어도… 휴양지서 원격근무하는 ‘워케이션’은 계속된다, 출처 조선경제). 갑작스런 펜데믹은 노동유연화를 앞당기는 혁신의 촉매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야심찬 혁신의 시작은 엔데믹과 더불어 추락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노동의 유연화와 노동자의 선택권 확대는 기업의 피할 수 없는 과제임은 분명해보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노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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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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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중 쉬는시간 OR 조기퇴근,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면?
지난 3월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의 내용 중에는 다른 이슈(최대69시간 근로라던가, 근로시간저축계좌제라던가...)에 묻힌 감이 있지만, 아르바이트, 시간제노동자 등 하루 근로시간이 짧은 노동자에게 직접 화두가 될 내용이 있었습니다. 근로기준법 제54조에서는 하루 4시간 일할 때 30분 이상, 8시간 일할 때 1시간 이상 ‘근무시간 중’에 휴게시간을 주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에 하루 4시간 일하는 경우 휴게시간 30분이 오히려 불편함을 초래한다는 의견에 따라 근무시간 중 30분 휴식 대신 30분 일찍 퇴근할 수 있도록 입법 개선안이 제시되었습니다. 관련하여 2022년 1월 국민권익위원회에서 “근로시간 4시간인 근로자 일 끝나면 휴게 없이 바로 퇴근해야”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한 바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4시간 근로의 경우 노동강도가 세지 않은 분야에서는 사용자와 근로자 합의로 휴게시간을 선택하는 방안 ▴정부기관 청소근로자는 노사 합의로 계속근로 4시간 내에 휴게시간을 부여하는 방안 ▴청사관리 규정에 청소근로자 휴게실 면적을 규정해 청사 설계 시부터 반영하도록 하는 방안 등에 대해 제도개선 검토를 내용으로 합니다. (2022.1.4. 국민권익위원회) 마트에서 주말에 단시간으로 일 했을 때 30분 휴게시간에 앉아 있을 수 있는 것은 좋았지만, 쉴 곳도 할 것도 마땅치 않아서 푸트코트에 앉아 멍때렸던 기억이 납니다. 판촉 일 특성상 혼자 일하는 것이었고 연락처를 세워 놓고 쉬러 가도록 교육을 받았습니다. 혹시나 고객이 제가 쉬는 동안 구매를 원하면 푸트코트에 앉아 있다가 달려가서 결제했습니다. 실제로 전화가 오는 경우는 드물었지만 언제나 전화가 올 수 있다는 긴장 상태에 있다 보니 ‘이럴 거면 안 쉬고 말지’하는 생각이 절로 났습니다. 그런데 물류센터에서 일한 날을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물건을 들고, 또 옮기느라 흐물거리는 팔다리에 휴게시간 30분은 있어서 좋은 것이 아니라 ‘있어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휴게공간이 마련되어 있지 않거나 휴게공간까지 왔다 갔다 하면 30분 중 절반이 날아가기 때문에 일용직노동자가 계단에 주욱 앉아 –숙련자들은 어디선가 상자를 구해서 깔고 앉기도-있던 장관에 관해서도 할 말이 있지만?)  한편, 시간제근로자가 아닐 때는 어떻게 될까요? 하루에 8시간 일하는 직장인의 경우 통상 휴게시간 1시간은 점심시간입니다. (고용노동부는 4시간 이상 8시간 미만으로 일하며 30분 휴게를 보장받는 노동자에 관한 방안만 발표했습니다. 2022년 국민권익위의 발표 내용도 단시간근로자에 한정하는 내용입니다.) 정책이 언급되지 않았지만 8시간 일하는 노동자를 기준으로 생각해 본다면, 아마도 현행과 같이 일률적으로 점심시간 1시간을 보장하는 방안, 30분 휴게에 선택권을 두는 위의 안을 일부 절충하여 30분은 일찍 퇴근할 수 있는 시간으로 하고 30분만 근로시간 중 휴게로 보장하는 방안, 휴게시간 전체를 조기퇴근 으로 전환해 일하는 가운데 전혀 쉬지 않는 선택권도 가능하게 하는 방안 등이 있을 것 같습니다. ‘쉼’이 보장되지 않으면 일의 능률이 떨어진다는 말, 사람은 기계가 아니라는 말에 백번 동의하면서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쉼에는 ‘차라리 퇴근을...!’이라는 생각이 앞섭니다. 그렇지만 노동강도가 높은 현장에서 그 쉼이 보장되지 않았을 때 육체적, 정신적 피로를 생각하면 휴게시간 보장은 생존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또한, 선택권이라는 허울만 남아 실제로 쉼을 선택하려는 사람도 조직문화나 분위기 때문에 다 같이 쉼 없이 일해야 하는 ‘무휴식 무선택권’의 상황이 오지는 않을지 염려가 됩니다.  ?'휴게시간 선택권 강화' 개선안으로 논의를 시작해 보고 싶습니다.  노동자의 휴식은 선택의 문제일까요? 선택할 수 있다면 그 범위는 어디까지여야 할까요?
노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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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는 어린이날 연휴, 배민라이더의 파업
배달 노동자들의 파업 확대   5월 5일 금요일 어린이날, 주말까지 연휴가 이어져 나들이와 여행을 기대하던 가족들은 호우 예보로 대부분 집에 머물게 됐다. 이때 주로 활용하는 것이 음식배달서비스일 터인데, 배달유통시장을 거머쥐고 있는 배달의민족(이하 배민) 소속 배민라이더들이 현재 배민 본사 앞에서 파업을 진행하면서 서비스가 다소 어려워질 것으로 보이고 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배달플랫폼노동조합은 “배달의민족(우아한청년들)과 단체교섭 최종 결렬에 따라 5일 파업을 결정했다”고 4월 28일 기자회견을 통해 밝혔다(세계일보 2023.4.29). 민주노총 소속 라이더유니온도 10일 연쇄파업을 하겠다고 발표하면서(한국경제 2023.5.5) 배달노동자들의 전반적인 파업 및 항의가 확대 및 강화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배달플랫폼노동조합의 파업 결정 과정에서 노동조합원을 대상으로 찬반투표를 한 결과 약 80%의 조합원이 참여하였고 88.1%가 파업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Money S 2023.5.5). 라이더들은 작년 8월부터 4월 초까지 15차례 교섭을 진행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고, 결국 최종 교섭까지 결렬되면서 파업에 돌입하게 됐다(ZDNET Korea 2023.4.28).  배민라이더 파업의 배경과 요구안  파업의 주요 요구안은 9년째 동결되어 있는 3천 원의 배달료를 최저임금과 물가상승에 맞춰 4천 원으로 인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조는 “소비자와 자영업자의 배달료 인상 없는, 수수료(기본배달료) 1000원 인상을 요구”한다면서, “배민은 겉으로는 상생을 외치지만 4200억이라는 막대한 영업이익”을 냈음에도 불구하고(배민의 작년 매출액은 2조 4049억으로 전년 대비 47% 증가, 영업이익은 4271억으로 흑자전환),  배달노동자들의 복지와 노동환경에 대한 개선은 전혀 없었음을 비판했다. 배달플랫폼노동조합은 앞선 배달료 동결과 함께 아래의 개선방안을 요구했다.  배달료 지방차별 중단(배민은 수도권보다 지방에서 수수료를 더 떼어가고 있다. 수도권 3000원, 대구 2700원, 영호남지역 2600원.) 알뜰배달(단건배달과 묶음배달 서비스를 합친 시스템) 도입으로 인한 배달노동자들의 배달료 수입 감소 대처 배달에 따른 고정 인센티브 지급(배민은 이에 대해 교섭 과정에서 라이더가 주 100건의 배달업무를 할 경우 5만원을, 150건을 달성하면 15만원을 추가지급하는 인센티브 요금체계를 제안하기도 했다(ZDNET Korea 2023.4.28)) 전업라이더 중심성 강화       누리꾼들은 혹 배달료 인상이 소비자에 전가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표하고 있지만, 배민라이더는 배민이 배달료에서 떼어가는 수수료를 줄이고, “지역마다 차등을 둔 배달비를 통일하고 라이더들에게 돌아가는 배달비를 더 늘려달라”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면서, 결코 이것이 소비자의 부담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배달비에는 음식점 업주와 소비자, 배민이 가져가는 수수료, 배달노동자들의 임금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여기에 더해 배민 소속 배민라이더들이 주로 담당하고 있는 것은 단건배달인 배민1 서비스인데 원래 이 시스템은 음식점에 중개수수료를 1000원의 정액제로 받았으나, 현재는 음식값의 6.8%를 받는 정률제로 개편하면서 음식점주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도 늘어났다. 이렇게 단건배달비를 올리면서 배민의 영업이익은 흑자로 돌아섰다. 반면 배달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임금은 기나긴 교섭 과정을 지났지만 단 한 번도 상승하지 않았다.   그러나 배민은 배달노동자들에게 더 강한 노동강도를 요구하고 위험한 근로환경을 조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배민라이더들은 ‘픽업 알림’을 받는데 이는 “배민라이더가 배차받은 배달 물량을 제대로 받으러 가는지…확인하는 절차”(노컷뉴스 2023. 5.5)다. 이 알림은 이미 배달노동자들이 이동하는 중에 있을 때도 울린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이때 5분 안에 알림확인을 하지 않으면 콜(call)이 취소될 수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알림에 답하기 위해 급제동을 하거나 위험하더라도 급하게 차선을 변경하여 갓길에 오토바이를 세울 수밖에 없다. 특히 여러 번 콜이 취소될 경우 배달노동자들은 플랫폼으로부터 경고를 받거나 일자리를 잃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에 쉽게 무시하고 넘어갈 수도 없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배민 플랫폼의 알고리즘과 영업방식이 은폐되어 있다면, 비난의 화살은 위험하고 불안정한 노동환경을 조성하는 플랫폼중개기업이 아니라 교통법규를 수시로 무시하는 ‘도로의 무법자’, 속칭 ‘딸배’에게로 향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12월 국토교통부의 소화물배송대행서비스사업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6개월 간 배달 종사자 10명 중 4.3명은 교통사고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사고 원인으로는 ‘촉박한 배달시간에 따른 무리한 운전’이 42.8%로 가장 많았다”(노컷뉴스 2023.5.5). 그러나 배달의민족 측에서는 “배차가 이뤄진 후에 15분 이상 지났을 때 라이더의 이상 여부 등 안전을 확인하려는 절차”라면서 현장을 바쁘게 왔다 갔다 하는 배달노동자들의 노동실상을 제대로 파악하고 고려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안전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듯한 답변만 반복하고 있다.  팬데믹 이후 배달노동자들의 현실   이번 배민라이더 파업을 조사하면서 여러 기사를 열람한 결과 대부분의 배달노동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연령대가 노년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중년이거나 젊은 청년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이들과 같은 노동시장의 취약계층이 선택할 수 있는 소득확보의 경로는 매우 한정되어 있고, 배달 플랫폼 노동을 포함한 일자리들은 매우 위험하고 부당한 노동환경을 노동자가 감내하도록 요구한다.  코로나19 특수로 배달 산업이 호황을 누렸던 맥락 속 배달노동자들이 경험했던 노동강도에 대한 몰이해적인 사고방식이 만연하면서, 그동안에 한국사회에 존재했던 배달노동에 대한 평가절하와 함께 당시 배달노동자들이 얻었던 높은 수입 사이의 괴리(이를테면 ‘그만큼 벌면 이 정도(노동강도와 위험)는 감수해야지’ 하는 식의)는 이번 파업을 두고 누리꾼들의 상반된 반응을 유발하는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위드코로나가 점진적으로 시행되면서 격리되어 있던 일상이 열렸고, 배달산업의 성장이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는 상황 속에서 배달노동자들이 맞닥뜨린 위험과 부당한 근로조건은 이제야 본격적으로 수면위로 올라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정체를 겪고 있더라도 이미 한국 사회에 플랫폼 기반의 배달산업은 노동시장의 거대한 한 축을 차지하게 됐기 때문에 배달노동자들의 안전과 노동환경, 배달노동의 메커니즘에 대한 구체적인 파악과 이해는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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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4.0이 예측한 '플랫폼 기업의 이윤 독식'
2017년 작성된 독일은 노동 4.0 백서를 통해 기술의 발전과 인공지능의 등장 등 미래에 펼쳐질 변화를 앞두고 노동 시장의 대응 방안을 정리했습니다. 최근 제제 캠페이너님이 정리해주신 ‘독일의 '노동 4.0'을 알고 계신가요?’를 읽어보시면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제제 캠페이너님의 글을 읽으며 노동 4.0의 내용 중 플랫폼 노동 관련 내용을 조금 더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플랫폼 노동 문제를 배달 플랫폼의 사례로 정리하면서 노동 4.0에 등장하는 플랫폼 노동에 대한 설명과 좋은 노동을 위한 질문을 여러분과 함께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2017년의 독일이 고민한 플랫폼 노동의 미래 독일은 2년간 노동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과 대화, 연구를 진행해 노동 4.0 백서를 마련했습니다. 그 결과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새로운 시장과 노동 형태가 등장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대표적으로 “플랫폼은 공급자인 동시에 소비자가 될 수 있는 다양한 유형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는데요. 2017년 독일의 예측은 2023년 한국 사회에서 실현되고 있습니다. 당근마켓을 통해 중고 상품을 구매하던 사람이 자신의 중고 상품을 판매하거나 배달의 민족을 통해 배달 음식을 주문하던 사람이 배달 노동자로 활동하는 사례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노동 4.0은 플랫폼의 등장으로 발생할 수 있는 현상도 함께 정리했는데요. “승자 독식 형태의 독점 현상”, “이웃, 동료 간의 협력도 디지털 플랫폼 경제 구조에서는 약화” 등입니다. 특히 플랫폼의 성장으로 발생한 생산 수익의 분배 과정에서 “대규모 디지털 플랫폼 기업들의 이윤에 대한 세금 부과”가 필요할 것이라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2017년 독일이 예측한 플랫폼의 확산이 2023년 한국 사회에서 등장했듯이, 독일이 우려한 현상도 한국 사회에 나타나고 있을까요? 독일의 해법이 현재 한국 사회에도 필요할까요? 한국 사회의 배달 앱 사례와 함께 살펴보시죠. 배달의 민족으로 입증된 노동 4.0의 예측 음식 배달 앱은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 중 하나일 겁니다.(저도 애용자 중 하나고요) 특히 코로나19 확산과 함께 비대면 시대가 되면서 배달 어플리케이션 시장은 크게 성장했습니다. 배달 앱의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분석한 한겨레신문 기사를 보면 배달의민족 운영사 “우아한형제들의 지난해(2021년) 매출은 2조88억원으로, 처음으로 2조원대를 돌파”했습니다. “코로나 직전인 2019년(5654억원)과 비교하면 4배 가까운 성장을 기록”했고요. 물론 올해 발표된 빅데이터 플랫폼 기업 아이지에이웍스의 모바일인덱스 조사 등 배달 앱 이용자 수가 줄어들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조사를 전달한 매경이코노미 기사를 보면 “점유율 1위 배달의민족”은 “배달 시장 전체 MAU(월별 이용자수)의 66.8%”를 기록했습니다. 경쟁업체인 요기요와 쿠팡이츠의 점유율은 같은 기간 하락했지만 배달의민족은 점유율이 올랐습니다. 3사의 경쟁체제가 이어지고 있지만 노동 4.0의 우려와 같이 점유율 절반 이상을 차지한 플랫폼이 독점으로 나아가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너무 좌절하긴 이릅니다. 노동 4.0에 등장한 우려 외에 비전도 현실화 된다면 그나마 괜찮은 상황이라 할 수 있겠죠. 노동 4.0에선 5가지 비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중 첫 번째는 “경쟁력 있는 임금 체계와 사회 안전망 확보”인데요. “디지털화로 인해 생긴 이익은 임금 상승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좋은 노동으로의 통합”, “다양한 노동 유형의 표준화”, “노동의 질 유지”, “공동 결정, 노동자의 참여, 기업 문화를 함께 고려하기”도 비전에 포함됩니다. 그렇다면 배달 앱 시장의 1인자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 형제들은  노동 4.0에서 제시한 비전을 지키고 있을까요? “9년간 배달비 3000원 동결”, 거리로 나온 노동자들 배달의민족 운영사 우아한 형제들은 자사 홈페이지에 회사의 비전과 방향을 공개하고 있는데요. 그 중 ‘송파구에서 일을 더 잘하는 11가지 방법 항목 하단에 담긴 내용이 눈에 띕니다.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우아한형제들에게 회사란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비범한 성과를 만들어내는 곳’입니다. (중략) 우아한형제들은 ‘건강한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 ‘존중’과 ‘배려’의 협동정신을 바탕으로 서로에게 인간적인 예의를 다 하는 가운데, ‘고객 창출’ 및 ‘고객 만족’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끊임 없이 노력하는 조직이 되어야 합니다. 애석하게도 이 비전은 배달의민족 소속 배달 노동자인 ‘배민라이더’들에게는 적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배달의민족을 이용해보신 분들이라면 한 번에 한 집만 배달하는 서비스 ‘배민1’을 핵심 기능으로 강조하고 있다는 걸 알고 계실 겁니다. 하지만 핵심 서비스를 현실에서 구현되도록 하는 배민라이더들은 정작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배민라이더스와 배민커넥터 소속 라이더로 구성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서비스연맹 배달 플랫폼 노동조합은 노동절인 5월 1일 노동환경 개선을 외치며 거리로 나왔습니다. 이들은 왜 거리에 나오게 됐을까요? 배달플랫폼 노조가 거리로 나온 이유는 기본 배달료입니다. 배달플랫폼 노조는 기본 배달료 인상을 주장하고 있는데요. 여기서 ‘아니 배달료가 이미 5천 원 가까이 되는데 배달료를 더 올리라고?’라는 생각을 하신 분들 계실 겁니다. 이런 분들을 위해 조금 더 정확히 설명하면 어플리케이션 배달료에서 배달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비율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쉽게 말해 ‘소비자한테 받는 배달료 엄청 올려서 수익을 늘렸으면 기업이 다 챙기지 말고, 배달 노동자에게도 정당하게 수익을 분배하라’는 겁니다. 지난 4월 19일 열린 파업 찬반투표 돌입 기자회견을 전달한 매일노동뉴스 기사에 따르면  노조는 “배달의민족 영업이익은 4천200억원인데, 라이더는 9년동안 기본료가 3천원으로 동결됐다”고 설명했습니다. 홍창의 노조위원장은 업주와 소비자가 배달료를 더 내는 것이 아니라며 “배달의민족이 받는 배달비 6천원에서 라이더에게 지급하는 배달료 비율을 늘리라는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정리해보면 배달의민족은 자사 비전에 “‘존중’과 ‘배려’의 협동정신”, “서로에게 인간적인 예의를 다 하는” 업무 환경을 강조했지만 배달 노동자들에겐 이런 업무 환경을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노동 4.0에서 이야기 했던 “디지털화로 인해 생긴 이익은 임금 상승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비전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다른 4가지 항목도 마찬가지입니다. 코로나19 이후 거둔 막대한 성공과 이윤은 노동자에게 재분배되지 않고 기업의 주머니로 들어간 셈이죠. 우리는 이렇게 막대한 이윤을 독식하는 플랫폼 기업을 이대로 바라만 봐야할까요? 이윤 독식하는 플랫폼 기업, 어떻게 해야할까 코로나19 확산과 함께 큰 이윤을 창출한 기업은 전 세계에서 등장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해외 각국도 기업의 이윤 독식 문제를 고민해야 했고, 미국과 유럽연합은 ‘디지털세’를 해결책으로 꺼냈습니다. KDI 경제정보센터는 디지털세를 “기업이 디지털 형식으로 제품을 판매해 수익을 얻으면 사업장 소재지와 상관없이 해당 국가가 일정 세율로 세금을 부과할 수 있게 하자는 개념의 조세”라고 설명합니다. 물론 이 세금은 거대 기업이 세계 각국에서 세금을 회피하는 조세회피를 대응하기 위해 도입이 고려되고 있지만, 기업의 이윤 독식을 방지한다는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직접적인 도입을 추진중인 곳은 유럽연합인데요. 2020년 9월 5일 파올로 젠틸로니 유럽연합 집행위원은 미국 CNBC와의 인터뷰에서 “거대 IT 기업들은 코로나19 위기의 진정한 승리자이므로 유럽에서 합당한 세금을 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유럽연합은 2018년부터 디지털세 도입의 필요성을 짚으며 법안을 제안했습니다. 유럽연합은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디지털세 도입을 위한 절차를 차근차근 밟고 있습니다. 물론 회원국 간 입장차이, 과세 대상이 대부분 미국 기업이기 때문에 미국 의회에서의 통과 등 걸림돌도 예상됩니다. 하지만 도입에 대한 의사 합치 발표를 하며 필요성은 합의된 상태입니다. 미국은 트럼프 정부 시기 관련 법안을 마련하고, 바이든 정부에서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을 시행하면서 유럽연합의 디지털세와 조금은 다르지만 유사한 방향을 가진 조세정책을 마련했습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디지털세 도입 동향을 다룬 법률신문 기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한국 사회에서는 이미 플랫폼 기업이 이윤을 독식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공급과 소비가 점점 더 플랫폼 중심으로 이뤄지는 경제구조가 갖춰지는 만큼 플랫폼 기업의 이윤 독식은 점점 더 커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앞서 독일이 노동 4.0을 통해 지적한 것과 같이 디지털화로 인해 발생한 이익을 노동자의 임금 상승으로 연결시킬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플랫폼 기업의 이윤 독식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한국 사회는 어떤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까요? 배달플랫폼 노동조합은 어린이날인 이번 주 금요일 경고파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는 플랫폼 기업의 이윤 독식을 경고하고, 해결책 마련을 촉구하는 차원에서 이번 파업에 동참하며 어린이날엔 배달의민족을 사용하지 않을 생각합니다. 플랫폼 기업의 이윤 독식 문제를 고민하는 캠페이너가 계신다면 이번 파업에 동참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노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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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 노동의 미래: 돌봄 노동과 외국인 노동
돌봄 노동이란 아동, 노인, 장애인, 환자 등 혼자 외부활동이나 일상을 영위하기 힘든 사람들을 보살펴주는 노동을 말한다. 이들을 돌보는 것은 어느 사회든 대체로 가족(그 중에서도 거의 대부분은 여성)이 책임지는 것이 전통이자 관습이었고, 돌봄에 있어서 국가 혹은 사회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생겨난 것은 그리 길지 않다. 하지만 ‘긴병에 효자 없다’라는 속담이 있고, 치매 같은 질환이나 장애를 가진 가족을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을 하는 뉴스를 보면 사람들은 모두 딱한 마음을 표현한다.  돌봄, 혹은 돌봄 노동이라는 것은 매우 복잡하다. 노동이라고만 하기엔 다른 노동과 질적으로 느낌이 다르다. 도덕성이나 사랑 같은 것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또 돌봄 노동을 돈으로 계산하는 것도 쉽지 않다. 나름대로 노동의 강도와 시간, 돌보는 사람의 숙련도 등을 돈으로 환산하는 사회적인 기준을 세우면 되지 않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과정 자체가 너무 길고 힘들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꼭 필요한 일이긴 하지만 당장의 해결책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돌봄에 대해 도덕성은 필요할 지 모르겠지만, 핵가족화를 넘어 탈가족화 이야기가 나오는 시대에 꼭 감정(사랑, 친근함 등)이 필요할까 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이것도 돌봄의 당사자들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보면 말하기 힘든 이야기다.  우리는 돌봄을 국가와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고 종종 이야기한다. 이 말을 잘 해석해보면 두 가지 의미를 얻을 수 있다. 첫째는 돌봄을 책임지는 노동자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말은 돌봄 노동의 시간과 강도를 돈으로 환산하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둘째는 돌봄에 있어서 사회적/경제적인 차별이 없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뜻도 된다. 돌봄이 공적인 영역이 된다면 일단 이를 민간에 모두 맡길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물론 하도 자본주의가 중요하다고 노래를 부르는 사회이니까 자기가 돈을 많이 써서 더 좋은 돌봄을 받겠다고 한다면 그것을 막을 수 있을까 싶긴 하다. 하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도시(특히 서울-수도권)에 살고 있지 않다고 해서 돌봄 차별을 받는 일은 없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에서는 한국과 비슷한 문화를 지닌 동북아시아의 두 나라, 일본과 대만이 돌봄 노동에 대처하는 자세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두 나라 모두 한국보다 먼저 돌봄 노동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된 곳들이다. 고령화 문제와 더불어 사회가 늙고 있다는 이야기라던가 돌봄에 들어가는 비용 문제, 돌봄의 공공화 이야기가 한국보다 먼저 나온 곳이기도 한데, 또 하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돌봄 노동에 있어서 이주 노동자 유입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곳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이주 노동자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는 가족의 수가 줄고 있다는 점이다. 자식을 적게 낳거나 안 낳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돌봄을 담당할 가족의 수가 줄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첫째와 연관이 되어 있는 저출산 문제다. 저출산 문제로 인해 노인을 돌볼 가족(자식도 형제도)이 줄어들거나 없어질 것이 예상되었고, 이와 더불어 돈을 주겠다고 해도 일을 할 사람이 없는 상황이 생겨난 것이다. 셋째는 여성의 임금이 올라갔다는 점이다. 여성 인권이 신장되고 여성 임금이 올라가면서, 전통적으로 여성이 거의 대부분을 담당해 왔던 돌봄 노동이 이전처럼 유지되기 힘들어진 것이다. 이로 인해 대만과 일본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을 돌봄 노동의 책임자로 대거 유입하였다. 일본의 경우는 노인 요양 관련 제도를 만들어 놓고 시설을 중심으로 하여 숙련된 노동자들을 받아들이거나, 노동자들을 시설에 배치하고 숙련도를 높이는 식으로 진행을 한다.  오키나와 국제대학의 카게 리에(鹿毛理恵)와 사가여자단기대학의 마에야마 유카리(前山由香里)의 연구에 따르면 일본의 외국인 재류자격에 요양(일본어로는 카이고介護)이 추가된 것은 2016년이고 실행된 것은 2017년이라고 한다. 일본이 돌봄과 요양 부분에서 외국인을 늘리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돌봄노동, 요양 관련 노동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이라고 성명한다. 2006년 무렵, 언론을 통해 돌봄노동은 저임금 중노동 현상이 강하고 3K(한국의 3D 같은 것으로 더럽다-키타나이-, 빡세다-키쯔이-, 위험하다-키켄다-의 줄임말)노동이며, 돌봄/요양 노동자들이 치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며 시설 입소자에 대한 학대, 폭언, 폭력을 자행하는 일들이 자극적으로 보도되었던 것이 그 계기라고 한다.  안 그래도 부족했던 돌봄 노동 인력은 더 줄게 되었고, 돌봄 노동이나 복지 관련 교육 시설이 정원을 반도 못 채우는 일이 계속되었다. 그래서 그 자리를 (그래도 수가 부족하지만) 외국인 노동자들을 통해 채우려 하는 것이다. (「日本における外国人ケア労働者の受け入れと育成をめぐる 現状と課題:ジェンダーの視点からの分析」) 시설을 중심으로 하여 숙련된 외국인 돌봄 노동자를 수용하거나 외국인 노동자를 일본의 돌봄 환경에 맞게 육성하는 방식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은 질적인 문제가 발생할 일은 없겠지만 노동자의 수를 충원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방식이라고 지적한다 (사다마츠 아야定松文「介護準市場の労働問題と移住労働者」). 일본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늘지 않는 돌봄 노동 인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꽤 오래 전부터 돌봄 노동을 자동화, 기계화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자력으로 운신할 수 없는 사람들을 들어올리는 로봇부터, 이동이나 운전을 돕는 로봇, 치매나 정신 질환이 있는 사람의 행동을 감시하는 로봇, 식사, 목욕, 배설을 돕는 로봇부터 고령자나 환자와 사회적이고 감정적인 교류를 유지시켜주는 로봇도 있다. 일본이야 워낙 옛날부터 로봇으로 유명했으니, 이런 문제도 로봇이나 인공지능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노인이나 환자들을 위한 로봇을 만들겠다는 시도는 1990년대부터 있었지만 아직도 실생활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로봇은 없다. 2019년 조사에 따르면 어떤 종류든 돌봄과 관련된 로봇을 하나라도 도입한 노인 시설은 전체의 10% 정도였다고 한다. (MIT Tech Reciew.2023.01.13.)  앞으로 기술이 어떻게 발전할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나는 일본의 이런 시도가 그리 유효하지 않을 것 같다는 전망을 한다. 돌봄 노동은 단순히 집안일을 도와주거나 목욕을 시켜주거나 배설물을 치워주는 일 정도가 아니다. 돌봄 노동은 돌봄을 받는 사람이 정서적으로 외로움이나 부끄러움 같은 감정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는 점에서 돌봄은 ‘인간관계’와 밀접한 관련이있다. 돌봄 노동을 금액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나와 다른 세대,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 혹은 여러 가지 이유로 온전하지 않은 정신을 가진 사람에 대한 정서적, 사회적 돌봄은 엄청난 강도를 요구하는 일이다. 돌봄 로봇이 만들어진다고 해도 결국은 사람이 해야하는 일인 것이다. 이에 비해 대만은 돌봄 노동에 대한 투자를 많이 하지 않는다. 돌봄, 특히 노동의 기간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장기요양 환자를 중심으로 개인이 원하면 그 집에 살면서 노인이나 환자를 돌보는 돌봄 노동자의 고용을 허가하는 식으로 돌봄 이주 노동자를 수용하고 있다. 2023년 기준으로 대만에서 돌봄 노동에 종사하는 외국인은 225,880명이다. 이 중 시설에서 일하는 사람은 16,878명이고, 가정에서 일하는 사람은 207,399명이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은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베트남 여성이 종사하고 있는데, 대만의 복지/돌봄 관련 외국인 노동자 중 이 네 개 국적 중 하나를 가진 사람은 97%다. (대만 노동부 통계) 그리고 이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대만의 경우, 수적인 수요는 대체로 충족이 되지만 숙련도와 전문성이 낮거나 언어가 잘 안 통하기도 하는 인력들이 가정에서 일을 한다. 이런 현상은 돌봄 노동이라는 것 자체에 전문성이나 교육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는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또, 가정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에 사실상 가사 노동에도 종사하는 경우가 많을 가능성이 높고, 노동 시간의 제한이 지켜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으며, 임금에 있어서도 불리한 측면이 많을 것이다. 또 돌봄 이주노동자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점에서 성폭력의 위험성도 높을 것으로 추측된다. 저출산 고령화가 전세계 여러 국가의 문제가 되면서 돌봄 노동의 국제화도 상당히 진행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면 한국은 어떨까?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유휘, 이정은의 조사에 따르면 2020년 1월 말 기준으로 노인요양시설, 노인요양공동생활가정에서 근무하는 외국인은 총 463명으로 노동자 전체와 비교했을 때 0.6% 수준이라고 한다. 광역시, 도 등에서 관내 요양보호사 교육기관을 통해 관리하는 요양보호사 자격취득 현황 정보를 통해 추산했을 때엔 전체 요양보호사 중 외국인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1%라고 한다. 요양병원에서 일하는 간병인의 경우에는 외국인 노동자의 수가 많았는데 2020년 3월 18일 기준으로 전체 간병인 수 34,951명 중 외국인 등록번호 여부로 확인된 외국인 간병인 수는 16,080명(46%)이었다고 한다. 임금 수준은 요양병원 간병인이 더 높지만, 근로 조건은 요양시설의 요양보호사가 더 좋다고 한다. (김유휘,이정은「한국 돌봄서비스의 이주노동자 실태 분석」) 요양보호사의 경우, 2020년 기준으로 83만 7천여 명이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인원은 단 16,500여 명이라고 한다. 2019년 조사에 따르면 요양보호사의 94.7%가 여성이고, 평균 연령은 58.7세인데, 60대가 40.4%, 50가 39.4%라고 한다. 소수의 고령 여성이 다른 고령인을 돌보고 있다고 하면 너무 과장일까?  특별한 요인이 없다면 고령자의 수와 비율은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고, 돌봄 노동자의 수요도 더 늘어날 것이 뻔하다. 돌봄 노동에 있어서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 올 것이다. 앞으로 기술이 어떻게 발전할 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돌봄 로봇이 상용화되기도 힘들 것 같다. 한국에서의 외국인 노동자 차별과 산업재해로 인한 부상, 사망에 관해서는 내가 기억하는 한, 20년 동안 딱히 변한 게 없다. 인권과 윤리성의 차원에서도, 현실적인 차원에서도, 한국에서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처우 개선은 너무 느리다. 돌봄 노동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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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노동 4.0'을 알고 계신가요?
알고 보면 서로 다른, 4차 산업혁명 - 산업 4.0 - 노동 4.0 독일은 “하이테크 전략 2020”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기술, 사회 변화에 대비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5가지 (기후/에너지, 건강/식량, 정보통신, 교통, 안전)주요 부분을 대비할 미래산업계획 11개를 발표하였습니다. 이 11개의 미래산업계획에 디지털화에 따른 지식산업화 준비와 미래의 노동환경과 노동생활에 관한 2개의 프로젝트를 추가하여 하이테크 전략 중에서도 가장 핵심이 되는 ‘산업4.0(Industrie 4.0)’이라는 전략을 수립하였습니다. 또한, 2016년 말 ‘노동4.0(Arbeit 4.0)’ 백서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2016년 스위스 다보스에서 개최된 세계경제포럼(WEF)에서 Klaus Schwab 회장은 ‘현재는 지금까지 일해 온 삶의 방식을 근본부터 바꿀 기술혁명의 직전에 와있다’라고 하면서 ‘4차 산업혁명’을 언급하였고 국제적으로 4차산업 혁명에 관한 관심이 급증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은 빅데이터(Big data), 인공지능(AI), 로봇(Robot), 센서(Sensor) 사물인터넷(IoT), 현실과 가상세계의 연결(O2O) 등의 디지털 기술이 우리의 삶에 융합되어 새로운 차원의 변화를 가져오는 산업혁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보스 포럼 이후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가 ‘산업 4.0(Industry 4.0)’과 혼용되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은 ‘컴퓨터와 인터넷의 등장과는 차원이 다른 종류의 기술이 산업계에 일으킬 혁명적 변화’를 의미하고, 산업 4.0은 지능정보기술 발달에 대응하여 독일 제조업의 활로를 모색하는 차원에서 정립된 개념이어서 4차 산업혁명과, 산업 4.0은 내포하는 의미와 차원이 다릅니다. 독일에서 산업(인더스트리) 4.0이 노동(아르바이텐) 4.0으로 이어지기까지  독일은 2016년 다보스 포럼 이전에 가장 먼저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변화를 예측하고 국가 차원에서 이에 대처할 정책 마련에 나선 나라입니다. 독일 ‘인더스트리 4.0’의 핵심은 가상물리시스템(Cyber Physical System)과 사물인터넷을 연결함으로써 가상세계와 물리적 세계를 연결하고 통합하는 것입니다. 기계설비나 작업공구와 같은 실제 물리적 세계는 각각에 붙여진 센서를 통해 주변 상황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인터넷으로 교환합니다. 가상물리시스템의 핵심은 생산과정의 자동화와 지능화입니다. 각 생산 공정의 설비들이 서로 필요한 정보를 교환하고 그에 맞추어 생산과정을 조절하기 때문에 인간이 일일이 개입하지 않습니다. 경영자, 관리인, 고객, 협력업체, 유통업체, 기계 설비가 인터넷으로 소통함으로써 실시간으로 의사결정이 최적화합니다. 인더스트리 4.0에서 실행한 제조업의 디지털화를 통한 혁신이 노동과 삶의 양식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 것인가에 대한 독일의 고민이 노동정책인 ‘아르바이텐(Arbeiten 4.0)’으로 이어졌습니다. 인더스트리 4.0에 대응하는 아르바이텐 4.0은 “독일 경쟁력의 원천이자 문제의 해법이 공장무인화가 아닌 ‘사람’이라는 사고를 바탕으로 인간 중심의 노동조직 창출”을 고민합니다. ‘아르바이텐 4.0’은 ‘인더스트리 4.0’을 보완하기 위한 것으로, 2015년 독일 연방노동사회부가 「녹서」를 발간하면서 논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논의는 인더스트리 4.0의 새로운 생산 체제에서 이루어지는 노동만을 살피는 데 그치지 않고, ‘양질의 노동’이라는 비전을 바탕으로, 미래 노동사회의 사회적 조건과 규칙들을 형성하는 문제를 논의하고 이러한 형성과 정에 기여하는 데에 목표를 두고 2015년 봄부터 2016년 말까지 진행했습니다. 이러한 논의들을 정리하여 독일 연방노동사회부는 2017년 3월 「백서」를 발간하였습니다. 이 백서는 디지털 전환과 사회적 변화 와중에 ‘양질의 일자리’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것을 핵심으로 합니다. 노동 4.0의 다섯 가지 목표와 여덟 가지 정책 방향 백서는 제3장에서 ‘양질의 노동’을 달성하기 위한 다섯 가지 목표를 제시합니다. ① ‘양질의 노동’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성과에 부합하는 소득과 사회안전망의 확보가 필요하다. ② 안정적이고 직업적 상승이 가능한 ‘양질의 노동’에 대한 기회가 모두에게 제공되어야 한다. ③ 경직된 노동모델이 아니라, 생애단계에 따라 변화하는 다양성을 새로운 표준으로 인정하여야 한다. ④ 노동의 질을 유지하여야 한다. ⑤ 공동결정, 참여, 기업문화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위와 같은 원칙에 기초하면서, 복지국가 및 사회보장체계의 미래에 대하여 여덟 가지의 구체적인 정책방안을 제시합니다. ①취업 가능성의 향상- 실업보험에서 고용보험으로: 실업보험을 단계적으로 고용보험으로 확대함으로써 근로자를 위한 예방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때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평생직업능력개발을 위한 독립적인 직업지도와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권리입니다. ②유연하지만 자기주도적 근로시간: 디지털화가 근로시간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며, 근로자들의 근로시간에 대한 자기결정권과 시간주권에 대한 수요도 증가하고 있는 점에 주목하였습니다. ③서비스 부분에서 양질의 근로조건 확보: 디지털화는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유발할 뿐만 아니라 플랫폼을 통한 일자리 중개를 촉진하게 될 것으로 예측합니다. 이에 서비스 부분에서의 양질의 근로조건 확보가 중요하다고 보았습니다. ④산업보건- 산업안전보건 4.0을 위한 접근법: 노동으로 인한 신체적 부담과 함께 정신적 스트레스에도 더욱 비중을 두어야 하며, 산업안전보건 관련 기제들을 발전시켜 ‘산업안전보건 4.0’을 수립할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⑤근로자 정보보호기준의 강화: 직업세계에서 디지털 응용의 확대로 인해 근로자 정보보호를 위한 실천이 요구된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연방노동사회부가 근로자 정보보호에 중요한 법조항인 독일 「정보보호법」 제32조(고용 관련 목적을 위한 개인정보 수집, 처리, 사용) 규정이 유지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⑥공동결정과 참여의 지속과 사회적 파트너십에 기반한 전환: 디지털 구조적 변화에 성공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파트너 및 사업장 차원의 협상과정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⑦자영업자를 위한 사회적 보호의 증진: 종속고용과 자영업 사이의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디지털 직업세계에서 더욱 두드러질 것이라고 보고, 원칙적으로 자영업자를 근로자와 마찬가지로 법정 연금보험제도에 포함시키는 것이 타당하고 적절하다고 보았습니다.  ⑧미래지향적 복지국가의 구축: 개인의 생애 전반에 걸쳐 안정적인 취업가능성을 유지 시키고 전환기를 지원하는 것을 복지국가 제도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목표 중 하나라고 보았습니다. 특히, 젊은 근로자에게 ‘사회적 유산’의 형태로 초기자본을 제공하는 것으로, 이 자본은 직업능력 개발을 목적으로, 또는 창업 단계나 개인적 사유에 의한 경력 중단기간(휴직, 휴가, 실업 등)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개인근로자계좌’의 도입을 제안하였습니다. *위의 내용은 <노동 4.0에서의 양질의 일자리 창출 전략 연구> (2019) 를 발췌, 요약한 것임을 밝힙니다. ?변화하는 사회와 노동에 관하여 독일은 “독일 경쟁력의 원천이자 문제의 해법이 공장무인화가 아닌 ‘사람’이라는 사고를 바탕으로 인간 중심의 노동조직 창출”을 고민하며 노동 4.0을 통해 정책 목표와 방향성을 형성했습니다. ?여기서 독일을 한국으로 바꾼다면 우리사회는 디지털화를 통한 노동과 삶의 양식의 변화 앞에 무엇을 해법으로 삼아, 무엇을 고민하며 정책 목표와 방향성을 잡을 수 있을까요? 혹은 무엇을 해법으로 여기며 다음으로 향하고 있을까요? 
노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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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니트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 방향에 대한 소고
‘니트’는 “Not currently engaged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의 줄임말로, 의무 교육을 끝낸 뒤에도 진학도 취직도 직업훈련도 받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니트 청년은 2020년 기준 37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 할 수 있을까? 청년들의 일자리가 줄고 니트가 늘어나는 것은, 경제 성장이 둔화되거나 경제 위기가 발생하는 것 때문이기도 하지만, 구조적 차원의 양극화 또한 중요한 원인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한강의 기적 속에서 유일하게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이 된 부국이라는 자화자찬 이면의 니트가 증가하는 현상을 설명하기 어렵다.  후자의 관점에서 보면 ‘분배 혹은 재분배’, 평등한 관계 형성의 문제가 중요해진다. 이에 더해 부동산의 소유에 의한 부의 양극화 또한 관계가 있을 것이다. 어떻게 분석을 하든 구조적인 문제의 급진적 변형은 ‘노사정 대타협’과 같은 큰 정치적 지형 변화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신속하게 수행할 수 있는 정책의 차원을 넘어선다. 제도정치와 사회운동의 연결, 그리고 시민의 지지와 압력의 결합 등 복합적인 정치적 실천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지방)정부 차원에서는 (1) 구조적 차원의 문제의 해결 방향성과 모순되지 않는 관점에서 문제들을 완화하는 소극적인(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정책을 추진하거나, (2) 국가 전체 차원의 구조적 차원의 문제의 해결 방향성의 맹아를 보여 줄 수 적극적인/실험적인 정책들을 펼 수 있다.  전자의 경우, 실행하고자 하는 정책이 구조적 차원의 문제의 해결 방향성과 상충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따져보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정책의 경우 단기적으로는 정책 대상에 도움이 되지만 구조적 차원의 문제 해결에 방해가 되는 것으로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후자의 경우, 서울시의 사례에서 확인 할 수 있듯이 사회적 경제 영역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정책들, 청년 일자리와 관련해서는 사회적 경제 영역과 밀접하게 연관된 뉴딜 일자리 사업을 실행하는 등, 구조적 차원의 문제 해결을 위한 맹아를 보여주는 실험적인 정책을 떠올려 볼 수 있다. 이러한 정책은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면이 있다. 꼭 이 사례가 아니더라도 후자와 같은 식의 정책들에 힘을 쏟는 것은 구체적인 실천들을 모아 총체적인 정치적 비전을 발전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자는 주로 양적 차원에서의 평가들과 조응하며, 후자는 질적 차원에서의 평가들과 조응한다.   성장-대량소비와 관련되는 자본-노동의 모델들이 만약에 보수-진보 가릴 것 없이 혁명이 아니면 어쩔 수 없다고 여겨질 정도로 한계에 봉착한 것이라면(4차산업혁명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이야기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성의 공동체 사회, 욕망이 아닌 필요에 입각한 생산 및 소비라는 패러다임 전환을 추구하거나, 사회적 경제의 발전이라는 비전에 입각하여, 공공영역에서 사회적 노동을 수행하며 살아갈 수 있는 일련의 청년 집단들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한 실험이 될 수 있다. 어떻게 해도 정답을 찾기 어려운 성장-대량소비라는 기준으로서의 ‘질 좋은 일자리’의 창출보다는, 사회의 공공성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며 노동하는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관점에서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는 것이다.  확보하기 쉽지 않은 더 많은 부가 일자리를 만들까? 부는 이미 많다. 부가 선순환 되지 않는 것이 문제이지 않을까? 뿐만 아니라 끝없는 경제성장은 환경을 파괴하고 그것은 더는 지속가능하지 않은 것으로 증명되고 있다.  자본주의 외부로 나아가 대안공동체를 만들어 행복하게 사는 유목민이 되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지방)정부의 정책에 입각하여 사회적 경제 영역의 발전시키는 차원에서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 혹은 완화하고자 하는 시도가 ‘자립성’이라는 기준을 어느 정도 달성할 수 있다면 청년들로 하여금 또 다른 가능성들을 생각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좋은 집과 많은 소비’가 아니라 ‘함께 모여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는 행복’의 가능성 같은 것 말이다.  그리고 이는 기존의 노동시장에서의 경쟁 완화, 청년 니트의 감소와 연관될 수 있다. 그리고 쉽지 않겠지만 그러한 가치들이 국가 차원에서의 문화 변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정도가 된다면 더욱 자립성이 높아지고 경쟁이 완화되는 상황을 기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공공성과 대안공동체를 지향하는 방향성은 특히 ‘지역’이라는 범주와 친화성이 높다는 점에서 더더욱 지방정부 차원에서 실험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것 같다.  청년 니트는 대체로 학교와 노동시장에서 이탈한 청년으로 정의된다. 청년 니트는 헬조선에서 마상을 입고 적극적인 사회적 삶을 뒤로하고 고립에 처한 존재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정부의 정책들은 대체로 적극성, 주도성을 지닌 대상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기 쉽기 때문에 청년 니트의 ‘발굴’이라는 표현이 주로 쓰이게 되는 것 같다. 돌아다니면서 강제로 끌어내지 않는 이상 ‘발굴’은 쉽지 않다. 안정된 집, 결혼 및 육아,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돈 많이 버는 직장이라는 ‘정상 루트’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압박은 많은 청년들을 강제로 니트로 만들어 버린다. ‘비정상’은 곧 소외이고 불행이 되어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모든 청년들의 정상 루트로의 진입이라는 생각은 실현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대안적인 삶의 방식으로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정책 실험을 통해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추진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새롭게 믿고 기댈만한 것이라면, 청년 니트들이 다시 행동에 나서도록 하는 중요한 제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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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가사근로자에게는 최저임금 적용을 배제"하는 법률 개정안?
국회에서 가사근로자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됐습니다. 뉴스를 어제(21일) 본 것 같은데 제안 날짜가 오늘(22일)이라 다시 확인해보니 이런 상황이었습니다. ‘차별 논란’ 휩싸인 외국인 가사도우미 법안, 철회됐다 재발의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이 21일 발의한 개정안이 22일 오전 철회됐다가 22일 오후 다시 발의됐습니다. 21일 발의에 이름을 올렸던 의원 중 일부가 발의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혀 '의원 10인 이상 동의'라는 요건 미충족으로 철회되었죠. 그리고 다른 의원들이 발의에 참여하면서 다시 요건을 충족하여 지금은 의안정보시스템에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시대정환 조정훈 의원과 국민의힘 의원 10인, 총 11인이 발의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조정훈의원 등 11인) 의안정보시스템 내용을 옮기면 해당 개정안의 제안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현재 가사근로자 고용시장은 내국인과 중국동포 중심임. 고용허가제 대상인 16개 국가의 외국인 근로자에게도 가사근로는 허용되지 않고 있음. 그런데 최근 육아를 하는 맞벌이 가정을 중심으로 가사근로자가 필요함에도 찾기 어려워, 일과 가정의 양립이 위협받고 있음. 이에 저출산 문제 해결과 여성의 지속적인 경제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실질적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있는 가운데,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을 통해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음. 실제 싱가포르는 1978년부터 저임금의 외국인 가사근로자(Foreign/Migrated Domestic Worker) 제도를 도입하여, 여성의 경제활동을 장려 및 지원하고 있음. 한국도 저임금의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을 통해 맞벌이 가정의 가사부담을 덜고 특히 여성의 경력단절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음. 궁극적으로 이는 저출산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는 한편, 외국인이 보이지 않는 곳이 아닌 같은 생활권에서 일하면서 외국인에 대한 부정적 사회 인식을 전환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됨 개정의 주요내용은 바로 이것 입니다. 외국인 가사근로자에게는 최저임금 적용을 배제함으로써 최소 3년에서 최대 5년간 외국인 가사근로자 정책 실험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들고자 함(안 제6조제1항 단서 신설). 현행 가사노동자법(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 제6조 제1항 입니다. 제6조(다른 법률과의 관계) ① 이 법의 적용을 받는 가사근로자는 「근로기준법」, 「남녀고용평등과 일ㆍ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최저임금법」 등 근로 관계 법령의 적용이 제외되는 가사(家事) 사용인으로 보지 아니하고, 이 법의 적용을 받는 가사근로자가 행하는 가사서비스는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등 근로 관계 법령의 적용이 제외되는 가구 내 고용활동으로 보지 아니한다. 근로기준법, 고용평등법, 최저임금법은 가사노동자에게 해당 법을 적용하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왜지?) 그런데 이 가사노동자법을 적용받으면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고평법의 적용을 받는 가사노동자가 됩니다. 그리고 지금의 발의안은 제6조 제1항에 단서를(단,~~~) 만들어서 이 법의 적용을 받는 가사근로자로 최저임금의 적용을 받더라도, 외국인이면 최저임금 적용을 배제하겠다는 내용으로 보입니다. 노동법에서 배제된 가사노동자를 가사노동자법으로 일부 보호했다가 그 중 외국인 가사노동자는 다시 보호를 배제합니다. 배제의 배제의 배제...! 사실 가사노동자법 자체도 2021년 우여곡절 끝에 제정되어 2022년 시행된 최근의 법이고 입법 당시 가사근로자를 보호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가사노동자 고용개선법, 환노위 통과돼 "68년만“ 다시 오늘의 가사노동자법 개정발의안으로 돌아가면 ‘한국의 저출산과 여성 경력단절 문제의 해결책으로 외국인 가사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도록 한다’로 한 줄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관련하여  한국여성단체연합 은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성명은 최저임금 적용제외 발의안이 가사노동에 대한 심각하고 지독한 폄하임을 규탄하며, 가사근로자법은 이주 가사노동자를 수탈하기 위한 법이 아님을 주지합니다. 결론적으로 모든 차별과 배제의 문제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차별적 구조 속에서 발생하는 선주민 여성의 문제를 이주 여성 노동자를 수탈하여 해결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입니다. 한편, 발의에 동참한 의원들뿐만 아니라 정부에서도 저출산 대책으로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남성의 육아휴직 의무화와 더불어 외국인 가사도우미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 안을 긍정적으로 살피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서는 이 같은 안을 중점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고 합니다. 1월 출생아 또 '역대 최저'…이대로면 0.7명대도 위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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