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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왜 돈을 써? 대학생 쓰면 되지
문제: 공공기관이나 기업이 제출한 사업 제안서에 따라 사업을 수행하는 활동. 계획서 심사, 면접 등의 과정을 거쳐 선발된 경우에만 사업에 참여할 수 있다. 진행 주체는 사업 진행 과정에 대해 지속적인 평가와 감독을 받는다. 진행 주체와 상관없이 사업의 결과는 사업을 제안한 기관의 실적으로 남는다. 이는 무엇일까? (1) 공모사업  (2) 용역사업  (3) 외주사업  (4) 설마 봉사? 자원봉사, ESG, 그리고 열정페이 서울시자원봉사센터는 올해 3월부터 ‘2024 서울 청년 기획봉사단’ 사업(이하 기획봉사단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업의 내용은 문제 속 내용과 완전히 동일하다. 청년들이 팀을 이뤄 현대홈쇼핑, 아모레퍼시픽, 서울신용보증재단을 포함한 16개의 기업과 공공기관이 제출한 사업 제안서에 맞춰 기획안을 제출한다. 사전 교육, 서류 심사, 면접을 거쳐 최종 선발된 청년들은 사회공헌 사업을 진행한다. 중간평가와 최종평가를 거쳐 사업이 종료되면, 청년들은 활동혜택으로 무려 활동 인증서와 봉사시간을 제공받는다. 서울시자원봉사센터는 청년들이 이 활동을 통해 “사회 진입과 일 경험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밝혔다. 돈은 안 받지만 ‘일’을 경험해 볼 수 있다니! 청년들의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 아닌가? 기획봉사단 사업에서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무급 노동’이다. 사실상 공모사업과 동일한 형태로 진행되는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참여하는 청년들에게는 합당한 대가가 전혀 주어지지 않는다. 약간의 실행금을 주긴 하지만, 인건비는 물론이고 장비 대여비, 교통비 등의 활동비로도 사용할 수 없어 참여자들은 오히려 자비를 들여가면서까지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 봉사니까 당연히 돈이 주어져선 안 된다고 얘기할 수도 있다. 어째서 그런가? 어째서 자발적으로 공익을 추구하는 활동은 오직 공짜 노동으로만 진행되어야 하는가? 환경, 생명, 인권의 가치를 짓밟아가면서까지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들에 대해서는 그토록 관대하면서, 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일에는 엄격한 금전적 순수성을 요구하는가?  설령 봉사의 무보수성을 인정하더라도, 기획봉사단 사업이 순수한 봉사라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 서울시자원봉사센터는 작년에도 기획봉사단 사업을 진행했었는데, 언론보도는 물론 센터의 웹사이트와 블로그를 뒤져봐도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이 진행되었는지를 알 수가 없다. 대신 기업의 봉사활동으로 둔갑한 보도나 기업이 사업을 진행한 청년들에게 ‘활동 인증서’를 수여했다는 보도만을 찾아볼 수 있다. 청년들의 무급 공익활동을 기업의 실적으로 가로챈 것이다. 기업의 사회공헌 사업을 용역 외주로 진행한 것과 다를 바 없는 상황에서, 청년들의 무급 노동에 ‘봉사’라는 이름을 붙이며 합리화하려는 행태는 기만적이다.  싸다 싸! 대학생의 공짜노동 청년들의, 특히 대학생들의 무급노동은 이미 흔하다. 수많은 공공기관과 기업에서 운영하는 서포터즈, 기자단, 마케터, 봉사단 등의 대외활동은 대학생들의 무급노동을 당당히 요구하거나, 무급노동에 가까운 수준의 활동비만을 제공한다. 이러한 활동에 참여하면 대개 블로그 포스팅 및 카드뉴스 등의 기사 작성, 홍보를 위한 영상 콘텐츠 제작, 기관 행사 및 박람회 부스 운영 등의 활동을 요구받게 된다. 활동을 위해 들여야 하는 시간과 노력은 절대 적지 않다. 대외활동을 위해 휴학하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참여자가 얼마큼의 노동을 하든 간에, 그에 따른 보상은 노동량에 비해 턱없이 적은 활동비를 제외하면 봉사시간과 수료증, 기업의 제품 제공 정도가 전부다.  사업 운영진 입장에서는 적은 비용으로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으니 안 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청년들은 왜 자발적으로 공짜노동을 하는가? 대학생들의 대외활동을 향한 관심도는 문자 그대로 ‘못 해서 안달’인 수준이다. 대기업이나 대형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서포터즈는 수십, 수백 대 일에 달하는 경쟁률을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결국 청년, 대학생 입장에서도 득이 되니까 참여하는 것 아닌가? 서로가 서로를 원하는 상황인데 뭐가 문제인가? 청년들이 자원해서까지 공짜 노동을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취업 때문이다. 한국의 노동시장은 두 개의 층으로 나뉘어 있다. 대기업 정규직이나 공무원처럼 고소득, 고용 안정, 장기근속이 보장되는 영역은 ‘1차 노동시장’이라 불리며 노동시장의 상층을 이룬다. 반면에 중소기업 재직자나 기타 비정규직으로 이루어진 ‘2차 노동시장’은 소득이 낮고 고용상 지위가 불안정하며 재직 연수가 짧다는 특징을 갖는다. 문제는 두 영역 간의 격차는 매우 큰데 노동시장 간 이동성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시장 진입을 앞둔 청년들의 입장에서 ‘1차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목표가 된 이유다. 그러나 1차 노동시장 일자리는 점차 줄어들고 있고,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청년들은 극심한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고, 무급노동이라도 ‘사서 고생’해야 한다. 사회구조적 차원에서 청년들에게 무급노동이 강제되고 있다.  일하다 죽었지만 산재는 아니다? 이는 청년만의, 또 급여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회엔 이미 사회적 약자의 노동을 노동으로 보지 않는 인식이 가득하다. 최근 보도된 다음의 사례는 한국 사회의 편협한 노동 인식을 보여준다. 만 65세 이상 기초연금 수급자인 A씨는 2021년 경기도의 한 복지관을 통해 공공형 노인일자리 사업인 ‘공익형 지역사회 환경개선 봉사사업’에 참여했다. A씨는 이 사업에서 월 30시간 동안 지역 내 쓰레기 줍기 등의 활동을 한 뒤 약 27만 원을 받았다. 2022년 아파트 인근 도로 갓길에서 쓰레기를 줍던 A씨는 도로를 지나던 차량과 부딪쳤고,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곧 숨졌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A씨가 복지관 소속 근로자가 아니라며 산재보상을 거부했다. A씨의 유족은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으나, 재판부는 A씨의 노동은 근로 제공이 아니라 “지역사회 공익증진을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봉사활동”이라며 산업재해로 인정하지 않았다.  판결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재판부는 A씨가 한 “1일 3시간 범위 내 쓰레기 줍기 활동은 이윤 창출 등을 목적으로 한 근로제공으로 보기 어렵다”고 봤다. 왜 ‘1일 3시간 범위 내 쓰레기 줍기 활동’은 노동이 아닌가? 왜 ‘이윤 창출 등’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면 노동이 아닌가? 재판부는 이어 “근로 제공과 그 대가로서의 임금 지급을 목적으로 체결된 계약”이 아니라 노인복지법에 따른 “노인의 사회 참여 확대를 위한 공익사업의 일환”이라면서 “복지관으로부터 받은 1일 2만7000여원”도 “생계보조금 성격으로 국가 예산에서 지급된 것으로 근로 자체에 대한 대상적 성격을 지녔다고 평가하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노인들에게 쓰레기 줍기를 ‘시킨’ 것이 ‘공익’을 위한 것이라 노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에게 지급된 돈도 노동에 대한 급여가 아니라 생계보조금 성격으로 주어진 것이라 노동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노동이 아니라 공익사업이므로, 급여가 아니라 생계보조금이므로 문제없는 것 아니냐고? 노동을 공익사업이라고, 노동에 대한 대가를 생계보조금이라고 말장난하는 것이 진짜 문제다. 노동과 봉사를 가르는 기준은 명확하지 않다. 재판부는 이윤 창출이 아닌 노인의 사회 참여 확대가 ‘목적’이기 때문에, 주어진 활동비가 노동에 대한 대가가 아닌 생계보조금 ‘성격’이기 때문에 노동이 아닌 봉사라고 판단했다. 노동자성을 수행한 노동과 급여의 ‘목적’과 ‘성격’으로 판단하는 것은 난센스다. 대법원이 복수의 판례를 통해 세운 노동자성 판단 기준으로는 종속노동성 요소, 독립사업자성 요소, 보수의 근로대가성 요소가 꼽힌다.*** 사업 참여 노인은 복지관 등의 사업기관과 사업참여계약서를 작성한다. 이에 따라 정해진 기간, 보수, 장소, 업무내용, 업무규칙, 복무규정, 인사규정에 맞추어 업무를 수행한다(종속노동성 요소). 참여 노인은 타인을 고용할 수 없고, 사업기관이 제공한 비품과 원자재만을 사용해야 한다(독립사업자성 요소).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2020년에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전체 참여 노인의 74.2%가 급여를 목적으로 노인일자리사업에 참여한다(보수의 근로대가성 요소). 사법부의 과거 판례를 기준으로 살펴봐도 A씨의 업무를 봉사가 아닌 노동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목적과 성격을 바탕으로 억지스럽게 봉사와 노동을 구분 짓는 사법부의 판결은 약자의 노동을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여준다. 돈을 안 줘도 되는 사람은 없다 대학생 기획봉사단 사업과 노인 공공일자리 사업은 업무의 종류도, 수행 주체도 전혀 다르다. 그러나 노동을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똑같은 문제를 지니고 있다. 노동을 노동으로 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 현대사 속에서 활발하게 전개됐던 노동운동은 노동자의 권리를 크게 신장시켰다. 물론 오늘날에도 노동권을 둘러싼 문제는 산적해 있지만, 전반적인 여건이 상당히 개선되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노동권의 보장은 필연적으로 사용자의 책임(누군가는 이를 ‘비용’이라 오역한다)을 강화한다. 사회의 인권의식이 부족해 제대로 묻지 못했던 ‘당연한’ 책임이 떠오르자, 책임의 주체들은 이를 회피할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가장 쉬운 해법은 자신이 사용하는 노동자들이 사실 노동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노동자가 아니니 노동권을 무시해도 된다는 의미다. 돈도 안 줘도 되고, 안전도 신경 안 써도 되고, 근로시간이든 휴식이든 무시해도 된다는 것이다.  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대학생이나 노인만의 문제도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으로부터 먼 곳에 있는 자들의 노동은 언제나 부정당해왔다. 여성의 무급 가사·돌봄노동은 ‘집안 사정’이라서, 장애인의 저임금 노동은 ‘복지’라서, 고등학생의 저소득 노동은 ‘현장실습’이라서, 이주노동자의 차등적 최저임금은 ‘인구위기’라서 어쩔 수 없다며 노동 무시를 정당화해왔다. 기만적 수사를 한 꺼풀 벗겨보면 그 안에 숨어있는 차별이 드러난다. 특정한 ‘존재’라는 이유로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차별을 이제는 멈추어야 한다. 모두의 노동이 지닌 가치를 존중하고, 그들을 노동자로 인정하며 정당한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지금 바뀌지 않는다면 당신의 친구도, 당신의 가족도, 그리고 당신도 언제든지 차별받는 자의 위치에 설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 권혜자·이혜연의 분석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대기업 정규직 초임 평균은 305만 원인 반면, 중소기업 비정규직 초임 평균은 138만 원으로 그 격차가 매우 컸다(권혜자·이혜연, <대기업집단 및 중견기업의 임금 프리미엄>, 《노동정책연구》, 19(1), 2019.).   또한 전병유 외의 분석에 따르면 2004~2006년에는 중소기업 근로자의 3.5%가 대기업으로 이직했으나 2013~2015년에는 이 수치가 2.2%로 줄어든다. 이는 노동시장 간 이동성이 점점 떨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전병유·황인도·박광용,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정책대응 : 해외사례 및 시사점>, 한국은행, 2018.).  ** 한국고용정보원의 자료에 기반한 조귀동의 분석을 보면 1차 노동시장 일자리의 대부분을 점유하는 서울 4년제 대학 졸업자 상위 30%의 소득이 2014년을 기점으로 되려 감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동일 일자리의, 특히 1차 노동시장의 임금이 감소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므로 결국 일자리의 수 자체가 줄어들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조귀동, 《세습 중산층 사회》, 생각의힘, 2020.)    *** 종속노동성은 특정 사용자에게 업무에 관한 지휘명령을 받아 업무를 진행하는지, 독립사업자성은 업무가 자영업자적 특성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보수의 근로대가성은 임금을 목적으로 노동력을 제공한 것인지를 따지는 기준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법무법인 지평의 노동법 뉴스레터를 참고.
노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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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을 고민하는 활동가들 여기여기 붙어라 👍
지난 2월 25일, 노동에 관심이 많은 활동가 두 명이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시민단체 활동가 여섯 명을 초대했습니다! 망원의 성미산알루(무료로 공간을 내어주신 사장님 감사합니다🙏) 에 모여 '노동'과 '활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어요. 3시간 내내 이어진 성토대회에 허덕이며 녹취록을 풀었습니다😂 한달동안 울고 웃으며 이들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정리해보았는데요, 일부를 캠페인즈에도 소개합니다!  이 글에서는 볼 수 없는 기획의도와 기록 전문 한 눈에 확인하기👀 모든 구성원의 대화는 알록달록한 가명으로 기록했습니다. 🍎함께 하고 싶은 빨강 씨🍋 쎄한 노랑 씨 🍊 뻗치기 중인 주황 씨 🥦 어쩌구한 초록 씨 🫐 내려놓은 파랑 씨🥑 지켜보는 남색 씨🍇 날아가고 싶은 보라 씨 🤔 각 단체의 의사소통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파랑 | 저희 단체는 얼마 전 급성장했어요. 그래서 요즘 과도기인 것 같기도 해요. 지금은 팀장회의에서 사업이 결정이 되는 편이에요. 저희는 거기서 나온 결정에 맞춰 실무를 하고요. 저희 팀은 팀장님이 그래도 대표님에게 사업의 목적을 계속 묻고 그래서 결국 방향성을 알아내주셔요.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실무를 시작하기 전에 이 사업의 의미를 팀원들과 같이 얘기해서 만들어가고 시작하시죠. 하지만 조직에는 그렇지 않은 팀이 더 많아요. 그냥 팀장회의의 결정을 100% 수용해서 시작하죠. 그래서 방향성에 대한 맥락이 잘 공유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저희 단체는 규모도 큰 편이고 팀도 많이 나눠져 있어서 일단 자기 팀에서 하는 일에만 집중하는 경우가 대다수일 거예요. 그러면 팀들끼리 집행하는 활동과 결정에 차이가 생기기도 해요. 예를 들어 이 팀에서 내보낸 콘텐츠는 A 입장인데, 다른 팀 콘텐츠에서는 그거랑 미묘하게 다른 의견의 B 입장으로 나온다든지… 그럴 때 조정을 하는 시간이 있긴 한데, 그 조정 자리에 누가 들어오느냐에 따라서 달라지죠. 우리가 참고할 수 있는 조직의 방향성이 명확하지 않은 거예요. 🍋노랑 | ’파랑‘의 팀은 관련한 문제를 인식한 것으로 보이는데, 조직에 이야기 해보았나요? 🫐파랑 | 네. 운이 좋게도 제가 속한 팀이 조직의 상황을 꽤나 예민하게 보고, 그래서 문제 제기를 자주 하는 편이에요. 조직에서 ‘저 팀 무섭다’ 이런 얘기를 좀 듣기도 해요. (모두 야유) ‘이걸 왜 하느냐’고 질문을 하면 그게 되게 공격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나봐요. 조직 내에서도 이 사업을 왜 해야 하는지 설명 못하면 안 해야 되는 거 아닌가요?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 사람들의 동의가 필요한 참여형 사업들인 경우가 많잖아요. 내부조차 설득이 안 되는데 어떻게 진행할 수 있냐는 기본적인 질문이죠. 그래서 계속 점검하는 건데 그냥 ‘무섭다’고 피드백이 오니까 위축되기도 해요. 특히나 팀장 회의에서는 대표를 견제하는 사람이 많이 없는 것 같아요. 팀장들 중에 결정에 의문을 가지거나 점검하는 사람이 없어요. 내부에서 관련해서 문제 제기를 한 동료들이야 많았죠. ‘방향성을 잘 모르겠으니 더 설명해달라’ 라고 말하는 사람들, 물론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 그 사람들은 이미 지쳐서 나가 떨어졌어요. 문제 제기했던 사람들만 자꾸 떠나게 돼요. 그런 사람들이 계속 못 남아 있게 만드는, 튕겨나가버리는 그런 조직 분위기가 있죠. 계속 적극적으로 문제제기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걸 그냥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게 계속 반복이 되니까 되게 감정의 고립이 쌓이네요. 그래서 제가 하고자 했던 일이 거버넌스를 만드는 거였어요. 개인이 얘기하게 하지 말고 논의 거버넌스 만들자는 제안을 하고 있어요. 🍎빨강 | 문제 제기를 자꾸 면담으로 풀려고 하는 것에 불편함이 있어요. 그 자리는 문서화 하는 시간도 아니고 하니까 변화와 책임이 부재하죠. 그래서 열린 회의자리에서 다시 한번 얘기를 꺼내기도 해요. 그럼 이런 말을 하면서 다시 면담으로 또 빼는 거죠. “왜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얘기해요? 이런 식으로 풀지 말고 나한테 면담 먼저 요청해야 되지 않나요?” 여러 명 있는 자리에서 몰리게 되는 상황에 대한 기피감이 있는 것 같아요. 🍊주황 | 그럴수록 더 해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집단행동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활동가로서 꼭 더 열린 자리에서 말하라고 제안하고 싶어요. 면담으로만 해결하면서 그렇게 계속 정보를 리더들만 알게 되는 거잖아요. 그 리더만 활동가들의 얘기를 다 알고, 활동가들 사이의 칸막이를 높이는 거잖아요. 여기서 나온 대화들이 어디까지 정확히 책임져지고 실행될 건지를 흐리는 거잖아요. ‘여기서 다 얘기했으니까 끝이야’라는 명분만 쌓아가거나… 저는 여기서 꼭 정치활동이 개입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활동가들끼리 이런 얘기들을 나누고, 우리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게끔 해야 되는 거죠. 우리들의 목소리를 더 분명히 하는 전략들을 좀 더 짜야 되지 않을까요? 모두 결정 단위에 대한 견제기구가 딱히 없는 것처럼 보이네요. 그럼 활동가 스스로 견제해야 될 것 같은데요. 사업도 좀 안 해버리고 이러면서, 진짜 이 운영진들이 무서워하는 게 뭔지 알고 그걸 통해 투쟁하는 방식으로 가는 게 일단 기본원칙이죠. 이 문제의식을 좀 명확히 갖고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구체적인 사례도 정립하고. 🍎빨강 | 우리가 다 같이 모여서 문제 제기한 경험과 사례, 선례… 뭐가 없으니까 매번 개인 의견으로 몰리고, 개인 면담으로 빼고… 사실 저 그래서 면담 왕이에요. (웃음) 이게 처음 한두 번 반복될 때는 맨날 면담 자리에서 울었는데 이젠 울지도 않게 되더군요. 🍋노랑 | 너무 공감해요. 면담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서도 이게 의미있게 문제 제기로 흘러가느냐, 그냥 개인의 투정으로 흘러가느냐가 결정되잖아요. 면담 상대가 어떤 감수성을 가졌는지, 어떤 리더십을 가졌는지에 따라서도 조직 소통방법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죠. 솔직히 이건 조직한테도 손해같거든요. 시민단체는 규모가 조금이나마 커지면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작은 단위인 팀 소통으로 전환하는데, 운영진들이 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주황 | 의식은 같이 갖고 있지만 문제 제기에 동참하지 않는 동료들의 경우, 그 문제 제기 자체를 두려워하거나 부담스러워하지는 않나요? 어쨌든 조직에 맞서는 거니까. 🍎빨강 | 그런 것도 조금 있어요. 우리는 운영진이 되게 권위적이고 몰아치는 타입이기도 해서요. 그런 자리가 사실상 너무 부담스럽고 어려운 동료들도 많은 거죠. 사실 운영진, 리더들한테 면담 요청 오면 개인 활동가들은 당연히 너무 부담되죠. 특히 연차가 적을수록 더더욱.이번에 퇴사하시는 분들이 사실 제일 많이 총대를 메고 제일 많이 얘기했던 사람이거든요. 끝내 퇴사하시는 걸 보고 ‘내가 너무 안일했구나’라는 반성이 저뿐만 아니라 동료들 사이에서 생겨나고 있어요. 그리고 다른 팀에서 문제 제기를 할 때 쉽게 개입하지 못하는 지점이 있기도 하죠. 워낙 따로 움직여서. 이게 늘 개개인의 문제로 연결되는 지점이 있는데 그런 점에서 연대가 어려운 것 같아요. 🍊주황 | 반박할 수 있는 데이터들을 계속 쌓으면서 이 문제들에 대한 논의가 계속 조직 내에 살아있게끔 해야 할 것 같아요. ‘우리 그때도 이랬지’ 하면서 사라진 문제가 되지 않고 해결을 위한 노력이 기억되게 하는. 우리도 오랫동안 혼자 싸우다가 퇴사하신 분처럼 되면 안 되잖아요. 이제 또 하나의 선례가 쌓여버렸으니까 ‘우리 이 꼴 나기 전에 한번 제대로 다시 해보자’ 라는 생각으로 여러 방법을 강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노랑 | 시민단체들은 대부분 주적 같은 존재, 뭐 사람이든 권력이든 제도든, 그런 상대가 있잖아요. 그것과의 싸움에 몰입하다 보면은 내부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아니 자잘하지 않지만 그렇게 생각되기 쉬운 투쟁들이 엄청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나의 외침이 조직의 외부활동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하고 혼자 자기검열하는 게 커지기도 하고요. 대부분 이 조직의 활동에 지지해서 들어오는 활동가들이 많으니까. 그런 생각들이 계속 우리를 옥죄지 않나 생각해요. 🤐지금의 노동, 괜찮으신가요? 🥦초록 | 이 단체는 개인 활동가들이 느끼고 있는 책임감이 너무 높아요. 동료들의 평균치가 높으니까 내가 거기에 다다르지 못하면 안 된다는 감각들이 막 생기거든요. 밤, 주말에 일하는 거 너무 기본이고요, 주중 근무시간이 명확하지 않아서 그냥 막 아무때나 업무 메신저가 울려요. 그거에 대해 무시하는 사람이 없기도 하고요. 언제 올려도 바로 소통이 되죠.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조직 분위기가 살짝 있는 것 같아요. 🍋노랑 | 사실 조직이 막 개인의 책임감을 강요하지 않는 건 맞아요. 그런데 또 활동가가 눈치 받지 않고 오롯이 자기만의 선택으로 과로를 하냐? 그건 당연히! 아니거든요. 가끔 운영진이 반복되는 과로를 개인의 몫으로 말하곤 하는데, 그걸 멈추게 하는 것도 조직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방관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내는 것도 책임이죠. 제가 일하는 곳이 그래도 꽤 오래된 조직이거든요. 그런데 ‘빨강’이 말씀하신 것처럼 규정이 정말 많이 없어요. 특히 개인 활동가의 안전한 노동 환경에 대한 건 거의 없어요. 부정적인 사건이 일어나야만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죠. 규정을 만드는 과정 속에 있다보면 사실 이걸 필요로 하는 동료들이 되게 많았구나 느끼게 돼요. 그런데도 한번도 제안된 적이 없었던 거예요. 이유를 여쭤봤는데 놀라운 답들을 주셨어요. ’이 단체를 믿으니까.’ 저 또한 이 단체를 너무나 믿지만요, 지금 정말 위험한 상황인 것 같아요. 이렇게라도 믿지 않으면 버틸 만한 힘이 안 생긴다는 답도 들었는데요. 생각보다 ‘이유가 있겠지’ 하고 넘어가게 되는 경우들이 엄청 많은 것 같더라고요. 저희는 다른 팀과의 소통이 조금 어려운 조직인데요. 개개인에게는 팀 문화가 곧 조직 그 자체로 느껴지게 돼요. 그렇게 조직에서 놓치는 것들이 생기는 거죠. 팀 안에서 괴로운 점이 생기면 풀 곳이 딱히 없거든요. 저는 문제 제기를 했을 때 가장 듣기 싫었던 대답 2개를 다 들었어요. ‘조직을 생각하지 않는, 이기적인 선택이네요.’ '원래 이 판은 그렇게 굴러가요.’ 저는 이 말처럼 시민단체의 문제를 가장 잘 드러내는 말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제가 또 주섬주섬 개인적인 경험을 꺼내요. 그렇게 ‘원래‘처럼 비영리단체가 굴러가다가 누군가 상처를 받은 사례들이요. 분명 이 조직에서도 있었지만 외면해온 사례들이기도 하겠죠. 당신들이 조직을 너무 안전하다고 믿고 이상적으로 생각해서 생각하지 못했던 지점을, 심지어 내 경험까지 끌고 와서 설득해야 하는거죠. 나도 이 조직을 리더들만큼 아껴서 하는 제안이라는 걸 증명하는 행위를 굳이 해야 하는, 저한테는 가장 상처받는 순간들이죠. 🥦초록 | 그냥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 있는 하나의 마을이에요. 진짜 신뢰도 200%의 마을. 그게 부담스럽거나 아니면 보이지 않는 벽을 느낀 사람들은 그냥 하나둘씩 나가는 거죠. 🍊주황 | 그렇게 믿음으로만 가면은 결국 어떤 사건이 터져버리고, 그 후에야 ‘우리가 믿음으로 갔던 게 이렇게나 아무것도 없는 것이었구나를 알게 되면 상처받고 조직이 와해되고 이렇게 가는 길이잖아요. 뭔가 그렇게 되기 전에 뭔가 하는 게 진짜 중요할 것 같긴 하네요. 진짜 개선과제 많을 것 같은 조직인데요. 조직에 일체화되어 있지 않은 동료가 좀 많이 필요해 보이네요. 활동가로서 지속가능성을 생각한다면 정말 과로해선 안 돼요. 하다 죽어요. 진짜요. 근데 “조급해하지 마” 또는 “너 지금 잘하고 있고 당연히 이만큼 하는 게 너무 당연해”라고 말할 수 있는 상급자가 아마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어요. 그러면 스스로라도 그 메타 상급자를 머릿속에 만들어가지고 얘기를 자기한테 해줘야 되거든요. 아니면 친구들끼리 얘기를 하면서 계속 그거를 실제로 안정시키는 작업들이 필요하고. ‘활동가’라는 어떤 사명감 때문에 과로가 부채질 되는 경향이 있단 말이에요. 좋은 중간 관리자를 만나면 이 얘기를 해줄 테지만, 그렇지 않다면 스스로 생각하면서 가야 해요. 이 기준선이 자꾸 높아지는 건 결국 조직 스스로에게도 좋지 않은 일이 될 것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좀 이런 말 통하는 동료를 계속 찾아보는 게 되게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해요. 표준의 기준선을 높이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이게 되네’라는 말, 되게 무서운 말이네요. 개별 활동가가 다 투쟁의 책임을 떠맡으려 하지 말고, 말 좀 통할 만한 동료들을 계속 찾아야 될 것 같아요. 그러면서 진단이 내려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요즘 고민이 무엇인가요? 🍎빨강 | 요즘 상황이 상황인지라... 같이 일을 하면서 “우리 저기로 나아갑시다”여야 되는데 “망하지만 말자”라고 얘기하며 넘어가는 순간이 많아요. 배에 물이 막 들어오는데도, “괜찮아, 손으로 막아! 배 아직 안 가라앉았어!“ 🍋노랑 | 활동가들은 자기자신을 일반적인 노동자라고 감각하지 않는 점도 있는 것 같아요. ‘우린 의미있는 일 하고 있으니까!’ ‘세상을 변화시키는 과정 중 하나니까!’ 이런 사명감으로 과로와 이 이상한 체계들을 용서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시민단체가 겪는 외부 상황도 안 좋은 시기라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주황 | 어떤 조직이 장기적으로 건강하게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 안에서의 변화가 잘 일어나야 해요. 밖으로 변화를 만들어내야 하는 시민단체는 특히나 이 얘기가 늘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안에서 우리도 계속 배우고 생각이 바뀌고, 우리의 문화에 대한 자아성찰이 계속 이루어져야 외부활동에도 좋은 작용이 되며 이어지기 마련인데, 왜 우리는 늘 이에 대한 고민과 토론을 제일 뒷순위에 둘까요. 서로를 믿는다는 이유로 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보는가… 이런 생각들과… 조직의 장기적인 플랜을 생각했을 때 너무 필요하다는 판단이 있으면 일부러 시간을 배정해서 ‘이건 우리 챙기고 갈게요’라고 할 수 있는 판단이라고 보거든요. 그거는 나는 당연히 이 업무 영역에서 포함시켜서 당연히 기본적으로 가져갈 수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뭔가 일의 영역은 판단하기에 따라 되게 다르고 ‘일을 어디까지는 하지 말자’도 사실 우리가 결정 내리기 마련인데 그 결정에서 늘 얘가 뒷전인 지점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리더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이 생기죠. 🍎빨강 | 뭐랄까… 동료를 잃는 거 너무 슬프지 않아요? 나는 함께 마음을 나눈 사람들 떠나는 게 제일 속상해요. 🍊주황 | 이제 앞으로 장기적으로 동료를 안 잃기 위해서 행동해야지요. 그래서 꼭 지속가능성 있는 활동을 하길 바랍니다. 저도 지금 견디는 중이에요. 하지만 저는 그런 것에 좀 능한 것 같습니다. 저는 진짜 잘 쉬는 사람인 것 같아요. 활동가 버튼이라는 거, 끄면 또 꺼지더라고요. 이렇게 ’멈추는 것까지도 내 활동이다‘ 생각해요. 선언이야, 선언. 지금 내가 잘 먹고 잘 쉬는 것도 내 활동의 일환이다. 그래서 안식월 제도 같은 게 진짜 필요한 것 같아요. 일부러 고의적으로라도 활동을 끄도록. 🍎빨강 | 최근에 그런 말을 들었어요. 안식월이 대부분 3년차 이상부터 생기잖아요. 물론 개개별의 휴식의 목적도 있지만, 3년차면은 중간관리자이거나 조직에서 그만큼 중요한 실무 위치에 있는 사람이거든요. 그 사람이 한달동안 부재해도 조직이 굴러갈 수 있는 연습을 하는 목적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노랑 | 너무 중요하네요. 저는 그만큼 연차가 안 쌓였는데도 이미 낸 휴가를 반납해야 했던 날들이 많았는데… 우리 조직 그 연습 너무 필요해요. 🍇보라 | 저는 일하면서 그런 질문을 못 던져봤던 것 같아요. ‘이거 왜 해야 되지?’ 나조차 꺼낼 수 없는 질문이었다는 게 좀 오늘 느꼈던 점이에요. 위에서 내려오면 그냥 했던 거지. ‘이걸 왜 해야 되고 우리가 뭘 위해서 이걸 하고 있지’가 안 잡혀 있기도 하고요. 저는 요즘은 고민했던 게 계약직과 정규직으로 일하는 차이예요. 왜 2년 이상 일하면 정규직 전환을 해줘야 되는지 이런 게 몸으로 납득이 되는 게 있었어요. 🍋노랑 | 조직이 비정규직 다루는, 특히 시민단체가 비정규직 활동가 다루는 태도는 진짜 너무 별로인 것 같아요. 그냥 일손 부족할 때 막 불렀다가 프로젝트 끝나자마자 손절, 이런 느낌이죠. 🍇보라 | 사업 목적에 대한 납득이 없으면 ‘여기서 뭘 배울 수 있지’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지고, 그럼 내가 여기에 계속 있어도 되는가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저는 조직이 명확히 나아갈 길을 제시해 주는 게 너무 필요하다고 느껴요. 내가 어떻게 나아가고 싶은지의 확고함과 조직이 나아가고자 하는 거를 맞춰나가고 싶은데 조직의 방향성이 없으니 이조차 어려워요. 그게 또 있는 것 같아요. 내가 뭔가 기획해서 제안을 역으로 하면 될 것 같긴 한데 그조차 내가 해야 하는 역할인가에 대한 판단이 없어요. 그러니까 일을 벌려도 되는 건지 안 되는 건지 이런 것도 좀 헷갈릴 때가 있어요. 내 의견을 반영해 줄 수 있는 회의 공간이 있으면 얘기를 하겠는데, 역량 발휘하고 싶은 욕구와 나의 위치가 일치하는가에 대해 고민이 들어요. 저는 곧 계약이 만료되고, 조직에 변화를 만들고 싶어도 계약직이라는 신분이 뭔가 도전하기에 좀 어려운 거죠. 🫢우리의 활동이 건강하게 지속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요? 🍊주황 | 조직문화 진단을 의무화했으면 좋겠어요. 이행하지 않으면 패널티를 받는다든지 벌금을 내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실제로는 불가능하겠지만… 성희롱 예방교육을 직장 의무교육에 포함하듯이 조직 문화에 대한 것도 의무교육으로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노랑 | 동료들과 얘기를 많이 해야 되는 것 같아요. 같은 프로젝트를 하고 있더라도 당장 옆에 있는 동료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알기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나랑 같은 고민을 누군가 하고 있다는 걸 알기만 해도 괜히 힘이 나는 경우가 있잖아요. 하나의 투쟁으로, 변화의 움직임으로 이어지지는 않더라도 서로에 대한 돌봄의 감각을 회복할 수 있고요. 그래서 동료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게 당장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네요. 조직에 대한 고민을 하고 그 대안을 찾아 요구하는 것은 저한테 그 다음 단계로 느껴져요. 🍇보라 | 동료와 친구 사이 이런 균형도 되게 어려운 주제인 것 같아요. 동료와 친해질 수 있는가. 어디까지 얘기할 수 있는가. 🍋노랑 | 저한테는 그것도 진짜 최대 고민이었어요. 일에 대한 어려움이 사적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되게 쉽잖아요. 이걸 오픈할 정도의 관계가 되어야 결국 그 모든 이야기를 가능하게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초록 | 저는 교육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사실 완전 필요해요. 내가 이 조직을 위해서 배워야 할 것들이 있는데, 그 역량을 채워줄 수 있는 교육이 또는 기회가 제공 됐으면 하는 게 있어요. 뭔가 나랑 같이 나아지려고 하는구나 하는 느낌도 같이 받고요. 🫐파랑 | 전 노조가 생기면 좋겠어요. 요즘 시민사회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 만날 때마다 물어요. “너네 노조 있어? 어떻게 운영돼?” 아까 ‘동료와 친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저는 동료랑은 친구 안 하거든요. (웃음) 저는 동료는 어디까지나 동료라고 생각을 해요. 일터에서의 어려움을 얘기하는 건 친구가 아닌 동료끼리만 할 수 있는 얘기잖아요. 제가 자주 조직 관련 이야기를 하다보니까 같은 불만이 있는 동료들이 저를 찾아오더라고요. 그렇게 뭔가 미묘한 네트워크 같은 게 생겨요. 이 네트워크를 조금 더 공식적인 기구로 만드는 것을 최대 목표로 가지고 있어요. 일단은 노조 관련 스터디부터 시작을 할까 해요. 동료들과 노동에 대해서 같이 비슷한 감각을 깨우는 게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저희 단체는 뭔가 끈끈함이 있는 조직은 아니라서 결국 모든 것이 자기 선택으로 치부되거든요. 그게 사실은 다 조직의 고도의 전략으로 짜여있는 느낌이 좀 들어가지고요. 한 활동가가 혼자 인사팀을 만나러 가거나 조직에 무언가를 얘기하거나 할 때 외롭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게 일단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형식적으로라도 그리고 최소한이라도 그런 면담에 같이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던가… 그런 점이 체계화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주황 | 현재 사측과 투쟁 중인 00단체도 노조가 만들어지기 전에 한 달 전부터 교육을 공부했대요. 자꾸 이런 조직 이야기가 후순위로 밀리고 그러다 보니까 바깥에서 답을 찾으려고 하는 노력들이 계속되는 것 같기도 하네요. 오늘 집담회 같은 시도들이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디자인할 사람 필요하면 디자이너 채용하고 개발할 사람 필요하면 개발자 채용하는 것처럼, 사실상 시민단체에도 HR 전문가가 좀 더 많이 자리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활동가들은 대부분 ‘내가 당장 필요하니까 내가 해당 역량 쌓아서 해결한다‘ 이렇게 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해서여요. 그리고 그런 전문가들이 있으려면 자본이 필요한데 그것도 어렵기도 하고… 하여튼 이런 노동 환경이 좀 당연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 글에서는 볼 수 없는 기획의도와 기록 전문 한 눈에 확인하기👀
노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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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때문에 나를 자른다고요?" 다가올 ‘AI 기술실업’에 맞서 지켜야 할 것은?
‘AI 기술실업’에 맞서 지켜야 할 것   고아침1) AI윤리레터2) 필진, AI 연구자   AI발 기술실업의 본격화 지난해 말 KB국민은행이 콜센터 협력업체를 줄이면서 상담사 240여 명이 해고 위기에 몰렸다.3) 인공지능(AI) 상담이 늘고 콜센터 콜수가 줄었다는 이유다. AI 시스템 도입에 따른 기술실업의 전개 방식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골자는 이렇다. 1) 기존 상담사 업무를 (일부) 자동화하는 AI 시스템을 도입한다. AI 시스템 위주로 사용자 경험을 설계하고 상담원 연결은 어렵게끔 한다. 2) 콜 수가 줄어들었으므로 상담사 인력을 감축한다. 향후 AI 자동화가 예상되는 분야일수록 인력 충원을 삼간다. 3) 상담사의 상담 기록을 언어 데이터 삼아 AI 시스템을 개선한다. 상담사의 데이터 제공은 평가와 연동하여 거부하기 어렵게 한다.   AI 자동화를 매개로 하는 불안정노동 확산 속에서 노동자는 이중의 불이익을 당한다. 우선 자동화 도입의 영향으로 일자리를 잃거나 노동이 불안정해진다. 위 사례에서 상담사들은 노동조합과 여론의 압박 덕에 고용승계가 되었지만, 급여 조건이나 근무환경이 악화하였다.4) 한편, AI 시스템 구축에 활용되는 데이터를 노동자가 제공함에도 불구하고 그 수혜를 입는 것은 노동자가 아니라 시스템을 도입한 고용주다. AI 시스템 오작동의 불편이 소비자 및 노동자에게 전가되는 것은 덤이다.   생성형 AI 기술의 부상과 자동화 도입의 유행 속에서 기술실업도 잦아지고 있다. 언어 학습 서비스 듀오링고는 생성형 AI 도입을 추진하는 가운데 올해 초 계약직 직원 약 10%를 해고했다.5) 드롭박스, IBM, 구글 등 테크업체들이 경쟁하듯 AI 도입을 명목으로 대량 해고를 감행하는 가운데, AI 기술을 만드는 노동 또한 위태로운 것은 마찬가지다.6) 구글의 모기업인 알파벳은 호주 데이터 라벨링 업체 에펜에 ‘전략적 검토’를 이유로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7) 수천 명의 하청 근로자가 영향을 받으리라는 것이 알파벳 노동조합의 의견이다.   AI의 일자리 대체는 필연적인가? 인간에 준하거나 인간을 능가하는 AI가 등장하여 인간 노동을 대체하는 것이 기정사실인 듯한 분위기 속에서 기술실업 소식은 더욱 자주 들려올 것이다. 기술실업은 정말로 어쩔 수 없는 흐름일까? 여기에는 AI 기술 발전에 대한 상당한 낙관론, 기술이 등장한 이상 노동력 대체는 불가피하다는 기술결정론적 가정이 함께 작용하고 있다. 두 가정 모두 비판적 거리를 두고 바라볼 필요가 있다.   2022년 한 승객은 에어캐나다 웹사이트에 적용된 챗봇에 할인 규정을 문의했다가 챗봇이 지어낸 잘못된 규정을 안내받아, 예정에 없던 비싼 비행깃삯을 냈다. 그는 민사 소송을 냈고, 항공사는 보상 명령을 받았다. 8) 생성형 AI에 기반한 자동화는 언제나 오류의 가능성을 가지며, 언제 어디서 오류가 나타날지 예측하기도 어렵다. 불확실한 기술을 믿고 기존 인력을 대체하는 것은 현명한 판단일까. 에어캐나다는 결국 해당 챗봇을 웹사이트에서 제거했다. 위와 같은 오류는 생성형 AI 기술이 절대적 정확성보다는 통계적인 그럴싸함을 추구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이른바 ‘환각 hallucination’ 현상이다. 기술 발전을 낙관하는 이들은 ‘앞으로 AI 환각 문제가 해결되면···’으로 시작하는 문장을 곧잘 구사하지만, 현재 기술 패러다임에서 그 문제가 반드시 해결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데이터를 학습해 인간이 쓴 것 같은 글을 생성하거나 복잡한 자료 속에서 패턴을 찾아내는 AI 기술을 과소평가할 필요는 없지만, ‘자동화’의 복음은 언제나 얼마간의 과장광고와 함께 찾아온다. 식당 키오스크나 소셜미디어 필터링 알고리즘처럼, 겉보기에 그럴싸한 자동화 기술이 실제로는 뒤에서 인간 노동의 보조를 받아야만 작동하는 ‘가짜 자동화’는 기술의 역사에서 곧잘 찾아볼 수 있다.9) 기술적 성취를 과대포장하고 인간의 노동을 비가시화하는 경향은 노동자의 지위를 약화하고 자본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일종의 이데올로기로 기능한다.   현재의 AI 기술에서 ‘가짜 자동화’는 어떤 형태를 띨까? 우선 AI 모델을 학습시키는 데 필요한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라벨링하고, 모델 성능을 향상하기 위해 출력 데이터를 필터링하는 수많은 ‘유령 노동자’가 있다.10) 알파벳이 계약 해지한 에펜의 근로자도 여기에 해당하며, 이러한 노동은 남반구의 저임금 노동 인력에 의해 수행되곤 한다. AI 모델은 학습 시점의 데이터에 고정되기 때문에 최근 자료를 반영하려면 데이터 노동을 지속해서 필요로 한다. 더구나 요즘의 거대 생성 모델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의 컴퓨터 자원과 전력을 소모한다. 모델을 구축하는 데도, 모델을 사용하는 데도 막대한 에너지가 쓰이고 모델을 구동하는 데이터 센터가 소모하는 냉각수의 양도 만만치 않아, 생태적 영향 또한 요주의 대상이다. 11) 기술적 진전이 현재의 속도를 언제까지나 유지하리라 섣불리 확신하기 어려운 이유다.   소수만 이득 보는 기술실업, 그에 맞서는 새로운 흐름 AI 기술이 순탄히 발전하여 인간을 대체할 정도의 능력을 갖추더라도, 그 기술을 적용하는 과정은 여러 사회적 관계 속에서 점진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기술실업 또한 저절로 발생하는 불가피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이 취하는 구체적 행동에 달려 있다. 그러면 우리는 누구를 위해 기술을 도입할 것인가? 모두의 상생과 공영을 위하는 쪽인가, 아니면 노동자의 몫을 없애 기업의 이익을 늘리는 쪽인가? 안타깝게도 현재 보이는 양상은 후자에 가깝다. 하지만 노동자에 적대적인 방향으로 AI 기술이 적용되는 현재의 흐름에 대항하는 움직임 또한 등장하고 있다. 소수 카르텔에게 이권을 가져다주고 다수에게 손해를 끼치는 기술에 저항하는, 일종의 신-러다이트 운동이다. 2023년 미국 작가조합(WGA)과 배우조합(SAGAFTRA)이 각각 진행한 파업은 애초 처우 개선을 두고 시작했으나, 갈수록 생성형 AI 기술이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되었다.12) 파업에 참여한 이들은 작가들의 대본이나 배우들의 움직임 등 노동의 결과물이 AI 학습 자료로 쓰이거나, 인간이 창작을 주도하는 대신 AI로 생성한 초안을 수정하는 보조적 역할로 밀려나는 처우 악화를 경계했다. 긴 파업 끝에 각 조합은 합의안을 통해 AI 기술 활용 시 준수해야 할 규범을 이끌어냈다. 작가조합의 합의안에는 AI 생성물에 크레딧을 부여하지 않고, 제작사가 작가에게 AI 사용을 강요할 수 없으며, 대본 등을 AI 학습 데이터로 사용할 수 없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3) 배우조합의 경우에는 AI 활용시 명시적 동의 및 알 권리 보장, 고용 축소를 목적으로 하는 AI 활용 금지, 기술 이슈에 관한 정기적 논의에 배우가 참여하는 등의 합의안을 도출했다.4)   프리랜서 노동자인 작가와 배우들이 AI를 매개로 노동권을 약화하고자 한 제작자연합을 상대로 벌인 투쟁은, 인간 노동자와 AI 사이의첫 본격적인 싸움이었던 셈이다. 이를 통해 도출된 구체적인 활용 방식에 관한 합의도 인상적이지만, AI를 업무에 활용하는 데 있어 노동자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는 원칙을 남긴 중요한 선례이기도 하다. 그뿐만 아니라 생성 AI 기업을 상대로 창작자들이 집단 소송을 제기하는 등 AI의 노동 위협에 대한 저항은 폭넓게 퍼져가는 모양새다. AI 도입이 단지 노동자를 희생양 삼아 비용 절감을 추구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면, 저항의 전선 또한 맹렬히 확대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술 도입이 노동자의 권익을 약화하지 않도록 상생을 실천할 것, 그리고 도입 과정의 논의와 의사결정에 노동자가 참여할 것. 앞으로 마주할 ‘기술실업’의 전망 앞에서 우리 사회가 힘써 지켜야 할 사항들이다.   1) https://scalarvectortensor.net 2) https://ai-ethics.stibee.com 3) 주영재, 「업무만 가르치고 빠져라? AI발 해고 ‘올 것이 왔다’」, 『경향신문』, 2024. 1. 7.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401070900021. 4) 김온새봄, 「국민은행 콜센터노동자들 “AI로 업무강도 높아져···고용불안도 여전”」, 『참여와혁신』, 2024. 2. 14. https://www.laborpl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288 5) 김서현, 「편의로 소환한 AI에 자리 뺏긴 사람들」, 『메트로신문』, 2024. 1. 15. https://www.metroseoul.co.kr/article/20240115500614. 6) Lakshmi Varanasi, "Big Tech jobs are on the line after Google, IBM, and Dropbox say they're leaning into AI", Business Insider, 2023. 5. 6. https://www.businessinsider.com/dropbox-ibm-google-big-tech-companiesai-in-layoff-memos-2023-5 7) 조재용, 「"챗봇 할인 안내, 항공사 책임" 결정에…에어캐나다, 차액 보상」, 『연합뉴스』, 2024. 2. 16. https://www.yna.co.kr/view/AKR20240216053600009. 8) Astra Taylor, "The Automation Charade", Logic(s) 5, 2018. 8. 1. https://logicmag.io/failure/the-automation-charade/ 9) 이송희일, 「[이송희일의 견문발검] 챗GPT와 디지털 식민지」, 『미디어오늘』, 2023. 2.26. https://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8715. 10) 곽노필, 「대화 한 번에 ‘생수 한 병씩’…챗GPT의 불편한 진실」, 『한겨레』, 2023. 5. 3. https://www.hani.co.kr/arti/science/technology/1090180.html. 11) 곽노필, 「대화 한 번에 ‘생수 한 병씩’…챗GPT의 불편한 진실」, 『한겨레』, 2023. 5. 3. https://www.hani.co.kr/arti/science/technology/1090180.html. 12) 박재령, 「끝맺은 할리우드 파업이 우리에게 남긴 것」, 『미디어오늘』, 2023. 11. 16. https://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3842.
노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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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대신 잡은 피켓, 아나운서의 투쟁기록
  이산하 ubc울산방송 아나운서   2020년 11월 30일, 모든 악몽이 시작됐다. ‘혹시 결혼 계획은 있나?’, ‘(뉴스를 같이 진행하던) 기자 선배가 내려왔으니 같이 내려와야 그림이 좋다’, ‘뉴스를 안 하면 생활이 힘들지 않겠어?’ 이런 것들은 해고 사유가 될 수 없다.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5년 넘게 진심을 다해 일했던 회사를 떠나야 했던 이유조차 모른다. ‘해고’에 대한 나의 대답은 “왜요?”, 예스맨이었던 내가 회사에 처음 제기한 반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본격적인 팀장의 괴롭힘이 시작됐다. ‘프리랜서에게 업무지시를 않겠다’, ‘누가 이산하 씨랑 친하냐’, ‘나는 말을 섞지 않겠다’, ‘품질이 떨어진다’라는 말도 들었다. 5년여간 매주 해왔던 취재 업무를 시키지 않았고, 동료 아나운서의 휴가로 인한 대타, 코로나 확진자 정보 등 업무 변경사항을 말해주지 않았다. 홈페이지 내 아나운서 소개란에서 삭제하고, 주말당직을 배제하려고도 했다. 이런 팀장의 괴롭힘을 호소했지만, 돌아온 건 또 다른 괴롭힘과 해고였다. 상무는 ‘딸 같아서 그렇다’고 퇴사를 종용했고, 재평가를 하겠다며 뜬금없이 ‘오독 개수를 세겠다’고 했다. 누군가는 정수기에서 물을 뜨고 있던 나를 치고 가기도 했고, 엘리베이터를 타지 말고 걸어 다니라고도 했다. 결국 개편을 이유로, 2021년 4월 2일 해고를 당했다. 그리고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해고통지서는 당연히 받지 못했다.   2021년 11월 15일, 복직 첫 날 ubc울산방송에 2015년 12월 기상캐스터로 입사해, 5년이 넘는 기간 동안 기상캐스터, 뉴스앵커, 취재기자, 라디오dj, 라디오뉴스, 리포터, 영어아나운서, 사내행사 진행, 주말당직 등 거의 모든 방송 업무를 수행했다.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도 나의 근로자성을 인정해 원직복직 명령을 내렸고, 회사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다. 설렘 반, 걱정 반으로 출근해서 가장 먼저 마주한 현실은 소지품 검사였다. 주머니까지 확인했고, 모욕감을 느꼈다. 그리고 ‘노동위 판정은 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네가 직원들과 다르다고 생각한다’는 막말과 함께 ‘4시간짜리’ 복직명령서를 줬다. 회사는 하루 4시간 단시간 근무에 계약기간을 1년으로 정하거나 ‘적격성이 부족하면 계약해지’ 등 독소조항이 담긴 차별계약서를 제시했다. 또 내가 가진 능력이나 회사가 갖는 기대치를 봤을 때 “최저 시급만 안 주면 된다”고 했고, 지금까지도 회사에서 일방적으로 책정한 임금을 지급받고 있다. 처음 통장에 찍힌 금액이 140여만 원이었다. 압박하려고 했는지는 몰라도 실제로 나랑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상무실로 불려가기도 했다.   9년째 작성하지 않은 근로계약서 2022년 12월, 행정법원으로부터 부당해고 확정판결을 받고도 제대로 된 근로계약조차 맺지 못한 채 여전히 끔찍한 고통 속에 살고 있다. 오히려 괴롭힘과 고립은 점점 더 심해지는 상황이다. 회사는 지난해 9월, 라디오뉴스를 폐지했고, 12월에는 하나 남았던 날씨 방송마저도 폐지했다. 그리고 1월 5일, 거듭 거부의사를 밝혔지만 이전 업무와는 무관한 편집요원으로 일방적인 부당인사발령을 냈다. 여전히 6시간 단시간 근무일뿐만 아니라, 휴게시간은 30분이라 다른 직원들과의 식사시간도 주어지지 않는다. 3년 전, 해고를 당할 때와 마찬가지로 내가 방송을 하지 못하는 명확한 이유조차 듣지 못했다. 무늬만 프리랜서일 때는 정규직처럼 온갖 방송 업무를 다 시키더니 근로자로 인정받은 지금 오히려 ‘회사에 너의 자리는 없다’고만 말한다. ‘자질이 없다’, ‘다른 사람들이 너랑 일하기 싫어한다’ 등의 말로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그리고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노동부에 진정을 넣으라’는 뻔뻔한 태도와 ‘편집교육을 받지 않으면, 인사위원회를 열어 또 해고할 수 있다’는 보복성 갑질은 나를 거리에서 1인 시위하도록 내몰았다.   2024년 1월 15일, 회사 앞에서 시작된 1인 시위 회사의 과오를 밖으로 드러내는 일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노동자를 부당하게 해고한 상황을 되돌리고 명확한 계약서를 쓰라’는 법적취지를 거스르고 시대에 역행하는 곳, 이 모든 일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 방송국이었다. 하지만 방송국은 ‘정의를 말하는 곳’이고, 나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기 때문에 용기를 냈다. 방송 노동자들이 근로자성을 인정받자 방송국은 온갖 꼼수를 부리고 있다. 프로그램별로 진행자를 뽑거나 1년 계약직, 운이 좋으면 2년 계약직이 될 수도 있다. 나 역시도 법원에서 근로자성을 인정받았지만, 회사는 ‘말려 죽이기’ 작전을 벌이고 있다. 3년 전 나를 괴롭혔던 팀장은 여전히 팀장 자리에 앉아 있고,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하지만 무뎌지지는 않는다. 부당한 상황에 문제를 제기했더니, 나는 아무 곳에도 속할 수 없는 이방인이 되었다. 정규직도 무기 계약직도 아닌 ‘애매한 신분’이라며 노조가입도 거절당했고, 비정규직 동료들은 내가 올린 SNS 게시물에 좋아요조차 누르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영하 10도의 추위에도, 비바람이 몰아쳐도 왜 내가 거리에 나설 수밖에 없었는지 그 진실은 외면당한 채, ‘돈이 목적일 것이다’, ‘언론플레이다’ 프레임이 씌워진 채 나는 오늘도 버티고 있다. 온전한 노동자성을 인정받고 차별 없이 일할 수 있을 때까지 끝까지 싸울 것이다. 진실은 승리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하는 곳은 진실을 말해야 하는 방송국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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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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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형 최저임금제? 청년들 떠나는데 정신 못차린 강원도
들어는 보았나, 강원도형 최저임금제 누군가 저에게 최근 가장 어이없던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고개를 들어 강원연구원을 보라고 할 것입니다. 지난 1월, 강원연구원에서 공개한 정책 자료에 ‘강원도형 최저임금제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여기서 ‘강원도형 최저임금제’는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결정하는 것보다 더 낮은 수준의 임금을 말합니다.   ‘만약 강원특별자치도(이하, 강원도)에 최저임금 지역별 차등제를 도입할 경우, 지역별 경제 상황에 맞춘 최적의 최저임금을 결정할 수 있다. 즉, 다른 지역 대비 낮은 최저임금 설정을 통해 기업들이 강원도 내로 이동할 유인이 발생하고, 이는 지역 내 인구 유입과 지역발전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 강원연구원 정책자료 '정책톡톡' 2024-01  ‘기업천국’을 꿈꾸는 강원의 싱크탱크 해당 자료는 강원연구원 소속 양은모 연구원이 지난 2023년 9월 ‘기업천국 세미나’에서 발제한 내용을 옮긴 것이었습니다. 기업에게 천국같은 강원특별자치도를 만들기 위해 주기적으로 개최하는 세미나에서는 최저임금 뿐 아니라 전기요금, 상속세와 관련한 발제도 진행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최저임금 낮추면 기업 온다”…‘기업천국 노동지옥’ 강원?(24.01.17)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강원도에서 살아가는 노동자라면, 강원연구원의 정책자료를 꼼꼼히 읽지는 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호기심에 읽어봐야겠다면 주의하실 점이 있습니다. 읽는 동안 소화가 잘 되지 않을 수 있으며, 화가 치밀어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길 위험이 있습니다. 심약자는 주의를 요합니다.🥲 <정책 자료 일부 요약> ‘최저임금의 무조건적이고 급격한 인상은 고용주의 고용 부담을 증가시켜 근로자들이 일할 기회를 상실하는 고용 참사를 야기’ ‘단순히 법정 최저임금을 인상하는 대신 급격한 인상의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는 대안에 대해 논의가 증가’ ‘최저임금의 급격한 상승률’과 ‘최저임금 미만율’ 때문에.. ‘높은 수준’의 최저임금 감당이 어려운 기업들을 보호하기 위해 최저임금 차등 적용 논의가 필요 ‘최저임금 지역별 차등제 도입으로 법정 최저임금 적용이 어려운 기업들뿐만 아니라,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월평균 임금이 오히려 감소하는 근로자들 보호 가능’ 위의 내용에 대해 조사해봤습니다.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인상되었다고 설명했지만 실제 최저임금 인상률은 ‘급격’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가장 큰 폭으로 인상된 2018년에 비해 최근에는 그래프의 변화가 확연히 적죠. 2017년 대선에서 여러 후보가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내걸었던 일이 무색할 만큼 7년이 지난 지금까지 최저임금이 1만원을 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물가는 많은 사람이 체감하는 것처럼 꾸준히 증가했는데도 말이죠. 생활을 영위하는 데 드는 지출이 커지는 데 비해 수입이 늘지 않으면 전체적으로 삶의 질이 낮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수준 높은 정책이 필요해😮‍💨 강원연구원의 정책자료가 공개된 직후 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에서는 이를 비판하는 성명을 냈습니다. 1월 8일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강원자치도는 저임금, 소규모 사업장 등 열악한 일자리가 많아 노동 인구의 유출이 심각한 상황”이라며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김진태 강원도지사를 향해 “헛소리에 현혹될 시간에 강원도의 노동자들이 더 안전하고, 더 안정적인 일자리에서 수준 높은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제도와 정책을 내놓길 바란다”라고 의견을 전했습니다. 계절처럼 돌아오는 논쟁 아예 우리 지역 임금을 깎자는 제안이 파격적이긴 하지만, 사실 잊을만하면 돌아오는 것이 바로 최저임금 논쟁입니다. 지역별/업종별 최저임금 차등제는 지난 2023년 6월, 국회에 관련 법안이 발의되면서 이슈가 되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도 노동계에서는 즉각 대응하며 우려를 표했고요. 최저임금을 지자체 별로 결정하게 하자는 의견도 이전부터 있었지만, 현실에 적용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최저임금을 설정하기 위해 참고할 통계와 연구 자료부터 마땅치 않기 때문이죠. 그래서 노동계 일부에서는 경영계에서 자꾸 최저임금 차등제를 언급하는 것이 정말 차등제도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최저임금을 설정하는 과정에서 이점을 얻기 위한 전략적 행동이라고 판단하기도 합니다. 나는 그냥 너의 말이 웃긴다🙂 제 주변의 강원도 거주 청년들에게 강원연구원의 연구 결과를 들려주자 그들은 실소부터 터뜨렸습니다. “그럼 강원도 왜 살아, 다른 데로 가란 거네.” 라고 말하면서 말이죠. 안그래도 강원지역은 유입인구보다 유출인구가 많고 특히 청년층이 많이 빠져나가며 지역 소멸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만, 지역의 중장기 발전 정책에서 청년층 유입을 위한 유의미한 노력은 찾기 힘듭니다. 최저임금이 여러 경제, 사회 분야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지만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건 최저시급이 곧 최고시급인 일자리에서 경험을 쌓고 생계비를 벌어야 하는 청년세대일지 모릅니다. 지역 발전과 인구 유입을 필요로 하면서 청년들의 밥줄과도 같은 최저임금을 쉽게 도마 위에 올리는 것은 청년 세대의 눈에 어떻게 비칠까요? 👀청년세대가 강원도를 떠나는 이유 누가 남겠는가 강원연구원의 자료에서는 다른 나라들도 지역별 차등 임금제를 실시하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외국 여러 국가들이 시행하고 있는 지역별 차등 임금제는 최저임금 기준보다 더 높은 임금을 설정하도록 합니다. 안정적인 수익을 원하는 노동자의 유입을 유도하고, 오랫동안 일하며 숙련된 노동자들의 기술을 기반으로 산업과 지역 발전을 도모하기 위함이죠. 다른 지역보다 지역민의 임금을 깎아서 기업을 유치하려는 목적으로 시행하지는 않습니다. 정책 자료에 적힌 ‘발생가능한 문제들에 대해 대책 마련 필요’ 라는 문구는 공허할 뿐입니다. 인구 유출과 지역 낙인효과에 대해 강원연구원은 모르지 않습니다.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책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면서도 기업을 위해 더 낮은 최저임금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강원연구원은 강원도민의 생활수준과 기업 유치 중 무엇을 우선과제로 생각하고 있는 걸까요?  경영계가 “소상공인의 인건비 부담”을 이유로 차등화를 요구하는 것은 한국적 본말전도 현상이다. 기업이 살기 위해서 사람이 삶의 일부를 포기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최저임금은 모든 기업이 지급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는 최저치이다. 청년 구직자 희망 꺾는 '최저임금 차등적용(23.06.15) 강원연구원은 기관의 설립 목적을 ‘지역단위의 정책개발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지역경제·사회발전에 기여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합니다. 정말 그렇다면 ‘기업천국세미나’ 뿐 아니라 ‘도민천국세미나’ 같은 행사도 주기적으로 개최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공공기관으로서 소임을 다 하기 위해서는 지역의 현실을 직시하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면서 장기적인 관점으로 지역발전을 고민하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끝내 지역에 누가 남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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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 마봉춘씨, 전화 한통으로 10년 인연을 정리하자고요?
[6411의 목소리] 마봉춘씨, 전화 한통으로 10년 인연을 정리하자고요?  (2022-06-01) 리리(필명) | 방송작가 방송작가유니온 조합원들이 2017년 11월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한 카페에서 작가도 노동자임을 강조하는 큐시트를 들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당신을 만나러 가던 어느 봄밤, 터널을 빠져나오던 내 차가 빗길에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어요. 죽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에 눈을 질끈 감았고, 사방에서 터진 에어백이 가차 없이 내 몸을 강타했죠. 4차선 도로 양쪽 가드레일을 여러차례 들이받던 그때, ‘방송사 보도국 작가로 매일 여러 사건·사고를 접하던 내가 오늘은 직접 뉴스에 나올 수도 있겠구나’ 하는 슬픈 생각이 들었어요. 연거푸 부딪혀 소생 불가한 차에 의미 없이 시동을 걸면서도 머릿속엔 온통 당신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어요. 광고 사고를 목격한 다른 차량 운전자가 내게 다가오고, 다음엔 경찰이, 그다음엔 소방관이 다가왔어요. ‘당장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말에 나는 마봉춘씨, 당신이 기다리고 있다고 그럴 수 없다고 했어요. 그 전 여름 정규직도 아닌데 휴가를 간다니까 ‘네가 없어도 회사가 잘 돌아가면 어떡하냐’고, ‘네가 돌아왔을 때 책상이 없어졌으면 어떡하냐’고 되묻던 당신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기 때문이에요. 새벽 방송을 하면서부터 나는 매 순간 요일과 시간을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어요. 화장실에 다녀올 수 있는 5분을 포기하면 단신 기사 하나 정도는 충분히 쓸 수 있고, 1분이면 원고를 들고 100m쯤 떨어진 스튜디오까지 뛰어갈 수 있는 시간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죠. 광고 광고 일주일 가운데 일요일 하루만큼은 알람을 꺼놓고 잘 수 있지만, ‘혹시라도 요일을 착각해 당신에게 가지 않는다면?’ 하는 상상은 너무나 두려웠어요. 언젠가 일요일을 월요일로 착각하고 당신에게 달려간 적이 있어요. 새벽에도 늘 깨어 있는 보도국에 아무도 없어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일요일임을 확인하자 난 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어요. 그런데 마봉춘씨, 그거 알아요? 바보 같은 그런 행동은 나만 한 게 아니더라고요. 나와 한 팀이었던 ㄱ씨는 쉬는 날인지도 모르고 새벽 3시에 자다 말고 택시를 탔고, 리포터 ㅈ씨는 대낮에 새벽인 줄 알고 집 밖으로 뛰쳐나갔대요. 나도, 그들도 마봉춘씨와의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었어요. 가끔은 제시간에 기사를 송고하지 못하는 악몽을 꿔 괴롭기도 했어요. 그렇게 나의 30대 전부를 마봉춘씨 당신과 함께했어요. ‘정규직보다 더 정규직 같다’는 당신의 뼈 있는 농담에 웃어넘길 줄 아는 여유가 생겼고, 성과금은 없어도 시청률이 조금이라도 오르면 나의 노력이 보상받은 것 같아서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해했죠. 그사이 수많은 동료가 마봉춘씨를 떠나갔어요. 누군가는 계약이 끝나서, 누군가는 개편으로 자리가 없어져서, 때때로 시청률 부진을 이유로 일방적인 해고 통보를 받는 경우도 있었죠. 그때마다 마봉춘씨는 참 냉정했고 떠나는 사람은 담담했어요. 5년이나 일했지만 일주일 전에야 해고를 통보받고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리포터를 지켜보며, 난 처음으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어요. 언젠가 해맑게 웃으며 그녀를 부탁하던 그녀의 어머니가 떠올랐거든요. 광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이번엔 내 차례가 됐어요. 수화기 너머로 당신은 말했죠. “네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사람과 함께하고 싶어.” 생각지 못한 상황에 난 그저 당신의 말을 듣기만 할 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어요. 선심 쓰듯 ‘한달이나 유예기간을 줬으니 할 만큼 한 것’이라는 말, 10년 동안 쌓아온 인연이 끝나는 순간치고는 너무나 허탈했어요. 우리의 마지막 날, 마봉춘씨 당신은 내게 기념사진을 찍고 헤어지자고 했지만 차마 나는 그럴 기분이 아니었어요. 우리가 헤어진 지 벌써 2년이 지났네요. 난 여전히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고, 당신이 돌아오라고 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어요. 지울 수 없는 상처가 여전히 날 아프게 하지만, 우리에게 좋았던 날도 난 기억하고 있거든요. 지금도 늦지 않았어요. 마봉춘씨, 사람들은 당신을 ‘만나면 좋은 친구’라고 하던데, 이제는 내게도 좋은 친구가 돼줄 순 없나요? *필자는 입사 10년차인 2020년 여름 <문화방송>(MBC) 쪽의 일방적인 해고 통보를 받고 부당함을 호소하다가 이듬해 3월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노동자 지위를 인정받았습니다. 방송사 작가로서는 처음이었습니다. 하지만 문화방송은 중노위 결정을 따르지 않고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오는 7월14일 1심 판결을 앞두고 있습니다.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http://hcroh.org/support/ '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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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 세탁·수선도 최선을 다하니 알아주는 이들이
[6411의 목소리] 세탁·수선도 최선을 다하니 알아주는 이들이  (2023-12-25) 이정숙 | 세탁소 운영 드라이클리닝 한 바지를 스팀다리미로 다리고 있는 필자. 필자 제공 17살부터 일을 시작했으니 벌써 50년이 되었네요. 충남 보령시 대천에서 6남매 중 첫째로 태어나, 이모가 계신 전북 군산에서 중학교에 다니기 위해 혼자서 고향을 떠났어요. 야간 중학교에 입학해 낮에는 양재학원에 다녔는데, 3개월쯤 뒤 이종사촌 오빠가 일류 재단사로 일하던 군산에서 가장 큰 의상실에 취직했어요. 미싱사 선생님 밑에서 단을 꿰매고 끝마무리하는 하급 일부터 시작해 주머니와 옷깃에 싱(빳빳하게 만들기 위해 넣는 재료)을 붙이는 중급 일을 거쳐 모든 재료를 준비해서 미싱사를 돕는 상급 일까지, 4년 동안 일 배우고 중학교를 졸업했어요. 그 뒤 몸이 아파 일 그만두고 고향집에서 3개월 정도 요양하고 겨우 나았습니다. 광고 배운 게 의상 일이라, 다시 이종사촌 오빠가 군산에 차린 의상실에서 일하며 재단까지 배웠어요. 장사가 되지 않아 의상실이 문을 닫게 되자, 고모가 계신 서울로 올라와 다닐 만한 양장점을 물색했어요. 처음 다닌 양장점은 일이 너무 많아 의자에서 엉덩이를 뗄 새도 없었어요. 다시 병이 생겨 잠시 쉬다가 다른 양장점을 다녔는데, 재단만 할 줄 아는 주인 밑에 일하는 사람은 나뿐이라 여기서도 거의 모든 일을 해야 했지요. 그렇게 여러 의상실을 전전하다가 서울 성북구 삼선동에서 의상실을 열게 됐습니다. 그때가 22~23살 정도 됐을 거예요. 10년 넘게 의상실을 하면서 고향 부모님께 돈도 보내드리고, 동생들도 서울로 데려와 학교에 다니게 하면서 바쁘게 살았습니다. 그러다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느라 의상실을 접었어요. 하지만 몇년 뒤 다시 일을 시작했지요. 아이들 학비와 학원비를 벌어야 했거든요. 그렇게 수선을 겸한 세탁소 일을 시작해 20년 넘게 하고 있네요. 광고 광고 요즘 같은 겨울에는 패딩과 코트, 양복이 가장 많이 들어옵니다. 먼저 오염이 된 부분을 전처리하죠. 오염물질에 따라 각기 다른 약품을 이용해서요. 그 뒤에 물빨래할 것은 고급 세제로 손빨래를, 드라이클리닝 할 것은 클리닝용 기름을 써서 기계에 넣고 세탁해요. 와이셔츠와 바지는 4천원부터, 코트나 패딩, 이불은 1만5천원부터 세탁비가 매겨져요. 성수기는 겨울옷을 정리하는 봄입니다. 비성수기에 하루 5~10벌 들어오던 게 이때는 20벌 정도 들어옵니다. 보통 오전 10시 반 정도 출근해 저녁 8시까지 가게에 있어요. 이렇게 일해서 어느 정도 생활은 가능하지만, 돈을 모으는 건 불가능해요. 하루 벌어 하루 생활하는 거지요. 나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아요. 월세로 전체 수입의 50%가 나가고, 각종 약품, 세제, 옷걸이, 비닐 커버와 같은 재료비가 10~20%예요. 광고 한동네에서 20년 넘게 세탁소를 해왔으니 단골손님이 많지요. 하지만 주택재정비 공사로 이사한 사람이 많고, 코로나에 셀프빨래방까지 생기며 운영이 쉽지 않아요. 정장 대신 편한 옷을 입고 출근하는 이들이 많아져 세탁소에 옷 맡길 일은 더욱 줄어들었지요. 대신 맞벌이 가정은 시간이 없어 세탁소에 옷과 이불을 맡기는 경우는 많더군요. 옷을 맡기고 찾아가지 않은 손님이 많은 게 제일 힘듭니다. 찾아가지 않은 옷으로 세탁소가 가득 차,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길만 겨우 남겨졌을 정도예요. 그런 분들은 유독 선금을 지불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크고, 길에서 만나면 찾으러 오겠다고 말해놓고도 안 오시는 경우도 많습니다. 길게는 7년 만에 찾아간 경우도 있어요. 예전에는 무조건 기다렸는데, 요즘은 도저히 버틸 수 없어 일부는 버리고 쓸 만한 것은 기부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돌이켜 보면 좋은 일도 많았어요. 다른 세탁소에서 빼지 못한 청바지의 페인트 자국을 여러가지 방법을 써서 빼 드렸더니 손님이 무척 기뻐하는데, 아주 뿌듯했어요. 다른 세탁소에선 제거하지 못한 흰옷 얼룩을 빼 드렸더니, 고맙다며 수고비를 더 주고 가시는 분도 있었지요. 좋아하시는 손님을 보니 저도 너무 즐겁고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 손님은 나중에 따님도 저희 세탁소에 옷을 맡기게 하셨어요. 성심성의껏 일하면 알아주시는 손님이 있다는 것이 너무 고마웠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최선을 다하면 인정을 받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정리: 강명효 ‘6411의 목소리’ 편집자문위원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http://hcroh.org/support/ '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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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 글쓰기는 봉사가 아니라 어문 노동입니다​
[6411의 목소리] 글쓰기는 봉사가 아니라 어문 노동입니다 (2024-01-22) 서찬휘 | 만화 칼럼니스트 차 한잔과 만화책, 그리고 군데군데 이 나간 지 오래인 13년 지기 노트북. 일면 평온해 보이는 풍경이지만 사실은 시간 내에 화면에 문장을 밀어넣기 위해 필사적으로 환경을 맞춘 결과물이다. 필자 제공 나는 1998년부터 만화를 중심으로 글을 써온 칼럼니스트다. 한겨레 ‘서찬휘의 만화 숲 산책’, 일요신문 ‘서찬휘의 만화 살롱’, 인천일보 ‘덕질인생’, 국방일보 ‘만화로 문화 읽기’, 여행스케치 ‘만화 속 배경 여행’…. 그간 매체에 연재해온 코너명들이다. 물론 단발성 청탁은 셀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만화를 칼럼이라는 틀로 다루는 몇 안 되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이 있지만, 나를 비롯해 글 쓰는 직업을 둘러싼 환경은 참으로 열악하다. 매체 입장에서 외부 필자는 소모품이다. 지면 구색을 갖추기 위해 기용했다가, 필요할 때 가장 먼저 쳐내는 대상이다. 그래서 나 같은 외부 필자들은 언제고 “여기까지입니다”라는 연락을 받을 수 있다는 체념을 안고 산다. 내가 겪은 사례를 소개하자면, 한 언론에서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시절 “사정이 어려워 상부에서 외부 오피니언 지면 자체를 줄이라 했다”고 들은 게 대표적이다. 코로나19 당시 중소규모 매체들은 외고 분량을 반토막 내거나, 고료를 몇달씩 주지 않기도 했다. 근래에도 한 전문지 담당자에게 밀린 고료를 요구했다가 “아무래도 다른 곳을 알아보셔야겠습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또 다른 전문분야 매체 칼럼니스트 모집에 응했다가, 차를 대접받으며 “우린 작고 사정도 안 좋아 이 정도 경력자분의 고료를 감당할 순 없습니다”라는 고백(?)을 받기도 했다. 광고 이런 상황은 갈수록 외부 필진을 기용하지 않거나, 무임금을 감내할 이들만 쓰는 쪽으로 몰고 가고 있다. 출판사와 연계를 빌미로 글을 모으는 ‘브런치’나 작가 멘토링을 붙여준다는 ‘창작의날씨’도 결국 그런 발상의 연장선에 있는 오픈마켓이다. “당신도 작가가 될 수 있다”는 부류의 표어는 시간을 소비하기 위한 콘텐츠의 원천으로서 갈수록 그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읽을거리들을 고료 한 푼 안 받고 제공하게끔 독려한다. 게다가 누구는 개인출판을 하라고, 누구는 글을 써서 목소리로 읊으라고, 누구는 하드 속에 쟁여둔 글을 전자책으로 내서 투잡하라고 한다. 실제 원고를 검토해 함께해보자던 한 오디오북 업체가 있었는데, 녹음에 후가공까지 다 해주는 만큼 초기 비용인 원고료는 줄 수 없다고 했다. 아예 못 준다는 곳은 그렇다 치고, 주는 곳은 어떨까. 원고료는 내가 활동을 시작했던 26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원고지 장당 1만원 안팎을 벗어나지 못한다. 연감이나 사보 등 극히 일부의 경우가 아니곤, 언론사도 웹진도 모두 외부 원고료는 1만원 안팎이었다. “죄송하지만…”이라며 장당 5천원, 8천원에 원고를 청탁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앞서 언급한 “이 정도 경력자분의 고료”란 게 이렇게나 알량하다. 광고 광고 더 큰 문제는 대부분의 글이 계약서를 쓰지 않은 채 작성된다는 점이다. 무계약 용역이다 보니 표준계약서 체결이 조건인 예술인복지재단 산재보험 지원 대상이 될 수도 없고, 주 52시간 노동제나 최저시급 대상에서도 비켜나 있다. 매체 대부분이 칼럼이든 평론이든, 연재든 단발이든, 글쓴이의 위치를 법률적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직업인으로서 나의 경력을 확인시킬 방법은 매체들에 별도로 경력증명서를 떼 달라 ‘부탁’하는 것뿐이다. 결국 나 같은 사람들은 글을 쓰는 행위만으로는 법의 보호를 받을 길이 없다는 얘기다. 계약서 없이 글을 의뢰하는 건 관례다. 원고지 장당 1만원 또한 관례다. 관례가 가리키는 건 명확하다. “네가 하는 건 ‘직업으로서의 일’이 아니다”라는 것. 나는 글쓰기에 얽힌 관례가 암묵적인 법칙으로 작동하지 않길 바란다. 얼마 전 나의 일을 어문 노동, 집필 노동으로 인지하고 작가노조 준비위원회에 참여하게 된 이유다. 광고 물론 당장은 이런 사례를 언급하는 것이 내게 역효과가 될 공산이 크다. 매체들로서는 귀찮은 이야기이고, 지면이 궁한 건 언제나 나니까. 그럼에도 말한다. 단 한 편의 글을 청탁하는 데에도 계약서가 제시될 수 있기를, 그리고 최소한 물가상승률이 반영된 적정 수준의 글값이 책정되기를. 이건 매체들이 필자들에게 어느 정도 수준의 전문성을 바란다면 보장돼야 하는 사항들이다. 성장은 이를 감당한 상태에서 꾀해야 한다.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http://hcroh.org/support/ '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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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게 이득이라는 그들
[6411의 목소리]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게 이득이라는 그들 (2022-05-25) 유미(필명) | 금속노조 주얼리분회 주얼리회사 노조원 2018년 9월28일 찾은 서울 종로구의 한 귀금속 세공수리업소 책상 위에 각종 작업 도구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현아! 잘 지냈어? 내 걱정 많이 했지? 처음부터 노조까지 할 생각은 아니었어. 현장 점거해서 밤새 회사를 지킨다고 하니 많이 놀랐지? 정말 이런 방법밖에 없냐고? 뉴스에나 나올 법한 집회에, 이제는 현장 점거까지…. 사실 나도 실감이 안 나. 광고 코로나19로 회사가 힘들다며 지난해(2021년) 3월 갑자기 무급휴직 하라고 할 땐 한달만 쉬는 줄 알았지. 그래서 무급휴직동의서에 사인한 건데, 회사에선 4월부터 고용유지보조금 신청을 위해서라며 몇몇에게 4~5월 월급의 70%를 받는 유급휴직을 하게 했고, 내 의사와 무관하게 나도 그 대상이 됐어. 6월에야 회사에서 연락이 왔고 다시 출근했지만, 일이 없어서 휴직한 게 아니니 유급휴직 기간에도 회사는 수시로 부르더라. 대신 고용유지보조금 신청 요건에 맞게 출퇴근 기록을 남기지 말라더라고. 줄어든 수입을 메꾸려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고 싶어도 대기 상태에 있어야 했으니 구할 수가 없었지. 고용유지보조금 지원기간 연장으로 회사는 거짓 휴직을 강요하고, 갑자기 줄어든 수입으로 힘들었던 난 너도 알다시피 사직서를 들고 출근했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19로 정부는 회사에 고용유지지원금을 줬는데, 그 지원금이 내 의사와는 무관하게 휴직과 고용 불안으로 이어진 거지. 광고 광고 이런 상태로 일할 수 없어서 그만두려는데 회사는 조금만 참아달라고, 실업급여도 받게 해주겠다고, 나라에서 주는 급여를 자기들이 주는 것처럼 말하더라. 베트남에서 엄청난 피해를 보고 돌아온 사장은 그동안 부서별로 몇몇에게만 폭탄 돌리기 식으로 건넸던 동의서를 모든 직원에게 건네고 유급휴직동의서와 단축근무동의서를 쓰도록 했어. 휴직과 임금 삭감이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된 거지. 노조를 만들기 전 직원들과 한 면담에서 사장은 그동안 베트남에 머무느라 부사장이 무·유급 휴직으로 임금을 삭감한 것을 몰랐다며 ‘회사를 살리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니 이해를 바란다’고, 제발 노조는 만들지 말라고 하는 거야. 그런데 직원 과반수가 가입한 노조가 생기니, 유급휴직 임금삭감률이 30%에서 10%로 쉽게 바뀌더라고. 광고 노조가 만들어지고 단체협약을 맺는 과정은 지금 생각해도 참 어려웠어. 점심시간을 40분에서 60분으로 바꾸는 데만 5개월이나 걸렸단다. 처음 노동조합에 관해 들었을 땐 이렇게 힘든 과정을 겪을 것으로 생각지 못했어. 같은 일을 하는 지인이 코로나19로 피해를 많이 본 종로 주얼리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어. 혼자서 회사와 싸우는 것보다 노동조합에 가입해 하는 건 어떠냐며 종로 귀금속 거리에서 받은 노조가입안내서를 내게 줬지. 거기에 빼곡하게 적힌 종로 주얼리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가슴을 먹먹하게 하더라. 환기구도 없는 좁고 밀폐된 공간에서 청산가리, 질산, 황산 등 이름만 들어도 무서운 화공약품을 사용해 귀금속을 세공하는 수작업은 힘들었어. 하지만 기계를 조작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고와 관련해 그 어떤 보호장비 지급도 없었고, 사전 안전교육도 없이 위험하고 미숙하게 현장에 적응해나가야 했지. 위험한 환경에서 매일 작업하는데 건강검진조차 받은 적 없을뿐더러, 독한 화공약품들로 인해 호흡기에 문제가 생겨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했어. 또 수작업과 기계작업을 하다 자칫 손가락이라도 잃게 돼도 산재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거야. 회사 사정이 안 좋아 감원이라도 하면 누구든 속수무책으로 회사를 나가야 해. 한창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오직 노동자들에게만 희생을 감수하라고 요구하던 1970~80년대 노동 현장 모습 같지 않아? 종로 주얼리 사용주는 근로기준법 적용에 예외가 많은 작은 사업장을 운영해. 그래야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아도 되거든. 처음에는 수습사원이라며 4대 보험 가입을 미루고, 차감될 보험료를 현금으로 주겠다며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게 이득인 것처럼 말하지.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금융거래 때 편의 제공이나 건강검진, 연차, 실업급여 등 혜택이 없어진다는 건 경험하기 전까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더라고. 입사할 때 첫 단추를 잘못 끼우니 잘못된 관행이 계속 유지되는 곳이 이 주얼리 업계란다. 누구는 “청년통장, 청년우대형 주택청약통장에 가입하고 싶었는데 4대 보험이 없어서 불가능”했다고 한숨을 쉬더라고. 광고 누구는 유급휴직 하며 쉬면 좋은 것 아니냐고 하겠지. 그런데 원래 적은 월급으로 한달 살기도 빠듯한 사람들이 월급 30%가 삭감됐는데, 아르바이트도 할 수 없는 대기 상태가 되니 정말 힘들더라. 아직 할 말이 많은데 일단 이만 줄일게. 네게 다음 안부를 전할 땐 모든 일이 해결되어 있기를 바라며, 너의 친구가. 서울 종로 ‘귀금속 거리’ 등에서 일하는 세공노동자들이 2018년 9월4일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제공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http://hcroh.org/support/ '6411의 목소리'는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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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 을지로 ‘분업의 골목’에서 따로 또 같이
[6411의 목소리] 을지로 ‘분업의 골목’에서 따로 또 같이 (2024-01-01) 이진훈 | 금속노조 서울지부 동부지회 인쇄업종분과 준비위원장 2023년 11월23일 서울 을지로 인쇄인 호프데이 행사장에서 필자가 행사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필자 제공 2023년 11월23일 서울 을지로에서 인쇄인 호프데이를 열기로 했다.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다. 날짜가 다가올수록 불안감이 커졌다. 한해 조직농사 결산이다. 당일 몇시간 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몇시부터 하느냐? 참가비는 없느냐?’ 포스터를 보고 전화했단다. 광고 행사장은 명보극장 사거리 치킨집이었다. 을지로 인쇄인이라면 누구라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장소였고, 금속노조 사업비로 치르는 행사라 따로 참가비는 받지 않았다. 모자라는 금액은 행사장에 후원함을 두어 충당할 거였다. “오늘 몇명이나 올까?” 인쇄밥 먹는 친구에게 물었다. “한 100명? 자리가 모자라면 어쩌냐?” 친구의 넉살에 웃음이 나왔다. 편집디자인 일을 했다. 20여년 전 스물여덟에 처음으로 직장생활을 했다. 작은 인쇄기획사였다. 을지로 인쇄골목은 무척이나 놀라웠다. 서울특별시 한복판에 삼발이(세바퀴 오토바이)가 돌아다니는 골목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인쇄소 옆 재단집, 그 옆 제본집, 그 반대편 톰슨(특정한 모양으로 종이를 따내는 작업)집, 또, 또…. 인쇄골목이 놀라움에서 친숙함으로 변할 즈음, 나는 몇군데 회사를 거쳐 2003년 가을 소위 ‘합판집’이라는 인쇄업체에 들어갔다. 그리고 내 평생 단 한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투쟁이란 것을 시작했다. 광고 광고 그 합판집은 직원 수가 60~70명 되는 꽤 큰 규모의 인쇄업체였다. 방문이나 인터넷으로 인쇄물을 주문받고 제작해 출고하는 회사였다. 합판집에서는 주문받은 여러 인쇄물을 하나의 인쇄판에 모아 찍는다. 주로 명함이나 전단을 인쇄한다. 전국에서 일감이 넘쳤고, 합판집들끼리 가격 경쟁이 점점 심해지는 시기였다. 합판집은 주문이 밀리면 작은 인쇄소에 맡겼다. 합판집이 을지로의 ‘갑’이었다. 우리는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사장 아들의 윽박이 두려웠고 “노예근성에 빠진 놈들”이란 모욕을 더는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요구는 간단했다. 사장 아들 김 과장의 퇴진이었다. 광고 노동조합을 만들고 나서야 알았다. 직원 60명이 넘는 인쇄업체가 근로기준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을. 연장수당, 노동시간, 유급휴일…. 뭐 하나 법대로 하는 게 없던 사장은 당연히 노동조합을 인정할 생각이 눈곱만치도 없었다. 2년에 걸친 ‘투쟁’ 끝에 우리는 단체협약을 맺을 수 있었다. 그사이에 조합원은 7명으로 줄었다. 사장은 전문경영인을 고용한 뒤 차근차근 구조조정을 준비했다. 우리에게는 더는 싸울 힘이 없었다. 이제 그 합판집에 노동조합은 존재하지 않는다. 육신은 피곤하고 정신은 허탈했다. 다시는 인쇄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무작정 인쇄와 동떨어진 일을 했다. 하지만 노동조합이 을지로 인쇄바닥에도 뿌리내리고,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도 당연한 권리를 누리는 것, 그 다짐을 부여잡고 나는 돌아왔다. 대형 인쇄업체와 달리 작은 인쇄업체는 사장이나 노동자나 처지가 별로 달라 보이지 않았다. 돈벌이나 노동시간에 그다지 차이가 없었다. 을지로 인쇄골목은 분업의 골목이다. 다양한 공정을 소규모 인쇄업체들이 하나씩 맡아 처리한다. 서로 다른 공정들을 이어주는 끈은 예의 삼발이다. 따로 떨어져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게 인쇄골목의 영세업체들이다. 골목 전체가 하나의 큰 공동체라는 점에서, 어쩌면 협업의 골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돕고 사는 공동체라 해도 권리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돈 앞에서는 이웃사촌 간에도 인정사정없는 게 우리 사회다. 재개발 이슈로 일터를 잃지 않을 권리, 일하면서 생활이 가능한 임금을 받을 권리, 노동법을 제대로 적용받을 권리를 중구와 서울시와 대한민국이 함께 돌봐야 하는데, 과연 자동으로 될까. 자고로 권리는 누릴 사람이 지켜내야 한다. 노동자가 목소리를 높여야 하고, 이를 대표해 누군가 전달하고 교섭해야 한다. 노동조합이 필요한 이유다. 광고 “이야, 너 어떻게 한 거야?” 친구에게 감탄사를 날렸다. 그의 말대로 “한 100명”이 오지는 않았지만, 지난해보다 훨씬 많은 50명 넘는 인쇄인이 모였다. 가게에 앉을 자리가 모자랄 만큼 꽉 찼다. 이 친구는 20년 전 그날 힘을 합쳤던 동지다. 함께 하고 힘이 되는 사람들이 곁에 있기에 할 수 있는 일들이다.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http://hcroh.org/support/ '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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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 택배 노동시간 단축은 헛된 꿈일까?
[6411의 목소리] 택배 노동시간 단축은 헛된 꿈일까? (2024-01-15) 서정수(가명)|택배노동자 설 연휴를 1주일가량 앞둔 지난해 1월13일 밤 서울 시내의 한 아파트에서 택배기사가 물품을 배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2년 1월4일 서울 강남구에서 30대 용차 기사가 미끄러지던 택배차를 멈추려다 택배차와 승용차 사이에 끼여 숨졌다. 아내와 뱃속 아기를 남겨두고 세상을 떠난 그를 기억한다. 2021년 가을 일하던 터미널에서 택배를 분류하고 차에 싣는 일을 하며 한달 동안 봤었기 때문이다. 곧 결혼할 예정이라는 말을 남기고 다른 지역으로 갔는데, 옮겨간 곳에서 화를 당했다. 차 사고가 잦은 겨울철이면 나도 이런 일을 당하는 건 아닌지 두렵다. 용차는 택배기사가 다치거나 아플 때 빈자리를 긴급하게 메우는 택배차와 택배기사를 아우르는 말이다. 기사들이 용차를 구하는 일은 드물고, 주로 원청이나 영업소에서 용차를 구하곤 한다. 택배기사들은 아프거나 다쳐서 일을 못 하면 배송하지 못한 만큼 수수료(임금)를 못 받고, 용차 비용도 물어야 한다. 그러니 아주 큰 병 아니면 쉴 수가 없다. 한 동료는 지난해 11월 말 절임배추를 배송하다 넘어져 아킬레스건 손상 진단을 받았는데 깁스한 채 나와 일했다. 척추분리증이 악화돼 당장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도 구부정한 자세로 계속 일하는 동료도 둘이나 있다. 광고 분류인력 투입으로 노동강도가 낮아지긴 했다. 앞서 2021년 1월과 6월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 1·2차 합의 때 중요한 내용은 “택배 분류작업이 택배기사의 작업 범위가 아니며, 주당 최대 노동시간은 60시간 이내로 한다”였다. 내가 일하는 터미널에는 조합원이 없어서 그런지 2022년 5월께부터서야 분류인력이 본격적으로 투입됐는데 어쨌든 이를 계기로 ‘까대기’라 부르는 분류작업이 덜 힘들어졌다. 일부 기사들은 분류인력 투입으로 이직 빈도도 줄어들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인 노동시간 단축은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물량이 많은 화요일, 수요일 단체카톡방에서는 심야배송 제한시간을 해제해 달라는 기사들의 글이 빗발친다. 2020년 택배기사 22명이 과로사로 숨지자 택배사들은 심야배송 시간을 오후 9시까지로 제한했다. 오후 9시 이후에는 배송완료 문자를 보낼 수 없게 되자, 8시55분쯤 미리 배송 문자를 보내놓고 마저 배송을 마무리한다. 물건이 오지 않았는데 배송완료 문자를 받은 고객은 기사에게 항의 전화를 한다. 원청은 명절 연휴 같은 때엔 심야배송 제한시간을 1시간 늦춰주는데, 평상시에도 요구해야 하는 상황이다. 1시간이라도 배송시간을 더 확보해야 항의 전화를 덜 받기 때문이다. 원청은 “우린 오후 9시까지로 배송시간을 제한했는데 기사들이 스스로 더 하는 것 아니냐?”고 한다. 억울할 뿐이다. 수수료 인상, 인력 충원, 노동조건 개선 같은 근본적인 대책은 세우지 않으면서 우리보고 어떻게 하란 말인지. 광고 광고 택배사와 구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택배 건당 수수료는 대부분 700~850원 사이다. 서울지역에서 건당 900원 이상 받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 1~2년 사이 모든 택배사가 택배비를 올렸지만 기사들에게 돌아오는 몫은 없다. 24년 동안 택배기사로 일해온 한 동료는 “처음 4년 동안 월급제로 일했고 그 뒤로 건당 1300원을 받았다. 계속 깎여 지금은 1천원도 안 되는데 물가 오른 거 생각해 봐라. 아무리 물량이 많이 늘었다 해도 이건 아니다. 거기다 보험료, 대리점 소장에게 줘야 하는 수수료, 세금까지 생각하면 무조건 많이 싣고 오래 일해야 한다”고 말한다. 당일배송 압박도 장시간 노동 이유 중 하나다. 원청은 매일 전략 고객사 물품 당일배송 지표나 미배송 과다 보유 집배점 현황을 공개하면서 기사들을 압박한다. 심지어 전략 고객사 물품을 당일배송 하지 않으면 건당 천원의 벌금을 물리겠다고 하거나, 기사들이 물건을 수거해 올 수 있는 거래처를 회수하겠다고 한다. 광고 2020년 정부 조사 결과, 택배기사들의 1일 평균 노동시간은 12.1시간이었다. 최근 윤석열 정부가 주 52시간에 맞추는 노동시간의 유연화를 얘기했다. 이미 주 70시간 이상 일하는 택배기사가 많은데 노동시간 단축도 아니고 유연화라니.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 2차 합의 때 주요 의제 중 하나는 ‘택배기사의 주5일제 실시’였지만, 시범실시 소식도 들려오지 않는다. 우리 사회 주5일제가 도입된 지 20년이 흘렀는데 택배기사들은 언제까지 이대로 살아야 하는가.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http://hcroh.org/support/ '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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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 첫 실형 확정, 어떻게 보시나요?🤔
이제 원청 대표가 처벌 받는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적용 범위와 처벌 수준 등에 이견이 많았죠. 결국 이 법은 50인 미만 사업장을 제외하고, 3년의 유예기간을 거치며 준비 단계를 밟아 작년부터 적용되기 시작했습니다. 2023년 4월에 노동자 사망사고에 대해 업체 대표에게 징역이 선고되면서 중대재해법 첫 실형 선고 케이스로 이슈가 되기도 했는데요. 성 대표는 앞서 모두 네 차례 벌금형 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다. 재판부는 “적발내역 및 처벌전력을 종합하면 한국제강 사업장에는 근로자 등 종사자의 안전권을 위협하는 구조적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종전에 발생한 산업재해 사망사고로 형사재판을 받던 중인 2022년 3월16일 재차 이 사건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한 사실과 “2022년 6월9일 경 이 사건 중대산업재해를 계기로 실시된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 감독에서 또다시 안전조치의무위반 사실이 적발”된 점도 짚었다. 한국제강에선 지난해 3월 공장 내 설비보수 협력업체에서 근무하던 60대 노동자가 1.2톤 무게의 방열판에 깔려 숨진 사건이 일어났다. 검찰은 지난달 결심 공판에서 성 대표이사에게 징역 2년, 법인에는 벌금 1억5000만원을 구형했다. [23.04.26] ‘중대재해’ 첫 법정구속…한국제강 대표 징역 1년 실형 - 한겨레 판결_최종_진짜 최종.hwp 그리고 지난 12월 28일, 재판부는 위의 사건에 대해 징역 1년의 원심 내용을 확정하였습니다. 한국제강 법인에도 벌금 1억원이 선고되었고요. 검찰은 상고장을 내며 중대재해법과 나머지 죄를 ‘실체적 경합’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기각하고 원심 판단을 확정했다고 합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의 내용을 ‘상상적 경합’으로 판단한 것인데요. 낯선 개념이 등장했네요. *실체적 경합: 여러 행위가 여러 범죄에 해당한다고 사법적 판단하는 것. 가장 무거운 법정형을 기준으로 50%까지 가중 처벌이 가능함. *상상적 경합: 1개의 행위가 여러 범죄에 해당한다고 사법적 판단하는 것. 여러 범죄의 내용 중 가장 무거운 법정형을 적용함. 🗯검찰: 가중처벌이 가능한 실체적경합 판단 검찰은 안전보건총괄책임자인 A씨가 안전조치 의무를 다하지 않은 혐의(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로 재판에 넘겼다. 또 경영책임자인 A씨의 회사가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사업장에서 안전보건관리 책임자 등이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평가 기준을 마련하지 않았고,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하지 않은 혐의(중대재해처벌법상 산업재해치사)가 인정된다고 봤다. [23.12.28] 한국제강 대표, 중대재해처벌법 첫 실형 확정 - 조선비즈 🗯법원: 가장 무거운 법정형만 적용하는 상상적경합 판단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 판단을 확정했다. 상고심 재판부는 "중대재해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은 궁극적으로 사람의 생명·신체의 보전을 그 보호법익으로 한다는 공통점이 있고, 업무상과실치사죄도 마찬가지"라며 "중대재해법위반죄와 산업안전보건법위반죄는 사회 관념상 1개의 행위로 평가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23.12.28] 중대재해법 위반 한국제강 대표, 대법서 첫 실형 확정 - 한국경제 재판부는 ‘노동자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 것’을 하나의 행위로 보고 ‘상상적 경합’을 적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검찰은 산재가 여러 번 발생한 것, 안전관리 기준이 미비한 것 등 여러 행위가 위법하다고 주장했고요. 사법분야에서는 선례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다보니, 이번 사건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후 첫 실형 확정을 받은 사례로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노동계에서는 죄질에 비해 처벌이 약하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중대재해처벌, 아직 갈 길이 멀다💨💨 노동건강연대 유성규 노무사는 "실형 자체는 의미가 있지만 죄질에 비하면 결코 높은 형량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처벌 이력이 있고 그중에는 사망사고도 있었는데도 (원청업체 대표가) 제대로 예방 조치를 하지 않아서 또 노동자가 사망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50인 미만 사업장의 중대재해법 적용 유예와 관련해 (중략) "50인 미만 사업장에 '면죄부'가 부여되고 위험의 외주화는 계속 유지되는 상황이라면 기업 입장에서 그 입법 공백을 활용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주장했다. [23.12.29] '중대법 위반' 첫 실형 확정…"죄질에 비해 '코끼리 비스킷'"[노동:판] - 노컷뉴스 광일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산업안전보건본부장은 한겨레에 “한국제강의 실형 선고는 당연하다”며 “오히려 다른 사건에서 줄줄이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중대재해법이 법 취지와 달리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의 기소율도 낮다. 지난해 1월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올해 9월 기준 중대재해로 노동자 423명이 숨졌으나, 검찰 기소는 32건에 불과하다. [23.12.28] 중대재해법 첫 대법 유죄 판결에도…선고된 12건 중 실형은 ‘1건’ 뿐 - 한겨레 소규모 사업장에는 🤜이르다 VS 늦출 수 없다🤛 현재 시행중인 법은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중대재해 발생 시 사업주 등을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는데요.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똑같이 적용될 예정이었지만, 정부는 유예기간을 2년 더 두는 방향으로 개정할 것으로 국회에 요구했습니다. 경제계에서도 사업장의 부담이 우려된다며 소규모 사업장 적용을 유예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고용노동부는 9일 보도참고자료를 내고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 국회 본회의 상정 불발과 관련해 "83만7천 영세 중소기업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 노동부 "경제단체도 정부 대책에 적극 협력하고 추가 유예를 요구하지 않을 것을 약속했다."  "50인 미만 기업 대다수는 중대재해로 대표 처벌 시 폐업과 일자리 축소로 인한 근로자 피해 등을 우려하며 적용유예를 호소하고 있다." 🧑‍💼 한국노총 이지현 대변인 "그간 정부와 경제단체 등이 현실적 어려움을 호소하며 유예를 주장했지만, 이는 5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를 죽음의 위험에 방치한 채 사업을 이어 나가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한번 죽은 사람의 생명은 유예되지 않는다."  [24.01.09] 정부, 국회에 '50인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법 2년 유예' 촉구 - 연합뉴스 고용노동부의 보도자료 내용은 경제단체들의 공동성명 내용과 비슷했습니다. 소규모 사업장의 경우 중대재해법 안전 기준에 부합하는 전문 인력과 시스템을 갖추기 더 어렵기 때문에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일괄적인 법안 적용보다 사업체의 규모와 업종에 따라 기준을 다르게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반면 이런 논쟁들이 법안을 무력화시킬 수 있고, 입법 취지인 노동자의 안전할 권리 보장에 지장이 있을 수 있다며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중소기업중앙회와 한국경제인협회,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6단체는 9일 공동성명에서 "중대재해법 유예 법안이 끝내 처리되지 못한 데 안타까운 심정을 표한다"며 "법안이 국회에서 논의조차 안 된 것은 83만개사가 넘는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의 절박한 호소, 폐업, 그에 따른 근로자 실직 등 민생을 외면한 처사"라고 밝혔다. [24.01.09] 국회 못 넘은 중대재해법 유예...경제6단체 "참담하고 답답해" - 머니투데이 전문가들은 대기업, 중소기업, 영세기업에 각각 다른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낸다. 또 기업 규모별, 산업별, 업종별로 명확한 안전의무 이행 기준을 주고, 미충족 시에만 처벌하는 등 법을 현실에 맞게 손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유예기간을 2년 연장해 중소기업에 준비할 시간을 더 주고 정부가 지원을 확대하는 것은 물론, 국회·노동계·경영계는 강력한 법 시행에도 불구하고 왜 중대재해가 줄어들지 않는지에 대한 원론적인 고민부터 머리를 맞대야 한다. [24.01.07] 영세中企에 중대법 강행만이 능사인가 - 매일경제 이는 과거 최저임금제를 둘러싼 논란과 닮아 있다. 지금까지 경총 등 경제단체들이 스스로 대기업의 불공정거래나 불합리한 원·하청 구조에 대해서 중소영세 기업들의 고충이나 이해를 대변하고 제도를 개선하려고 노력했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다가 노동자들의 권익과 권리를 보장하는 법이나 제도를 무력화하기 위해 내미는 카드가 중소기업의 취약성과 경제활동 위축이다. [24.01.07] 누가 중대재해법 무력화하나 - 경향신문 법 시행은 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적용 범위와 시기, 법의 실효성 등의 부분에서 여러 의견이 엇갈리는 것 같습니다. 안전을 보장하려는 입법이 기업가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논쟁이 의아하게 보이기도 하는데요. 이미 주어졌던 유예기간 동안 준비하기엔 요구되는 안전 조건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일까요? 재해예방과 안전은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하는 부분인 만큼 더 나은 논의로 변화를 이끌어내야 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덧글로 의견을 적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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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 홈쇼핑 콜센터가 믹서기라면 플렛폼업체는 초고속 블렌더였다
[6411의 목소리] 홈쇼핑 콜센터가 믹서기라면 플렛폼업체는 초고속 블렌더였다 (2022-05-18) 데비(필명) | 고객센터 상담노동자 지난해 4월 서울의 한 고객센터에서 상담노동자들이 업무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 글은 이상적인 노동 환경에서 상담노동자로 근무하고 있는 상상 속 인물 ‘리나’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독일에 사는 행복한 상담사 리나는 고양이도 키우는데, 고양이의 이름은 무려 세계 최대 규모의 서비스 노조 이름과 같아요. 잘 있었나요? 당신의 고양이 베르디에게 제 안부를 전해 주세요. 한국은 베를린보다 봄이 먼저 왔다가 벌써 가버린 것 같아요. 이제 낮에는 좀 더워요. 저는 아직 배달의민족 콜센터에 다니고 있어요. 여전히 노조도 없고, 고양이도 없고, 일에 대한 자부심도 없어요. 광고 리나, 고백하자면 저는 처음 플랫폼 콜센터에 취업했을 때 하도 유니콘기업 어쩌고, 혁신 어쩌고 하길래 ‘설마 악명 높은 홈쇼핑 콜센터처럼 하청에 하청을 두고 화장실도 못 가게 상담사 갈아 넣어서 운영하지는 않겠지?’ ‘시대가 달라졌고 콜센터도 많이 바뀌었을 거야’라는 기대가 있었어요. 하지만 하필이면 처음 들어간 회사가 야놀자랑 쿠팡이츠였어요 그동안 다녔던 홈쇼핑 콜센터가 일반 믹서기라면, 이들 플랫폼업체 콜센터는 초고속 블렌더였어요. 진짜 형태도 없이 갈려서 3개월도 못 다니고 도망 나왔어요. 홈쇼핑 콜센터가 일반 믹서기라면, 플랫폼업체 콜센터는 초고속 블렌더였어요. 형태도 없이 갈려 3개월 못 다니고 도망 나왔어요. 야놀자 콜센터는 충격적으로 더럽고 냄새나는 환경에, 에어컨도 잘 안 돌아가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하는 사람이 드물었어요. 사장님들은 갈수록 심해지는 쿠팡이츠의 횡포에 화내고, 애원하고, 이러다 자기 죽는다며 울부짖으셨죠. 꿈에서도 민원인이 나와서 그만둔 첫 회사였어요. 야놀자 콜센터는 충격적으로 더럽고 냄새나는 환경에, 에어컨도 잘 안 돌아가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하는 사람이 드물었어요. 밀려 있는 대기 고객이 너무 많아서 전화 연결되자마자 고객은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냐’고 소리를 질러대고, 관리자들은 2분 간격으로 ‘계속 콜 받아라’라고 소리 질러요. 팀장 자리에는 퇴사 서류가 쌓여 있고, 한쪽에서는 그럴싸한 구인광고에 낚인 신입들이 교육을 받고 있었죠. 모든 사람이 쉬지 않고 소리를 질러대서 그런지 어느 날부터 이명이 들려서 그만뒀어요. 퇴사하고 우연히 유튜브에서 본 야놀자 본사는 정말 근사하던데, 자기들 대신 욕먹는 콜센터 화장실이나 한칸 더 지어 주지, 싶더라고요. 광고 광고 쿠팡이츠에서는 가게 사장님들 전화를 받는 재택근무를 했어요. 통화가 6분이 넘어가면 여기저기서 사유서를 보내라고 미친 듯이 메시지가 와요. 왜 6분인지는 아무도 모른답니다. 일하는 내내 감시와 통제를 받지만, 정작 화가 난 식당 사장님이 전화로 악다구니를 쏟아내는 상황에서는 ‘그냥 잘 들어주라’며 미뤄요. 그때 이 회사는 상담사를 욕받이로만 생각하는구나 싶더라고요. 식당 사장님들 당장 생계가 걸린 문제라 하나하나 너무 절실하고 처절한데, 회사는 민원 해결에는 관심이 없고, 이유 설명 없이 그저 콜 수만 늘리라는 식이라 점점 강성 민원인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어요. 사장님들은 갈수록 심해지는 쿠팡이츠의 횡포에 화내고, 애원하고, 이러다 자기 죽는다며 울부짖으셨죠. 꿈에서도 민원인이 나와서 그만둔 첫 회사였어요. 근데 리나, 더 무서운 걸 말해 줄까요? 퇴사하고 얼마 뒤에, 쿠팡이츠 상담사와 통화하던 사장님이 숨졌다는 소식이 뉴스에 나왔어요. 사람 쓰러졌다는데도 세상 메마른 목소리로 “그래도 고객이 요청하시니까 사과 부탁드립니다”라고 해야 하는데, ‘아! 저게 나일 수도 있었겠구나’ 싶어서 소름 끼쳤어요. 그 상담사는 회사에서 치료 지원이라도 받았을까요? 이제 쿠팡 로고만 봐도 소름이 끼쳐서 로켓배송은 꿈도 못 꿔요. 광고 리나, 어제 콜 평가 점수 85점 받았다고 피드백 왔어요. 무슨 평가냐고요? 매달 서너번씩 랜덤으로 상담 내용을 듣고 점수를 주는 거죠. 점수를 잘 받으려면 어떤 콜이든 “아, 그러세요?”가 두번 들어가야 해요. “아~네. 그러세요?”라고 하면 빵점이에요. 또 고객이 ‘감사합니다’라고 할 때 “감사합니다”라고 답하면 빵점이에요. 고객이 감사하다면, 상담사는 그보다 더 감사함을 표현해야 한다는 거죠. 고객이 불만을 말하는데 그냥 “죄송합니다”라고 답해도 빵점이에요. 이게 뭔 소리냐고요? 배달의민족에서 하청 준 콜센터 업체들끼리 경쟁하다 상담사 말려 죽이는 소리예요. 2018년도에 배달의민족 본사 근처에 대규모 콜센터를 오픈한다는 기사가 났는데, 그 기사 말미에 배민 최고운영담당자라는 분이 “상담사의 행복과 만족도가 자연스럽게 고객서비스 향상으로 이어진다고 믿는다”, “배달의민족 고객센터가 이번 통합 확장 오픈을 계기로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우수한 모범 사례이자 기준점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해 가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럴듯하죠? 하지만 말만 그렇게 할 뿐, 실제로는 부산과 광주에서 지자체 보조 받아서 간접고용만 대규모로 늘리고 있더라고요. 그래도 저는 배민이 아직 ‘세계적으로 우수한 모범 사례’가 되려고 노~오~력 중이라고 굳게 믿고 있답니다. 배달의민족은 계속 노력할 거고, 저도 최저시급 받으며 버티다 보면 언젠가 리나처럼 안정적인 직장에서 장기근무도 해보고, 내가 하는 일에 애정과 자부심도 느껴보고,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며 귀여운 고양이랑 깨 볶고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아닌가요? 그냥 노조나 만들까요?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http://hcroh.org/support/ '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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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 타투가 뭔지도 모르는 이들
[6411의 목소리] 타투가 뭔지도 모르는 이들 (2022-05-11) 김도윤 │ 타투유니온 지회장 지난해 9월13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타투이스트 인권침해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기자회견에서 김도윤 타투유니온 지회장(오른쪽)이 진정 및 긴급구제신청서를 들고 있다. 연합뉴스 제니야! 오랜만이다. 얼굴 맞대고 앉아본 건 고등학교 졸업하고 23년 만인가? 사법시험 준비한다는 얘기까지는 들었는데, 중년의 판사가 되었네. 잘 어울려. 진심이야. 나? 난 디자인 그만뒀어. 이제 17년차 타투이스트야. 까만 옷 입은 네 동료들은 나보고 불법의료시술자라고 말하지만. 지난달 헌법재판소에서 선고가 있다고 연락이 오더라. 급한 일을 미루고 가봤는데, 까만 옷 입은 이들이 나란히 앉아 판결문을 읽더니 휘리릭 들어가더라. 그럴 거면 그냥 인터넷에 공지하지 왜 시간 낭비 하는지 모르겠어. 하여튼 타투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당당하게 타투는 의료행위라고 하더라. 폭력적인 코스프레 같았어. 결론은 자기들한테 묻지 말고, 국회의원 졸라서 입법을 하라는 거야. 매듭을 잘못 묶은 건 사법부인데, 엉망인 매듭은 입법부한테 풀라는 거지. 광고 삼권분립? 그렇지, 케이(K)-삼권분립 최고지. 들어봐봐. 지난해부터 갑자기 국세청 직원들이 타투 스튜디오를 찾아왔어. 문신업으로 사업자등록을 내라는 거야. 몰랐어? 우리 정식 사업자등록 가능해. 2015년에는 고용노동부의 미래유망신직업 17개에 타투이스트도 포함됐어. 물론 직업코드도 있고. 정말이야. 웃기지? 물론 우리도 정식으로 등록하고 세금 내면서 떳떳하게 하고 싶지. 그런데 국세청이 시키는 대로 하다가 단속당하면, ‘영리를 목적으로 불법의료행위를 했다’며 최저 형량 징역 2년을 선고받아야 해. 이게 말이 되니? 그림 그리고 징역 2년.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서, 내 동료들은 종종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해. 성실한 동료들이 그렇게 떠나가는 걸 보면서도 우린 할 수 있는 게 없어. 결국 우리는 투명인간이 되는 것을 선택해. 사업자등록 없이 일하면 단속돼도 보통 벌금형으로 끝나거든. 이게 케이-삼권분립이야. 삼권분립이 너무 잘돼서, 입법·사법·행정, 서로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전혀 몰라. 웃으면서 말하지만 난 진짜 슬퍼. 타투가 의료라는 법원 판례는 1992년에 만들어졌거든. 정확하게 말하면, 일본 판례를 그대로 베껴왔어. 그런데 그 일본마저도 2020년에 이 판례 폐기했어. 이제 진짜 한국만 불법이야. 물론 일본이나 한국이나 그 시절엔 모든 국민이 타투를 싫어했지. 우리 어렸을 때는 문신을 한 사람은 조폭 아니면 조폭 흉내 내고 싶은 양아치라고 했으니까. 광고 그런데 이 궤변이 30년이나 연명하다 보니 이제는 의사들이 타투로 돈을 벌어. 지금 네이버에서 ‘눈썹타투’라고 검색해봐. 유료광고하는 업체 100%가 의원들이거든. 이제 밥그릇이야, 큰 밥그릇. 궤변 위에 쌓아올린 겁나게 큰 밥그릇. 의사협회는 국민의 안전을 핑계대며 타투 법제화를 막아. 지지난달에는 의사협회가 타투합법화 저지 티에프(TF)도 만들었더라. 부끄러운 줄을 몰라. 정작 병·의원에서도 타투를 하는 건 의사가 아니야. 당연히 우리 같은 비의료인이지. 그러니 병·의원이 타투를 하면 더 큰 범죄가 돼. 의사면허 대여, 불법의료시술 지시 및 알선 그리고 홍보, 불법계약 등등. 이런 게 적발돼 의사면허가 정지되는 사례도 있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나 보더라. 1조원 규모의 어마어마한 시장이니까. 더 웃긴 건 타투는 의사가 직접 해도 불법이라는 거야. 왜냐하면 전세계에서 의료기기 인증을 받고 생산되는 타투 용품은 없거든. 세계에서 타투를 의료행위로 분류한 곳이 한국밖에 없는데, 누가 한국만을 위해 의료기기 인증을 받겠냐고. 의사도 비의료기기로 타투를 할 수밖에 없는, 불법을 저질러야 하는 상황인 거지. 결국 한반도에서 이뤄지는 모든 타투는 불법이야. 제니야, 이것 봐. 네 동료들이 망쳐놓은 건 나랑 내 동료의 삶뿐만이 아니야. 양심 없는 의사들도 돈벌이에 혈안이 돼서 의료의 존엄함마저 버렸어. 광고 그리고 보니 너 눈썹 타투 했네? 아! 받는 건 불법이 아니고, 타투를 하는 것만 불법이라고? 물론 알지. 작업을 청탁한 손님이 갑자기 돌변해서 신고하겠다며, 되레 돈을 요구하는 사례도 많거든. 제니야, 같이 웃으면 어떻게 해? 내가 웃으면서 말한 건 진짜 웃겨서가 아니잖아. 갑자기 불안하네. 내가 연예인한테 타투를 해줬는데, 어떤 한가한 녀석이 신고를 했어. 곧 2심 재판이 시작돼. 판사들이 문화적 소양은 부족해도 상식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웃음의 맥락도 파악 못 하는 너를 보니까 갑자기 불안해진다. 광고 그냥 우리 10년쯤 지나거든 다시 보자. 그때는 나도 투명인간이 아닐 테니, 맥락을 파악하지 않아도 되는 웃음을 지니고 있을 거야. 널 위해 기도할게. 내 아내가 목사거든.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http://hcroh.org/support/ '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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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함께 안전’ 집담회 : 함께 상상한 노동의 미래
캠페이너들이 같은 기간동안 동일한 주제로 사회 이슈에 대한 토론을 만드는 ‘함께 프로젝트’ 12월에는 ‘함께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프로젝트를 정리하며 프로젝트에 참여한 캠페이너와 ‘노동, 안전, 산업재해’에 관심 있는 시민들이 집담회에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집담회를 영상으로도 구경하실 수 있답니다! 🧊아이스브레이킹 겹치는 주제로 모였다 할지라도 각자의 배경과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생각하는 바가 다르기 마련인데요. 먼저 공통적으로 고민하고 있을 질문부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캠페인즈 시즌이슈 시리즈인 ‘캠페이너 여러분은 안전하게 일하고 있나요?’에 답하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안전하다고 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아닐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위험성 평가는 모든 사업장 대상으로하는데 제가 속한 사업장에서는 안 했던 것 같기도 하네요. '왜 내가 다니던 곳에서는 해본 적이 없지?' 라는 의문이 들면서 안전한 곳이라는 확신을 가지기 어렵다는 생각으로 이어지네요.” “체크는 첫 번째 ‘안전하다’에 했어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정신적 피해의 위험이 있더라고요. 직장에는 사람의 관계, 조직문화와 조직 구조에서 오는 문제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운동 진영의 분위기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데요. 헌신해야 한다는 분위기에서 번아웃이 오기도 하고. 주변에서 실제 번아웃이 몸의 증상으로 나타나는 상황에서 병가도 못 쓰고 치료도 못하는 것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더 안전한 노동을 상상하는 질문들 더 진솔하고 다른 곳에서는 편하게 나누지 못했던 대화를 위해 질문을 기반으로 집담회가 진행되었습니다.  1)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란 무엇일까요?  “위험하다고 생각할 때 중지할 수 있는 곳이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라고 생각해요. 본인의 노동환경에 대해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있는 상태가 필요합니다.” “노동 환경에 대한 통제권을 노동자가 갖고 있는 게 중요합니다. 아파서, 지쳐서 떠나지 않도록 열어놓고 얘기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해요.” “작업중지권 관한 최근에 있었던 사고를 말씀드리고 싶어요. 현대제철 불법파견 사내하청업체 문제가 있었습니다. 불법파견 리스크를 해소한다고 협력업체를 모두 자회사로 포함시켰는데 한 달도 안 되어 자회사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설비의 일부가 파손이 돼서 작업중지를 요청했습니다. 자회사는 원청에 요청했고, 작업중지가 안 받아들여졌습니다. 결국 2차사고가 발생했고요. 작업중지를 요청한 자회사 사람을에게 현대제철이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자회사는 작업중지를 요청한 직원에게 감봉처리가 되었습니다.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위해서는 이런 다단계 구조부터 해소해야 합니다. 원청이 책임질 것은 다 책임지는 구조로 가야한다고 생각해요.” 2) 산재는 무엇때문에 반복될까요? “원인은 ‘전부 다'라고 생각합니다. 국가는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않고, 기업은 효율만 중시하고 안전 예방에 투자하지 않습니다. 직업성 암 등 문제 되는 것을 보면 유해물질도 사용하거나 급식실 노동자 폐암처럼 우리가 잘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노동권, 안전문제 교육이 잘 안 되는 것도 문제고요. 반복되는 이런 문제를 아예 막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싶은데요. 흔히 말하는 ‘후진국형 재해', 그런 죽음들 정도는 막아야 하지 않나 싶어요. 생산 효율을 중시하는 산업 현장의 문제가 강하게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위험한 작업이나 위험한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북유럽에서 건설노동은 전혀 위험하지 않습니다. ‘이게 왜 위험한 일이야?’라고 되려 물을 정도로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 놓는데요. 그렇다면 '이런 산업재해가 누구한테 반복될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전반적인 격차나 불평등. 노동시장 외에서 발생합니다.” 3) 많은 시민들이 산재에 관심 가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서사’에 대한 생각을 해봤어요. 이게 이상하면 이상하다고 얘기할 수 있어야 하고, 미디어 언론이 그 일을 해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고 김용균 노동자의 경우 한겨레, 경향이 1면에 싣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연대가 퍼질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언론이 관심을 가져서 문제의식이 확산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신질환 산재의 경우도 국민일보 취재가 있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즉 산업재해가 평범한 사람들에게 아주 많이 일어난다는 서사가 필요합니다.” “산재 문제의 경우 시민의 관심뿐만 아니라 국회와 언론의 관심을 가져야지만 풀어집니다. 큰 흐름에서 주목받아야만 해결되거나 왜 사회는 이를 주목하지 않는가는 항상 의문인데요. 지역의 커뮤니티를 회복하여 내 일상의 주제로 다가오게 만들어야지 이슈가 끊기지 않고 해결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회고 “올해 가장 산업재해가 많이 일어난 기업이 배달의 민족. 라이더유니온 분과 얘기를 하다가, 배달 노동자들이 산재를 당하는 형태가 대부분 교통사고더라고요. 교통사고라서 노동을 벗어난 일상적인 사고처럼 느껴지거나, 배달 노동자가 실수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운전을 한 사람의 책임만 생각하고 무리한 배차, 무리한 알고리즘 등 기업의 책임은 빠져있습니다. 기업이 문제라는 생각은 공유되고 있는 것 같지만 때때로 잊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산업재해에 대한 인식과 범위를 더 늘릴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자리였습니다.“ “기고글을 쓰면서 5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시간 순으로 많이 생각하게 되었고, 돌아보는 과정에서 놓쳤던 것들을 많이 듣는 시간이었습니다. 산업재해와 중대재해, 노동재해의 관점으로 어떻게 볼 수 있을지 나눠서 생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많이 배운 자리였어요. 살면서 노동에 대해 진득하게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는데 오늘 그런 기회였습니다. 협동조합 활동가로서 조직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게 되었고, 사람들이 모여서 관심을 가지고 모여서 운동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기회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 대화의 장이 끊이지 않고, 함께 모여 이야기 나누는 행동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캠페인즈는 디지털 시민광장으로서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해 더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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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어떤 산재는 보이고 어떤 산재는 보이지 않는가
캠페인즈 미디어를 통해 직접 캠페이너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요! 왜 어떤 산재는 보이고 어떤 산재는 보이지 않는가 전수경/노동건강연대 활동가      산재가 험하고 힘든 일을 하다 사망하는 남성 노동자의 이미지를 갖게 된 데에는 산재 사망의 심각성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사망 만으로 산재 문제 전체를 보기는 어렵다.  누구든, 어떤 일이든 일을 하면서 몸이나 마음이 상하기도 하고 다치기도 한다. 하루의 삼분의 일 또는 이분의 일을 보내는 공간, 작업 또는 보이지 않는 관계 같은 것들이 사람의 신체와 마음에 영향을 주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가 보통 산재라고 부르는 것들은 국가가 정한 기준 즉 산재보상법이 정하는 산재의 요건을 통과한 것을 가리킨다. ‘4일 이상의 요양’이 필요한 질병, 부상이라면 산재의 기본적 요건이 된다.  그러나 이론과 현실은 다르기에 노동하는 사람이 처한 조건에 따라 국가의 산재보험 제도에 접근이 불가하거나 보험 이용을 포기, 또는 거부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산재보험 이용자 수에 집계되지 않았다고 해서 산재가 아닌 것은 아니다.  정부는 2022년 107,214명의 노동자가 사고를 당하고, 23,134명의 노동자가 직업병으로 판명되어 모두 130,348명의 노동자가 산재를 입었다고 발표하였다. 130,348명의 노동자 가운데는 사고사망자 874명이 포함되어 있다. 이 통계 자료의 하단에는 ‘산재요양 승인된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임에 유의’하라는 문구가 있다. 여기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두 가지이다. 산재보험을 신청할 수 있느냐가 첫째, 산재보험을 신청했지만 ‘승인’받을 수 있느냐가 둘째이다. 건설 현장에서 추락해 사망하는 노동자, 공장에서 기계설비에 끼여 사망하는 노동자와 같이 산재로 인한 사망이 명백한 사례들이 최근 수년간 많이 알려져 시민들의 마음을 울리고 산재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왔다. 이와 같은 사망을 포함하여 일반적으로 제조업이나 건설업 현장에서 사고가 일어나면 쉽게 산재보험을 신청하고 쉽게 ‘산재요양 승인’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그러나 ‘전국건설노동조합’ 활동을 정부가 탄압하고 경찰수사에 들어가면서 노동조합의 활동이 어려워지자 건설 현장에서 발생하는 산재가 은폐되고 있다는 제보가 많아지고 있다- ‘떨어지고 끼이고 부딪쳐 가며’ 아파트를 짓고 배를 만들고, 빵을 생산해야 하다니, 노동자의 사망과 사고 뉴스를 접하며 우리는 사람보다 경제가 먼저인 체제의 비정함을 직관적으로 느낀다.   그런데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 산재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특수고용 노동자, 프리랜서, 플랫폼을 통해 개인 사업자로 일하는 노동자들이 일을 하다 다치거나 사망하였다면 어떻게 되는가? 최근 2~3년 특수고용, 플랫폼, 프리랜서처럼 불안정하고 유동적인 노동을 하는 이들이 600만~700여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노동계는 추산하고 있다. 이들은 상시적으로 일감을 받고 한 곳에서 일을 해도 고용을 안정적으로 보장받지 못하고 언제든지 계약이 해지될 수 있다는 살얼음판 같은 조건에 있는 경우가 많다. 최근 이들 불안정한 노동자들의 산재보험, 고용보험 가입을 확대하는 정책을 펴고 있어 가입이 크게 확대될 것이라 정부는 말하고 있다. 다행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산재는 쉽지 않다. 최근 뉴스 사회면에 자주 등장하는 택배 노동자의 과로사를 보자. 정부의 산재사망 통계에 포함되려면, 쓰러진 택배 노동자가 산재보험에 가입되어 있어야 하고, 쓰러진 후 산재 신청을 했을 때 가령, ‘ 일주일 이내 업무량이나 시간이 이전 12주 (발병 전 1주일 제외) 평균보다 30% 이상 늘거나 업무강도 및 업무환경 등이 적응하기 어려운 정도’ 였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어야 산재 사망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다.   빗길 배달을 가다 오토바이가 미끄러져 사망한 배달 라이더, 고속도로 졸음 운전으로 사망한 화물차 기사에 대한 뉴스를 보았다면, 이 죽음이 산재라고 생각해 보았는가. 산재보험에 가입되어 있고, 졸음 운전에 이르기까지의 노동시간, 업무량 등을 입증해서 산재 승인을 받을 수 있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산재 사망 노동자의 숫자로 헤아려질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교통사고 사망자이다. 산재 사고의 수, 산재 사망자의 수가 적다, 많다, 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으로 생계를 하고 가족을 부양하는 노동자임에도 다치거나 사망하였을 때 그 자신과 가족의 사회적 안전망이 사라지거나 부족해지는 것이다. 노동자의 자격이나 산재의 조건은 사회적 흐름에 따라, 필요에 따라 변화하고 보호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되는 것인데, 정부는 이를 방치한다.  이런 의문도 든다. 사망에 이르지 않지만 천천히 오는 산재는 어찌할 것인가. ‘산재요양 승인’은 요건만 갖추면 형식적으로는 모든 노동자에게 열려 있지만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기에 산재보험 이용 자체를 시도하지 않는 노동자가 많다. ‘비용과 시간의 소요’라 함은 산재 신청을 위한 정보탐색과 상담, 법률서비스 구매,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기간, 이의제기 등의 지난한 과정이 수반된다는 것을 뜻한다. 노동자들의 증언, 사례발표, 실태 조사 등을 통해서 제도의 복잡성, 접근성의 장벽은 이미 드러나 있지만 고용노동부와 산재보험운영기관 근로복지공단은 외면해 왔다. 또한 앞서 말한 특수고용노동자, 프리랜서가 아니더라도 고용이 안정적인 일부 노동자층을 제외하고는 많은 노동자들이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다른 노동자가 내 일을 대체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  비정규직일수록 불안은 더 크다. 아파도 출근하고, 참기 어려우면 건강보험으로 치료를 받는다. 2019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산재보험으로 치료해야 할 노동자가 건강보험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면서 건강보험에서 새어 나가는 돈이 연간 최소 277억 원에서 최대 3,200억 원에 이를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일을 하다 다치거나 아픈 노동자의 21.0%~42.4%가 산재보험이 아닌 건강보험으로 치료를 받는 것으로 추산된다는 것이다.  산재보험을 운영하는 <근로복지공단>은 보험료를 더 걷었다며 해마다 수백억의 산재보험료를 기업에게 환급해 준다. 일을 하다 다치고 아픈 노동자가 산재보험을 통해 치료받도록 산재보험료를 납부하는 것은 기업의 책임이고, 제도를 통해 더 많은 노동자가 보험을 이용하도록 촉진하는 것은 국가의 역할이다.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보험 이용의 어려움을 알면서도 개혁하지 않고, 국민이 부담하는 건강보험료를 축내도록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산재보험을 이용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기 전에는 산재 발생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울 것이다.   제도와 노동 현실의 불안정함이 만나 산재를 감추는 한편에 또 하나의 쟁점이 있다. 정부는 산재요양 승인 노동자 집계를 발표하면서 성별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2022년 산재사고 사망 노동자 874명 가운데 여성 32명, 이라고 분류한 사망자료 외에 산재 전체에서 여성을 구분해 발표하는 통계가 없다. 고용이 더 불안정하고, 더 낮은 임금을 받는 이들일수록 산재보험 이용을 꺼릴 가능성이 큰 상황이고 그 조건에 여성의 비중이 큰 현실을 고려하면 정부의 발표는 너무 안이하다. 여성 노동자의 산재로 최근 가장 널리 알려진 사례는 학교 급식조리 노동자의 폐암이다. 2023년 11월 현재, 4만 명이 넘는 학교 급식조리 노동자가 건강검진을 받았고 이 가운데 폐암으로 산재를 인정받은 노동자가 130여 명에 이른다. 환기시설 없는 조리실에서 노동자 1명당 학생 100~200명 분량의 식사를 준비하는 노동강도를 감당하며, 굽고 튀기고 볶는 과정에서 조리흄을 흡입하면서 폐암이 왔다. 학교 무상급식 시행 12년차, 학교급식실 조리노동자의 작업환경에 교육 당국은 관심이 없었다. 중년 여성의 ‘밥 짓는 일’을 노동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무상급식 12년이 되도록 잠복되어 있던 여성노동자들의 직업병은 노동조합이 나서지 않았다면 여전히 가리어져 있었을지 모른다.  <노동건강연대>가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으로 2022~2023년 ‘청년여성 산재회복 지원사업’을 펴며 청년 여성 노동자들의 산재 신청 현황을 살펴보았다. 결과는 참담했다. 사업에 신청서를 낸 600여 명의 청년 여성 노동자 가운데 단 5명만이 산재보험을 신청했다고 답했다. 여성 노동자의 산재는 아직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노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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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안전] 경과를 쫓는 일
임금체불과 직장내괴롭힘으로 노동자가 분신 사망하고 계절이 바뀔만큼 시간이 지나도 가해자가 아무런 사과나 반성이 없다면, 10년 넘게 일한 노동자가 질병 산재로 사망한 후 소속 행정기관 앞에 분향소를 마련할 때 공권력과 물리적 충돌을 겪어야 한다면,  2인1조의 작업 매뉴얼도 비상정지 장치도 작동하지 않는 곳에서 작업하던 노동자가 사고로 사망했을 때 아무도 실형을 받지 않는다면  그 사회의 산업재해는 줄어들 수 있을까요? 2023년 12월, 여의도 한강성심병원 주차장 한편에는 아직 장례를 치르지 못한 택시노동자 방영환 열사의 분향소가 있습니다. 법으로 정해진 택시월급제를 지키지 않는 회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며 택시월급제를 준수와 체불임금 지급을 촉구하던 방영환 노동자는 사측의 폭언과 폭행에 시달렸습니다.  지난 9월 26일 회사 앞에서 분신한 방영환 노동자는 10월 6일 사망했습니다. 유족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산재를 신청했습니다. 사측은 방영환 노동자의 사망 후에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재발방지 대책도 내지 않았습니다. 방영환 노동자가 사망하고도 70여 일이 지나고 나서야 해성운수 대표의 구속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분신 택시노동자 방영환씨 유족 산재 신청 (2023.11.30. 매일노동뉴스) “때리고 화분으로 위협”…‘분신 택시기사’ 업체 대표 구속 (2023.12.12. KBS) 12월 4일, 14년 동안 경기도의 학교에서 학교급식 노동자로 일한 이혜경 노동자가 폐암 투병 끝에 사망했습니다. 단시간에 다량의 음식을 조리하며 발생하는 발암물질(조리흄)은 학교급식 노동자의 폐암 발병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2021년 학교 급식노동자의 폐암 산재 첫 인정 후 현재까지 113명의 학교급식 노동자의 폐암이 산재로 승인됐습니다. 학교비정규직노조는 12월 6일 이혜경 노동자 추모 분향소를 경기도교육청 앞에 설치하려 했습니다. 교육청 직원은 이를 막아섰습니다. 곧 경찰이 출동하여 분향소가 철거되고 노동조합 관계자를 연행해 갔습니다. 이틀 후, 노동조합과 경기도교육청은 노사합동으로 지하 1층에 분향소를 설치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학교급식실 노동자 폐암 산재인정, 2년 만에 113명 (2023.10.5. 매일노동뉴스) 폐암으로 숨진 급식노동자 분향소, 노사 합동 설치 합의 (2023.12.9. 참여와혁신) 12월 6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는 김용균 노동자 5주기 현장추모제가 열렸습니다. 추모제에서는 계속되는 위험의 외주화에 대한 비판, 작은 사업장의 위험을 외면하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다음 날인 12월 7일, 김용균 노동자 사망과 관련하여 원청인 한국서부발전과 당시 대표이사의 대법원 판결이 있었습니다. 대법원은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이로써 김용균 노동자 산재 사망에서 실형을 받은 원, 하청 임원은 아무도 없게 되었습니다.  “일하다 죽는 ‘죽음의 외주화’ 중단하라”…고 김용균 5주기 현장추모제 열려 (2023.12.6. 서울신문) ‘김용균 사건’ 원청 법인·대표 모두 무죄 확정 (2023. 12. 7. 한겨레) 산업재해 이후의 이야기를 접할 때면 이래서 어떻게 산업재해가 줄어들까 싶은 심정이지만, 그렇기에 현시점의 상황들을 우리는 더욱 정면으로 바라봐야 하는 것 같습니다. 산업재해 이후 사건의 경과를 쫓아가야 합니다. 이 경과를 보고 듣고 말하여 책임과 추모가 당연하도록 만드는 것이 이미 발생한 산업재해 현장의 오늘을 바꾸는 일이고, 앞으로 발생할 산업재해 현장의 내일을 바꾸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어떤 산업재해의 무엇을 목격하고 또한 기억하는 하루를 보내고 계신가요? 
노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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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안전] 아무 말도 안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생각하며 일하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노동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불만이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노동자’라고 하면 왠지 '빨갱이'스럽고 깃발을 들어야 하는 것처럼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다. 경향신문과 우리리서치·공공의창 조사에 따르면 근로자와 노동자 중 평소 주로 접하는 단어를 묻는 항목에는 ‘근로자’라는 응답이 71.3%였다. ‘노동자 동질감’을 물은 항목에는 ‘노동자라고 하면 거리감을 느낀다’는 응답이 49.9%로 ‘동질감을 느낀다’(33.8%)보다 16.1%포인트 높았다. (2022.11.18 경향신문)  인류 역사와 분리할 수 없는 ‘노동’을 남 이야기 인듯이 다루려는 것에서 본능적인 거부감이 든다. 우리가 개인의 성장을 위해 이야기하는 워라벨, 커리어 같은 것들 모두 노동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왜 노동권이라고 하면 운동권스럽고, 커리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성실하며 갓생을 지향하는 화이트칼라의 이야기로 여기는 것일까? 우리는 당연한 이야기가 당연하지 않게 여겨지는 사회에 살고 있다. 당연한데 당연하지 않은 이야기를 하나 더 해보려 한다. ‘아무 말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데, 이건 산업재해에도 적용된다. 쉽게 말하면 ‘구조적 무감각증’이라고 할 수 있다.  2022년 기준 한해 재해자수는 130,348명, 사망자수는 2,223명에 달한다. 여기서 집중해야 하는 건 이 지표에서조차 소외된 사람들은 없냐는 것이다. 2021년에 ‘은폐되는 산재 건수가 전체의 66.6%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노동조합은 산업재해 발생과 은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한국노동연구원 김정우 전문위원)가 있었다. 국민권익위원회 또한 2014년 ‘산재 은폐율이 최소 54.8%에서 93%에 달한다’는 연구보고서(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 개선방안)를 냈다. 노동계는 고용이 불안한 비정규직 등 취약 계층 노동자의 산재 은폐율이 정규직보다 더 높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또한 유해물질에 노출됐더라도 수년에서 수십년의 잠복기를 거쳐 나타나는 암에 걸린 상당수 노동자는 병의 원인을 ‘운명’이나 ‘자신의 탓’으로 돌리곤 한다. 자신이 다루는 물질이 얼마나 위험한지 모른 채 근무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2023.3.14. 한겨레) 문제라고 말하지 않으면 정말 문제가 없는 것처럼 여겨지기 마련이다. 즉, 다치고 죽어가는 사람이 있는데 그 직접적인 원인이 노동에서 온다고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여겨지는 원인은 산재 예방 정책의 방향에 있다. 서울대학교 직업환경건강연구실의 김승섭 교수는 “한국의 산재 예방 정책은 그 의도와 무관하게 산재 발생을 실제로 줄이는 것이 아니라 산재 발생시 보고하는 숫자를 줄이는 결과를 낳기도 했습니다.” 즉, 노동자의 목숨이 숫자놀음에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방법은 놀라웠는데, 제도상 아무 문제가 일어나지 않게끔 처리하는 것이 목표였다.  “조금 규모가 있는 회사에서는 특정 병원을 지정해서 산재가 아닌 ‘공상’이라는 이름으로 치료를 합니다. 공상의 경우 당장 필요한 치료비는 내주지만 산재보험과 달리 이후 후유증을 치료할 수 없을뿐더러 증상이 악화되어 결근하면 임금을 보전해주지도 않습니다.”, “2014년 진행된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산재 위험직종 실태조사’에 따르면, 일하다 다쳤던 조선소 하청 노동자 125명 중 산재보험으로 치료받았던 이는 9명(7.2%)에 불과했습니다. 산재보험으로 처리하지 못했던 가장 흔한 이유는 ‘원/하청업체로부터 불이익을 받지 않으려고’였습니다.”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김승섭. 난다 ) 위의 사례는 공상으로 들었지만, 이 자체도 기업에게 위험부담이 된다고 판단했는지, 일명 ‘위험의 외주화’. 다치기 쉬운 업무는 하청업체에게 넘겨 버리는 일도 발생한다. 다치면 고용이 단절되어 버리는 하청 노동자들은 다쳐도 산재보험에 신청하지 못하고 만다.  또 다른 원인은 미비한 처벌에 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산재 은폐에 대한 처벌은 4년 동안 41건, 산재 미신고는 4년 동안 3805건에 불과했다. 최근 4년간 산업재해 은폐 및 미신고 건수는 15만건이 넘었지만 처벌은 전체의 2.5%인 3846건에 그쳤다. 사업주는 산업재해 발생 사실을 그대로 보고하는 경우 기업의 평판 저하와 이로 인한 시장에서의 신용저하 등이 우려돼 은폐하는 경우가 많다”고 여기며, “산업재해 발생 사실을 은폐해도 기껏해야 과태료만 부담하기 때문에 사업주로서 이러한 과태료를 감수하면서도 산업재해 발생 사실을 은폐하고자 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남기고 있다.(2023.4.28. 안전신문) 강태선 서울사이버대학교 안전관리학과 학과장은 “한국의 산재 은폐율이 높은 이유는 노동자가 회사를 의식하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자유롭게 산재 신청을 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하도록 사업주를 독려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중대산업재해가 아닌 일반 재해의 경우 감독이나 처벌보다 예방과 지원에 더 집중하는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산재 신청이 크게 늘어나겠지만, 그것이 우리가 현재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 파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실태를 알아야 산재를 줄이는 법도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2023.3.14. 한겨레) 앞서 노동권을 말하면 빨갱이고 커리어와 워라벨을 말하면 화이트칼라냐는 다소 이분법적인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본 글을 쓰면서 발견한 이야기가 이 구분이 아예 말이 되지 않는 건 아니라는 답을 해주는 것 같다고 느꼈다. “앞서의 논문을 준비하며 만난 활동가는 ‘산재가 왜 이렇게 반복될까’라는 질문에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화이트칼라가 죽는 거 봤냐?” 맞는 말이다. 만일 대학교수가 1년에 900명씩 연구실에서 사망한다면, 대기업과 공기업의 관리직·전문직 종사자들이 매일 3명씩 산재로 사망한다면 이 문제가 이렇게 방치되었을까? 조선소에서 하청 노동자가 죽으면 ‘보상금 5000만원’이 거의 관행처럼 통용된다. 정규직의 3분의 1도 안 되는 금액으로 “죽음마저도 그렇게 헐값”이다. 반복적인 재래형 산재사고의 본질은 불평등 문제다.” (2021.1.9. 시사in) 매년 발표되는 산업재해 통계에는 일하다 다치거나 죽은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함축되어 있다. 그런데, 이 통계에서조차 소외받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중 상당수가 비정규직 노동자, 하청노동자, 이주노동자라는 점은 이들의 산업재해가 숫자로 기록되지 않은 이유가 우연은 아니다. 사회 구조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노동자들은 더 많이 다치면서도 자신들의 아픔에 대해 소리 내지 못하고 있다.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 다친 이야기가 배제된 숫자에만 주목하며 우리 사회의 본질적인 문제를 외면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 무관심 뒤에서 하염없이 쌓여왔던 사고들은 사람이 죽고 나서야 기록된다.  우리는 이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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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 5주기] 산업재해 피해자로 마주한 삶
우리 부부는 자식이 태어나며 더욱 행복이 충만한 가정이 되었다. 모든 중심은 용균이었고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별 탈 없이 잘 자라는 것을 보며 너무나 행복했었다. 특별히 공부하라고 다그친 적도 없이 알아서 노력하는 편이라 내신성적만으로도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어느덧 군대를 다녀오고 대학도 졸업하고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1년 동안 자격증도 여러 개 따놓았다. 이제 직장만 잘 얻으면 되는 일이었다. 전국을 다니며 잘 나가는 기업들 상대로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수십 번을 봤지만, 아들은 경쟁에서 밀려 매번 떨어지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곁에서 괜찮다고 달래 주었지만, 아들은 점점 자존감이 낮아져 힘들어했다. 그러다 김천에서 최종 합격 연락을 받았다. 그렇지만 한 달 후 합격이 무산되었다는 비보... 운조차 따라주지 않았다. 그래서 비정규직 일자리라도 우선 다니기로 했나 보다. 아들은 태안 서부발전 하청 한국발전기술에 입사하게 되었다.  안전장치 없는 현장에서 발견한 위험의 외주화 입사한 지 석 달 못 되어서 아들 사고 소식을 접했다. 하청 이사가 처음 만난 나에게 아들 잘못으로 사고가 났다고 했는데 뭔가 미심쩍었다. 그래서 아들이 어쩌다 사고를 당했는지 알고 싶어 사고 현장에 들어갔는데 현장은 70년대 탄광을 연상케 할 만큼 열악했다. 아주 비좁은 캐비닛 안에는 배고플 때 먹을 컵라면이 있었고 고장 난 플래시가 있었다. 입사한 지 사흘 만에 안전교육도 없이, 인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현장에 투입되었다고 한다. 랜턴 하나 지급받지 못한 채 어두컴컴한 현장을 개인 핸드폰 불빛으로 밝히며 1~2킬로나 되는 긴 거리를 혼자서 점검하러 다녀야 했다. 낙탄이 쌓이거나 탄 덩이가 회전체에 끼면서 불이 발생하지 못하도록 이상 유무를 파악하는 것이 아들의 점검 업무 중 핵심이었다. 외항의 철재 구조물 속 컨베이어벨트 위에 수많은 회전체가 안전 커버도 없이 돌아가고 있었으므로 사고의 이유를 금방 짐작할 수 있었다. 더욱 비상식적인 것은 개구부와 회전체가 일치하지 않아 머리를 개구부에 넣어야만 확인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2인 1조는 규정에만 존재했으므로 회전체에 몸이 딸려 들어가 죽을 때까지 아무도 안전줄을 당겨줄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너무도 비참했다. 그것도 모자라 마지막 사고 난 장소를 갔는데 사측은 이미 물청소로 모든 증거를 없앤 뒤였다. 그때부터였다. 진상규명 책임자처벌이 꼭 되도록 제대로 밝힐 것을 다짐한 것이. 사람들에게 공공기관조차 현장의 안전이 엉망진창이라는 것을 더 알리고 싶었다.  부르는 곳마다 연대하러 갔지만 실상은 아들의 위험한 작업장을 알리고 부당한 처우를 사회에 고발할 목적으로 다녔다는 게 더 맞을 것이다. 그 와중에도 산재 사망 소식은 끊임없이 들려왔고 모두 아들과 같이 안전하지 않은 현장에서 사람들이 죽었다. 아들의 피켓을 이어받아 하청에 월급도 주고 구체적 작업지시까지 하면서 안전 예산을 짜고 인력을 늘릴 권한이 있는 원청은 안전을 책임지지 않았다. 위험의 외주화로 발생하는 산업재해였다는 것이다. 업무 수칙을 더 잘 지키면 지킬수록 죽는다는 것이다. 원청은 하청을 주었으니 내 직원 아니라고 했고, 하청은 내 사업장이 아니라 현장을 바꿀 수 없다고 했다. 원하청 단절로 아무도 안전에 책임지지 않았으므로 동료들의 28번의 위험 시정 요구는 모두가 묵살시킨 것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사고 당사자한테 모든 잘못을 덮어씌우면 기업 입장에서 가장 피해가 없는 손쉬운 처리 방법일 것이다. 이런 부당함과 싸우기 위해 아들이 피켓을 든 이유처럼 나 또한 이어받아 싸우고 있다. 이런 끔찍한 일을 당한 유족들은 모두가 내가 당할지 몰랐다고 했다. 특히 위험하고 힘든 일일수록 걱정 끼치기 싫어서 부모에게 알리지 않으니 더욱 현장 상황엔 어둡기 마련이다. 하청에 재하청일수록 급속도로 위험한 현장이 증가했고 다치거나 죽는 것도 내려갈수록 더 심해진 것을 알게 되었다. 유족들은 각자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모이다 보니 서로가 큰 의지가 되면서 산재피해가족 네트워크 ‘다시는’이라는 모임을 만들게 되었다. 산재 피해 유족들의 바람은 하나같이 사회 안전망을 구축해 더 이상 우리처럼 억울하게 가족을 잃는 끔찍한 아픔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수많은 죽음을 용인하는 사회 지난 7일 갑작스레 잡힌 아들에 대한 대법 재판을 하게 되었다. 정부 차원으로 이뤄진 특조위 조사에서 아들의 잘못이 아님을 낱낱이 밝힌 많은 증거가 있었기에 그대로 적용하면 원청 대표까지 처벌이 가능할 거라고 예상했다. ‘구의역 김군’ 사건도 원청을 처벌할 수 있었으니 당연히 좋은 결과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대법은 판결은 원심 그대로 ‘기각’이었다. 오늘을 위해 5년 동안 열심히 싸워 왔는데 예상은 빗나갔고 결과는 참담했다. 용균이를 서부발전이 죽인 것은 맞지만 처벌은 하지 않겠다는 기업 봐주기. 실제 감옥에 가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너무 부당한 판결이다. 사법 정의가 죽었다는 생각이 들어 절대로 인정할 수 없었다. 중대재해처벌법 50인 이하 사업장 즉시 적용해야 할 이유를 재판에서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느꼈다. 원청에 사망사고의 책임이 묻지 못하면 아무도 처벌받지 못한다는 것이고 이러함은 수많은 죽음들을 용인하겠다는 것인데 국민의 생명 안전을 보호할 국가가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되묻고 싶다.   중대재해처벌법부터 지킬 수 있도록, 함께 여러 유족의 손을 잡고 힘을 주며 함께 했다. 마사회 문중원 기수 때도 동국제강 이동우 사건도 디엘이엔씨를 쭉 겪고 느낀 점은 기업은 기업이미지 리스크가 크면 클수록 잘 해결하려는 자세를 보인다는 것이다. 유족에게 사과하고 재발방지대책 수립과 함께 합의를 성의 있게 협상하는 것을 봐왔다. 더 큰 성과는 시민들의 안전 의식 수준이 많이 높아졌다는 것이고 노동자 죽음이 과거에는 대부분 개인의 잘못으로 치부했지만 중대재해처벌법 이후 기업 살인이라는 인식이 크게 변한 것이다. 하지만 이편한세상 아파트를 짓는 디엘이앤씨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7번의 사고로 8명이나 죽었는데 단 한 번도 기소되지 않았다. 아마도 기업이 유족들에게 처벌불원서에 사인을 해야만 합의를 해준다고 협박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동안 죽음이 전혀 줄어들지 않았던 문제였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든 취지마저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또 현재 50인 이하 사업장 유예하자는 경총의 의견을 받아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사망사고 80% 이상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함에도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 힘은 기업을 봐주기 위해 국민의 눈치를 보고 있다. 여기에 민주당도 정치적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사람의 목숨을 놓고 협상하자고 나서고 있다. 이미 2년을 유예했음에도 지금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다시 2년을 더 유예해달라고 함은 앞으로도 의지가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유예는 곧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 시도이기에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중차대한 일이 가장 시급한 민생임을 저들은 왜 망각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수많은 시민을 살리기 위해 내년 초 예정했던 그대로 당장 시행하길 바란다. 뒤늦은 후회는 무엇도 되돌릴 수 없으니 생명과 안전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중대재해처벌법 개악을 막는 일에 모두가 나서길 바란다.  
노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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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안전] 대한민국에서 노동자로 살아가기
*대체텍스트 있음 우리나라가 2014년부터 꾸준하게 유지한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국제노동기본권 등급이다.  No guarantee of rights노동권 미보장 나라 5등급인 ‘No guarantee of rights’를 벗어난 적이 없다. 유일하게 5등급의 하위인 5+등급은 대부분 내전으로 법치주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국가가 받는다. 사실상 우리는 최하위를 받은 것이다. 국제노동조합총연맹은 노동기본권 지표 보고서를 통해 등급에 대한 이유를 설명한다. 올해는 단체행동권 침해에 대한 언급이 많았다. Right to free speech and assembly 언론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 침해작년 6월 전국공공운수노조는 최저임금제와 같은 기본안전운임제 확대를 요구했다. 청와대 주변 시위 허용 방침 이틀 만에 경찰은 이들의 시위를 금지했다. 그리고 몇 달 뒤 정부는 이들의 총파업을 막기 위해 개별 운전자들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리는 긴급법을 발동시켰다.  Violent attacks on workers 노동자에 대한 폭력올해 1월 18일, 경찰과 국가정보원이 민주노총과 보건의료노조 사무실을 압수수색 했다. 단체가 아닌 개인 간부가 대상이었는데, 경찰 수백명이 동원되어 10시간동안 진행되었다. 혐의는 국가보안법 위반이다. 해당 활동가들이 북한 공작원에게 포섭을 당해 하부망을 조직했다는 주장이었다. Right to civil liberties 자유에 대한 권리작년 5월 민주노총 윤택근 수석부위원장이 체포되었다. 총파업을 주도한 혐의였다. 기준이 모호했던 감염병관리법이 집회 자유의 원칙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논란과도 이어진다. 국제운수노동자연맹은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위반이라며 직접 적극 개입하기도 했다.  Union busting 노조 급습작년 6월 전국은행연합회가 세 명의 한국금융산업노조 전직 간부를 해고했다. 2017년 단체교섭 원상회복을 요구하기 위해 한국금융투자협회 사무실을 항의 방문한 사건 때문이었다. 해당 노동자들은 이미 기소되어 징역형과 집행 유예를 선고받았지만, 전국은행연합회는 재발 방지를 위해 이들을 해고한다고 밝혔다. Prosecution of union leaders for participating in strikes 파업에 참여한 노조 간부 기소작년 대우조선해양은 파업을 진행한 전국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를 상대로 470억 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해당 파업은 하청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시작되었다. 이들은 10년 이상 경력이라도 계약직이란 이유로 최저임금만을 받으며 일해야 했다.  2015년 어느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광화문역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의경 컨테이너 맞은편 좁은 도보. 낡은 돗자리 몇 개를 덧댄 바닥에 남루한 차림의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피해 돌아가려 길을 건너다 방향을 바꿔 그들의 돗자리로 다가갔다. 털썩 주저 앉으며 물었다.     “여기 왜 앉아 계시는지 궁금해요.” 무작정 곁으로 온 초면의 청년에게 찬 데 앉지 말라며 자신들의 방석을 전부 내어주시던 그들은 강원도 삼척에서 온 동양시멘트 하청노동자였다. 나는 이 돗자리에서 어디에서도 자세히 듣지 못한, 하지만 너무나 알고 있어야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화 도중 한 행인이 “힘내십시오!” 한마디 건네며 지나쳤다. 그러자 한 분이 벌떡 일어나 그 행인에게 뛰어가서는 허리 숙여 감사인사를 하고 음료수 한 병을 건넸다.  이 장면을 오래도록 또렷이 기억하고자 한다. 그들이 요구한 건 시멘트 대기업의 몰락이 아니었다. 그저 중학생이 된 딸내미에게 떡볶이 사 먹으라 용돈을 주고, 내일 회사에서 잘리진 않을까 걱정하지 않으며 잠드는 밤을 바랐다. 이런 당연한 권리를 위해 투쟁할 수 있는 방법이란 보안직원을 앞세운 꽉 닫힌 본사 건물 앞 길바닥에서 먹고 자는 것 뿐이었다.  그럼에도 무너지지 않고 누군가의 작은 이해와 응원만으로도 힘을 내어 변화를 만드는 노동자의 움직임은 여전히 단단하다. 그들의 돗자리에 찾아가 앉지 않으면 듣지 못할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프랑스 청소노동자들이 파업 투쟁을 하자 파리 시민들은 치워지지 않은 쓰레기를 모아 시청 앞에 쌓아 올렸다. 이는 파업을 진행한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파업의 원인을 제공한 고용 측에게 문제 해결을 촉구한 유명한 일화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대학 청소노동자 파업 당시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빗자루는 알고 있다> 중) 우리는 노동기본권을 위해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그들의 이야기를 궁금해 하거나 응원 한 마디를 건넨 적은 언제일까 떠올려본다. 늦어진 출근길에 욕설을 내뱉거나 찢어지는 스피커 음향에 귀를 틀어막진 않았는지. 그리고 상상한다. 치워지지 않은 쓰레기로 덮인 길거리를 마주한 우리는 과연 누구를 탓했을까? 2015년 동일한 주제와 제목으로 기사를 쓴 적이 있다. 그때도 여전히 나는 노동기본권 최하위 국가에서 살고 있었다. 당시 5등급의 이유는 교직원노조의 법외노조 통보, 공무원노조 설립신고 반려, 철도파업에 대한 정부의 태도, 삼성의 무노조 정책이었다.  8년이 지나가는 오늘 반추하니, 놀랍게도 우리는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물론 아직도 출발선 전이지만. 전국교직원노조는 법외노조 처분 위법 판결을 받았고 전국공무원노조는 9년만에 설립신고증을 교부 받았으며 삼성 임원진은 무노조 경영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우리의 일터가 수많은 투쟁으로 더 안전하게 바뀌고 있다. 그 작지만 거대한 변화의 가치를 잊지 않아야 한다. 다른 일터가 무사(無事)하지 않다면 나의 일터도 무사하지 않다. 그들의 일상이 위험하다면 우리의 일상도 위협받을 수 있다. 우리 모두 똑같은 권리를 가진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나의 안전한 일터를 위해서는 쓰레기가 가득한 거리에서 파업 중인 노동자를 비난하지 않는 시선이 필요하다. 쓰레기를 시청 앞으로 쌓아 올려 서로를 지지할 수 있는 일상 속 연대가 필요하다. 
노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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