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중대재해처벌법과 그럴듯한 말들

2023.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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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정치, 시사, 영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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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

출처 : 중대재해처벌법 해설서 고노부 본문 5쪽
개인사업주, 법인 또는 기관 등의 사업장에서 발생한 중대산업재해와 공중시설 또는 공중교통수단을 운영하거나 위험한 원료 및 제조물을 취급하는 곳에서 발생한 중대시민재해에 대해 개인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및 법인 등을 처벌하여 안전권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출처 : 중대재해처벌법과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자료 - 고노부 본문 8, 9쪽
개인사업주나 경영책임자 등에게 관리상의 조치 의무를 부과한다. 노동자 사망 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자연인에 대한 처벌은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이다. 법인의 경우 50억 원 이하다.

2022년 1월 27일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1년이 넘어가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에 대해 경영계와 노동계 그리고 전문가들이 여러 의견을 주장하고 있는데 살펴보자.

경영계와 노동계

출처 :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 방향에 대한 노사 및 전문가 토론회 개최

경영계는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에 대한 모호성을 이유로 산업현장 혼란이 심각해 시행령 개정을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직업성 질병 범위 축소와 안전 보건 관계 법령을 산업안전보건법 등으로 특정하며 모호한 표현의 삭제를 주장하고 있다. 또한, 법률상 위임근거가 없어도 법 시행에 필요한 사항이면 하위법령에 규정할 수 있게 하여 경영책임자 개념을 구체화하고 실질적 지배, 운영, 관리 책임이 있는 경우에 대한 구체적 판단 기준을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영계 입장에서 모호한 표현은 부담된다. 법 적용의 범위가 넓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영책임자 구체화에 사활을 거는 것으로 생각한다. 현재 내용으로 하면, 기업 사장까지 처벌이 가능하지만 실질적 운영 관리 책임이 있는 경우로 한정 짓는다면 현장 반장 수준에서 처벌이 끝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노동계는 중대재해처벌법상의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는 명확성이 낮지 않고, 중처법 시행 1년도 안 된 법령 개정은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단, 시행령을 개정한다면 직업성 질병의 범위 확대와 안전 보건 관계 법령을 포괄적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증받은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 이행에 대해 의무 이행을 갈음하자는 의견에 대해서 반대를 주장하고 있다.

그럴듯한 말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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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고용노동부의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년 현황 및 과제 주제 토론회

고용노동부 권기섭 차관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도 불구하고 법 적용 대상 기업의 중대재해 사망자 수는 오히려 법 적용 전보다 8명 증가했다”면서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인력 보강이나 예산 투자보다는 경영책임자 처벌을 피하기 위한 법률 컨설팅 수요가 확대되었고, 의무 이행을 위한 광범위한 서류작업에 치중하고 있다”라고 발언했다.

김성룡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송치까지 평균 약 9개월을 넘기고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근로감독관의 업무 부담이 매우 커지고 있고, 현장에서는 높은 처벌을 피하기 위해 로펌이나 고문변호사의 고용 등을 통해 수사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거나, 무조건 혐의를 부인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근로감독관 업무 부담 감소와 24년 50인 미만 확대 적용에 대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고, 근로자의 안전과 생명을 대가로 한 이익은 허용할 수 없다는 원칙 위에 경제적 제재의 방법을 검토하는 것 또한 백안시해서는 안 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 2021년 기준 근로감독관 1인이 2600여 개의 사업장을 담당한다.)

전형배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영계는 안전보건경영체계를 구축하려는 노력보다는 법률을 지킬 수 없다는 집단적 의사표시를 하고 있고, 노동계는 처벌 수준의 강화만을 주장하고 있고 행정의 측면에서는 감독관이 사후적 수사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투입하는 부작용이 생기고 있다“라며 앞의 의견들과 비슷하게 발언했다.

또한, ”수사가 장기화되고 있고 재판 결과도 늦어질 것으로 예상됨을 고려할 때 형사처벌 수준을 높여 산재를 예방하려는 철학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면서 ”현재 9+4개로 구성된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의 수를 줄일 필요가 있고 산안법을 통해 일반 중대재해를 처벌하고 중대재해처벌법은 상습, 반복, 다수 사망사고를 가중처벌하는 등 산업안전법령 체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라고 발언했다.

출처 : 고용노동부,‘지속가능한 중대재해 예방체계’를 주제로 토론회 개최

특히, 권기섭 고용노동부 차관과 전형배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속 가능한 중대재해 예방체계’를 주제로 한 토론회에서 다른 발언도 했다. 기업이 안전보건관리 시스템 구축과 이행이라는 기업의 자율을 강조하며 정부는 뒷받침한다는 의견도 피력했다.( *전형배 교수는 현재 중대재해처벌법령 개선 TF에 속해있다.)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정진우 교수는 “대기업조차 안전역량을 체계적으로 향상시키기보다 당장의 형사 처벌을 피하는 데 관심이 집중되어 자율안전의 의지와 움직임이 오히려 위축되고 있다”라고 발언했다. 그리고 “현재 처벌 위주 산업안전 법령과 정책은 기업 스스로 산업재해를 예방할 수 없게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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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 자체가 기업의 자율적인 사업장 환경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한 중대재해 때문에 생긴 법안이다. 그런데, 관련자 및 전문가들 의견은 다시 기업 자율에 안전을 맡기자는 것 아닌가. 처벌이 없다면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를 기업들이 할 확률이 있는 것인가. 기업의 목적은 이윤 창출이다.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강제 사항이나 처벌 조항이 없다면 기업들은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서 이윤만 창출하고자 할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있는 지금도 처벌을 피하기 위해 로펌을 드나든다고 하지 않나. 기업 자율권 보장을 위해 중대재해처벌법을 개정한다면 반대급부로 노동자들도 얻는 게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정부는 노동자를 위해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기업에게 산업재해 예방에 대한 자율권을 보장하는 것은 노동자의 죽음을 불러올 뿐이다. 법 위반 처벌 수준이 강하기 때문에 안전에 대한 기업의 의지가 약해진다는 논리가 상식적인 것일까? 처벌 수준이 약하다면 안전에 대한 기업의 의지가 강해진다는 논리의 출처는 어디인가. 상식적으로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 법이 문제일까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문제일까.

출처 : 고용노동부 장관, 전국 산업안전보건 감독관과 현장 밀착형 중대재해 감축 방안 격의 없이 논의

중부청 우도윤 광역중대재해관리과장은 “그간의 정책은 사업주에 대한 규제에 집중되어 근로자 개인의 안전 인식 전환에는 한계가 있던 것이 사실”이라며, “범국민 캠페인을 강화하고, 근로자의 안전 인식·행동 제고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 발언은 산업 현장에서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분들에게 모욕적이다. 산업재해가 노동자들의 안전에 대한 인식 부재로 발생했다는 뜻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돈을 벌기 위해 산업 현장에서 일하는 것이지. 죽음을 벌기 위해 산업 현장에 가는 것이 아니다. 산업현장에서 노동자는 철저하게 을의 위치에 있다. 기한이 정해져 있고, 현장 환경이나 분위기도 노동자 개인이 바꿀수 없다. 노동자들이 안전에 대한 충분한 인식을 가지고 있어도 산업 현장 조건이 안전하지 않다면 소용없다. 관계 부처 담당자의 입에서 나온 발언이 아니었어야 했다.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에 대한 여러 의견을 보다 보면 최저임금이 떠오른다. 최저임금 인하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지불 역량이 부족한 영세업자를 이유로 든다. 중대재해처벌법에서는 안전 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을 이유로 들어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을 주장한다. 우리 사회의 일부 전문가들은 왜 이렇게 경영계의 불편을 잘 해결해 주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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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중대재해처벌법도 거의 시행 초기이고, 그동안 고용시장에 만연해 있는 부당한 사안들을 완전히 뒤집고 새롭게 만들어질 수는 없었다는 점에서 여전히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많다는 생각도 물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기업들이 이 중대재해처벌법의 '모호성'을 걸고 넘어지는 부분은 정말 눈가리고 아웅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요. 이 모호성이라는 단어 하나로 산업재해의 책임소재를 불분명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투명하게 보이고, 사람의 생명이 달린 문제에서 이렇게 책임만 회피하려고 하는 태도들이 한국 기업들의 전형적인 (그리고 너무나도 비인간적인) 비용중심적 사고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중대재해처벌법 자체가 기업의 자율적인 사업장 환경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한 중대재해 때문에 생긴 법안이다."

이 문장에 눈길이 가네요. 기업의 자율적인 사업장 환경을 정부가 못마련해줘서 안달이 나있는 듯 한데... 정부가 노동자들도 그만큼 신경써주는 사회가 왔으면.. 하고 바라게 됩니다. 

소위 시장의 자유를 논하는 사람들, 더 나아가서는 한국 사회의 윤리의식의 수준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생명 앞에서 말장난을 하는 사람들은 처벌과 천벌을 받길 원합니다....

처벌 대상이 되는 기업의 요구를 들어보면 논리가 전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규제를 풀어서 처벌 위험을 낮춰야 기업 부담이 줄어들고, 안전한 환경이 갖춰진다'는 주장인데 이 논리대로라면 안전 규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과거에 벌어진 수많은 산업재해가 설명되지 않습니다. 처벌 규정이 강한 해외 국가들에서 산업재해 발생률이 한국보다 현저히 낮은 사실도 기업의 논리로는 설명이 안 됩니다. 결국 기업의 논리가 근거가 없다는 게 입증됐다고 보이는데 왜 아직까지 '기업의 입장을 반영해서 법안을 후퇴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마주해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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