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EBS가 청소노동자를 해고했습니다

2023.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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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조직부장(전 미디어스·미디어오늘 기자)

며칠 전 누군가 청소노동자에게 피로회복제 두 박스를 선물하는 모습을 봤다. 노동자들끼리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힘내세요”라고 응원한 사람은 정규직 노동자였다. 몇 분 뒤에는 정규직 노동조합의 간부가 노동자들을 찾아왔다. 그는 회사에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노조 성명서를 최근 발표했고, 예정된 노사교섭에서도 이 문제를 다룰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참을 노동자들과 함께했다.

EBS(한국교육방송공사) 청소노동자 이야기다. 이 노동자들은 태어나 처음으로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투쟁’이라는 것을 하고 있다. 수백명의 노동자들이 점심식사를 하러 나오는 시간에 청소노동자들은 로비에 모여 피켓을 든다. 피켓에 적힌 내용은 이렇다. “내가 쓸고 닦은 EBS에서 동료들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일방적으로 인원감축하는 EBS 규탄한다.” “노예계약 요구하는 EBS 규탄한다.” “미화노동자도 사람이다.”

구호가 정확히 알려주듯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선 이유는 간단하다. EBS는 5월 들어 청소용역업체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청소노동자 TO를 27명에서 24명으로 3명 줄였다. 그런데 3명 전부 노동조합 간부다. 게다가 평일 노동시간을 줄이고 주말 특근을 아예 없앴는데, 이로 인해 임금이 50만원 이상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해고, 노동강도 강화, 일방적 노동시간 단축과 임금삭감… 누구의 밥줄이 끊길 줄 모르는 상황에서 각자도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EBS 노동자들은 용기 있게 ‘노동조합’으로 뭉쳤다. 그리고 해고된 동료와 함께 ‘투쟁’하는 길을 결심했다.

노동자들이 단단하게 뭉쳤고(공공운수노조 경기지역지부 EBS분회), 정규직 노조가 함께하고(전국언론노동조합 EBS지부), 미디어 전문 언론들이 꾸준히 이 사태를 보도하고 있는 만큼 청소노동자들이 결국 웃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태가 며칠 만에 해결되지는 않을 것 같다. 왜냐면 이 사태는 ‘원청이 주도하는 구조조정-노동개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EBS 사측이 전형적으로 악덕-원청의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EBS는 재정 위기가 심각하다는 이유로 제작비와 제작인력을 줄이고 있고, 청소용역비도 이런 맥락에서 줄였다. 회사의 논리는 대략 이런 식이다. 우리 회사는 오래 전부터 재정 압박을 받아왔다. →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위기상황을 맞았고, 전사적으로 비용절감을 해야 한다. → 고통분담에 예외는 없어야 한다. → 청소노동자들 요구를 받아들이면 비용절감 기조가 흔들린다.

굉장히 익숙한 주장과 논리다.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모든 회사, 모든 원청이 이렇게 선동한다. 그래서 우리는 익숙하게도 이런 선동의 효과를 정확히 안다. EBS의 주장은 고통분담을 해야 할 정규직 노동자 일부 또는 다수에게 이렇게 다가간다. ‘회사가 망해가는데 청소노조가 떼를 쓴다.’ 회사는 또 이런 여론을 명분 삼아 구조조정을 강행할 것이다. 

불과 몇 개월 전 덕성여대의 모습이다. 2022년 청소노동자들은 시급 400원 인상을 요구했다. 그러자 학교는 노동시간을 줄이거나 2022~2026년에 걸쳐 TO를 줄일 것을 요구했다. 청소용역비 예산을 증액할 수 없다는 것이 학교 입장이었다. 노동자들이 투쟁하자 학교는 이렇게 주장했다. ‘모두가 고통분담을 하고 있는데 청소노동자들이 특혜를 바라며 억지농성을 하고 있다.’ 학교는 담화문에 달린 댓글, 게시판에 올라온 노조 비난 글을 명분으로 노동조합과는 대화조차 하지 않았다. 올해 2월 졸업식 때 청소노동자들이 세 시간 동안 길바닥에 드러누워서야 대화가 시작됐고, 일 년이 넘은 갈등이 끝났다. 

나는 EBS가 악덕-원청의 전철을 밟지 않으면 좋겠다. 하지만 지금까지 EBS가 보인 모습은 전형적이다. EBS는 다른 공공기관들이 일정 수준에서 진행한 정규직화를 계속 미뤄왔다. EBS는 다른 기업이 그런 것처럼 청소노동자들을 ‘비용’으로만 다뤘다. EBS는 노동부의 용역노동자 보호지침을 위반했다. EBS는 노동자들 그리고 노동조합과 어떠한 협의조차 하지 않은 채 구조조정-노동개악을 추진했다. EBS는 노동조합 간부들에 대한 표적해고에 “용역업체가 한 일”이라며 뒤로 숨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에 있는 EBS가 왜 충북 청주에 사무실이 있는 직원수 25명의 청소용역업체와 계약했는지, 왜 청소노동자들부터 해고하고 임금을 삭감하는지, 원청이 친 사고인데 왜 원청이 수습할 수 있는 방안이 없다고 주장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다. 

경험적으로 그리고 상식적으로 나는 해고된 노동자들이 결국 현장에 복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궁금한 것은 EBS 청소노동자들과 정규직 노동자들이 앞으로 어떻게 싸워나갈지다. 정규직-비정규직이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하면 좋겠다. 그리고 이들이 EBS의 예산 운용과 경영방향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대응하면 좋겠다. 함께 EBS의 현재를 만들고 미래를 고민하면 좋겠다. 

나는 EBS의 구성원들이 충분히 그럴 역량이 있고, 그렇게 해야 할 책임도 있다고 생각한다. 검색사이트에 ‘EBS+청소노동자’라는 키워드를 입력하면, 그간 EBS가 청소노동자들의 노동환경과 이들의 투쟁을 다룬 뉴스리포트와 다큐멘터리가 결과창을 가득 채운다. 이중 다큐멘터리 <세상을 잇는 다큐 it> 시리즈인 <휴게실, 어디에나 있지만 아무 데도 없는> 편은 대학, 빌딩, 옥외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휴게실에 주목한 내용이다. EBS의 이 다큐멘터리는 청소노동자들의 휴게실을 바꾸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 다큐멘터리의 마지막에는 이례적으로 제작진의 당부가 적혀 있다.

촬영하는 동안 청소노동자들은 행여 들킬세라 그림자처럼 움직여야 했습니다. 얼굴이 알려지면 일자리를 잃을까 봐 인터뷰를 하면서도 신분을 감춰야 했습니다. 취재진을 따라다니는 감시의 눈길도 있었습니다. 당연한 요구를 하면서도 해고되지 않을까 걱정부터 해야 하는 청소노동자들이 방송이 나간 후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제작진의 걱정은 현실이 됐다. 바로 EBS 로비에서 말이다. 노동자들은 해고됐고 불이익을 당했다. 경제위기의 시대, 많은 기업과 원청이 청소·보안 노동자들부터 수를 줄인다. EBS도 그 중 하나다. 그래서 우리는 EBS 문제가 어떻게 정리될지 더 관심을 갖고 연대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고민과 토론을 시작하면 좋겠다. 나는 청소노동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과 토론이 노동자 전체의 권리를 끌어올리는 시작점이라고 믿는다. 

청소노동을 왜 외주화해야 하는가. 직접고용하면 안 되는가.
청소노동자들의 노동은 왜 저임금이어야 하나.
청소노동자의 휴게실은 왜 발밑에 있어야 하나.
청소노동자들의 휴게실에는 왜 창문이 없나.
청소노동자들을 ‘어디에나 있지만 아무 데도 없는’ 존재로 만든 것은 누구인가.
청소노동자들은 왜 다른 구성원들이 출근하기 전 새벽 5~6시에 출근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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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권

구독자 157명

직접 고용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해고가 너무 편법으로 이뤄지는 것 같네요.

공공성을 띤 조직이 모범을 보이지는 못할 망정 악덕 사용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네요. ebs가 그간 견지해온 시선과는 정반대의 행태를 보여주니 당혹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럼에도 제게는 노동자들의 연대가 더 눈에 들어옵니다. 항상 노사갈등이 있을 때마다 노노갈등도 함께 있어왔죠. 하지만 이번 사례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이번 사례가 잘 마무리되어 노노협력의 선례로 남았으면 좋겠네요.

홍명교 비회원

청소노동을 왜 외주화해야 하는가. 직접고용하면 안 되는가.
청소노동자들의 노동은 왜 저임금이어야 하나.
청소노동자의 휴게실은 왜 발밑에 있어야 하나.
청소노동자들의 휴게실에는 왜 창문이 없나.
청소노동자들은 ‘어디에나 있지만 아무 데도 없는’ 존재로 만든 것은 누구인가.
청소노동자들은 왜 다른 구성원들이 출근하기 전 새벽 5~6시에 출근해야 하는가.

미디어운동단위의 연대체인 언론개혁시민연대가 논평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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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경영진이 가장 힘없는 노동자들에게 적자 부담을 전가하려 할 때 청소노동자들은 밥줄이 끊기는 위험을 각오하고 노동조합으로 뭉쳤다. 해고된 동료와 함께 투쟁하겠다는 청소노동자들의 정신이야말로 EBS가 자랑하는 그 어떤 글로벌 석학들의 사상보다도 ‘위대하다.’(Great Minds) 언론연대도 청소노동자와 함께 외친다. “내가 쓸고 닦은 EBS에서 동료들과 일하게 하라!”
https://newpcmr.tistory.com/1015

"청소노동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과 토론이 노동자 전체의 권리를 끌어올리는 시작점"이라는 말씀에 깊이 공감하게 됩니다. '노동의 가치와 권리에 대한 사회적 인정'으로 나아가는 핵심 고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시민들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연대해야 합니다.

길재현 비회원

강력히 처발받기를 바랍니다

저도 항상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아웃소싱을 하지말고 직 고용을 하면 많은 문제가 정말 깔끔하게 해결될 텐데. 근데, 뒤이어 깨달은 것이 돈을 놀리는 사람들은 편하고 싶고 많은 돈을 내주기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직고용을 하게되면 인사 행정 업무의 부담이 약간 증가할 것이고, 또 이것저것 노동법에 따라 수당도 줘야하니 골치아파하겠죠. 아마, 그런 골치아픔 때문에 외주화는 없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딱히 떠오르는 이유는 없습니다. 음. 외주화를 하면 계속 최저임금 수준으로 인력을 다룰수 있기 때문일까요? 아무튼. 2017년 3월 벚꽃이 필적에 대학교내 중앙 정도 되는 위치에서 학교 청소 노동자분들이 시위하고 있는 걸 봤습니다. 지금 ebs와 비슷한 문제였던것 같아요. 그런데, 거기 동참하거나 같이 의견을 내는 학생들이 1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저, 저 사람들 뭐하는 사람이지 하는 눈길로 바라보더라구요. 잠깐이지만 그분들과 같이 목소리를 내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한두명 정도는 더 다가와서 같이 목소리를 낼줄 알았는데 오히려 저를 극성맞은 학생처럼 보는 눈길이 느껴지더라구요. 이건 제 주관적인 느낌이라 아닐수도 있겠습니다만.

얼마전엔 경북대 사범대였던 가요. 학생들이 많은 양의 쓰레기를 버렸고 그게 그대로 방치된 사진이 올라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일반화 시킬순 없지만.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는 사회에서 방치된 존재가 아닌가 싶습니다. 안타까워요. 정말. 조금씩이라도 이런일이 없어져야 하는데 오히려 더 눈에 많이 보이는것 같습니다.

결국 돈 문제일까요. 그들은 400원 정도의 인심도 없는 걸까요. 슬프네요.

EBS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 마음에 걸립니다. EBS, 동덕여대를 비롯해 청소노동자들이 겪은 부당노동행위는 '청소노동을 한다는 것',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라는 것' 외에는 이유가 없어보입니다. 결국 청소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이유로 당하는 차별의 차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EBS 청소노동자분들의 사례는 기존에 있었던 노조탄압, 노조파괴 시도와도 매우 유사하고요)
EBS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를 쉽게 고용하고, 쉽게 해고하려는 회사들이 만드는 문제로 보입니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청소노동자들의 연대, 더 많은 시민과의 연대겠지만 반복적으로 벌어지는 부당노동행위를 제대로 처벌하고,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들도 마련돼야 합니다. 말씀해주신 것처럼 당장 문제가 해결되진 않고, 지난한 싸움을 해야겠지만 반드시 청소노동자들이 웃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해고의 걱정, 열악한 노동환경 때문에 청소노동자들이 고통받지 않는 노동환경이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아이러니하네요. 그동안 EBS는 청소노동자나 소외된 노동자들을 위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든지 이를 비롯한 다양한 사회적인 화두에 대해 문제제기를 해왔었는데, 막상 그 이면에는 철저히 기업논리에 기반하여 청소노동자들을 대우하고 있었다는 게...기업들이 다 거기서 거기라고 하지만은 일방적인 노동시간과 TO 감축 등이 EBS라는 기업에 기대하고 있던 모습은 아니라서 개탄스럽습니다.

"EBS는 다른 기업이 그런 것처럼 청소노동자들을 ‘비용’으로만 다뤘다." 라는 문장이 머리에 계속 남습니다. 사회에 어떤 문제가 생기면 가장 약한고리부터 흔들거리기 마련입니다. 이런 것들을 지탱하기 위해 노동자끼리 뭉치고 연대하는데요. 이런 행위를 부당하다, 눈치 없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행태가 한국 사회에 만연한 것 같습니다. 

EBS가 그동안 다른 방송사에 비해 교양적이고 좋은 이미지를 구축해 왔다고 생각하는데, 내로남불이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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