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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신문이 대안 미디어가 될 수 있을까?
종이신문이 대안 미디어가 될 수 있을까? 이상한 질문이다. 종이신문은 ‘레거시 미디어’(과거에 널리 사용되었으나 현재는 신기술에 밀린 매체)를 상징하는 매체다. 이젠 구시대의 유산이나 다름없는 매체라는 거다. 종이신문의 대안이었던 매체들도 레거시 미디어가 되려는 마당에 종이신문이라니! 우선, 종이신문의 ‘현실’부터 알아보자.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발표한 <2022 언론수용자 조사>에 따르면, 2022년의 종이신문 구독률은 4.6%였다. 텔레비전 뉴스 이용률은 76.8%, 인터넷 포털은 75.1%였다. 절대적으로나 상대적으로나 종이신문의 미디어 영향력은 작다. 종이신문 산업 자체도 쪼그라들고 있다. 동 기관의 <2022 신문산업 실태조사>를 보면, 2021년 종이신문 사업체 수는 2020년 대비 11.5%나 줄어들었다. 매출액 면에서도 심각한 저성장이다. 2021년 매출액은 2012년 대비 3.7% 올랐는데, 같은 기간 동안 소비자물가지수는 약 10.7%P 증가했다. 종이신문의 산업적 영향력은 그야말로 바닥이다.  이미 한물갔는데다 다시 성장할 잠재력도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지금 종이신문을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종이신문이 미디어 산업의 대안이 될 수는 없어도, 개인의 정보 수용 방식의 대안이 될 수는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개인에게 정보 이용 방식의 대안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뉴스를 공급하는 저널리즘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의 뉴스 소비문화에도 큰 위기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뉴스를 보는 것이 굉장히 피로하고 비생산적인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뉴스 보는 게 해가 되는 세상 우선 정보가 너무 많이, 또 빨리 쏟아진다는 것이 문제다. 1986년에 한 명의 사람에게 하루 동안 주어지던 정보량은 85쪽짜리 신문 40개가 지닌 정보량에 맞먹었다. 2007년에는 174개 수준으로 증가했다.[1] 같은 해에 첫 번째 아이폰이 세상에 등장했고, 페이스북도 일반인 대상으로 서비스를 확장했다. 오늘날 개인에게 주어지는 정보량이 어느 정도일지는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그러나 정보의 전반적인 질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늘어난 정보량의 대부분은 SNS, 동영상 플랫폼, 온라인 커뮤니티 등이 차지한다. 이들 출처의 특징은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책임을 묻기 어려운 익명 플랫폼들에서 쏟아지는 허위조작정보들은 거짓의 확산을 넘어 진실의 위기까지 일으키고 있다. 꼭 거짓이 아니어도 무의미하거나 혐오를 담고 있거나 지나치게 자극적인 정보들이 세상을 채우고 있다.  정보의 양은 늘어났으나 질은 떨어진 상황에서 개개인은 정보를 선택적으로 수용하고 처리해야 한다. 그러나 현대의 온라인 미디어 환경은 현명한 정보 처리를 어렵게 한다. 앞서 말한 익명 플랫폼들은 차치하고, 뉴스 플랫폼으로만 한정해서 보아도 정보 환경은 위태하다. 플랫폼은 잠재적 독자의 클릭을 끌어낼 만한 뉴스를 제공하도록 피드 알고리즘을 구성한다. 피드 알고리즘이 작동함에 따라 자극적인 가십거리나, 화제성이 매우 높은 소수의 이슈가 독자에게 주로 제공된다. 독자는 일부 자극적인 이슈에 대해 불필요할 만큼 자세히 알게 되고, 화제성은 적지만 알아야 할 내용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게 된다. 자신의 입장과 일치하는 정보만을 수용하는 확증 편향 문제나, 부정적인 내용에 대해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정 편향 문제도 심각하다. 편향은 실시간이나 다름없는 디지털 미디어의 속도와 결합하며 더욱 큰 악효과를 낳는다. 자극적이고 극단적이며 부정적인 일부 뉴스만을 끊임없이 전달받는다. 결과는 왜곡되고 비관적인 세계관에 갇힌 개인들이다.  지금 우리가 종이신문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정보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희망보다 절망이 가득해 보이는 상황이다. 대안이 없을까? 필자의 제안은 종이신문을 하나의 선택지로 고려해 보자는 것이다. 종이신문에 실린 기사들은 일단 언론사에 의해 한번 선정된 기사들이다. 그러면서도 책임을 특정할 수 있는 전문 기자들에 의해 작성된, 비교적 질이 높은 정보들이다. 뉴스레터 등의 뉴스 다이제스트 서비스들이 이미 존재하긴 하지만, 분량과 깊이 면에서는 종이신문이 앞선다. 정보량의 한정(유의미한 정보의 선택)과 질의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종이신문은 확실한 강점을 지닌다. 자극성이나 편향 등의 문제로부터도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종이신문에는 정치, 사회, 지역, 경제, 문화 등 다양한 영역의 기사들이 고루 배치된다. 부정적인 내용의 기사가 있으면 긍정적인 내용의 기사도 있고, 평소엔 전혀 관심 없는 주장이나 분야를 접하게 되기도 한다. 속도가 비교적 느리다는 것도 장점이다. 재난·안전 관련 뉴스를 제외한 대부분의 속보는 사실 천천히 알게 되어도 큰 상관이 없다. 하루에 한 번 배송되는 종이신문 특성상 남들보다 하루 정도 늦게 기사를 접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 때문에 불편함을 느낀 적은 거의 없다. 오히려 개별 이슈를 차분히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끝없는 알림의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건 덤이다. 정보 수용 상의 장점 말고도 종이신문은 적지 않은 매력을 지니고 있다. 종이신문에는 진지한 기사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시사나 일상을 다룬 만화를 보며 낄낄거릴 수도 있고, 여행지나 문화행사를 추천한 기사를 읽어보며 여가를 계획하는 데에 도움을 받기도 한다. 내가 구독한 신문에서는 작가별 초단편 소설을 기획하여 싣기도 했다. 신문이 ‘인쇄물’이라는 것도 은근한 장점이다. 눈도 비교적 편안하고, 종이의 질감이나 신문을 넘기는 손맛을 느껴보는 재미도 있다. 스크린타임을 줄일 수 있다는 것 자체를 장점으로 여기는 분들도 꽤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신문 외적으로도 효과를 봤는데, 매일 아침 신문을 가져와 하루를 준비하면서 읽는 행위 자체가 일종의 아침 루틴으로 작용하면서 삶에 안정감을 줬다.  중요한 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 종이신문을 마치 예찬하는 듯이 글이 흘러가긴 했으나, 당연히 종이신문에도 한계는 있다. 원칙적으로 저널리즘 자체가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종이신문을 선택하는 것이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가 없다. 속은 그대로인데 껍데기만 바꾼다고 괜찮아질 리 없다. 개인의 변화와는 무관하게 언론계를 향해 자성과 혁신을 요구하는 것은 지속되어야 한다. 종이신문이라는 형식 자체의 단점도 언급해야만 한다. 앞서 종이신문이 편향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절대적 중립이나 객관성은 사실 존재할 수 없고, 각각의 신문사는 판이한 입장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신문사의 선택에서부터 편향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정보의 전달이 일방향적이고, 오보의 수정이 어려우며, 시공간적 제약이 뚜렷하다. 사실은 바로 이러한 단점들 때문에 종이신문이 과거의 유산이 되어버린 것이다. 종이신문은 다른 모든 미디어가 그러하듯이 뚜렷한 장단점을 지니고 있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그러나 무엇을 선택하는지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어떤 선택지들이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선택의 가능성이 곧 변화의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종이신문이 오늘날의 미디어 환경을 바꿀 수 있을까? 원론적으로는 ‘알 수 없다’이고 정론적으로는 ‘어림도 없다’. 그러나 이미 종이신문은 우리가 지니고 있는 대안이다. 거시적인 구조가 아무리 나빠진다 해도,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1]  Hilbert, M., & López, P. (2011). The World’s Technological Capacity to Store, Communicate, and Compute Information. Science, 332(6025), 60–65. 
언론 공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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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의 독이 든 ‘사과’
박민 KBS 사장이 임명되자마자 방송 프로그램이 폐지되거나 진행자가 교체되었습니다. 도대체 KBS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리했습니다. 1. 김의철 사장 해임 9월 12일, KBS 이사회는 적자로 인한 경영 악화, 리더십 상실, 불공정 편향 방송, 수신료 분리징수 관련 직무유기, 고용안정 관련 노사합의를 이사회에 보고하지 않은 점 등을 이유로 김의철 사장을 해임제청 표결에 부쳤습니다. 곧바로, 대통령 재가에 의해 김의철 사장은 해임되었습니다. 2. 박민 KBS 사장 임명 김의철 사장이 해임된 후 10월 13일 KBS 이사회 11명 과반인 여권 인사 6명 찬성으로 박민 문화일보 편집국장이 KBS 사장 최종 후보로 결정되었습니다. 박민 후보자는 방송 경험 없는 신문 기자 출신입니다. 박민 후보자는 수차례의 과태료와 지방세 체납 이력도 가지고 있습니다. 3. 폐지, 교체, 인사 박민 사장은 취임식에서 재창조 수준의 조직 통폐합과 인력 재배치를 주저해선 안된다는 개혁을 요구하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전략기획실장, 보도본부장 등 주요 간부 전원에 대한 인사를 단행했습니다. 기존에 진행하던 프로그램이 폐지되고 진행자 교체도 이뤄졌습니다. 폐지된 프로그램은 대표적으로 ‘더 라이브’와 ‘주진우 라이브’가 있습니다. 주진우 라이브의 진행자 주진우 기자도 13일에 급작스레 하차 통보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해, 12일 오후에 라디오센터장 내정자가 주진우 라이브 담당 PD에게 전화를 걸어 본인이 센터장을 맡고, 주진우 기자가 하차하게 되었다는 내용의 통보 정황을 밝힌 라디오 조합원의 입장도 있었습니다. (출처 :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KBS 보도 내용에 대해 전국언론노동조합 KBS 본부는 위 사례들이 공정성이 훼손된 뉴스였는지 이견이 있음에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내보낸 것이 문제라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오세훈 후보 내곡동 땅 의혹 검증 연속 보도 사례를 들며, 국민의힘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취재진을 고발했지만 검찰이 무혐의를 처분했다고 밝히며 공정성을 훼손한 보도라고 하는 수뇌부 입장에 대해 비판했습니다. 또한, 문제라고 지적한 보도와 관련해 회사와 취재진들에게 공격이 들어오는 상황에서 KBS 스스로가 잘못된 보도라고 인정해버려 취재진은 대응이 어렵다는 입장도 밝혔습니다. 박민 사장의 KBS에서 이런 사태가 있기 전에 최경영, 홍사훈 기자는 KBS를 떠났습니다. 이런 사태가 올 것이란 걸 예상했던 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KBS 사장이 한 번 바뀌면 임원들 월급도 바뀌고, KBS 9시 뉴스 앵커도 바뀌고, 그 외 프로그램 진행자도 바뀝니다. 심지어 프로그램이 비정상적인 의사 결정 구조를 거쳐 폐지됩니다.이런 일을 이명박 정권 때부터 봐왔던 것 같습니다.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 KBS 사장 자리는 늘 뜨거운 감자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내부에서조차 응원받지 못하고 비판만 받고 있는 KBS입니다. KBS의 미래는 당분간 암울할 것으로 보입니다. KBS 박민 사장의 대국민 사과가 시청자들과 KBS에게 독이 든 ‘사과’였을지 아닌지 그것을 판단하기 위해선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해 보이진 않습니다. 박민 사장의 임명 다음 날 방송된 KBS NEWS 9의 시작 멘트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KBS는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뉴스를 통해 정확하고 편견 없는 정보를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을 공영방송의 가장 중요한 책무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공영방송의 정체성을 흔들었던 정파성 논란을 극복하고 앞으로 공영성을 최우선 가치로 하는 뉴스 프로그램으로 방송에 시청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 노력하겠습니다. 시청자 여러분들도 KBS 변화를 함께 지켜보시면서 냉철한 비판 애정 어린 질책 아낌없이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KBS의 앞길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언론 공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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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를 다루는 언론의 태도
참사, 이 단어를 국어사전에 검색하면 다음과 같은 뜻이 나온다. 참사 : 비참하고 끔찍한 일 참사 : 비참하게 죽음 풀이하면 비참하고 끔찍한 일로 인한 인명피해와 죽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최근 10년 들어 국민들의 기억 속에 지워지지 않는 참사가 있다. 2014년 4월 16일에 벌어진 세월호 참사, 2022년 10월 29일에 발생한 이태원 참사다.  세월호 참사에서는 304명의 사람이 죽었다. 299명의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과 5명의 어른들이었다. 어른들 중에는 학생들을 끝까지 구하려다 빠져나오지 못한 비정규직 교사분들까지 있다. 이태원 참사에서는 총 158명의 사람들이 죽었고, 그 중에는 외국인도 포함되어 있다. 명단 공개 논란이 있었지만, 유족의 동의를 받아 명단이 공개된 바 있다. 참사 유족들은 지난 9월에 길에서 두 번째 명절을 보냈다. 한편, 참사의 책임 소재는 아직도 다투고 있다.  또다른 참사를 막기 위해선, 왜 그 참사가 일어났는지, 막을 순 없었는지, 예방할 순 없었는지, 뼈가 으스러지는 그 참사를 겪고난 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다뤄야 한다. 떠나간 사람들을 되살아나게 할 수 없다면, 그와 비슷한 또다른 참사가 나타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구조적 문제를 찾고, 그 구조를 바꾸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 역할은 언론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태원 참사 당시를 보면, 언론의 태도는 실망스럽다. 언론은 참사 원인을 개인에게 찾았다. 개인이 참사의 원인이라는 듯이. 토끼남을 찾아라, 정치 공방으로 어어지는 참사와 잇고 있는 언론 이태원 참사 당시, 토끼띠를 한 남자를 찾아라라는 기사가 많았다. 또끼띠를 한 사람이 앞 사람을 밀치자, 사람들이 줄줄이 쓰러졌고 그로 인해 참사가 발생했다는 이야기했다. 당사자는 마녀사냥이라고 말했고, 사고 당시 합정역에 있었다고 반박했다. 그 근거로 자세한 교통비 지출 내역까지 공개했다. 토끼띠 남으로 지목된 당사자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나와 억울하다는 입장을 말한 바 있다. 문제 원인이 어느 한 개인에게 ‘만' 있다면, 그 개인을 쫓고 추궁하고, 책임 소재를 묻는 건 중요하다. 하지만, 대개의 참사는 어느 한 개인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쌓여온 원인이 있고,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참사의 트리거가 어느 개인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원인이 그에게만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참사 당시 언론이 문제의 원인을 찾고, 분석하고, 알려서 책임자의 책임을 말해야 하는 이유다. 참사 당시 책임이 있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찰 많이 동원됐어도 일어났을 참사"라며 책임을 회피했고, 윤석열 대통령은 압사 한 것을 두고 “압사? 뇌진탕 그런 게 있었겠지” “여기서 이렇게 많이 죽었다고?” 라며 참사를 추모하는 모습도, 원인을 제대로 분석하려는 책임도 찾아볼 수 없는 말을 했다. 이러한 막말은 정치 공방으로 이어졌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참사 영업이라는 말이 나오는 사이, 유족들 고통은 더더욱 심해지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막을 순 없었는지, 대비책은 없는지를 다루는 기사는 찾기가 어렵다. 언론 역시 이런 정치 공방만을 주목해서 다루고 있다. 참사 당시에도 오히려 해외 언론들이 이에 대한 분석과 원인을 말하는 모양새였다. 해외가 더 분석하고, 알리는 참사 워싱턴 포스트는 이태원 참사 이후, 이 일이 왜 발생했는지 다루는 기사를 냈다. 해당 기사에서는 이태원 참사는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며, 시간대 별로 참사 상황을 분석했다. 또한, 당시 투입된 경찰 인력에 대한 내용과 함께 경찰의 수직적 구조로 인해 적절한 예방책을 마련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도 내놨다. 한국 경찰의 수직적 조직 문화 때문에 적절한 예방책을 마련하기 어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의 경찰 교육 전문가들은 법적 근거나 매뉴얼에 기반한 예방 의무가 불확실한 사건의 경우 일선 경찰이 나설 동기가 적다고 말했다. 또한 매뉴얼에 없는 내용을 예방 목적으로 제시하기 힘든 경직된 구조라고 꼬집었다.군중 전문가인 마틴 아모스 영국 노섬브리아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군중 압착이 이미 진행된 상황에서는, 사망자 규모를 줄이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적었을 것”이라고 당시 상황을 분석했다. “정부는 이런 일이 처음부터 발생하지 않게 예방하는 데 최선을 다했어야 합니다.” 뉴욕타임스 역시 기사를 다뤘었다. 기사는 이대로 두면 사람이 죽을 거라는 경고가 몇 년 전부터 있었으며, 당시 용산경찰서가 서울경찰청에 인력 증원 요청을 했으나 집해로 인해 충원이 어렵다고 거절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당시 용산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시위 집회가 있었는데, 집회 참석 인원은 4,700명이었다. 반면, 1마일 떨어진 이태원에는 13만 명이 모였다.  137명의 경찰 배치 인력 중 마약 전담 형사가 52명이었다는 내용, 그리고 단 한 명의 마약범도 잡지 못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나마 마약 전담 형사들은 10시 48분에 구조에 투입됐고, 11시 1분에 대통령에게 참사 소식이 전해지고, 11시 20분에 행안부가 재난문자를 발송, 11시 40분에 집회 투입 경찰 인원이 현장에 투입됐다는 자세한 이야기를 내놨다. 무엇보다 주목 된 건 이들의 분석이 어느 국내 기사에서도 보지 못한 내용을 다뤘다는 점과 충분히 막을 수 있던 참사라는 것을 지목했다는 점이었다. 비슷한 사고를 인도는 이렇게 다뤘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했을 때, 인도 역시 이태원 참사를 다뤘다. 하지만, 더 주목해야 할 건 그 다음날 인도에서 발생한 사고다. 이태원 참사 하루 뒤인 10월 30일, 인도 구자라뜨 주 모르비(Morbi) 다리가 붕괴됐고, 이로 인해 140명 이상이 사망했다. 기사의 영상을 보면, 한 사람이 다리를 흔드는 걸 볼 수 있다. 그 뒤 다리가 무너진다. 연합뉴스는 해당 영상의 썸네일을 “한 청년이 몸을 흔들자 벌어지는 끔찍한 사고"라고 짓고 보도했다. 어느 한 사람이 몸을 흔든다고 해서 다리가 무너지지는 않는다. 애초부터 부실한 다리였고,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발생한 참사였다. 참사의 원인을 개인에게 몰아가려는 ‘마녀사냥'이 제대로 보이는 썸네일이다. 우리나라 언론이 참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고 생각한다. 인도 언론은 어떨까? 그들도 참사를 한 개인에게 몰아가는 마냐사냥을 했을까? 아니다. 그들은 원인 분석을 하고, 해당 문제에 대한 책임을 무는 방향으로 기사를 썼다. 기사에 따르면, 무너진 다리는 1877년에 지어졌고, 2022년에 7개월 간 다리 보수공사를 했다. 하지만, 안전 우려가 있어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데 주의가 필요했다. 이러한 우려가 현실로 일어나 결국 참사가 일어났고, 책임자로 지목된 담당 회사 Oreva는 그 책임을 인정했다. 이러한 책임 인정까지 인도 언론은 어째서 보수공사 한 다리가 무너지게 됐는지, 부실 공사는 없었는지, 40년 간 책임을 맡았던 Oreva와 다리가 있던 구자르뜨 주에서 장기 집권하던 BJP 정부와 거래가 있었던 건 아닌지 계속해서 보도했다. 원인을 개인에게 찾기 보다, 구조적인 진상 규명과 구조적 문제 파악에 초점을 맞춘 보도였다. 정치적 이슈화도, 개인의 마녀화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언론과 시민의 역할은 언론이 원인을 분석하고, 구조적 문제를 찾아 지적해서 바뀐다고 해도 또다른 참사가 발생하지 않는 건 아니다. 어쩌면, 아니 반드시 발생할 것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어차피 발생할 것이라며 안일하게 대응하기 보다는 끊임없이 대비하고 예방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단순 마녀사냥과 정치적 이슈로 몰아갈 것인가, 아니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참사 원인을 규명하고 예방할 것인가. 진짜 언론이라면 나는 후자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사와 재난을 다루는 언론이 부디, 다시는 똑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진상 규명과 원인 분석, 문제 파악에 더 집중했으면 좋겠다. 이태원 참사가 곧 있으면 1년을 맞이한다. 1년을 돌아보고 참사 이후 우리나라의 시스템은 어떻게 바꼈는지, 다시 비슷한 상황에서도 동일한 참사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지, 언론은 그 문제를 제대로 다루고 있는지 지켜보는 것도 시민의 역할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언론 공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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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레기도 기자도 독자가 만든다
돈 때문에 만들어진 기레기? 기레기는 누가 만들었을까? 언론사와 기자들이 기레기를 자처한 것일까? 아니면 무분별하게 받아들인 독자들이 만든 것일까? 어려운 문제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혹은 신이 인간을 만들었냐, 인간이 신을 만들었냐 같은 질문이다. 이에 대한 흥미로운 글이 있다.<이 글에는 '기레기'가 스물여섯 번 나옵니다> 글쓴이는 기레기를 만든 건 독자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지금 거대한 방송국이나 신문사의 기레기들이 다른 매체들보다 힘이 세다는 이유로 돈 받아먹으며 기레기짓을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품위 있는 기자들'에게 힘을 싣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기레기는 우리가 키운 셈이다.” 요약하면, 분명 좋은 매체와 기자들이 많지만 독자들이 이들을 모르고, 거대 언론 매체에서 쓰는 기사들만 쉽게 쉽게 접하기 때문에 기레기들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구조적인 문제도 지적한다. 독자들이 기사를 공짜로 보는 구조에서 언론사는 광고에 의지할 수 밖에 없고,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광고주에 맞는 기사를 쓸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언론사의 편집권과 경영권은 분명 별개로 되어야 하는 게 맞지만, 100% 별개로 하는 건 말할 때만 쉽다. 돈을 주는 사람에게 대놓고 펜 끝을 들이밀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밥 그릇 사라지는 데 별 수 없다. 실제 언론들은 포털에 기사 띄우기와 조회수로서 생존을 갈구하고 있다 기사 조회수가 높기 위해선 자극적인 기사 제목을 달아 이목을 끌어야 한다. 조회수 경쟁이며, 거의 유일한 생존 전략처럼 됐다. 물론 생존전략에는 조회수만 있지 않다. 언론사 자체적으로 큰 돈을 받아 컨퍼런스를 열기도 하고, 상금을 내걸고 시상을 하기도 한다. 언론사가 상을 만들어 시상하고, 그에 대한 기사를 써주고. 기업 입장에서는 안 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실제 이러한 문제는 다수 문제로 지적된 바가 있었다. 하지만,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다. 돈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상, 시민이 바라는 좋은 콘텐츠는 나오기 어려울 수도 있다. 대안적인 시도 몇 년 전이다. 예전에 모 단체에서 같이 활동하던 형을 우연히 광화문에서 만났다. 그 형은 영상을 기반으로 사회문제를 말하는 활동을 하고 있었다. 채널명은 <쑈싸이어티>였다. 당시 포켓몬GO가 유형이었는데, 포켓몬의 주인공인 지우 차림을 했던게 기억난다. 당시 영상이다. 아쉽게도 현재는 그 채널이 운영되지 않는다. 마지막 영상 업로드가 6년 전이다. 그 뒤 내가 알던 형은 동물권 단체에서 일하다가, 요즘은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자급을 말하는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 형과 함께 활동하던 분도 현재 모 매체에서 기자로 일하며 동물 관련 취재를 중점으로 하고 계셨다. 해당 채널이 만들어진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신문과 방송을 보지 않는 시민들을 위한 뉴스를 만들고 싶던 게 아닐까 싶다. 나는 이런 시도가 기성 매체의 틀에서 벗어나 다르게 접근하고, 다른 시각에서 알려져야 할 내용들을 대안적인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시도는 좋지만, 이들도 어려움을 겪는다. 기성 언론이 하지 않는 걸 하기 위해선 콘텐츠를 잘 만들어야 하고, 그 만한 투자를 해야 한다. 돈이 든다는 말이다. 기자로 하여금 취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고, 콘텐츠가 잘 나와야 하고 잘 알려져야 한다. 아무리 좋은 콘텐츠도 세상에 보여지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좋은 콘텐츠와 대안적인 시도를 위해서 활동하는 대안언론도 돈이 없다면, 지속하기 어려운 환경인 것이다. 앞서 <쑈사이어티>를 운영했던 형이 동물권 단체로 이직하며 썼든 글에서도, 돈이 가장 힘들었다고 썼던 게 기억난다. 시민들이 후원하면, 대안언론이 설 수 있지 않을까 출처 : 모 대안 언론사의 방침. 한겨레 21 챕쳐 앞서 독자들이 공짜로 기사를 읽기 때문에 기레기가 만들어진다는 내용을 살펴봤다. 간단하게만 생각하면, 시민들이 후원을 한다면 양질의 기사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기성 언론에서 하지 않는 취재, 기성 언론이 주목하지 않는 내용을 듣고, 말하고, 쓰는 언론이 많아지고 그런 언론을 시민들이 후원한다면 시민이 바라는 양질의 기사와 콘텐츠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 역시도 이상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하지만,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 기준에 대안언론에서 취재를 하지 않았다면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이야기들을 대안언론에서 주목하게 다뤘다. 기성 언론이라면 광고주 목에 칼을 들이미는 꼴이라며 꺼렸을지도 모르는 일도 기사로 썼다.  나 역시도 대안 언론에 후원했었다. 내가 원하는 기사를 썼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없었다. 그저 세상에 나와야 할 이야기를 썼으면 좋겠다는 마음이고, 그 작은 돈이 약간의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후원한다. 물론 대안언론이라고 해서 완벽하지 않다. 그들도 실수를 하고, 팩트 체크가 미비한 경우도 있다. 그런 잘못을 옹호할 마음은 없다. 기성에서 하지 않는 일을 한다면, 더 철저하게 기성보다 잘 해야 한다. 기성 보다 더 잘하는 언론, 기성 보다 더 확실한 언론이 대안 언론으로부터 나왔으면 좋겠다. 기레기도, 기자도 독자가 만들 수 있다. 기자가 더 많아지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언론 공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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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를 뉴스에서 더 많이 보고 싶다
캠페인즈팀 영상을 통해 직접 캠페이너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요! A신문 2023년 9월 14일 목요일 특집면에 아흔살 신달막 할머니가 등장했다. 서울 가는 기차를 빼앗겼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효율성’의 피해자였다. 할머니가 사는 곳은 평균 나이 80살, 주민 67가구가 사는 전남 보성군 득량면 오봉2리. 이 마을 주변엔 기차역 두 곳이 있었는데, 2021년 8월 하루 한 번씩 이 역에 오던 용산행 무궁화호가 사라졌다. 이에 대해 한국철도공사는 ‘적자 노선이라 운영 효율성이 낮다’는 근거를 댔다. 고속열차(KTX) 수혜 지역이 확대 되면서 수요가 감소할 것이기 때문에, 장거리 무궁화호를 없애(‘효율화’라고 표현한다) 영업 손익 개선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필요하면 KTX가 서는 역으로 가서 환승한 뒤 서울 가란 뜻이다. 그런데 이게 말은 쉽지 고령의 시골 마을 주민들이 따르기엔 여간 버거운 게 아니다. 그렇게 할머니는 서울서 있던 남편 제사나 아들 생일, 병원 방문 등의 일상을 빼앗겼다.   B신문 2023년 9월 16일 토요일 6면 머리기사로 ‘SRT’ 감축 불편의 목소리가 크지 않다는 내용이 실렸다. SRT는 공기업 ‘주식회사 SR’이 운영하는 열차(SR Train)로, 서울시 강남구에 위치한 수서역에서 출발하는 고속철도들을 운영하고 있다. B신문 해당 기사는 SRT가 운행을 감축했는데 불편하다는 시민 목소리가 크지 않다는 내용이다. B신문은 누구를 취재해서 이런 기사를 썼을까? 자세한 편집국 상황은 알 수 없지만 기사에 나온 바로는 철도노조(전국철도노동조합의 준말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산하의 철도산업 노동조합이다)와 국토교통부를 ‘불편 없음’의 근거로 삼은 모양이다. B신문은 [철도노조는 시민 불편에 대해 취합된 게 없다고 했고, 국토부도 “이달 1일 시행해 데이터를 뽑기 힘든 상황”이라고 설명한다. 시민 불편의 실체가 아직까지는 구체적이지 않은 셈이다.]라고 썼다.   어느 지역에선 선택할 수 있는 SRT 좌석이 줄어든다. 그런데 B신문 기사처럼 불편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정말 없을까? B신문에 언급된 줄어든다는 노선은 경부선 SRT 열차다. SRT는 기존에 경부선·호남선에서만 운영되고 있었는데 지난 9월 1일부터 SR이 경전·전라·동해선으로 노선을 확대했다. 그러나 열차 수는 정해져 있어서 3개 노선을 추가하는 만큼 기존 2개 노선에서 운행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경전·전라·동해선이 신설된 만큼 진주·여수·포항 쪽 주민들은 서울 강남권으로 바로 가기에 편리해졌다. 그러나 경부선을 이용하는 주민들의 선택권은 줄어들었다. 자신들의 선택권이 줄어들었다는 데에 대해 모를 수도 있고, 수서행 고속철도를 지속적으로 이용하는 주민이 적을 수도 있다. 그러나 철도노조와 국토교통부의 취합된 불편 없음, 취합된 데이터 없음을 가지고 불편의 목소리가 크지 않다고, 언론은 진정 말할 수 있는가?   A신문을 칭찬하려는 것이 아니다. A신문과 B신문 둘 다 이러한 기사 유형을 대표하는 기사로 봐주면 좋겠다. A신문은 시골 마을에 사는 여성 노인 주민의 사례를 들어 철도의 공공성에 대해 일깨운다. 사실 SRT 감축과 사라진 용산행 무궁화호는 큰 관련성이 있다. 둘은 분명 ‘열차’이고 철도가 깔린 지역 주민들의 발이 되어주는 공공성 높은 대중교통인데, 운영 주체가 다르다. 무궁화호는 한국철도공사가, SRT는 SR이 운영한다. SR은 2011년 이명박 정부의 ‘수도권 고속철도 운영 민간 개방’ 기조 이후 설립된 회사다. 당시 이를 철도 민영화 첫 단추로 보는 우려가 컸는데 이러한 걱정의 시선은 여전하다. SR은 흑자가 나는 고속철도, SRT만을 운영하기 때문이다. 고속철도 자체가 흑자가 나는 이른바 알짜배기 노선이다. 수서행 고속철도 운영을 떼어준 한국철도공사는, 수익 성적에서 SR과 차이가 난다. SR은 코로나19 시기인 2020년, 2021년 외에 모두 흑자를 냈지만 한국철도공사는 계속해서 적자다.   흑자가 예상되는 SRT를 떼어준 한국철도공사는, 적자가 나는 걸 보면서 무궁화호 운행을 줄인다. 무궁화호 운행 감소는 오봉2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철도공사는 무궁화호 운행을 전체적으로 줄여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예정이다. 한국철도공사의 경우 KTX에서 흑자가 나고 무궁화호와 새마을호에서는 적자가 난다. 한국철도공사와 SR이 별도의 회사로 운영됨에 따라 중복 비용이 발생하고, 한국철도공사의 적자가 눈에 띄면서 이용 수요는 적지만 국민의 철도 공공성 보장을 위해선 필요한 이른바 ‘적자노선’을 자꾸 감축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SRT 감축 또한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철도노조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수서행 KTX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철도공사와 SR로 쪼개진 철도 운영에 대해 제동을 거는 장치로 볼 수 있다. 정부의 이 같은 철도 운영으로 왜 국민들은 열차를 가지고 제로섬 게임을 해야 하는가?   노동조합과 정부에서 취재 그치지 말아야 언론 신뢰를 말하는 공간에서 열차 이야기가 길었다. B신문의 경우처럼 정부나, 자신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는 결사체가 있는 이들의 말에서 취재와 보도가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노동조합의 경우 기울어진 한국 언론 지형에서 가장 많이 소외받고 정치적 프레임에 갇혀야 했던 집단 중 하나다. 이들을 취재하지 말라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노동조합과 정부에서 시민 불편의 목소리를 찾아다닌 것이 의아하다는 뜻이다. 언론은 그동안 누구에 의해서도 대표되지 않았고 보호받지 않았던 시민들을 더 많이 찾아다녀야 한다. 흔히 우리나라 언론 신뢰도는 매우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이유를 ‘뉴스의 정치적 편향성’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때 한국 언론이 정치적 편향성을 다 같이 벗어나자고 결의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그 뒤에 우리가 취해야 할 것은 공정성, 균형성, 중립 등인가? 아니다.   언론 신뢰는 언론이 공공성 회복으로 보도 방향을 완전히 전환하고, 그에 따라 취재원과 수용자를 철저히 재설정 하는 것과 관련 있다. 영미권 커뮤니케이션 학자 셋이 저널리즘의 위기를 진단하고 개혁 또는 혁명 두 가지 해법을 제시하는 책 <저널리즘 선언(오월의봄)>에서, 학자들은 저널리즘이 스스로를 개혁하고자 한다면 △포용성 △사회정의 △코스모폴리타니즘cosmopolitanism이라는 대안적 규범을 수용하라고 조언한다. 언론계에서 흔히 인용되는 정확성, 진실성, 책임성, 독립성, 투명성, 객관성, 균등성, 기계적 중립 등은 규범적 상상 속에서 존재할 뿐 우리의 생각처럼 명확하지도, 실제 현장에서 적용되지도,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어떤 의의도 없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그러므로 전통적인 주류 언론에서 규범처럼 지켜왔던 것들로부터 소외되고 억압받았던 사람들을 포함하는 저널리즘(포용성), 지면에 싣기 적합한 뉴스가 아닌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뉴스를 우선하는 저널리즘(사회정의), 낯설거나 멀리 떨어져 있다고 여겨온 장소에서 뉴스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호기심을 갖는 저널리즘(코스모폴리타니즘)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덧붙여 취재원으로도 독자·소비자로도 여기지 않았던 수용자들과 관계 개선을 해야 한다고도 조언한다. 그러기 위해 수용자가 있는 바로 그곳에서 그들을 만나야 하며, 수용자의 뉴스 관련 의례에 직접 참여해야 한다고도 말한다.   그런 지점에서 B신문 기사는 우리나라 언론에서 보기 쉬운 평범한 기사이다. 기자들이 자주 찾아가고 기자들을 자주 상대하는 조직들은, 마련해 둔 ‘홍보실’이 있고 기자들은 그들을 상대해 취재하고 기사를 쓴다. 그렇기 때문에 B라는 언론사만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저런 부류의 기사엔 공공성에서 소외된 시민의 불편이 없다. 실제로 불편함이 없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주류 언론에서 규범처럼 써왔던 취재원이 아닌, 소외돼 왔던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정말 불편함이 없다’는 말이 나와야 한다.   한계를 핑계로 저널리즘을 포기하시겠습니까? 정파를 핑계로 신뢰를 포기하시겠습니까? 이런 대안을 내놓으면 시간 부족, 인력 부족 이야기가 따라붙는다. 뉴미디어 환경에서 경쟁에 내몰려 있고, 올드미디어라고 하더라도 마감 시간이 없는 것은 아니다. 편집국 인원수가 몇천몇만 명인 것도 아니기 때문에 철도노조 파업 기사 하나를 쓴다고 파업으로 인한 시민 불편을 밖에 나가서 계속해서 인터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라고 한다면 벌써 저널리즘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이 아닐까? 언론 신뢰를 포기하겠다면 지금처럼 쓰면 된다. 그러면 변화할 수 없다. 언론의 정치적 편향성은 더욱 커져야 하고(정치가 극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엘리트에 의존하는 보도 행태 또한 계속된다. 그렇게 대중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이 글에서 정치적 편향을 포함한 언론의 권력 편향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다. 사실 현재의 언론은 시민에게서 신뢰받지 않더라도 잘 먹고 잘살 수 있다. 운영비가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시민 후원이나 구독료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언론사의 경우 다를 수 있겠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그런 언론은 몇 없는 데다 최근 KBS 수신료 분리징수를 둘러싼 논의를 볼 때 다수 시민이 ‘신뢰할 만한 언론 키우기’에 관심 있다고 확신하기 어렵다. 시민들은 언론이 편향돼 있는 점이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자신이 뉴스를 선택할 때 편향된 상태로 고르기도 한다. 언론은 시민을, 시민은 언론을 필요로 하지 않는 시대인 걸까? 그러나 그런 우울한 시대로 정의하고 좌절하고 마는 것이 이 글의 목표는 아닐뿐더러, 시민으로서 우리의 역할도 아니다.   P.S. A신문의 해당 특집면은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다. A신문이 너무나 뛰어나서 쓸 수 있었던 기사는 아니었던 점을 말해두고 싶다. 다만 우리는 이 노동조합이 우리 사회 공공성을 지켜내는 데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 A신문과 노동조합이 신달막 할머니를 포함한 오봉2리의 사정을 알 수 있었던 것은 주민들 목소리를 곁에서 듣던 철도노동자 덕분인 것으로 보인다. 특집면 기사에 그의 이름이 등장한다.
언론 공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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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가 뭐길래
“저건 가짜뉴스다”  트럼프 시대로 회귀한 느낌이다. 최근 언론과 정부를 달구고 있는 마법의 언어, ‘가짜뉴스’ 때문이다. 내 편과 네 편으로 나눌 수 있는 마법의 단어다. “가짜뉴스” 한 마디면 합리적인 토론은 사라지고, 공론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가짜뉴스 유행을 일으킨 트럼프가 백악관에 있는 동안 사회적으로 수많은 갈등이 불거졌고, 현재까지도 봉합되지 않았다. 그 네 글자가 자유민주주의의 최전선에 있는 미국에 주는 악영향은 강력했다. 갈등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정치 속성 상 가짜뉴스는 매력적인 단어였을 것이다. 지지층을 결합하고, 위기를 타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위기 국면 때마다 ‘가짜뉴스 프레임’을 잡는 것도 정치공학적 측면에서 보면 타당한 결정이다. 문제는 정부마저 가짜뉴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대통령에게 당적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국민의 대표다. 여야가 의석수를 두고 무한 갈등을 벌일 때 대통령은 그 이상을 바라봐야 한다. 여야의 싸움은 지지층 간의 갈등이지만, 대통령이 중심이 된다면 국민이 분열될 수 있다. 귀걸이도 코걸이도 되는 ‘가짜뉴스’ 우선 가짜뉴스가 정확히 뭔지 알아야 한다. 가짜뉴스라는 단어의 뜻을 알고 사용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단언컨대, 없다. 정확한 뜻이 없기 때문.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된다. 우선 서울서부지방법원은 한겨레와 극우성향 기독교단체 간 소송에서 가짜뉴스를 “핵심적인 요소는 내용의 진실성 여부와 의도성”이라고 했다. 악의적인 목적으로 만든 허위정보라는 거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은 가짜뉴스를 “정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언론 보도의 형식을 하고 유포된 거짓 정보”라고 했다. 언론재단 기준대로라면 법적인 의미의 언론사 보도는 ‘가짜뉴스’가 될 수 없다. 언론사 보도는 ‘언론 보도 형식’이 아니라 보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결국 ‘의도성’이 핵심이지만, 당사자가 아닌 이상 의도성을 확신하기 어렵다. 의도가 있을 거라고 추정할 뿐이다. 결국 가짜뉴스는 특정 정보를 ‘의도성 있는 정보’로 매도하는 무기로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최근 정부가 가짜뉴스를 주요 정책 의제로 삼는 것에 우려를 표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언론 보도에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 단정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 자신을 향한 비판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메시지로 읽힐 여지도 있다. 되돌아보면, 시작은 지난해 9월 있었던 ‘MBC 바이든-날리면’ 사건이었다. 진실은 대통령밖에 모른다. 다만 정말 억울했다면, MBC가 오보를 낸 것이라면, 조금 더 세련되게 대응하는 방법도 있었을 거다. 설명을 통해서 말이다. 그러나 정부는 ‘가짜뉴스’라는 말로 사건을 단순화했다. 외교적·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의문이 많았지만, 가짜뉴스라는 말이 나온 순간 모든 것이 갈등이 됐다. MBC는 악의적 보도를 한 언론사로 규정됐다. 정의도 안 된 가짜뉴스로 정책 만드는 정부 가짜뉴스가 특정 언론을 비판하는 용도로만 사용됐다면 그나마 괜찮았을 수 있다. 문제는 정부가 ‘가짜뉴스’를 제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은 지난 4·19 추도사에서 특정 세력이 허위 선동과 가짜뉴스로 민주적 의사결정 시스템을 왜곡·위협하고 있다고 했다. 다음날 문체부는 가짜뉴스 퇴치를 위한 TF를 꾸리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언론재단에 가짜뉴스 신고·상담센터를 설치하고, AI를 통한 가짜뉴스 감지시스템을 개발 지원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언론진흥을 위해 만들어진 언론재단에 규제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센터를 만드는 것도 모순적인 일인데, 가짜뉴스 감지시스템은 실체도 모호했다. 더구나 그 시스템을 만들겠다던 ‘서울대 저널리즘스쿨·싱크탱크 준비위원회’는 정식 단체도 아니었다. 이후 문체부는 후쿠시마 오염수 논란을 TF의 ‘첫 작품’으로 꼽았다. 오염수 안전에 대한 우려를 가짜뉴스로 보고 대응에 나섰다. 문체부는 수억 원을 들여 유튜브 광고를 하고, 4천만 원으로 KTX에 ‘오염수는 안전하다’는 내용의 책자를 비치할 뿐이었다. “오염수에 대한 우려가 악의적 의도를 가진 허위 사실인가. 오염수는 완전무결한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설득시키지 못했다. 또 언론재단은 민간단체 지원사업을 통해 자유언론국민연합에 3천만 원을 지원했는데, 이들 단체는 이 돈으로 ‘가짜뉴스 시상식&기념토론회’를 개최했다. ‘나쁜 가짜뉴스’를 선정해 언론을 바로잡겠다는 명분으로 치러진 이 행사에선 KBS·MBC 등 공영방송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가짜뉴스 후보들은 대부분 현 정권에 비판적이거나, 관련 의혹을 제기한 보도였다. MBC 바이든-날리면 보도, 후쿠시마 오염수 의혹도 10대 가짜뉴스에 꼽혔다. 가짜뉴스 행사에 세금이 투입된 것이다. 뉴스타파의 ‘김만배-신학림’ 보도 논란이 제기되자 정부의 가짜뉴스 드라이브는 한층 더 강화됐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이 ‘원 스트라이크 아웃’을 거론한 것에 이어, 18일에는 ‘가짜뉴스 근절 종합대책’이 발표됐다. 내용은 충격적이다. ‘원 스트라이크 아웃’으로 폐간 조치된 언론사 사업자가 다른 매체에서 활동하는 것을 법으로 막겠다는 것이다. 직업선택의 자유와 언론자유라는 대원칙을 무시하는 조치다. 또한 정부는 인터넷 분야에서 가짜뉴스 심의를 하겠다고 밝혔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인터넷 언론 보도를 심의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방통심의위가 인터넷 언론 보도를 심의할 법적 근거는 빈약하다. 무엇보다 방통심의위는 표면적으로 민간기구이지만, 헌법재판소는 ‘국가행정기관’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규정했다. 이런 성격을 가진 방통심의위가 가짜뉴스가 무엇인지 판별하고 언론 보도를 심의한다면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이 모든 조치의 중심에는 ‘가짜뉴스’가 있다. 가짜뉴스가 무엇인지 정하지도 않은 채 정책부터 내놓은 것은 성급한 결정이다. 실제 18일 정부 브리핑에서 한 기자는 “정의나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가짜뉴스를 어떻게 근절하시겠다는 건지 그 부분이 의아하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도 나선 가짜뉴스 규제, 반복하는 윤석열 정부 정부는 ‘문재인 정부 때도 가짜뉴스를 규제하려 했다’며 억울함을 표할지 모르겠다. 맞는 말이다. 문재인 정부 역시 각종 가짜뉴스 규제론을 들고나왔다. 이효성 전 방통위원장이 사의 표명을 했을 당시 ‘가짜뉴스 대응을 못해 직을 내려놓은 것’이라는 추측이 언론계를 뒤덮기도 했다. 다만 당시 언론계는 정부가 가짜뉴스 대응에 나선 것을 강하게 비판했고, 결국 현실화되지 못했다. 과거 잘못을 답습할 게 아니라 반복하지 않는 게 정부가 할 일이다. 잘못된 정책과 선택을 반복할 이유는 없다. 이렇듯, 우린 ‘가짜뉴스’의 시대에 살고 있다. 정부가 앞장서서 가짜뉴스 노래를 부르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정책 비판은 수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며, 거대 의석을 가지고 있는 야당 역시 미덥지 않다. 결국 스스로 정신을 차려야 한다. ‘가짜뉴스’라는 말을 반복하는 이가 있다면 의심해야 한다. 가짜뉴스라는 이름으로 편을 가르고 있는 건 아닌지, 가짜뉴스라는 딱지 아래 숨겨진 진의는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할 수 있는 일이 많진 않지만, 가짜뉴스라는 흐름에 휩쓸리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때다.
언론 공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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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자유, 언로의 자유
"지금 긴급심의에 올라가 있죠. 방심위 차원에서도 엄중제재를 할 수 있고, 최종적으로는 방통위는 제재 수위를 결정하는 절차가 있기 때문에 그 때 판단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은 지난 6일 국회에서 기자들에게 뉴스타파 '김만배 음성파일' 보도를 인용한 방송사 중 MBC 등을 대상으로 '엄중 제재' 방침을 밝혔다.   현행법상 행정기구인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방송사 프로그램 내용을 심의를 하거나 제재수위를 결정할 권한이 없다. 이는 형식상 민간독립기구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의 권한이다. 방통위는 이날 이동관 위원장의 발언을 "방통위는 제재처분을 해당 방송사에 통보하는 절차가 있다"고 정정했다.  지난 12일 방심위는 뉴스타파 보도를 인용한 KBS·MBC·SBS·JTBC·YTN 5개 방송사에 대해 법정 제재를 전제로 하는 '의견 진술'을 결정했다. TV조선·채널A·MBN·연합뉴스TV도 같은 일자에 뉴스타파 보도를 인용보도했지만 긴급심의 대상에 오르지 않았다. 뉴스타파 보도에 대해 여권에서는 "사형감" "폐간" "원스트라이크 아웃" 등의 발언이 쏟아지는 상황이다. 향후 윤석열 정부 언론정책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인지 엿볼 수 있는 단면이다.  윤석열 정부 방송기관 인사교체가 눈에 띄는 이유 정치권력의 '언론 장악' 논란은 크게 공영방송 인적 교체와 제도적 권한의 남용에서 비롯된다. 지난 5월 30일 한상혁 방통위원장이 임기 두 달을 남기고 해임된 이후 방통위, 방심위, KBS·MBC·EBS 공영방송 이사진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정권이 바뀌고, 감사·수사기관이 등장해 방송기관을 들여다보고, 임기가 보장된 인사를 해임하는 일은 이명박 정부 방통위 출범 이래 정권의 성향을 불문하고 반복되어 온 일이다. 때마다 방송정책에서, 특히 공영방송 지배구조에서 정치권의 입김(후견주의)을 배제해야 한다는 제도개선 요구가 일었지만 정치권은 외면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등 공약을 이행하지 않은 것이 윤석열 정부의 방송기관 인사교체에 일정 부분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여권이 "최선은 물론 차선도 아닌 기계적 중립을 지키는 사람을 공영방송 사장으로 뽑는 것이 도움이 되겠나"라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과거 발언을 반복해서 언급하는 배경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공영방송 이사회를 여당 7명, 야당 6명 추천으로 구성해 이사회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사장을 뽑는 민주당 발의 법안에 부정적 시각을 나타냈다. 해당 법안은 관행적으로 이뤄진 공영방송 이사회 정치권 추천 몫을 명문화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정치적 후견주의 타파'라는 목표와 거리가 먼 법안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문재인 전 대통령 발언 이후 집권당인 민주당에서 개선안이 추진·처리되지는 않았다.   다만 윤석열 정부의 방송기관 인사 교체는 '속도전' 측면에서 과거 정부와 궤를 달리한다. 무리한 속도전은 빈약한 법적근거 아래 추진된다. 윤석열 정부에서 감사원 감사, 국민권익위원회 조사, 방통위 검사·감독 등의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공영방송 이사를 해임하는 일이 반복됐다.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하 방문진) 권태선 이사장 해임과 법원의 해임처분 집행정지 결정은 윤석열 정부의 공영방송 이사 해임 속도전을 드러낸 대표적 사례다. 그동안 공영방송 이사의 해임에 관해 법원은 집행정지 가처분은 기각하고, 해임 취소소송에서 원고의 손을 들어주는 결정을 내려온 만큼 권태선 이사장의 업무 복귀는 이례적이다.  방통위가 권태선 이사장에게 해임 통보를 한 시점에 방문진은 감사원 감사를 받는 중이었고, 방통위 현장 조사를 앞두고 있었다. 법원은 권태선 이사장 해임사유에 '다툼의 여지'가 있고, 공영방송 이사의 임기는 관계법상 원칙적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방통위가 권태선 이사장 후임 보궐이사로 김성근 전 MBC 방송인프라본부장을 임명하면서 현행법상 9인 체제 방문진은 10인 체제로 운영되는 법 위반 상태에 놓였다.  18일 법원이 김성근 방문진 보궐이사 임명 효력을 정지하면서 재차 방통위의 행정처분에 제동이 걸렸다. 이날 방통위는 야권 추천 김기중 방문진 이사 해임을 의결했다. 김기중 이사의 해임사유는 권태선 이사장의 해임 사유와 유사하다. 김기중 이사는 곧바로 해임처분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출하고 해임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공영방송 이사 해임 속도전은 내년 4월 총선 시간표와 관련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총선 수개월 전에는 공영방송 이사회를 여권 우위로 재편해 KBS·MBC 사장을 교체하고, 방송환경을 여권에 유리하게 조성해둬야 한다는 계산이 깔렸다고 보는 분석이다. 권태선 이사장의 업무 복귀로 방문진 여소야대 구도가 유지되면서 내년 총선 이전에 권력이 MBC 사장을 교체하기는 어려워졌다. 반면 KBS 이사장 교체에 성공한 여권은 곧바로 김의철 KBS 사장 해임을 종결지었다. 김의철 사장도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출하고 해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여권에서 '방송 정상화의 적임자'인 이동관 방통위원장의 법적 부담(탄핵 등)을 덜어주기 위해 속도전을 펼쳤다는 분석도 있다. 한상혁 위원장 해임 이후 김효재 위원장 직무대행 체제 방통위는 3개월 간 공영방송 이사 5인을 해임하고 방심위 정연주 위원장과 이광복 부위원장의 해임 근거가 된 회계검사를 실시했다. 지난달 23일 임기를 마친 김효재 전 방통위원장 직무대행은 최근 한국언론진흥재단(언론재단) 이사장 최종 후보에 올랐다. 언론계에서 '김효재 언론재단 이사장 내정설'이 한 달여 전부터 돌았다.  인적 교체 과정에서 5인 독립협의체 방통위가 3인·2인 체제로 운영된 점도 문제로 꼽힌다. 윤석열 대통령이 한상혁 방통위원장을 해임하고 국회 본회의를 거쳐 추천된 최민희 방통위원 내정자의 임명을 5개월 넘게 미루면서 비정상적 방통위 구조가 만들어졌다. 김효재 대행 체제에서는 여야 2대 1 구조로 의사결정이 이뤄졌다. 현재 방통위는 윤석열 대통령이 지명·임명한 이동관·이상인 위원 2인만으로 의사결정을 내리고 있다. 방통위가 사실상 독임제 부처처럼 운영되고 있다.  이동관의 가짜뉴스 척결론, ‘언론’ 넘어 ‘언로’ 향할수도 윤석열 정부의 공영방송 인적교체는 막바지 수순에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제도적 압박이다. 방통위는 뉴스타파 '김만배 음성파일' 보도를 '가짜뉴스'로 규정하고 몇몇 인용보도 방송사에 대한 '팩트체크 실태점검'에 착수했다. 방통위는 재허가·재승인을 거론하며 인용보도를 한 경위에 대해 자료를 제출하라고 방송사에 요구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사실상 보도 검열"이라며 이동관 위원장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했다.  방통위의 이번 조치에 대한 적정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가짜뉴스'인지부터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동관 방통위원장의 언론관은 이명박 정부 청와대 대변인·홍보수석실 문건으로 검증된다. 정부에 우호적인 언론인은 'VIP(대통령) 전화 격려 대상'으로 분류해 보고하고, 정부 비판적 보도는 '문제 보도'로 관리했다는 점에서 이동관 위원장은 왜곡된 언론관을 지녔다는 비판을 받는다.  최근 여권의 '가짜뉴스' 공세 기준과 일맥상통한다. 뉴스타파 '김만배 음성파일' 보도 논란에서 허위사실이 무엇인지, 그 여파가 사회에 얼마만큼의 악영향을 미쳤는지에 관해 여권과 검찰은 명확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다만 프레임은 '윤석열 커피', '대선 개입' 등으로 작동하고 있다.  2022년 3월 6일 뉴스타파는 <[김만배 음성파일] “박영수-윤석열 통해 부산저축은행 사건 해결”>보도에서 '대장동 사건' 김만배 씨가 윤석열 부산저축은행 부실대출사건 주임 검사, 박영수 변호사(전 특검)를 통해 부산저축은행 대장동 불법대출 브로커 조우형 씨에 대한 수사를 무마했다고 밝힌 녹음파일을 공개했다.  뉴스타파 보도에서 김만배 씨는 "윤석열이가 ‘니가 조우형이야?’이러면서… 박OO(검사가) 커피주면서 몇 가지를 하더니 보내주더래. 그래서 사건이 없어졌어"라고 말했다. 검찰이 김만배의 말 중 '허위'라고 주장할 수 있는 부분은 윤석열 중수2과장이 조우형과 대면하지 않았다는 내용이지 '윤석열이 커피타줬다'가 아니다. 뉴스타파 보도의 핵심은 2011년 대검 중수부의 부실수사·수사무마 의혹이다. 부산저축은행 불법대출 사건은 대장동 사업의 '종잣돈'과 연관돼 있다. 부산저축은행 박연호 회장의 친인척 조우형 씨가 2009년 대장프로젝트금융투자(대장PFV)에 1155억 원의 불법 대출을 알선했다. 조우형 씨는 그 대가로 10억 3000만 원을 받았다.  현재 조우형 씨는 부산저축은행 대장동 불법대출 알선 혐의로 대검 중수부의 수사를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조우형 씨는 2014년 1월 경기경찰청 수사2계에 출석해  '대검 중수부에서 무혐의를 받았다'고 주장한 것으로 확인된다. 조우형 씨는 경찰 조사에서 2011년 대검 중수부가 광범위한 계좌추적까지 실시하며 자신의 대장동 불법대출 사건을 수사했지만 '혐의 없음'으로 결론낸 만큼 자신의 결백이 입증됐다는 주장을 폈다. 이후 조우형 씨는 부산저축은행 대장동 불법대출 알선 혐의로 구속·기소돼 징역 2년 6개월 실형을 받았다. 김만배 씨와 신학림 전 뉴스타파 전문위원의 금전거래는 언론 윤리상 용납될 수 없는 문제지만 이를 근거로 뉴스타파의 보도를 '가짜뉴스'로 규정할 수 있는지 의문이 뒤따른다.  더 큰 문제는 뉴스타파 보도를 고리로 한 방통위의 칼날이 방송사를 넘어 인터넷 매체, 일반 국민들에게까지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방통위는 방심위 통신심의소위원회를 통해 '인터넷 매체 가짜뉴스'를 제재하겠다는 구상을 밝히고 있다. 방심위 통신소위는 인터넷상 불법·유해정보(도박·마약·무기·음란·성매매 등)를 삭제·차단한다. 방통위는 지난 6일 "가짜뉴스 문제가 주요 선거 결과에도 영향을 미치는 등 심각한 폐해가 반복적으로 발생한다"며 "뉴스타파의 이른바 '허위 인터뷰 기사' 등 심각한 가짜뉴스 문제와 관련, '가짜뉴스 근절 TF'를 가동해 방송·통신 분야의 가짜뉴스 근절에 본격적으로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방통위는 악의적 허위 정보를 방송통신망을 이용해 유포할 경우 '원스트라이크 아웃'이 가능한 '통합 심의법제'를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통합 심의법제'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 방심위 통신소위에 대한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고 답했다. 방심위 통신소위는 제기된 민원 중 언론보도 관련 민원은 언론중재위원회로 보내는데, 이를 개선하겠다는 답변이다. 방심위원들을 통해 인터넷 매체의 기사가 삭제·차단될 가능성이 있다.  '가짜뉴스'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기준은 없기 때문에 국민들이 인터넷상에 게재한 정보도 '가짜뉴스'로 지목될 경우 심의와 삭제·차단이 이뤄질 수 있다. 이에 대해 방통위 관계자는 "정보통신망법상 정해져 있는 불법정보 외에도 동법상 법 위반을 목적으로 한 부분들은 방심위가 심의를 일부 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며 "팩트체크 수준으로 대응할 수 있는 부분인지 고민을 해야 되겠다"고 말했다. 18일 방통위는 방심위 신속심의와 포털사업자 자율규제를 통해 '가짜뉴스'를 차단하는 '패스트트랙' 방안을 발표했다. 방통위 '가짜뉴스 근절 TF' 단장은 '가짜뉴스'의 정의와 판단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면서도 "방심위에서 충분히 논의해서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 12일 이동관 위원장 아들 학교폭력 사건 공익제보자를 문제 삼은 TV조선 보도가 언론중재위를 통해 바로 잡혔다. TV조선은 오는 19일까지 "사실 확인 결과, 전경원 씨는 이동관 전 홍보수석 아들의 학폭 은폐 의혹 등을 처음 제보할 당시에 학교로부터 징계를 받은 사실이 없으며, 2015년 공익제보 당시 전교조 소속이 아니었고, 2021년 경기도 교육정책자문관으로 있으면서 이재명 당시 대선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사실이 없어 이를 바로잡습니다"라는 문구를 홈페이지·유튜브·포털 등에 게재해야 한다.  TV조선 보도 전후로 이동관 위원장과 국민의힘은 같은 취지의 내용으로 공익제보자를 깎아내렸다. TV조선의 보도는 사실이 아닌 내용으로 점철됐지만 이와 관련해 방심위가 심의에 나섰다거나, 방통위가 재승인을 거론하며 실태점검에 착수했다거나, 여권이 “폐간”을 거론했다는 소식은 현재까지 찾아볼 수 없다.  
언론 공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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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이, 그 언론만의 것이길
연이은 안타까운 선생님들의 죽음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서이초등학교 교사부터 최근 대전의 모 교사의 사망 소식까지 전해졌다. 한 유명 웹툰 작가의 고소로 알려진 장애인 학급 교사의 이야기도 현재 진행 중이다. 서이초등학교에는 한동안 선생님을 추모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전국의 선생님들은 거리에 모여 교권 회복을 외쳤다. 그들의 목소리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라는 목소리였다. 구조적 문제 해결을 외친 그날, 수 많은 선생님들은 서이초 교사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러 걸음을 옮겼다. 교사였던 적은 없지만, 젊은 선생님의 죽음을 추모하고자 서이초등학교에 갔었다. 그 날은 비가왔다. 주룩주룩 내리는 날에도 선생님들은 우산을 쓰고, 검은 옷을 입고 국화를 들고 서이초로 향했다. 교문 앞에서부터 울며 들어온 선생님과 입을 다문채 조용히 들어온 선생님들은 모두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때 목소리를 내지 못해서, 그때 이 문제를 가만히 보고만 있어서, 선배 교사로서 너무 미안하다는 메시지였다. 서이초등학교에 붙어 있던 선배 교사의 메시지 (사진 촬영 일자 23.07.22) 서이초등학교에 붙어 있던 누군가가 남긴 메시지 (사진 촬영 일자 23.07.22) 비 때문에 돌아가는 사람은 없었다. 비 속에서도 모이는 사람은 많았다. 수 많은 메시지와 선생님들 앞에 아무 말도 못하고 국화를 놓고 합장한 기억이 난다. 수 많은 메시지에서 서이초 선생님에게 악성 민원을 넣었다는 학부모들을 비난하는 글도 있었지만,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다룬 메시지는 없었다. 애초 그런 문제를 다루는 것보다 구조를 바꾸는 게 더 나은 해결책이어서 그랬을 것 같다. 그런데, 어느 한 언론매체는 구조보다 고인 개인의 사생활을 다룬 기사를 냈다. [단독] 기사였다. 해당 기사에는 서이초 교사의 일기장을 토대로 이미 극단 시도를 하려고 했다는 암시가 있었다고 말했다. 해당 보도가 나간 뒤, 사람들은 분노했다. 고인 개인의 삶을 들춘 내용이었고, 죽음까지 내밀어진 사건과는 무관한 내용이었다. 관련 있는 내용이었다처도, 고인에 대한 윤리에 맞는지 지적 받아 마땅한 기사였다고 생각한다. 해당 보도 윤리에 대해 지적한 건 개인들만이 아니었다.  해당 보도에 대해 언론 인권 센터는 유감을 표했다. 인권센터는 “(기사의 내용이) 어떻게 고인의 일기장을 압수했는지, 유가족 허락을 받았는지, 정신과 치료 기록은 어떻게 입수 했는지 언급이 빠졌다” 라며 “이는 고인의 사생활에 대한 고려가 없는 것은 물론 ‘자살보도윤리강령’에도 어긋난다.”라고 지적했다. 해당 내용 보도에 대해 유족의 허락을 받은 것 같지는 않다. 유족으로 알려진 사촌 오빠의 블로그 글에는 해당 내용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A씨 유족은 해당 기사를 쓴 기자가 언론 윤리강령 제 3, 4, 5, 6, 7조를 어겼다고 지적했다. 한국기자협회가 말하는 윤리강령과 자살보도 윤리강령은 아래와 같다. 윤리란,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하거나 지켜야할 도리를 말한다. 이러한 윤리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할지 선택할 때 작용한다. 보도 윤리 강령이란, 언론사가 특정 사안에 대해 보도 할 때, 최소한으로 지켜야 할 사안들이다. 언론 윤리 강령은, “언론이 공적 과업을 수행함에 있어 자유에 상응하는 책임과 윤리의식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대두”됐다. 또한, “윤리강령과 실천요강은 자율규제의 원칙에 따라 언론기관 또는 언론단체가 스스로 제정하여 스스로의 행동과 활동에 규제를 가하는 규범과 규칙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강령을 만드는 주체는 언론기관 또는 언론단체 스스로가 될 것은 당연하다.”* 물론, 이런 윤리강령을 무조건 따라야 되는 건 아니다. 실제 언론사 중에는 윤리 강령이 있는 곳도 있고, 없는 곳도 있는 듯 하다. 정확하게 없다고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모든 언론사의 윤리 강령을 확인해보진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윤리 강령 글의 애매모호함 때문에라도 지켰느냐 안 지켰느냐를 판단하기가 어렵다. 강제성 없는 애매함은 실천을 보장하지 않는다. 또한, 십 수년 전에는 언론 취재 윤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국민의 알 권리와 취재 윤리 관련 포럼에서 한 교수는 “언론의 목적은 진실을 보도하는 것이지, 취재 윤리를 지키는 데에 있지 않다"며 "기자는 윤리 규정의 경계를 넘나들며 언론의 자유 신장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벌써 십 수년 전의 이야기인데도, 여전히 현실에서 발생하는 듯하다. 모든 언론이 이렇게 하는 건 아니다. 쿠키뉴스의 경우, 단독과 기획 기사는 기자의 실명과 함께 윤리강령과 보도준칙을 지켰다는 걸 명시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장치들이 기자와 언론사 모두에게 자신들의 기사를 한 번 더 돌아보게 한다고 생각한다. 애매한 윤리를 따르기 어렵다면, 최소한의 보도준칙을 더욱 명확히 하고 보도 전 검토하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1980년 대 우리나라 언론에는 보도지침이 내려졌다. 정부에서 언론 통제를 위해 사용한 것들이다. 보도지침으로 인해 각 신문사의 헤드라인과 신문 구성이 동일한 경우도 있었다. 출판과 언론의 자유를 통제하는 보도지침은 없어져야 마땅했다. 하지만, 누군가의 죽음을 파헤치고, 본질과 상관없는 문제를 들추는 언론이라면 마땅한 보도지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2023년에 새로운 보도지침을 만들어서 하달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저 좋은 기자가, 좋은 시스템 안에서 강력한 규범과 윤리 지침의 통제 아래 훈련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좋은 언론의 정의는 다양할 것이다. 2021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필리핀 언론인 마리아 레사는 “좋은 언론이란 강력한 규범 및 윤리 지침의 통제 아래 뉴스룸에서 실행되는 직업적 훈련과 판단의 결과다.”* 라고 말했다. 규범과 윤리 지침을 따르는 직업적 훈련이 된다면, 우리나라의 언론도 조금 더 좋아지지 않을까 싶다. 처음 기자가 되어 수습 기자 신분일 때, 수습의 수'는 ‘닦을 수修'다. 그 ‘수'가 기자들 사이에서 말하는 ‘짐승 수獸'가 되지 않도록, 인간이 가지고 언론이 가지는 그 윤리란 것을 잘 키워나갔으면 좋겠다. 그렇게 훈련된 기자와 언론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서이초 교사의 죽음을 더욱 비참하게 만든, 한 언론사의 [단독]을 보며 추모에 갔던 그 날이 떠오른다. 내가 봤던 모든 사람의 추모하는 마음과 교사와 그 가족의 마음을 매장한 기사였다. 어쩌면 누군가는 그 [단독]을 보고 선생님의 죽음을 판단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불안하기도 하다. 그리고 한편으론, [단독]이 붙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디 윤리가 없던 해당 보도가, 그 언론사 단독의 모습이길 바래본다. 우리나라에 있는 수많은 다른 언론은, 그 윤리없는 [단독]에 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특집논문] 국내외 언론윤리강령의 비교와 제언> (한병구/ 언론중재위원회, 1990) p.3~4 *<권력은 현실을 어떻게 조작하는가> (마리아 레사/ 북하우스/ 2022) p.115
언론 공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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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언론이 없다면, 지역은 어떻게 될까
1987년 민주화 운동이 있기 전, 각 언론사에는 보도지침이 내려졌다. 정부가 특정 사안 보도에 대한 지시를 내린 것이다. 특정 사안에 대해 보도를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한다면 어떻게 보도를 해야하는지 내려졌다. 언론은 이에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불상사가 생길지 몰랐다. 1980년 대 당시 내려왔다는 보도지침 출처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당시 정권이 보도지침을 만들면서까지 언론을 탄압했던 이유는 중앙 집권적 권력을 더욱 곤고히 하기 위해서였다. 언론은 시민의 눈과 귀였다. 신문에 담긴 기사로 소식을 접하던 당시엔, 이러한 통제가 중요했다. 지금처럼 SNS가 없던 시기였기에, 언론이 통제 당하면 시민의 눈과 귀가 막힌 것과 다름 없었다. 권력은 점점 중앙화됐고, 언론 역시 중앙지라고 부르는 것과 소수 광역 지역 일간지만 존재했다. 언론 통제를 해야 하는데, 신문이 많아지면 통제가 어려우니.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민주화운동과 함께 달라졌다.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뒤, 수 많은 지역 언론이 생겼다. 1988년 12월 1일에 ‘홍성신문'이 창간한 이후, 1996년까지 9년 간 전국적으로 600개 지역 신문이 생겼다. 소수의 신문이 아닌, 신문의 다양성이 갖춰진 것이다. 지역 신문은 지역사회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지역간 정보 격차를 해소하고, 지역민의 참여를 이끄는 게 지역언론의 중요한 역할이었다. 또한, 지역의 이슈를 공론화하고 지역사회의 감시와 견제, 지역 정보의 생산과 기록, 지역민과의 교류 및 연계, 공론장 형성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한다. 출처 : 청양신문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표한 ‘지역신문 발전을 위한 지원계획 수립 연구(2022)’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지역종합일간지는 129개사, 지역종합주간지는 2021년 기준 575개사로 나타났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많은 지역 신문이 있는지 몰랐다. 이렇게 많은 지역신문이 있음에도 잘 모르는 건, 우리나라 언론이 여전히 중앙집권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소위 10대 일간지를 우리나라의 대표 신문사라고 한다. 10대 일간지에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 ▲한겨레, ▲경향신문, ▲국민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 ▲문화일보가 있다. 벌어졌던 이슈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소위 <조국사태>라고 일컬어지는 일이 있었을 때 7개 일간지에 속하는 신문사들은 하루에도 10개씩 단독보도 했다. 포털이 ‘조국’ 두 글자로 도배되던 때였다.  해당 사태가 있었을 때, 한 사람에 대한 너무 많은 보도로 다른 중요한 이슈들에 대한 내용은 전혀 볼 수 없던 게 기억난다. 개인의 도덕성에 대한 비판도 중요했지만, 당시 보도들을 보면서, 중앙에서 하나에 사건에, 하나의 인물에 초점을 맞추고 보도를 한다면 그 안에 지역 이슈가 들어갈 틈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개인적으로 지역에 가면 그 지역 당일 신문을 읽는 편이다. 올해 2월에 찍은 사진. 지역신문의 이야기는 단순히 그 지역에서만 소비되는 게 아니다. 지역의 이슈는 중앙으로 전달되어 알려지기도 한다. 또한, 지역신문은 해당 내용을 계속해서 추적해 알린다. 2007년 12월 7일에 발생한 삼성중공업의 태안바다 기름유출 사고 이후, 15년 동안 태안신문은 2,000건이 넘는 보도를 꾸준히 해왔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건도 한번의 이슈화로 끝나면 그걸로 끝이다. 꾸준한 보도와 지적이 있어야 반면교사 삼으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만약, 중앙에서 일괄적으로 이슈를 만들어 공론화하는 방향으로 간다면, 지역의 이슈는 점점 쪼그라들어 소멸될지도 모른다. 지역민의 마지막 민원창구가 사라질지도 모르는 것이다. 지역자치를 위해 탄생한 지역신문이 사라진다면, 그 지역의 이슈는 없고 중앙의 이슈로만 도배되어 버리는 일이 발생하진 않을까 우려가 된다. 우려가 우려로 남고 현실이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중앙에 있는 시민으로서 지역 언론에 대해 말한다는 게 사실 부끄럽다. 지역에 갈때마다 지역 신문을 사서 읽는 것을 제외하고, 내가 지역 신문을 응원하는 방법이 딱히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확실한 건 지역 신문의 위기가 비단 그 신문사만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지역 신문의 위기는 지방 소멸과도 연관되고, 지역 이슈와도 연관되며 지방 자치에 대한 문제와도 연관된다. 다양한 문제가 얽히고 설킨 지역 신문의 위기를 이 글 하나로 해결할 수는 없지만, 부디 한 사람이라도 지역 신문의 문제가 모든 것과 연결되는 문제임을 알았으면 좋겠다.
언론 공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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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신뢰를 받는 언론이 되려면?
28%만 신뢰하고, 58% 비판하는 한국 언론 출처 : 디지털 리포트 2023 p.24 영국 옥스퍼대대 부설 로이터저널리즘 연구소가 발표한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23’에 따르면, 한국의 뉴스 신뢰되는 28%로 나타났다. 이는 아시아・태영퍙 국가 가운데 최하위 수준이며, 2022년보다 2% 하락한 수치다. 또한, 기자나 언론 미디어를 비판하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느냐는 응답에도 한국은 58%가 들은적이 있다고 답했다. 해당 수치로만 판단한다면, 대한민국의 언론은 시민들에게 신뢰받지 못하고 있다. 쓰레기라 불리는 직업 국민이 언론을, 기자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는 용어가 있다. 기레기다. 기자와 쓰레기를 합친 이 말은, 과거 세월호 참사가 있었을 당시부터 대중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 유족에 대한 공감 없이 무작정 단독과 속보를 내비치기 위한 경쟁의 결과였다. 당시 가장 황당한 기사 중 하나는 ‘[단독] “유대균, 소심한 목소리로 뼈없는 치킨 주문" 이라는 기사였다. 299명의 학생과 5명의 어른이 세상을 떠난 참사에 대한 진상 규명, 책임 소재 파악만 보도해도 모자랄판에, 뼈없는 치킨 주문 소식을 ‘[단독]’이라며 기사로 쓴 것에 시민들은 분노했다. 해당 기사에 시민들은 “맥주는 안 시키더냐"라며 언론을 비판했다. 물론, 해당 기사의 제목을 [단독]이라며 보도한 건 해당 기자의 작품은 아니었다. 기사를 쓴 기자는 언론사 데스크에 보고만 했을 뿐인데, 데스크에서 [단독]을 붙여 내보냈다고 한다. 언론사 데스크의 과욕이었다. 실제 작성자가 누구든, 해당 기사를 언론이라는 이름하에 내보낸 것은 변하지 않는다. 이 같은 과욕은 언론이 스스로 무엇에 집중하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었다고 생각한다. [단독] [속보] 전쟁 뼈없는 치킨 주문 기사는, 언론이 시민의 궁금증을 해결하고, 시민 대신 질문한다는 언론의 속성을 잊은채 단독과 속보에 눈이 멀었다는 걸 보여주는 기사라고 생각한다. 내가 쓰려고 하는 기사를 네이버에 검색해 아무도 쓰지 않았으면, [단독]을 내걸어 작성하고, 빠르게 전달해야 하는 기사는 누구보다 빠르게 [속보]를 붙여 쓴다. 이렇게 되면 기자는 이게 정말 시민이 원하는 기사인지, 시민이 듣고자 하는 기사인지, 시민이 묻고 싶은 질문인지를 생각하지 못하게 된다. 해당 기사의 팩트가 맞는지도 불분명하다. 개인적으로 언론의 역할 중 하나는 시민이 갖는 문제의식을 토대로, 시민을 대신해 정부, 기업, 의사결정자, 권력자에게 질문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시민의 문제 의식을 정부, 기업, 권력자들에게 말하는 게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기자가 어떤 시민들의 문제의식을 토대로 하느냐는 소속된 언론사, 기자 개인의 신념이나 철학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최소 이 정도 문제 의식을 갖고 있으면 속도 경쟁만을 위한 [단독]과 [속보] 경쟁은 줄어든다고 생각한다. 속도 경쟁만 남은 상황에서 기자들이 하나의 문제의식을 깊이 고민할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기사 하나를 때우려고 낙하산을 타고 내려와 오후 반나절 정도 있다 가는 기자는 어떤 종류가 됐든 진실을 들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다가가는 일이 거의 없다.”* 왜 언론을 신뢰하지 않는가? 글을 쓰기 위해 지인 5명에게 언론을 신뢰하지 않는 이유, 언론에 대한 평소 생각을 물었다. 답변에는 신뢰하지 않는 이유도 있었고, 평소 생각도 들을 수 있었다. 특별한 의견이 없는 사람도 있었다. 길지 않은 통화에서 얻은 몇 가지 이유를 나열하면 이랬다. “(언론들) 쓰는 거 보면 보도자료 그대로 긁어와서 받아쓰기만 한다. 토씨하나 안 틀린다. 그게 언론이냐?” “(언론사마다) 너무 편파적이다. 보수 언론은 보수쪽만 쓰고, 진보 언론은 진보쪽만 쓴다. 가끔 보면 언론사 기조에 맞게 대변하는 것 같다. 언론이 특정 진영을 대변하는 건가? 언론의 기본은 비판이라고 생각하는데, 비판은 없고 공격만 있다. 어떤 언론사를 보면 그냥 기관지인거 아닌가 싶을 정도다.” “일단 뭐가 너무 많고, 그 중에는 알고 싶지 않은 정보들도 있다. 내가 궁금한 정보를 알려주는 기사는 없다. 있다 해도 다른 게 너무 많아서 찾기가 어렵다.” 각자의 이유는 다 달랐지만, 짧은 인터뷰에서 들었던 생각은 언론은 진영 논리나 광고주에 따라 움직이는 게 아니라, 시민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시민에게 귀기울이는 것이 진정 ‘좋은 언론'으로 가는 길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좋은 언론을 시민은 믿는다고 생각한다. 좋은 언론 “좋은 언론인은 증거에, 반박의 여지가 없는 사실에 의지한다.”** “좋은 언론은 신뢰와 함께 시작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취재 대상이 당신을 신뢰해야 하고, 그다음으로는 당신의 기사를 통해 청중들과 서서히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 “좋은 언론인은 균형을 찾지 않는다. 예를 들어 어떤 지도자가 전쟁 범죄를 저지르거나 시민들에게 노골적인 거짓말을 하고 있는데도 균형을 찾는다면, 그것은 등가성의 오류로 귀결될 뿐이다. 언론인이 권력자를 대할 때 ‘균형 잡힌' 방식으로 기사를 쓰는게 더 쉽고 안전하다. 하지만 이는 비겁한 사람의 탈출구일 뿐이다.”** 2021년 언론의 자유를 지킨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필리핀의 언론인 ‘마리이 레사'는 자신의 책, <권력은 현실을 어떻게 조작하는가>에서 좋은 언론에 대해 위와 같이 말했다. 그에 따르면, 좋은 언론은 증거와 사실에 기반해 기사를 쓰고, 그 기사를 통해 시민들의 신뢰를 얻는다. 또한 그 언론을 신뢰하는 시민들에 의해 더더욱 지도자에게 책임을 묻는다. 결국, 언론이 더욱 언론다워지기 위해선 진영 논리를 대변하고, 광고주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편에서 시민을 위한 기사를 쓰는 것이다. 물론 시민이라고 해서 다 같은 시민이 아니다. 입장이 다르고, 생각하는 게 다르다. 이럴 때 대중을 취사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시민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언론인은 문제의 다양한 측면을 귀 기울여 듣고, 그가 그로부터 알게 된 내용을 통합해 대중이 각자의 정보에 입각해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다.”** 이렇게 다양한 시민의 의견을 듣고, 그들의 의견을 기반으로 문제 의식을 형성하고, 다양한 차원에서 질문하고, 질문하고, 또 질문해서 얻은 정보를 시민에게 전달해 주는 것. 그것이 좋은 언론이라고 생각하고, 시민은 그런 좋은 언론을 신뢰한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는 나 역시도 언론을 그닥 신뢰하지 않는다. 진영에 맞춰진, 이익에 맞춰진 언론이 훨씬 많다고 생각해서다. 부디 언론이 시민의 편에 섰으면 좋겠다. 어느 한 진영에 있는 시민이 아니라, 모든 시민을 위한 언론이 되면 좋겠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더 깊이 시민에게 귀 기울이는 언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속보]와 [단독]에 물든 언론이 아니라.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언론을 신뢰하고, 지지해 힘을 실어주는 시민이 되었으면 좋겠다. “좋은 언론인과 언론사는 자신들의 지도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국민의 힘에서 나온다.”** *<노마드랜드> (제시카 브루더/ 엘리/ 2021) p.270 **<권력은 현실을 어떻게 조작하는가> (마리아 레사/ 북하우스/ 2022) p.110,111,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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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수신료, 정말 필요없는 제도일까요?
(사진:프리픽) 1994년부터 전기요금에 포함됐던 TV 수신료를 지난 12일을 기점으로 별도로 납부하게 되었습니다. 수신료와 공영방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지금, 수신료와 공영방송의 역할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 수신료란? 수신료는 TV를 보유한 국민들의 돈을 모아 공영 방송에게 일정 수익을 보장하는 제도로, 외부의 간섭 없이 공정한 방송을 제작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되고 있습니다.  수신료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에는 한국의 KBS와 EBS, 영국의 BBC, 일본의 NHK 등이 있습니다. ✔️ 수신료, 어디에 사용되나요? 한국의 수신료는 월 2,500원으로, 이 중 KBS가 2261원, 한전(위탁 수수료)이 169원, EBS가 70원을 가져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배분된 수신료는 대중성과 수익성이 낮지만, 사회적으로 필요한 프로그램 제작에 사용됩니다.대표적으로 KBS는 다큐멘터리, 장애인채널, KBS 교향악단 운영 지원을 하고있으며, EBS는 AI 학습서비스, 클래스e 지식강연, 다큐멘터리  EBS 등의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 수신료, 왜 내야하나요? 법적으로는 방송법(제 64조)이라는 법률을 통해 수신료의 납부가 의무화 되어있습니다. 헌법재판소에서도 TV 수신료를 특별 부담금으로 판단하여 납부 거부권을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TV를 소유한 가정이라면 수신료를 납부해야합니다. 공익적 측면으로는 대중성과 수익성이 낮은 프로그램 등 사회적으로 필요한 정보를 공급할 수 있게 됩니다. 사회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장애인 권익 향상 방송,  소외계층을 위한 복지 정보 방송, 고품질 다큐멘터리 등 상업 방송들이 하지 않는 방송을 제작합니다. 수신료가 없다면 수익성이 낮지만 사회적으로 필요한 정보 제작은 정부 보조금으로 운영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정부 보조금을 지원받을 경우 정부의 영향력이 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공영방송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예측 가능한 공공의 기금, 즉 수신료가 필요합니다. ✔️ 수신료 분리징수는 왜 시행된건가요? 대통령실에서는 최근 ‘공영방송 제도를 택하고 있는 프랑스(FTV), 일본(NHK) 등에서 수신료를 폐지하거나 인하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며, ‘전기요금과 함께 부과되는 현행 징수방식은 시대에 맞지 않고, 시청자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불합리한 제도’라고 언급했습니다. (대통령실 국민제안 2023.03.09)  이후 대통령실 홈페이지 ‘국민참여토론’코너에서 한달간 진행된 국민 의견 수렴 과정에서, 징수 방식 개선에 대한 찬성(좋아요)이 96.5%로 우세했습니다. 대통령실은 국민의 뜻에 따라 국민들이 수신료 징수 여부와 금액을 명확히 알고, 잘못 부과된 경우 바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분리 징수를 추진했습니다. 이후 지난 12일 수신료 분리 징수 시행령을 공포함과 동시에 시행되었습니다. ✔️ 수신료 분리징수는 어떤 문제가 있나요? 사회적 혼란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수신료 분리 징수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TV를 보유하고 있는 가구라면 수신료는 의무적으로 내야합니다. 수신료 납부를 선택 사항이라고 오해해서 별도 납부를 하지 않을 경우 추징금이나 가산금 부과 등의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또한, 아직 분리 징수에 대응할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정부는 이르면 10월부터 별도의 고지서를 받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으나, 온전한 분리 징수를 위해서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일부 아파트와 대형상가의 경우, 개별 세대의 TV 소지 여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는 세대별 분리징수가 불가능합니다. 수신료 수입이 줄어들게 됩니다. KBS는 통합징수 이전인 1993년과 통합징수 이후인 2022년의 수신료 수입 대비 총 징수비용 차이와, 1993년의 수신료 미납률(52.6%)을 근거로, 수신료 분리징수 시 수입이 2022년의 절반 이하로 떨어질 수 있다고 추정했습니다. (KBS 2023.07.04) 또한, 한전은 수신료 분리 징수가 시행될 경우, 총 징수 비용이 ‘한국방송에서 받는 위탁 수수료는 물론 심지어 수신료 수납액보다 커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한겨레 2023.07.02)  ✔️ 앞으로는 어떻게 되나요? TV 수신료의 분리 징수는 지난 7월 12일 시행되었지만, 시스템 준비기간 동안에는 전기요금에 TV 수신료가 포함되어 청구됩니다. 즉시 분리 납부를 원하신다면 한국전력공사 홈페이지에 안내되어있는 과정에 따라 TV 수신료 분리납부 신청을 하시면 됩니다. 홍성철 경기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국민 여론이 TV 수신료 분리 징수를 선호하는 이유로 ‘공영방송 KBS에 대한 실망감’을 제시하며, ‘TV수신료 분리징수 논의는 KBS의 정치적 편향성과 상업성을 극복하는, 제대로 된 공영방송 개혁의 시작점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디지털타임스 2023.06.18) TV 수신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또, 공영방송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댓글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나눠주세요  <참고 기사> - EBS TV 수신료 - 대통령실 국민제안 20233.03.09 - 디지털타임스 2023.06.18 - 한겨레 2023.07.02 - KBS 2023.07.04 - 대한민국 정책 브리핑 2023.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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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과 정유라 SNS 받아쓰는 언론 보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특정 산업이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요? 저는 그 중 하나가 직업 윤리라고 생각합니다. 산업 종사자들에게 직업 윤리가 없다면 잠시 호황기를 맞더라도 오래 갈 수 없고, 침체기에 들어선 후엔 회복할 수 없게 됩니다. 이 관점에서 한국 사회 최고 불신 대상인 ‘언론’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한국 언론의 언론 윤리 이대로 괜찮을까요? 글 싣는 순서 조민과 정유라 SNS 받아쓰는 언론 보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기자님, 기사 속 그 코멘트는 정말 전문가 의견인가요? ‘기레기’에서 시작된 기자 비하 문화로 언론 보도가 좋아질까요? 가이드라인 만들고 안 지키는 기자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한국 언론에는 시민 참여가 충분히 이뤄지고 있을까요? ‘“양갈래 머리 잘 어울리네”…‘말괄량이 삐삐’ 변신 조민 패션 ‘화제’’ 이런 기사 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최근 언론 보도를 보면서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딸 조민 씨의 SNS를 꽤나 자주 마주쳤는데요. 사실 저는 조민 씨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울분 토한 정유라, 조민 공개 저격…“북 콘서트나 쫓아다니는 누가 더 부러워”’ 이런 기사를 접하다보면 조민 씨의 일상을 넘어서 국정농단의 중심인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 씨의 반응까지 알게 됩니다. 언론 윤리 이야기를 시작하며 여러분과 처음으로 나누고 싶은 소재는 ‘SNS, 커뮤니티 받아쓰는 언론 보도’입니다.   SNS, 커뮤니티로 출근하는 기자들 SNS를 옮기는 기사가 최근에 등장한 건 아닙니다. 대표적으로 2019년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자녀 관련 의혹 보도에서 인용된 진중권 광운대 교수의 SNS가 있는데요. 당시 진 교수가 조 전 장관의 임명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SNS에 게시하면 언론이 이를 옮기는 보도 양상이 보였습니다. 이후에도 유명인 SNS는 기자들의 단골 맛집(?)이었는데요. KBS '질문하는 기자들Q'가 2021년 11월 한 달 동안 유명인 페이스북 받아쓰기 기사를 분석해보니 “모두 6,020건”, “하루 평균 200건”의 받아쓰기 기사가 나왔습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기라는 특수성을 감안해야겠지만 상당히 많은 양의 보도가 유명인의 SNS를 옮기는 방식으로 쓰였다는 증거입니다. 기자들의 단골 맛집에는 커뮤니티도 있는데요. 미디어오늘 ‘‘커뮤니티 받아쓰기’ 언론, 이대로 괜찮은가‘의 분석을 보면 “기사 80%가 ‘커뮤니티 받아쓰기’인 기자”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일부 언론사는 ‘온라인팀’으로 불리던 조직이 별도의 계열사로 분리되어 커뮤니티 받아쓰기 기사 양산 체제를 갖췄고요. 이런 현상은 저널리즘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요? ‘끝없는 가벼움’…SNS, 커뮤니티발 기사가 만든 문제들 SNS, 커뮤니티를 출처로 한 기사가 유발한 문제를 먼저 정리해보려 하는데요. 문제 사례를 같이 보시죠. 2021년 7월 뉴스1 ‘핫팬츠 女승객 쓰러졌는데 남성들 외면…3호선서 생긴 일 '시끌'’은 ‘지하철 내에서 여성 승객이 쓰러졌음에도 남성 승객들이 성추행 누명을 우려해 돕지 않았다’는 커뮤니티 게시글을 그대로 전달했습니다. 기사가 발행된 후 사회 갈등 사안으로까지 논란이 커졌는데요. 이 기사 사실이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뉴스1 보도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해당 사건의 사실관계를 확인한 연합뉴스 ‘[팩트체크] '3호선서 쓰러진 여성, 남성들이 외면' 보도는 가짜’를 보면 사건 접수 및 대응 주체인 서울교통공사가 사실과 다르다고 설명한 대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실제 사건 당시에는 “신고를 받고 대기하던 역무원이 쓰러진 여성을 승강장으로 옮겨 구호 조치를 했”고, “자신을 의사라고 알린 남성이 여성을 도왔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쓰러진 여성을 돕는 분위기였다”는 현장 역무원들의 반응이 있었다는 겁니다. 당시 한 커뮤니티에 해당 사건을 119에 최초로 신고했다고 주장하는 누리꾼이 등장해 보도를 반박하기도 했는데요. 독자를 비롯해 시민사회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언론인권센터는 논평 ‘취재 없는 기사가 맥락 없는 혐오와 갈들을 부추긴다’에서 해당 보도를 아래와 같이 지적했습니다. 지난 5일, 보배드림 커뮤니티 게시글이 뉴스1을 통해 기사화됐다. (중략) 뉴스1은 해당 게시글에 <핫팬츠 女승객 쓰러졌는데 남성들 외면...3호선서 생긴 일 ‘시끌’>이라는 제목을 붙여 기사화했다. 이후 많은 언론사에서 해당 기사를 받아쓰면서 온라인 상의 젠더 갈등에 불을 붙였다.(중략)이번 사건은 서울교통공사나 현장에 있었던 당사자에 대한 취재를 바탕으로 작성되지 않았다. 특히 최근 여성과 남성 사이의 갈등이 심각한 한국 사회에서 젠더 이슈는 매우 큰 파급력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언론사들은 갈등을 증폭시킬 게 뻔한 사건을 사실 확인도 없이 보도했다. SNS, 커뮤니티발 기사 왜 끊임없이 나올까? 사례를 확인했으니 다시 원래 질문으로 돌아와보겠습니다. 앞서 확인한 문제 사례는 저널리즘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요? 크게는 ‘황색 저널리즘’이라 불리는 선정적인 가십성 보도의 양산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언론에 대한 반감이 증가하고, 자연스레 불신도 커졌을 겁니다. 더 말하지 않아도 좋은 저널리즘을 구현하는 일이 아니라는 건 확실합니다. 그렇다면 왜 SNS, 커뮤니티발 기사가 끊이지 않는 걸까요? 문제의 원인을 찾고 싶다면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요인을 확인해야겠죠. 한국 언론 문제에서 자주 등장하는 표현 중 하나가 ‘조회수 경쟁’인데요. 2022년 기자협회보와 한겨레신문 미디어전략실은 포털 뉴스 페이지뷰를 확인하는 협업을 진행했습니다. 2021년 말 기준 포털사이트 네이버와 모바일제휴를 맺은 매체 73개의 기사 일간 페이지뷰를 조사해 분석한 건데요. 내용을 정리한 기사 ‘네이버에서 가장 많이 읽힌 뉴스, 대부분 '저질·연성화' 뉴스’를 보면 대부분이 질이 낮은 기사였다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보다 자세한 분석 결과는 페이지뷰 상위 1~20위 기사를 정리한 결과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면밀하게 살펴보면 질 낮은 기사들 사이에 SNS, 커뮤니티발 기사가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가장 많이 읽힌 기사 5위 조선일보 ‘‘전신 피멍’ 아옳이, 대학병원 검사 결과는 ‘반전’’는 유튜버가 올린 영상을 그대로 전달한 기사입니다. 이어 8위 한국경제 ‘"레깅스만 입고 자주 외출하는 딸이 걱정돼요"’는 “온라인 커뮤니티”라는 확인조차 불가능한 출처에 올라온 글을 그대로 옮겼습니다. 이외에도 페이지뷰 상위권에 오른 다수의 보도가 SNS, 커뮤니티발 보도였습니다. 이유가 조금 명확하게 보이는 듯 합니다. 좋은 저널리즘과 거리가 멀고,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그대로 전달해 오보의 위험이 있음에도 조회수가 높게 나온다는 겁니다. 이야기의 시작에서 언급한 조민, 정유라씨의 SNS가 끊임없이 기사로 등장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조민, 정유라의 SNS를 옮기는 것이 ‘다수가 클릭하는 기사’로 쓸 수 있는 소재이기 때문에 활용되고 있는 겁니다.   언론 윤리 훼손하는 SNS, 커뮤니티발 보도 시민이 막을 순 없을까 결론을 정리해보죠. SNS, 커뮤니티발 보도는 한국 언론의 현실로 자리잡았습니다. 이를 전문으로 다루는 기자와 언론사가 등장했다는 게 그 증거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혐오와 갈등 조장, 언론 불신 확산과 같은 저널리즘 훼손이었습니다. 당연히 ‘취재를 통해 기사를 작성한다’는 언론의 기본을 지키지 않는 일이기도 하죠. 종합해보면 ‘클릭수’라는 이유로 언론인들이 스스로 직업 윤리를 외면한 결과였습니다.  한국기자협회를 비롯해 수많은 언론인 단체들은 오래 전부터 저널리즘이 실종된 한국 언론 현실에 대해 ‘반성한다’, ‘개선하겠다’고 이야기 해왔습니다. 하지만 언론인들의 다짐이 제대로 지켜진 적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더욱 연성화된 보도가 쏟아졌고, 자정작용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언론인들이 주도적으로 언론 윤리를 바로 세우는 일은 기대하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SNS, 커뮤니티발 기사 문제도 언론인들이 해결할 수 없다는 게 제 개인적인 판단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좋은 저널리즘의 구현을 포기할 순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문제를 뉴스 소비자인 시민의 주도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제해결을 위한 청사진을 당장 ‘짠!’하고 내놓을 순 없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시작할 수 있는 사소한 변화부터 만들어보면 좋겠습니다. 어떤 변화가 필요할지 여러분과 함께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그런 의미로 저는 언론 윤리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에서 ‘선정적 기사 클릭 안 하기’를 제안해봅니다. 앞서 확인한 것처럼 질이 낮은 기사가 양산되는 원인에는 ‘클릭수’가 있었습니다. 결국 이 문제의 해결책은 그들의 목적이자 생존수단인 클릭수를 주지 않는 것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클릭하는 기사의 성향을 바꿔보면 어떨까요? 특정인의 감정적 발언이 그대로 들어간 제목, 클릭을 유도하는 선정적인 제목, 유명인의 이름을 노골적으로 부각하는 제목 등이 포함된 기사의 클릭을 멈추는 겁니다.  물론 제 제안보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댓글을 통해서 같이 이야기해보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유명인의 SNS, 커뮤니티 게시글을 그대로 전달하는 보도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언론 공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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