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참사를 다루는 언론의 태도

2023.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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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량입니다

참사, 이 단어를 국어사전에 검색하면 다음과 같은 뜻이 나온다.

  • 참사 : 비참하고 끔찍한 일
  • 참사 : 비참하게 죽음

풀이하면 비참하고 끔찍한 일로 인한 인명피해와 죽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최근 10년 들어 국민들의 기억 속에 지워지지 않는 참사가 있다. 2014년 4월 16일에 벌어진 세월호 참사, 2022년 10월 29일에 발생한 이태원 참사다. 

세월호 참사에서는 304명의 사람이 죽었다. 299명의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과 5명의 어른들이었다. 어른들 중에는 학생들을 끝까지 구하려다 빠져나오지 못한 비정규직 교사분들까지 있다.

출처 : 네이버 시사상식사전

이태원 참사에서는 총 158명의 사람들이 죽었고, 그 중에는 외국인도 포함되어 있다. 명단 공개 논란이 있었지만, 유족의 동의를 받아 명단이 공개된 바 있다. 참사 유족들은 지난 9월에 길에서 두 번째 명절을 보냈다. 한편, 참사의 책임 소재는 아직도 다투고 있다. 

또다른 참사를 막기 위해선, 왜 그 참사가 일어났는지, 막을 순 없었는지, 예방할 순 없었는지, 뼈가 으스러지는 그 참사를 겪고난 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다뤄야 한다. 떠나간 사람들을 되살아나게 할 수 없다면, 그와 비슷한 또다른 참사가 나타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구조적 문제를 찾고, 그 구조를 바꾸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 역할은 언론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태원 참사 당시를 보면, 언론의 태도는 실망스럽다. 언론은 참사 원인을 개인에게 찾았다. 개인이 참사의 원인이라는 듯이.

토끼남을 찾아라, 정치 공방으로 어어지는 참사와 잇고 있는 언론

이태원 참사 당시, 토끼띠를 한 남자를 찾아라라는 기사가 많았다. 또끼띠를 한 사람이 앞 사람을 밀치자, 사람들이 줄줄이 쓰러졌고 그로 인해 참사가 발생했다는 이야기했다. 당사자는 마녀사냥이라고 말했고, 사고 당시 합정역에 있었다고 반박했다. 그 근거로 자세한 교통비 지출 내역까지 공개했다. 토끼띠 남으로 지목된 당사자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나와 억울하다는 입장을 말한 바 있다.

문제 원인이 어느 한 개인에게 ‘만' 있다면, 그 개인을 쫓고 추궁하고, 책임 소재를 묻는 건 중요하다. 하지만, 대개의 참사는 어느 한 개인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쌓여온 원인이 있고,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참사의 트리거가 어느 개인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원인이 그에게만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참사 당시 언론이 문제의 원인을 찾고, 분석하고, 알려서 책임자의 책임을 말해야 하는 이유다.

참사 당시 책임이 있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찰 많이 동원됐어도 일어났을 참사"라며 책임을 회피했고, 윤석열 대통령은 압사 한 것을 두고 “압사? 뇌진탕 그런 게 있었겠지” “여기서 이렇게 많이 죽었다고?” 라며 참사를 추모하는 모습도, 원인을 제대로 분석하려는 책임도 찾아볼 수 없는 말을 했다.

이러한 막말은 정치 공방으로 이어졌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참사 영업이라는 말이 나오는 사이, 유족들 고통은 더더욱 심해지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막을 순 없었는지, 대비책은 없는지를 다루는 기사는 찾기가 어렵다. 언론 역시 이런 정치 공방만을 주목해서 다루고 있다. 참사 당시에도 오히려 해외 언론들이 이에 대한 분석과 원인을 말하는 모양새였다.

해외가 더 분석하고, 알리는 참사

워싱턴 포스트는 이태원 참사 이후, 이 일이 왜 발생했는지 다루는 기사를 냈다. 해당 기사에서는 이태원 참사는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며, 시간대 별로 참사 상황을 분석했다. 또한, 당시 투입된 경찰 인력에 대한 내용과 함께 경찰의 수직적 구조로 인해 적절한 예방책을 마련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도 내놨다.

  • 한국 경찰의 수직적 조직 문화 때문에 적절한 예방책을 마련하기 어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의 경찰 교육 전문가들은 법적 근거나 매뉴얼에 기반한 예방 의무가 불확실한 사건의 경우 일선 경찰이 나설 동기가 적다고 말했다. 또한 매뉴얼에 없는 내용을 예방 목적으로 제시하기 힘든 경직된 구조라고 꼬집었다.군중 전문가인 마틴 아모스 영국 노섬브리아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군중 압착이 이미 진행된 상황에서는, 사망자 규모를 줄이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적었을 것”이라고 당시 상황을 분석했다. “정부는 이런 일이 처음부터 발생하지 않게 예방하는 데 최선을 다했어야 합니다.”

뉴욕타임스 역시 기사를 다뤘었다. 기사는 이대로 두면 사람이 죽을 거라는 경고가 몇 년 전부터 있었으며, 당시 용산경찰서가 서울경찰청에 인력 증원 요청을 했으나 집해로 인해 충원이 어렵다고 거절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당시 용산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시위 집회가 있었는데, 집회 참석 인원은 4,700명이었다. 반면, 1마일 떨어진 이태원에는 13만 명이 모였다. 

137명의 경찰 배치 인력 중 마약 전담 형사가 52명이었다는 내용, 그리고 단 한 명의 마약범도 잡지 못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나마 마약 전담 형사들은 10시 48분에 구조에 투입됐고, 11시 1분에 대통령에게 참사 소식이 전해지고, 11시 20분에 행안부가 재난문자를 발송, 11시 40분에 집회 투입 경찰 인원이 현장에 투입됐다는 자세한 이야기를 내놨다.

무엇보다 주목 된 건 이들의 분석이 어느 국내 기사에서도 보지 못한 내용을 다뤘다는 점과 충분히 막을 수 있던 참사라는 것을 지목했다는 점이었다.

비슷한 사고를 인도는 이렇게 다뤘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했을 때, 인도 역시 이태원 참사를 다뤘다. 하지만, 더 주목해야 할 건 그 다음날 인도에서 발생한 사고다. 이태원 참사 하루 뒤인 10월 30일, 인도 구자라뜨 주 모르비(Morbi) 다리가 붕괴됐고, 이로 인해 140명 이상이 사망했다.

출처 : CNN

기사의 영상을 보면, 한 사람이 다리를 흔드는 걸 볼 수 있다. 그 뒤 다리가 무너진다. 연합뉴스는 해당 영상의 썸네일을 “한 청년이 몸을 흔들자 벌어지는 끔찍한 사고"라고 짓고 보도했다. 어느 한 사람이 몸을 흔든다고 해서 다리가 무너지지는 않는다. 애초부터 부실한 다리였고,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발생한 참사였다. 참사의 원인을 개인에게 몰아가려는 ‘마녀사냥'이 제대로 보이는 썸네일이다. 우리나라 언론이 참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고 생각한다.

인도 언론은 어떨까? 그들도 참사를 한 개인에게 몰아가는 마냐사냥을 했을까? 아니다. 그들은 원인 분석을 하고, 해당 문제에 대한 책임을 무는 방향으로 기사를 썼다.

기사에 따르면, 무너진 다리는 1877년에 지어졌고, 2022년에 7개월 간 다리 보수공사를 했다. 하지만, 안전 우려가 있어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데 주의가 필요했다. 이러한 우려가 현실로 일어나 결국 참사가 일어났고, 책임자로 지목된 담당 회사 Oreva는 그 책임을 인정했다.

이러한 책임 인정까지 인도 언론은 어째서 보수공사 한 다리가 무너지게 됐는지, 부실 공사는 없었는지, 40년 간 책임을 맡았던 Oreva와 다리가 있던 구자르뜨 주에서 장기 집권하던 BJP 정부와 거래가 있었던 건 아닌지 계속해서 보도했다. 원인을 개인에게 찾기 보다, 구조적인 진상 규명과 구조적 문제 파악에 초점을 맞춘 보도였다. 정치적 이슈화도, 개인의 마녀화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언론과 시민의 역할은

언론이 원인을 분석하고, 구조적 문제를 찾아 지적해서 바뀐다고 해도 또다른 참사가 발생하지 않는 건 아니다. 어쩌면, 아니 반드시 발생할 것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어차피 발생할 것이라며 안일하게 대응하기 보다는 끊임없이 대비하고 예방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단순 마녀사냥과 정치적 이슈로 몰아갈 것인가, 아니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참사 원인을 규명하고 예방할 것인가. 진짜 언론이라면 나는 후자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사와 재난을 다루는 언론이 부디, 다시는 똑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진상 규명과 원인 분석, 문제 파악에 더 집중했으면 좋겠다.

이태원 참사가 곧 있으면 1년을 맞이한다. 1년을 돌아보고 참사 이후 우리나라의 시스템은 어떻게 바꼈는지, 다시 비슷한 상황에서도 동일한 참사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지, 언론은 그 문제를 제대로 다루고 있는지 지켜보는 것도 시민의 역할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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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원인이 어느 한 개인에게 ‘만' 있다면, 그 개인을 쫓고 추궁하고, 책임 소재를 무는 건 중요하다. 하지만, 대개의 참사는 어느 한 개인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네요. 언론이 특정 사건에 대해 어떤 관점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여론이 달라지기 마련이니까요. 작년 10.29 이태원 참사 때 저도 bbc 보도를 많이 참고했던 기억이 나네요.

참사 이후 또다른 큰 참사가 계속 생기는데도.. 진상규명과 구조적 문제 파악은 눈을 씻고 봐도 찾기 힘들고, 1-2인의 악인을 만들어내 모든 책임을 전가시키는 모습들에 화가 납니다..

잘 읽었습니다. 요즘 뉴스를 잘 안 보게 되는데 현 상황을 자극적으로 보도하는 기사로 생기는 피곤함이 있는 거 같아요.
공감되는 글이었어요. 기본적인 언론 윤리도 지키지 않은 글이 많아서 항상 분노에 휩싸이곤 합니다. 참사의 책임은 언론에게 있지 않더라도 계속 참사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서 언론이 책임이 없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다양한 해외 언론 사례를 접하니 국내 언론의 참사를 다루는 태도 문제를 느끼게 되네요. 참사가 발생하면 정부에서 언론부터 통제하고 특정세력이나 개인을 몰아가는 기사부터 주문하는데 그런 영향도 있을 거 같아요.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