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연 시위를 보는 시선들
? 한국 장애인 운동의 역사 ? 전장연의 요구사항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장애인 이동권 관련 요구사항은 2018년 5월 22일의 기자회견에서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서울시내버스 완전공영 정책 실시 2. 지하철 전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확보할 것 3. 서울시 시내 저상버스 2025년까지 보급률 100>#/b### 4. 특별교통수단 (장애인콜택시) 이용개선 대책 마련 5. 장애인 단체 활동·여행 時 접근가능 전세버스 마련 및 공공운영 (이상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2018.05.23. 서울시장선거를 앞둔 기자회견) ?️?️ 시선1: 다른 장애인 단체들의 시선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한국장총) 측은 2022년 3월, 전장연 시위를 비난한 이준석 대표에 대해 사퇴하라고 요구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 대표의 눈에는 여성, 장애인 등에 대한 배려와 기회의 평등, 적극적 우대조치 등이 모두 특혜로 보이겠지만 사회적 약자들의 소득과 학력, 건강수준의 격차는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여전하다.” “시위는 애당초 다수의 불편을 초래하는 일이다. 소수든 다수든 불편을 초래하지 않는 시위는 없다. 이 대표가 비문명적이라고 비난하는 시위 방식은 서구문명사회에서도 지속돼 온 비폭력 시위다. 미국 등 장애운동의 역사 또한 비폭력 점거, 시위 등의 연속이었다. 장애인차별철폐운동만이 아니라 여성차별철폐운동, 인종차별철폐운동이 그랬다. 이 대표 논리는 다수의 출근 권리는 보장되어야 하지만 소수의 출근 권리는 희생돼도 무방하다는 세계관이다. 이준석 대표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의 언어가 아니라 편협한 세계관으로 혐오를 조장하고 선동하였다.” “(이준석은) 연일 시위 방식만 지적하며 전장연이 대화할 자세가 안 되어 있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시위 방식이 잘못됐다고 전장연이 제기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준석 대표는 공당의 대표, 여당이 될 대표로서의 역할과 영향력을 망각했다. 남성vs여성, 특정지역 서민, 장애인vs비장애인, 법정vs비법정 장애인단체를 갈라치기하며 지지자와만 소통하겠다는 편협한 사고, 고압적이고 반성 없는 태도로 일관하는 모습에 263만 장애인과 가족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만 남았다.” “이준석 대표의 지금까지의 행보는 개인 이준석의 생각이어도 손가락질 받을 일이다. 하지만 정당 대표로서 이준석 대표는 자질이 없기에 정중히 사퇴를 촉구한다.” (2022.03.31.전국장애인총연맹 입장 발표) 비슷한 시기, 한국지체장애인협회는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면서도 한국장총과는 다른 입장을 보였습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장기간 국민을 볼모로 한 각종 불법시위가 그 도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이동권 보장 요구에 우리 협회도 인식을 같이 하며, 다만 이를 주장하는 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우리 협회는 전장연이 지난 20년 넘는 세월동안 과격한 시위를 이어왔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전장연이 취해 온 강경투쟁이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불편을 주었고, 장애인식개선에 악영향을 미쳤습니다.” “선량한 시민사회에 전장연의 불법 및 강경투쟁이 전체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고착화 시키고 있습니다. 이는 장애인은 물론 장애인복지 증진을 위해 노력해 온 장애인단체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엄중한 행위라는 점을 분명히 밝혀두고자 합니다.” “국민들이 이해할 수 없는 시위는 멈추어 주십시오. 정당성 있는 과정과 방법으로 우리의 호소력을 높여야 합니다.” “사회적 약자를 공격하는 것이 온당치 못하다 여기는 분위기로 몰아가는 여론에도 우리는 결코 동조하지 않습니다.” “사회적 동의와 국민의 지지를 무시한 장애인 운동은 결국 설자리를 잃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국민의 불편을 야기하는 특정 단체의 극단적인 행태에 깊은 유감을 금치 못하며, 정부와 국회는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위한 실제적인 활동과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천해줄 것을 촉구합니다. 장애계 그리고 정치권은 국민들이 눈살 찌푸리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2022.03.29.한국지체장애인협회 성명) ?️?️ 시선2: 정치권의 시선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에 대한 정치권의 발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발언일 것입니다. 그는 “지금까지 우리 당의 정치원로들이나 아니면 다른 지금까지 정치 문법에 있어서 애초에 장애인 관련 문제 같은 것은 건드리지 말라는 문법”이라고 말하면서 “이런 것들에 대해서 앞으로 적극적으로 정치권이 개입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한겨레.2022.03.31.) 2022년 4월 13일, JTBC에서 이 전 대표와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라이브 토론을 벌였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한민국에는 장애인 이동권 못지않게 중요한 우선순위 사업들도 있어 조율이 필요하다” “지하철 막은 다음에 악플을 안 받길 기대하셨나” “탑승 시위 그 자체는 반대하지 않는다. 지하철을 마비시키는 방식으로 다수의 불편을 야기해서 결국에는 뜻을 관철시키려고 한 거 아닌가” “그래서 그 부분을 비문명적이라고 한 것이고 꼭 출입문을 닫지 않게 하는 방식으로 했어야 했나” (2022.04.13.) 이준석 전 대표에 대한 비판도 있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의원 "이 대표는 혐오의 발언을 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왜 그렇게 많은 이들이 비판하고 불쾌해하는지 알아야 한다" "이 대표가 여성,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태도의 결과치가 이 대표의 발언이 지탄을 받는 이유" (매일경제.2022.03.28.)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 "장애인단체 시위로 인한 시민의 불편과 갈등은 정치권이 이용할 소재가 아니라 해결해야 할 과업" "장애인단체의 이동권 보장 요구에 인질, 볼모, 부조리를 운운하며 서울경찰청에까지 조치를 요구하는 모습에 새로운 (윤석열) 정권에 대한 깊은 두려움이 생긴다" (오마이뉴스.2022.03.28.)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 "정말 큰 사고가 있어야 누가 사망하거나 중상을 당해야 그제야 언론에서 주목하고, 언론에서 주목해야 그제야 정치권에서 관심을 가져왔다" "헤아리지 못해서, 공감하지 못해서 죄송하고 적절한 단어 사용이나 적절한 소통을 통해서 여러분과 마음을 나누지 못해 정말 죄송하다. 정치권을 대표해서 제가 대표로 사과드린다" (오마이뉴스.2022.03.28.) 이준석의 뒤를 이어 국민의힘 대표가 된 권성동 의원도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법치국가로부터 지원을 받은 단체가 법치를 뒤흔드는 거듭된 모순을 끊어내야 한다. 불법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처벌밖에 없다” “전장연을 비판하면 일부 야권 인사들은 혐오와 차별이라고 낙인찍는데, 다른 의견을 도덕적 파탄으로 몰아세우며 정치적 지분을 확보하려는 선동” “사회적 약자의 어려움을 자신의 이윤 창출 수단으로 삼는 전형적인 갈등산업 종사자의 모습” “정부는 엄정한 법과 원칙에 따라 불법 시위를 예방하고 엄단해주시기 바라고, 국회는 장애인 복지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동시에 반복된 불법행위를 주도한 시민단체에 대한 국고 보조금을 제한하는 입법이 필요하다는 국민 목소리도 경청해야 한다” (세계일보.2022.09.14.) 2022년 12월 말부터 전장연의 시위에 대한 경찰과 서울교통공사의 대응이 강해지자,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서울교통공사가 자행하는 장애인 시위에 대한 보복성 무정차 통과는 그 어떤 시민의 복리에도 기여하지 않으며 오로지 권력의 입맛대로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의 이동권을 침해하는 폭거일 뿐” “10.29 이태원 참사에서 무정차 통과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사를 받던 서울교통공사 직원이 의원실에 찾아와 무정차 통과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구구절절 늘어놓던 며칠 전이 생각난다” “시민을 지키는 무정차 통과는 그렇게도 어렵더니 시민을 억압하는 무정차 통과는 어찌 이리 쉽나” (주간조선.2023.01.04.) 오세훈 서울시장은 최근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오전 서울경찰청장과 논의를 마쳤다. 서울교통공사에서 요청하면 경찰이 지체 없이 신속하게 대응할 것” “서울시정 운영 기조인 ‘약자와의 동행’이 불법까지도 용인하겠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불법에 관한 한 이제 더 이상의 관용은 없다” (세계일보.2022.12.27.) “내일부터 지하철을 연착시키게 되면 민·형사적 대응을 모두 동원해 무관용으로 강력히 대응할 것” “1년간 (열차 지연으로) 손해를 본 것이 6억원 정도” (매일경제.2023.01.01.) “전장연을 만나기는 하겠으나 (전장연이) 전체 장애계의 입장이 아니란 점을 분명히 하고 만나겠다”  “장애인 단체의 의견을 면밀히 검토해 바람직한 방향으로 민원을 제기하는 분들이 손해보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신경쓰고 장애인의 편의와 권익증진에 노력하겠다” (경향신문.2023.01.09.) ?️?️ 시선3: 나무위키의 시선 나무위키는 전장연 시위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동열차 운행방해 사태라 명명하고, 이 문서를 범죄 카테고리에 두고 있습니다. 전장연 시위는 배우 곽도원의 음주운전, 작곡가 돈 스파이크의 마약 범죄, 이기영의 살인 범죄, 기타 성매매, 아동성폭행, 학교폭력 등과 같은 범주 안에 있습니다. (나무위키 <2022년 범죄> 항목) 그리고 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굵은 글씨는 실제 문서와 동일합니다다) “2020년 1월 22일부터 진행중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운행방해 불법 시위이다.” “해당 시위는 형법상으로 철도안전법, 업무방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감염병예방법, 교통방해죄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있다.” “찬성 측에서는 그동안 수많은 정권에서 교통약자 관련 정책을 등한시했다는 이유를 들어, 장애인들의 현실 상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의견을 내세우고 있지만, 반대 측에서는 이를 위해 그들은 무고한 시민들에게 명백히 금전적 손해를 포함한 여러 피해를 끼치고 있고, 개인 및 지자체 등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시간적, 경제적 피해를 입혔다는 점에서 다른 사람들이 수인하고 있는 피해의 규모와 등가성이 맞지 않고, 또한 그들은 미신고 불법 집회를 하고 있다는 점, 철도역에서 벌이는 노숙, 음주 술판 등 집회의 명분과는 전혀 관계없는 무질서행위를 저지르기에 이르렀다는 점을 피력하고 있다고 여러 근거를 들어 반박했다.” “전장연은 21년간 쌓아 온 장애인으로서의 억하심정과 그간 5명의 대통령들의 행동에 대한 불만을 모두 현 정권에게 풀어내고 있다.” “그 수단으로 정부에 대한 항의가 아닌 죄없는 시민들에게 정부가 굴복할 때까지 피해를 입히는 도덕적으로, 사회적으로, 법적으로 용납되기 힘든 방법을 쓰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이 보이는 이런 비타협적 태도,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들 스스로의 요구에 대한 이상할 정도의 무지는 이들이 애초에 진심으로 정책을 토론하고 실현시키는 데 관심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때문에 이들의 테러와 같은 과격집회는 사회적인 정당성을 완전히 결여하며, 정책이 아닌 금전이 제1의 목적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뒤돌아서면 행인에게 행패를 부리는 노숙자 집단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앞에서 아무리 화려한 미사여구를 동원하고 자신을 희생양으로 치장한다 한들 그 진정성을 신뢰하기 힘들다. 기본적 에토스(Ethos)의 문제이다.” “전장연은 장애인 중에서도 일부 소수의 사람들로 구성된 일개 이익집단일 뿐이다.” “전장연 사태에서 언론은 잠재적인 전장연의 협력자로 기능해 왔다고 해도 좋을 만큼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중략) 언론들이 조선일보의 일부 고발 기사를 제외하고는 전장연의 진짜 시위 목적인 탈시설 관련 문제를 전혀 언급하지 않고, 전장연의 주장대로 이동권 문제가 그들의 목적이라고만 보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언론들이 시민들을 현혹하게 되면서, 이번 시위에서 전장연이 요구하는 예산 대부분이 이동권 예산이 아니며, 이동권 예산이 2배로 증액되었지만 아직도 전장연이 시위를 계속하기를 택했다는 일련의 사실들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민들은 이번 시위가 이동권 문제이며 그들의 목적만은 옳다는 중대한 착각을 하고 있다.” (이상 나무위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동열차 운행방해 사태> 항목) 나무위키는 장애 당사자인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에 대해 이렇게 기입해 놓았습니다. (굵은 글씨는 실제 문서를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변재원 활동가가 김예지 의원의 비서관인 이가연의 남편인데다 전장연의 정책국장이어서 김예지 의원이 연고관계 때문에 전장연 편을 든다는 논란이 일어난다. 이준석이 이 점을 비판하자 변재원은 페이스북 글로 논의에 참여해 이준석에게 '오해를 풀고 소통하고 싶다'는 글을 올려 자신이 현재는 전장연 소속이 아님을 밝히고, 교통 문제에 관심이 많다던 이준석이 협상 자리에서 졸기나 했다며 비난했다. (중략) 김예지 의원 비서관의 남편이 인터넷에 알려진 것처럼 단순히 전장연 소속일 뿐 아니라, 한때 전장연측의 입장을 대표하러 토의 자리에 나오는 중요한 직위의 사람이었다는 것이 된다. 게다가 김예지 의원의 비서관 이가연은 사실 전장연 기관지인 비마이너에서 활동하던 인물이었다. 이에 이준석은 "오해에 대해 소통하고 싶다면서 내가 졸았다고 비난하느냐. 그런 말 나올까봐 자신은 누구와 만날 때 꼭 배석자를 둔다(그렇지 않았다는 증인이 있다), 당신 글 내용으로 전장연의 목표가 어디에 있는지 스스로 밝힌 셈이 되었다"고 반박했다. 전장연의 정계 유착 및 비리, 장애인 인권유린 등의 각종 부정적 이슈를 추적 보도하고 있는 조선일보의 최모 기자에 의하면 자기가 김예지 의원 비서관 및 그 남편의 전장연과의 관계에 대해 질의하려고 접촉을 시도하자 이가연 비서관은 자신이 변 정책국장의 아내라는 것을 부정하고 더 이상의 취재를 거부했고, 남편인 변재원 정책국장은 아예 자신의 페이스북을 닫아버렸다고 한다. (이상 나무위키<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동열차 운행방해 사태> 중 <김예지> 항목) ?️?️ 글쓴이의 감상 한국지체장애인협회 등의 일부 장애인 단체, 이준석 대표 등 국민의힘 의원들, 나무위키에 흐르는 공통적인 시각은 이것입니다. “과격한 시위는 공감받기 어렵고, 장애인인 이미지만 해친다” 이런 이야기를 장애인이 해도 동의를 할까 말까인데, 비장애인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면 진짜 머리가 핑 도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께 평소에 장애인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갖고 계셨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계셨는지 묻고 싶습니다. 이런 태도에는 기본적으로 시위의 형식만 보고 왜 시위를 하는지는 보지 않으려는 태도가 깔려 있습니다. 물론 형식/방식도 중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그들은 과격한 방식을 택할까요? 왜 시위는 과격해질까요?  시위도 개인과 사회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입니다. 장애인의 이동권에 대한 대중의 시선, 정부의 대응, 경찰의 대처가 전장연의 “과격한” 시위를 촉발한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2001년입니다. 22년이 지났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바뀌었습니까? 전장연 시위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자주 들고 오는 근거는 “서울 지하철역의 엘리베이터 설치율이 94%이며, 이는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히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와 리프트는 뻑하면 고장이 나고 사람들은 장애인에게 양보를 해주지 않습니다. 환승구간을 연결하는 승강기가 없어서 환승을 못하는 경우도 많고, 승강장과 열차 사이의 간격과 단차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장애인 콜텍시는 50분을 기다려야 겨우 오고, 저상버스 보급은 오래전부터 100%를 약속했지만 아직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한겨레.2022.04.29.) 이 세상에 100%가 쉽냐, 이 정도도 대단한 거다, 이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 물론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숫자만 채우면 이 문제가 끝날까요? 이동수단의 질에 대해서는 왜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을까요? 여기에는 장애인을 동료 시민이 아니라 시혜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깔려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약칭: 장애인차별금지법)에는 이런 조항이 있습니다. 제19조(이동 및 교통수단 등에서의 차별금지) ①「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 제2조제5호 및 제6호에 따른 교통사업자(이하 “교통사업자”라 한다) 및 교통행정기관(이하 “교통행정기관”이라 한다)은 이동 및 교통수단 등을 접근ㆍ이용함에 있어서 장애인을 제한ㆍ배제ㆍ분리ㆍ거부하여서는 아니 된다. <개정 2010. 5. 11.> ②교통사업자 및 교통행정기관은 이동 및 교통수단 등의 이용에 있어서 보조견 및 장애인보조기구 등의 동승 또는 반입 및 사용을 거부하여서는 아니 된다. ③교통사업자 및 교통행정기관은 이동 및 교통수단 등의 이용에 있어서 장애인 및 장애인 관련자에게 장애 또는 장애인이 동행ㆍ동반한 보조견 또는 장애인보조기구 등을 이유로 장애인 아닌 사람보다 불리한 요금 제도를 적용하여서는 아니 된다. ④교통사업자 및 교통행정기관은 장애인이 이동 및 교통수단 등을 장애인 아닌 사람과 동등하게 이용하여 안전하고 편리하게 보행 및 이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필요한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여야 한다. ⑤교통행정기관은 교통사업자가 장애인에 대하여 이 법에 정한 차별행위를 행하지 아니하도록 홍보, 교육, 지원, 감독하여야 한다. ⑥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운전면허시험의 신청, 응시, 합격의 모든 과정에서 정당한 사유 없이 장애인을 제한ㆍ배제ㆍ분리ㆍ거부하여서는 아니 된다. ⑦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이 운전면허시험의 모든 과정을 장애인 아닌 사람과 동등하게 거칠 수 있도록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여야 한다. ⑧제4항 및 제7항을 적용함에 있어서 그 적용대상의 단계적 범위 및 정당한 편의의 내용 등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이 법은 2017년 7월 26일부터 시행된 법입니다. 우리는 이 법 앞에서 장애인들의 이동권이 침해받지 않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까? 왜 이 법은 이야기하지 않을까요요? 한국에 온 외국인들이 자주 이야기하는 것 중 하나가 한국의 거리에선 장애인을 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2021년 기준, 한국의 등록장애인은 264만 5,000명으로 전체 인구대비 5.1%입니다. 이 중에서 중증장애인은 37.2%이고, 지체장애인은 45.1%를 차지합니다.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꽤 많은 숫자죠. 그런데 여러분은 평소에 길을 다니면서 중증장애인을 몇 명이나 마주치시나요?  과격한 시위는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는 제도적 문제와 아직도 만연한 대중의 차별적인 시선이 낳은 결과입니다. 정치인과 정부는 이미 거센 불길에 기름을 더 붓고 있습니다.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사회에 깔려있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인 문화, 불평등을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이 문제는 절대 해결되지 않습니다.
장애인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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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격이 가능한 국가 일본: 우경화에 대한 소고(小考)
우크라이나 전쟁은 전세계에 많은 불안을 던져주었습니다. 러시아의 침략으로 인해 독일이 군비를 증가하면서 사실상 재무장을 선언했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고 (MBC.2022.06.04.), 이를 계기로 혹시 중국도 타이완과 전쟁을 벌이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동북아시아에 널리 퍼졌습니다. 일본은 북한의 핵실험을 자위대를 ‘반격이 가능’하게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는 일본의 보통국가화, 지금의 자위대를 정식 군대로 전환려는 시도와 연결되어 있으므로 많은 사람들, 특히 동북아시아에서는 이를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자위대(지에-타이) 일본국헌법 제9조 일본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히 희구하고, 국권의 발동이라 할 수 있는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써는 영구히 이것을 포기한다. 2 전항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육해공군 및 그 외의 전력을 보지保持하지 않는다. 나라의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第九条 日本国民は、正義と秩序を基調とする国際平和を誠実に希求し、国権の発動たる戦争と、武力による威嚇又は武力の行使は、国際紛争を解決する手段としては、永久にこれを放棄する。 2 前項の目的を達するため、陸海空軍その他の戦力は、これを保持しない。国の交戦権は、これを認めない。(일본 중의원 - 일본국헌법) 2차세계대전 직후, 일본을 지배했던 연합국 최고사령부(GHQ)는 일본의 체질을 바꾸려고 하였습니다. 여성 참정권을 인정하도록 법을 개정하고, 노동조합을 승인하고 노동쟁의를 인정했으며, 농지를 개혁하고, 재벌을 해체했습니다. 그리고 1947년, 지금 일본의 헌법인 <평화헌법(平和憲法)>을 제정해 일본의 재무장을 법으로 막으려 했지요. 하지만 우리가 알다시피, 그 이후 국제 정세는 매우 긴박하게 돌아갔습니다. 1947년에는 독일이 동서로 나뉘어졌고, 1948년에는 조선이 남북으로 갈라졌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해에는 중국 국민당이 타이완으로 옮겨가고(국부천대) 중국 공산당이 천안문 광장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을 선포했습니다. 이른바 냉전의 시작입니다. 이때부터 GHQ의 점령정책은 비군사화/민주화에서 반공/경제부흥으로 바뀌었습니다. 미국은 일본을 자본주의 진영의 일원으로 삼아 중국이 태평양을 바로 건너지 못하게 하기 위한 반공기지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해인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GHQ의 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는 한반도로 안심하고 건너가기 위해 일본을 방위할 전력이 필요해졌습니다. 그래서 그해 7월 8일에 만든 것이 경찰예비대(警察予備隊)입니다. 또, 1948년부터는 그 전에 공직에서 추방했던 전범들을 다시 공직으로 불러들이고 소위 좌익이라 분류되는 사람들을 학교, 관공서 등에서 추방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한국전쟁을 위한 군수물자와 자본이 일본으로 쏟아지면서 일본 경제는 부흥을 맞이하게 됩니다. 일본에서는 이를 조선특수(朝鮮特需, 쵸-센토쿠슈)라고 합니다. 일본의 경제발전과 우경화의 발판은 이때 마련되었습니다. 경찰예비대는 1952년 보안대(保安隊, 호안타이)로 이름을 고쳤다가 1954년 자위대(自衛隊, 지에-타이)로 이름을 바꾸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일본의 군대 아닌 군대, 자위대 탄생의 역사입니다. 안보투쟁과 시바 료타로 한국전쟁 중이었던 1951년, 미국과 일본은 일본에서 GHQ와 미군을 철수하고 행정권을 일본 정부에게 인수하기로 하는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체결합니다. 이로 인해 일본에서 미군은 철수하지만, 당시 일본 총리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1878~1967)가 미일안전보장조약(소위 ‘안보조약’)을 체결, 주일미군이 탄생하게 됩니다. 일본 안에서는 일본의 야당과 좌익 세력, 반전 세력, 반미 세력을 중심으로 안보조약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집니다. 안보조약을 둘러싸고 다양한 세력이 이에 반대하며 벌어진 반정부 혹은 반미 기조의 일련의 시위를 안보투쟁(安保闘争)이라고 합니다. 요시다 시게루 이후 총리가 된 키시 노부스케(岸信介, 1896~1987)가 이 시위를 야쿠자를 동원해 폭력적으로 진압하면서 시위는 점점 격화되었습니다. 이에 키시 노부스케는 재빠르게 조약을 체결한 후 자리에서 물러나 버립니다. 조약이 이미 체결되고 조약을 주도한 키시 총리가 물러나면서 시위의 규모는 크게 줄어들게 됩니다. 키시의 뒤를 이어 총리가 된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 1899~1965)와 자민당 정부가 경제 발전을 국정의 핵심으로 삼고 국면을 전환하면서 자민당 정부의 정책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정치권(야당)과 시위전선이 분열되게 됩니다. 또 학생 시위가 점점 극렬화되면서 학생 운동 내에서 비행기 납치, 테러, 서로간의 살인 등의 사건이 벌어지고, 이것이 부각되어 보도되면서 학생 운동에 대한 관심도 매우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소설가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郎, 1923~1996)가 있습니다. 일본 역사 소설계를 풍미했던 시바 료타로는 인물 중심으로 내용을 서술하면서 그 인물에 대해 깊이 빠져들게 하는 다양한 자료 소개와 필력을 통해 일본 내에서는 물론이고 일본 외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지금은 너무나도 유명한, 일본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름을 들어봤을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 같은 인물은 사실 역사적으로 엄청 큰 역할을 한 것도 아니고 사후에 잊혀졌던 사람이지만 시바 료타로의 소설 『료마가 간다(龍馬が行く)』를 통해 유명해진 사람입니다.  전후 일본에서 지식인들 중에는 일본은 왜 전쟁을 일으켜 일본과 아시아에 재앙을 가져왔는지에 대해 논의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일본 민중들 사이에서는 과거의 전쟁에 대해서 쉬쉬하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사바 료타로의 두 편의 소설이 매우 큰 반향을 일으킵니다. 메이지 유신의 과정을 그린 『나는 듯이(翔ぶが如く, 1975~76)』와 러일전쟁을 그린 『언덕 위의 구름(坂の上の雲, 1969~1972)』. 이 두 편의 소설은 이후 일본 대중 사이에서 ‘쇼와 천황은 문제가 있지만 메이지, 다이쇼 천황은 훌륭했다’, ‘천황은 전쟁에 잘못이 없고 군부가 잘못한 것이다’, ‘45년 이전은 나빴고 45년 이후는 선하다’라는 식의 역사 인식을 퍼트리게 됩니다. 미국이 천황에게 전쟁 책임을 묻지 않은 것은 이런 역사 인식의 중요한 증거가 됩니다.  천황에 대한 전쟁 책임을 묻지 않은 미국, 미국에 의한 일본 지배, 일본 주도의 전쟁 속에서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된 일본의 대중, 대중문화를 통한 새로운 역사 해석 등은 일본 안에서 미국에 대한 뒤틀린 인식과 근현대사 인식을 불러일으킵니다. 우경화? 일본은 전쟁 전에도 매우 잘 살았고 1945년을 전후로 자기들이 일으킨 전쟁 때문에 잠시 경제적으로 힘들긴 했지만 1950년대 이후 다시 경제를 복원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1956년 일본 정부는 이렇게 말합니다. “더이상 전후戰後가 아니다(もはや戦後ではない).” 이 말의 원래 뜻은 경제적인 의미에서 전쟁 피해를 복구했다는 뜻이었지만, 사회적으로는 비정상적인 어둠의 시대를 끝내고, 혹은 그것과는 이제 단절하고 새로운 시대로 나아갈 것이며 나아가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런 단절은 일본 문화를 거대담론에서 벗어나 자신과 자기 주변에 집중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습니다. 새로운 일본이 탄생하는 과정입니다. 1950년대 이후의 가파른 경제적 성장 속에서 역사나 정치 같은 거시적인 문제를 외면하고 자신과 자기 주변에 집중하는 풍조가 지배하던 일본에서 갑자기 국민을 외치며 등장한 고이즈미 쥰이치로(小泉純一郎)와 아베 신조오(安倍晋三).  이렇게 생각하면 일본이 최근들어 우경화되었는가 라는 질문은 다소 안 맞는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애초에 좌나 우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을 정도로 그 당사자들이 어떤 특정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는가에 대해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의 외국에 대한 보도는 지나치게 한국 중심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본에 대한 보도도 마찬가지고요. 어느 정도는 역사적인 경험 때문에 어쩔 수 없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대부분은 한국이 보고 싶은 보도만을 하고 한국이 원하는 방식으로 기술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반격이 가능한 국가 일본은 북한을 핑계 삼아 재무장을 하겠다는 말을 종종 합니다. 하지만 북한은 어디까지나 핑계고, 사실은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고 미국의 자국 중심주의로 인한 안보 공백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지요. 최근 일본이 안보문서를 수정해 일본을 ‘반격이 가능한 국가’로 만들겠다는 선언을 했습니다. 이에 대한 제이크 설리번 미국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발언은 이렇습니다. "일본은 새로운 국가안보전략, 국가방위전략 및 방위력 정비계획 프로그램의 채택으로,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을 강화하고 방어하기 위한 대담하고 역사적인 조치를 취했다" "방위비 투자를 대폭 늘리겠다는 일본의 목표도 미일동맹을 강화하고 현대화할 것" "새로운 전략은 기시다 총리의 국제 평화와 핵 비확산에 대한 깊은 의지를 강화하고, 일본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이자 G7 개최국으로서 2023년 일본의 리더십 발휘를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러시아가 잔혹한 전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우크라이나를 지지해준 걸 포함해 세계 전역에서 보여준 기시다 총리와 일본의 리더십에 감사한다" "우리와 우리 파트너들이 지속적인 평화와 안정, 번영을 이룰 수 있도록 돕게 될 일본의 역사적인 새 국가 안보 전략에 대해 기시다 총리와 일본 국민들에게 축하한다" (SBS.2022.12.17.) 애초에 일본의 소위 재무장은 미국의 허락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고립주의 혹은 자국우선주의가 국제 사회에서 큰 파장을 불러온 것은 사실이지만, 2000년대에 들어선 후 조지 W.부시 대통령을 제외한 나머지 대통령들은 모두 이런 기조를 가지고 아시아 문제를 다뤄왔다고 생각합니다. 도널드 트럼프가 그것을 대놓고 과격하게 말했을 뿐이고, 나머지 정권들이 크게 달랐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지금 조 바이든 정권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앞의 발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미국이 동북아시아 전략을 복잡하게 계산하고 있는 가운데, 일본은 안보 공백을 불식시키고 미국과의 관계를 더욱 친밀하게 하기 위해 자위대의 권한을 증가시키려 합니다.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사이, 시진핑은 자신의 권력을 늘리며 자신의 (위험한?) 꿈을 이루려고 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를 고민해봅니다.  물론 미시적으로는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거시적으로는 하나의 보편적인 원칙을 정권에 상관없이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거의 유일한 외교 정책의 원칙은 이것뿐일지도 모릅니다. 상황에 따라 다양한 외교적 전술을 구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권에 상관 없이 제국주의와 침략, 전쟁, 반인권적 언행에 대해 반대한다는 원칙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아무 원칙 없이 정권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외교 전술과 외교 정책이 바뀐다면 그 누구도 한국의 말을 믿지 않게 될 것입니다.
한일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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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노동시간 논의에 대하여: 모욕감을 주는 정치
서기 2000년이 오면 우주로 향하는 시간 우리는 로켓트타고 멀리 저 별 사이로 날으리 그때는 전쟁도 없고 끝없이 즐거운 세상 그대가 부르는 노래소리 이세상을 수 놓으리 싸바 (싸바) 싸바 (싸바) 싸바 그날이 오면은 싸바 (싸바) 싸바 (싸바) 싸바 우리는 행복해 다가오는 서기 2000년은 모든 꿈이 이뤄지는 해 싸바 (싸바) 싸바 (싸바) 싸바 행복한 그날을 싸바 (싸바) 싸바 (싸바) 싸바 우리는 기다려 서기 2000년이 오면 더욱더 편리한 시대 그대의 즐거운 모습 나는 그 어디서나 보리라 그때는 가난도 없고 저마다 행복한 마음 우리가 부르는 노래소리 이세상을 수 놓으리 싸바 (싸바) 싸바 (싸바) 싸바 그날이 오면은 싸바 (싸바) 싸바 (싸바) 싸바 우리는 행복해 다가오는 서기 2000년은 모든 꿈이 이뤄지는 해 <서기 2000년> 노래: 민해경, 작사: 박건우, 1982년 노래 2021년부터 지금까지, 한국의 정치와 사회에 깔려있는 기본 정서를 저는 반사회적 범죄주의, 쉬운 말로 사이코패시즘(Psychopathism)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나만 잘 먹고 잘 살 수 있으면 남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 없다는 생각이 그런 후보를 대선판으로 불러들였고, 그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 국민들에게 모욕감을 주자 이제 와서 자기가 윤석열을 뽑은 것은 자기 탓이 아니라 다른 사람 누구누구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모두 반사회적인 정서 속에서 태어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춘추전국시대에 양주(楊朱)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 세상에는 죽느니만 못한 삶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올바르지 못한 일을 당하고 괴롭고 혐오스러운 것을 계속해서 보고 들어야 하는 삶은 그것을 모르느니만 못한데, 그런 것을 모른다는 것은 우리의 인지작용이 멈추어야 가능한 것이고, 우리의 인지작용이 멈춘다는 것은 죽음을 뜻하므로, 이 세상에는 죽음보다 못한 삶이 있다는 것입니다. 고기를 좋아한다고 해서 썩은 쥐고기를 말하는 것은 아니요, 술을 좋아한다고 해서 상한 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삶을 존중한다는 것이 핍박받는 삶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嗜肉者,非腐鼠之謂也;嗜酒者,非敗酒之謂也;尊生者,非迫生之謂也。(『여씨춘추』「귀생(貴生)」中)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가 있는” 삶이면 너무나 좋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거기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그저 원치 않는 것과 뜻하지 않는 것을 피할 수만 있어도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은 어떠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기대해 마지않던 새천년이 20년이나 지난 지금,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요? 대통령의 노동시간론 지난 2022년 8월 3일, 빠띠에서는 <주4일제 도입, 어떻게 생각하시나요?>라는 설문을 진행한 적 있었습니다. (캠페인즈 투표) 주4일제를 놓고 토론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 정부는 노동시간 연장과 주휴수당 폐지를 거론합니다. 2022년 12월 20일, 추경호 기획재정부장관은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함께 국회를 향해 올해 종료 예정인 '근로자 30인 미만 사업장 추가연장근로'를 계속할 수 있도록 근로기준법을 개정해달라는 호소문을 발표했습니다. 추 장관은 주52시간 노동을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603만 명의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는 이들 기업들은 급격한 주 52시간제 시행 이후 추가연장근로제도에 기대어 지금까지 버텨올 수 있었다"  "추가연장근로제도가 일몰 종료된다면 취약 중소기업·소상공인이 감내할 고통은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특히 심각한 인력난을 겪는 뿌리산업·조선산업과 집중근로가 불가피한 IT 분야에서 심각한 피해가 우려된다" "영세 중소기업·소상공업에서 일하고 있는 근로자의 막대한 고통도 우려된다. 최대 52시간의 근로수입만으로 생계를 담보할 수 없어 이탈하거나 투잡으로 내몰리는 근로자도 속출할 것이다. 특히 중소조선업 등 특근 비중이 높은 분야에서 급격한 소득 하락, 삶의 질 저하의 부작용은 더욱 심각할 것이다. 영세한 중소기업·소상공인이 무너지면 우리 경제의 가장 취약한 근로자들부터 가장 먼저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오마이뉴스.2022.12.20.) 사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되면 노동시간이 늘어날 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이미 있었습니다. 후보 시절에는 120시간 노동을 이야기했고, 인수위 시절에는 주52시간을 유연화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으며 (이데일리.2022.04.18.) 당선 이후 6월에는 고용노동부에서 노동시간을 주단위에서 월단위로 바꾸자는 이야기를 했었죠 (SBS.2022.06.23.).  이제 우리는 주4일제는 커녕, 지금 가진 한줌의 권리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게 됩니다. 민주주의 사회는 후퇴와 전진을 반복하지만 어쨌든 발전을 향해 간다고 이야기를 합니다만, 지금의 후퇴는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모든 정권마다 다 나름의 문제가 있었지만, 이 정도로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대로 행동하고 말하는 정부가 또 있었는지, 이렇게 국민들에게 모욕감을 주는 정부가 있었는지요.  농민들에게 수입 농산물을 선물로 주고 (굿모닝충청.2022.12.18.), 자기가 사는 아파트 주민들에게 하사품을 내리는 정부(서울신문.2022.12.20.). 탄핵이다 뭐다, 1찍이냐 2찍이냐 이야기 하기 전에 우리는 왜 이런 사람을 선출하였나 라는 반성부터 해야할 것입니다. 본인에게 사이코패시즘이 있지는 않았는지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대통령의 노동 지난 8월, 서울에 있었던 대규모 폭우로 인해 강남을 비롯한 서울 일부가 완전히 물에 잠기고 인명피해까지 발생했던 그 때, 대통령은 자기 집에 있었습니다. 대통령실에서는 자택에서 보고를 받고 대응을 했다, 대통령이 있는 곳이 곧 대통령실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했지만, 애초에 비상상황에 대통령이 집, 그것도 민간 아파트에 앉아서 전화로 보고를 받고 지시를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지요. 또, 호우 피해가 조금씩 드러나던 8월 8일 오후에 자기 집으로 퇴근을 했다는 것 자체도 이해가 안 가고요.  "내가 퇴근하면서 보니 벌써 다른 아파트들이, 아래쪽 아파트들이 벌써 침수가 시작되더라고" (부산일보.2022.08.09.) 심지어 자신의 퇴근을 위해 폭우가 쏟아지는 와중에 국군 장병들을 동원해 자신의 퇴근길을 손보게 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습니다. (오마이뉴스.2022.09.30.) (한겨레21.2022.08.12.) 8월 3일, 미국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방한 했을 때 자신은 휴가중이라는 이유로 만나지 않았고요(프레시안.2022.08.29.), 빵을 사거나 술을 마시기 위해, 지방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경호인력을 동원하는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노동은 신성한 것이라고 흔히 말합니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 문명을 건설했고, 노동을 통해 수많은 가치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노동을 위해 태어난 것은 아닙니다. 노동은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피지배자이고 자유를 빼앗겼음을 확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애초에 노동은 노동일 뿐입니다. 그 자체로 악도 선도 아닌 것입니다. 결국 노동이 신성하다는 것 또한 하나의 프로파간다인 것입니다.  대통령이 노조의 파업이나 노동시간의 증가를 운운하는 것을 보면, 대통령은 자기와 자기 주변을 제외한 나머지 인간들을 가치 창출의 수단으로만 여기며 노동자들이 노동의 신성함을 알지 못하고 감히 불성실을 꾀한다고 여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듭니다. 하지만 당장 대통령 본인부터 성실하게 일하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봐야 합니다. 우리는 그가 불성실한 노동자라는 것을 많은 곳에서 확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 회사에서 저렇게 일하면 해고당하기 쉽습니다. 본인의 불성실은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아직 유해도 발견하지 못하고 30명의 실종자를 그대로 둔 채 (한경.2006.04.03.) 역대 최악의 재해 장소, 발견될지도 모를 시신 위에 세워진 아파트에 살면서, 노조의 파업을 북핵과 동급이라고 말하는 대통령과 (경향신문.2022.12.05.) 그를 뽑은 사람들. 그리고 나는 그를 뽑지 않았다며 다시 탄핵을 외치는 사람들. 그 어디에도 우리 사회에 대한 반성은 없습니다.  제가 지금의 정치를 보며 모욕감을 느끼는 이유는 대통령과 그 주변인들이 벌이는 망령된 언행과 눈에 뻔하게 보이는 비리의 흔적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누구도 반성하지 않는 사회의 분위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자기가 살아온 세월만큼 이 사회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이를 먹고 있는 저를 가리키며 너는 얼마나 사회에 기여했냐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적어도 세상을 이 정도로 밖에 만들지 못한 죄책감을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매일 저녁 듭니다. 번외: 그의 어록들 “부정식품이라 그러면은 없는 사람들은 그 아래 것도 선택할 수 있게...더 싸게 먹을 수 있게 해 줘야 된다 이거야... 이거 먹는다고 당장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고…” “이 (위생) 단속은 별로 가벌성이 높지도 않고 안하는 게 맞습니다.” “그래서 인제 소위 공권력의 발동을 막는 데에 많이 써먹었습니다.” (매일경제.2021.07.19. 21:10 부터) “집도 생필품이어서 세금을 과세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머니에스.2021.08.04.)  "사람이 이렇게 손발 노동으로, 그렇게 해 가지곤 되는 게 하나도 없다. 그건 이제 인도도 안 한다. 아프리카나 하는 것" (뉴시스.2021.09.16.) “극빈의 생활을 하고 배운 것이 없는 사람은 자유가 뭔지도 모를 뿐 아니라 자유가 왜 개인에게 필요한지에 대한 그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를 못합니다.” (한겨레.2021.12.22.) “한국 국민, 특히 청년 대부분은 중국을 싫어하고 중국 청년들도 대부분 한국을 싫어한다.” (YTN.2021.12.28.) "나라가 없으면 국민이 있겠습니까?" (부산일보.2021.12.31.) "영어로 내셔널 메모리얼 파크라고 하면 멋있는데 (우리말로) 국립추모공원이라고 하면 멋이 없다" (오마이뉴스.2022.06.11.)
노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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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재난 타임라인 ~우리는 얼마나 바뀌었을까~
이 기획은 한국전쟁 발발 이후부터 한국의 재난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한 것입니다. 사망자가 10명 이상 발생한 사건사고를 중심으로 서술하되, 사망자가 10명 미만이어도 기록할 만한 것, 범죄에 의한 것이지만 재난으로 기록될 만한 것을 포함하여 정리하였습니다. 화재/폭발 1953년 11월 25일 부산역전 대화재 사상 29명. 부산 중구 피난민 판자촌에서 시작된 불이 부산역, 부산일보, KBS부산방송총국 등을 전소시킨 사건. 1955년 3월 2일 부산역 열차 화재 사망 42명, 부상 14명. 1960년 3월 2일 부산 국제고무공장 화재 사망 52명, 부상 39명. 부산 동구 범일동 국제고무공업주식회사에서 직공 이필선이 성냥으로 장난을 치다 벌어진 사고. 통로가 좁아 대피가 어려웠던 것이 인명피해를 키웠다. 1971년 12월 25일 대연각호텔 화재 사망 191명. 부상 63명. 서울 중구 명동 소재 대연각호텔에서 일어난 화재. 화재 원인은 1층 커피숍에 있는 LP 가스 폭발. 9.11 테러 이전까지는 세계 최대의 건물 화재 참사로 꼽히는 화재였다. 다음해에 일어난 서울시민회관 화재, 대왕코너 화재와 함께 서울시 3대 화재라 불리기도 하였다. 1972년 12월 2일 서울시민회관 화재 사망 51명, 부상 76명.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자리에 있었던 서울시민회관에서 일어난 화재. 원인은 전기합선. 화재 당일 문화방송 개국 11주년 10대 가수 청백전 공연이 있었으므로 공연 관람객들이 피해를 입었다. 건물은 전소되었고, 6년 후 세종문화회관이 지어졌다. 1974년 10월 17일 뉴남산관광호텔 화재 사망 19명, 부상 45명. 호텔의 전기 취급 부주의로 인해 일어난 사고. 1974년 11월 3일 대왕코너 화재사고 사망 88명, 부상 35명.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에 있던 복합상가 대왕 코너에서 발생한 화재. 희생자 대다수는 6층 나이트클럽에 있던 젊은 손님들로 종업원들이 돈을 내지 않으면 내보낼 수 없다며 밖에서 문을 잠그는 바람에 인명 피해가 증가했다. 지금은 롯데백화점이 들어서 있다. 1977년 9월 14일 남대문 시장 화재 사망 1명, 부상 3명. 원인불명의 화재. 인명 피해는 적었으나 이 사건을 계기로 소방 시설 확충 되었고 남대문시장 현대화가 이루어졌다.  1977년 11월 11일 이리역 폭발 사망 59명, 부상 1,343명. 전북 이리(현 익산)에서 발생한 열차 폭발사고. 광주로 가던 한국화약(현 한화) 소속 화물열차가 이리역을 정차 없이 통과하려고 하자 이리역 공무원들이 열차를 막고 급행료라는 돈을 요구. 돈이 없었던 한국화약 직원 신무일이 결국 정차하여 술을 마시고 열차 안에서 추위를 이기기 위해 촛불을 켜다가 벌어진 사고. 신무일은 징역 10년, 신무일을 막은 이리역 역무원 2명은 징역 10개월의 처벌을 받았다. 1977년 11월 16일 장성탄광 화재 사망 12명, 부상 220명. 강원도 삼척 장성탄광에서 변압기 누전으로 일어난 사고. 1979년 4월 14일 함백탄광 폭발 사망 26명, 부상 38명. 강원도 정선 함백탄광에서 다이너마이트가 폭발. 1979년 10월 27일 은성탄광 화재 사망 44명. 경북 문경 은성 탄광에서 일어난 화재. 10.26 사건 다음날 발생하여 크게 보도되지 않았다. 1984년 1월 14일 대아호텔 화재 사망 38명, 부상 38명. 원인은 종업원의 석유 취급 부주의. 1991년 10월 17일 거성관 나이트클럽 방화 사망 16명, 부상 13명. 대구 서구 비산동의 나이트클럽 거성관의 발생한 화재. 범인 김정수는 옷차림이 누추하다는 이유로 입장을 거부당하자 이에 원한을 품고 방화. 1992년 10월 4일 원주 왕국회관 방화 사망 15명, 부상 36명. 강원도 원주에 위치한 여호와의증인 왕국 회관에서 발생한 방화. 범인 원언식이 부인의 종교활동에 불만을 품고 방화. 1993년 4월 19일 논산 정신병원 화재 사망 34명, 부상 2명. 병동 관리인이 여성 환자에게 담뱃불을 붙여 주었다가 일어난 화재로 추정. 이 사건 이후 수용할 수 있는 인원보다 많은 인원을 수용했다는 점이 드러나 원장이 구속되었다.  1993년 6월 10일 연천 예비군 훈련장 폭발 사망 20명. 경기도 연천 예비군훈련 포사격 중 발생한 폭발. 안전교육이 없었고 군사 주특기와 전혀 상관없는 포사격을 실시한 것도 문제로 제기되었다. 1994년 12월 7일 아현동 도시가스 폭발 사망 12명, 부상 101명. 서울 마포구 아현1동 한국가스공사 아현벨스스테이션에서 가스 누출로 인해 일어난 사고. 1995년 4월 28일 대구 상인동 가스 폭발 사망 101명, 부상 202명, 대구 달서구 상인1동 상인역 공사 중 일어난 가스 폭발. 대구백화점 공사업체인 (주)표준개발에서 가스공사에 문의 없이 굴착을 하다가 도시가스관에 구멍을 내어 생긴 사고. 영남중학교 학생들의 피해가 컸다. 1995년 8월 21일 경기여자기술학원 화재 사망 37명, 부상 16명.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경기여자기술학원에서 발생한 화재. 원인은 방화. 경기여자기술학원은 성매매 여성, 가출소녀, 고아 등을 수용하는 시설로 수용자들의 대한 인권유린이 심각하였고 쇠창살로 기숙사를 잠근 것이 인명 피해를 늘린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화재가 발생했던 자리에는 현재 경기도여성능력개발센터가 들어서있다.  1998년 10월 29일 부산 범창 콜드프라자 화재 사망 27명, 부상 16명. 부산 서구 암남동 냉동창고 내벽에서 발생한 화재. 화재의 원인은 전기합선으로 인한 불꽃이 유증기와 만나 일어난 것으로 추정. 유독가스에 질식으로 숨진 사람이 특히 많았다. 1999년 6월 30일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사망 23명, 부상 6명. 직접적인 원인은 누전. 52개의 컨테이너를 얹어 만든 임시 건물에 불에 잘 타는 소재로 가공을 하였고 화재경보기도 불량품이었다. 또 화재가 발생했을 때 유치원 어린이들을 남겨두고 교사들만 먼저 도망간 것도 문제로 지적되었다. 참사 현장 바로 옆에는 당시 씨랜드 소유주이자 시설 운영자가 야영장을 조성해 영업하고 있다.  1999년 10월 30일 인현동 화재 사망 57명, 부상 79명. 인천 중구 인현동 상가건물 지하 1층 노래방에서 화재가 시작. 문제업소로 경찰에 적발되어 업소 폐쇄명령을 받은 호프집에서 미성년자들에게 술을 파는 등 불법 영향을 계속하였고, 화재 예방에도 소홀하였으며 손님을 많이 받기 위해 통로를 막고 장사한 것도 문제로 지적되었다. 또 학생들이 화재로 대피하려하자 돈을 내라고 소리치며 학생들을 막고 자기만 비상구를 통해 탈출한 호프집 매니저도 큰 비난을 받았다.  2001년 3월 4일 홍제동 주택 화재 사망 6명, 부상 3명. 서울 서대문구 홍제 1동 다세대주택에서 방화로 인해 발생한 화재. 집주인의 아들이 방화를 저지르고 도망갔는데 집주인이 자기 아들이 집 안에 있다고 구조를 요청하면서 소방관들이 순직한 사고. 또 도로의 불법주차로 소방 차량이 진입하기 힘들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었다. 이 이후 의무소방 데가 설치되었으며 소방관들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늘어났다.  2001년 5월 16일 예지학원 화재 사망 10명, 부상 22명. 경기도 광주 송정동 5층짜리 예지 학원 건물에서 수업 도중 담뱃불로 인해 발생한 사고.  2003년 2월 18일 대구지하철 화재 사망 192명, 부상 151명, 실종 21명.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에서 김대한의 방화로 일어난 사고. 1995년 아제르바이잔 바쿠 지하철 화재, 대구 상인동 가스폭발과 함께 세계 3대 최악의 지하철 사고로 꼽힌다. 이 사건을 계기로 도시철도 입선용 전기동차의 안전체계 의무화가 실시되었고 철도차량 방염기준이 상향되었다. 철도안전법이 제정된 것도 이 때의 일이다.  2003년 12월 17일 청도 대흥농산 화재 사망 12명, 부상 5명. 경북 청도 흑석리에 있던 팽이버섯 농장에서 일어난 화재. 원인은 용접 작업 중 불씨. 2005년 1월 8일 칠곡 시온 글러브 화재 사망 4명, 부상 7명. 경북 칠곡 학산리에 있던 면장갑 제조공장에서 누전으로 인해 발생한 화재. 이 사건을 계기로 장애인 노동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고, 장애인단체 상해보험이 처음으로 생겼다.  2007년 2월 11일 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 사망 10명, 부상 18명. 전남 여수 화장동 여수 출입국 관리소 외국인 보호시설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원인은 수용자 김모 씨가 탈출을 위해 일으킨 방화. 근무일지와 다르게 보호소 직원 없이 용역경비원만 근무하고 있었고, 수용자들의 도주를 우려하면서 시설 개방을 지체한 것이 인명사고를 늘린 이유였다.  2008년 1월 7일 이천냉동창고화재 사망 40명, 부상 9명. 경기도 이천시 호법면 냉동 물류창고에서 발생한 화재. 직접적인 원인은 용접 불꽃. 관청의 허술한 행정과 안전 교육 미실시, 공사기간을 맞추기 위한 조급한 공사강행도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같은 해 이천에서는 물류창고에서 화재가 발생해 8명이 사망한 사건도 있었다. 2008년 2월 10일 숭례문 방화 방화범은 채종기. 화재진압이 늦었다는 논란, 문화재를 개방 했음에도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비판이 있었다.  2009년 1월 20일 용산 4구역 철거현장 화재/용산참사 사망 6명, 부상 23명. 서울시 용산구 한강로 2가 철거현장에서 벌어진 화재. 사고당시의 과잉진압 여부, 안전대책에 대한 논란이 있었고, 당시 이명박 정부에서 같은 시기 발생했던 강호순의 연쇄살인을 이용해 이 사건을 덮으라고 지시한 정황이 드러나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2009년 11월 14일 부산 실내사격장 화재 사망 11명, 부상 6명. 부산 중구 신창동 국제시장에 있는 실탄사격장에서 일어난 원인 불명의 화재.  2010년 11월 12일 포항 요양원 화재 사망 10명, 부상 17명. 경북 포항 인덕동에 위치한 여성전용요양원에서 일어난 화재. 원인은 전기합선.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 많아 인명 피해가 컸다. 노인요양시설의 화재 안전 대비와 시설 점검이 대규모로 이루어진 사건이 되었다.  2014년 5월 28일 장성 요양병원 화재 사망 21명, 부상 8명. 전남 장성군 삼계면 요양병원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 환자들을 결박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요양병원의 노인학대에 대한 이야기가 제기되었고, 지방 소방 인력에 대한 문제도 제기되었다.  2017년 12월 21일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충북 제천 하소동에 있는 스포츠센터 사우나에서 일어난 화재. 1층 주차장의 배관에 열선을 설치하다가 불이 붙은 것으로 판명. 소방관들의 초기 대응 문제가 제기되었고, 건물 구조의 문제, 불법 증축, 소방력 부족 등 다양한 문제가 제기되면서 언론에서 대거 보도하였다. 2018년 1월 26일 밀양 세종병원 화재 사망 47명, 부상 112명. 원인은 전기합선으로 추정. 화재 직후 정전이 되었는데 비상용 발전기가 가동되지 않은 점,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은 점 등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2019년 4월 17일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 사망 5명, 부상 17명. 조현병을 앓고 있던 안인득이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르고 계단으로 대피하는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두른 사건. 이 일을 계기로 조현병 환자에 대한 관심과 정신질환자의 강제 입원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2020년 4월 29일 이천물류센터 공사장 화재 사망 38명, 부상 10명. 경기도 이천 소고리 한익스프레스 냉동 냉장 물류창고 공사장에서 발생한 화재.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공사업체 측이 제출한 계획서를 심사 확인해 화재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 수차례의 개선을 요구하고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물류창고 측에서 공사를 강행한 것이 드러났다. 교통사고/도로 사고 1954년 1월 31일 오산 건널목 군용트럭 충돌 사망 56명, 부상 100여 명. 육군보병학교 이명구 이등중사가 군용 트럭을 몰고 무리하게 건널목을 통과하려고 하다가 열차와 충돌한 사고. 언론에서 끊임없이 안전사고 위험을 제기한 끝에 1982년 이 지역에 육교가 설치되었다. 1967년 10월 16일 금릉버스추락 사망 42명, 부상 12명. 음주운전과 브레이크 불량이 원인이었다. 1970년 8월 21일 추풍령 고속버스 추락 사망 25명, 부상 22명. 경북 금릉군 추풍령휴게소 부근에서 고속버스 운전기사의 운전 부주의로 버스가 벼랑에서 추락. 고속도로 건설 이후 첫 교통사고 참사, 첫 버스 사고. 운전자가 헤드라이트를 끄고 실내등만 켜고 운전한 것이 원인으로 지목됨. 1970년 10월 14일 모산 수학여행 참사 사망 46명, 중상 26명. 서울 경서중학교 수학여행 버스가 통일호와 충돌한 사고. 철도건널목의 안전시설 부재, 안전을 무시한 교육자들이 원인으로 지목. 1971년 5월 10일 청평호 버스 추락 사망 80명. 경기 가평 청평저수지에 시외버스가 추락. 정원 53명의 버스에 94명이 타고 있었던 것이 인명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지목. 1973년 8월 18일 광진교 버스 추락 사망 17명, 부상 28명. 운전기사의 과속, 정비 불량, 교통 여건 악화가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이 사건의 여파로 교통량 분산을 위해 천호대교가 건설되었다. 1976년 2월 28일 춘천호 버스 추락 사망 32명. 춘천에서 화천으로 가던 강원운수 소속 직행버스가 춘천호에 추락, 탑승자 전원 사망. 1976년 5월 18일 양산군 고속버스 추락 사망 23명, 부상 25명. 경남 양산 경부고속도로 하행선에서 고속버스가 추월운전을 시도하다 낭떠러지에 추락. 1981년 11월 22일 부산 금정산성 버스 추락 33명 사망. 부산 동래구 금정산성 고갯길 급경사에서 승객 70명을 태운 시내버스가 브레이크 파열로 추락. 1984년 12월 27일 나주 완행버스 추돌 사망 15명, 부상 15명. 전남 자주 학산리에서 완행버스가 정지 신호를 무시하고 운행하다가 통일호 열차와 충돌. 운전자의 운전 미숙과 주의 태만이 원인. 1988년 4월 1일 천호대교 버스 추락 사망 19명, 부상 35명. 서울 강동구 천호대교에서 승객 54명을 태운 572번 시내버스가 한강으로 추락. 경비 절감을 이유로 낡은 재생 타이어를 쓴 버스 회사, 배차시간을 맞추기 위한 난폭운전, 천호대교의 결함이 겹쳐진 사고. 이 사건 이후 버스 앞바퀴에 재생 타이어 사용이 금지되었다. 1989년 9월 17일 완주 버스 추락 사망 26명, 부상 60명. 전북 완주 모래재 고개 국도에서 전북여객 소속 시외버스가 브레이크 파열로 내리막길에서 추락. 버스의 정원 초과 운행, 점검 미실시, 운전기사의 과로가 겹쳐서 탄생한 사고. 1989년 10월 27일 논산 버스 추돌 사망 16명, 부상 11명. 충남 논산 연무읍에서 한진고속버스가 무리하게 추월을 시도하며 난폭운전을 하다 차선 도색 작업 트럭을 들이받아 일어난 사고. 1990년 9월 1일 섬강교 버스 추락 사망 25명. 경기 여주 섬강교상에서 승객 28명을 태운 시외버스가 추락. 빗길 과속운전이 원인으로 지목되었는데, 승객 대부분이 안전띠를 착용하지 않은 것이 인명피해를 키운 것으로 지목되었다. 1990년 11월 4일 소양호 버스 추락 사망 21명, 부상 21명. 강원도 인제 소양호에서 관광버스가 화물차와 충돌 후 추락. 직접적인 원인은 버스 운전기사의 추월 운전. 버스 회사는 유령회사였고, 버스 운전자는 교통 관련 전과가 여섯 번이나 있는 사람이었으므로 행정당국의 운수업 관리가 허술했음이 지적되었다. 1991년 11월 3일 인제 버스 추락 사망 22명, 부상 21명. 강원도 인제 옥녀2교에서 결혼식 하객 43명을 태운 관광버스가 내리막길에서 추락. 정비 소홀에 따른 브레이크 고장이 원인.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 붕괴 사망 32명, 부상 17명. 부실공사와 점검 부실 상태에서 과적 차량을 비롯한 교통량의 폭증이 원인. 1995년 4월 11일 화순 버스 추돌 사망 14명, 부상 19명. 전남 화순군에서 군내버스가 비둘기호 열차에 충돌. 버스 운전기사의 신호원인과 건널목 시설 관리 부실이 원인으로 지목. 1995년 10월 8일 천안 화물차 추돌 사망 13명, 부상 9명. 11톤 화물차가 중앙분리대를 들이받고 직행버스와 충돌. 트럭 운전사의 졸음운전이 원인. 1997년 3월 24일 남원 버스 추돌 사망 16명, 부상 16명. 전북 남원 사매면 철도건널목에서 남원여객 소속 시내버스가 무궁화호 열차와 충돌 후 끌려가다가 논바닥으로 추락. 안내원도 없고 차단기도 없는 철도 건널목에서 버스 운전기사가 신호를 무시하고 운전한 것이 원인. 2000년 7월 14일 추풍령 연쇄추돌 사망 18명, 부상 97명. 부일외고 수학여행 버스가 빗길 과속으로 미끄러져 다른 트럭과 충돌한 사고. 경부고속도로 개통 이후 2시간 이상 차량 전면 통제를 한 최초의 사고. 2000년 10월 27일 장수 88올림픽 고속도로 추돌 사망 21명, 부상 7명. 전북 장수 88올림픽 고속도로에서 대형 트럭이 추월 운전을 하다가 버스, 승용차와 충돌한 사고. 2001년 7월 24일 진주 관광버스 추락 사망 20명, 부상 20명. 경남 진주 서진주나들목 부근에서 관광버스가 언덕 아래로 추락. 운전기사의 과속 및 난폭운전이 원인이었고, 주행 중인 버스 안에서 승객들이 음주가무를 즐긴 것이 인명피해 증가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2002년 2월 10일 천안 트레일러 추돌 사망 15명, 부상 18명. 음주운전 상태인 트레일러 운전자가 중앙분리대를 들이받고 고속버스와 충돌한 사고. 2002년 6월 15일 옥천 경부고속도로 5중 추돌 사망 14명, 부상 18명. 충북 옥천군 경부고속도로에서 탱크로리 운전자가 과속을 하다가 가드레일과 추돌하고 차선을 넘어가는 바람에 일어난 추돌사고. 2003년 10월 21일 봉화 관광버스 추락 사망 19명, 부상 12명. 경북 봉화군 청량산 매표소 부근에서 관광버스가 40m 아래 개울에 추락한 사고. 브레이크 고장이 직접적인 원인이고, 안전벨트 미착용이 인명사고를 확대한 것으로 지적되었다. 2004년 10월 20일 평창 관광버스 추락 사망 15명, 부상 18명. 강원도 평창 신약수 인근 8번 국도에서 관광버스가 계곡으로 추락. 브레이크 고장이 직접적인 원인이고, 안전벨트 미착용이 인명사고를 확대한 것으로 지적되었다. 2006년 10월 3일 서해대교 연쇄추돌 사망 12명, 부상 50명. 짙은 안개로 인해 29중 연쇄 추돌 사고 발생. 피해액 약 40억 원으로, 한국 자동차보험 역사상 가장 큰 사고. 2007년 1월 13일 경부고속도로 5중 추돌 사망 10명, 부상 21명. 경기 성남시 경부고속도로 서울요금소 부근에서 고속버스가 앞서가던 다른 차와 충돌한 사고. 고속버스 운전자의 졸음운전이 원인. 2009년 12월 16일 경주 관광버스 추락 사망 18명, 부상 13명. 경북 경주시 남사재 주변 925번 지방도로에서 관광버스가 30m 아래로 추락. 사고 원인은 운전자의 운전미숙. 무자격 운전자와 교통안전 시설물의 규결 미달, 안전벨트 미착용 등이 지적되었다. 2010년 7월 3일 인천대교 버스 추락 사망 14명. 부상 10명. 안개로 시야가 제한된 상황에서 사고 차량을 피하려던 시외버스가 다리 난간을 뚫고 추락한 사고. 2010년 8월 9일 행당동 버스 폭발 부상 18명. 서울 성동구 행당역 인근에서 대기 중이던 241B번 버스의 연료 탱크가 폭발. 원인은 차량의 노후화. 2014년 9월 3일 레이디스코드 교통사고 2명 사망, 4명 부상. 걸그룹 레이디스코드 멤버 2명 사망. 악천후 속에서 매니저가 과속운전을 하여 차 바퀴가 빠진 것이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2015년 1월 16일 중앙고속도로 연쇄 추돌 부상 19명. 빙판길로 인한 43중 연쇄 추돌사고. 2015년 2월 11일 영종대교 연쇄 추돌 사망 3명. 부상 65명. 해무로 인해 차량 106대가 추돌. 2015년 7월 1일 지안 버스 추락 사고 사망 11명. 중국 지안시에서 일어난 버스 운전사고. 원인은 악천후 속에서의 과속. 한국인 10명과 중국인 1명이 사망. 2016년 2월 16일 중앙고속도로 35중 추돌사고 17명 부상. 강원도 원주 중앙고속도로 학산교에서 눈길에 차량이 미끄러져 발생. 2016년 10월 13일 경부고속도로 관광버스 사고 사망 10명, 부상 10명. 울산 울주군 언양분기점에서 관광버스가 과속을 하다가 방호벽과 충돌, 화재가 발생했다. 2017년 5월 9일 웨이하이터널 버스 화재 사고 사망 13명. 중국 산동성 웨이하이시 타오쟈쾅 터널에서 일어난 유치원 통학버스 화재 사고. 사고 원인은 고의적 방화. 철도 사고 1962년 1월 30일 수려선 동차 전복 3명 사망, 42명 부상. 내리막에서 과속을 하다 탈선해 전복. 1969년 1월 31일 천안 열차 추돌 사망 41명, 부상 102명. 경부선 천안역 부근에서 정차중인 남원행 서울행 완행열차를 부산발 서울행 청룡호가 추돌. 처음에는 부산발 서울행 열차의 과속으로 원인을 지목하였으나, 폭설로 교통이 마비된 상황에서 정상운행을 지시한 철도청의 문제가 더 큰 것으로 밝혀졌다. 1971년 10월 13일 남원역 열차 추돌 사망 20명, 부상 36명. 남원에서 군산으로 가던 보통열차가 유조화물열차를 들이받은 사건. 사망자 중 15명은 국민학생, 3명은 고등학생이어서 국민들이 분노하였다. 사고의 원인은 기관차의 기관 고장. 1973년 8월 12일 영동역 유조열차 폭발 사망 32명, 부상 9명. 충북 영동군 영동역에서 벙커C유와 설탕을 싣고 가던 화물열차의 기관사가 졸음운전으로 인해 과속, 이로 인해 탈선하여 화재가 발생하였다. 1981년 5월 14일 경산 열차 추돌 사망 55, 부상 254명. 경북 경산군 매호건널목에서 부산발 서울행 특급열차가 부산발 동대구행 보통급행열차에 받힌 사고. 건널목 위에 정지해 있던 오토바이가 사고의 1차 원인으로 지목되었고, 이를 보고도 사실을 알리지 않은 특급열차 승무원, 전방 주시를 제대로 하지 않은 보통급행열차 승무원들의 과실과 열악한 철도 근로환경이 문제로 제기되었다. 1993년 3월 28일 구포역 무궁화호 열차 전복 78명 사망, 198명 부상. 부산 북구 구포역 부근에서 선로의 지반이 무너지는 모습을 본 기관사가 급제동을 하다가 탈선. 노선 바로 아래에서 삼성종합건설이 허가 없이 발파작업을 한 것이 원인이었다. 1995년 8월 25일 괴산 무궁화호 열차 전복 사망 1명, 부상 190명. 집중호우로 철교가 붕괴된 것이 원인이었다. 항공 사고 1967년 4월 8일 서울 청구동 C-46 추락사고 사망 80명(탑승자 24명, 지상주민 56명). 원인은 기체 결함과 관제센터 과실. 1980년 11월 19일 대한항공 015편 착륙 사고 사망 10명. 원인은 조종사 과실. 1982년 2월 5일 공군 제주 C-123 추락 탑승자 53명 전원 사망. 원인은 기체결함, 기상악화. 전두환의 제주 방문으로 인해 경호를 위해 제주도로 가던 육군 제707특수임무대대 수송기가 기상악화로 추락한 사건인데, 당시 전두환 정부는 이 사건을 축소/은폐하였다. 1983년 9월 1일 대한항공 007편 격추 탑승자 269명 전원 사망. 소련의 요격기에 격추됨. 1987년 11월 29일 대한항공 858편 폭파 탑승자 115명 전원 사망. 북한 공작원 김승일, 김현희에 의한 테러. 이 사건은 신상옥 감독의 영화 <마유미>로도 만들어졌다. 1989년 7월 27일 대한항공 803편 추락 사망 79명. 대한항공 여객기가 트리폴리 공항에 접근 중 추락. 원인은 악천후 속에서 무리하게 착륙을 시도한 조종사 과실. 1989년 7월 27일 울릉도 관광헬기 추락 사망 14명. 원인은 악천후에서의 조종사 과실, 정비불량. 1993년 7월 26일 아시아나항공 733편 추락 사망 68명. 김포공항에서 목포공항으로 가던 아시아나항공 여객기가 전남 해남군 야산에 추락. 원인은 악천후와 공항 시설 부족, 조종사의 무리한 착륙 시도. 1993년 해군 링스헬기 성주 추락 사망 10명. 원인은 기상 악화. 1997년 8월 6일 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망 228명. 원인은 조종사 과실. 김포공항에서 괌으로 가던 대한항공 비행기가 공항 접근 중 추락. 조종사 사이의 권위주의적 문화도 문제로 지적되었다. 2002년 4월 15일 중국국제항공 129편 추락 사망 129명. 중국국제항공 여객기가 경남 김해 돗대산 기슭에 추락한 사고. 원인은 조종사 과실. 해양 사고 1951년 6월 15일 제13호 침몰 사망 30여 명. 침몰 장소는 전남 목포 부근. 원인은 정원 초과, 적재량 초과. 1951년 7월 11일 제5편리호 침몰 사망 94명. 침몰 장소는 부산 충무동 다대포항. 원인은 정원 초과, 적재량 초과. 1951년 11월 18일 삼해남호 침몰 사망 55명. 침몰 장소는 진도 부근. 원인은 정원 초과, 운전자 과실. 1953년 1월 9일 창경호 침몰 사망 300명 이상. 침몰 장소는 부산 다대포 앞바다. 원인은 강풍으로 인한 침몰, 선박의 노후. 1953년 1월 25일 행운호 침몰 사망/실종 100여 명. 침몰 장소는 충남 서천 앞바다. 원인은 정원 초과, 적재량 초과. 1954년 6월 3일 태양호 침몰 실종 23명. 침몰 장소는 전남 돌산 부근. 원인은 풍랑. 1954년 8월 16일 강화도 범선 침몰 사망 14명. 원인은 조류와 파도. 1955년 4월 23일 삼영호 침몰 실종 12명. 침몰 장소는 경남 하동 앞바다. 원인은 암초 충돌. 1956년 1월 12일 태신호 침몰 사망 66명. 침몰 장소는 전남 흑산도 부근. 원인은 화재. 1956년 2월 1일 비안도 목선 침몰 실종 18명. 침몰 장소는 전북 비안도 부근. 원인은 풍랑. 1956년 9월 22일 위도 어선 침몰 실종 11명. 침몰 장소는 전남 위도면 부근. 원인은 풍랑. 1956년 12월 4일 당진 어선 침몰 사망 1명, 실종 22명. 침몰 장소는 충남 당진 부근. 원인은 풍랑 1957년 4월 14일 강남호 침몰 사망 3명, 실종 31명. 침몰 장소는 인천 월미도 서쪽. 풍랑과 퇴조 속에서 화물선과 충돌해 침몰. 1957년 8월 29일 화성 목선 침몰 사망 1명, 실종 31명. 침몰 장소는 화성군 서쪽. 원인은 과적. 1958년 1월 15일 제87대양호 침몰 실종 11명. 침몰 장소는 전남 흑산도 부근. 원인은 풍랑. 1958년 2월 12일 거진 기범선 침몰 실종 11명. 침몰 장소는 강원 거진항 부근. 원인은 풍랑. 1959년 4월 22일 통도호 침몰 사망 7명, 실종 25명. 침몰 장소는 전북 고창 부근. 원인은 풍랑. 1959년 9월 17일 완도 어선 침몰 사망 41명. 침몰 장소는 전남 완도 앞바다. 원인은 태풍 사라. 1960년 1월 16일 직영호 침몰 실종 12명. 침몰 장소는 강원도 판교리 부근. 원인은 안개와 풍랑. 1960년 5월 13일 연평도 어선 침몰 사망 1명, 실종 13명. 침몰 장소는 연평도 부근. 사고 원인은 풍랑.  1960년 5월 31일 백구호 침몰 실종 13명. 제주 성산포와 부산을 오가던 선박으로 침몰 원인은 풍랑. 1961년 11월 10일 광복호 침몰 실종 12명. 침몰 장소는 경남 통영 부근. 1963년 1월 18일 연호 침몰 사망 120명 이상. 과적과 정원 초과 상태에서 돌풍을 만남. 침몰이 5분 내에 완료되어 구조가 어려웠음. 1963년 11월 8일 속초 어선 침몰 실종 13명. 침몰 장소는 강원도 속초 앞바다. 원인은 돌풍. 1964년 4월 16일 보승2호 침몰 실종 11명. 침몰 장소는 소연평도 부근. 납북 후 풀려나 귀환하는 도중 안개 속에서 암초에 충돌해 침몰함. 1964년 7월 29일 서해 어선단 침몰 사망 32명, 부상 62명. 침몰 장소는 연평도 부근. 219명은 북한에 표류했다가 북한측의 인도로 귀환함. 2명은 북한에 억류. 1964년 8월 2일 신성호 침몰 사망 3명, 실종 15명. 침몰 장소는 전남 완도 부근. 원인은 풍랑. 1964년 11월 24일 충남 서산 나룻배 침몰 사망 11명, 실종 13명. 원인은 과적. 1964년 12월 4일 대성호 침몰 실종 13명. 침몰 장소는 충남 서산 부근. 돌풍이 부는 상태에서 기관 고장이 겹침. 1965년 12월 30일 제3영생호 침몰 사망 14명. 침몰 장소는 강원도 삼척 앞바다. 풍랑으로 암초에 충돌 1965년 12월 31일 편리호 침몰 사망 2명, 실종 21명. 침몰 장소는 묵호 앞바다. 침몰 원인은 파도와 폭설.  1966년 1월 13일 전마선 침몰 사망 15명, 실종 10명. 침몰 장소는 충남 삼길포 부근. 원인은 높은 파도. 1967년 1월 14일 한일호 침몰 사망 66명, 실종 27명. 침몰 장소는 경남 가덕도 해상. 해군 소속 구축함인 충남함과 충돌해 침몰. 사건 직후 군의 은폐 시도가 있었다. 1967년 1월 19일 당포함 침몰 사망 11명, 실종 28명. 침몰 장소는 동해 어로저지선 부근. 어선단을 보호하던 해군 당포함이 북한의 포격으로 침몰. 1968년 1월 3일 제5삼양호 침몰 실종 12명. 침몰 장소는 추자도 남쪽. 암초에 충돌. 1968년 5월 17일 천지호 침몰 사망 3명, 실종 13명. 침몰 장소는 전남 목포 부근. 기름 유출로 해양 오염 피해가 있었다고 기록된 첫 사례. 1968년 5월 24일 서조호 침몰 사망 16명 실종 5명. 침몰 장소는 충남 장항 부근. 노후 선박에 과적과 무허가 운항이 겹쳐져 만들어진 사고. 1969년 3월 27일 제주 어선 침몰 실종 21명, 침몰 장소는 제주 근해. 원인은 돌풍. 1970년 1월 31일 명주 어선침몰 사망 18명. 침몰 장소는 강원도 명주 부근. 원인은 풍랑. 1970년 5월 4일 명신호 침몰 사망 5명, 실종 11명. 침몰 장소는 부산 동남쪽. 원인은 풍랑. 1970년 12월 15일 남영호 침몰 사망 326명 이상. 침몰 장소는 거문도 근처. 원인은 과적. 1971년 1월 4일 흑산도 어선침몰 실종 12명. 원인은 풍랑. 1971년 1월 7일 질자호 침몰 사망 30명, 실종 2명. 침몰 장소는 전남 여수 부근. 화물선이 충돌하여 침몰. 1973년 1월 25일 한성호 침몰 사망 19명 실종, 42명 침몰. 장소는 진도 육지 부근. 원인은 과적. 1974년 2월 22일 YTL30정 침몰 사망 158명, 실종 1명. 침몰 장소는 충무 앞바다. 원인은 정원 초과와 운항 부주의. 1974년 4월 19일 칠성호 침몰 실종 12명. 침몰 장소는 경남 거제 해안가. 폭우로 저인망 어선이 정박중 폭우로 인해 침몰. 1974년 2월 28일 경비정 863호 침몰 사망 8명, 실종 20명. 침몰 장소는 동해 분계선 부근. 북한 경비정들과의 교전 중 침몰. 1974년 8월 29일 소흑산도 어선 침몰 실종 47명. 원인은 풍랑. 1974년 11월 12일 광진호 침몰 사망 13명, 실종 28명. 침몰 장소는 전남 완도 앞바다. 과적 상태에서 풍랑을 만나 암초에 충돌. 1976년 1월 17일 만덕호 침몰 사망 12명, 실종 26명. 침몰 장소는 울릉도 천부항 부근. 오징어잡이 목선이 풍랑을 만나 침몰.  1976년 10월 28일 동해 어선 조난사고 사망 34명, 실종 293명. 사고 원인은 풍랑. 침몰 장소는 동해 대화퇴 해상. 대한민국 어선 해난사고 중 최대 인명 피해를 낸 사고. 1976년 12월 8일 610광덕호 침몰 사망 1명, 실종 10명. 침몰 장소는 제주도 근해. 침몰 원인은 풍랑. 1977년 12월 2일 제11강원호 침몰 실종 26명. 침몰 장소는 울릉도 서쪽 해상. 강풍으로 인한 파도로 침몰. 생존자 5인이 65시간 동안 표류한 것으로 화제. 1978년 2월 17일 동해안 어선침몰 사망 29명. 침몰 원인은 강풍과 눈보라로 추정되며 정확한 침몰 장소는 모름 1978년 11월 29일 무안 어선침몰 실종 23명. 사고 장소는 전남 무안 부근. 침몰 원인은 풍랑. 1979년 10월 29일 소흑산도 어선침몰 실종 20명. 원인은 풍랑. 1979년 2월 17일 제1선북호 침몰 실종 13명. 침몰 장소는 울산 방어진 부근. 침몰 원인은 풍랑. 1979년 10월 5일 제2병묵호 침몰 실종 12명. 침몰 장소는 전남 홍도 부근. 실종 원인은 풍랑. 1979년 11월 18일 제2영풍호 침몰 실종 10명. 침몰 장소는 제주 남쪽 해상. 원인은 풍랑. 1980년 8월 31일 제5성남호 침몰 실종 14명. 침몰 장소는 전남 거문도 부근. 화물선이 충돌하여 침몰. 1980년 10월 31일 제5종봉호 침몰 실종 35명. 침몰 장소는 동해 대화퇴 부근. 1981년 9월 6일 제1명신호 침몰 실종 18명. 침몰 장소는 통영 앞바다. 화물선이 충돌하여 침몰. 1981년 11월 24일 제36한일호 침몰 실종 11명. 침몰 장소는 전남 보길도 부근. 1982년 10월 24일 제2동해호 침몰 실종 36명. 침몰 장소는 울릉도 부근. 원인은 풍랑. 1983년 10월 7일 거성호 침몰 실종 11명. 침몰 장소는 제주 화도 서쪽. 원인은 풍랑. 1984년 1월 12일 제7삼성호 침몰 사망 1명, 실종 12명. 침몰 장소는 제주 우도 부근. 침몰 원인은 풍랑. 1984년 4월 18일 동남점보페리호 조난 사망 12명. 침몰 장소는 거문도 부근. 기관고장 상태에서 풍랑을 만나 선박이 표류된 사고. 1984년 7월 5일 제7동아호 침몰 실종 17명. 침몰 장소는 전남 신안 부근. 암초에 충돌하여 침몰. 1985년 1월 29일 화평에이스호 침몰 사망 3명, 실종 14명. 제주 남동쪽 해상에서 화물선이 갑자기 기울어진 사고. 1985년 2월 1일 제일크리스탈호 침몰 사망 2명, 실종 10명. 대마도 근해에서 한일 정기 화물선이 침몰. 1985년 3월 15일 세진호 침몰 실종 27명. 제주 우도 부근에서 선어 운반선이 풍랑으로 전복. 1985년 4월 11일 제77신성호 침몰 실종 11명. 제주 동쪽 해상에서 장어잡이 통발 어선이 풍랑으로 침몰. 1985년 4월 18일 제11원근해호 침몰 실종 12명. 소흑산도 서남쪽에서 중국 상선과 충돌하여 침몰. 1985년 7월 27일 신안2호 침몰 실종 18명. 신안 홍도리 부근에서 유람선이 엔진 고장으로 표류하다가 암초와 충돌. 1985년 8월 14일 광일호 침몰 실종 12명. 전남 영광 부근에서 태풍을 만나 22시간만에 2명이 구조됨. 1986년 3월 16일 604상진호 충돌 실종 10명. 전남 진도 부근에서 불상의 선박과 충돌해 침몰. 1986년 11월 25일 카페리2호 침몰 사망 13명, 실종 14명. 강화 석포리 부근에서 급류를 만났는데 균형을 잃고 전복. 1987년 1월 13일 제224경인호 침몰 실종 10명. 격렬비열도 부근에서 저인망 어선이 풍랑으로 침몰 1987년 2월 12일 제88지영호 침몰 사망 10명. 대마도 동북쪽에서 장어통발어선이 풍랑으로 침몰. 1987년 2월 말 영지호 침몰 실종 35명. 제주도 남쪽에서 오징어채낚기 어선이 침몰. 풍랑 때문으로 추정. 1987년 6월 16일 극동호 침몰 사망 29명, 실종 7명. 충무 앞바다에서 나무로 만든 유람선이 엔진 고장 화제로 20분만에 침몰. 1987년 7월 16일 신안 어선 침몰 실종 53명. 어선 12척이 태풍 셀마로 침몰. 1987년 8월 31일 동익호 침몰 사망 1명, 실종 24명. 울릉도 부근에서 태풍 다이너를 만나 침몰. 1987년 10월 7일. 제31진영호 피격 실종 11명. 백령도 서쪽에서 피격 후 북한 군함에 충돌해 침몰. 추석 연휴였다. 1987년 12월 1일 제11복성호 침몰 실종 13명. 제주항 부근에서 채낚기 어선이 강풍을 만나 침몰. 1987년 12월 6일 제2장영호 침몰 실종 10명. 오륙도 동쪽에서 화물선이 폭풍으로 침몰. 1987년 12월 30일 제101영성호 침몰 사망 4명, 실종 7명. 오징어채낚기 어선이 홍도 남서쪽에서 폭풍으로 침몰. 1987년 12월 30일 제391동영호 침몰 사망 10명. 마라도 서쪽에서 침수로 침몰. 1988년 4월 17일 신안 거룻배 침몰 사망 12명, 실종 2명. 바지락 채취선이 정원초과 상태에서 파도를 만나 침몰. 1989년 1월 5일 원경호 침몰 실종 21명. 어징어채낚기 어선이 대마도 부근에서 침몰. 1989년 1월 14일 제7창명호 침몰 실종 12명. 저인망어선이 전남 여천 부근에서 다른 배와 충돌하여 침몰. 1989년 2월 26일 제3세일호 침몰 실종 12명. 마라도 남쪽에서 장어통발어선이 파도를 만나 침몰. 1989년 6월 5일 신안 어선 침몰 실종 17명. 어선 4척이 신안 재원도 부근에서 풍랑을 만나 침몰. 1989년 10월 31일 82근성호 침몰 사망 6명, 실종 6명. 동해안 대화퇴 부근에서 풍랑으로 침몰. 1989년 11월 1일 제26현진호 침몰 사망 10명, 실종 12명. 울릉도 부근에서 풍랑으로 침몰. 1989년 11월 4일 제12일성호 화재 사망 4명, 실종 6명. 동해안 대화퇴 부근에서 실종 선박 수색 중 화재가 발생. 1990년 1월 13일 화영55호 침몰 실종 12명. 서귀포 남쪽에서 화물선과 충돌해 침몰. 1990년 4월 12일 88대성호 침몰 실종 11명. 울릉도 부근에서 침몰. 1991년 1월 21일 88대운호 침몰 실종 12명. 울산 부근에서 풍랑으로 침몰. 1991년 2월 21일 퍼시픽프렌드호 침몰 실종 14명. 원목 운반선이 태안 의항리 부근에서 침수로 침몰. 1991년 6월 5일 제21성진호 침몰 실종 10명. 저인망어선이 제주 서쪽에서 중국 상선과 충돌. 1991년 6월 21일 제102거경호 침몰 실종 10명. 오징어채낚기 어선이 오륙도 남쪽에서 일본 운반선과 충돌. 1991년 6월 28일 옹진 화물선 침몰 실종 32명. JE스카이에이스호와 치아웨이호가 옹진군 울도 부근에서 충돌. 1992년 10월 13일 제3준양호 침몰 실종 18명. 오징어채낚기 어선이 영일군 용한리 부근에서 풍랑을 만나 침몰. 1992년 12월 6일 제52덕성호 침몰 실종 11명. 트롤어선이 양산 대변리 부근에서 침몰. 1993년 10월 10일 서해훼리호 침몰 사망 292명. 부안 위도 부근에서 여객선이 악천후 속에서 무리하게 출항하였고, 과적과 초과 탑승이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배가 흔들렸을 때 승객들을 가만히 안에 있으라고 한 것이 인명피해를 키웠다. 1994년 3월 29일 제5영덕호 화재 실종 11명. 장어잡이 어선에 전남 여천 부근에서 화재 발생. 1994년 11월 12일 92춘동호 침몰 실종 10명. 저인망어선이 대흑산도 부근에서 대형 상선과 충돌해 침몰. 1995년 6월 22일 미네랄뎀피어호 침몰 실종 25명. 마라도 남쪽에서 대형화물선이 서로 충돌. 1995년 7월 23일 씨프린스호 사고 실종 1명. 원유와 벙커C유를 실은 유조선이 여수 앞바다에서 좌초되어 기름 5천여 톤이 바다에 유출. 1995년 11월 17일 호남 사파이어호 사고 유조선이 여수 앞바다에서 부두와 충돌, 원유 173톤이 바다에 유출. 1996년 2월 2일 제7경신호 침몰 실종 11명. 대형 기선저인망 어선이 마라도 남서쪽에서 침몰. 1996년 6월 15일 안나스피라토 침몰 실종 26명. 두 화물선이 충돌, 벙커C유가 바다로 유출. 1997년 1월 7일 261남해호 침몰 실종 23명. 채낚기 어선이 제주 마라도 부근에서 침몰. 1997년 4월 3일 제3오성호 침몰 통영 매몰도 부근에서 유조선이 좌초, 벙커C유 186톤 가량이 바다에 유출. 1997년 9월 13일 98원양호 침몰 사망 1명, 실종 9명. 저인망어선이 충돌로 침몰. 1998년 1월 15일 뉴바론호 침몰 사망 2명, 실종 15명. 울산 울주군에서 좌초. 벙커C유 345톤, 시멘트 5천 톤이 바다로 유출. 1998년 9월 23일 제3대영호 침몰 사망 1명, 실종 10명. 유자망 어선이 인천 울도 부근에서 침몰. 2000년 2월 17일 제5대성호 침몰 실종 10명. 어선이 강원 고성군 부근에서 침몰. 2000년 9월 23일 주원호 침몰 사망 5명, 실종 6명. 소흑산도 남쪽에서 침몰. 원인은 충돌로 추정. 2001년 1월 15일 프로하모니호 폭발 사망 3명, 실종 6명. 유조선이 거제 남여도 부근에서 선내 폭발, 기름 200여 톤이 바다로 유출. 2005년 3월 8일 썬크로스호 침몰 실종 14명. 가거도 서쪽 해상에서 23,000톤급 컨테이너 운반선과 충돌. 2005년 4월 2일 부영호 침몰 실종 10명. 격렬비열도 부근에서 꽃게잡이 통발어선이 침몰. 2005년 12월 1일 한동호 침몰 실종 13명. 전남 병풍도 남서쪽에서 89,000톤 선박과 충돌. 2006년 3월 20일 신하이7호 침몰 사망 3명, 실종 9명. 인천 무의도 남쪽에서 위험물 운반선과 충돌. 2007년 12월 7일 삼성1호-허베이스피릿호 원유 유출 충남 태안 해상에서 홍통 유조선 허베이스피릿호와 삼성중공업 소속 삼성1호가 충돌하면서 12,547킬로리터의 원유가 바다로 유출된 사건. 2007년 12월 25일 이스턴브라이트 침몰 사망 7명, 실종 7명. 화학약품 운반선이 여수 백도 동북쪽 해상에서 과적으로 침몰. 2008년 1월 30일 102소양호 침몰 실종 10명. 쌍끌이 저인망 어선이 제주 마라도 남서쪽 해상에서 침몰. 악천후 때문으로 추정. 2010년 1월 27일 삼봉11, 12호 침몰 사망 1명, 실종 9명. 모래운반선이 통영시 국도 남동쪽에서 침몰.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침몰 사망 40명, 실종 6명. 한국 초계함이 백령도 서쪽에서 침몰. 어뢰에 의한 피격으로 추정. 2011년 2월 9일 알렉산드라호 침몰 사망 4명, 실종 7명. 액체화물 운반선이 울산 동구 앞바다에서 침몰. 2011년 12월 26일 739건아호 침몰 사망 1명, 실종 10명. 트롤어선이 울산 간절곶 동쪽에서 침몰. 복원력 상실로 추정. 2012년 1월 15일 두라3호 폭발 사망 5명, 실종 6명. 유류 운반선이 인천 자월도 북쪽 해상에서 내부 폭발. 2013년 10월 15일 쳉루15호 침몰 사망 9명, 실종 2명. 영일만 동북쪽에서 화물선이 파도와 강풍으로 방파제와 충돌. 2014년 4월 4일 그랜드포춘1호 침몰 사망 2명, 실종 11명. 거문도 남쪽 공해상에서 강풍을 만나 침몰. 전원 북한 선원.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망 295명. 실종 9명. 2015년 1월 23일 기임어00791호 침몰 실종 10명. 제주 차귀도 남서쪽 공해상에서 미확인 상선과 충돌. 2015년 9월 5일 돌고래호 침몰 사망 14명, 실종 4명. 낚시배가 추자도 인근에서 엔진 이상을 일으킴. 2017년 12월 3일 선창1호 침몰 사망 15명. 인천 영흥대교 인근에서 낚시배가 급유선과 충돌. 2019년 11월 19일 대성호 화재 사망 1명, 실종 11명. 제주 차귀도 인근에서 어선 화재 발생. 해양 사고는 10년 단위로 끊어서 보면 사고의 유형이 점점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 보입니다. 1950년대까지는 강에서 일어나는 사고가 꽤 많았는데 점점 사라지고, 1990년대부터는 기름 유출 사고가 본격적으로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과적과 초과 탑승 문제는 한국 전쟁 이후 지금까지 나아지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유독 실종이 많은 것도 특징이었습니다.  붕괴 사고 1970년 4월 8일 와우아파트 붕괴 사망 34명, 부상 40명. 서울 마포구 창전동 와우지구 시민아파트 5층짜리 한 동이 무너진 사고. 무면허 건설업자들이 뇌물을 주어 진행한 공사였고, 이로 인해 심각한 수준의 부실공사가 강행되어 벌어진 사고였다.  1982년 4월 9일 서울 3호선 지하철 붕괴 사망 11명, 부상 40여 명. 서울 서대문구 무악재 부근 3호선 공사 현장이 붕괴, 시내버스가 추락한 사고. 1993년 1월 7일 우암상가아파트 붕괴 사망 28명, 부상 48명, 이재민 370여 명. 기초구조 변경 없는 무리한 증축과 설계 변경, 부실 공사가 원인이었다.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 붕괴 사망 32명, 부상 17명. 서울시 성동구 성수대교의 상부 트러스가 붕괴. 점검 부실과 노후된 교량. 과적차량의 통과가 빚어낸 사고.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 붕괴 사망 502명, 부상 937명.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풍백화점의 붕괴. 부실공사와 불법 구조변경이 원인이었고, 위험 신호가 있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영업을 계속한 백화점 측의 이기심도 매우 큰 비난을 받았다. 삼풍백화점 자리에는 주상복합 아파트 아크로비스타가 서있다. 2014년 2월 17일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사망 10명, 부상 124명. 경북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가 폭설로 붕괴된 사고.  2014년 10월 17일 판교 환풍구 붕괴 사고 사망 16명, 부상 11명. 경기도 성남 판교테크노벨리의 야외 공연장 인근 지하주차장 환풍구 덮개가 무너진 사고.  2021년 6월 9일 광주 학산빌딩 붕괴 사망 9명, 부상 8명.  2022년 광주 화정 아이파크 외벽 붕괴  2022년 봉화 광산 매몰  과밀집 사고 1959년 7월 17일 부산 공설운동장 압사 사망 67명, 부상 150명. 부산 서구 서대신동 부산공설운동장(현 구덕운동장)에서 행사 도중 소나기를 피하려다가 참사 발생. 경찰이 군중을 통제하려고 공포탄 20여 발을 발사하여 혼란을 악화시켰다. 1960년 1월 26일 서울역 압사 사망 31명. 서울역 호남선 승강장에서 인파가 몰려 발생한 사고. 추위로 역사 안이 미끄러운 상황에서 정원보다 많은 표를 팔았고 원래는 발차 35분 전에 하던 개찰을 발차 5분전에 갑자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몰려 발생하였다. 1965년 10월 5일 전국체육대회 압사 사망 14명. 광주에서 열린 제46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쇠문이 부서지면서 연쇄적으로 넘어져 압사 발생. 1974년 9월 28일 용산역 압사 사망 4명. 귀성길에 사람들이 넘어지면서 발생. 1980년 2월 11일 부산 용호국민학교 압사 사망 5명, 부상 21명. 개학 첫날 아침 조회에 참석하기 위해 운동장에 뛰어나가던 학생들이 연쇄적으로 넘어지면서 발생. 과밀학급과 비좁은 계단으로 사고 위험이 높은 상황에서 인솔 교사가 없었던 점이 지적되었다. 1985년 1월 17일 안동 신한민주당 지구당 창당대회 압사 사망 5명, 부상 18명. 경북 안동 문화회관 강당에서 열린 신한민주당 창당대회에서 인파가 몰려 발생.  2005년 10월 3일 상주 콘서트 압사 사망 11명. 경북 상주 계산동 상주시민회관 콘서트에서 발생한 사고. 리허설을 이유로 출입구를 폐쇄하고 세 개의 문만 개방했으며 경찰 인력도 부족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사망 158명, 부상 196명 (원래는 노동사고/산업재해, 범죄, 군사충돌도 넣고 싶었습니다만, 시간과 체력 여건상 싣지 못하여 참으로 아쉽습니다.) 비참하지 않은 일이 어디 있으랴 참사(慘事)는 비참한 일이라는 뜻입니다. 사건 하나하나를 찾아보면서 피해를 입은 사람들 개개인의 사연도 볼 수 있었고, 그것을 보면서 이 모든 사고가 다 참사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참사라고 부를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만, 굳이 기준을 정해보자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사고를 못 막아서 일어난 경우가 참사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있는 사고 중에는 정말 어쩔 수 없이, 인간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사건사고도 많았지마는, 우리가 제도를 잘 정비했다면, 시설을 잘 점검했다면, 욕망을 조금이라도 줄였더라면 일어나지 않았겠구나 싶은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얼마나 변했는지에 대한 회의감도 들었습니다. 물론 점진적으로 꾸준히 제도를 개선하고 법을 만들어 가는 것이 보이긴 했지만, 미리미리 만들었다면, 미리 점검했다면 이라는 안타까움을 지울 길은 없었습니다. 위에 소개된 비극 중 반 이상은 인간의 과도한 욕망과 책임을 지닌 자들의 무책임한 태도가 문제인 경우들이었습니다. 제도 개선은 당연히 필요한 것이지만, 제도만 개선하면 끝인가라는 생각과 동시에, 제도라도 제대로 만들어놓고 개인을 탓해야 하지 않는가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마음이 참으로 복잡합니다. 이런 기준에 비추어보면 10월 29일 이태원에서 일어난 사고는 분명 참사였습니다. 예년처럼 안전인력을 배치했다면 과연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이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10.29참사와 이태원참사 중 무엇이 더 나은가, 혹은 더 옳은가 라는 고민을 했을 때, 아직까지 대규모 참사에서 날짜를 기준으로 명명한 전례는 없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날짜를 중심으로 명명하는 경우에는 그 날짜를 기점으로 우리 사회가 어떻게 얼마나 변화했는가, 혹은 그 날짜를 특별히 기억해야할 이유가 있는가를 고민해봐야 할 것이고, 장소를 중심으로 명명하는 경우에는 그 일이 일어난 장소의 이름을 지울 경우 그 일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들의 잘못이 흐려지거나 사라질 가능성이 있는지, 혹은 그 장소를 언급하지 않았을 때 그 일을 떠올리거나 추모하기 어려운 일이 생기는 지를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10.29 이태원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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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정치 개론
개념의 정리 성소수자란 성 정체성(性正體性, sexual identity), 성 지향(性指向, sexual orientation), 신체적 특징이 사회의 다수를 이루는 성별 문화와 다른 사람들을 말한다. 성소수자 정치란 성소수자가 인간관계에서의 권리, 사회적/제도정치적 권력, 경제적 자원을 비-성소수자, 혹은 같은 성소수자끼리 어떻게 분배하느냐의 문제다. 성소수자 정치의 무대는 성소수자가 존재하는 모든 공간이며, 사회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사건이 성다수자를 중심으로 논의된다는 점에서 사회의 모든 주제는 성소수자 정치의 주제가 될 수 있다. (BBC코리아.2021.06.28.) 성소수자 정치의 목적 성소수자는 주류 성문화와 다르다는 이유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노동, 범죄, 의료, 가정생활 등에 대한 논의를 할 때, 우선적으로 논의되지 못하고, 심한 경우에는 논의의 대상 그 자체가 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성소수자가 현실에서 느끼는 차별/소외감, 무력감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물론, 성소수자가 모든 주제에서 반드시 최우선으로 취급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주류가 아니라는 이유로 논의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은 차별/소외받는 느낌, 무력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판단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다. 성소수자 정치는 다양한 사회적 주제 안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논의를 진행함으로써 성소수자가 현실에서 당면한 차별/소외/무력감을 세상에 알리고 이것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해나갈 것인지 논의하여 그 방안을 찾아나가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BBC코리아.2022.05.27.) 성소수자 정치의 주체 첫째, 성소수자 정치를 행하기 위해서는 성소수자 스스로 비-성소수자와 다른 성 정체성, 성 지향, 신체적 특징을 가지고 있음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고, 그로 인하여 사회적 논의에서 차별/소외를 받고 있거나 무력감을 느낀다고 인식할 필요가 있다. 비-성소수자와 다른 성 정체성, 성 지향, 신체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느끼지 못하는 사람, 성소수자로서의 특성을 갖고 있다고 해도 비-성소수자 문화 속에서 자신은 차별이나 소외, 무력감을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성소수자 정치의 주체가 될 수 없다. 둘째, 성행위 방식이나 성행위의 독특함, 성도착증은 성소수자로 분류될 수 없다. 비-성소수자 문화가 중심인 사회에서 성소수자의 성행위는 분명 독특한 것, 특이한 것으로 분류될 수 있다. 하지만 독특하거나 특이한 성행위가 성소수자의 정체성이 될 수는 없다. 자신을 비-성소수자라고 인식하는 사람이 동성과 성행위를 가지는 경험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현실에서 차별감, 소외감, 무력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지배와 복종, 가학과 피학을 중심으로 하는 BDSM은 반드시 성소수자여야만 할 수 있는 성행위가 아니다. 성도착 역시 특정한 성정체성이나 성지향을 가져야만 가능한 성행위가 아니며, 그 대상이 사람이 아닌 경우, 무력, 지적능력의 차이, 권력, 순간적인 돌발상황 등을 이용해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은 성행위를 행하는 것이므로 성소수자 정치의 주체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성소수자 정치는 BDSM, 성도착이나 소아성애 등을 성소수자의 범주 안에 넣으려는 시도를 모두 배격해야 한다. 이는 성소수자가 현실에서 당면한 다양한 문제를 흐리게 만들며, 대부분은 비-성소수자들이 성소수자들의 문화를 약탈하기 위해 행해지는 시도들이기 떄문이다. 성소수자 정치의 입장 성소수자 정치는 비-성소수자를 중심으로 한 주류 성문화와 성소수자, 성소수자 문화의 차이에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성소수자(문화)가 비-성소수자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해 의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보수적인 사람들은 비-성소수자 문화가 주류이고 권력을 가지고 있는 만큼, 성소수자(문화)가 비-성소수자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로 인해 성소수자 중 일부는 끊임없이 비-성소수자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하여 성소수자와 친밀한 비-성소수자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외모가 훌륭하거나 사회적으로 성공한 성소수자가 많이 나와주어야 한다는 주장, 비-성소수자들이 불편하게 느낄 수 있는 문화/권력의 전복을 행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 성소수자들이 비-성소수자 중심 문화에서 고급스럽다거나 상류 문화라고 여기는 행동을 해야한다는 주장 등이 이에 속한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히라츠카 라이쵸(平塚らいてう), 이치카와 후사에(市川房枝) 등 1930~40년대 일본의 자유주의계열 여성주의자들을 예로 들고 싶다. 이들은 여성의 참정권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당시 제국 일본 정부의 정책에 적극적으로 찬동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결국 대동아전쟁에 참여하여 전범이 되었다. 하지만 여성의 참정권은 이들의 노력이 아니라 미국의 강제 주입을 통해 이루어졌다. 결국 이들은 아무 소득도 얻지 못하고 전범만 되고 말았다.  성소수자(문화)가 비-성소수자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비-성소수자 문화로 인해 차별감, 소외감, 무력감을 받고 있는 성소수자를 차별감, 소외감, 무력감을 가하는 비-성소수자들에게 기생하고 아부하겠다는 것이며, 차별감, 소외감, 무력감의 원인이 되는 권력에 일조하는 것이므로, 지극히 무식하고 굴종적인 태도라 할 것이다. 그러면 성소수자는 비-성소수자를 배격하고 성소수자만의 국가를 세워 비-성소수자와 투쟁해야 하는가? 물론, 비-성소수자 중심 문화 속에서 성소수자들만의 공간을 만드는 것은 잠시라도 차별과 소외, 무력감을 잊을 수 있는 안식처, 피난처를 제공할 수는 있는 것이지만, 이 세상을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얼핏 들어도 불가능하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다. 성소수자는 비-성소수자에게 아부할 필요도 없고 그들을 무조건적으로 배격할 필요도 없다. 성소수자를 다수자로 만들고 성소수자 문화를 주류 문화나 상위 문화로 만들어야 할 필요도 없다. 성소수자 정치란 성소수자들과 그 문화가 비-성소수자가 중심이 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노동, 범죄, 의료, 가정생활, 인간관계 등의 다양한 분야 속에서 성소수자들이 차별, 소외, 무력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안을 제공하는 것이다. 비-성소수자에게 굴종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나 그들과 연대, 투쟁하는 것이 특정한 상황 속에서 일시적인 방편이 될 수는 있지만, 그 자체가 성소수자 정치의 영원한 방법이 될 수는 없다. 성소수자 정치는 성소수자가 사회의 일원으로서 차별, 소외, 무력감을 받지 않는 것을 가장 큰 목표로 하고, 그 안에서 시간/공간의 제약에 맞추어 다양한 방략을 모색해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BBC코리아.2022.01.07.) 성소수자 정치의 실천 하지만 성소수자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다양한 주제와 그에 대한 성소수자들의 논쟁은 한두 가지의 입장을 이용해 성소수자들의 경험을 일반화할 수 없다. 성소수자에 대한 정의부터 커밍아웃에 대한 입장, 성소수자의 제도권 정치화 등에 대해 성소수자 내부에서도 너무나 다양한 생각이 존재할 것이라는 것은 굳이 예시를 찾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이다. 비-성소수자 중심의 사회에서 성소수자는 지속적으로 무력감, 소외감,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으며, 성소수자 문화 역시 비-성소수자 문화의 영향을 받아 구성되어 있는 경우도 크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성소수자가 동일한 방식으로, 동일한 정도의 무력감과 소외감, 박탈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가족이나 친구에게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폭력을 당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자신의 성 정체성이나 성 지향을 폭로당하고 괴로움을 받기도 한다. 어떤 이는 비-성소수자 사회 안에서 비-성소수자 문화 안으로 어떻게든 들어감으로써 자신의 공포, 불안을 해소하려는 사람도 있고, 어떤 이는 이러한 괴로움 속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비-성소수자 문화가 중심인 사회라는 공통된 억압 속에서 성소수자들은 다양한 차이를 보여준다. 성소수자 정치는 성소수자와 비-성소수자의 차이 뿐 아니라 성소수자 안에서의 차이도 가시화할 필요가 있다. 이런 차이가 어떻게 발생하는지 다각도로 광범위하게 분석하여 그 맥락을 분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성소수자 정치는 성소수자들이 다양한 범위에서 주체성을 가지고 차별받거나 소외받지 않을 권리를 확보하는 것을 중심 과제로 삼아야 한다. 성소수자 안에서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성소수자의 정체성과 소외의 원인은 성정체성과 성지향, 신체적 특징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연령, 성별, 출신지, 거주지, 장애여부, 경제적 계급, 학력, 국적, 인종, 가족제도 등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생기는 문제다. 그러므로 성소수자 정치는 사회 전반의 평등의 문제와 함께 논의될 필요가 있다. 사회 전 영역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차별과 폭력에 대하여 그 원인과 해결 방략을 지속적으로 탐구하고 실천하는 것은 그 윤리적 중요성과 더불어 장기적으로 성소수자 정치의 목적을 달성하는 중요한 방안이 된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10월 29일 이태원 참사로 유명을 달리한 희생자 분들을 추모합니다. 이태원 참사의 원인과 대책에 대한 정부/지자체의 설명을 촉구합니다.
차별금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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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2020년 5월 8일 0.50%였던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2021년 8월부터 오르기 시작해 2022년 10월 12일 3.00%가 되었습니다 (한국은행). 금리는 왜 이렇게 오르는 걸까요? 금리가 오르는 건 우리에게 무슨 영향을 줄까요? 금리가 오르면 은행 예금 이자와 대출 금리도 같이 오르게 됩니다. 이자가 오르면 기업이나 가계는 대출을 덜 받으려고 할 것이고, 저축을 더 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기업과 개인이 가지고 있던 현금은 은행으로 모이게 되고 시장에서 유통되는 현금은 줄어들게 됩니다. 어려운 말로 경제활동이 둔화된다고 표현하지요. 경제활동이 둔화되면 물건의 가격도 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물가가 오르면 금리를 올리는 정책을 사용합니다. 또, 한국은행의 금리가 오르면 해외 자본이 한국에 들어오게 됩니다. 그러면 한국의 보유한 외화가 늘어나면서 환율도 떨어지게 됩니다. 환율이 떨어지면 수출품 가격은 상승하고 수입품 가격은 하락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래프에는 한국의 수출이 감소하고 수입은 증가하게 됩니다. 그래서 환율이 오르면 금리를 올리는 정책을 사용합니다. 금리 인상은 수요와 수출을 감소시키지만 물가를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물가나 부동산가격이 급등하는 경우, 경기가 과열된 경우, 인플레이션이 예상되는 경우에는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것입니다. (경제학 개론 교과서 같은 설명이었습니다) 한국의 기준금리는 2021년 8월을 기준으로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한국은행이 상승시키고 있습니다. 앞서 설명한 것을 기반으로 생각해보면 왜 기준금리를 올리는지 알 수 있겠지요. 부동산, 주식 같은 투기 자본 과열, 식료품을 시작으로 한 물가 상승 같은 것 말이지요. 그러면, 언제 종식될지 모르는 투기 과열이나 물가상승을 그냥 두고 마냥 금리만 인상시킬 수 있을까요? 누구에게 물어봐도 이것은 무리일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돈을 안 쓰는 것도 아주 큰 문제니까요. 그리고 물가하락으로 인해 소상공인, 농민들이 보는 피해를 생각하면 그것도 참 우려스러운 일이지요. 세상사에 안 그런 일이 있겠습니까만, 모든 일은 원인이자 결과인 측면이 있지요. 앞에서 이야기한 바를 가지고 생각해보면 금리 인상은 정책이기도 하지만 현상이기도 합니다. 기후 위기와 전쟁이라는 두 가지 인재(人災)로 인해 원자재, 식량, 에너지 물가가 가파르게 상승했다는 점은 이미 많은 분들이 아는 사실입니다. 2022년 10월 기준으로 한국 주변에 있는 일본과 중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들은 크기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금리 인상이라는 카드를 선택하고 있습니다. 환율이 가파르게 상승하는 이유도 각국의 금리 인상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각국 정부가 금리 인상이라는 정책/현상에 대해 어떻게 이를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해법을 내놓을지 고민하고 있는 동한, 한국은 대통령의 욕설, 여당 전 대표의 성접대, 영부인의 표절, 국회 부의장인 한 여당 의원의 식민사관으로 떠들썩 하기만 합니다. 물론 이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정부 관계자 중 누구 한 사람이라도 실오라기 만큼의 책임감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작금의 경제 상황에 대해 언급하는 이가 있어야 할 것인데, 저는 그러한 언설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습니다.  현 정부는 금리 인상이라는 현상을 두고, 어떤 정책적 노력을 기하고 있는지 지금까지는 알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뉴스를 찾아봐도 한국은행 총재의 인터뷰만 있을 뿐이고, 정부 관계자의 약속이나 설명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금리 인상으로 인한 대출 부담 증가는 어떻게 할 것이며, 금리는 어디까지 올릴 생각인지, 환율 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으며 금리 인상으로 인해 수출입에는 얼마나 영향이 있을지, 그로 인해 국민 개개인은 어떤 영향을 받을지 정부는 아무 설명이 없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우려하는 점은 바로 이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기후위기도 전쟁도, 한국은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한국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요?
경제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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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통일교, 혐한(嫌韓) - 일본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안녕을 기원하며 -
2022년 7월 8일 오전 11시 30분경, 일본 나라현 나라시 야마토사이다이지역(大和西大寺駅) 근처에서 참의원 선거 지원 유세를 하던 아베 신조오(安倍晋三, 1954~2022)가 총으로 암살을 당했습니다. 이 뉴스가 전세계적으로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주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총을 쏜 사람은 1980년생 야마카미 테츠야(山上徹也). 야마카미는 왜 아베 전 총리를 죽였을까요? 통일교는 또 무슨 이야기일까요? 야마카미 테츠야 야마카미 테츠야는 1980년생으로 부친과 모친, 형과 여동생이 있었다고 하고 유년기에는 꽤 유복한 집안의 자식이었다고 합니다. 테츠야가 네 살이던 1984년, 건설회사의 임원이던 부친이 투신자살을 한 후, 테츠야의 삼남매는 모친의 친정이 있던 나라시로 이주했다고 합니다. 그 다음해에는 모친이 건설회사의 임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어린시절 친구들의 증언에 따르면 테츠야는 성적도 우수하고 운동도 잘하는 학생이었다고 합니다 (MBS.2022.07.11.).  이 집안의 불운은 테츠야의 부친이 자살한 후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테츠야의 모친은 이후 불운한 일이 계속되자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世界基督敎統一神靈協會)라고 불리던 종교단체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 단체의 약칭이 바로 통일교입니다.  통일교 통일교는 문선명(文鮮明, 1920~2012)이라는 사람이 1954년에 만든 개신교계 신종교입니다. 한국의 컬트 기독교계는 나름대로 계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원래 만들어진 종교에서 교주가 신통력을 보이지 못하거나 교주의 사망, 싸움 등으로 교단 안에서 갈등이 벌어지면 그 종교에서 교리를 살짝 바꿔가면서 새로운 종교가 생겨나는 식입니다. 통일교도 이러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기독교계 이단 종파는 19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 이야기를 여기에서 다 할 수는 없고, 여기에서는 김성도(1882~1944)라는 여인부터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김성도는 1923년 자신이 예수를 만나 대화를 나눴다고 주장하며 종교를 창시했는데, 이는 한국 이단 기독교계에서 지금도 이야기하는 직통계시의 시작입니다. 보통 기독교에서는 인간을 죄의 존재로 보고 그 시작을 <창세기>에 나오는 선악과를 먹은 것으로 잡는데, 김성도는 선악과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이전에 음란이 문제라고 주장했습니다. 인간은 음란 때문에 신에게 죄를 짓게 되었고, 아담과 하와의 타락한 피를 물려받았는데, 이 타락한 피를 씻어내려면 타락하지 않은 순수한 피를 가진 사람의 피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교리를 피갈음(피가름)이라고 하는데 이 또한 한국 컬트 기독교를 이루는 상당히 중요한 교리 중 하나입니다. 하여튼 이 김성도라는 사람은 한국 컬트 기독교의 중요한 교리의 중요한 축인 음란의 강조와 직통계시, 피가름을 최초로 주장한 사람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원산예수교회를 만든 유명화(劉明化)라는 여인도 예수가 자기 몸에 친히 임했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한국 컬트 기독교계의 중요한 교리 중 하나인 재림예수도 이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김성도와 유명화를 이어받은 사람이 원산신학산의 백남주(白南柱, 1901~1949)라는 사람인데 백남주는 구약, 신약 이후에 성약이라는 새 시대가 온다고 주장했습니다. 구약, 신약 이후에 교주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시대가 온다는 시대 구분 또한 한국의 기독교계 컬트 종교에서 중요한 교리 중 하나인데, 이것은 백남주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백남주의 생각은 이스라엘수도원의 김백문(金百文, 1917~1990)과 삼각산수도원의 정득은으로 이어집니다. 정득은은 자신의 피가 구원의 피라고 주장하며 김백문에게는 자기 손을 잘라 피를 먹이려 하였다고도 하고, 말년에는 피갈음을 실천한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과 성관계를 하였는데, 그녀의 친딸이 1957년 세계일보에 이 사실을 폭로하기도 하였습니다 (기독교포털뉴스.2018.12.26.).  김백문과 정득은의 영향을 받았고 잠시 이들 밑에서 신앙생활을 했던 사람이 통일교의 교주 문선명과 전도관의 교주 박태선(1917~1990)입니다. 이들의 성경해석에는 음란의 강조, 피갈음, 직통계시, 재림예수, 신약 이후의 새 시대 같은 주장이 모두 섞여 있는데 이것도 나름대로 역사를 가진 것이라 하겠습니다. 전도관이나 박태선이라고 하면 잘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만, 신앙촌상회라는 이름은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통일교는 한국에서 반공주의와 결합하면서 교세를 넓혀갔고, 일본에서도 상당히 큰 교세를 가진 종교였습니다. 통일교를 조금이라도 아시는 분들은 신도들이 교주가 지정해주는 사람과 결혼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셨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1992년에는 서울올림픽 주경기장에서 3만 쌍이 참가한 국제 합동 결혼식을 열어서 화제가 되기도 하였는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교주에 의한 한일 국제 결혼도 상당히 화제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제 여동생은 통일교 재단이 운영하는 서울의 모 고등학교에 뺑뺑이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통일교 신자인 한일 커플의 자녀들이 교환유학 형식으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공부했던 것이나 혼전순결을 지켜야한다며 학교에서 순결캔디를 나눠주었던 것 등을 이야기해주기도 하였습니다. 제가 일본에 있을 때 저와 함께 중국 명나라 사상가인 이탁오의 저술을 읽었던 이시다 교수님이라는 분도 1980~90년대에 대학 안에 생긴 통일교 서클이 사람 수도 많고 매우 강력했다는 이야기를 해주며 이들이 종교 활동 때문에 단체로 수업을 들어오지 않는 일이 종종 있어 곤란했다는 이야기를 해주기도 하였습니다. 한국인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통일교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고 했던 일본 여성분도 기억이 납니다. 일본에서는 1970년대, 야마구치 모모에(山口百恵), 모리 마사코(森昌子)와 함께 “꽃의 중3 트리오(花の中三トリオ)”라 불리던 1세대 아이돌 사쿠라다 쥰코(桜田淳子, 1958~)가 통일교 신자로 유명합니다. 사쿠라다 쥰코는 서울에서 열린 합동결혼식에 참가하여 결혼을 하기도 했고, 문선명 사후 추모행사에 참여하여 공연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일본에서 통일교는 항아리나 특이한 장식품을 신도들에게 비싼 값에 강매했던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이를 영감상법(霊感商法)이라고 합니다. 간혹 일본 만화나 드라마에서 사이비 종교에 빠져 비싼 항아리나 쓸모 없는 장식품을 사들이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는데요, 이는 모두 과거 통일교에서 했던 방식을 따온 것이고, 실제 통일교 전파 이후의 일본 컬트 종교들(대표적으로 옴진리교 등)도 이런 방식으로 자금을 마련하기도 하였습니다. 야마카미의 모친이 통일교에 빠져 재산을 헌납했다는 것도 구체적으로는 이런 방법을 통한 것이었을 겁니다. 종교 2세 다시 야마카미 집안의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테츠야의 모친은 테츠야의 형이 소아암을 앓은 것에 연이어서 남동생과 어머니가 사망한 것 때문에 상당히 정신적으로 힘들었다고 합니다. 테츠야의 친척은 테츠야의 모친이 1991년경부터 통일교에 입교했다고 합니다. (スポニチ.2022.07.16.) 많은 분들이 기억하시겠지만, 1990년대는 전세계가 세기말이라는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습니다.한국 교회의 휴거소동, 지구 종말, Y2K 같은 것들 말이죠. 개인의 불행도 있었겠지만, 사회적인 공포 분위기도 어느 정도는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야마카미 테츠야의 모친은 야마카미가 성인이 되고 얼마 안 된 2002년, 통일교에 바친 1억 엔이 넘는 헌금 때문에 결국 파산을 하고 맙니다(読売新聞.2022.07.13.). 테츠야는 이런 이유로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자위대(自衛隊)에 들어가 군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때 자살 미수 사건도 있었다고 하는데, 모친의 헌금으로 가세가 심하게 기울자 자신의 사망보험금이라도 타서 형과 여동생에게 생활비로 줄 목적이었다고 합니다 (KYODO.2022.07.15.). 테츠야는 2005년부터 자취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 시기는 버블 붕괴 이후 일본의 경제가 침체되어 잃어버린 10년이라 불리던 시기였습니다. 실업률이 높았던 이 시기에 야마카미 테츠야라고 해서 좋은 직업을 구할 수 있었을 리가 없습니다. 아르바이트와 파견근로 같은 비정규직 노동을 전전하면서 인간관계도 점점 끊어져가던 중, 2015년에는 오랜 시간 투병을 해오던 형이 자살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読売新聞.2022.07.14.). 남자는 이런 일련의 불운이 모두 통일교와 통일교에 빠진 모친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남자가 살아온 인생을 생각해보면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는 부모의 종교 때문에 인생에 영향을 받는 자녀들을 종교2세(宗教2世)라고 합니다. 2세 신자(2世信者)라고 하기도 하고, 특히나 컬트 종교인 경우에는 컬트2세(カルト2世)라고 하기도 합니다. 테츠야의 모친은 장남의 사망 이후에도 활동에 부침은 있지만 통일교 활동을 지속해왔다고 하고, 테츠야는 이런 모친과 10년 넘게 연락을 끊었다고도 합니다. 테츠야는 이 과정에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모든 일의 원흉은 통일교를 만든 초대 교주 문선명과 그의 부인이자 2대 교주, 대모님이라 불린 한학자(韓鶴子, 1943~) 때문이다.”  야마카미 테츠야는 실제로 문선명이 이미 죽었으니, 한국에 가서 한학자를 살해할 생각을 하기도 했다고 하는데, 2019년부터 코로나 펜데믹이 터져 한국에 건너가는 것이 힘들어졌습니다. 테츠야는 혼자 자료를 조사하며 생각의 나래를 펼쳐가던 중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문선명과 한학자를 일본에 데리고 온 것은 키시 노부스케(岸信介, 1896~1987. 56, 57대 총리)다. 그렇다면 키시 노부스케의 외손자인 아베 신조오도 다 한통속이다!” (テレ朝.2022.07.12.) 키시 노부스케는 한국에서 2차대전 A급 전범 출신인 총리로 유명합니다. 통일교회 일본 본부는 키시 노부스케의 자택 근처에 만들어졌다고도 알려져 있으며, 키시 노부스케가 총리가 된 이후에는 수상관저였던 건물을 통일교회가 사용했다고도 합니다. 통일교회와 통일교회가 만든 국제승공연합의 초대회장이었던 쿠보키 오사미(久保木修己, 1931~1998)는 자신의 저서에서 이렇게 밝히기도 했습니다. “키시 선생은 자주 통일교회나 승공연합 본부에 발걸음을 옮기셨습니다. 선생과 우리들에게는 공유할 수 있는 정신적 연대가 있었습니다.” 岸先生は、しばしば統一教会や勝共連合の本部に脚を運んで下さいました。先生と私たちには共有できる精神的連帯がありました “키시 선생께서 간절한 뜻을 내비쳐 주신 것이 승공(반공의 통일교 용어) 운동을 비약시키는 큰 계기가 되었다” 岸先生に懇意にしていただいたことが、勝共運動を飛躍させる大きなきっかけになった (이상 毎日新聞.2022.09.15.) 2021년 9월 12일, 통일교에서 만든 NGO단체인 우주평화연합(UPF)이 한국에서 연 희망전진대회라는 집회에서 아베 신조오 당시 총리가 영상 축전을 보낸 사실이 있습니다.  (NEWSポストセブン.2021.09.29.) 이 행사에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과 오세훈 서울시장도 영상축전을 보낸 바 있습니다. 여기에서 아베 당시 총리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UPF와 함께 세계 각지의 분쟁 해결, 그 중에서도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향해 노력해 오신 한학자 총재를 비롯한 여러분께 경의를 표합니다. 今日に至るまでUPFとともに世界各地の紛争の解決、とりわけ朝鮮半島の平和的統一に向けて努力されてきた韓鶴子総裁をはじめ、皆さまに敬意を表します 야마카미 테츠야는 온라인으로 공개된 이 영상을 보고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꾸준히 준비한 끝(?)에 2022년 7월 8일, 결국 살해에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국장(國葬) 일본은 정치인에 대한 살해, 암살이 잊을만하면 일어나곤 합니다. 최근 3~40년의 일 중에서 제가 생각나는 것만 이야기해봐도 우선은 1988년, 나가사키시 시장 모토시마 히토시(本島等, 1922~2014)가 천황의 전쟁 책임을 이야기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1990년 1월 18일, 우익단체 활동가 와카지마 카즈미(若島和美, 1949~)에게 총격을 당했다가 살아난 일이 있었습니다. 같은 해 11월에는 국회의원이었던 니와 효오스케(丹羽兵助, 1911~1990)가 나고야의 육상자위대 주둔지에 방문했을 때 목에 칼을 맞고 사망하였습니다. 1992년에는 자유민주당(자민당) 의원이면서도 한국, 북한 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카네마루 신(金丸信, 1914~1996)이 우익 단체 활동가에게 총을 맞는 일이 있었습니다. 2002년에는 사이비 종교 피해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던 민주당 의원 이시이 코오키(石井紘基, 1940~2002)가 우익단체 활동가에게 칼을 맞고 사망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2006년에는 민주당 의원 카토오 코오이치(加藤紘一, 1939~2016)가 코이즈미 쥰이치로 당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비판하자, 우익단체가 카토오 의원의 자택에 방화를 저지르기도 했고, 2007년에는 나가사키 시장 이토오 잇쵸오(伊藤一長, 1945~2009)가 불명확한 이유로 조직폭력배의 총을 맞고 숨지는 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1945년 이후로 전현직 총리가 살해되는 일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이 사건은 일본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일본에서 전현직 총리에 대하여 국장을 치르는 것은 1967년, (어떤 의미로든) 전후 일본의 복구자로 평가받는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1878~1967)가 마지막이었는데, 아베 신조오의 사망 이후 일본 정치권에서는 아베 전 총리에 대해 국장을 치러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이 등장하였습니다. 사건 직후인 7월 14일, 키시다 후미오(岸田文雄) 현 총리가 국장 이야기를 처음 꺼냈고, 7월 22일에는 정부가 도쿄 부도칸(武道館)에서 고 아베 신조오 국장의(故安倍晋三国葬儀)라는 이름으로 9월 27일에 장례 의례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JiJiCom.2022.07.22.). 국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며칠 후, NHK가 7월 16일부터 3일간 아베 전 총리의 국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설문을 실시했습니다. 이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49%가 긍정적인 답변을, 38%는 부정적인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NHK.2022.07.19.). 그런데 범인의 입에서 통일교라는 이름이 나온 후, 교도통신이 7월 30일부터 3일간 실시한 설문에서는 국장에 찬성한다고 하는 사람은 17.9%, 반대한다고 대답한 사람은 29.8%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와 더불어 국회와 통일교의 연관성에 대해 국회가 해명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도 함께 조사가 진행되었는데, 여기에서 80.6%는 해명이 필요하다고 응답했습니다 (東京新聞.2022.08.02.).  국장이 끝난 지금도 일본에서는 국장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설전이 오가고 있습니다. 10월 2일에는 무려 세 곳에서 아베 전 총리의 국장에 대한 설문조사를 발표했는데요, 결과를 한번 보시겠습니다. 아베 전 총리의 장례를 국가 의례로 행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JNN의 조사 (TBS.2022.10.02.) 아사히신문의 조사 (朝日新聞.2022.10.02.) 요미우리, NNN 공동조사 (読売新聞.2022.10.02.) 매우 긍정적 12% 굳이 말하자면 긍정적 30% 굳이 말하자면 부정적 29% 매우 부정적 25% 긍정적 35% 부정적 59% 긍정 평가 41% 부정 평가 54% 아베 전 총리와 통일교 사이의 관계가 밝혀지면 밝혀질 수록 국장에 대한 평가는 매우 부정적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국장이 끝난 지금도 아베 전 총리의 장례를 국장으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고, 언론에서는 인기 없는 국장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통일교와 상관 없이, 국장이라는 행사 자체에 대한 반감 때문에 국장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국가가 개인의 장례 의식을 주관하고 이를 공휴일이나 임시 휴일로 삼는 것은 사상의 자유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변호사 모임이나 종교단체들, 아베 전 총리의 정책에 대해 반대해 왔거나 반감을 가지고 있는 노동조합, LGBT 단체, 여성단체, 반전주의자 모임 등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가장 뜨거운 주제는 역시 통일교(일본에서는 통일교회統一教会)입니다. 아베 전 총리가 죽고 두 달이 넘어 세 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아베 전 총리와 통일교의 관계에 대한 기사, 그리고 통일교라는 종교가 무엇인지에 대한 기사는 매일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월호 사건 때 유병언이라는 개인에게 집중했던 것처럼, 컬트 종교 자체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좋은 주제인 것도 있습니다만, 한편으로는 반한/반중 기조(일부에서는 주체적인 일본 을 만들고자 하는 태도라고도 표현)를 이끌어온 일본의 여당 자유민주당이 오랜 기간 한국의 컬트 종교와 커넥션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특히 극우/우익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상당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사실 일본에서는 아주 이전부터 기독교의 교세가 강하지 않은 일본에서 통일교가 이렇게까지 빠르고 넓게 교세를 넓히는 데에는 정치의 도움이 분명 있었을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일부에서는 한국 로비라고도 불렀는데요, 실제로 종교 피해자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싸워온 한 변호사는 90년대에 자민당 의원의 비서 중 대부분(이 사람의 말에 따르면 100명 가까운 사람)이 통일교 신자였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日刊ゲンダイ.2022.07.13.). 종교관련 저널리스트 스즈키 에이토(鈴木エイト)는 구체적인 숫자와 리스트까지 제시했는데, 자민당 의원중 중의원 78명, 참의원 20명이 통일교와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있으며, 입헌민주당에도 6명, 일본유신의 회(日本維新の会)에도 5명, 국민민주당에도 2명의 의원이 통일교와 관련이 있는데, 이 중 34명은 내각에 참여하거나 당의 고위 간부였던 사람이라고도 밝혔습니다 (日刊ゲンダイ.2022.07.16.). 잠시나마 외국에 살았던 사람의 우려 제가 공부를 위해 잠시 일본에 거처할 때의 일입니다. 전세계 어딜 가나 게이들은 데이팅 어플을 통해 연애 상대나 친구를 찾는 일이 흔한 풍경이므로, 저도 일본에서 사람 구경이나 할까 하고 데이팅 어플을 켜면 1~2주에 한번 정도는 꼭 “독도는 누구 땅이라고 생각하냐?”라던가, “문재인에 대한 너의 생각을 듣고 싶다”라는 식의 메시지가 안녕이라는 인사도 없이 날아오고는 했습니다. 마침 그 때는 북한의 핵 발사도 계속 되고 있었고, 남한도 탄핵정국이 막 끝나고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초기의 일이라, 일본의 뉴스나 와이드쇼에서는 매일 한반도 때리기 식의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던 시기입니다. 생판 처음 보는 사람이 갑자기 다가와서 “나는 김정은은 싫어합니다!”라고 말하고 간다거나 나이가 많은 사람들 중에는 한반도의 두 지도자 때문에 일본국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 일도 많았더랬지요.  처음 한두 달은 그런 사람들과 열심히 토론도 하고 싸움도 했었습니다만, 나중에는 그것도 지쳐서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사도 없이 “나는 평창올림픽을 안 볼 겁니다”라고 말하고 홱 돌아 사라진 같은 과의 선배나, 미군기지도 없는 후쿠오카에서 북핵 대피 훈련 사이렌을 요란스레 울리며 공습 대피 훈련을 하던 날은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한국에서 무슨 이슈가 터지거나 한일관계에 관한 뉴스가 인터넷 기사에 뜨는 날에는 “아 오늘은 또 누가 무슨 일을 벌어질까” 하고 걱정을 하며 하루를 시작하던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아, 그리고 대형 서점에 가면 혐한/혐중 코너가 있었던 것도 기억이 납니다. 대놓고 ‘혐한/혐중’이라고 표시된 곳이 있지만, ‘아시아’라는 이름으로 사실상의 혐한/혐중 서가를 만들어 둔 곳들을 보며 정신이 아득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 지금도 일본에 사시는 분들 중에 일부는 통일교나 아베에 대한 평가를 듣겠다고 다가오는 사람들 때문에 고생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베 전 총리가 사망하고 야마카미 테츠야가 잡히기 전까지 몇 시간 동안, NHK에서는 범죄자가 한국인이나 재일조선인, 중국인일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하였습니다. (야마카미가 잡힌 후 이 기사는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야마카미 테츠야를 일부 한국인들이 ‘제2의 안중근’ 등으로 영웅시하고 있다는 인터넷 언론 기사. FlatPlat.2022.07.09.) (중국에서 야마카미 테츠야의 피규어가 팔리고 있다고 주장하는 일본 인터넷 언론 기사. 東京スポーツ.2022.07.15.) 야마카미 테츠야의 신원이 밝혀진 후에도 많은 인터넷 황색 언론들은 한동안 야마카미 테츠야가 일본국적이지만 한국, 중국과 혈연적인 관계가 있지 않겠냐는 이야기라던가 한국과 중국에서 그가 영웅시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습니다. 적어도 메이저 언론사에서는 야마카미 테츠야가 한국계나 중국계라는 이야기를 하지는 않지만 ‘한국의 컬트 종교 통일교’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 같은 이야기가 재편집되어가면서 보도되고 있습니다. 그나마 아베의 국장이 끝난 이후, 한국이나 통일교 이야기에 대한 관심이 많이 사그러들었다는 느낌은 들고 있지만, 지금은 한국에 살고 있는 저로서는, 그저 일본에 살고 있는 재일조선인과 한국, 중국계 거주민들에 대한 안녕을 빌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합니다. 혹시 한국은? 한국의 언론과 방송은 한국 사회에 뿌리 깊은 외국인 차별에 기생하면서 반 외국인 정서를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스쳐지나가는 몇몇 기사, 제주도 대부분이 중국인 손에 넘어갔다거나, 가짜 난민이다, 난민을 받지 말자 운운하며 시위까지 불사하던 어떤 사람들, 자기 동네에 이슬람 사원이 생기는 것을 막겠다며 혐오 발언을 내뱉던 어떤 동네, 과거 제국주의 열강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꼭 그 나라의 일반인을 데려와 앉혀놓고 의견을 묻는 역사 프로그램들… 지금 한국 안에 사는 외국인들이, 제가 외국에 살 때 느꼈던 불안감이나 우려를 한국에서 똑같이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차별금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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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 앞에서: 스러져가는 문화재들을 위하여
지금은 자본주의 시대잖아요? “지금은 자본주의 시대잖아요?” “자본주의 시대에 알맞는 선택이죠.” 우리는 일상에서도 자본주의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실제 사용되는 예를 가지고 자본주의가 무슨 의미인지를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자본주의를 돈이면 다 되는 세상, 돈이 가장 중요한 세상이라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본도 그냥 많은 돈이라는 의미 정도로 사용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資本主義, Capitalism)는 말 그대로 자본이 중심인 사고방식을 말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자본은 뭘까요? 자본은 그냥 돈을 뜻하는 말은 아닐 겁니다. 돈이란 어떤 물건의 가치를 알기 쉽게 표현해주는 수치이기도 하고, 물건을 교환을 하기 위한 중요한 도구이기도 하고, 물건을 언제든지 바꾸기 위해 저장해두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돈이 자본이 되기 위해서는 일단 그 양도 중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노동을 통해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돈이 돈을 통해서 불어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게 돈과 자본의 차이고, 이를 한자 단어로 표현하자면 증식(增植)되는 돈이야말로 자본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자본주의란 돈의 증식을 위해 존재하는 사회 구성 방식, 돈의 증식을 위해 사회가 구성되어야 한다고 믿는 생각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노동을 통하지 않고, 돈이 저절로 불어나려면 우리는 무엇을 할까요? 주식 투자를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 것이고, 부동산 매매를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만, 중요한 건 결국 사람들이 특정 물건을 실제 가치보다 더 높이 판단하면 돈이 돈을 버는 현상이 생겨납니다. 과거에는 물물교환이 중심이었겠지만, 대부분의 아시아-유럽의 국가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한 가지 물건을 기준으로 놓고 거래를 하였습니다. 조선 땅에서는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비교적 최근까지도 쌀이 그 기준이었지만, 거의 대부분의 나라들은 금, 은, 구리, 철 같은 금속이 거래의 기준으로 쓰였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화폐의 형태는 꽤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이죠. 금속으로 만든 화폐가 등장하면서 우리는 금속 화폐를 중심으로 세상을 판단하기 시작했고, 화폐가 곧 부(富)의 실체이고 가치인 것처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우리는 가치와 가격을 마구 섞어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가격과 가치가 구분되지 않고 섞이기 시작하면서 자본이 등장했습니다. 자본이라는 것이 어느날 갑자기 ‘나는 자본이다’라고 말하고 등장한 것은 아니고, 자본이라는 말이 사용된 것은 꽤 최근의 일이지만, 인간들은 이미 기원년 전후가 되면 거의 모든 지역에서 자본을 형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시대와 지역에 따라서 ‘신분이냐, 계급이냐, 계층이냐’의 차이는 있지만서도, 개인이 어떤 형태로든 자본을 소유하고, 노동 혹은 노동력의 대가를 화폐로 지불하는 체제 하에서, 자본의 증식을 가장 핵심적인 동기로 삼는 사고방식, 혹은 그러한 사회구조를 우리는 지금 자본주의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본주의는 노동에 기생하는 형태를 띌 수 밖에 없습니다(착취라고 말하면 거품 물고 뒤집어지는 분들이 계실까봐 기생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자신은 노동을 하지 않으면서, 누군가가 노동 혹은 노동력을 주고 받은 화폐를 끌어모아야 하니까요.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는 인간의 욕망을 부추긴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본이 증식될 도리가 없거든요! 왕릉뷰 아파트와 DDP 이야기를 잠시 조선왕릉으로 돌려볼까 합니다. 서울, 경기 지역에 두루 분포되어 있는 조선 왕릉은 2009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조선왕릉 40기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단순히 왕의 무덤이라서가 아닙니다.  전문용어로는 천인상관(天人相關)이라고도 합니다만, 천지(天地) 질서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우주, 자연의 질서와 인간의 질서가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유교적 자연 이념에 기반하여, 무덤의 구조는 물론, 무덤의 위치까지 매우 세밀하게 구성해, 산과 강으로 대표되는 자연과 마을, 도시로 대표되는 인간 사회, 죽음과 조상, 뿌리라는 경건함과 태어나고 먹고 마시고 싸고 섹스하다가 죽는 세속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는 그 배치 방식은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사상의 표현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유네스코에서 조선 왕릉 40기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제할 때에는 그 완전성과 진정성에도 매우 높은 점수를 주었습니다. 도시개발이 몇몇 유적의 경관에 영향을 미치기는 했지만 대체로는 엄격한 법률로 개발을 제한하고 있으며, 모든 유적이 본래의 기능과 경건함을 잘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완전성과 진정성을 평가받은 것입니다. 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문화재보호법> 등의 실정법으로 이러한 유산을 광범위하게 보호하고 있으며, 효율적으로 보존 계획을 세우고 관리하고 있다는 점, 일관성 있게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니고 있다는 점도 매우 큰 평가를 받았습니다. (유네스코-조선왕릉)  그런데 이제는 이런 것도 자랑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경기도 김포시에 있는, 인조의 부친 원종(元宗. 추존왕으로, 정원대원군定遠大院君이라고도 함)과 인조의 모친 인헌왕후(仁獻王后)의 구씨(具氏) 능인 장릉(章陵) 앞에 아파트가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불법으로 지어진 것이라면 그것도 문제지만, 이것이 법에 합당하다고 하면 그것도 문제입니다. 한국 정부의 문화재 정책이나, 한국의 문화재 관련 법률, 혹은 문화재 담당 기관이 문화재를 지키기에 합당하지 않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파트 건축이 합법이건 불법이건, 아파트 시공으로 인해 세계적인 문화재가 훼손되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2020년 기준으로, 한국의 주택 보급률은 103.6%였습니다. 한국의 전체 가구수를 100으로 치면, 주택이 103채 있다는 뜻입니다. 한국의 주택 문제는 주택 보급의 불공정에 있는 것이지, 주택이 모자라서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아파트에 목을 매는가 라고 질문한다면, 자본의 요술이라고 할 수밖에 없겠지요. 또, 동대문 디지털 플라자(DDP)라는 대표적인 사례도 하나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기억하시겠지만 DDP가 있던 자리에 원래는 동대문 운동장 있었습니다. 1925년 건설되어 한국 스포츠의 근현대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역사유적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2006년 서울특별시장으로 당선된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은 노후를 이유로 동대문 운동장을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 DDP를 세우기로 결정했습니다. 당시에도 한국 근현대 스포츠의 대표적인 유적이라 할 수 있는 동대문 운동장을 이렇게 헐어 버리는 것이 역사적으로 문제가 있지 않겠냐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은 그런 말을 전부 무시하고 2007년 드디어 동대문운동장을 싹 밀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동대문운동장을 밀고 났더니 거기에서 조선시대 유적이 발견된 것입니다. 조선시대 최대의 군사 훈련 시설이었던 하도감과 민가, 수로, 가마 유적이 대규모로 발굴된 것입니다. 에초에 일제가 동대문 운동장을 지을 때에도 한양도성을 밀어버리고 지은 탓에 수많은 비판을 받았는데요, 동대문 운동장을 철거하면서 이 때 파묻어 버렸던 과거의 유적이 그대로 드러나 버린 것입니다.  그러면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은 어떤 결단을 내렸을까요.  오세훈 서울시장은 자신의 치적을 반드시 남겨야 되겠다는 생각 하나를 가지고, 그곳에서 발견된 수많은 유적을 그대로 떠서 여기저기 나누어 다른 곳으로 옮겨 버렸습니다. 유적은 원래 자리에 보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시골에 있는 집을 헐어서 그걸 서울에 지으면 우리는 그것을 시골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이런 이치입니다. 1998년 경춘선 가평역을 지을 때의 일입니다. 역을 짓기 위해 땅을 파던 중 고조선시대의 유물과 유적이 우루루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래서 5년에 걸친 공사 끝에, 유물을 전시하는 전시관을 만들고, 고조선 시대의 움집과 움무덤터를 그대로 놔두어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보존 하였습니다. 또 2005년 부산광역시 4호선 수안역을 공사 할 때에는 임진왜란의 두번째 전투인 동래성 전투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동래성 유적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래서 수원역을 공사할 때 동래읍성 전시관을 만들어 유물과 유적을 보존하였습니다.  자신의 임기 내에 눈에 보이는 치적을 남기기 위해 DDP를 짓고야 말겠다는 일념 하나로 유적을 싹 밀어버린 오세훈 서울시장의 결단! 그건 실용이 아니라 욕심입니다 어떤 분들은 옛날 무덤, 옛날 집터가 뭐 그리 중요하냐고, 넌 지금 한복을 입고 한옥에서 사느냐고 되물으실 수도 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이나 명동성당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다고 해서 제 삶에 큰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하철의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면 제 일상에는 큰 지장이 생깁니다. 당장 노트북이 고장나면 제 삶에는 큰 지장이 생깁니다. 실용이라는 것도 분명 중요한 것입니다. 인간은 실용 속에서 오히려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새로 만들어지는 열차 속에서, 평범한 빌라나 아파트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부정하고 싶지도 않고, 오히려 가끔은 존중하고 싶은 순간도 있습니다. 여자들의 노동력을 갈아 넣어 성대하고 아름답게 차린 전통 제사상보다, 모두가 함께 차린 단촐한 식사가 더 위대할 수 있습니다. 화려한 미사여구보다 진솔하고 담백한 한 마디가 더 많은 감동을 줄 수도 있습니다. 어느 시대의 양식을 따라 만든 드레스나 턱시도, 궁중의 예복을 입고 전통 예법에 따라 행동하는 모습도 아름답지만, 땀에 젖은 노동자의 모습이 도 아름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파트가 장릉을 가리며 건설해야 할 정도로 중요한 일이었는지, 조선의 유적을 여기저기 옮겨놓고 지을만큼 DDP가 중요한 건물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프랑스나 영국의 박물관은 여기저기에서 훔쳐온 물건들로 가득합니다. 미국과 일본 여기저기에도 한국의 유물들이 흩어져 있습니다. 이들은 이 장물들을 돌려주지 않겠겠다면서, 문화재를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곤 합니다. 낯짝이 두껍다는 말 밖에 할 수가 없겠지요.  하지만 이제 한국의 유물은 돌려받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우리 문화재를 환수하겠다고 할 때, 외국에서 장릉 앞 아파트와 DDP를 거론하면서, 너희는 너희 문화재를 지킬 역량이 없는 나라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해야 할까요? 오히려 장릉 앞 아파트와 DDP가 실용을 해치는 것은 아닐까요? 외국인들이, 혹은 후대의 사람들이 굳이 장릉 앞에 아파트를 건설해야만 하는 당위, 디자인 플라자를 유적지를 옮겨가면서까지 반드시 동대문에 짓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이었냐고 물으면 우리는 뭐라고 답을 해야할까요? ‘너희 대한민국은 부동산이라는 거대한 욕망, 자본주의 사회이므로 자본의 증식이라는 위대한 목표를 지켜야 한다면서 나머지는 깔아뭉개도 된다는 생각을 가진 국민들, 자기 치적을 남기기 위해서는 환경도 전통도 자기 일 아니라고 생각하는 정치인을 가진 나라가 아니냐’고 말한다면 우리는 뭐라고 대답을 해야할까요?
새 이슈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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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 성차별, 계급차별: 차별의 9층 석탑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미국과 유럽에서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발언과 혐오범죄가 도를 넘고 있다는 기사가 많이 나왔습니다. 오죽하면 2022년 5월에는 BTS가 백악관에 초청받는 상징적인 이벤트까지 열렸을까요? (BBC.2022.05.27.) 아시아인에 대한 구미인의 혐오범죄는 한국에서도 꽤 화제가 되었습니다. 특히나 이런 범죄들은 아시아인 중에서도 여성이나 노인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유독 비열한 느낌을 줍니다. 교양 프로그램의 연예인 패널들이 아시안에 대한 범죄가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글썽거리거나 탄식을 내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한편으로는 한국인들이 한국 안에서 벌어지는 인종차별 문제에는 얼마나 목소리를 내왔는가, 저기 눈물을 글썽거리고 한숨을 짓는 연예인 패널들이 한국 안에서 동남아시아인이나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에 대하여 저 정도의 목소리라도 내어본 적이 있는가, 이런 생각이 들어 텔레비전을 꺼버리고 싶은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한국은 외국에 관심이 있는가? 저는 이런저런 일로 다른 나라 사람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만, 여러 나라 사람을 만나보면 유독 동북아시아 사람들이 다른 나라 소식에 어둡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특히 한국인과 일본인에게 이런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일본 이야기는 차치하고, 한국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한국인이라서요. 한국은 일제 36년 식민지배를 받았지만 일본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좋든 싫든 미국의 영향을 받았으면서 미국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좋든 싫든 중국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중국에 대해서도 잘 모릅니다. 그 나라들의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경제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문화와 역사는 어떤지 정말 모른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수출 의존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은 한국, 속된 말로 남의 나라 돈으로 먹고 사는 나라인 한국이 그런 것 치고는 정말 아무 것도 모른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미국, 일본, 중국에 대해서도 이러한데, 다른 나라는 더 말할 것도 없지요. 사실 한국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종차별국가 중 하나입니다. 베트남 휴양지에 놀러가면서도 베트남에서의 학살에는 눈을 감고, 타국에서 벌어지는 학살과 내전, 재해와 전쟁 앞에서 우리는 우리에게 무슨 이득과 손해가 있을지만 계산하는 뉴스를 보곤 합니다.  (Korean Harald. 2018.10.8. 예멘 난민 수용 반대 시위) (아주경제.2013.07.07. 2013년 아시아나 항공기 착륙사고 당시 채널A의 뉴스 앵커는 사망자 2명이 중국인이라는 사실을 전하며 한국인이 아니라 중국인이 죽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블랙 페이스Black Face는 흑인 차별의 상징이다. 하지만 아직도 한국인들은 이게 왜 문제인지 모른다.)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에 온 이주민 10명 중 7명은 한국에 인종차별이 존재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웰페어뉴스.2020.03.19.) "남편 회사의 공장장이 한국 사람한테는 욕을 안 하는데, 남편한테만 'X새끼 왜 제대로 일 안 하냐'고 말해요." "동사무소에 가면 사람들이 '난민 왔냐'고 큰소리를 지르고 저를 보며 웃어서 기분이 나빴습니다." "길을 가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제 히잡을 벗겼어요." 국가인권위원회가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에 의뢰해 진행한 조사에서 이주민들이 대답한 실제 피해 사례입니다. 이 조사에 따르면 한국에 오래 살면 살수록 인종차별을 체감하는 사람의 비율이 높다고 합니다. (연합뉴스.2020.08.19.) 앞서 말했듯이 간혹 동북아시아인들이 미국을 비롯한 백인들에게 혐오발언을 듣거나 혐오범죄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한국에서는 이 문제를 상당히 중요하고 심각하게 다룹니다. 하지만 동남아시아 인터넷 상에서 이런 한국의 모습을 비꼬는 유명한 짤이 하나 있습니다.  많은 한국인들은 한류(韓流, 韩流, Korean wave)의 영향으로 한국 드라마나 한국 아이돌이 인기가 있다는 이야기만 듣고 있습니다만, 한류 덕분에 한국에 관심을 가졌던 외국인들이 한국인들의 SNS나 뉴스 댓글, 한국의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를 보고 반한/혐한 감정을 가지는 일이 적지 않다는 일은 잘 모르고 있습니다. 한류의 인기가 뜨거운 만큼, 한국 정치인이나 연예인의 발언은 물론, 뉴스 댓글과 인터넷 커뮤니티의 인종차별 발언도 빠른 속도로, 그것도 아주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어 퍼지고 있습니다. 인도나 동남아시아, 이슬람권, 그리고 중남부 아메리카에서는 한류에 관심을 가졌던 많은 청소년, 청년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의 인터넷을 접한 후, 한국의 실상을 알고 실망하고, 심하게는 한국을 혐오하는 현상도 꽤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걸 아는 한국인은 몇이나 될까요? 요즘 한국인들은 입버릇이 된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명사 앞에 K를 붙입니다. 특히 문화 콘텐츠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K-pop, K드라마, K영화 등등등. 저는 한류의 종말은 드라마나 노래의 질 때문이 아니라, 한국 안의 다양한 차별이 전세계에 알려지는 그 순간이 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한국 안의 인종차별에 얼마나 관심이 있으십니까 또, 한국의 노동자 중 외국인 노동자의 비중은 3.8%이지만, 중대재해로 인한 사망 노동자 중 외국인 노동자의 비율은 11.2%에 달한다고 합니다. (연합뉴스.2022.01.21.) 사망하지 않은 부상자나 사망을 신고하지 않은 경우, 불법체류자의 산업재해는 더 많을 것입니다. 2020년 12월 20일에는 캄보디아 출신의 이주노동자 속헹 씨가 비닐하우스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었습니다. 연평균 매출 10억을 기록하는 농가에서 저임금의 착취를 해가며 최소한의 위생과 사생활도 보장되지 않는 생활환경을 강요받다가 불과 30세의 나이에 사망하고 만 속헹 씨는 2022년이 되어서야 산업재해로 인정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경향신문.2022.05.02.) <이주와 인권연구소>의 2018년 조사에 따르면, 제조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 중 40.3%는 작업장 부속건물에서 지내고 있으며, 15.9%는 임시 가건물에서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고 제도에 미숙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사업주들은 최소한의 생활 보장도 해주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매일노동뉴스.2021.03.29.) 지금은 2022년, 이 조사 이후로 4년여의 세월이 지났지만 얼마나 바뀌었을까를 생각하면 고개가 가로저어집니다. 우리는 미국과 유럽에서 벌어지는 혐오발언과 폭력에 대한 우려의 반의 반만큼이라도 우리 안의 차별과 폭력에 대해 우려와 관심을 보이고 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지방의 교육청에서는 학교에서 가정통신문을 여러 언어로 배부할 수 있도록 다국어 가정통신문 양식을 만들 정도로 결혼이주여성이 많습니다만, 아직도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제도적 복지는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미흡하며, 인식은 더더욱 미개합니다.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가정폭력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들을 보면서 ‘가난한 나라’ 운운하는 습관도 아직 다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의 통계에 따르면 한국에 있는 결혼이주여성 10명 중 4명은 가정폭력을 경험하였는데, 가장 많은 것은 언어폭력이었고, 물리적, 성적, 정신적 학대도 심각하였습니다. (한국일보.2019.12.10.)  인종차별은 한국안의 성차별, 계급차별과 만나 차별의 9층 석탑을 짓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존재하는 차별의 크로스오버 속에서 각자 일정 부분의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이 사회를 만들어온 것도 우리고, 만들어갈 것도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돈오점수(頓悟漸修) 훌륭하고 빈틈없는 제도를 갖추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이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제도를 운용하는 것도 인간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되며, 우리 개개인이 사회 속에서 도덕적인 책무를 다해야 하는 것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저는 제도만 제대로 갖추어지만 모든 문제가 사라질 것이라고 하는 제도에 대한 맹신은 영웅주의나 종교적 믿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도의 정비와 인간의 도덕적 함양은 함께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최소한의 생활과 건강 조건조차 위협받는 상황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다양한 제도를 마련하고 기존 제도의 허점을 정비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이고, 이것을 위해 우리 사회 모두가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우리는,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저 자신부터 글을 읽고 계시는 분들이나 안 읽으시는 분들이나 할 것 없이, 우리 안에 차별의 정신이 있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불가의 말 중에 돈오점수(頓悟漸修)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고려의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 1158~1210)이 수행의 방침으로 제시하여 유명해진 말인데, 원래는 당나라 때 하택신회(荷澤神會, 670~762)가 한 말입니다. 우리의 깨달음은 순간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도, 우리에게는 몸이 기억하여 관성적으로 행하는 습관이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계속 수행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성철스님’이라고 부르는 퇴옹성철(退翁性徹, 1912~1993)은 이에 반대하여 돈오돈수(깨달음을 얻었으면 수행도 끝나야 한다)를 주장하기도 하였습니다만, 이것은 엘리트의 사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끊임없이 재산으로, 학력으로, 학벌로, 장애 여부로, 출신지로, 거주지로, 성별로, 국적으로, 인종으로, 외모로, 옷차림으로, 자기도 모르는 차별의 마음을 가지고 상대를 대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끝없는 수행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스스로 자신의 마음과 인격이 건강해지기를 쉬지 않아야 합니다. 알았다고 해서 끝나는 것은 없습니다. 게다가, 같은 한국인 안에서도 여성과 노동자가 책임을 지고 있는 의무에 비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외국에서는 상당히 널리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성별, 학력, 재산, 출신지, 거주지, 외모, 장애, 연령, 성적 지향, 성 정체성, 종교 등의 이유로 같은 한국인끼리도 차별 발언을 하고 이것을 폄하하는 단어가 하나하나 존재한다는 것도 많은 외국인들이 놀라는 부분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나라들에 차별이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렇게까지 다양한지, 특히나 ‘~충蟲’이라는 표현에 깜짝 놀라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영문판 위키피디아에는 “남한의 인종차별”과 “한국의 민족주의”라는 항목이 있기도 합니다.) 말로만 세계화라고 하지 마시고 물론, 한국인을 비록한 동북아인에 대한 백인들의 차별은 진실로 그들의 수치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Korean Times.2016.08.14. 리오 하계 올림픽 중계에 잡힌 눈을 찢는 제스쳐. ) (BBC.2017.07.24. 한국 댄스그룹 KARD의 등장에 브라질 진행자가 보인 눈을 찢는 제스쳐.) (개인적으로 그다지 좋아하는 말은 아니지만) 세간의 입에서는 ‘우리는 어느 한쪽으로 보면 모두가 약자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자주 오르내립니다. 기왕 한류가 이렇게까지 크게 세계를 휩쓸고 있다면, 한국이 지난 수백년 동안 인종차별에 앞장서온 백인들에게, 세상의 차별 받는 이들과 연대하는 단결의 정신을 발휘하여, 차별 받는 사람으로서 보일 수 있는 모범을 보이는 것은 어떨까 바라봅니다. 우리 안에 둥지를 틀고 있는 인종차별과 성차별, 그리고 계급차별과 학력차별이 심각하게 겉으로 드러나는 현재의 상태에 대해서도 그와 마찬가지로 정의를 위한 목소리를 내보기를, 저는 바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차별금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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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은 나랏돈으로 해야 합니다
- 어떤 이는 ‘너는 남자면서 왜 여성주의를 입에 올리느냐?’라 하실 수도 있다. 하지만 ‘여성가족부 폐지를 외치는 여성가족부 장관’도 있지 않은가? 그에 비하면야! - 버터나이프크루 정상화를 위해 함께 해주세요 전화 한 통으로 사라진 청년 성평등 정책을 돌려주세요! 버터나이프크루 정상화를 위해 #여기에도_성평등 페미니즘(feminism)은 여성주의(女性主義)라고 번역합니다. 페미니즘이 시작될 당시나 지금이나, 이 사상이 성별 격차의 해소와 여성의 권리 보호를 목적으로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여성주의가 여성을 중심에 두고, 여성이 생각의 대상이자 주체가 된다는 점은 두루 아는 사실이지만, 여성주의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여성들의 경험을 중심으로 하여 여성에 대해 묻고 생각하는 일은, 결국 인간에 대해 묻고 생각하는 일로 귀결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안다(知)’와 ‘배운다(學)’ 우리가 안다(知)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안다는 것은 존재 혹은 사건에 대하여 어떻게 보고, 어떻게 듣고, 어떻게 판단하고, 어떻게 생각하는가, 더 나아가서 존재/사건-판단-생각을 각자의 안에서 얼마나 깊이 체계화하는가에 대한 문제까지 포함하는, 상당히 복잡한 심리 활동입니다. 보고 듣는 것, 판단하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지금 어디를 밟고 서 있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멀리까지 보이고, 깊은 곳에 들어가면 한치 앞도 내다보기 어렵습니다. 같은 말이라도 어떨 때엔 아무 일 없이 넘어가지만, 어떨 때는 고깝게 들립니다. 수치를 통해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고차원적인 지식이라고 해도 이런 일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안다는 것은, 이 행위의 주체가 어떤 사회적 조건과 상황 속에 있는지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과 자전을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평소에 공전과 자전을 늘 의식하며 살지는 않지요.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잠들며 시간에 맞춰 일을 하고 밥을 먹는 일에 있어, 공전과 자전을 알고 모르고는 아무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로지 해가 동쪽으로 떠서 서쪽으로 지고, 해가 질 무렵이면 동쪽에서 달이 뜨고 새벽이 온다는 것을 알 뿐입니다. 누군가가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고 말한다고 해서, 그것을 두고 ‘이보슈! 틀린 소리를 하는구려!’, ‘해가 뜨고 지는 게 아니라 지구가 도는 거라오! 당신은 그것도 모릅니까?’ 라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입장에서 모두가 그것을 그렇게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고, 이것을 통해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지구가 돈다는 것도 사실이고,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결국 어느 입장에서 보는가의 문제인 것이지요. 우리는 앎을 얻는 행위를 배운다(學)고 표현합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보자면, 배운다는 것은, 나의 안다가 어느 위치에서 이루어지고 있느냐를 깨닫는 것이고, 그 깨달음을 통해 나의 안다는 어디까지나 수많은 인과관계 중 일부분에 해당한다고 하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러한 안다의 문제를 우리 사회의 영역으로 한번 돌려서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배운다는 것은 우리의 안다가 우리 사회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닫고, 나의 안다와 다른 이의 안다가 어떤 사회적 조건 속에서 형성된 것인지를 파악하는 것이며, 이러한 사태를 가능하게 하는 총체적인 구조가 있는 것은 아닌지를 끊임없이 뒤돌아보며 고민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실로 안다를 하는 이는 끊임없이 뒤돌아보고 자신의 생각을 반성하고 의심하여 자신의 안다가 일부분에 불과함을 알고 겸손하게 행동하지만, 안다를 못 하는 이는 근거 없는 뜬소문조차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그것을 전하며 자신은 다 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안다에 사회적 조건이나 인과관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거나 그런 것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작게는 그 사람이 잘못된 안다를 갖고 있다 할 수 있을 것이고, 크게는 사회 정의, 인간 윤리에 어긋나는 것이며, 매우 오만한 태도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여성주의란 이런 맥락 속에서 탄생한 중요한 사상입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여성주의의 중요한 구호 중 하나로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The personal is political.)’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제가 앞에서 말한 안다와 배운다의 문제를 그대로 담고 있는 중요한 말입니다. 이 구호를 조금 더 풀이하자면, 내가 살며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나의 세계, 어려운 말로 하면 인식을 통해 이루어진 개인적인 경험이 사회적인 것과 엄격하게 분리될 수 없으므로, 이런 차원에서 개인의 경험과 사회 구조를 따로, 또 같이 연결하고 분석하면서, 우리가 개인적인 상황에서 얻은 깨달음을 가능하게 한, 각각의 사회 구성원들이 처해있는 사회적인 조건을 살피고, 지금보다 더 나은 새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여성의 활동 영역을 넓혀가는 것은 물론, 여성들이 다양한 활동을 경험하는 것 그 자체가, 여성 당사자들 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를 위해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우리는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상식(보편적인 안다)이 강제적이거나 폭력적인 부분은 없었는지, 혹은 우리의 앎과 깨달음을 새롭게 확장할 수 있는지 되돌아볼 수 있게 됩니다. 누군가의 눈에는 그깟 공놀이로 보일 지도 모르지만, 생각해보면 한국 여성들은 공놀이를 해온 역사가 별로 없습니다. 김연경의 활약에 한국 국민들 중에서도 특히 여성들에게 왜 더 환호를 받는지, SBS의 <골때리는 그녀들>이 왜 인기가 있는 것인지 어떤 사람들은 끝까지 모를 것입니다. 그저 여성들이 활약하고 있으니까 박수를 치나보다 정도로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만, 생각이 깊은 사람들은 알 것입니다. 저 여성들의 공놀이가 우리 사회에 새로운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런 점에서 지난 3년여간 시행되어 온 버터나이프크루는 상당히 중요한 사업이었습니다. 성평등이라는 큰 의제 아래에서 복지와 안전 같은 제도적인 문제부터 건강과 외모 지상주의까지 다양한 문제를 논의하고 결과물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 중에는 괄목한 만한 성과도 분명 있었고, 또 설사 그러한 성과가 없었다고 해도, 그 활동 자체가 우리 사회에서 매우 가치있는 일이라는 것은 앞서 말했듯이 분명한 것입니다. 제도라는 말이 가리고 있는 것 우리 헌법은 제34조에서 여성의 권익을 위해 국가가 노력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무엇인가? 페미니즘은 나랏돈으로 해야 하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국가가 여성의 권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법과 제도를 통해 교육, 노동 등에 대하여 동등한 기회를 주는 것만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도적 기회 보장이 100% 이루어진다고 해도, 그것이 실제 평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경우 여성에 대한 차별은 제도 그 자체의 문제보다도 가정(家庭)을 비롯한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벌어지는 불평등함에서 기인합니다. 성별 그 자체가 여성이라서, 외모 때문에, 재산 때문에, 교육수준 때문에, 출신지와 거주지 때문에,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 때문에! 우리는 이미 많이 봐왔습니다. 법과 제도가 현실에서 적용될 때, 관례, 관행, 판례 등을 이유로 과거의 생각을 지금의 제도에 이입하고 있는 것을! 또, 많은 경우에 동등한 기회를 준다고 하는 것도 장애가 없고 재산이 어느 정도 있는 이성애자 남성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제도를 기반으로 논의가 진행됩니다. 여성들이 경험하는 다양한 불평등을 남성들은 경험하지 않습니다. 당장, 임신, 출산, 육아를 경험하는 남성이 얼마나 될까요?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문제에 대해서도, 한국의 남자들이 이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은 상당히 최근의 일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법이나 제도만으로 평등을 실현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페미니즘을 나랏돈으로 해야하는, 국가가 여성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얼마전인 2022년 8월 25일, BBC에서는 <남한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을 다시 기록하였다 South Korea records world's lowest fertility rate again>라는 기사를 냈습니다. (BBC.2022.08.25.) 이 기사의 마지막은 이렇습니다. 한국 여성들은 교육 수준이 높지만, 아직 일터에서의 평등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은 다른 부유한 나라와 비교했을 때, 성별 임금 격차가 가장 높다. 한국에서 대부분의 집안일과 양육은 아직도 여성에게 주어지고 있으며, 여성들이 아이를 낳은 후 일을 중단하거나 경력이 정체되는 일은 흔하게 일어난다. 본질적으로 말하자면, 많은 여성들이 아직도 직업과 가정 사이에서의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점점 더 자신들의 경력을 희생하기를 원치 않는다고 결심하고 있다. 한 여성이 나에게 ‘우리는 아기 낳기를 파업합니다’라고 말한 것 처럼. Women in South Korea are highly educated, yet far from equal in the workplace. The country has the highest gender pay gap of any rich country. Most of the housework and childcare in South Korea still falls to women and it is common for women to stop work after having children or for their careers to stagnate. Essentially, many women here are still forced to choose between having a career and having a family. Increasingly they are deciding they don't want to sacrifice their careers. As one woman put it to me: "we are on a baby-making strike". 저는 점점 기성세대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산처럼 쌓여있는 세상의 문젯거리들, 지금의 저와 제 주변 사람들을 괴롭게 하는 여러 문젯거리들을 보며, 이것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이렇게 20~30년, 아니 10년, 5년이 흘러버린다면, 저의 다음 세대들이 어떤 세상을 살아가게 될지 상상하곤 합니다.  지금 이런 문제들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몇몇 사람들이 페미니즘은 개인돈으로 하라는 둥, 나랏돈으로 특정 이념을 부추긴다는 둥 하는 것을 보며 통탄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진실된 앎을 얻어 자신의 앎이 얼마나 부족했는지 알고 겸손한 태도로 세상일을 대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으나, 만약 시중에 아무런 근거 없이 떠드는 사람들의 말을 받아 전하면서 자신은 그것으로도 충분히 알았다고 생각한다면 저는 더이상 할 수 있는 말이 없습니다. 버터나이프크루 정상화를 위해 함께 해주세요 전화 한 통으로 사라진 청년 성평등 정책을 돌려주세요! 버터나이프크루 정상화를 위해 #여기에도_성평등
성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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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가족부 김현숙 장관님께 - 최근의 결정에 대하여 -
아직 직접 뵌 적은 없지만 장관님의 성함이나 이력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뉴스를 통해 접한 바가 있습니다. 제가 일국의 장관을 상대로 글을 쓰게 될 줄은 생각도 못한 것이지만, 김현숙 장관님의 최근 결정에 대하여 나름대로 생각한 바가 있어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버터나이프크루 2019년부터 여성가족부에서는 버터나이프크루라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성평등이라는 큰 의제 아래에서 복지와 안전부터 건강과 외모지상주의까지 다양한 문제를 논의하고 결과물을 만들어 온 버터나이프크루는 4기 출범식을 하고 단 5일만에 세금 도둑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강원도 강릉)의 전화 한통에 3년 가까이 진행되어온 정부 사업이 뒤집어져 버린 것입니다. 권 의원이 장관님께 전화를 했고, 그 전화 이후 여성가족부가 사업 전면 재검토 결정을 내리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장관님은 이러한 사태에 아무 문제점을 느끼지 못하셨습니까?  다시 장관님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2022년 8월 18일,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님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 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여가부를 폐지하는데 국회와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가능한가"라고 묻자, "정부조직법을 국회에 내면 국회에서 논의할 것"이라고 답하셨고, "부처를 폐지하겠다는 장관과 무슨 정책을 논하나. 여가부 폐지를 위해 장관에 임명됐나?"라는 말을 듣자 장관님은 "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MBC.2022.08.18.)  버터나이프크루에 대해서도 장관님은 “여가부가 아닌 위탁운영사 ‘빠띠’가 먼저 중단 통보를 했다”,  “해당 사업이 부적절해서 폐지한다”, “국민에 대한 사과는 필요하나, 참가자에 대한 사과는 할 수 없다.”라고 말씀하시며 여성가족부가 먼저 사업을 중단하겠다고 한 점을 무시하고, “(참가팀은) 내가 학교에서 본 평범한 2030세대와는 차이가 있었다”고 말씀하시며 (대한민국의 모든 2030을 다 만나보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청년을, 시민을 갈라치는 발언을 하셨습니다. (한겨레.2022.08.19.)  대한민국은 삼권분립의 기초 아래에 세워진 나라입니다. 김현숙 장관님, 당신은 행정부의 엄연한 한 축이며, 헌법이 국가의 의무로 강조하고 있는 여성의 인권을 위해 존재하는 부서의 수장입니다. 그런데  국회의원 한 사람의 전화 한 통에 이미 출범식까지 마친 정책 사업을 하루 아침에 없었던 일로 만들 수 있습니까? 장관님은 행정부의 일축을 담당하고 있는 장관의 직을 맡았다는 자존심도 없는 것입니까? 이것은 장관님 개인의 문제로 끝나는 일이 아닙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모독이고 대한민국 국민에게 모멸감을 주는 행위입니다. 역사에는 목적도 없고 정해진 방향도 없습니다. 수많은 인과관계의 조합 속에서 인간은 그 결과의 좋고나쁨에 관계없이, 늘 새로운 방향을 창조해 왔습니다. 여성가족부를 없애기 위해 장관이 되셨다는 장관님의 말 한 마디가 훗날 역사에 어떻게 영향을 줄 지, 지금 당장이야 알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각 인간은 모두 그 인과관계에 대하여 일정부분 책임을 져야 합니다. 장관님 같이 중요한 결정을 하시는 분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정부의 정책 사업을 혈세 낭비라 낙인 찍고서 삼권분립이라는 가치까지 짓밟으며 정책을 없애라고 장관에게 전화를 거는 국회의원의 말 한 마디에, 장관님의 승인 하에 출범식까지 마친, 그것도 3년이나 지속되어 온 사업을 없었던 일처럼 만들어 버리는 장관님의 행동은 한국의 정치를 넘어, 한국 사회, 더 나아가 한국 역사에 어떤 영향을 줄까, 장관님의 이름이 후에 어떻게 기록될까 생각해 보셨는지요? 장관님의 시민단체에 대한 시각에 우려를 표합니다 또, 장관님께서는 과거에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 고용복지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되시고, 2015년 8월 고용부 차관 직속기구로 설치한 노동시장개혁 상황실이라는 비선 기구를 실질적으로 지휘하셨습니다. 장관님은 이 당시 박근혜 정권의 소위 노동개혁을 홍보하기도 하였고, 친정부 보수 시민단체의 시위를 직접 기획하고 지시하기도 하셨습니다. 이 과정에서 88억 9,000만 원의 예산을 사용하셨는데, 이는 고용부 소관 예산과 고용보험기금을 불법 전용한 것이었습니다. (한겨레.2022.03.17.) 검찰이 비록 이 사건을 무혐의로 처리했지만, 저는 만약 이 일이 사실이라면 장관님께서 시민단체를 보는 시각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민단체를 시민의 목소리를 주체적으로 제시하는 단체가 아니라 막연하게 모임 정도로 생각하시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만약 이러한 생각을 하고 계신다면 장관님께서 여성가족부가 아니라 그 어떤 업무를 맡으시더라도 결국 시민단체에 대해 똑같은 태도, 똑같은 결정을 보여 주시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듭니다.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 ‘활동결과보고서(국정과제1 적폐의 철저하고 완전한 청산)’에서 발췌. 권인숙 의원실 제공 경향신문.2022.04.27.> 장관님의 재고를 부탁드립니다 장관님께 부탁드립니다. 부디 당신의 말 한 마디가 우리 정치와 사회, 더 나아가 우리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어렵게 피(血)로 만들어온 인권의 역사와 그 가치를 담은 정부 부서, 그리고 권력의 분립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가치를 모욕하고 뒤흔드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 주십시오. 그리고 장관님께서 갖고 계신 시민단체에 대한 가치관도 재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시민단체란 다양한 형태를 통해 시민이 중심이 되어 사회의 여러 문제를 해결코자 모인 조직이지, 목적 없이 그냥 모이는 모임도 아니고, 정부가 마음대로 지시할 수 있는 대상도 아닙니다. 장관님께서는 버터나이프크루가 지금까지 해왔던 일에 대해서 다시 검토해 주시고, 행정부의 한 축으로서 모범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농어촌 수탈형 경제 체제를 극복합시다.
[경자유전] 대한민국 헌법 제121조 ①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 ②농업생산성의 제고와 농지의 합리적인 이용을 위하거나 불가피한 사정으로 발생하는 농지의 임대차와 위탁경영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인정된다. 제123조 ①국가는 농업 및 어업을 보호ㆍ육성하기 위하여 농ㆍ어촌종합개발과 그 지원등 필요한 계획을 수립ㆍ시행하여야 한다. ②국가는 지역간의 균형있는 발전을 위하여 지역경제를 육성할 의무를 진다. ③국가는 중소기업을 보호ㆍ육성하여야 한다. ④국가는 농수산물의 수급균형과 유통구조의 개선에 노력하여 가격안정을 도모함으로써 농ㆍ어민의 이익을 보호한다. ⑤국가는 농ㆍ어민과 중소기업의 자조조직을 육성하여야 하며, 그 자율적 활동과 발전을 보장한다. 곡물 가격 급상승, 식량 안보, 농어촌 고령화, 마을의 소멸, 서울 공화국. 이제는 지겨울 정도로 많이 들으신 말들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정희 정권 이래로 한국 경제는 농어촌에서 식량과 자본, 환경과 노동력을 도시에 그대로 떠서 가져오는 정책을 취하고 있습니다. 도시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지방의 모든 것을 쭉쭉 빨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위에서 보듯, 농어촌 문제의 해결은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사항입니다. 다소 과장된 말로 들리시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과격하게 말하자면, 농촌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정권은 모두 위헌입니다. 주식 문제, 금융 문제를 다루는 공력의 반의 반이라도 농촌에 관심을 가집시다. 도시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도시란 자기 스스로 식량을 만들지 못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고, 인간이란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면 죽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도시인들은 농수산물과 바꿀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 농어촌 사람들과 교환해야 합니다. 그것이 도시의 본질입니다. 도시 사람들은 농어촌으로부터 식량을 공급 받지 못하면 굶어 죽어야 합니다. 지금 한국의 도시, 특히 서울 사람들은 농어촌에 정당한 대가를 주고 식량을 받아왔는가에 대해 반성해야 합니다. 이것을 어줍지도 않은 수요공급의 법칙으로만 설명하려 하는 것은 본질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현대 주류 경제학에서 말하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은 계산의 편의를 위해 항상 시장을 참여자 모두가 비슷한 조건을 가진, 모두가 시장 앞에서 자유롭고 평등한 조건을 가진, 완전경쟁이 가능한 곳으로 가정하여 설명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모두가 알다시피 독점 아니면 과점입니다. 자유롭지도 평등하지도 않습니다. 즉, 완전경쟁시장이라는 말 자체가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경제학을 처음 배울 때, 수요-공급의 법칙을 설명하면서 항상 이 전제를 먼저 설명합니다. 이런 기본적인 것을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시장은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며 정부가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는 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기본 개념을 몰라서 그러는 것일까요, 아니면 일부러 모르는 척을 하는 것일까요? 알면서 모르는 척을 하는 것이라면 간사한 것이고, 몰라서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이라면 반성하고 배워야 합니다. 인간과 사회의 기본은 몸이다 많은 사람들이 주식과 코인에 빠져서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는 안 먹으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기본은 몸입니다. 우리는 몸을 가지고 태어나 몸으로 세상과 교류하며 몸으로 자신의 생각을 드러냅니다. 어떤 의미에서 정신 노동이라는 것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정신도 몸을 통래 드러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글을 손가락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눈으로 보고 계시고요. 음식의 질이 좋거나 나쁘거나, 우리는 음식을 안 먹으면 죽습니다. 환경문제, 식량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식량 안보, 식량의 전략성도 중요한 이야기 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우리는 안 먹으면 죽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며, 이러한 차원에서 보면 인간의 역사에서 도시가 탄생했다는 것, 식량을 자기 손을 만들지 않는 사람들이 탄생했다는 것이야말로 상당히 특이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온 국민이 다시 도시를 버리고 농사를 짓고 고깃배를 타자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도시 중심으로 만들어져 온 한국 문명의 역사를 돌아보며, 착취의 고리를 끊고, 함께 살 수 있는 방법, 도시가 다 빨아들여 왔던 부를 농촌에 공정하게 재분배하는 방법에 대해 다함께 고민하자는 것입니다. 농어촌 문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농어촌의 문제, 둘째는 농어민의 문제, 셋째는 농어업의 문제입니다. 지금 이 세 가지를 따로 떼어서 개념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만, 사실 이 세 가지는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문제입니다. 서울에 있는 대기업 하나가 그냥 시골에 띡 가버리면 그걸로 바로 인구 문제가 해결될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 예를 멀리서 찾으실 것 없습니다. 세종시를 보십시오.  인구 불균형을 해소하려면 농어업이 살아야 합니다. 농어업이 살고 농어촌이 살아야 합니다. 농어촌이 살려면 농어촌에 사는 사람이 잘살 수 있어야 합니다. 농어민이 아니어도 농어촌에 사는 모두가 행복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도시의 행복은 커녕, 도시 문명 자체가 무너질 지도 모릅니다. 이에 다음과 같은 사항을 함께 토론하길 원합니다. 첫째, 경자유전의 원칙을 되살릴 방법을 토론하길 원합니다. 농사 짓는 자가 땅을 가진다는 원칙이 깨지고, 부재지주(不在地主), 그 지역에 살지 않는 지주들이 늘어나면서 농지도 수익을 위한 매매 상품이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은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고, 필요하다면 강제적인 방법이라도 동원해야 합니다. 식량 문제를 두고 안보와 전략을 이야기하곤 합니다. 물론 틀린 이야기는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전에 식량은 생명이고 환경입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소작을 주거나 수익을 위해 사고 파는 땅에서는, 그 누가 살아도, 그 땅에서 농사를 짓지 않는다고 해도, 그 누구도 행복해질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둘째, 우리 농업이 앞으로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지 토론하길 원합니다. 개인, 혹은 가구 단위의 소농 중심의 농업을 택하여 농지를 가지고 자급자족과 수익 창출이 가능하게 해야 하는지,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 사기업 단위의 대농 중심의 농업을 택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논의하여야 합니다. 지역에 따라, 생산물에 따라 어떤 방식을 택하는 것이 유리한지, 전국 균형 발전이나 식량 안보 같은 거시적인 차원에서도 생각해보고 그리고 농업에 참여하고 농어촌에 사는 주체들의 행복의 차원에서도 생각하면서, 무엇이 더 좋은가, 혹은 옳은가를 논의해야 합니다. 셋째, 농어업은 물론, 농어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지역 주민들을 참여하게 하길 원합니다. 도시 쓰레기 처리 문제도, 재생 에너지 산업 문제도, 지역 주민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적극적으로 반영되어야 합니다. 저는 원자력 발전에서 벗어나 재생 에너지 중심으로 가는 것에 적극 동의하며,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재생 에너지 역시 도시에서 사용하는 전력량을 중심으로, 산업용 전기 중심으로 토론한다면 이것 역시 약탈이 아니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전력의 민영화를 막고 국가가 직접 나서서 재생 에너지 산업이 이루어지는 지역 주민들에게 그 이득이 돌아가는 방향으로 탈원전 사업을 설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친환경 재생 에너지 사업에 발전소가 지어질지도 모르는 농어촌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적극적으로 반영되기를 바랍니다. 넷째, 정책을 결정하는 관료, 법안을 입안하는 정부와 국회가 농수산물의 수입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깨닫기 바랍니다. 특정 산업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을 우리는 흔히 전문가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농어촌 전문가에는 관료와 정치인, 학자만 있고 농어민이 빠져 있습니다. 농어업에 오래 종사한 사람들을 전문가로 대우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경청하기 바랍니다. 다소 과격하게 이야기했습니다만, 이 문제에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나오기를 바랍니다. 정치인과 관료, 학자 중심의 이야기에서 모든 사람이 이 문제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보고 많은 목소리가 나와주기를 바랍니다. 특히 농어촌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기다립니다. 이 글을 보고 비판하시는 많은 분들이 나와 주기시를 바랍니다. 혹 명쾌한 정답을 얻지 못한다고 해도, 많은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를 기원합니다. 
지방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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갭투자를 막을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합시다!
투자(投資)와 투기(投機)의 차이는 뭘까? 한자만 보자면, 투(投)는 던진다는 뜻이고, 자(資)는 자본, 기(機)는 기회를 뜻한다. 자본을 던지면 투자고 기회를 던지면 투기인 것일까?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자.  투자(投資) [명사]    1 이익을 얻기 위하여 어떤 일이나 사업에 자본을 대거나 시간이나 정성을 쏟음.   2 『경제』 이익을 얻기 위하여 주권, 채권 따위를 구입하는 데 자금을 돌리는 일. 투기(投機) [명사]    1 기회를 틈타 큰 이익을 보려고 함. 또는 그 일.   2 시세 변동을 예상하여 차익을 얻기 위하여 하는 매매 거래. 시간이나 정성을 쏟아서 이익을 보면 투자고, 기회를 틈 타 이익을 보면 투기인 것일까? 도무지 감이 안 온다. 그래서 이 말들이 만들어진 일본의 설명을 보려고 하였다. 이와나미 출판에서 만든 『국어사전』을 찾아보자. 투자(投資, 토-시) [명사, 자동사]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사업 등에 자금을 내는 것. 비유적으로, 장래의 이익을 위해 다액의 금전을 투입하는 것. 투기(投機, 토-키)   1 불확실하지만 맞기만 하면 이익이 큰 일을 노리고 하는 행위   2 시가의 단기간 변동 수익만을 노리고 행하는 매매거래 두 나라의 설명을 종합해보면, 기간이 좀 길면 투자고, 기간이 짧으면 투기가 된다 정도로 해석해도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결국 투자와 투기는 기간의 차이가 있을 뿐,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 되는 걸까?  자, 나는 왜 이렇게 긴 이야기를 꺼냈을까? 갭투자라는 말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갭투자란 부동산을 구매할 때 전세 세입자를 먼저 구해 전세금을 받은 후, 부동산 가격에서 전세금을 뺀 나머지 차액만 자기 돈을 내거나, 대출을 받아 지불하여 부동산을 구매하는 것을 말한다. 혹시 나이가 있는 분이라면 ‘전세 끼고 산다’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부동산, 특히 주택 가격이 오르면서 전세값이 같이 올라 부동산 매매가와 전세가 사이의 차이가 적어지자 ‘전세 끼고 사는 것’이 갭투자라는 이름으로 화려하게 등장한 것이다. 신혼부부들도 신혼부부대출을 받아서 갭투자를 하고 이것을 자랑하며 책을 내기도 하고, 박 아무개라는 사람은 300채 넘는 집을 갭투자로 구매하고는 자기 이름의 영문 머릿글자를 딴 회사를 만든 후, 갭투자를 하라고 강연을 하고 다니기도 한다. 저렇게 집을 사들이다가 어느 순간 집값이 떨어지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전세금을 돌려줄 수 없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집을 사들인 사람이 망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수많은 세입자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 2018년 3월에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서 갭투자를 하다가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게 되자 아파트 48채가 한꺼번에 경매로 나오는 일이 있었다. (한경.2018.03.09.) 2020년 11월에는 대구에서 갭투자를 하다가 전세 보증금 50억 원을 들고 달아난 사람이 화제가 되었다. (중앙일보.2020.11.21.) 2021년 5월에는 서울시 화곡동에서 세 모녀가 갭투자로 500채를 사들이고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은 사건이 있었다. (MBC.2021.05.29.)  어떤 이들은 투자가 자본주의의 꽃이라고도 말하지만, 나는 감히 이를 도박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자본주의가 허락한 도박이라고 말하고 싶다. 도박이란 무엇인가? 노동을 해서 돈을 벌지 않고, 돈을 걸고 이익을 얻으려는 행위가 모두 도박이다. 차라리 복권에 10억을 썼다면, 카지노에서 10억을 썼다면 자기 혼자 망하고 그만이다. 이제 막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는 중소기업에 투자를 하다 망하면 마음은 쓰라리겠지만 누군가의 시작을 위해 희생했다는 자기 위로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갭투자라는 도박은 부동산이 카드고 화투이며 마작이다. 그 중에서도 대부분은 빌라나 오피스텔 같이, 이제 막 새롭게 사회생활을 하며 독립한 청년들이나 큰 부를 손에 잡아보지 못하고 평생 묵묵히 생계를 위해 살아온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남의 인생을 저당 잡고 도박을 하는 사람들이 자랑스럽게 책을 내고 강연을 하면서, 가난은 죄라고, 똑똑하지 못해서 가난한 것이라고 말하고 다닌다. 정장 입은 강도들이 너무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돌아다닌다.  갭투자라는 요물을 잡기 위해 나름대로 정부도 노력을 하긴 하였다. 여러 채를 보유한 사람에게는 전세 대출을 안 해준다던지, 시가 9억 원이 넘는 집에 대해서는 대출을 안 해준다던지. 이러한 정책들이 나름대로 효과를 보긴 한 것 같지만 그래도 갭투자 자체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어떤 이에게는 집이 과시와 수입이지만, 어떤 이들에게 집은 빌려서 쓰고 있는 생필품이다. 2020년 기준, 한국의 자가보유율은 60.6%다. 자기 집에 사는 가구는 57.9%다. (대한민국 정책 브리핑) 39.4%는 자기 집이 없다. 한국에 100 가족이 산다고 치면, 서른 아홉 가족은 자기 집이 없다는 소리다. 2020년 기준, 주택을 소유한 사람은 1,469만 7천 명이다. 이 중 한 채만 소유한 사람은 1,237만 7천 명이다. 2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183만 명(12.5%), 3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29만 7천 명(2.0%), 4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7만 6천 명(0.5%), 5채 이상 가지고 있는 사람은 11만 7천 명(0.8%)이다. 2천 가구는 51채 이상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이에게는 집이 과시와 수익의 수단이겠지만, 전국의 39% 가족에게는 빌려서 쓰는 생필품이다. 그 생필품으로 장난을 치는 이들을 엄하게 규제하길 바란다. 혹자는 시장의 규칙을 운운하며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죽을 때까지 작게라도 자기 집 한 칸을 마련하지 못하고 평생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남의 집 살이를 할 때, 누군가는 그것으로 투자라는 이름의 투기를 하면서, 빌라 여러 채를 손 안에 넣고 만지작 거리며 스톱을 할까 고를 할까 고민하고 있다면 그것을 올바른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인간이 만든 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인간이다. 인간은 자신의 인생을 자기 힘으로 견뎌나갈 수 있는 힘을 가진 현명한 동물이라고 생각한다. 권력자들이 만든 지극히 불합리한 제도를 자연의 불가항력인 것처럼 인정하는 것은 비굴하고 무식한 노예의 사상이고 인간과 인간 사회의 발전을 막는 위험한 사상이다. 나는 갭투자를 비롯한 부동산 투기 세력의 억제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위정자(爲政者)들의 의향에 따라서는 당장 내일부터도 가능한 것이 사실인 것이다. 우리는 보았지 않았는가? 금융실명제가 실시되던 그 날을. 혹 이 일에 몇 년이 걸린다 하여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고, 필경 보람이 있는 일이다. 어떤 이는 갭투자는 소수의 나쁜 ‘일부’가 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것처럼 너무나 명백하게 유해한 ‘일부’라면 우리는 이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한쪽에는 너무 큰 피해를 보는 ‘일부’가 존재하니까.  마지막으로 조선 숙종 3년(1677) 12월, 윤휴(尹鑴)의 상소문을 인용하고자 한다. 기존의 군적에서 잘못 올라가 있는 것들을 전부 말소하고 신분과 지역에 상관 없이 1년에 군포 1필을 내게 하는 호포법의 시행을 주장하며 한 말이다. 죽은 사람과 어린 아이의 살가죽을 벗겨내고 골수를 빠개버리는 괴로운 정치로 인해 머리를 쥐어싸고 가슴을 두드리는 근심과 병, 펑펑 노는 선비와 운 좋은 백성이 의무를 피하고 자기가 편한 길로 가고자 하여 생기는 원망, 이 둘 중 무엇이 더 큰 것입니까? 집이 있고 건강한 몸이 있으면 세금을 내고 특산품을 내는 것과 이미 죽은 자나 어린 아이에게 부역을 나가게 하는 것, 둘 중 무엇이 더 나은 것입니까? 신은 모르겠습니다. 호포법의 시행이 명분 없는 것입니까, 호포법 반대가 명분 없는 것입니까? 호포법의 시행이 백성의 원망이 되겠습니까, 호포법의 반대가 백성의 원망이 되겠습니까? 민심의 향배나 천명의 거취는 이제 약하고 힘없는 백성의 평안과 불안에 달린 것이 아니라, 운 좋은 백성과 부자들의 편리와 불편에 달린 것이 되는 것입니까? 白骨、兒弱剝膚搥髓之厲政, 疾首叩胸之愁毒, 孰與遊士、倖民避役自便者之怨咨也? 有戶有身者, 有庸有調, 又孰與旣骨、黃口之出役乎? 臣不知。此爲無名乎。彼爲無名乎。此爲民怨乎? 彼爲民怨乎? 民心向背、天命去就, 將不在於小民之安不安, 而乃在於倖民豪右之便不便乎?
경제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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