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9 이태원 참사

이태원 참사 특별법 거부권 행사에 대해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끝내 윤석열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기사 1 정부는 '참사의 진상 규명이 이미 이뤄졌고, 조사위원회 권한이 너무 크다. 따라서 특별법은 필요하지도 않고, 시행돼서도 안 된다'고 밝혔습니다.대신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과 보상을 확대하는 등 지원책을 내놓았습니다. 거부권 행사 이유:  1. 서울경찰청장을 포함해 관련자 23명을 재판에 넘기는 등, 특별법의 목적인 참사 진상 규명이 이미 이뤄졌다고 밝혔습니다. 2. 조사위원회의 권한이 너무 커서 국민 기본권과 사법·행정부 기능 등이 침해 3. 조사위 구성에 공정성을 기대하기 어려움  4. 국가 예산 낭비가 우려 국민의 힘은 입법 폭주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유가족들과 야당은 격렬하게 반발했습니다.  이에 대해 인터넷에서 반응이 나누어지고 있는 것이 목격되어 업로드하게 되었습니다.  특별법 거부권은 부당합니다. 1. 꼬리 자르기 식 처벌은 절대로 진상규명으로 볼 수 없습니다.  2. 유가족들이 원하는 것은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이지, 보상금 및 돈이 아닙니다. 특히, 유가족들이 보상금을 받을 경우, 정부가 '돈으로 유가족들을 입막음'할 우려가 높습니다.  3. 외국 언론들도 정부의 책임을 조명했으며, 특히 이번 이태원 참사에서는 외국인들도 사망했습니다. 특히, 이번 참사로 가장 많은 자국민을 잃은 이란 (5명)은 '한국 정부가 관리 방법을 알았다면, (핼러윈) 행사 관리를 했어야 했다'고 비판했습니다.  뉴스타파는 유일하게 이란 유가족들과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이란 유가족들은 한국 정부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고 비탄에 빠진 모습을 보였습니다.  4. 특별법을 반대한다면 처음부터 진상규명을 하는 태도와 자세를 보였어야합니다.  특별법 거부권은 정당합니다.  1. 국가유공자들과 군필들도 제대로 된 생계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유가족'이라고 지나친 특혜를 주는 것은 부당합니다.  2. 정부는 모든 사고를 막을 수 있는 신이 아닙니다.  저는 특별법 통과에 찬성하는 입장으로, 국가유공자, 군필 생계 문제는 이번 참사와는 별개라고 반박하고 싶습니다.  또한, 이미 국민의 힘이 현실적으로 특별법을 막는 이유는 입법 폭주가 이유가 아니라, '대통령과 관계자들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유가족들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죠.  관련 기사 시사IN의 기자는 특별권에 거부권을 행사할 이유가 없다고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1. ‘국론을 분열’시키고 ‘재난을 정쟁화’시켰던 것은 특별법이 아니다. 그 특별법에 반대했던 정부·여당 쪽이었다.' 2.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헌법에 반하거나 현저히 불합리하여 공익에 반한다는 근거가 전혀 없다. 대통령 거부권은 법안이 자신의 국정철학에 맞지 않는다고 자의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아니다.' 3. '국민의 생명권과 안전권을 직접적으로 침해한 사건에 대해 국가가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광범위한 책임을 규명하고 진상규명을 하고자 하는 것은 헌법상 국가의 책무에 비춰 너무나 당연하다. 법률안을 거부하여 진상규명을 지연시키고 방해하는 것, 참사로부터 교훈을 얻어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함에도 그 교훈을 역행하는 것이야말로 정부의 책임을 면하고자 재난을 정쟁화하고 국론을 분열시키는 행위다. 그럼에도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대해 함부로 거부권 행사를 주장하고 있다.'  추가 관련 기사 이언주 전 국민의힘 의원은 2022년, 국민의 힘 측에서 실언이 계속 나오자, '기본적으로 인간적인 도리의 문제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이게 국민들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구나 이런 생각이 든다', '정치의 세태인데 지나치게 극렬지지층한테 어필을 하면서 그렇게 어필을 해야 살아남는 구조'라며 국민의 힘이 유족들에 대한 배려보다 지지층에 대한 정치적 메시지를 더 신경쓴다고 우려했습니다.  또한, 이언주 전 국민의힘 의원이 기사 마지막에서 한 말은 끝까지 국민의 힘이 버티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밀리면 끝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유가족들하고의 어떤 관계도 일종의 권력투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굉장히 방어적이고 피해의식이 있는 것 같은 느낌."  특별법 거부권은 정당합니다.  1. 국가유공자들과 군필들도 제대로 된 생계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유가족'이라고 지나친 특혜를 주는 것은 부당합니다.  2. 정부는 모든 사고를 막을 수 있는 신이 아닙니다.  여기서 특별법에 저는 모두가 찬성한다고 생각하기에, 여러분은 인터넷에서 나오는 반대 의견 및 '유가족들이 떼를 쓴다', '목소리만 크면 다 되는 줄 아냐'라는 의견에 어떻게 반박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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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참사특별법’에 마저 거부권 행사할 것인가?
바늘구멍 통과하듯.. 국회 문턱 넘은 특별법 지난 1월 9일, 국회에서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통과되었습니다. 국민의 힘 의원들은 퇴장한 채 야당 의원들만 남아 표결한 결과로 말이죠. 국민의 힘 의원들은 밖에서 규탄대회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대통령실은 이에 대해 여야 합의 없이 야당만 참여한 국회에 ‘유감’이라는 입장을 냈고요.  🗣 임오경 민주당 원내대변인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넘은 지금에서야 특별법안이 통과된 데 대해서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국민 여러분께 송구한 말씀을 드린다.” 🗣 국민의힘은 윤재옥 원내대표 “대한민국의 안전이 아니라 정쟁과 갈등을 선택한 것” 참사 1년 3개월 만에…쪼그라든 ‘이태원 특별법’ 통과 거부권, 특별법 앞길 막을 것인가 수정된 특별법은 국회에서 정부로 이송, 대통령이 공포하면 오는 4월 10일부터 그 효력이 발생합니다. 하지만 법안이 정부로 이송되기 하루 전인 1월 18일, 국민의 힘은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것을 건의했습니다.  국민의힘, '이태원참사 특별법' 거부권 건의‥야당엔 '재협상' 요구 여당이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건의했다는 소식은 1년 넘게 마음 졸이던 유가족들에게 절대 위로는 되지 못했을 겁니다. 유가족들은 머리칼을 내려놓으며 온몸으로 규탄했습니다. 600여 곳의 시민단체는 기자회견을 열고 특별법 특별법 공포를 촉구했습니다. 야당은 여당의 거부권 건의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의견을 내며 소란스럽습니다. 과연 유가족의 숙원이자, 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한 이 법안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까요?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국정을 책임져야 할 정부, 여당이 오히려 거부에 힘을 쏟고 있다. 대체 거부 말고 정부가 한 게 뭔가" 🗣 박정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이태원 참사 진상 밝히고 책임 묻는 게 왜 총선용 정쟁인가", "국민의힘은 더는 국민 눈물이, 분노가 되지 말고 특별법의 즉시 공포를 건의해야 한다." 野 `이태원 특별법 거부권 행사 건의 결정한 與, 비정한 정당` 재난의 정쟁화? 재난은 재난이다 어느 날 갑자기 가족의 죽음을 맞이하는 일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요. “다녀올게”라고 말하고 나간 가족의 시신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뛰는 동안 마음은 이미 여러 번 부서졌을지 모릅니다. 여러 번 압사 사고가 우려된다는 신고에도 불구하고 경찰력은 동원되지 않았고, 하룻밤 사이 159명의 사람이 서울 한복판 길 위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누군가는 “놀러 가서 죽은 것이니 국가 책임이 아니”라고 하지만, 놀러 가서 죽었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놀러 갔다가 죽을 수도 있는 나라가 안전한 나라일까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안전한 나라’입니다. 다리가 끊어지고, 백화점이 무너지고, 배가 가라앉는 참사를 목격하면서 이제는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항상 안전에 대비하지 않으면 참사가 일어날 수 있다는 걸 말입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려면 진상규명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어디에서 물이 새는지 알아야 누수를 고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윤재옥 국민의 힘 원내대표는 이태원참사특별법이 재난을 정쟁화한다고 했지만, 재난은 재난입니다. 뭐든 정쟁의 구실로 삼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해서 만큼은 정부와 국회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 주길 바랍니다. 이번 특별법 시행이 반복되는 사회적 참사를 끊어낼 기회가 될 수 있을 겁니다. 📌10.29 이태원 참사 특별법<10문 10답 기자간담회>  ❓여러분은 이 이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댓글로 의견을 적어주세요!
10.29 이태원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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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기억] 어떤 일이 있었더라도, 잘 지내고 있다고
안방에서 뉴스를 보던 엄마가 알려줬다. “이태원에서 사고 났대” 작년 10월 29일 밤, 나는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보는 그저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엄마로부터 사고 소식을 듣고 무슨 일인가 싶어 뉴스를 찾아보았다. 아마 처음 접한 피해자의 수는 한 자릿수였던 것 같다. 사람이 정말 많이 모였구나 하고는 뉴스를 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뉴스를 다시 틀었을 때 피해자의 수는 두 자릿수로 바뀌어 있었다. 경악스럽다기보다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그제야 실시간 뉴스를 보기 시작했다. 전혀 상상되지 않았다. 실내도 아닌 도로 한복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게. 괜한 걱정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자 주변 지인들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무사한지 확인했다. 다음날 아침, 사망자 수만 세 자리였다. 1년이 지난 지금. 이태원에서의 일을 나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너무 큰 충격이었던 탓인 걸까, 사실 작년 10월 29일을 잘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미디어를 통해 접한 이태원에서의 일은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잘 와닿지 않는 것일 수도 있고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지치고 무기력한 감정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서일 수도 있다. 약 10년 전에 있었던 세월호 참사의 기괴함을 슬픔과 분노로 마음 어딘가에 두고 있다면 이태원 참사는 기괴함만 남아있다. 그 기괴함이 나는 아직 얼떨떨하다. 기괴함과 얼떨떨함 사이 어딘가에서 보라색 리본은 어색하기까지 하다. 나에게 1년 전 이태원 참사는 기괴하고 얼떨떨하며 어색한 지금이다. 나와 같은 사람이 적지 않을 거다. 세월호 참사 이후 일종의 집단적 트라우마로 인한 문제 회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안전한 사회를 위해 많은 이들이 노력하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노력 속에서 다시 나타나는 ‘참사’는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의식하지 못하는 절망감 아닐까. 대체 우리는 이 절망감 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우선, 우리는 마주할 용기가 필요하다. 적어도 나에게는 1년 전 이태원 참사를 회피하지 않고 마주할 용기가 필요하다. 기괴한 일을 마주할 용기, 얼떨떨함에서 벗어날 용기, 어색해하지 않을 용기 모두. 그리고 얼떨떨함으로만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이 아닌 슬픔과 분노의 과정을 거쳐, 떠난 이들을 진심으로 애도하고 안전한 사회가 되길 바라는 이들과 함께이길 바란다. 나는 이 용기를 가지겠다는 다짐부터 시작해야 된다. 1주기 전날, 참사로 친구를 떠나보낸 지인이 유가족으로부터 문자를 받았다고 알려줬다. "잘 지내시나요?" 잘 지내냐고 묻는 말. 내가 가늠할 수 없는 1년이 담긴 안부였다. 어떤 안부는 정말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나에게 그런 안부가 온다면 잘 지낸다고 답하고 싶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안부를 물었을 때도 잘 지낸다고 했으면 좋겠다. 어떤 일이 있었더라도, 잘 지내고 있다고. 
10.29 이태원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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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기억] 삭제된 공간의 기억- 왜 우리는 다시 묻고 있는가
사람들이 모이다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였다. IT 강국답게 소셜 네트워크로 이태원에 모여서 할로윈을 즐기는 것은 한국 전체를 들뜨게 했다. 다중(多衆)이 주는 광장의 에너지를 우린 무려 3년이나 누리지 못했었다. 코로나19가 준 공포, 환자가 죄인처럼 취급되는 두려움 속에서 밖으로 한 발짝 나가기가 어려웠다. 개인정보를 다 포기하면서까지 국가가 국민 안전을 위해 일해 주기를, 동시에 우리 자신이 스스로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다. 그 속에서 손님이 현저히 줄어든 상점들이 하나 둘 문을 닫았고, 사람들은 출근 대신 재택근무로 방에서 화상회의를 했다. 2022년 후반 정부 규제가 차차 풀리기 시작했다. 백신을 서너 차례 맞았고, 한 번쯤은 코로나에 걸려 일주일 자가격리되는 경험도 생겨났다. 신종코로나에 의해 사망할 거란 공포를 인간의 지적 연구가 정복했다는 자신감과 함께, 코로나19가 감기 정도로 가벼운 병이 되었다. 암흑기가 끝나가는 시점. 전환점이 될 날이 바로 10월 29일, 30일 할로윈데이였다. 할로윈은 일반적인 날이면서 일반적인 날이 아니었다. 본래 켈트족에 연원을 둔 할로윈은 아시아권에서는 미국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알려진 명절이었다. 40대 이상의 사람들은 할로윈에 특별한 관심을 갖지 않았다. 젊은 층은 달랐다. 유치원 때부터 코스튬 분장을 했고, 영어조기교육으로 할로윈을 자연스레 받아들였다. 할로윈은 10월 31일 산 자와 죽은 자의 세계의 문이 열리는 날, 유령이나 귀신이 찾아오는 날이었다. 좋은 유령도 있지만 악령도 있기에 유령처럼 분장을 하고 뒤섞여 악령은 쫓아낸다는 의미가 있다. 한국에서 그날은 기성세대가 터치하지 않는 젊은 층만이 즐기는 코스프레 축제의 의미였다. 광장으로 모일 찬스. 이태원의 서구적 분위기, 자유롭게 코스프레를 해도 자유롭게 술을 마셔도 같이 즐기는 축제의 느낌. 좁은 경사로에서의 질식 그러나 모든 것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29일 토요일에서 30일 일요일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해밀튼 호텔 옆 좁은 골목길, 올라가려는 이와 내려오려는 이의 장난스런 대결이 몸대결로 번졌다. 1번 출구로 빠져나와 이태원 세계음식거리로 가려던 사람과,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고 1번 출구 쪽으로 내려오던 사람들. 순식간에 몇백 명의 인파가 몰린 5.5평 공간, 앞 사람 얼굴이나 뒤통수도 확인하기 어렵게 비좁은 틈에 끼어 있었다. 누구도 통제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경사로를 따라 축제는 광란으로 변했고, 환호는 비명으로, 이태원 사거리는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교차로가 되었다. 질식이, 깔린 사람들의 장기 파손이, 복부 팽창과 기절이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150여 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경찰들은 늦었고, 예상하지 못했고, 뒤늦게 문제의 심각성을 알았다. 외부로 나가는 목구멍에 걸린 사람들. 심정지 상태를 언론과 소셜 네트워크가 가감 없이 열어젖혔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리는 이 일을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2014년 일어난 세월호 침몰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코로나19로부터 국가가 국민을 보호한다는 자긍심에서, 축제에 통제 인력을 준비하지 못했다는 참담함으로 이어졌고, 사람들은 쉬쉬했다. 어떤 이는 그저 압사 사고라 했고, 어떤 이는 참사라고 했고, 어떤 이는 젊은이들이 “놀다가 죽었다”며 씁쓸해 했고, 어떤 이는 나와는 무관한 먼 세계의 일처럼 받아들였다. 어떤 이는 이것이 정치적으로 이용될까 저어했다. 이태원 도로를 중심으로 해서 해밀턴 호텔 쪽 가게들은 모두 문을 닫고 죽음의 냄새를 맡고 있었고, 그 건너편은 일상이 일어나는 한가하고 북적한 삶의 냄새를 끓이며 죽음의 냄새를 가까스로 닦아내고 있었다.   국가 애도 삭제 기간 정부는 서둘러 합동 분향소를 만들고, 국가 애도 기간을 정했다. 그 기간이 폭력적이란 생각은 못했다. 다만 세월호 사건에서 비롯된 것인지, 서둘러 사람들은 그 시간을 마무리 지으려고 했다. 적어도 괴로움을 축소 시키고 싶어했다. 정부는 이태원에서 죽은 젊은이들의 시체를 옮기고 거리를 삭제했다. 일반 사람들은 소셜 네트워크에 올린 그 날의 사진과 동영상들을 삭제했다.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고통스러움 탓이었다. 누르고 누른 감정들을 쏟아낼 길이 없는 사람들이 이태원역 1번 출구로 모여들었다. 이 좁은 공간에서 정말 150여명이나 사망에 이를 수 있을까. 그 사람들이 다 들어차기도 빠듯한 공간에. 심각한 얼굴의 사람들과 카메라를 높이 쳐든 기자들. 아직 장식이 채 지워지지 않은 할로윈 호박들. 상점에서는 청소하는 사람이 보이기도 했다. 우리도 각자 재빠르게 청소하기 시작했다. 유가족들의 고통을 방관으로 닦아내려 했고, 사망자인 피해자들은 단지 빗나간 청춘들처럼 긁어내려 했다. 가장 큰 청소는 침묵이었다. 고통스러운 일이라서, 젊은 층들만의 일이라서, 도대체 이해가 안 가서, 침묵했다. 정부가 알아서 하겠지 싶어서, 유가족들이 알아서 하겠지 싶어서, 침묵했다. 누구도 이 일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달가워하지 않았다. 이태원에 대한 언어가 사라지면서 기억도 금세 사라지는 듯 보였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시치미를 떼는 사회.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까 이태원 참사는 그 좁은 골목에서 아직 이렇다 할 반응도 대응도 없이, 연기처럼 소실되었다. ‘이태원’ ‘할로윈’은 금기가 된 듯하다. 다만 언어가 삭제된 것으로, 그 공간이 삭제되고, 그 사건이 삭제되었다. 결국 기억이 삭제되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어디서부터 이 이야기를 다시 다루어야 할까. 누구와 이야기할 수 있을까. 죽은 이들은 자신의 영정 사진을 올리는 것조차 저어하고, 그곳에 있었던 것조차 숨기려 하고, 옆에서 죽어간 친구 때문에 자살자도 생겨나는데, 우리는 유령들의 행진이므로 아무것도 볼 수 없다는 듯 입을 다물고 있다. 왜 이태원을 다시 끄집어내야 하는가. 왜 그들은 이태원에 모일 수밖에 없었는가. 우리는 왜 이태원을 모른 척하고 있는가. 아직 마음 아픈 곡소리가 들려오는데도. 삭제된 공간은 재생되기 어려운 기억일까, 생각해 본다. 1주년이 된 참사, 왜 아직도 물을 수가 없나 이제 10.29 참사로 명명된 이 사건은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지나간 기억의 편린으로 흩어지길 기대하는 것 같다. 하지만 언젠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도 잊은 듯하다. 우리는 이것이 자연재해도 우연히 일어난 사고도 아니라는 걸 이제 안다. 더 많은 경찰인력을 동원했어야 하는 그때, 단지 마약이 아니라 질서 통제를 위해 힘쓰고, 신고가 들어왔을 때 단순한 불평으로 듣지 않았어야 하는 그때, 국가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세월호, 코로나19로 우리에겐 국가의 의미를 재정의하게 되었다. 국가는 단지 경제공동체만이 아니라 자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책임질 줄 아는 공동체여야 했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한국은 선진국보다 더 나은 안전 체제와 의료체제를 갖춘 나라로 평가되었고, 국민들은 기꺼이 개인정보를 희생하면서 국가의 지시에 따랐다. 한국은 선진국이라는 의식도 차차 갖게 되었다. 그런데 그 자부심이 10.29 참사로 산산이 무너져 내렸다. “국가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라는 질문조차 미궁의 구덩이 속에 질식사시켜버렸다. 국가는 이 문제가 마치 없는 문제처럼, 국가와는 관계가 없는 것처럼,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자연재해처럼 치부해버렸다. 우리가 10.29 참사를 다시 복기하는 이유 자, 그럼 다시 이런 문제가 발생할 때 우리는 또다시 책임자도 매뉴얼도 없는 사회에 노출되어야 하는가. 세월호보다 더 통제가 가능했던 10.29 참사조차 그 피해자의 잘못 정도로 지나쳐가는 국가에서 우리가 안전을 바라는 것은 어폐가 아닌가. 진상규명은 단지 책임자 논책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건 더 나은 사회를 바라는, 유사한 일이 일어났을 때 두 번 다시 동일한 문제에 빠지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그런데 책임자도 그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 제 3의, 제 4의 참사에 우리가 무방비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우리는 다시 묻고 있다. “국가는 그때 무엇을 하고 있었나?” 이는 달리 묻자면, “국가는 과연 어떻게 했어야 했나”, 의 질문이고, “유사한 사태에 대한 대책을 지금 당장 세우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10.29 참사를 다시 복기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진상규명이야말로 이 참사의 피해자를 위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10.29 이태원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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