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왜 어떤 산재는 보이고 어떤 산재는 보이지 않는가

2023.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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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모든 사람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운동하는 노동건강연대 활동가입니다.

더 안전한 노동을 바라는 캠페이너들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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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어떤 산재는 보이고 어떤 산재는 보이지 않는가

전수경/노동건강연대 활동가

    

산재가 험하고 힘든 일을 하다 사망하는 남성 노동자의 이미지를 갖게 된 데에는 산재 사망의 심각성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사망 만으로 산재 문제 전체를 보기는 어렵다.

 누구든, 어떤 일이든 일을 하면서 몸이나 마음이 상하기도 하고 다치기도 한다. 하루의 삼분의 일 또는 이분의 일을 보내는 공간, 작업 또는 보이지 않는 관계 같은 것들이 사람의 신체와 마음에 영향을 주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가 보통 산재라고 부르는 것들은 국가가 정한 기준 즉 산재보상법이 정하는 산재의 요건을 통과한 것을 가리킨다. ‘4일 이상의 요양’이 필요한 질병, 부상이라면 산재의 기본적 요건이 된다.

 그러나 이론과 현실은 다르기에 노동하는 사람이 처한 조건에 따라 국가의 산재보험 제도에 접근이 불가하거나 보험 이용을 포기, 또는 거부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산재보험 이용자 수에 집계되지 않았다고 해서 산재가 아닌 것은 아니다.

노동건강연대는 인터넷언론 <오마이뉴스>에 '이달의 기업살인'을 통해 매달 일하다 사망하는 노동자를 집계하여 발표하고 있다.

 정부는 2022년 107,214명의 노동자가 사고를 당하고, 23,134명의 노동자가 직업병으로 판명되어 모두 130,348명의 노동자가 산재를 입었다고 발표하였다. 130,348명의 노동자 가운데는 사고사망자 874명이 포함되어 있다. 이 통계 자료의 하단에는 ‘산재요양 승인된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임에 유의’하라는 문구가 있다. 여기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두 가지이다. 산재보험을 신청할 수 있느냐가 첫째, 산재보험을 신청했지만 ‘승인’받을 수 있느냐가 둘째이다. 건설 현장에서 추락해 사망하는 노동자, 공장에서 기계설비에 끼여 사망하는 노동자와 같이 산재로 인한 사망이 명백한 사례들이 최근 수년간 많이 알려져 시민들의 마음을 울리고 산재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왔다. 이와 같은 사망을 포함하여 일반적으로 제조업이나 건설업 현장에서 사고가 일어나면 쉽게 산재보험을 신청하고 쉽게 ‘산재요양 승인’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그러나 ‘전국건설노동조합’ 활동을 정부가 탄압하고 경찰수사에 들어가면서 노동조합의 활동이 어려워지자 건설 현장에서 발생하는 산재가 은폐되고 있다는 제보가 많아지고 있다- ‘떨어지고 끼이고 부딪쳐 가며’ 아파트를 짓고 배를 만들고, 빵을 생산해야 하다니, 노동자의 사망과 사고 뉴스를 접하며 우리는 사람보다 경제가 먼저인 체제의 비정함을 직관적으로 느낀다.

  그런데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 산재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특수고용 노동자, 프리랜서, 플랫폼을 통해 개인 사업자로 일하는 노동자들이 일을 하다 다치거나 사망하였다면 어떻게 되는가? 최근 2~3년 특수고용, 플랫폼, 프리랜서처럼 불안정하고 유동적인 노동을 하는 이들이 600만~700여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노동계는 추산하고 있다. 이들은 상시적으로 일감을 받고 한 곳에서 일을 해도 고용을 안정적으로 보장받지 못하고 언제든지 계약이 해지될 수 있다는 살얼음판 같은 조건에 있는 경우가 많다. 최근 이들 불안정한 노동자들의 산재보험, 고용보험 가입을 확대하는 정책을 펴고 있어 가입이 크게 확대될 것이라 정부는 말하고 있다. 다행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산재는 쉽지 않다. 최근 뉴스 사회면에 자주 등장하는 택배 노동자의 과로사를 보자. 정부의 산재사망 통계에 포함되려면, 쓰러진 택배 노동자가 산재보험에 가입되어 있어야 하고, 쓰러진 후 산재 신청을 했을 때 가령, ‘ 일주일 이내 업무량이나 시간이 이전 12주 (발병 전 1주일 제외) 평균보다 30% 이상 늘거나 업무강도 및 업무환경 등이 적응하기 어려운 정도’ 였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어야 산재 사망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다.

지난 11월 30일 국회의사당 본관 계단에서 '중대재해처벌법 50인(억)미만 적용유예 연장 반대 기자회견'을 노동조합과 시민단체가 함께 하는 '생명안전행동'의 이름으로 열었다. (노동건강연대 홈페이지)

  빗길 배달을 가다 오토바이가 미끄러져 사망한 배달 라이더, 고속도로 졸음 운전으로 사망한 화물차 기사에 대한 뉴스를 보았다면, 이 죽음이 산재라고 생각해 보았는가. 산재보험에 가입되어 있고, 졸음 운전에 이르기까지의 노동시간, 업무량 등을 입증해서 산재 승인을 받을 수 있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산재 사망 노동자의 숫자로 헤아려질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교통사고 사망자이다. 산재 사고의 수, 산재 사망자의 수가 적다, 많다, 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으로 생계를 하고 가족을 부양하는 노동자임에도 다치거나 사망하였을 때 그 자신과 가족의 사회적 안전망이 사라지거나 부족해지는 것이다. 노동자의 자격이나 산재의 조건은 사회적 흐름에 따라, 필요에 따라 변화하고 보호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되는 것인데, 정부는 이를 방치한다.

 이런 의문도 든다. 사망에 이르지 않지만 천천히 오는 산재는 어찌할 것인가. ‘산재요양 승인’은 요건만 갖추면 형식적으로는 모든 노동자에게 열려 있지만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기에 산재보험 이용 자체를 시도하지 않는 노동자가 많다. ‘비용과 시간의 소요’라 함은 산재 신청을 위한 정보탐색과 상담, 법률서비스 구매,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기간, 이의제기 등의 지난한 과정이 수반된다는 것을 뜻한다. 노동자들의 증언, 사례발표, 실태 조사 등을 통해서 제도의 복잡성, 접근성의 장벽은 이미 드러나 있지만 고용노동부와 산재보험운영기관 근로복지공단은 외면해 왔다. 또한 앞서 말한 특수고용노동자, 프리랜서가 아니더라도 고용이 안정적인 일부 노동자층을 제외하고는 많은 노동자들이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다른 노동자가 내 일을 대체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

 비정규직일수록 불안은 더 크다. 아파도 출근하고, 참기 어려우면 건강보험으로 치료를 받는다. 2019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산재보험으로 치료해야 할 노동자가 건강보험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면서 건강보험에서 새어 나가는 돈이 연간 최소 277억 원에서 최대 3,200억 원에 이를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일을 하다 다치거나 아픈 노동자의 21.0%~42.4%가 산재보험이 아닌 건강보험으로 치료를 받는 것으로 추산된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산재를 보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아이스크림 매장에서 아이스크림을 푸는 노동자, 패스트푸드점에서 버거를 만드는 노동자, 플랫폼으로 일감을 받는 배달라이더 노동자...의 산재는 어디에 있을까?(사진출처 프레시안)

 산재보험을 운영하는 <근로복지공단>은 보험료를 더 걷었다며 해마다 수백억의 산재보험료를 기업에게 환급해 준다. 일을 하다 다치고 아픈 노동자가 산재보험을 통해 치료받도록 산재보험료를 납부하는 것은 기업의 책임이고, 제도를 통해 더 많은 노동자가 보험을 이용하도록 촉진하는 것은 국가의 역할이다.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보험 이용의 어려움을 알면서도 개혁하지 않고, 국민이 부담하는 건강보험료를 축내도록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산재보험을 이용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기 전에는 산재 발생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울 것이다.

  제도와 노동 현실의 불안정함이 만나 산재를 감추는 한편에 또 하나의 쟁점이 있다. 정부는 산재요양 승인 노동자 집계를 발표하면서 성별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2022년 산재사고 사망 노동자 874명 가운데 여성 32명, 이라고 분류한 사망자료 외에 산재 전체에서 여성을 구분해 발표하는 통계가 없다. 고용이 더 불안정하고, 더 낮은 임금을 받는 이들일수록 산재보험 이용을 꺼릴 가능성이 큰 상황이고 그 조건에 여성의 비중이 큰 현실을 고려하면 정부의 발표는 너무 안이하다. 여성 노동자의 산재로 최근 가장 널리 알려진 사례는 학교 급식조리 노동자의 폐암이다. 2023년 11월 현재, 4만 명이 넘는 학교 급식조리 노동자가 건강검진을 받았고 이 가운데 폐암으로 산재를 인정받은 노동자가 130여 명에 이른다. 환기시설 없는 조리실에서 노동자 1명당 학생 100~200명 분량의 식사를 준비하는 노동강도를 감당하며, 굽고 튀기고 볶는 과정에서 조리흄을 흡입하면서 폐암이 왔다. 학교 무상급식 시행 12년차, 학교급식실 조리노동자의 작업환경에 교육 당국은 관심이 없었다. 중년 여성의 ‘밥 짓는 일’을 노동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무상급식 12년이 되도록 잠복되어 있던 여성노동자들의 직업병은 노동조합이 나서지 않았다면 여전히 가리어져 있었을지 모른다.

 <노동건강연대>가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으로 2022~2023년 ‘청년여성 산재회복 지원사업’을 펴며 청년 여성 노동자들의 산재 신청 현황을 살펴보았다. 결과는 참담했다. 사업에 신청서를 낸 600여 명의 청년 여성 노동자 가운데 단 5명만이 산재보험을 신청했다고 답했다. 여성 노동자의 산재는 아직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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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ampaigns.do/discussions/977 저도 글을 쓰면서 참고한 자료를 보면서 통계에서 포함되지 않은 노동자들이 많다는 것을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특히나 중요한건 비정규직일수록, 비정규직에 내몰릴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더 악순환을 겪는다는 것입니다.
제가 거쳐온 다양한 노동현장을 돌아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산재인데, 산재 신청은 하지 못한 저와 동료들이 떠오르네요. 산재 신청해서 인정받기도 어렵다고 하지만, 말씀처럼 '내가 겪은 게 산재야'라는 자각이 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산재'의 범위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네요. 어떻게하면 모두의 일상 속 산재들을 분명히 할 수 있을까요?
"사람보다 경제가 먼저인 체제의 비정함을 직관적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조차도 아주 일부에 불과하고, 보이지 않는 산재는 더욱 많을 것이라는 점에 참담한 마음입니다. 노동안전에 대한 권리는 어떻게 보장 받을 수 있을까요? 우리 사회는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습니다.

어떤 산재가 보이고 어떤 산재가 보이지 않는지에 대한 토론은 다양한 요소와 관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산업안전 및 보건에 대한 더 많은 연구와 교육, 인식 제고가 필요하며, 산업 재해 예방을 위해 보다 포괄적이고 철저한 접근 방식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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