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6411의 목소리] 택배 노동시간 단축은 헛된 꿈일까?

202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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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재단은 6411 버스 속의 사람들처럼, 지치고 힘들 때 함께 비를 맞고 기댈 수 있는 어깨가 되겠습니다.

[6411의 목소리] 택배 노동시간 단축은 헛된 꿈일까? (2024-01-15)

서정수(가명)|택배노동자

설 연휴를 1주일가량 앞둔 지난해 1월13일 밤 서울 시내의 한 아파트에서 택배기사가 물품을 배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2년 1월4일 서울 강남구에서 30대 용차 기사가 미끄러지던 택배차를 멈추려다 택배차와 승용차 사이에 끼여 숨졌다. 아내와 뱃속 아기를 남겨두고 세상을 떠난 그를 기억한다. 2021년 가을 일하던 터미널에서 택배를 분류하고 차에 싣는 일을 하며 한달 동안 봤었기 때문이다. 곧 결혼할 예정이라는 말을 남기고 다른 지역으로 갔는데, 옮겨간 곳에서 화를 당했다. 차 사고가 잦은 겨울철이면 나도 이런 일을 당하는 건 아닌지 두렵다.

용차는 택배기사가 다치거나 아플 때 빈자리를 긴급하게 메우는 택배차와 택배기사를 아우르는 말이다. 기사들이 용차를 구하는 일은 드물고, 주로 원청이나 영업소에서 용차를 구하곤 한다. 택배기사들은 아프거나 다쳐서 일을 못 하면 배송하지 못한 만큼 수수료(임금)를 못 받고, 용차 비용도 물어야 한다. 그러니 아주 큰 병 아니면 쉴 수가 없다. 한 동료는 지난해 11월 말 절임배추를 배송하다 넘어져 아킬레스건 손상 진단을 받았는데 깁스한 채 나와 일했다. 척추분리증이 악화돼 당장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도 구부정한 자세로 계속 일하는 동료도 둘이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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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인력 투입으로 노동강도가 낮아지긴 했다. 앞서 2021년 1월과 6월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 1·2차 합의 때 중요한 내용은 “택배 분류작업이 택배기사의 작업 범위가 아니며, 주당 최대 노동시간은 60시간 이내로 한다”였다. 내가 일하는 터미널에는 조합원이 없어서 그런지 2022년 5월께부터서야 분류인력이 본격적으로 투입됐는데 어쨌든 이를 계기로 ‘까대기’라 부르는 분류작업이 덜 힘들어졌다. 일부 기사들은 분류인력 투입으로 이직 빈도도 줄어들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인 노동시간 단축은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물량이 많은 화요일, 수요일 단체카톡방에서는 심야배송 제한시간을 해제해 달라는 기사들의 글이 빗발친다. 2020년 택배기사 22명이 과로사로 숨지자 택배사들은 심야배송 시간을 오후 9시까지로 제한했다. 오후 9시 이후에는 배송완료 문자를 보낼 수 없게 되자, 8시55분쯤 미리 배송 문자를 보내놓고 마저 배송을 마무리한다. 물건이 오지 않았는데 배송완료 문자를 받은 고객은 기사에게 항의 전화를 한다. 원청은 명절 연휴 같은 때엔 심야배송 제한시간을 1시간 늦춰주는데, 평상시에도 요구해야 하는 상황이다. 1시간이라도 배송시간을 더 확보해야 항의 전화를 덜 받기 때문이다. 원청은 “우린 오후 9시까지로 배송시간을 제한했는데 기사들이 스스로 더 하는 것 아니냐?”고 한다. 억울할 뿐이다. 수수료 인상, 인력 충원, 노동조건 개선 같은 근본적인 대책은 세우지 않으면서 우리보고 어떻게 하란 말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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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사와 구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택배 건당 수수료는 대부분 700~850원 사이다. 서울지역에서 건당 900원 이상 받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 1~2년 사이 모든 택배사가 택배비를 올렸지만 기사들에게 돌아오는 몫은 없다. 24년 동안 택배기사로 일해온 한 동료는 “처음 4년 동안 월급제로 일했고 그 뒤로 건당 1300원을 받았다. 계속 깎여 지금은 1천원도 안 되는데 물가 오른 거 생각해 봐라. 아무리 물량이 많이 늘었다 해도 이건 아니다. 거기다 보험료, 대리점 소장에게 줘야 하는 수수료, 세금까지 생각하면 무조건 많이 싣고 오래 일해야 한다”고 말한다.

당일배송 압박도 장시간 노동 이유 중 하나다. 원청은 매일 전략 고객사 물품 당일배송 지표나 미배송 과다 보유 집배점 현황을 공개하면서 기사들을 압박한다. 심지어 전략 고객사 물품을 당일배송 하지 않으면 건당 천원의 벌금을 물리겠다고 하거나, 기사들이 물건을 수거해 올 수 있는 거래처를 회수하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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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정부 조사 결과, 택배기사들의 1일 평균 노동시간은 12.1시간이었다. 최근 윤석열 정부가 주 52시간에 맞추는 노동시간의 유연화를 얘기했다. 이미 주 70시간 이상 일하는 택배기사가 많은데 노동시간 단축도 아니고 유연화라니.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 2차 합의 때 주요 의제 중 하나는 ‘택배기사의 주5일제 실시’였지만, 시범실시 소식도 들려오지 않는다. 우리 사회 주5일제가 도입된 지 20년이 흘렀는데 택배기사들은 언제까지 이대로 살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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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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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종종 밤 산책을 다니는데요. 산책을 나가다보면 밤 11시를 넘어서까지 일하는 택배 노동자들이 아파트 단지에도 매우 자주 보여서 '저 분들은 언제 쉬시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의아했습니다. 이전에도 과노동으로 택배 노동자들이 연이어 사망할 때 문제가 지적된 것 같은데 이번 글을 읽으면서 왜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지를 더 면밀하게 보게 됐네요. 구조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됩니다.

새벽배송의 편함이 미덕으로 이야기 되는 이 사회에 택배노동자의 과로로 인한 죽음의 기사를 자주 접하게 되는 것은 필연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노동자들이 권리를 보장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있어서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꼭 필요한 것 같습니다. '6411의 목소리'에 감사하게 되네요.

가끔 배송문자를 먼저 받고 물건은 나중에 배송된걸 본적이 있는데요. 이런 이유가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군요.
그리고 “우린 오후 9시까지로 배송시간을 제한했는데 기사들이 스스로 더 하는 것 아니냐?", "기사들이 원해서 일 더 하는거 아니야?" 같은 말을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한창 택배기사가 월 몇백만원씩 번다는 기사가 많이 나올 때로 기억합니다. 돈만 많이 벌면 노동환경이나 처우는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게 된 한국사회 인식에 슬픔을 느낍니다.

실제로 노동자들에게 산재처리도 안하는 기업도 있습니다!
그리고 정당한 임금도 못받는 노동자와 그리고 노동착취하는 사람들도있구요!

“택배기사들은 아프거나 다쳐서 일을 못 하면 배송하지 못한 만큼 수수료(임금)를 못 받고, 용차 비용도 물어야 한다.”라는 문장을 보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습니다. 아프거나 다쳤는데 병가가 가능하기는 커녕, 돈도 못 받고 ‘벌금’도 내야 한다니... 근로시간만 띡 줄여놓고 인원은 그대로, 일도 그대로, 임금은 더 적어지고.... 그렇게 해서 돌아오는 민원들은 또 기사님들의 몫이라니요... 예전엔 당일에, 익일에 받는 시스템이 없었는데 점점 이런 시스템을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시스템 도입에 따른 기사님들의 과중을 줄일 방법이 함께 들어왔어야하는데, 회사들은 자기 배만 불리고 일하는 사람들만 계속해서 갈아내고 있군요. 그런데도 아무도 처벌하지 않고 책임을 묻지 않는 나라에 정말 화가 납니다..!!!!

이를 위해 효율적인 물류 시스템의 도입, 자동화 기술의 활용, 노동과 기술의 조화 등 다양한 방안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또한,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정책과 제도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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