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란 무엇인가?
 법은 우리의 삶에 매우 가깝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일상 속에서 법이 개입하지 않는 분야를 찾는 것이 더 어려울 정도입니다. 현대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입법의 요청이 있어왔고, 사회는 법의 지배에서 소외된 부분이 없도록 끊임없이 입법 활동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과연 법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신 적이 있나요? ‘법’이 무엇인지 알고,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파악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법의 본질을 알고 그에 맞는 입법 과제를 부여하는 것이 정의로운 법을 만들고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법이 무엇인지 그 개념을 하나로 정의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과거부터 수많은 철학자들이 법이 무엇인지를 말해왔지만 하나로 합의를 이루어내지는 못했습니다. 법을 정의하기 어려운 것은 법의 역할과 그 필요성, 나아가 인간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인간, 사회, 국가 등에 대한 입장의 차이는 법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각자가 생각하는 법의 개념은 다 다를 것이고, 하나의 정답을 찾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다양한 생각을 접하며 최선의 답이 무엇일지 각자가 고민해볼 수는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기존에 논의되어 온 몇몇 철학자들의 시각을 가볍게 소개해드리면서 법에 대한 여러분 각자의 정의를 내릴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법을 사회적 행위와 관련된 것으로 보고 공동선으로 정의하였습니다. 즉, 법이란 사회 구성원들이 공동으로 지향하는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범죄로부터의 보호, 의식주의 보장, 평화의 유지 등이 법의 목적이 됩니다.  토마스 홉스는 법현실주의의 관점으로 법을 바라봅니다. 법현실주의는 법에 내재한 정의와 같은 이념보다 법 자체만 바라보아 법적 안정성을 중시하는 것입니다. 홉스는 자연상태의 인간을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상태로 보았습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이성을 통해 자연상태에서 벗어나고자 하였고, 그 결과 사회계약을 통해 국가가 탄생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국가의 주요 임무는 안전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홉스는 법을 국가가 개인의 안전을 보장하는 수단으로 봅니다. 이러한 생각은 안전을 위한 법이 필요하다는 결과를 도출하지만, 법의 내용이 어떠해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칸트는 법을 특정 개인과 타인 사이의 관계와 관련된 것으로 보았습니다. 한 사람의 자유와 다른 사람의 자유가 조화될 수 있도록 하는 통제를 법으로 정의합니다. 그는 모두가 자유를 지향하므로 각자의 자의를 통한 자유 표현이 모두에게 동등해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따라서 법의 목적은 인간 사이의 평화로운 자유의 공존이라고 하였습니다.  헤겔은 법의 토대를 정신, 자유로운 의지로 보았습니다. 즉, 법을 자유를 위한 조건, 나아가 자유의 창조로 보았습니다. 헤겔에 따르면 법은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 발전하고 있어 완전하지 않고 계속해서 발전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그가 생각하는 법의 목표는 개인의 자유 보장입니다. 자유를 목표로 하는 점에서 칸트와 비슷한 입장입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법을 이데올로기로서 그 독자성을 부인하고 경제관계의 산물로 바라봅니다. 법을 지배계급의 지배 수단, 즉 도구로만 여깁니다.  지금까지 다양한 학자들의 생각을 간단하게 정리해 보았습니다. 법이 무엇인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여 올바른 법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법치주의가 형식에 그치지 않고 그 내용이 정의로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 사회, 국가에서 작용하는 법은 우리의 생활 관계를 구속하고 기본권 보장 및 제한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므로 사회의 토대가 되는 법이 제 역할을 하도록 검토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발판이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법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차례입니다. 물론 정답은 없습니다. 하지만 자유로운 토론을 충분히 거쳐 정해진 결론이 최선에 가깝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저희가 소개한 견해 중 선택하셔도 좋고, 새로운 주장을 해주셔도 좋습니다. 댓글을 통해 여러분의 생각을 자유롭게 나눠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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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이 먼저 때렸어요! 정당방위가 인정되려면?
 서현역 흉기 난동, 신림동 칼부림, 신림동 성폭행 사건. 불특정한 대상을 상대로 한 묻지마 범죄가 잇달아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들의 공통점은 모두 위험한 물건을 사용한 공격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에 불안을 느낀 시민들은 방검복, 호신용 스프레이 등 호신용품을 구매하기도 하는데요. 이러한 호신용품을 사용하여 상대의 공격을 방어하는 것은 합법일까요?  우리 형법은 제21조 1항에서 “현재의 부당한 침해로부터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을 방위하기 위하여 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벌하지 아니한다.”라고 하여 정당방위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정당방위가 인정되면 위법성이 조각되어(=없어져) 범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흉기를 들고 위협하는 상대방을 방어하는 행위는 어디까지 정당방위로 허용될까요?  법 조항은 굉장히 간단해서 부당한 침해가 있는 경우의 모든 방위행위가 정당방위로 인정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형법은 정당방위가 성립하기 위해선 세 가지 조건을 갖출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실제 판례를 보면 정당방위가 인정되는 경우는 굉장히 드뭅니다.   법은 일상언어로 규정됩니다. 그렇기에 개별적인 사례에 법을 적용할 때는 법의 해석이 필요하고, 법의 입법 취지에 맞게 해석해야 합니다. 정당방위도 굉장히 간단히 쓰인 법문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중요하고, 올바르게 법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관심과 활발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본 글에서는 정당방위가 성립하기 위한 요건을 설명하고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은 판례를 소개하여 여러분이 어느 정도까지 정당방위를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논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정당방위 성립요건  범죄가 성립하려면 구성요건 해당성, 위법성, 유책성이 인정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법익을 침해하는 부당한 행위를 방어하기 위한 정당방위는 위법성이 조각되어 범죄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위법성 조각 사유 중 하나인 정당방위는 범죄의 성립과 연관이 있으므로 정당방위인지 판단할 때는 신중해야 합니다. 정당방위가 성립하기 위한 요건은 ‘객관적 방위상황, 방위행위, 상당한 이유’로 구성됩니다.   객관적 방위상황은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을 위협하는 부당한 침해 상황을 말합니다. 대표적으로 사람의 공격 행위가 있는 경우 객관적 방위상황이 성립합니다. 그러나 공격 행위처럼 위법한 행위가 있는 경우에만 방위상황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형법상 ‘행위’이기만 하면 방위상황이 성립하는데요, 예를 들어 소중한 물건을 의자 위에 두었는데 이를 모르고 의자에 앉으려는 사람을 밀친 경우도 객관적 방위상황에 속하게 됩니다.   이러한 방위상황에는 현재성이 있어야 합니다. 법익의 침해가 직접 임박하거나 방금 막 시작되거나 아직도 계속되는 상태일 경우에만 정당방위가 성립하게 됩니다. 즉 방위행위가 늦어지면 방위가 더 이상 불가능하거나 매우 힘든 상황이 되었을 때부터 침해가 종료되었을 때까지만 현재성이 인정되어 객관적 방위상황이 성립합니다. 과거의 공격이나 장래에 예상되는 공격에 대하여는 정당방위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방위행위는 부당한 침해를 방어하기 위한 목적, 즉 방위 의사를 가지고 방어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이때 방위행위의 상대방은 법익을 침해하는 공격자만 해당합니다. 공격자 이외 제삼자의 법익을 침해하면 안 됩니다. 방위행위는 침해에 대한 수비적인 방어 행위와 적극적으로 반격을 가하는 반격 방어 모두 인정됩니다.   마지막으로 정당방위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상당한 이유를 따지는 것은 침해 행위에 대한 방위가 현실적으로 필요한지, 사회윤리적으로 지나친 정도가 아닌지 검토하는 단계입니다. 방위에 사실상 필요한 행위로 인정되면 공격으로 침해되는 법익과 방위행위로 침해되는 법익을 비교할 필요 없이 방위에 필요한 모든 행위는 허용됩니다. 즉 효과적인 방어를 위해 모든 수단의 사용이 원칙적으로 가능합니다. 그러나 보호 방위로 충분한데도 공격 방위를 할 경우에는 공격 방위의 필요성, 즉 상당한 이유가 인정되지 않습니다. 방위의 필요성을 초과한 경우에는 과잉방위가 되어 위법성이 조각되지 않습니다.  📚관련 판례  정당방위의 성립요건만 살펴보면 쉽게 인정받을 수 있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 판례는 쉽게 인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장래에 반복될 위험이 있는 지속적인 공격에 대한 방위행위에 대한 판례를 살펴볼까요? 술만 마시면 구타하는 남편을 살해한 경우 또는 의붓아버지에게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해온 A가 의붓아버지가 잠든 사이에 식칼로 심장을 찔러 살해한 경우가 있습니다. 판례는 이 경우 공격의 현재성과 방위의사는 인정하였으나 상당성이 결여되어 정당방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대법원 1992.12.22. 선고 92도2540)  서로 시비가 붙어 싸우는 경우는 어떨까요?  A가 먼저 B의 뺨을 때려서 화가 난 B가 A를 구타하며 싸움이 난 경우 판례는 싸움행위가 상대방에 대하여 방어행위인 동시에 공격 행위가 된다고 보아 정당방위는 물론 과잉방위도 성립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즉 방위행위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대법원 1993.8.24. 선고 92도1329) C가 D에게 갑자기 폭행을 당해 서로 멱살을 잡고 싸워 주위 사람들이 제지하였으나 C가 D에게 대항하기 위해 깨진 병으로 D를 찌를 듯이 겨누어 대항한 경우에는 정당방위가 성립할까요? 판례는 맨손으로 공격하는 D에 대하여 위험한 물건인 깨진 병을 가지고 대항하는 것은 사회 통념상 그 정도를 초과한 방어행위로 상당성이 결여되었다고 보아 정당방위는 물론 과잉방위도 성립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대법원 1991.5.28. 선고 91도80)  한편 정당방위가 인정된 판례도 있습니다. 외관상 격투를 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실제로는 한쪽 당사자가 일방적으로 공격을 가하고 상대방은 소극적 방어 한도 내에서 자신을 보호하다가 이를 벗어나기 위한 저항의 수단으로 물리력을 행사한 경우에 판례는 정당방위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대법원 1999.10.12. 선고 99도3377)  판례를 살펴보면 정당방위를 인정하는 경우는 드물고, 상당성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며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에서 사용하는 상당성의 개념은 상당히 모호합니다. 상당성에는 사회윤리적 제한이 포함되기 때문인데요, 사실 어느 정도까지 사회윤리적으로 타당한지 판단하는 것은 그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리 해석할 여지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비슷한 상황에서도 정당방위가 인정되기도, 인정되지 않기도 합니다. 시민들의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법무부의 태도  최근 묻지마 강력범죄가 자주 발생하여 시민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범죄를 예방하고 법익 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정당방위가 적절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난 8월 7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대검찰청에 ‘폭력사범 검거 과정 등에서 정당방위, 정당행위 등 적극 사용’을 지시하였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법령과 판례에 따르면 흉악범을 제압하는 과정에서의 정당한 물리력 행사는 정당행위, 정당방위 등 형사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 위법성 조각 사유에 충분히 해당한다며, 검찰에 국민의 생명과 신체에 피해가 갈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에서의 물리력 행사에 대해 경찰 및 일반시민의 정당행위, 정당방위 등 위법성 조각 사유와 양형 사유를 더욱 적극적으로 검토하여 적용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정당방위가 성립하기 위한 요건과 관련 판례, 법무부의 태도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어떤 요건을 더 강화하고 구체화해야 할지 논의해 볼 차례입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토론으로 정당방위에 대한 법리적 해석이 더 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것임은 분명합니다. 정당방위는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을 댓글로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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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와 '실수로'의 문제 - 미필적 고의와 인식 있는 과실
철수는 평소 민수를 싫어했습니다. 어느 날 철수가 길을 가다가 민수네 집 앞을 지나가게 되었고, 갑자기 화가 난 철수는 야구공을 던져 민수네 집의 유리창을 깼습니다. 영희는 친구와 야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영희는 날아오는 야구공을 배트로 정확히 맞췄고, 빠른 속도의 타구가 마침 옆에 있던 민지네 집의 유리창을 깼습니다.  위의 두 상황은 모두 한 행위자가 타인의 집 유리창을 깬 상황입니다. 여러분은 철수와 영희 중 누구의 행위가 더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시나요? 대부분 철수의 행위라고 답하실 겁니다. 어째서 철수의 행위가 더 큰 잘못인 걸까요? 유리창이 깨졌다는 결과는 똑같은데 말이죠. 답은 간단합니다. 철수는 '일부러' 했고 영희는 '실수로'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똑같은 행위로 인해 똑같은 결과가 발생했다 하더라도, 행위의 고의성에 따라 이를 달리 평가합니다.  특정 행위에 대해 처벌해야 하는 법에서는 당연히 고의성의 문제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 형법 제13조는 “죄의 성립요소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자는 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자신의 행위가 범죄임을 몰랐다면 벌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결국 고의가 아니었다면 처벌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고의성에 따라 행위에 대한 처벌 여부가 결정될 수도 있으니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죠. 하지만 현실에서 고의와 과실을 구별하기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렇다 보니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들이나 정치인들을 둘러싼 의혹에서 고의성이 있었는지가 핵심 쟁점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문제를, 법조인도 아닌 우리가 알아야 하는 이유가 뭘까요? 법에 한해서는 어렵지만 중요한 쟁점일수록 시민이 직접 고민하고 토론하여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법리의 핵심에 해당하는 쟁점들이 어려운 이유는 높은 수준의 배경지식이 요구돼서가 아니라, ‘정답’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요하지만 정답이 없는 문제의 결론을 소수의 결정권자가 정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까요? 다양한 시민이 논쟁에 참여하고 최선을 찾아가는 과정을 거칠 때 가장 민주적인 결론이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본 글에서는 누구나 고의성 판단 문제에 관한 논의에 참여할 수 있도록 고의성 판단 문제의 핵심 쟁점인 미필적 고의와 인식 있는 과실을 설명하고, 이를 둘러싼 법학계의 다양한 견해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고의와 과실   법에서 고의는 ‘객관적 구성요건요소에 대한 인식과 의사’를 의미합니다. ‘구성요건’이라는 표현이 생소하실 것 같습니다. 구성요건은 법에 적혀 있는 범죄의 유형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살인죄 조항에서 “사람을 살해하는 행위”가 살인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합니다. 바로 이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실제 행동을 ‘객관적 구성요건요소’라 합니다. 자신의 행동이 객관적 구성요건요소에 해당하는 것임을 인식하고 있는 동시에 구성요건요소에 해당하는 행동을 하겠다는 의사가 있어야 고의가 성립합니다. 쉽게 말해서, 자신의 행위가 범죄임을 알면서 범죄 행위를 하는 것을 고의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의에도 단계가 있습니다. ‘누군가를 죽이겠다’도 고의이고, ‘누군가 죽어도 어쩔 수 없다’도 고의이지만, 둘은 분명 단계의 차이가 존재하죠. 이 중 가장 낮은 단계의 고의를 미필적 고의라고 합니다.   미필적 고의란 행위자가 ‘객관적 구성요건의 실현을 충분히 가능한 것으로 인식하고, 또한 그것을 감수하는 의사를 표명한 정도의 고의 형태’를 말합니다. 정의가 매우 복잡한데, 쉽게 설명하면 ‘자신의 행동이 범죄가 될 수 있음을 알고, 그 결과도 감수하겠다’ 정도의 태도입니다. 행위로 인한 부정적 결과를 의도적으로 추구한 것이 아니기에 가장 약한 고의가 됩니다. 그렇다보니 미필적 고의는 고의와 과실의 경계에 있는데요. 특히 인식 있는 과실과의 구분이 문제시됩니다. 과실은 행위자의 부주의로 인하여 원치 않았던 결과를 야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과실은 고의에 비해 불법 및 책임의 정도가 낮습니다. 따라서 항상 처벌되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처벌 규정이 있을 때만 처벌됩니다. 인식 있는 과실이란 행위자가 ‘객관적 구성요건 실현을 단순히 가능한 것으로 인식하였으나 결과발생의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의사가 전혀 없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역시 정의가 매우 복잡한데, 쉽게 말해 ‘자신의 행동이 범죄가 될 가능성을 인식했지만, 결과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정도의 의미입니다. ‘그럴 수도 있지, 그래도 어쩔 수 없지’는 미필적 고의, ‘그럴 수도 있지, 근데 설마 그러기야 하겠어’는 인식 있는 과실입니다.   간단한 판례를 하나 볼까요? 학생들의 가두캠페인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의무경찰이 직진해 오는 택시에게 좌회전 지시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운전자는 계속 직진하여 의무경찰의 30cm 전방에 택시를 세운 후 의무경찰에게 항의했습니다. 의무경찰이 이유를 설명하던 중 화가 난 운전자가 갑자기 좌회전을 했고, 택시 범퍼 부분으로 의무경찰의 무릎을 들이받았습니다. 대법원은 당시의 상황과 운전자의 경력 등을 고려했을 때, 택시 운전자가 의무경찰과 부딪칠 것임을 알면서도 좌회전을 행했다는 점에서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만약 택시와 의무경찰 사이의 거리가 더 멀었고, 운전자가 의무경찰이 알아서 피할 수 있으리라 판단할 만한 상황이었다면 미필적 고의가 아닌 인식 있는 과실로 보았을 것입니다. 이렇듯 미필적 고의의 여부는 행위자의 진술뿐 아니라 행위의 구체적인 형태와 당시 상황 등을 바탕으로 만약 보통의 사람이라면 어떻게 생각했을지를 고려하여 판단합니다.  주요한 학설들   위의 설명을 보면서 느끼셨겠지만, 미필적 고의와 인식 있는 과실의 구분은 매우 모호합니다. 그러나 둘의 구분선이 사실상 고의성의 판단 기준이다 보니 그간 학계에서는 다양한 기준을 제시해 둘을 명확히 구분하고자 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용인설, 무관심설, 가능성설, 개연성설, 감수설이 있습니다. 간단한 예시 문장들과 함께 각 학설을 살펴보겠습니다.  용인설은 행위자가 범죄 결과의 발생을 내심 승낙(= 용인)하여 흔쾌히 받아들일 때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는 학설입니다. 만약 행위자가 결과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 경우에는 인식 있는 과실이 됩니다. 현재 한국 대법원의 판례가 따르고 있는 학설로, 한국 법학계의 다수설이기도 합니다. 위에서 소개한 판례 역시 용인설에 근거하여 내려진 판결입니다.  이 행동으로 사람이 죽어도 괜찮아! (미필적 고의) 이 행동으로 사람이 죽지는 않았으면 좋겠군… (인식 있는 과실)  무관심설은 행위자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 부수적인 결과에 대해 무관심한 경우에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는 학설입니다. 반면 그러한 부수적 결과를 바라지 않은 경우에는 인식 있는 과실로 봅니다. 단순한 용인을 넘어 결과에 대한 가차 없는 무관심의 표현이 있어야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고 보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 행동으로 사람이 죽든 말든 관심 없어. (미필적 고의) 이 행동으로 사람이 죽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는데... (인식 있는 과실)  가능성설은 행위자가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식했음에도 불구하고 행위를 한 경우에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는 학설입니다. 가능성을 아예 인식하지 못했다면 과실이 됩니다. 가능성설에서는 가능성에 대한 인식만이 문제가 될 뿐, 행위자가 결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고려되지 않습니다. 이 행동으로 사람이 죽을 수도 있겠군. (미필적 고의) 이 행동으로 사람이 죽을 리가 없지. (인식 있는 과실)  개연성설은 행위자가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개연성을 인식하면 미필적 고의가 성립한다는 학설입니다. 개연성까지는 아니고 단순한 가능성만을 인식한 경우에는 인식 있는 과실이 됩니다. 결과에 대한 행위자의 정서적 태도가 고려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가능성설과 비슷하지만, 결과 발생의 가능성을 어느 정도로 판단하는지가 중시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이 행동으로 사람이 죽을 거야. (미필적 고의) 이 행동으로 사람이 죽을 수도 있지만, 그럴 일은 없겠지. (인식 있는 과실)  감수설은 행위자가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식했으나, 자신의 목표를 위해 이를 감수하고자 할 경우에 미필적 고의를 인정하는 학설입니다. 결과를 감수하고자 하는 의사가 없거나, 결과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 경우에는 인식 있는 과실이 됩니다. 감수설은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 다양한 국가의 통설이기도 합니다.   이 행동으로 사람이 죽어도 어쩔 수 없어. (미필적 고의) 이 행동으로 사람이 설마 죽기야 하겠어? (인식 있는 과실)  지금까지 미필적 고의와 인식 있는 과실의 구별 문제에 대해 간단히 살펴봤습니다. 이제 어떤 기준이 가장 적절한지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입니다. 물론 정답은 없습니다. 하지만 자유로운 토론을 충분히 거쳐 정해진 결론이 최선에 가깝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저희가 소개한 견해 중 선택하셔도 좋고, 새로운 주장을 해주셔도 좋습니다. 댓글을 통해 여러분의 생각을 자유롭게 나눠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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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파업은 불법이 아닐까?
왜 파업은 불법이 아닐까?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파업, 화물연대 파업, 노란봉투법 대립. 이 세 가지 이슈의 공통점이 무엇일까요? 크게 두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최근 한국 사회의 극단적인 노사갈등이 드러난 이슈라는 점, 다른 하나는 노동자 측 쟁의행위의 불법성 여부가 핵심 쟁점 중 하나였다는 점입니다. 쟁의행위의 불법 여부는 위의 세 가지 이슈뿐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의 노사갈등을 구성하는 거대한 축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노동자 측은 대부분의 파업이 불법이 되는 한국 사회의 모순을 지적하고, 사용자 측은 불법 파업을 절대 용인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결국 ‘쟁의행위’와 ‘불법’의 관계에 관해 대화해나가는 것이 이미 엉킬 대로 엉켜버린 노사갈등 문제를 풀 열쇠일 것입니다.   여기서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쟁의행위가 왜 ‘합법’인 걸까요? 쟁의행위가 합법이라는 것은 당연한 상식처럼 여겨지지만, 사실 쟁의행위는 명백한 불법행위처럼 보입니다. 업무를 방해함으로써 상대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인데요. 합법이 아닌 것이 곧 불법이므로, 특정 쟁의행위가 불법인지 아닌지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쟁의행위가 합법인 이유를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쟁의행위가 어떤 원리에 따라 합법적인 행위로 인정받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쟁의행위의 기반이 되는 법리적 배경을 이해한다면 개별 쟁의행위의 불법성을 판단하는 것은 물론, 쟁의행위에 대한 현재의 법리적 해석이 옳은지에 대한 시민 차원의 사회적 대화 역시 가능해질 것입니다. *쟁의행위란? 노동자 또는 사용자가 주장을 관철할 목적으로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노동자 측의 파업·태업·준법 투쟁 등과 사용자 측의 직장폐쇄·대체고용 등이 쟁의행위에 해당합니다. 본 글에서 사용하는 쟁의행위라는 단어는 노동자 측의 쟁의행위를 의미합니다. 범죄 성립의 요건들   가장 먼저 살펴볼 것은 ‘무엇이 범죄인지’입니다. 물론 무엇이 범죄인지는 상식으로서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형법은 범죄를 훨씬 구체적으로 규정하는데요. 다음의 세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할 때 범죄가 성립한다고 봅니다.    첫 번째는 구성요건해당성입니다. 구성요건은 법에 적혀 있는 범죄의 유형을 말합니다. 예컨대 살인죄 조항에서 “사람을 살해한 자는”이 살인죄의 구성요건입니다. 누군가의 행위가 바로 이 구성요건에 해당할 때 그 행위는 범죄가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특정 행위가 부도덕하더라도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처벌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위법성입니다. 이는 전체 법질서의 입장에서 봤을 때 행위가 불법이라고 볼 수 있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더라도, 법질서와 충돌하지 않는다면 위법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구성요건해당성을 충족하더라도 위법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유들을 위법성 조각 사유라고 하며, 정당방위, 긴급피난, 자구행위, 정당행위 등이 이에 속합니다.   세 번째는 유책성입니다. 이는 행위자에게 법적 비난을 물을 수 있는지, 즉 불법을 행위자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는지를 묻는 요건입니다. 구성요건해당성과 위법성을 충족하더라도 강요받은 행위라거나 행위자의 나이가 어린 경우 등 행위자의 책임으로 돌리기 어렵다면 범죄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결국 쟁의행위도 위의 세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하지 않기 때문에 범죄 행위로 보지 않는 것인데요. 과연 어떤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 것일까요?    쟁의행위는 정당행위   쟁의행위가 불법이 아닌 이유는 이것이 위법성 조각 사유 중 하나인 정당행위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정당행위는 형법 제20조에 다음과 같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법령에 의한 행위 또는 업무로 인한 행위 기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법에 쓰여 있어서 했거나, 업무 때문에 했거나,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정당행위는 전체 법질서의 이념, 또는 그 배후에 있는 사회윤리에 근거하여 정당화됩니다.    정당행위 중에서도 노동자의 쟁의행위는 법령에 의한 행위에 속합니다. 법령에 의한 행위는 법이 규정한 권리 또는 의무를 행사하거나 법을 집행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전체 법체계는 당연히 통일성이 있어야 합니다. 형법이 아닌 다른 법에서 적법하다고 인정한 행위를 형법상 위법하다고 평가한다면 법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없겠죠. 쟁의행위 역시 다른 법을 통해 적법하다고 규정되어 있으므로 형법상 허용됩니다. 이 같은 법령에 의한 행위로는 노동자의 쟁의행위 이외에 공무원의 직무집행 행위, 상관의 명령에 대한 복종행위, 일반인의 현행범체포 행위 등이 있습니다.   쟁의행위는 헌법에 의한 기본권인 노동삼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인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에 따라 정당화됩니다. 노조법 제4조는 “형법 제20조의 규정은 노동조합이 단체교섭∙쟁의행위 기타의 행위로서 제1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한 정당한 행위에 대하여 적용된다. 다만,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이나 파괴행위는 정당한 행위로 해석되어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여 쟁의행위가 정당행위에 속함을 명시하였습니다.    현재까지의 내용을 간략히 정리해보겠습니다. (1) 범죄가 성립하려면 구성요건해당성, 위법성, 유책성을 충족해야 한다. (2) 정당행위는 위법성이 없으므로 범죄가 아니다. (3) 쟁의행위는 정당행위다. (4) 쟁의행위는 범죄가 아니다!   정당한 쟁의행위의 요건들   쟁의행위는 정당행위로서 적법하다고 인정되지만, 현실에서 전개되는 모든 쟁의행위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위의 노조법 제4조를 자세히 보면 “제1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한 정당한 행위”에 대해서만 정당행위로 인정된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제1조는 노동삼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의 조항입니다. 결국 쟁의행위는 헌법상 노동삼권의 보장 취지와 쟁의행위의 목적 및 수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정당하다고 판단되어야만 적법한 것입니다.    쟁의행위가 형법상 정당행위가 되기 위한 요건들은 이미 다수의 대법원 판례를 통해 제시되어 있습니다. 크게 네 가지 요건이 있는데요. 첫째, 쟁의행위의 주체가 단체교섭의 주체가 될 수 있는 노동조합이어야만 합니다. 이는 일반 조합원이 아닌 노동조합 집행부가 쟁의행위를 주도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둘째, 쟁의행위의 목적이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한 노사 간의 교섭을 조정하는 데에 있어야 합니다. 근로조건과 상관이 없는 정치적∙이데올로기적 목적의 쟁의행위 등 애당초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사항을 달성하려는 쟁의행위는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기업이 경쟁력 강화를 위해 실시하는 구조조정, 사업조직 통폐합, 합병 등의  사안에 대해서는 사용자의 경영 관련 사안으로 보아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따라서 이를 목적으로 하는 쟁의행위도 정당행위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셋째,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는 구체적으로 쟁의행위를 하기 이전에 우선 사용자와 단체교섭을 시도해야 하고, 쟁의행위를 개시하기 전 조합원 찬반투표, 노동위원회의 조정절차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함을 의미합니다.   넷째, 쟁의행위의 수단과 방법이 사용자의 재산권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고, 폭력적이어서도 안 됩니다. 예를 들어 직장 또는 사업장 시설의 일부를 점거하는 것은 정당한 행위이지만, 전면적∙배타적으로 점거하여 조합원 이외의 출입을 막거나 사용자의 관리지배를 방해하는 것과 같은 행위는 정당성이 인정되지 않습니다. 한편 노동조합 차원의 쟁의행위와 조합원 개인 차원의 행위는 구별해야 합니다. 쟁의행위에 참가한 일부 소수의 노동자가 위법행위를 하였다고 해서 전체 쟁의행위가 위법하게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쟁의행위가 불법이 아닌 이유를 법리적으로 설명해드렸습니다. 그러나 이는 절대 정답이 아닙니다. 법이란 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시민들이 끊임없이 토론하며 함께 최선을 찾아가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쟁의행위의 법적 성격, 취지와 이념, 정당성 판단 기준 등은 오늘날의 노사갈등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더더욱 시민들이 활발히 이야기해야만 하는 주제입니다. 의문, 비판, 제안, 단상 무엇이든 좋습니다. 댓글을 통해 여러분의 생각을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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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약은 먹였지만 살인은 하지 않았다 - 범죄의 인과관계
  X(원인) 때문에 Y(결과)가 일어났을 때, X와 Y의 관계를 인과관계라고 합니다. 만약 늦잠을 자서 학교에 지각했다면, 늦잠과 지각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과관계는 특히 법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누구의 잘못으로 피해가 발생했는지 그 인과관계를 파악하고 처벌을 내리는 것이 법의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과관계가 항상 명확한 것은 아닙니다. 아래의 네 가지 상황을 볼까요? A가 B에게 치사량의 독약이 든 음료를 먹게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C가 나타나 B를 칼로 찔렀고, 곧이어 B가 사망했습니다.  C가 D를 강간했습니다. 강간으로 인해 극심한 수치심과 절망감에 고통받던 D는 결국 자살했습니다. 교사 E가 학생 F의 뺨을 때렸습니다. 뇌수종을 앓고 있던 F는 뺨을 맞아 넘어졌고, 그대로 사망했습니다. G의 공장에서 오랜 기간 일한 H는 퇴사 후 희귀질환에 걸렸고, 결국 사망했습니다. 입사 전 H는 건강했으며,  G의 공장에서 근무하는 동안 법적 기준치 이하의 유해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됐습니다.   각 상황에서의 인과관계를 한번 고민해 봅시다. (1)의 경우는 A가 치사량의 독약을 먹이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B를 죽인 것은 C입니다. 그러므로 A의 행위와 B의 죽음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없습니다. 살짝 찜찜하지만 그래도 인과관계가 명확합니다. 그러나 (2), (3), (4)의 경우 논쟁의 여지가 있습니다. C의 강간이 D의 자살에 상당한 영향을 주긴 했지만, C가 D를 직접적으로 죽인 것은 아닙니다. E의 폭행으로 인해 F가 죽었지만, 일반적으로는 뺨을 맞고 넘어진다 해도 죽지는 않습니다. G의 공장에서 일한 후 H가 희귀질환에 걸린 것은 사실이나, 희귀질환의 발병 원인이 공장에서의 유해물질 노출 때문이라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사례들에서 인과관계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일상적 정의 이상으로 인과관계를 엄밀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인과관계에 관한 학설들을 소개하여 법이 인과관계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의 장을 열고자 합니다. 시민이 법에서의 인과관계를 논의해야 하는 이유는 이것이 곧 책임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누구의 잘못으로 피해가 발생했냐는 질문은 곧 피해에 대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냐는 질문과 같습니다. 노동자, 소비자, 국민의 죽음 앞에서 기업과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이 일상이 되어버린 오늘날, 사회 정의를 실현하고 책임 있는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시민 차원에서 인과관계론을 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조건설   조건설은 ‘그것이 없었더라면 결과가 발생하지 않았을 관계’에 있는 모든 행위를 원인으로 인정하는 견해입니다. 결과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더라도 결과 발생에 한 조건으로서 작용하기만 했다면 모두 동등한 원인으로 봅니다. 조건설에 따른다면, 위에 소개한 (1)의 경우에서 A가 독약을 먹이지 않았다면 B는 죽지 않았을 것이므로 A의 행위는 B의 죽음의 원인이 됩니다. 같은 원리로 (2), (3), (4)의 경우에도 인과관계가 성립한다고 봅니다. 가장 직관적인 학설로, 대부분의 교과서에서 첫 번째로 소개되는 학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조건설은 치명적인 비판점들을 안고 있습니다. 가장 큰 결함은 인과관계의 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된다는 점입니다. 앞서 말했듯 조건설은 결과 발생에 작용한 모든 조건을 동등하게 파악합니다. 이를 적용할 경우 (1)의 상황에서 A에게 독약을 팔거나 제조법을 알려주는 행위, 독약을 통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점을 교육하는 행위, 심지어는 A를 출산하는 행위까지 모두 살인의 원인이 됩니다.    조건설을 적용하면 특정 상황에서 매우 불합리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갑과 을이 병에게 동시에 독약을 먹여 병이 죽는 상황을 생각해 봅시다. 조건설에 따르면 갑과 을은 둘 다 무죄입니다. 갑(을)이 독약을 먹이지 않았더라도, 을(갑)이 독약을 먹여 병이 죽었을 것이므로 갑과 을의 행위 자체는 병의 죽음과 ‘그것이 없었더라면 결과가 발생하지 않았을 관계’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모순들로 인해 실제 판결에 조건설을 적용하는 경우는 없지만, 조건설의 문제점들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인과관계론이 발전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는 분명 존재합니다. 합법칙적 조건설   합법칙적 조건설은 조건설의 결함을 극복하기 위해 ‘합법칙성’이라는 요소를 도입한 학설입니다. 합법칙성을 문자 그대로 풀어보면 법칙에 맞는 성질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때 법칙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바로 자연과학 법칙을 말합니다. 합법칙적 조건설에서는 가장 발전된 과학 지식을 활용하여 인과관계의 존재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앞서 조건설을 설명하면서 든 사례를 다시 보겠습니다. 갑과 을이 병에게 동시에 독약을 먹였을 때, 조건설의 관점에서는 둘 중 한 명이 독약을 먹이지 않았더라도 병은 죽었을 것이므로 둘 다 무죄로 보았습니다. 합법칙적 조건설의 경우에는 과학적으로 보았을 때 독약을 먹으면 사람이 죽는 것이 확실하고, 해당 사례에서 갑과 을 모두 병에게 독약을 먹여 병이 죽었으므로 둘의 행위 모두 병의 죽음의 원인이 된다고 봅니다.   이처럼 합법칙성을 적용하면 조건설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또한 최신의 자연과학적 연구 성과를 반영하는 만큼 ‘과학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장점들이 있어 합법칙적 조건설은 현재 학계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합법칙적 조건설의 경우에도 몇 가지 결점이 존재합니다. 우선 최신의 자연과학 내용을 활용해도 연구 부족, 과학지식의 한계 등으로 인해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사안이 있을 수 있습니다. 위에서 소개한 (4) 사례의 경우, 정황상 공장 내 유해물질과 희귀질환 간의 인과관계가 성립하는 것처럼 보여도 관련 연구가 부족하다면 인과관계를 인정하기가 곤란할 수 있습니다.   합법칙적 조건설의 경우 그 활용에 있어 뚜렷한 한계를 지니고 있기도 합니다. 합법칙적 조건설은 인과관계를 파악하는 데에는 분명 효과적입니다. 그러나 조건설과 마찬가지로 인과관계의 범위를 너무 넓게 보기에 행위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의 여부를 판단하기에는 부적절합니다. 따라서 ‘객관적 귀속이론’을 추가로 적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객관적 귀속이론은 쉽게 말해 사건의 결과가 바로 그 행위 때문에 일어난 것인지를 판단하는 이론으로, 오늘날 법학계에서 매우 논쟁적인 분야입니다. 이처럼 합법칙적 조건설을 실제로 판결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이론이, 그것도 논쟁이 매우 활발한 이론이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상당인과관계설  상당인과관계설은 ‘상당성’을 원인 판단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견해입니다. 상당성을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은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준 조건만을 원인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때 상당성의 판단은 사회생활을 통해 자연스레 얻을 수 있는 경험법칙에 근거합니다. 일반적으로 세 가지의 구체적인 판단기준이 제시됩니다. 첫 번째는 주관적 상당인과관계설로, 이는 행위자가 알고 있었거나 알 수 있었던 사정을 근거로 상당성을 판단합니다. 이 경우 위의 (3) 사례는 E가 F의 질병을 정확히 알지 못했으므로 E의 폭행은 F의 죽음에 대해 상당한 조건이라 볼 수 없고, 따라서 인과관계가 부정됩니다.  두 번째는 객관적 상당인과관계설로, 이미 존재했거나 일반인이 알 수 있는 사정을 근거로 상당성을 판단합니다. (3)의 사례에 적용해 보면, E가 몰랐다 하더라도 뇌수종이 존재했으므로 E의 폭행은 F의 죽음에 대해 상당한 조건이 되어 둘 사이의 인과관계가 긍정됩니다.  세 번째는 절충적 상당인과관계설로, 이는 행위자뿐만 아니라 통찰력 있는 사람이라면 알거나 예측할 수 있었던 사정까지 고려하여 상당성을 판단합니다. 절충적 입장은 전체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닙니다. 이 중 절충적 상당인과관계설의 경우 합법칙적 조건설 이전에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던 견해로, 현재도 판례의 기본입장에 해당합니다.   상당인과관계설 역시 비판점이 존재합니다. 가장 핵심적인 비판은 상당성의 판단이 모호하다는 점입니다. 행위자나 일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사정이 어디까지인지가 불명확하기 때문에, 판단에 있어 주관이 강하게 개입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판결의 일관성 결여로 이어져 법의 안정성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실제로 대법원은 위의 (3) 사례에 대해서는 E의 폭행과 F의 죽음 사이의 인과관계를 부정하였으나, 뇌수종이 아닌 고혈압, 심장질환 등이 문제가 된 경우에는 인과관계를 인정하였습니다. 또 피해자가 강간을 피하는 과정에서 창문으로 뛰어내려 사망 또는 부상을 입은 두 개의 사례에 대해 인과관계를 각각 인정 또는 부정하여 서로 반대되는 판결을 내린 바 있습니다. 이렇듯 상당인과관계설의 판단이 다소 비일관적이다보니 학계에서의 지지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금까지 법에서의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주요한 학설들을 소개해드렸습니다. 이제 여러분의 의견이 필요한 차례입니다. 법의 관점에서 인과관계를 어떻게 파악하는 것이 옳을까요? 저희가 소개한 견해들 중 선택하셔도 좋고, 새로운 주장을 해주셔도 좋습니다. 댓글을 통해 여러분의 생각을 나눠 주세요! 
공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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