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하고 자극적인 것은 틀렸다?
잔인하고 자극적인 장면을 담은 사진이나 영상을 통한 재현이 가진 정치적 한계에 대해서는 수잔 손택의 논의가 유명하다. 그러나 나는 그 논의가 짚지 못하는 점에 대해서 종종 생각해 보곤 했다. 그 시작은 서경식이 헨미 요의 소설을 두고 ’울트라 리얼리즘’이라고 규정한 대목을 읽으면서였다. 아무리 말해도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가능한 말하기란, 잔인한 현실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묘사해내며 눈앞에 들이미는 것외에 다른 방도가 있는가? 당신이 외면하는 현실은 이러하다고, 가감없이 노골적인 현실을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정치적 재현의 한 방식일 수는 없는가? 일전에 발표한 원고에 이런 문제의식이 포함되어 있다. 이태원 참사 직후부터 했던 얘기이지만 자세히 상술해서 공적 자리에서 언급한 건 처음이다. 이태원 참사 당시 업로드된 수많은 영상과 사진들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도덕적 비난을 가했다. 자극적인 장면을 아무런 검열없이 버젓이 올리고, 또 그걸 그대로 받아 내보내는 언론의 보도들, 수익을 올리려고 그 영상들을 활용하는 유튜버들… 하지만 그걸 비판하는 것만으로 충분했을까? 누군가에게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으므로 사진과 영상을 내려야 한다고들 말했다. 그러나 참사는 혐오와 부정에 둘러싸여 포위되어 있었고, 그렇다면 오히려, 당신들이 ‘놀다가 죽었다’며 남 일처럼 여기는 장면이 바로 이것이라고, 이 모습을 보고도 그렇게 가볍게 말할 수 있냐고 물었어야 하는 것 아닐까. 나아가, 사진과 영상을 비난할수록 참사 현장을 지켜본 이들에게서 목소리를 박탈하는 것 아니었을까. 나는 당시 거의 모든 영상을 다 찾아봤다. 그런 내게도 참사의 장면들은 비현실적이고 불가해한 것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 하고 묻기 이전에, 이게 대채 무슨 일이지? 싶은 장면들. 사람들이 뒤엉켜 있고, 사람들을 운반해 아스팔트 이곳저곳에서 CPR을 하고 있고, 그런 와중에 클럽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노랫소리들, 참사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너무나 비현실적인 장면들이었다. 그 한가운데에 있는 사람들 역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자신이 겪는 상황을 설명할 언어가 없을 때, 그들에게 주어진 언어라곤 그저 카메라를 들어 참사의 순간을 담아 SNS에 업로드하는 것밖에 없지 않았을까. 사실 그 영상과 사진들은 말을 잃은 사람들의 절박한 언어 아니었을까. 팔레스타인에 대한 정보를 찾아 헤매다 보니 지금 내 인스타 계정에는 들여다 보는 게 무서울 정도로 온갖 쇼츠와 사진들이 가득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SNS는 심리전이 벌어지는 뜨거운 전장이 되었던 바있다. 현대의 심리전의 주체는 국가와 군대이며, 이들에 의해 체계적으로 심리전 전술이 수행된다. 지금 심리전 역량에서조차도 이스라엘이 압도적이다. 애초에 팔레스타인은 ‘국가’조차 아닌 상태이고, 정규군과 게릴라군 사이에서 심리전 역량의 격차는 명백하다. 이스라엘은 외신 기자들을 전장에 동행시키며 옆에서 늘상 인터뷰를 하고, 자신들의 관점을 마치 ‘현장의 이야기’인 것처럼 주조해내고 있다. 한국 언론은 이스라엘 대변인의 브리핑을 장면을 담은 영상을 수도 없이 내보내지만, 하마스든 파타든 팔레스타인 측의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신들이 온 몸으로 겪고 있는 끔찍한 상황을 영상과 사진으로 담는 것 이외에 과연 어떤 목소리를 낼 수 있겠는가? 근대의 국민국가 체제와 국제법 체계 하에서, 전쟁은 기본적으로 국가가 치르는 것이다. 클라우제비츠는 근대 전쟁의 핵심적 요소 중 하나로 시민들의 열정과 지지를 지목한 바있다. 근대 전쟁의 성격은 총력전이고, 총력전은 전 국민적 역량과 자원을 동원하는 것이니만큼 시민들의 여론과 정서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데 핵심적 요인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인류 최대의 총력전이었던 세계 2차대전에서 본격적인 심리전이 등장해, 적의 사기를 빼앗는 동시에 아군과 시민들의 지지를 구하고자 했다. 이스라엘은 정확히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런데 팔레스타인은? 국가기구도 아니고, ‘살려달라’고 외치는 민간인들의 목소리를 심리전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저 ‘재현의 권력’을 박탈당한 존재들의 비명소리일 뿐이다. 극단적인 대항폭력은 보통 재현 권력의 비대칭성에서 온다. 일상적으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저질러온 테러와 학살은 전혀 보도되지 않았다. 아무리 말해도 아무도 듣지 않는 현실. 역설적으로 하마스의 ‘충격적인 공격’만이 사람들에게 들릴 수 있는 목소리였다. (왜 전태일을 비롯해 열사들이 분신을 하고, 대학생들이 미문화원에 방화를 했겠나?) 그렇다면 과연 근본적으로 누구의 잘못이란 말인가? 사람들 수백명이 죽어야 그제서야 관심을 기울이는, 바로 나와 당신 같은 사람들이야말로 사태를 이 지경으로 몰고간 가해자들 아닌가. 사람들이 죽고 있다. 이것만큼 명백한 문제가 없다. 죽어가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과연 지금 당신에게는 들리고 있는가. 들리지 않았다면 그것은 목소리가 미약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당신이 그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 하기 때문인가. 사진과 영상이 아무리 잔인하고 자극적인들 지금 그건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보여준들 과연 바뀔 수 있을까.
국제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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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의 평화와 한국사회의 태도
캠페인즈 미디어를 통해 직접 캠페이너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요! (해당 영상은 2023년 10월 17일 촬영했습니다) 세계 최초의 인권 조약은 무엇일까? 유엔이나 인권에 대해 조금이라도 들어본 사람이라면 세계인권선언이라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하루 차이로, UN 총회가 가장 먼저 채택한 것은 제노사이드 협약이다. 제노사이드 협약은 제2차 대전 시기의 잔혹행위를 국제사회가 ‘절대로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담아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 결의가 무색하게도 1945년 이후의 인류는 전쟁과 학살을 반복해왔다. 학자들은 1945년 이후 냉전 시기를 두고 그것을 ‘냉전Cold War’이라 일컫는 것은 매우 서구중심적인 관점이라고 비판했다. 이른바 제3세계의 경험으로 보자면 그 시기는 격렬한 ‘열전Hot War’의 시기였기 때문이다. 특히 1945년 8월 광복 이후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과 학살의 역사는 제3세계 국가들이 겪을 열전의 신호탄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누구보다 빠르게 식민지, 전쟁, 학살의 기억을 잊어버리기 위해 노력했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한 오늘날 서구 국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자의식을 가진 채 과거의 역사를 지금과는 무관한 옛날 얘기로만 받아들인다. 최근 몇 년 사이 극동아시아에서는 대만이나 한반도에서의 전쟁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도 높은 상황이지만, 우크라이나나 팔레스타인의 고통은 우리와 무관한 일처럼 여겨지고 있다. 특히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의해 오랜 식민주의적 지배를 받아왔지만, 한국사회는 식민지의 경험을 잊어버린 채 서구 미디어의 편향적인 보도와 중동 및 이슬람에 대한 스테레오타입화된 이데올로기적 편견으로만 팔레스타인을 바라본다. 물론 조금이라도 팔레스타인의 처지나 역사를 아는 이들은 하마스의 테러로만 현재의 상황을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특히 보수 개신교의 영향을 받는 이들은 이슬람에 대한 혐오적 편견과 이스라엘을 성지를 수호하는 핍박받는 유대인처럼 여기며 팔레스타인을 바라보는 한국사회의 여론을 형성하고 있다. 대개는 현재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라고 부르지만, 이 프레임에 비판적인 이들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실은 둘 모두 정확하지는 않은데,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국가’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 채 자기 땅에 유폐된 채 ‘하늘만 뚫린 감옥’에서 살아가고 있다. 팔레스타인 땅에 세워져 국가로 인정받는 것은 이스라엘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식민지’ 상황에 놓여 있다는 건 과장된 수사가 아니라 현실 그 자체다. 그렇다면 국가간의 교전을 뜻하는 ‘전쟁War’이 현재의 상황을 정확하게 담아내는 말일 수 있을까? 하마스조차 국가가 아니라 언론이 말하는 것처럼 무장정파 혹은 정당일 뿐이다. 전쟁이라기에는 너무나 비대칭적인, 압도적인 강자와 약자 사이의 관계다. 수많은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이 현재 살해되고 다치고 그들의 삶의 터전이 박살나는 상황에서, 우선은 학살을 막아야 한다는 데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물론 ‘자업자득’이라느니 ‘이슬람 박멸’ 따위를 외치는 비상식적인 사람들도 있고, 그들이야말로 1945년 이후 UN의 설립과 인권과 평화를 위한 국제법 및 국제사회의 노력을 깡그리 무너뜨리고 있다는 점에서 굳이 대화 상대로 여길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일단 학살을 막아야 한다. 그리고 평화적으로, 현재의 팔레스타인 문제에 ‘근본적 원인’을 해결해 갈 필요가 있다. 애초에 국제법상 불법적 상태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억압해 온 이스라엘의 식민지배가 없었다면 하마스가 테러를 할 이유가 없다. 하마스의 탄생과 성장을 지원해 민족주의적이고 세속주의적인 ‘파타’를 견제하려 했던 것 역시 다름 아닌 이스라엘이었다. 학살을 막고 팔레스타인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것의 중요성은 오늘날 더 이상 팔레스타인이나 우크라이나의 상황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데 있다. 헤게모니 국가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가 오늘날 심각하게 도전받고 있고, 미국에 응전하는 여러 강대국들이 부상하고 있다. 이를 과거의 냉전 시대처럼 양대 진영의 대결로만 볼 수 없는데, 러시아와 중국이 하나의 이념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100년 전 세계 1차대전 직전의 상황, 여러 제국주의 국가들의 경쟁과 제국 본토 바깥에서의 국지전이 일어나던 상황과 오히려 유사하다. 다만 미국은 EU 및 NATO 국가들을 한편으로 그리고 인도-태평양 전략을 다른 한편으로 하여 냉전 시대처럼 하나의 진영을 형성하려 하지만, 그것이 성공할지는 예측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이런 상황에서 강대국들 간의 또 다른 대리전이 발발할 가능성이 가장 큰 지역으로 대만과 한반도가 꼽히고 있다. 100년 전 인류가 저지른 과오를 21세기에 다시 반복할 것인가? 과거 전쟁과 학살, 식민지배를 겪은 인류는 평화와 인권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만들어 가기를 희망했다. 그 희망이 완벽히 실현됐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오늘날엔 그조차도 급속히 후퇴하고 있는 중이다. 이렇듯 국제질서의 전환기에 우리는 무엇으로 어떻게 다시 평화를 만들어 갈 것인가? 2차 대전 이후 탄생한 평화학은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격언을 다음과 같이 뒤집었다. “평화를 원하거든 평화를 준비하라.” 전쟁은 반드시 사회구조적 지배와 증오의 심성을 남긴다. 전쟁은 평화가 아니라 전쟁의 불씨를 남길 뿐이다. 평화를 통해, 앞으로의 평화를 써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학살을 옹호하는 논리와 과감하게 단절하고, 평화에 기반해 전쟁과 지배, 착취와 억압이 없는 팔레스타인, 우크라이나, 그리고 새로운 국제질서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평범한 시민들의 자그마한 염원들이 모이는 것에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국제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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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부림’이 만들어낼 사회의 모습
나는 최근의 상황이 굉장히 ‘문화연구적 모먼트’라고 생각한다. 근래 번역된 <위기 관리>가 딱 그러할텐데, 권위주의적 치안 메커니즘을 강화하면서 사회의 공통감각을 재구성하는 보수주의적 기획을 성사시킬 절호의 기회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언어와 정동들의 무수한 다발들 사이에 작용하는 여러 결의 흐름들을 지켜보면서 그것이 어떤 방향으로 귀결되어 갈 것인지, 말하자면 어지러운 기상 상태에서 바람의 흐름을 실시간으로 예민하게 주시하는 풍향계가 되는 것이 문화연구의 역할이겠다는 생각을 한다. 7월부터 잼버리까지 이어지는 무수한 ‘국가 실패’의 사건들 속에서 ‘칼부림’은 어떤 계기가 될지를 유심히 보게 된다. 바람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정권 차원에서의 정치적 기획만이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찐따난동쇼’라는 명명이 커뮤니티를 통해 확산되고 있는데, 이 역시 고민되는 대목이다. 사실 굉장히 이기적인 명명이라고 생각한다. 범죄를 예외적인 사건으로 치부하고 범죄자 개개인의 성향에 그 원인을 둔다는 점에서, 작금의 사건들을 사회적 문제로 인정하지 않은 채 무정형의 특정한 사람들(‘찐따’)에게 낙인을 가하는 명명 방식이다. 이는 무엇보다 피해자들에 대한 예의를 결여하고 있으며, 가해자를 분석함으로써 사회를 개선할 여지도 차단한다. 만약 이 명명이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사태에 대한 정확한 명명이라서가 아니라, ‘칼부림’ 사건의 피의자들의 면면을 상상하는 대중들의 욕망이나 관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다만 매우 ‘방어적’인 의도가 담긴 명명이라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겠다. 말하자면 과거 강남역 살인사건의 경우 그것을 ‘여성혐오’ 범죄로 규정함으로써 그동안 가시화되지 않았던, 여성들이 일상에서 겪어온 폭력들을 드러낼 수 있었다. 반대로 ‘찐따난동쇼’는 예외적인 사건이고 별 것 아닌 이들이 피운 난동이므로, 별 것 아닌 일로 받아들이고 일상을 유지하자는 의지를 담은 명명이다. (그렇기에 이 사건들에는 ‘포스트잇’ 애도가 등장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는 평화로운 일상 따윈 애초에 없었다는 선언을 통해 사회의 변화로 나아가는 대신, 평화로운 일상을 어떻게든 지켜내기 위해 문제를 망각하고 덮어버리고자 하는 의도가 전제되어 있다. 이는 사실 그만큼 이미 ‘일상’을 온존하기 어려울 정도의 불안이 공유되고 있다는 걸로 읽힌다. 비단 칼부림 사건들만이 아니라 최근 들어 사회가 무너지고 있다는 감각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많은 이들이 공유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방어적이고 회피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고서는 불안과 스트레스를 견딜 수 없는 것일 게다. 더 큰 문제는 정치다. 누구도 ‘사과’하지 않는다. 혹은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피해자들, 그리고 시민들에게 고통과 걱정을 끼쳐 죄송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토록 사회가 무너지는 상황에 대해 자신이 큰 책임이 있다고 고백하지 않는다. 그럴수록 시민들은 개인적인 해법 이상의 무언가를 상상하기 어려워진다. 자구책만이 범람하는 것이다. 이는 작금의 위기를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심화시킬 뿐이다. 칼부림들은 명백한 ’공동체‘의 문제다. 공동체라는 감각의 결여, 한국사회라는 공동체에 대한 사상의 부재는 정치로 하여금 작금의 사건들을 공동체의 문제로 인식하고, 공동체의 해법을 통해 문제를 풀어나갈 가능성 자체를 소거하고 있다. 그러니 어떤 사과나 책임의 표명 대신 고작해야 ’사형제‘ 운운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누구도 현재의 사건들을 ‘공동체 전체의 비극’으로 규정하고 집단적 애도를 표함으로써 사회에 대한 감각을 복원해내려고 하지 않는다. 사실 익숙하다면 익숙한 방식이다. 폭력적인 발달장애 아동을 분리해서 특수학교(또는 학급)으로 보내자거나, 생기부를 통해 학교폭력이나 교사를 향한 폭력이 대학입시에 불리하게 작용하게끔 만들자는 제도적 제안들은 사형제 운운과 같은 궤에 있다. 문제의 원인을 짚지 않는 편의주의적 임시방편책이자 한국사회가 지금껏 익숙하게 반복해온 대처방식을 더 강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아니, 실은 문제의 원인을 문제의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다고 말해야 정확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모순’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더 심화시키고 있는 셈이다. 뒤르케임식으로 생각해보자면, 자살처럼 칼부림도 아노미적인 상태를 표현하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온갖 살인예고들에서도 규범의 부재나 냉소가 강하게 읽힌다.) 개개인의 동기가 전적으로 사회의 아노미 상태로 설명되지는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러한 범죄들의 ‘효과’는 지금 명백한 아노미를 가져오고 있다. 그렇다면, 사회는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소생할 수 있는가를 질문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나는 정치의 ‘상징정치적’ 역할이 크다고 생각하지만, 당연하게도 정치가 모든 것을 다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상적으로 타인과의 유대를 경험하고 그 가운에 공동체로서의 사회를 상상할 수 있는 ‘작은 계기들’ 자체가 거의 멸종상태다. 포스트잇이 밀려난 자리에 스프레이와 삼단봉이 들어서고 있다. 그런 가운데 경찰은 치안의 논리를 일상 더 깊숙한 곳까지 확장하고 있는 중이다. 현재 잼버리로 골머리를 썩고 있는 정권이 앞으로 어떤 담론을 구성해 갈 것인지 주시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현재 매우 중요한 순간을 통과하는 중이라는 개인적인 예감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재해·위험 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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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권 침해가 아닌 노동권의 보호: 서이초 교사를 추모하며
‘교권’이라는 단어에 담긴 맥락과 계보가 아주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것이라, 교권이라는 단어를 강조할 때마다 알러지가 돋는 느낌이다. 특히나 2010년대 학생인권조례 성립 과정에서 교권이라는 단어는 학생인권에 대립되는 것으로서 교사의 권위와 체벌을 정당화하는 맥락에서 사용되어 왔다. 그렇기에 교권을 말하면 자연스레 학생인권의 축소(?)를 연상시키는 프레임이 작동한다.  나는 유년기에 교사에 대한 불신을 뼛속깊이 체화한 인간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다수의 교사들이 작금의 사건의 원인을 학생인권이 증대되고 교사의 권위가 하락했던 데에서 찾지는 않을 것이라 믿는다(아니, 믿고 싶다). 하지만 문제를 진단할 언어로 계속 ’교권‘이 소환된다면, 그 언어에 각인된 역사성과 맥락에 따라 계속 학생과 교사를 대립시키는 프레임이 작동할 수밖에 없다. 아마 칼럼에 쓰겠지만, 이건 약자를 대립시키면서 책임을 전가하는 전형적인 통치술에 지나지 않는다.  언어가 중요한데, 교권이 아니라 ‘노동권‘이 더 정확할 것이다. 작년에 참여한 연구 프로젝트에서 공무원과 사회복지사들을 인타뷰하면서 그들이 겪는 ’악성민원‘에 대해 많이 들을 수 있었다. 문제는 민원의 일선 현장에서 그들이 그 모든 스트레스와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무언가 문제가 됐을 때 조직이 그를 보호하기보다는 문책하는 태도를 취하기 쉽다는 것이다. 민원이라는 업무를 담당하는 노동자는 결국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한 채 적대적인 민원인으로부터 자력구제를 하는 수밖에 없게 된다. (이것이 공무원들이 그토록 방어적이고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게 만드는 중요한 원인이다.)  이들이 겪는 심리적 고통은 일종의 ’산업재해‘이다. 그리규 산업재해로부터 노동자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노동권’의 문제로 사건을 봐야만 공무원이나 교사들이 제대로 제도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직 좀 더 조사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이번에 돌아가신 교사 역시 그런 민원으로부터 시달렸다는 얘기들이 나온다. 그리고 얼마전 학생으로부터 폭행당했다는 교사의 사례와 더불어, ’교권추락‘ 프레임이 작동하고 있다. 하지만 이 프레임에는 자살한 교사, 폭행당한 교사를 왜 학교 당국이 지켜주지 못했는지에 대한 질문이 빠져있다.  교실은 정치적이고 갈등적인 공간이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동거하고 같이 살아도 온갖 갈등이 생겨나는데 교실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문제는 그런 갈등을 상호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해결해내는 경험이 부재한 한국사회에 있지, 갈등 자체가 문제가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갈등을 문제시하는 태도는 갈등을 억압하고, 억압된 갈등은 더욱더 극단적인 형태로 표출될 것이다.  다만 필요한 것은 그런 갈등을 교사 혼자 감당하게 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교사도 실수할 수 있고 틀릴 수도 있다. 그런 모든 시행착오의 과정들을 보장하면서, 학부모나 학생들의 부당한 민원이나 공격에 대해서 교사가 그것을 홀로 책임지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과 문화를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이는 교사가 수업과 교실을 꾸려나갈 자율적 재량권을 인정하는 일과 배치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교사에게 보장되어야 할 ‘노동권’의 문제로 다뤄질 수 있다.  국가나 조직이 책임지지 않는 사회에서 개개인들은 자력구제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럴수록 책임은 더 약한 이들에게 전가되고, 악성 민원인처럼 어떻게든 자력구제하려는 이들은 계속 생겨날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사회의 문제다. 그렇기에 교육현장의 문제를 넘어서서 사회적 대안을 모색하는 방향 속에서 오히려 지금의 사건들의 해결책을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만 한국사회가 문제를 해결하는 기존의 방식(갈등의 억압, 책임의 전가 등)을 넘어서 다른 길을 마련할 가능성이 생긴다.  이 글은 제 페이스북에도 동시에 업로드 되었습니다. 
교육 공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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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말은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시설에서 탈출한 얼룩말은 동정과 귀여움의 대상이 되고, 마찬가지로 시설에서 탈출한 장애인은 비난과 혐오의 대상이 된다. 만약 얼룩말이 누군가를 다치게 했다면 어땠을까. 만약 그랬다면, 다친 이에 대한 안타까움과는 별개로, 어떻게든 제압해서 안전하게 시설에 가두어야 할 위험한 존재로 취급받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얼룩말과 장애인은 과연 구분될 수 있었을까. 누구의 평화이고 누구의 폭력인가. 평화와 폭력에 대한 강의를 하면서 수시로 반복하는 질문이다. 그렇다면 누구의 위험이고 누구의 안전인가. 시설은 누구의 안전을 위해 존재하는가. 왜 사람들은 (사람들에게도 얼룩말에게도) 위험천만했던 얼룩말의 탈출을 그토록 재빨리, 우연히 일어난 귀여운 에피소드로 취급해버리는가? 그것은 무엇을 지워버린 채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시도인가? 지워지는 건 무엇인가? 그 평화로운 일상은 과연 누구의 것인가? 평화를 깨뜨리고 사회가 위험과 폭력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하는 장애인은, 존재 자체가 그 위험을 증언하고 있기에 위험한 존재가 된다. 위험한 존재의 등장을 사람들은 반기지 않는다. 그것은 기존의 일상을 다시 보게 만들고, 폭력의 시스템에 실은 동조해왔음을 자인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불편하고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증언은 언제나 예언이다. 다치거나 아프거나 늙으면 당신도 시설로 들어가야 한다고, 실은 학교나 군대나 감옥이나 공장까지도 시설의 또 다른 종류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나아가 형제복지원처럼,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 갑작스레 위험한 존재가 되어 시설에 가둬지곤 한다는 것까지도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면 당신이라고 과연 거기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역사를 통틀어 당대에 사랑받는 위험한 예언자는 없다. 그러나 세상의 희망은, 거대한 폭력의 연쇄에 가해자로 연루되어 간 사람들이 아니라, 예언자의 말을 들을 줄 알고 간신히 산속으로 낯선 땅으로 도망쳤던 사람들일 것이다. 얼룩말은 그 온 몸으로 내달려 과연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지하철에 타는 장애인들은 과연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몸뚱아리 밖에 가진 것 없는 이들이 제 몸으로 깎아가며 무언가를 말한다면, 그럴 때 문제는 말하는 쪽이 아니라 듣는 쪽에 있기 마련이다. 이 글은 제 페이스북에도 동시에 업로드 되었습니다. 
장애인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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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이태원과 세월호, 같은가 다른가?
이태원을 세월호로 만들지 말라고 한다. 첨예한 사회적 이슈들에서 언제나 소수의견으로 살아온 입장에서 보자면 참 이상한 용법이다. 이태원과 세월호를 의미화하는 게 각기 다르니 언어에 어긋남이 발생한다. 가령 이태원을 세월호로 만들지 말라는 사람들은 ‘세월호’를 정쟁화되고 불순해진 것으로 본다. 말하자면 민주당의 정권교체의 도구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세월호 참사와 그 운동이 가진 모습의 아주 협소한 부분만을 과잉대표하게 만든다. 대책위 내부에서도 이와 관련한 긴장과 논쟁이 존재했고, 유가족들도 운동이 도구화되는 것에 결코 동의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이태원 참사를 아직 덜 오염된 비정치적인 사안으로 본다는 점에서도 참사의 의미를 협소하게 고정하려 한다. 그 반대편에서 이태원과 세월호가 단순하게 동일하다고 하는 이들은 일종의 거울상에 해당한다. 정권퇴진 및 교체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역시 두 참사의 의미를 정권의 문제로 아주 협소하게 규정하는 것이며, 유가족이나 참사에 슬퍼하는 사람들의 여러 얼굴을 주변화한다. 이는 보통 참사를 과도하게 ‘정치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정권교체의 의미만을 부여한 채 다른 모든 정치적 의미를 제거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냉소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참사를 탈정치화한다. 나는 이태원과 세월호는 각론에서 다르지만 총론적으로는 같다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로 세월호 참사와는 다르다. 하지만 같기도 한데, 진영론의 정치 사이에 갇혀 있다는 점이 첫 번째 공통점이다. 나는 여기서 연역주의적 사고를 본다. 말하자면 다들 이미 ‘정답’이 있어서 그 정답을 적용하는 것으로 사안을 해석하고 있다. 그것이 얼마나 지적으로 게으른지, 그들은 알지 못한다. 이런 연역주의적 사고는 정답을 강요함으로써 ‘질문’을 봉쇄한다. 모든 새로운 사안은 새롭기에 질문을 요한다. 과거의 사안과 완전하게 동일한 새로운 사안이란 건 없다. 다만 참조할 수 있을 뿐, 황망한 참사에 응답하는 태도란 집요하게 질문을 던지면서 자신의 익숙한 세계를 박살내는 것이어야 한다. 그 익숙한 세계에 갇혀 있었기에 우리는 참사를 막지 못한 것이므로. 이는 근본적으로 정치적인 사고다. 정치의 의미의 폭을 협소하게 만들어 그들이 지배하는 체제를 정당화하는 것에 태클을 걸기 때문이다. 참사의 의미가 정권교체로 환원되어야 하는 것 혹은 참사의 의미가 정권교체 투쟁으로 나아가선 안 된다는 것, 둘 모두 정권교체의 문제로 참사의 의미를 고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결론적으로 참사를 ‘탈정치화’하는 것이며, 그러한 탈정치화의 정치를 깨부수는 질문이야말로 더욱 정치적인 것이다. 나는 ‘국가’의 문제라는 점에서, 그리고 국가의 문제에 대한 ‘집단기억’이라는 점에서 세월호와 이태원이 연속선상에 있다고 본다. 우선 국가는 다시 한 번 ‘배신’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국가와 정부가 다르다는 것이다. 정부는 국가를 상징적으로 대리 혹은 재현하지만, 그렇다고 정부가 국가인 것은 아니다. 보수진영이 ‘참사를 못 막은 건 문재인 정권 때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아서’라고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늘어 놓았는데, 윤석열 정부의 직접적 책임을 전제한다면 역설적이게도 그 궤변은 옳다. 정권이 교체된다고 해서 시스템 부재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어떤 정부가 오더라도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게다가 어떤 ‘참사’에서 문제인 정부는 유능했지만 어떤 경우엔 무책임하고 무능했다. 나는 여성과 노동자가 겪는 폭력과 죽음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한계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더군다나 집단기억의 문제가 있다. 이태원 참사에서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는 건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십년도 채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90년대의 여러 참사들을 떠올리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여러 가지 장면이나 원인이 겹쳐지기도 하니, 보수진영이 세월호와 이태원을 다르다고 윽박지르는 것이야말로 이상한 일이다. 그렇다고 두 참사를 부각하면서 다른 약자들의 죽음에는 무관심한 민주진영에게도 동의할 수 없다. 그것은 여러 죽음들을 간에 위계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러 사회적 죽음들이 각각의 성격과 맥락을 간직하면서도 하나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국가의 구조적 배신이 그것이다. 세월호와 이태원 사이에, 2016년 5월에 강남역과 구의역에서 사람이 죽었고 2022년 9월과 10월에 신당역과 평택SPL 공장에서 사람이 죽었다. 그외에도 즐비한 죽음들은 모두가 다 참사이며, 서로 다르지만 동등하게 중요한 것들이다. 하물며 제대로 애도되지 못한 코로나19의 상처가 이태원 참사를 짓누르고 있다. 나는 참사의 의미를 좁게 규정하려 하는 모든 담론들에 반대한다. 참사는 그런 의미에서 (명단 공개에 찬동한 사람들의 폭력적 언어를 빌리자면) ‘공공재’여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질문하고 성찰할 수 있는 공동의 경험이자 지적 자원이 되어야 한다. 한 가지만 덧붙이면, 이태원 참사는 ‘퀴어들의 참사’이기도 하다. 그것은 문재인 정부 시기의 이슈화된 혹은 드러나지 않은 무수한 죽음들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태원과 세월호의 관계에 대한 진영론적인 말들은 다 거짓말들이다. 2022.11.3 [이태원 참사] ‘상주’ 없는 애도 기간  2022.11.7 [이태원 참사] 상징과 언어가 없는 참사 2022.11.9 [이태원 참사] 고통을 느끼지 않고 기억할 수 있는가? - 참사의 명명법, 그리고 미디어의 보도 원칙 2022.11.23 [이태원 참사] 일상과 함께 가는 애도 2022.11.24 [이태원 참사] 이태원과 세월호, 같은가 다른가?
10.29 이태원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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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일상과 함께 가는 애도
슬픔과 애도의 시간이 ‘일상’과 구분된다고 믿는 것도 이분법적인 사고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에는 상실의 중력이 없는 일상의 시간으로 얼른 복귀하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매년 기념일이 되면 잠깐 일상에서 과거로 돌아가기를 허락받으면서, 다시 산 사람의 평온한 일상을 살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이분법에서 트라우마는 사라져야 할 병리적 증상이다. 고통스런 과거가 갑작스럽게 찾아와 평온한 일상을 위협하고, 그 방문은 어무나 우연한 것이라 통제되기 힘들다. 그러니 트라우마는 치료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슬픔이 표백된 평온한 일상으로 얼른 돌아가도록, 어떤 트라우마적 바이러스도 틈입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애도와 일상을 구분짓는 것은 이상한 시간 개념이다. 슬픔에 젖는 것은 예외적 시간이고 일탈이라 재빠르게 일상이라는 정상적 시간대로 돌아가야 한다. 나는 이런 이분법이 현실과도 맞지 않으며, 무엇보다 슬픔에 사로잡히지 않은 이의 시선에서 바라본 것처럼 느껴진다. 다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이것은 상실의 본질이다. 그러니 과거의 평온한 일상으로도 당연히 돌아갈 수 없다. 상실은 돌이킬 수 없는 영원한 부재를 의미한다. 상실과 그로 인한 애도는 일상 밖의 예외상태가 아니라, 일상의 일부를 이루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천천히 잦아들고 나아지겠지만 가끔씩 떠오르고, 슬프지만 동시에 미소지을 수 있는 때도 찾아온다. 상실된 것은 다시 채워지지 않지만 대신 삶은 그보다 풍부하기에 상실 외에도 많은 것들이 있다. 아마 유물론적으로 얘기한다면 애도와 일상의 이분법은 노동하지 않고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상실에도 불구하고 생을 이어가기 위해 선택한 기억과 망각의 방식인지도 모른다. 애도를 위해 온전하게 자신의 시간과 애너지를 쏟을 수 있는 아주 잠깐의 예외적 시간을 용납받은 다음, 다시 생활을 위해 일하고 돌보며 살아야 한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 더해 타인의 슬픔과 애도를 수용하고 지지하는 데 인내심이 없는 사회의 각박함도 한몫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한국사회가 그보단 더 성숙할 거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혐오와 부인의 담론이 기승을 부리지만 그래도 선하고 좋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일상에서 드문드문 상실이 다시 떠오를 때면 그 곁에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런 시간을 허용할 줄 아는, 침묵과 포옹이 따스한 언어가 될 수 있음을 아는 사람들 말이다. 상실로부터 해방될 수는 없지만 상실을 대처하며 일상을 회복해가는 과정은 저마다 제각각이다. 아직 희생자가 확실해지지도 않은, 그러니까 사람이 아직 죽지도 않은 상황에서 국가의 애도를 표한 정부의 방식은 얼른 다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도록 종용하는 것이다. 반대로 ’퇴진이 추모다’를 외치는 이들은 슬픔을 시간을 전혀 허용하지 않은 채 그것을 분노의 땔감으로 전용하면서, 사실상 ‘퇴진만이 추모다’가 되도록 애도의 방식을 독점하려 한다. 그 모든 것들에 말문이 막힌 사람들은 대체 어디서 상실을 마주하고 그것을 자기 일상의 일부가 되도록 하는 시간을 허용받을 수 있을까? 2022.11.3 [이태원 참사] ‘상주’ 없는 애도 기간  2022.11.7 [이태원 참사] 상징과 언어가 없는 참사 2022.11.9 [이태원 참사] 고통을 느끼지 않고 기억할 수 있는가? - 참사의 명명법, 그리고 미디어의 보도 원칙 2022.11.23 [이태원 참사] 일상과 함께 가는 애도 2022.11.24 [이태원 참사] 이태원과 세월호, 같은가 다른가?
10.29 이태원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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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고통을 느끼지 않고 기억할 수 있는가? - 참사의 명명법, 그리고 미디어의 보도 원칙
이태원 참사 혹은 10.29 참사. 참사의 명명에 대한 논쟁이 인다. 나는 이태원 참사라는 쪽에 무게를 싣고 싶다. 자세하게 찾아보지 못했고 오피셜한 글을 쓰려면 논의들을 좀 봐야겠지만, 크게 1) 지역에 대한 편견과 낙인, 혐오가 생길 수 있으며, 2) 사고장소를 언급하는 것만으로 불안과 공포가 생겨날 수 있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사실 1)의 근거가 이태원 참사에도 적용될 수 있는지는 따져봐야 할 것 같다. 당장 이태원이나 용산 주민이 참사의 직접적인 대상이라고 단언하긴 힘들다. 피해자에 외국인들도 있는 마당에, 가령 ‘태안 기름유출 참사’라는 명명이 지역에 대한 낙인으로 이어진 것과 동일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란 예단은 섣부르다. 근본적인 문제는 권력관계일 것이다. 태안이라든지 혹은 안산(세월호), 광주(5.18) 등에 대한 낙인과 혐오 담론은 그 지역에 대한 인식이 권력관계와 결부되기 때문이다. 지방이라거나 시골이라거나 가난한 지역이라는 등의 인식과 결부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 한복판의, 그것도 인파로 북적북적한 ‘힙한’ 동네가 기존에 혐오 담론의 대상이 된 지역과 동일하다고 말하긴 어려워 보인다. 2016년의 ‘강남역 살인사건’이란 명명이 강남역 일대를 우범지역으로 만들지 못했던 것처럼. 더 중요한 문제는 2)이다. 트라우마와 치유라는 담론이 너무 기능적인 또는 개인적인 수준에서 다뤄지고 있다는 우려가 든다. 생존자들의 참사 기억이 부각되어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것은 문제적이다. 하지만 ‘망각’이 치유는 아니다. 참사를 사고로, 희생자를 사망자로 ‘중립화’라는 언어가 가진 문제와 유사하게, 이태원이라는 장소성을 제거한 10.29 참사 역시 참사를 추상화하고 중립화하는 뉘앙스를 지닌다. 역사적으로 달력을 통해 매해 기념일을 제정하는 관행은 근대국가가 집단기억을 형성해 ‘네이션’을 구성하려는 기획에서 출발했다. 물론 저항 기억 역시 달력에 기반해 매해마다 기억을 기념한다. 하지만 그 저항 기역은 추상적 날짜가 아니라 장소성과 강하게 결부된다. 국가는 5.18이나 4.3이라고 명명(기억의 제도화, 국가의 공식기억화)하지만, 5월이 되면 광주의 어른들은 구도청 일대로 나가 시름시름 앓고, 4월이 되면 제주는 마을마다 같은 날 제사를 지내왔다(마을 사람들을 한 데 모아 한꺼번에 학살했으므로). 추상적인 날짜에는 담기지 않는 장소성의 구체적 감각이란 게 있는 것이다. 장소에 기반한 구체적 감각은 지역이 공유하는 집단기억으로 이어지며, 그 기억으로부터 저항 운동이 생겨난다. 그렇기에 이태원이 놓인 장소성을 놓쳐선 안 된다. 그곳이 미군기지 옆에 놓인 동네였기에 상업이 발달하고 외국인들이 찾는 장소가 될 수 있었고, 그러면서 다양한 역사적 사연과 아픔들이 이태원에 녹아들어 있다. 나아가 기독교 세력이 헬로윈 축제를 문란하다고 낙인 찍고 서양문화라고 비난하는 데는, 이태원이 퀴어들이 자주 드나드는 장소라는 점과 떼어놓을 수 없다. 156명의 사망자는 모두 이성애자일까? 모두 ‘한국인’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런 장소성의 구체적인 맥락들과 결부될 때, 이태원 참사의 의미는 더 풍부해질 수 있다. 또한 참사로부터 생겨나는 운동들 역시 장소에 기반한 집단 기억과 풍부한 맥락에 기반해 더 많은 상상력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장소 연구, 기억 연구들이 장소와 기억이 얼마나 강하게 결부된 것인지 오랫동안 지적해왔음을 강조하고 싶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더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소를 호명하지 않음으로써 기억을 옅고 흐리게 만드는 것은 ‘고통’을 축소하려는 의도와 연결된다. 하지만 과연 고통을 느끼지 않고 기억할 수 있을까? 특히나 이태원 참사를 ‘놀다가 죽었다’며 ‘사적인 죽음’으로 이해하고, 참사의 원인을 희생자와 생존자에게 전가하며, 마치 참사를 ‘남의 일’인양 생각하는 지금의 사회 분위기에서, 참사를 중립화, 추상화하는 방식의 언어는 오히려 망각과 부인에 일조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참사 현장의 영상과 사진을 공유하거나 보여주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는 좀 따져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이 불안과 공포를 조성하고 트라우마를 만들어낼 수 있다. 재현의 윤리 문제에서도 자극적인 사진과 영상을 활용하는 것은 문제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잘 감각하기도 상상하기도 어려운 비현실적인 참사를 이해할 수 있는 언어가 없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세월호 참사는 가라앉는 배의 모습 하나만으로도 ‘이해’가 가능하지만, 압사 사고는 정말로 상상하기도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참사의 성격이 많이 다르다. 이태원 참사에는 참사의 사회적 의미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언어나 상징이 없다. (나는 참사 초기에 현장의 영상과 사진을 찍어 올리는 사람들에게 화가 났다. 따봉 받으려는 관종으로 보여서.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그들은 자신들이 보고 겪은 것을 ‘말’하려 했던 것이다. 언어가 될 수 없는 참담한 광경 앞에서 그들이 할 수 있었던 말은 영상과 사진이었다.) 이는 온갖 부인 담론이 팽배해지는 조건으로 작용한다. 애도를 강요하지 마라거나 놀다가 죽었다는 식의 위악의 담론이 힘을 얻는 것이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참사와 그것의 사회적 의미를 말한다는 것은, 즉 듣기를 거부하는 자들이 듣지 않을 수 없도록 말한다는 것은, 그들이 도저히 지나칠 수 없도록 참사의 참상을 눈앞에 들이대는 것일 수밖에 없다. 미디어가 자극적인 보도를 해서 안 된다는 데에 동의하지만, 진실을 알리고 눈 감으려는 사람들까지도 듣게 하려면 참사를 정면으로 다루는 것도 필요하다. 미디어의 보도와 재현 방식이 어떠해야 하는지 좀 더 복잡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보지도 듣지도 않으려 하는 사람들에겐 ‘고통’이 필요하다. 아프지 않으면 자신의 문제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아프고 고통스러워야 ‘기억’한다. 목격자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타인의 고통과 죽음에 응답하려는 책임감을 느끼고 타인과 연루되어 있음을 자각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 연루와 책임의 태도를 취하는 방식도 속도도 제각각이다. 그러나 어떤 목격자들은 ‘방관자’이다. 그들은 자신과 타인의 죽음이 연결되어 있음을 인정하지 않고 감각하지 못한다. 반대로 그날 그 현장에 있던 생존자와 목격자들은 죄책감이나 미안함을 갖는다. 그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감각이며 자책으로 이어지기 쉽다. 나는 그들이 자책하며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이를 위해선 생존자에 대한 사회적 지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이 느끼는 미안함과 죄책감은, 도저히 부정할 수 없이 자신이 참사에 강하게 연루되어 있다는 감각이기도 하다. 그들은 이미 고통스럽고 그 고통으로 인해 ‘기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미안함’은 그런 의미에서 응답책임을 가능케 하는 연루의 감각 그 자체다. 그렇다면 과연 ‘방관자’들을 그 고통에서 면제시키는 것은 옳은 일일까? 캠페인즈에 관련 이슈로 '투표' 10·29 참사와 이태원 참사, 어떻게 불러야 할까요?가 개설되어 있으니 투표하고 댓글로 토론을 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2022.11.3 [이태원 참사] ‘상주’ 없는 애도 기간  2022.11.7 [이태원 참사] 상징과 언어가 없는 참사 2022.11.9 [이태원 참사] 고통을 느끼지 않고 기억할 수 있는가? - 참사의 명명법, 그리고 미디어의 보도 원칙 2022.11.23 [이태원 참사] 일상과 함께 가는 애도 2022.11.24 [이태원 참사] 이태원과 세월호, 같은가 다른가?
10.29 이태원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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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상징과 언어가 없는 참사
‘놀다가 죽은 거 아니냐’는 생각이 꽤 넓게 공유되고 있는 걸로 보인다. 이를 좀 구분해서 보자면 냉소하고 비아냥대기 위해 ‘놀다가 죽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비극적이고 슬픈 일이긴 한데, 놀다가 죽은 건데 너무 정치적으로 몰아가는 거 아닌가’라는 의문을 표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인식에는 헬로윈 축제가 주최가 없는 ‘사적인 행사’이기에 국가의 책임이 옅고, 참사 현장에서도 경찰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별로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다. 근거를 들어 이런 논리를 반박하는 건 어렵지 않다. 당장 참사 당일 관료들의 대응 실패와 시스템 부재에 대한 보도들이 연일 줄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행정안전부 및 서울경찰청와 용산경찰서, 서울교통공사, 보건복지부 및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등에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참사를 예방하지도 발빠르게 대응하지도 못한 채 피해를 만들고 키웠다. 반대로 과거의 헬로윈 축제 당시 안전통제를 비롯해 참사 3시간 전 시민들에 의한 자발적 통제가 일어났던 사례는 충분히 ‘살릴 수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사적인 죽음’이라는 프레임을 극복하는 데는 이런 논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세월호 참사가 ‘공적인’ 문제란 것은 사실 설명할 필요가 없다. 수학여행은 학교(국가를 상징하기도 하는)의 공식 행사이고, 직접적인 물리적 폭력이 아니더라도 가해와 피해가 너무나 선명했다. 선장과 선원, 진도 VTS와 해경, 나아가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가해자였다. 반면 이태원 참사(10.29 참사라는 용어는 개인적으로 아직 유보적)는 다르다. 직접적인 수준에서의 폭력, 즉 직접적인 가해와 피해만이 가시화된 채 다른 것들은 불투명하고 뒤엉켜 있다. 그날 그 현장에 있던 ‘놀러갔던 사람들’이 피해자이자 가해자로서 얽혀 있는 걸로 보이는 것이다. 그런 시선에서 보면, 서로 (자발적으로) 밀집해서 깔려죽었다는 아주 가시적인 사실만이 덩그러니 남아있다. 이로 인해 국가나 관료, 정부나 시스템처럼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문제들은 비가시화된다. 가령, “그 많은 사람들 사이에 들어가서 경찰이 통제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은 경찰의 책임을 추궁하는 것을 가로막는다. “정부가 강제하거나 주최한 것이 아닌데 대체 정부와 참사는 무슨 상관일까?” 라는 질문은 정부의 책임과 시스템 부재의 문제를 가려버린다. 즉, 왜 정부와 관료가 가해자인지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일단 세월호와 비교해 덜 선명한 참사인 것이다. 또한 언어가 없다. 언어 없이 애도를 가장한 침묵을 강제한 정부도 그 원인이고, 진영화된 구도로 빨려들어가지 않으려 할수록 혹은 거기에 빨려들어갈수록, 언어가 없는 것이다. 이 참사가 대체 무엇인지 직관적으로 이해할 언어/상징이 없다. 그런 맥락들로 인해 ‘사적인 죽음’으로 이해하는 프레임이 작동하기 쉬운 것이다. 내겐 결국 재현이나 운동의 문제로 귀결된다. 세월호 참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투명하고 모호하고 구조적 문제가 비가시화된 상황에서, 어떤 언어와 상징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사람들에게 직관적으로 이 참사를 이해시킬 수 있을까? (좌절스럽게도 ‘놀다가 죽었다’가 현재로선 가장 직관적으로 느껴진다.) 이 참사를 설명하고 그려낼 언어/상징과 정치적 상상력(진영구도에 갇히지 않을)은 과연 무엇이 있을까? 책임자 처벌이나 정권퇴진론을 넘어 시스템을 구축하고 사회를 두텁게 하는 실천은 무엇이 있을까? 2022.11.3 [이태원 참사] ‘상주’ 없는 애도 기간  2022.11.7 [이태원 참사] 상징과 언어가 없는 참사 2022.11.9 [이태원 참사] 고통을 느끼지 않고 기억할 수 있는가? - 참사의 명명법, 그리고 미디어의 보도 원칙 2022.11.23 [이태원 참사] 일상과 함께 가는 애도 2022.11.24 [이태원 참사] 이태원과 세월호, 같은가 다른가?
10.29 이태원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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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상주’ 없는 애도 기간
사회적 죽음은 사회적이고 상징적인 차원의 애도를 필요로 한다. 윤석열 정권이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한 것은 말하자면 국가가 일종의 ‘사회적 상주’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모두가 시름과 비통함에 빠져 있을 때 애도의 말들을 할 수 있도록 분향소도 차리면서 상주가 되기를 자처했다. 문제는 빈소에 상주가 얼굴조차 비치지 않는다. 근조 리본을 거꾸로 달도록 하고, 희생자를 사망자로 재난을 사고로 칭한다. 애도기간을 선포해 상주가 되겠다고 했지만 어디에도 상주가 보이질 않는다. 상주를 붙잡고 울든 화내든 해야 하는데 상주가 없다. 애도를 선포했지만 애도가 불가능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선례를 찾으려 하니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떠올리게 된다.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고 발표한 뒤 재빨리 시신을 화장해 부검조차 못하게 했다. 영화 <1987>에서도 나오는 것처럼 가족조차 시신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뼛가루로 남은 상태로 만나야 했다. 박종철의 아버지 박정기는 “종철아 할 말이 없데이” 라며 눈물을 삼켜야 했다. 당시 국가는 사회적 애도는 물론이고 가족들의 애도조차 불가능하게 만들었지만, 그러나 근본적으로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하며 애도를 불가능하게 한 윤석열 정권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여기서 더 근본적인 문제가 나온다. 가해자가 상주가 될 수 있는가? 국가가 가해자인데 어떻게 상주를 자처할 수 있나? 그런 의미에서 긴 애도의 과정이 필요하다. 과거 천안함 사건 당시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했지만, 그것은 어느 정도 조사가 끝난 시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고 직후 애도기간이 선포됐다. 여전히 조사할 것들, 질문할 것들 투성이다. 왜 경찰 인원 배치가 추가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는지, 11건의 신고에도 왜 제대로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는지, 경찰 지휘부와 행정안전부는 왜 사태를 늦게 인지했는지, 중상자 이송이 왜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는지 등… 그외에도 여러 정황과 문제들이 보도되고 있다. 관료와 행정의 작동방식과 무책임의 문제, 개신교 세력들의 문제 등 짚어야 할 질문들도 적지 않다. 근본적으로는 국가란 무엇이며 무엇이어야 하는지 물어야 한다. 이런 모든 질문들을 통해 이뤄지는 애도는 긴 과정이 될 것이다. 문제는 정권의 수법이다. 국가애도기간은 자연스레 ‘왜 애도를 강요하느냐’는 반발을 낳는다. 나는 이것을 ‘위악의 심성’이라고 말하는 편인데, 이는 강요되는 도덕에 대한 ‘솔직한’ 반발감에 기인한다. 위악의 심성은 도덕과 선함을 말하는 것을 ‘위선’이라고 하며 차라리 솔직해지자고 제안한다. 자신들의 ‘솔직함’이 더 도덕적 우위라고 믿는다. (나는 이런 함정에서 도덕을 구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곁가지 얘기이니 패스.) 하지만 적어도 이번의 경우에 ‘강요’는 유가족도 시민사회도 아닌 국가가 한 것이었다. 애도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면서 애도기간을 선포했고, 문화예술인들이 비판하듯 많은 문화행사들이 취소되기에 이르렀다. 문화예술만큼 애도와 직결되는 것이 없음에도 ‘애도’라는 명분으로 거의 입을 틀어막았다. 즉, 공허한 애도를 강요한 것은 윤 정부다. ‘왜 애도를 강요하느냐’는 반발은 국가를, 윤 정부를 향해야 한다. 그러나 이 위악의 심성은 내일까지인 국가애도기간이 끝나면 그 방향이 뒤틀릴 가능성이 높다. 국가가 선포한 침묵을 강요하는 애도의 기간이 끝나면, 그제서야 진정한 의미에서 애도가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다. 그러면 앞으로 애도를 말하는 사람들(유가족, 생존자, 지지하는 시민들…)을 향해 ‘애도를 강요하지 말라’고 하게 될 것이다. 내일이 지나면 윤 정부가 피워놓은 불길이 국가가 아니라 그 반대방향, ‘사회’를 향하게 되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국가애도기간이 가진 예상되는 효과에 더해, 정부는 장례비 및 위로금 지급과 각종 세금 혜택 지원을 발빠르게 진행할 것이다. 이는 세월호 참사의 데자뷰를 연상시키지 않을 수 없게 만들 것이고,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의 국가 대상 손해배상청구 소송도 같은 맥락에서 ‘돈 요구’라는 비난이 쏟아질 가능성이 높다. 담론정치의 문제와 관련해 두 가지 정도를 얘기해 볼 수 있겠다. 하나는 애도의 범위를 넓히자는 것이다. 애도를 강요하지 말라는 위악의 심성도 매끄럽고 균질적인 것들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거기에는 애도되지 못한 ‘양가감정’이 있다. 이건 세대가 공유하는 어떤 집단 감각이기도 하다. 헬로윈 참사를 겪은 세대는 세월호 참사가 터지고 수학여행을 가지 못한 세대이고, 마우나리조트 참사가 터지고 대학 OT를 가지 못한 세대이며, 코로나19로 대학 캠퍼스를 밟지 못한 세대다. 이들에겐 재난과 그로 인한 거대한 비극 앞에서 자신들의 ‘작은’ 상실와 슬픔, 아쉬움들이 적지 않다. 배 안에 갇혀 사람이 죽었는데 놀러 가지 못해서 아쉽다고 말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윤석열 정부가 정말 나쁜 놈들인 것이다. 국가애도기간이라는 말로 이런 모든 상실과 양가감정까지 다 막아버렸으니.) 그러니, 세월호 이후 또 다시 거대한 비극 앞에서 이제는 좀 더 넓은 애도의 담론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위악’의 심성을 비판하는 것과 별개로 각자의 일상에서는 그들이 지닌 상실도 품어주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다른 하나는 (대부분 청년들이라고 알려져 있는) 이태원 파출소 경찰들이 반발하고 있다. 나는 이것이 국가애도기간에 대한 반발과도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애도’라는 글자에 집중에 윤 정부에서 시민들로 그 대상이 옮겨가는 담론의 뒤틀림 대신, ‘국가’에 방점을 찍고서 국가애도기간-이태원 파출소로 이어지는 국가의 무책임과 책임전가를 문제 삼는 담론을 형성하는 것이다. 2022.11.3 [이태원 참사] ‘상주’ 없는 애도 기간  2022.11.7 [이태원 참사] 상징과 언어가 없는 참사 2022.11.9 [이태원 참사] 고통을 느끼지 않고 기억할 수 있는가? - 참사의 명명법, 그리고 미디어의 보도 원칙 2022.11.23 [이태원 참사] 일상과 함께 가는 애도 2022.11.24 [이태원 참사] 이태원과 세월호, 같은가 다른가?
10.29 이태원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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