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해·위험 대비

청소년 및 촉법소년의 범죄, 부모는 얼마나 책임을 져야 하는가?
후배 때려놓고 SNS 자랑...등교 정지 처분받고 가족여행 형사미성년자 여러분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촉법소년'.  걷다가 떨어진 돌에 참변…돌 던진 아이들 처벌 못해 심야 도심서 흉기 난동 벌인 10대 '우리는 청소년이기 때문에 처벌 안받아', '우리는 청소년이기 때문에 무적이야' 등... 많은 촉법소년들의 범죄들은 사회를 분노하게 했습니다.  인생이 완전히 망가진 피해자와 가족들, 그리고 무책임한 가해자의 가족... 저도 촉법소년 관련 소식들을 보면, 촉법소년의 부모들이 진심으로 먼저 사과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 아이가 그럴리가 없다'고 받아들이지 않거나, 심지어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등 피해자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자식만 소중하다는 태도를 많이 보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미국에서 미국 사회와 법조계의 큰 관심을 받는 재판이 있었습니다.  바로 '옥스퍼드 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에 대한 재판이었습니다.  미성년자가 총기를 난사했다면 그 책임을 부모에게도 물어야 할까? 옥스퍼드 고교 총기난사 사건 옥스퍼드 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은 학생 4명이 사망하고 총 7명이 부상당한 총기난사 사건으로, 범인 이선 크럼블리는 당시 15살이었습니다.  이선 크럼블리는 정신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다는 것을 많이 보였습니다.  1. 범행 당일 시험지에 총탄에 맞은 사람, 총기, 사방에 뿌려진 피를 묘사한 그림을 그리고 '그 생각이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나를 도와달라'고 적었습니다.  2. 일기장에 작성한 내용이 법정에서 공개되었습니다. '나는 정신적인 문제에 대해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했고, 학교에서 총을 쏠 것 같다.', '나는 도움을 받고 싶지만, 우리 부모님은 내 말을 듣지 않으시고, 그래서 나는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있다.'  이 총기난사 사건으로 이선 크럼블리는 지난해 종신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러나 최근 이선 크럼블리의 부모님이 법정에 피고인으로 나오게 되면서 미국에서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고교생 총기난사, 부모 책임 얼마나 있나 이선 크럼블리의 부모님은 아들의 폭력성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적절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결국 총기 난사를 불러왔다는 이유로 과실치사 혐의를 받고 법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일단 검사와 검찰 측 의견입니다:  이선의 아버지인 제임스 크럼블리는 총기 난사 사건 발생 수일 전 아들에게 권총을 사줬으며 어머니인 제니퍼는 아들을 사격장까지 데리고 가 사격 연습을 시켰다. 크럼블리 부부는 사건 당일에도 총기와 피해자 모습 등을 그리는 등 아들의 이상행동으로 인해 학교에 불려 갔으나 당장 의학적인 상담을 받아야 한다는 전문상담교사의 권고를 무시한 채 아들이 그대로 수업받도록 했다. 크럼블리 부부는 아들이 총기를 가지고 등교했다는 사실도 몰랐던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분명한 폭력적인 성향이 나타났는데도 제니퍼가 평범한 보살핌조차 하지 않았다면서 제니퍼도 아들의 자행한 총기 난사에 대해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크 키스트 오클랜드 카운티 검사는 아들이 자행한 총기 난사에는 어머니 제니퍼의 책임도 있다면서 제니퍼는 자신도 알고 있던 위험을 의도적으로 무시했기 때문에 기소됐다고 설명했다. 또한 크럼블리 부부가 아들이 체포된 뒤 자택을 떠나 디트로이트에서 숨어 살았다는 점도 지적하면서 제니퍼는 사건 직후 거짓말을 하려 했고 그 다음에는 도망쳤다고 비난했다. 다음은 변호사 측 의견입니다:  검찰의 기소는 총기 난사 사건에 대한 비난을 아들 양육에 최선을 다한 여인에게 뒤집어씌우려는 시도일 뿐.  이선은 자신의 상태를 부모에게 숨겼고 학교 관계자들도 이선의 심각한 이상행동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크럼블리 부부가 사건 직후 디트로이트로 간 것은 살해 위협 때문이었고, 기소 사실을 알고 난 뒤에도 자수하려 했었다. 그리고 바로 며칠 전 판결이 나왔습니다.  미국 ‘고교생 총기난사’ 가해자 부모에 첫 징역형 미국, 총기사건 '가해자 부모' 첫 형사책임 인정 판사는 제임스 크럼블리와 제니퍼 크럼블리 부부에게 10~15년의 징역형을 선고했습니다.  '검찰이 자녀의 총기 난사 사건과 관련해 이선의 어머니에게 책임을 물은 것은 그가 아들에게 총을 사준 점, 아들의 정신 건강 치료를 적절하게 하지 않은 점 등을 중대 과실로 봤기 때문이다. 이에 총기 난사 사건에 이른 책임이 있다는 판단이다.' 법정 영상을 보다 울컥했는데, 바로 총기난사로 사망한 4명의 학생 유가족들이 법정에서 크럼블리 부부를 성토했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은 부모로서 실패했어요. 당신들이 받는 어떤 처벌도 우리에게는 충분하지 않을 겁니다. 제 딸은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당신들 중 누구도 아들 (이선 크럼블리)을 소중하게 여겼거나, 애지중지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억장이 무너집니다. 하지만 저는 저의 아들을 애지중지 키웠습니다.'  -'당신들의 실수가 우리 가족에게는 영원히 계속될 악몽을 만들었습니다.'  -'당신들이 아들과 책임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을때, 저는 부모로서 가장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해야 했습니다. 저의 소중한 딸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크럼블리 부부가 부모로서 할 일을 다 했다면 이런 일을 겪을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판사는 "이번 판결은 잘못된 양육에 관한 것이 아니며, 다가올 폭주 열차를 멈출 수 있었던 행동을 하지 않은 반복된 부작위에 대한 유죄 판결"이라고 밝혔습니다.  해당 소식에 우리나라 네티즌들은 '법적보호자가 아이들 제대로 양육하지 못한 책임', '일진, 학폭 가해자 부모들 잡아들여라', '학폭 가해자 부모들도 저래야되는데' 등 촉법소년이 저지른 범죄, 학교폭력 등의 가해자 부모들에게 책임을 묻고 처벌하는 것이 우리나라에 도입되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물론 이는 '연좌제'라는 반대 의견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의 시점으로는 '내 자식만 소중하다'는 '과잉보호'와 '오냐오냐'식으로 키우는 잘못된 훈육 방식이 문제이기 때문에, 부모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일부 찬성합니다.  물론 가해자 가정의 상태를 봐야 할 것입니다. (부모의 알코올 중독, 폭력, 도박중독, 빈곤, 이혼 등)  그러나 진정한 부모는 자식의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을 인정하며 자식이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도록 하는 부모입니다. 제가 이렇게 잘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도, 저의 부모님이 어린 시절과 10대일때 저를 올바르게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행동에는 결과가 따른다', '네가 저지른 잘못은 네가 책임을 져야한다' 등 저에게 해주었던 말들이 생각납니다.  그만큼, 이번 미국의 판결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나요?  '촉법소년의 범죄, 부모는 얼마나 책임을 져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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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 가습기 살균제 피해 29년, 아직도 탄원서를 씁니다
[6411의 목소리] 가습기 살균제 피해 29년, 아직도 탄원서를 씁니다 (2024.01.08) 허정자 │ 가습기 살균제 피해 유가족 숨진 딸 의영이보다 두 살 많은 93년생 오빠와 엄마 뒤엔 당시 사용했던 가습기 통이 놓여 있다. 필자 제공제 딸 의영이는 1995년 10월5일 서울 은평구 응암동 한 산부인과에서 건강하게 태어났습니다. 아기와 함께 퇴원해 집으로 돌아왔는데, 며칠 뒤 의영이가 감기 증세를 보였습니다. 동네 소아과에 갔더니 건조하면 안 좋다며 가습기를 잘 틀어주라고 했습니다. 1993년 5월생 아들도 감기에 자주 걸려 집에서 가습기를 계속 사용했었는데, 때마침 티브이에서 방송인 김연주씨가 “세균과 물때를 다 없애준다”며 유공(현 에스케이) ‘가습기메이트’를 선전하는 광고에 혹해 남편에게 사 오라고 했습니다. 남편은 바로 동네 마트에서 ‘가습기메이트’를 사 왔습니다. 저는 매일 가습기를 틀었고, 아기 코밑에도 바로 대주며 쐬게 했습니다. 하지만 증세는 좀처럼 낫지 않고 더 심해지는 것 같아, 더 큰 병원을 찾아 서울서부역 건너편 소화아동병원을 찾게 되었습니다. 아기를 영아실에 입원시키고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음날 오후 5시쯤 위급하다는 연락이 와 병원에 도착하니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아기 좀 살려달라고 수없이 외쳤습니다. 하지만 무심하게도 우리 딸 의영이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먼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태어난 지 50일 만인 11월23일, 의영이의 짧은 삶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그렇게 내 딸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참 힘들고 마음 아프게 살았습니다. 그렇게 여러 해가 흘러 티브이에서 가습기 살균제가 독성 화학약품이라는 뉴스를 봤습니다.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내가, 엄마가 아기를 죽인 셈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아프지 말라고 살균제를 넣었던 가습기가 아기를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게 했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죽고 싶은 심정입니다. 광고 아직도 아기가 쌕쌕거리며 입술이 파랗게 되어 힘들어하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우리 딸을 그렇게 고통스럽고 힘들게 만들었으니 저도 딸아이 곁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도 참 많이 했습니다. 평생을 죄책감으로 살고 있으니까요. 한동안은 우울증이 심하게 찾아와 아기를 죽인 죄인이라는 생각에 사람들을 똑바로 바라볼 수도 없었습니다. 남편도 제가 힘들어할까 봐 표현은 안 하지만 너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29년이 지난 지금도 딸아이 또래 애들의 예쁘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볼 때면 의영이 생각이 납니다. 너무나도 보고 싶고 그립습니다. 현재 환경부 산하 환경산업기술원에 접수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 신고자는 7891명, 사망 피해자는 1843명에 이릅니다. 이 보이지 않는 ‘공기 살인’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갔고,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제 딸 의영이가 첫번째 사망자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제 딸은 아직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가 아니라네요. 너무나도 기가 막힌 일입니다. 억울하게 죽은 우리 딸 의영이는 “모세기관지염과 흡입성 폐렴”이 사망 원인이라는 사망진단서와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환경관련성 평가서, 환경부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 환경평가서가 있지만 입원한 지 하루 만에 사망하였고, 시간이 많이 지나 의무 진료 기록이 없어서 아직도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2019년 개정 시행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에 의해 ‘가습기 살균제 노출 확인자에 해당한다’는 환경부 통보만 받았을 뿐 개별 심사도 대기 중입니다. 흡입성 폐렴도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일어날 수 있다는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연구 결과도 나왔는데, 정작 의영이는 피해자가 아니라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살균제의 특정 성분이 폐질환을 일으킨다는 것이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1심에서 전원 무죄 선고를 받은 에스케이케미칼(유공), 애경, 이마트 관계자들과 2023년 10월26일 재판에서도 서로 변명만 하는 변호인들을 보면서 분노한 남편은 탄원서를 썼습니다. 2024년 1월11일 이들 기업 관계자들의 과실치사 혐의 형사재판 항소심 선고가 예정돼 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가 에어로졸 형태로 분무되어 폐에 도달할 뿐만 아니라 염증을 일으킨다는 실험 결과도 나와 있는데, 가습기 살균제 피해 소멸시효는 30년이라고 합니다. 아직도 숨쉬기 힘들어하며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는데, 죽어간 사람들이 있는데, 도대체 제 딸 의영이가 살아보지 못한 29년은 어떻게 되돌릴 수 있을까요.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http://hcroh.org/support/ '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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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안전] 좀 더 죽음을 존중했으면 합니다
겨울은 많은 것이 움츠러드는 계절입니다. 마음도 몸도 말이죠.  돈은 벌고 싶지만 일은 하고 싶지 않은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누군가는 노동을 형벌에 빗대어 말했다고 하죠. 왜 매맞는 일은 우선과 나중이 있을 뿐 일까요. 이직이나 신규채용에도 찬바람이 불고, 숨만 쉬어도 늘어나는 지출에 아득한 연말입니다. 아늑한 구석에서 컨텐츠를 찾아 헤매던 중 친구의 추천으로 드라마 하나를 보게되었습니다. <언내추럴>이라는 일본 드라마인데요,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는 부검의가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제목에서도 나타나듯이 이 작품은 ‘부자연스러운 죽음’의 인과와 맥락을 부검을 통해 밝혀내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강조합니다. 범죄 피해가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나, 진실의 힘 같은 것을 느끼게 해주는 이야기라 다른 사람에게도 추천할 만한 작품이에요.  세상에는 다양한 삶 만큼 다양한 죽음이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 태어나고 죽습니다. 알고 있지만 항상 외면하는 진실이지요. 이 드라마에 나오는 등장인물이 다음과 같은 대사를 합니다.  “죽는 것엔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없습니다. 어쩌다 목숨을 잃지요. 그리고 우리는 어쩌다 살고 있는 겁니다. 어쩌다 살고 있으니까 죽음을 불길하게 여겨선 안 돼요.”   유독 마음에 남는 말이었습니다. 아프지만 직면해야하고, 불편하더라도 기억해야 하는 것이 죽음의 존재니까요.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추모 공간을 혐오시설로 취급하거나 죽음을 터부시하는 일이 흔하지요. 제대로 알아보지 않은 채 쉽게 망자를 오해하거나 비난하는 모습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죽음은 누구에게나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일이기에 누구나 존중받아야 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어쩌다보니 사는 우리들이 먼저 떠난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제대로 애도하는 일일 겁니다.  사람들이 좀 더 죽음을 존중했으면 합니다. 죽음을 무겁게 여기지 않는 것은 곧 생명을 가볍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군가 다치거나 죽는 일이 벌어졌을 때 그 규모를 숫자로 판단합니다. 숫자는 목숨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어버립니다. 상대적으로 큰 숫자 옆에 있을 때는 특히 더 가벼워지죠. 예를 들어 산업재해 현황을 보면, 조금씩 감소추세이긴 하나 매년 1천 명 가까운 삶이 산업재해로 마감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프는 상황이 나아지고 있는 것처럼 그려져있습니다. 하지만 저 안에 내가 들어있다고 생각하면 숫자가 참 부조리하게 느껴집니다. 나의 삶과 모든 희망이 끝나고 거대한 숫자에 편입되어 잊혀진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공허해지죠.  9월말 기준 산재 사망자 495명…중대재해감축 로드맵 시행 후 51명 줄어 중대재해감축 로드맵 1년…“정책효과 여전히 미흡”    사실 정말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특정 업종이나 직무에 사고발생율이 높기 때문에 문제 해결을 고민하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이라도 죽거나 다쳤을 때 같은 문제가 다시 일어나지 않게 대처하는 게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고율이라는 수치를 누르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일하다 죽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하는 거죠. 어려운 일일까요? 하지만 마땅하고 당연한 목표가 아닌가 싶습니다. 안전한 사회를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 관심을 가지고 안전 문제를 바라보면 좋겠어요. 뻔한 말이지만, 나의 일이 될 수 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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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기억] 추모의 마음만큼은 서로 나눌 수 있는
2022년 10월 29일, 저는 출장으로 유럽에 있었습니다. 자고 일어나 메세지를 확인하는데, 쌓여있는 메세지가 너무 많아 깜짝 놀랐습니다. 메세지 내용을 확인하는 순간 제가 지금 현실에 있는지 꿈 속에 있는지 헷갈렸습니다. 이태원, 할로윈, 압사라는 단어로 가득한 뉴스, 주변 사람들의 걱정이 담긴 메세지…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모든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용산에 살면서 종종 가곤 했던, 할로윈 때 가봐야지 생각도 해봤었던 이태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니. 저와 제 친구들 또한 그 시간 그 장소에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충격이 슬픔으로 바뀌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시차로 인해 한국보다 8시간 더 느리게 생활하고 있었던 저는, 자고 일어날 때마다 희생자 수가 더 늘어났을까봐 조마조마하며 뉴스를 읽었습니다. 한국에 있었다고 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을까 생각하면서도, 이러한 상황에서 다른 나라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이 왠지 미안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 미안한 마음을 담아, 2023년 10월 29일 오늘만큼은 한국에서, 그날의 참사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야겠다 다짐했습니다. 작년 이맘때와 같이 여전히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여느 주말보다는 더 일찍 일어나 이 글을 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해보고 있습니다. 참사로 인해 목숨을 잃은 분들을, 고통과 슬픔 속에서 일상을 찾기 어려울 희생자의 유족 및 친구들을, 자책과 미안함을 가지고 계신 상인들을 포함해 구조에 애쓰신 분들을,  그날 그 장소에서 함께 두려움과 공포를 느꼈을 시민들을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겠다 다짐하고 있습니다.   2014년 4월, 서울시청 앞 광장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서 국화꽃을 내려 놓으며, 이 참사를 잊지 말아야지라는 마음으로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닌지 올해 9년이 되었습니다. 또 다른 리본을 달 일은 없겠지 했는데, 결국 노란 리본 옆에 보라 리본을 달았습니다. 절대 세번째 리본을 다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럴려면 무엇이 바뀌어야할까, 생각하면서요.  그러다 문득, 올해 초 경험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이동 중이었습니다. 제 가방에 달린 노란 리본을 보시고는, 어떤 분이 말을 거셨습니다. 말투는 나긋하셨는데,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미 9년이나 지난 일인데 아직까지도 가방에 리본을 달고 다니는 이유가 무엇이냐, 이제 그만 잊고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냐, 지금까지도 리본을 달고 있는 건 정치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죠. 그 말을 들으니 처음에는 화가 나다가, 이내 슬프고 좌절스러워졌고, 한편으로는 무력하고 두려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분명 사회적 참사임에도, 그러한 참사를 막을 수 있는 사회 구조와 정책과 제도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음에도, 그것은 그 시간 그 자리에 있었던 개인의 탓이다, 잊어야 한다 말한다는 것. 사회적 참사로 인해 목숨을 잃은 사람, 여전히 고통 속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추모의 마음을 정치적 의도로만 해석하고 공동체에 해를 끼치는 사람으로 여긴다는 것. 그런 생각과 말, 행동 앞에서 참사가 '사회적'인 것임을 이야기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참사를 막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변화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다는 게 얼마나 요원한 일인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어떤 제도가 어떻게 개선되어야 한다'는 말보다는(이 역시도 너무나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에 앞서 일련의 '참사'를 사회적 문제로 인정하는 것, 참사로 인해 희생되고 고통 받는 이들에 대한 추모와 위로의 마음을 가지는 것부터 함께할 수 있었으면, 하고 제 주변 사람들과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 말을 건네보고자 합니다. 추모의 마음만큼은 그 마음 그대로 받아 들여질 수 있는, 나아가 추모하는 마음을 서로 나눌 수 있는 공동체가 되기를, 10월 29일 오늘 더욱 간절히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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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가습기살균제참사 종합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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