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이 정치를 한다면
[스포츠 티키타카] 박지성이 정치를 한다면 언젠가 모르는 번호로 온 전화를 받았더니, 어디 어디 언론사 기자라며, 최근 운동선수가 TV 예능에 나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었다. 은근히 내가 조금 비평적으로 말해주기를 기대했던 것 같았는데, 나는 그의 기대를 무시하고 “좋은 현상 아닐까요!”라고 말했다. 우리의 통화는 길지 않았다. 이후, 그 기자가 지칭한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여전하고, 심지어 유사한 프로그램이 더 생겼다. 이제, 국대(국가대표)와 선출(선수출신)의 유튜브 또한 낯설지 않다. 기자의 의도는 대충 알만하다. 우리가 통화했던 그때도 그러했지만, 여전히 몇몇 체육계 원로들은 선수의 외도(?)에 매우 비판적이다. 메달을 따고 유능했던 선수가 현장에서 후배 선수를 양성하기도 바쁘고 힘들 판에, 대중 앞에서 품위를 버리고 웃음과 조롱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기존 체육인의 자세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소위 체육인의 다양한 사회진출에 박수를 보내는 것은, 그들이 체육인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체육인이기 전에, 현재를 함께 살아가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생애 어떤 단계에서든지, 자신의 진로와 직업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체육인이 체육계를 떠나는 것은, 또는 체육계 이외의 사회로 진출하는 이유는,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만은 아니지만,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유가 뭐든, 그들의 판단과 결정에 무슨 얘기를 덧댈 수 있을까? 우리는 누구나 사회 어느 영역에 도전하고 진출할 수 있고, 있어야 한다. 체육인도 마찬가지고, 오히려 체육인이라 더욱 그렇다. 그들이 가진 인생의 경험과 과정이, 개인뿐 아니라 사회가 얻고 배울 수 있는 콘텐츠로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국대와 선출의 경험은 소설로, 예술로, 학문으로, 사진으로, 오페라로, 예능으로, 교육으로, 산업으로, 외교로, 정치로 등등, 거의 모든 영역으로 연결될 수 있다. 내년 총선에 맞물려, 어제, 박지성 디렉터(전북 현대모터스FC)가 특정 정당의 영입 인사로 거론된 듯하다. 기본적으로 체육인의 사회 모든 영역 진출에 찬성인 나는, 박지성 디렉터의 정계 진출 또한 적극 찬성한다. 여전히 그의 유명세와 경험이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매우 중요한 조건이 전제된다. 누구든 정치를 하려면, 우리 사회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좋은 정치인에게 필요한 역량을 키우는 과정을 거치고, 결실을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박지성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어떤 누구도 준비 없이, 자격 없이 경기장에 들어가지 않음을 선출과 국대는 누구보다 잘 안다. 불행하게도, 많은 선출과 국대는 보통의 사회적 경험에서 격리된 채 성장한다. 대부분의 선수는 보통의 사회적 관계 형성 방식에 서툴고, 정치에 필수적인 사람과의 효과적 소통 능력을 훈련받지 못한다. 그럼에도 선출이 정치에서 배제되어야 할 이유를 나는 찾지 못한다. 우리가 사랑했던 선수가 정치에서 더럽혀질까 두려운 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준비된 사람이라면 막을 이유 없다. 판단은 우리 몫이다. 이대택 | 문화연대 대안체육회 기본적으로 인간사회의 거의 모든 것에 관심을 두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인간의 몸과 스포츠에 대해 조금 더 많은 시간을 소비했기에, 여기에 대해선 특별히 말이 많다.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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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용균 추모5주기 특별기획전시 <유감>에 대해 말하다
청년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5주기를 맞아, 특별기획전시 <유감>이 지난 11월 25일부터 12월 3일까지 문래동 대안공간 이포에서 열렸습니다. 문화연대 사회예술네트워크 신유아 활동가가 전시를 준비하며 어떤 고민을 했고, 전시 공간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유아HERE] 고 김용균 추모5주기 특별기획전시 유감(Regret):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럽다 고 김용균 추모5주기 특별기획전시 <유감>은 지난 11월 25일~12월 3일까지 문래동 대안공간 이포에서 진행되었다. 이 전시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필요성과 산재로 인한 죽음, 살아 남은이들의 추모와 앞으로도 계속 살아야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로 기획했다. 기획은 3가지 형식과 내용으로 나누었다. 첫 번째는 지난 2018년 12월 10일 태안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 상태점검을 하다 벨트와 롤러사이에 끼여 사망한 고 김용균의 공간이다.  이 공간은 고 김용균의 유품과 그의 유품들이 의미하는 것들을 생각해 보는 공간이다. 전면에 설치한 두 장의 사진. 한 장의 사진은 고용노동부 산하 안전보건공단에 이름도 없는 수천 명의 ‘00현장 00사고로 사망’ 이라는 기록속의 한 줄로 남았을지도 모를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려주었고 하청노동자, 불법파견, 차별, 원청의 책임회피등등 비정규직의 문제와 산재사망, 중대재해기업처벌이라는 사회적 숙제를 던져주는 계기가 되었다. 다른 한 장의 사진은 고 김용균 추모1주기 때 김미숙어머니가 아들의 묘지 앞에서 발언하는 사진으로 어머니 삶의 변곡점이라 생각했다.  두 장의 사진 아래 고 김용균의 유품은 청년노동자의 피곤한 일상이 보인다. 사발면과 치약, 작업복과 슬리퍼, 켜지지 않는 작은 랜턴, 우산, 이어폰과 과자. 유품을 설치하던 중 작업복 안주머니에서 작은 열쇠 하나가 새로 발견되었다. 열쇠에는 준혁 이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함께 일하던 친구의 이름이다. 발전소에서 온 분들도 정확하게 용도를 알지 못했으나 벨브작업장으로 들어가는 출입문 열쇠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전시기간 중 고 김용균의 시신을 처음 발견했던 이인구님의 방문으로 이 열쇠의 용도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이 작은 열쇠는 컨베이어벨트를 운전시키기 위해 쓰이는 열쇠였고 벨트운전을 책임지던 사람이 준혁이라는 것이었다. 준혁은 고 김용균 사고이후 벨트 책임자로 자신을 자책하며 엄청 힘들어했다고 한다. ‘제가 벨트만 안 돌렸어도...’ 이인구님의 시간도 준혁의 시간도 함께 일한 모두의 시간도 멈춰버린듯하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김미숙 어머니가 소중하게 보관 중이던 자격증과 학생증 그리고 군번줄과 용균이가 직접 종이로 만든 절대반지도 공개했다. 절대반지는 2018년 당시 인기 있던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사우론이 자신의 영혼과 권능을 녹여 만든 반지로 소유주에게 걸 맞는 능력을 부여한다. 아마도 청년노동자의 삶에 희망 같은 반지가 아니었을까. 그가 죽기 전 인터넷으로 주문했던 절대반지는 그가 죽은 뒤 집으로 배송되었고 어머니는 이 반지를 모란공원 그의 묘역에 함께 넣어주었다. 마지막 유품으로 손목시계가 있다. 산산이 부셔진 시계는 벨트에 낀 그의 모습을 연상시켜 보고 있는 것도 버거웠다. 김미숙어머니가 유품을 가져 오던 날 눈치 없는 나는 왜 이리 기운이 없어 보이냐 물어봤었다. 다시 꺼내 봐야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고 김용균의 공간 옆에는 김미숙 어머니의 시간이다. 아들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투사가 되어버린 어머니가 지난 5년간 어떻게 싸워왔는지 연표로 정리하여 설치했다. 김용균재단이 만들어지고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지기까지 그리고 여전히 끝나지 않은 재판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고군분투하는 모습이다. 어머니의 시간 옆에는 고 김용균의 죽음이후 산재로 사망한 이들을 아카이브형식으로 구성했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이름들을 중심으로 연도순으로 서술해 놓았고 그 아래 팬과 ‘당신이 기억하는 죽음을 남겨주세요’라는 메모를 써 두었다. 관람자들 중에 나의 오빠가 00년 0월0일에 어느 현장에서 일하다 죽었다며 기록을 남기기도 하고, 기록이 잘못되었다며 연도를 수정해 주기도 했다. 기획 의도는 좀 더 많은 이들이 산재로 죽어간 이들을 기억하고 서로가 기억하지 못하는 죽음을 공유하여 새롭게 아카이브 하는 것이었다. 고용노동부의 이름 없는 공식기록이 아닌 이름으로 불려 지는 죽음들을 기록하고자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벽에는 고용노동부 산하 안전보건공단에서 정리한 수천 명의 이름 없는 산재 사망내용을 2018년 고 김용균의 죽음이후 부터 현재까지 나열식으로 정리하여 설치했다. 이 많은 죽음 앞에 고용주와 회사의 처벌은 있었는지 묻고 싶었다. 두 번째는 산재사망으로 고통 받는 가족들에게 또는 언론을 통해 회사와 고용주들은 어떠한지 묻는 나쁜 말들의 나열이다. ‘병 있는데 숨기고 입사했지?’ ‘재수 없게 여기서 죽었냐’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해서 죽은 거다’ ‘위험한 현장이 아니다’ ‘작업자가 부주의해서 죽은 거다’ ‘하청업체가 시킨 일이다. 우리와는 상관없다’ ‘근로 여건이 열악하지 않다’ ‘업무요청을 한 것이지 업무지시를 한 것이 아니다’ ‘얼마 원하냐’ 등등 이 어이없는 말들이 죽음을 대하는 책임자들과 회사의 입장이다. 처음엔 발뺌하고 마지막엔 유감으로 정리되는 노동자의 죽음과 사용자의 태도에 분노의 시간이 되길 바라는 설치였다. 전시장 입구에서부터 이런 쓰레기 같은 말들로 기분이 엉망이 되길 바라는 기획이었다.  세 번째는 노동자의 안전장치다. 회사에서 지급하는 안전물품이 노동자에게 진심 안전한 것인지. 그나마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에게는 지급되지 않는 안전물품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가 흔하게 접하는 노동의 현장을 보여주고 싶었다. 노조에 요청하여 다양한 직종의 노동자들의 물품을 전달받았다. 처음 기획의도는 현장에서 사용하다 버리는 물품이나 쓰고 있는 물품과 노동복이었다. 하지만 보내온 물품들은 대부분 깨끗한 새것들이 많았고 노동복은 일부현장의 것뿐이었다. 직종별 보내준 물품의 수는 많았지만 노동현장을 그대로 구현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또한 복장을 입체화 시키려하니 마네킹등 사람의 형태를 구현할 도구가 필요했는데 이 또한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중간에 기획을 바꾸고 현장성을 살리기 위해 작업장의 사진을 배경으로 하고 안전물품을 오브제형식으로 설치하기로 했다. 노동의 직종을 정리하여 사진가들에게 사진요청을 했다. 급하게 요청했음에도 빠르게 사진들이 도착했고 전달받은 사진들은 전시장 벽 싸이즈에 맞게 편집하고 안전물품인 오브제를 부각시키기 위해 흑백으로 전환해야했다. 사진가들은 이 모든 걸 아무런 요구 없이 사용가능하도록 해주었다. 콜센터 노동자는 사진이 없다. 국민들의 개인정보를 처리하는 곳이라 일하는 사람조차 현장 사진을 편하게 찍을 수 없다고 한다. 항공승무원은 노동자의 편의를 위한 승무복이 아니라 보여지기 위한 복장으로 신축성이 전혀 없다. 산림청 산불진화복은 방염처리 되어있지만 방수처리가 안돼 물호스 작업을 하거나 헬리콥터에서 쏟아지는 물줄기에 온 몸이 젖은 상태로 진화작업을 한다. 자동차노동자는 하청노동자와 정규직 노동자가 하는 일이 같다. 복장도 같다. 다만 하청노동자의 경우 로고가 다르다. 급식노동자의 장화는 물기있는 조리공간에서 미끄러지기쉽고, 택배노동자의 잠바는 한겨울을 버티기엔 역부족이다. 조리사는 조리장갑을 개인돈으로 장만해야한다. 건설노동자 또한 하청노동자의 경우 작업화등 안전장비를 개인이 장만해야한다. 노동자들은 안전장비의 불안전함을 쉼없이 이야기한다. 우리의 노동은 안전한가!   김용균 추모5주기 특별전시 유감(Regret)은 김용균재단에서 매년 추모주기에 진행하는 기획사업의 하나이다. 기록을 위해 글로 정리하다보니 서술과 감정이 뒤죽박죽이지만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보내주신 물품들을 모두 전시에 사용하지 못한 것에 미안하고 대안공간 이포 전시공간을 빌려주신 관장님께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공간 구성과 작품 설치등 관장님과 상의 할 수 있어서 큰 의지가 됐다. 전시장이 문래동 철공소 골목 안에 위치해 노동의 소리까지 전달 할 수 있어서 기획의도가 한층 잘 드러날 수 있었다.  철공소 골목 전시공간이 보인다. 옥상에서 전시현수막을 설치하는 중 신유아 | 문화연대 사회예술네트워크 몸은 움직일 수 있을 때 아끼지 말자는 생각으로 최선의 노력으로 최소한의 것을 쟁취하고 싶은 문화활동가
노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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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벌써 아시안게임이 잊혔나요?
[스포츠 티키타카] 혹시 벌써 아시안게임이 잊혔나요? 혹시 아시안게임 보셨나요? 축구나 야구팬이라면 분명 봤을 것에 한 표! 좋아하는 선수나 한일전 때문이라도, 중국팀은 어떻게 할까 하는 호기심에서라도 또는 연일 포털에 등장하는 뉴스 때문이라도 어쨌든 봤을 겁니다. 물론 남자 선수의 경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면 군대도 혜택을 받는다니, 관심이 아닐 수 없죠. 그러고 보니 아시안게임이 끝난지 세 달이나 지났군요. 시간이 빠른 건지 우리 기억이 짧은 것인지. 먼 옛날얘기 같기도 하고, 뭔 이유든 대회가 뿜어주던 열기도 바로 식은 듯합니다.  체육판에서 먹고 사는 사람이지만, 사실 저는 그리 열성적 스포츠팬은 아닙니다. 물론 주요한 게임이나 대회 진행 관련 뉴스는, 순발력이 조금 떨어질지언정, 최소한 헤딩이라도 찾아보려 노력합니다. 그런데, 눈에 확 띄는 뉴스를 봤죠. 아시안게임이 끝나가는 막바지에 대한체육회장이 그랬다는군요. 내년 2024 올림픽 얼마 남지 않았는데, 앞으로 올림픽 준비를 위해 진천선수촌에 들어오는 국가대표는, 선수촌에 들어오기 전에 ‘해병대 극기훈련’을 받아야만 들어올 수 있게 한다고요. 그러면서 대한체육회장 자신도 해병대 훈련을 받겠노라 했다네요.  △“내년에는 국가대표 선수들이 입촌하기 전에 모두 해병대 극기훈련을 받게 하겠다.”고 말한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이 뉴스에 많은 사람이 ‘이게 뭐냐’ ‘시대가 어느 시댄데’ ‘꼰대’ ‘적폐’ 하며, 댓글은 주로 비판적인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대부분 부정적이지만 대한체육회장이 자신만의 외로운 싸움을 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몇몇은 해병대 훈련을 찬성하기도 하죠. 곳곳에 샤이 해병대 훈련 동의자가 숨어 있습니다. 국가대표의 해병대 훈련의 필요성이나 실현 가능성을 제쳐놓고,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과연 대한체육회장은 진심이었을까? 정말로 중국과 일본에 이어 아시아 3위를 차지한 것이 그리도 문제였을까? 그래서 단호한 결정의 모습을 보이고 싶었을까? 그는 진정 해병대 훈련이 뭔가 아쉬운 국가대표의 실적을 더 올려줄 것이라 믿는 걸까?  마음 한구석의 답답함은 대한체육회장이 표정 변화 없이, 사실 진지하게, 자신의 재량으로 이러한 결정을 하고 공표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하던, 하지 않던, 대한체육회장은 그러한 권한이 충분히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여전히 국가대표는 국가의, 또는 대한체육회장의 결정권 아래 있다는 암시적 내면 인식을 표현한 것이죠. 저와 우리 모두 대부분의 생각과는 다르게 말이죠.  아시안게임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리 대부분은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세상이 뭐 다 그런 거지만, 벌써 잊힌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아쉽긴 합니다. 우리가 경기와 선수만을 보고 있는 사이, 그리고 기어이 금방 잊는 사이, 체육계 이면에서는 ‘해병대 훈련’과 같은 우리의 상식과 다른 일들이 벌어집니다. 선수들은 우리와 딴 세상을 마주해야만 하죠. 우리가 열광한 만큼 선수들에게는 우리의 지속적 관심이 필요합니다. 이면의 이상한 일들이 없도록 말이죠. 이대택 | 문화연대 대안체육회 기본적으로 인간사회의 거의 모든 것에 관심을 두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인간의 몸과 스포츠에 대해 조금 더 많은 시간을 소비했기에, 여기에 대해선 특별히 말이 많다. 덧. 그저 실언이길 바랬는데, 대한체육회 이기흥 회장은 정말 국가대표 선수의 해병대 훈련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이에 지난 12월 18일, 시민사회단체들이 사과 및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습니다. 아래 링크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함께 분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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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스포츠] 지속가능한 호호체육관 어떻게 만들까?
지속가능한 호호체육관 어떻게 만들까? 호호체육관에도 ‘자립’이 필요해   대학 청소노동자의 ‘스포츠권’을 실현하는 호호체육관 프로젝트가 다음 발걸음을 준비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2022년 12월 서강대학교에서 파일럿 프로그램 ‘움직이는 여사들’로 시작해 2023년 상반기 배구와 요가 클래스까지 이어졌다. 그동안 사단법인 시민의 프로젝트 마일스톤 지원 사업을 통해 진행됐지만 2023년 하반기부터는 별도로 할당된 예산이 없었다. 아직 재정적 기반과 사회적 기반이 다져지기 전이었기에 이대로라면 프로젝트를 잠시 쉬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청소노동자는 열악한 노동환경에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 투쟁을 통해 소중한 승리의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스포츠를 통해 일상 속에서도 소중한 성취감과 연대의식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호호체육관이다. 호호체육관 활동을 통해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 조직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 사회적 연대를 통해 노동운동을 확장하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 후원자들의 ‘토스’가 절실했다. 시민사회와 함께 힘차게 “소셜 펀치!” 지난 9월 문화연대는 사회운동을 위한 온라인 플랫폼 ‘소셜펀치’를 통해 호호체육관의 자립을 준비하는 모금을 시작했다. 강사비, 퍼실리테이터 인건비 등 최소한의 운영 자금을 마련해 호호체육관 사업을 이어가기 위해서다. 후원자들에게 호호체육관을 소개하기 위해 윤성희 기자가 상반기에 촬영한 활동 사진도 소셜펀치에서 함께 선보였다. 체육관에서 즐겁게 몸을 날리는 청소노동자들의 생생한 표정이 어떤 말보다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목표 금액을 넘으면 어떡하나 행복한 고민을 하기도 했지만 역시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펀딩 종료일이 다가왔을 때 목표액 2,300,000원을 근소하게 넘어 2,330,000원을 모금할 수 있었다. 펀딩에는 문화연대의 친구들을 비롯해 평소 노동권과 스포츠권에 관심이 많은 시민들이 참여했다. 반가운 이름 중 하나는 ‘서강대 맑음’이다. 서강대 맑음은 청소노동자들과 연대해온 학생회 특별자치기구이다. 노래로 영어 배우기와 같은 청소노동자 연대교실을 비롯해, 한 끼에 400원이었던 청소노동자들의 식대를 인상하기 위한 투쟁 등 다양한 연대활동을 조직해 왔다. 이에 화답하듯 여성노조 서강대지회 조합원 수십 명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민들레장학금’을 조성하기도 하는 등 아름다운 역사를 지니고 있다. 학생활동가들이 졸업하고 코로나19 위기를 거치며 2020년대 초 맑음은 해소되었지만 그 졸업생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다시 호호체육관에 후원을 보내 온 것이다.   2023년 가을, 더 유쾌하고 다정하게!   이번 학기 호호체육관은 청소노동자들과의 유대감 형성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있다. 지난 학기에 서강대학교 인권실천모임 노고지리와 공동주최로 배구 클래스를 진행하긴 했지만 시간이 충분치 못했고 기획도 부족했다. 이번 학기 프로젝트는 퍼실리테이터와 함께하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연대의식을 키울 수 있도록 기획했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이류한승 조직부장의 제안으로, 학업을 위해 단기노동을 해야 하는 학생활동가를 위한 호호체육관의 인건비도 마련했다.   이번 학기 퍼실리테이터로 참여하는 서강대학교 학생 활동가는 인권실천모임 노고지리의 김한울이다. 첫 만남에도 상대의 긴장을 풀어주는 묘한 유쾌함을 지닌 사람이다. 졸업생임에도 불구하고 후배들이 사업 내용을 공유할 수 있도록 모임의 공용메일로 회의록을 보내는 등, 꼼꼼함도 갖추고 있다. 현재 서강대학교 교지 활동도 하고 있는데, 바로 옆방이 여성노조 서강대지회 사무실이라 친하게 지내고 있다고 한다. 지난 학기 호호체육관에 참여했던 노동자들을 다시 초대할 뿐 아니라 노동조합을 통해 새로운 참가자를 모집하는 등 홍보와 조직에도 열정적이다. 앞으로 학생과 청소노동자가 함께 연대하고 소통하는 데 커다란 힘이 되어 주리라 기대한다.     2024년도, 공공상생연대공모전으로 확장하다   소셜펀치 모금을 통해 당장 급한 불은 껐지만, 앞으로 더 많은 노동자들과 만날 수 있으려면 안정적인 사업 기반은 필수불가결하다. 돌아보면 청소노동자의 노동권 투쟁은 울타리를 넘어 다른 대학과 연대했기에, 그리고 이들의 노동권이 공론장에 올랐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청소노동자의 스포츠권 역시 마찬가지의 전략이 필요하다. 호호체육관도 하나의 대학을 넘어 여러 대학에서 진행하고, 노동자들이 함께 교류하는 프로그램으로 나아가야 한다. 마찬가지로 효과적인 이슈화 즉 공론화도 이어져야 한다. 청소노동자를 비롯해 비정규직 노동자의 스포츠권 관련 연구가 선행되고, 청소노동자의 스포츠권을 알리는 캠페인 콘텐츠도 제작되어야 한다.     이러한 취지에서 주목한 지원 사업이 ‘공공상생연대 공모전’이다. 공공상생연대 공모전은 한국 사회 내 다양한 노동약자의 처우를 개선하고 한국 사회에 상생과 연대의 가치를 확산하기 위해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에서 지난 5년간 시행해온 사업이다. 서류심사와 면접심사를 거쳐 호호체육관 프로젝트가 제6회 공공상생연대 공모전 비영리부문(노동약자 처우개선)에 최종 당선되었다. 그리하여 내년에도 호호체육관을 꾸려갈 안정적인 예산을 확보했을 뿐만 아니라 서울 서부권역 4개 대학(서강대, 연대, 홍대, 이대)으로 사업을 확장해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호호체육관은 대학지부 간 연대를 다질 수 있는 공동행사를 개최하고, 대학 청소노동자들의 스포츠 활동 환경에 대해 조사 및 연구도 진행할 예정이다. 나아가 취약노동자의 스포츠권을 옹호하는 컨텐츠를 제작해 스포츠권의 필요성도 함께 공론화할 것이다.       이러한 사업들을 통해 내년에도 호호체육관은 여러 학생, 활동가, 노동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청소노동자와 스포츠권에 대해 이해를 넓혀 나아갈 것이다. 청소노동자가 자신의 노동 현장인 체육관에서 ‘호호’ 웃으며 일하고 운동하는 미래를 앞당기며. [지속가능한 호호체육관 어떻게 만들까?]은 스포츠계에 만연한 영웅 서사와 승리 지상주의를 걷어내고 스포츠에서 소외되거나 들리지 않던 다양한 스포츠 서사를 발굴하는 웹진<움직> 2호 _두근두근 운동회에 실린 글.  글쓴이 _ 문화연대 박이현 활동가 | 앞산의 불을 끄는 일만큼, 너른 삶의 터를 다지는 일이 중요하다고 믿는 활동가. 잠든 감각을 깨우고, 마음과 마음을 잇기 위해 오늘도 부지런히 씨앗을 심고 있다. '이태원 기억 담기' 활동을 비롯해, 기후위기에 대응하여 다양한 문화/예술 실천을 도모하는 한편 청소노동자의 스포츠권을 위해 운동으로 노동운동하고 있다. [모두의 스포츠] 웹사이트 : https://culturalaction.org/sportsforall [모두의 스포츠]웹사이트에서 웹진<움직>, 호호체육관, 모두의 운동회 전반의 소식을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모두의스포츠 #스포츠권 #청소노동자 #여성노동자 #체육관노동자 #스포츠 #모두의스포츠 #노동자의스포츠권 #호호체육관 #모두의운동회 #차별없는스포츠 #메달보다인권 #대안체육회 #대안스포츠 #스포츠시민운동 #성평등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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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스포츠] ‘스포츠 하는 삶’이 가져온 변화 _ 호호체육관 그 의미와 가능성
‘스포츠 하는 삶’이 가져온 변화  호호체육관 그 의미와 가능성   우리 같이 운동할까요?   “많이 늘었네? 이 사람이 딴 날 오는 사람보다 잘 가르치더라구~” “안녕하세요, 이모님. 역시 여기서 오래, 많이 보셔서 그런가? 보는 눈이 있으시네. 저 보다 나으시네요. 운동 좀 해 보셨어요? 같이 테니스 해 보시는 거 어때요?” “아휴~ 일이 너무 힘들어서 운동 같은 건 못해. 하고 싶지 않아. 종종 이용하는 근린체육시설의 청소 및 관리를 해 주시는 분과 나눈 대화이다. 운동하러 갈 때 마다 그가 테니스 코트와 축구장 주변을 돌며 쓰레기 등을 치우고 나서 한 동안 벤치나 스탠드에 앉아 운동하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목격했을 때다. 꽤 즐겁게 구경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정작 직접 하는 것은 저리 꺼려하시니 스포츠가 얼마나 즐거운지, 힘을 쓰게 하면서도 힘나게 한다는 것을 알려 드리고 싶었다. 스포츠 시설의 청소노동은 스포츠 시설과 시설 이용자들을 위한 돌봄이며 필수 노동임에도 그 노동의 당사자는 스포츠에서 소외되어 있는 현실이 부당하고 불편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이러한 사례를 접하고 보니 ‘일상 속에서 즐기는 스포츠’, ‘유·청소년, 장애인, 여성, 노인 등 소외계층 대상 맞춤형 지원’을 골자로 하는 정부의 생활체육 정책은 그 그물의 코가 너무 듬성하고 커서 빠지는 것이 많다. ‘모두를 위한 스포츠’, ‘모두가 일상에서 일생동안 즐기는 스포츠’라는 의의를 가진 ‘Sports for All,’, 즉 생활체육의 의미가 무색하다. 이런 문제의식을 문화연대 내에서 공유하고 논의 한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호호체육관이다. 모두를 위한 스포츠; 노동자의 기본권, 보편권으로서 스포츠권   IOC(International Olympic Committee; 국제올림픽위원회)는 “스포츠 활동은 인간의 권리이다. 모든 인간은 차별 없이 올림픽 정신 안에서 스포츠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헌장에 명시하고 있다. UN, EU 등의 국제기구들도 스포츠와 신체활동이 가지는 다양한 교육적, 사회적, 공동체적 가치와 보편적 인권 실현을 위한 잠재력에 주목하며 ‘모두를 위한 스포츠 Sports for All’라는 정책 슬로건을 실천하는 다양한 정책 프로그램을 운영해오고 있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몸을 움직임으로써 행하는 신체활동의 자유를 차별 없이 누려고 스포츠와 신체활동을 통해 얻는 가치와 효과도 차별 없이 보장되어야 한다. 스포츠는 인간의 기본 권리와 다양한 욕구를 실현하는 문화 매개이며 신체의 자유, 평등권과 교육권, 건강권, 행복추구권, 공동체 참여권 등의 차원을 아우르는 포괄적 개념이다. 이런 스포츠가 기본권으로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행사되려면 제도적이고 문화적인 토대가 필요하고 현실적 정책 프로그램의 수립과 실행이 요구된다.   “허리가 밥줄이다보니 허리가 아플 때마다 겁이 난다. 허리가 안 좋을 때는 성질이 완전히 더러워진다.”“정년퇴직할 때까지 청소할 힘이 남아 있을까? 허리, 다리, 머리 등 나는 내 자신을 위해 청소할 힘이 없다.” 《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음: 어느 여성 청소노동자의 일기》, 마이아 에켈뢰브, 2022, 교유당 좋은 삶이란 일과 삶의 선순환 체제에서 능동성을 회복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자기 돌봄을 할 줄 알아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협동적 자아를 발휘할 수 있다. 특히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우리가 보편적으로 인지하는 노동 즉, 사회적 필요에 의해 명령된 노동만이 아니라 개인의 욕구와 일치하는 자발적 활동인 자율노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 김현미, 반비, 2021). 자율노동은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유연성에서 오는 의미 있는 관계, 자발성과 자기 능동성의 회복, 기쁨과 활력을 만들어가는 모든 행위들을 의미한다. 스포츠는 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의 기본권일 뿐 아니라 자율노동으로서 자기 돌봄과 의미 있는 관계와 연대를 만드는 활동이다. 실제로 1기 호호체육관 청소노동자들은 요가 수업을 통해 몸의 현실을 자각하고 몸을 잘 사용하는 법과 자기 기술의 익혔다. 달라지는 몸을 인식하고 운동의 즐거움과 이 즐거움을 동료들과 공유하고자 하였다. 호호 체육관은 생활체육, 여성 스포츠, 노동자의 문화 운동과 여가에서도 소외되었던 여성 청소노동자들이 자신을 위해 청소(노동)할 힘을 얻는 노동자를 위한 문화충전소이다.     노동자 문화운동으로서 스포츠; 운동으로 운동하기   호호 체육관 실행을 위해 필요한 준비 요건 중 가장 어려웠던 것은 운동할 장소의 섭외, 그리고 노동자들의 운동 가능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운동할 장소는 문화연대 집행위원이 서강대학교 체육관 관장 보직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학교 담당자와 조율이 가능했다. 아울러 청소 노동자들이 소속된 용역회사의 팀장과도 소통하여 제안과 협의를 할 수 있었다. 청소 노동자들의 점심시간을 활용하여 호호 체육관의 프로그램을 실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1990년대 말부터 노동계에서는 모든 노동자가 일상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노동자문화를 생산하는 노동자문화사업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노동자들의 일상, 퇴근 후의 삶, 재생산 영역에 대한 고민과 함께 노동자를 둘러싼 문화 환경의 개선을 통해 노동자의 의식과 정서를 바꾸고, 노동자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하는 노동자 삶 속에서의 문화, 노동자의 일상을 아우를 수 있는 노동자 문화를 형성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한다. 지금까지도 노동자들의 문화 활동 제약과 관련하여 시간보장의 필요를 강조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노동자문화운동 연구; 전노협과 민주노총의 문화 사업을 중심으로>, 박선봉, 성공회대학교 일반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22). 노동자가 스포츠 할 권리의 실현은 스포츠를 할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을 갖추어야 가능하다. 스포츠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스포츠를 할 수 있는 적절한 노동시간과 휴식시간의 보장, 시설과 교육의 제공 등이 동반되어야 한다. 모든 노동자가 일상에서 문화를 향유하는 것, 노동자를 비롯하여 모든 사람이 일상에서 스포츠를 향유하는 스포츠권의 실현은 적절한 노동시간 조정과 노동 환경 개선 등 사회정책의 변화가 필요하다. 이는 체육계를 넘어 노동, 복지, 사회 문화 전반의 이슈이다. 모두가, 노동자가 일상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 비판적 개입과 투쟁이 필요하다. 노동자가 스포츠 할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조건이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호호 체육관을 통해 우리는 그 현실을 더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었고 그 조건을 얻기 위해 어떤 노력들이 필요한지 알 수 있었다. 호호 체육관을 통해 스포츠를 하는 삶을 위해 필요한 사회적 조건을 제시하고 요구하는 의제를 제시할 수 있다. 누구나 스포츠하며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모든 노동자가 일상에서 스포츠를 향유하기 위해, 운동(스포츠)으로 운동(노동자 문화운동)해야 한다.     호호 체육관, 연대를 만드는 스포츠   자본의 관점에서 스포츠는 노동 생산성을 높이고 노동자들의 갈등을 가리는 이데올로기적 도구로 기능한다. 자본에 의해서 다듬어진 문화 상품으로 스포츠를 소비할 때 특히 그러하다. 하지만 민중이 주체적으로 이용, 참가하는 스포츠가 저항과 투쟁, 그리고 변화의 기제로 작동한 사례의 역사도 존재한다. 스포츠가 가진 보편성 때문이다. 스포츠에 참여한 누구나 경험하는 즐거움과 성취감, 이를 공유한 참가자들과 자연스럽게 형성된 연대 때문이다. 이것이 자율노동으로서 스포츠의 기능이다. 호호 체육관은 스포츠를 통해 대학과 학생, 시민단체, 청소 노동자가 맺은 우호적 관계의 매개물이자 결과물이다. 스포츠가 사회운동 단체들 간의 연대를 구축하고 우호적 사회여론을 조직하는 시너지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모두를 위한 스포츠 실현이 사회문화운동으로서 모든 사람과 노동자를 위한 일상의 투쟁 목표 중 하나가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스포츠 하는 삶’이 가져온 변화 _ 호호체육관 그 의미와 가능성]은 스포츠계에 만연한 영웅 서사와 승리 지상주의를 걷어내고 스포츠에서 소외되거나 들리지 않던 다양한 스포츠 서사를 발굴하는 웹진<움직> 1호 _워밍업에 실린 첫 번재 글.  글쓴이 _ 문화연대 집행위원, 대안체육회 _ 함은주 | 전(前) 하키 선수이자 스포츠혁신위원회 정상화 분과에서 활동했으며, 하키를 그만두고 스포츠 사회학을 공부하여 스포츠 정책을 연구하고 있는 문화연대 집행위원 [모두의 스포츠] 웹사이트 : https://culturalaction.org/sportsforall [모두의 스포츠]웹사이트에서 웹진<움직>, 호호체육관, 모두의 운동회 전반의 소식을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모두의스포츠 #스포츠권 #청소노동자 #여성노동자 #체육관노동자 #스포츠 #모두의스포츠 #노동자의스포츠권 #호호체육관 #모두의운동회 #차별없는스포츠 #메달보다인권 #대안체육회 #대안스포츠 #스포츠시민운동 #성평등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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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은 우리의 정동을 어떻게 빨아먹는가
알고리즘은 우리의 정동을 어떻게 빨아먹는가 소셜미디어, 유튜브, 검색엔진, 번역, 포털과 커뮤니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상업 플랫폼의 알고리즘들은 하나의 신경망을 조직했다. 오늘날 알고리즘은 인간 정동의 복잡한 굴곡들을 평평하게 다지고 있다. 이 촘촘한 알고리즘 그물망은 우리는 생각과 감정, 의사표현의 과정들을 포획한다. 평소에 좋아요를 누르던 사람이 새 피드에 좋아요를 누르지 않으면 계속 신경이 쓰인다. 검색엔진이나 유튜브에서 키워드를 입력할 때마다 이것과 관련된 광고와 추천이 한동안 화면을 뒤덮을 걸 생각하면 머리가 아파진다. 나와 정치적 견해가 비슷한 사람들만 모인 커뮤니티에서 노는 것이 편하고, 지인의 글에서 상반된 입장이 느껴지면 언팔할 것인가 갈등한다. 내가 듣던 음악, 보던 콘텐츠와 비슷한 결로 추천해주는 알고리즘의 마법에 감탄하면서도, 때때로 영화 <트루먼 쇼>처럼 보이지 않는 결계가 주변에 쳐 있는 건 아닌가 폐소공포증을 느낀다. 유튜버들은 공식미디어에서 하지 않는 말들을 속시원히 해 준다. 욕설, 선 넘는 농담, 혐오, 자극적인 문구와 언설들. 결국 모든 것들이 구독과 좋아요 때문에 연출되는 한 편의 촌극처럼 여겨지지만 그러면서도 열심히 구독을 누른다.  영화 트루먼쇼의 한 장면 알고리즘이 만들어낸 평평한 신경망은 부정성이 완벽하게 사라진 세계다. 뭔가를 비판적으로 사고하거나, 피곤하게 공동선을 추구할 필요도 사회적 계약을 지킬 필요도 없다. 나와 비슷한 사람끼리만 연결되고, 내가 즐겼던 콘텐츠가 반복 재생되며, 최신 트렌드와 이슈가 가장 유행하는 밈으로 수사된다. 이렇게 평평하고 마찰 없는 단면에서 삶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더 이상 이 세상이 나아질 거라는 믿음은 사라져가고, 고통도 해학도 심연에 산 채로 묻어버린 채,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덤덤히 살아가는 것. 감응도 성찰도 없이, 알고리즘이 신경을 대체해 동물처럼 반사신경으로 살아가는 삶이 플랫폼과 알고리즘이 자아내는 세계상이다.   그러나 인간은 세계에 대한 의구심을 멈출 수 없는 존재다. 헤겔이 ‘비천한 의식’이라 명명했던, 세계라는 대타자와 맞서며 부조리와 모순을 바로잡고자 하는 인간 정신은 역사라는 과정의 본질이다. 그것이 중단되는 순간 우리는 끝없는 좌절을, 그리고 우울함을 느낀다. 비판적인 지식인이건, 예술가이건, 아니면 모든 감각에 대해 백기투항하고 알고리즘이 조작하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이건 마찬가지다.  최근 나는 크리에이터들의 노동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충격적인 현실을 마주했다. 겉보기에 명랑하고 창의 발랄한 에너지로 넘쳐나는 크리에이터들은 방송을 마치고, 유튜브 클립을 올릴 때마다 깊은 슬픔과 허무함을 느낀다고 증언했다. 수익을 창출하는 대다수의 크리에이터들은 항우울제와 상담치료 없이 맨정신으로 버티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우리가 알고리즘에 이끌려 스치고 지나가는 수많은 영상들, 구독과 좋아요를 부탁하는 제스쳐에는 어떤 필사적인 호소가 뒤섞여 있다. 미디어와 빅테크는 그렇게 광고수익과 구독으로 연결된 주목 자본이 진정한 시장적 가치이며 프런티어라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크리에이터와 인플루언서들이 손쉽게 자기 자신을 팔아서 벼락부자가 된 로또 맞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스스로도 그렇게 되기를 원한다. 모든 것을 좋아요와 조회수의 교환가치로 환원하는 알고리즘은 그렇게 우리의 정동을 빨아먹고 성장한다.  알고리즘이 강요하는 상품적 욕망과 주목자본의 챗바퀴는 주요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고 있다. 알고리즘은 우리에게서 정동을 빼앗아갈 뿐 아니라 연결 그 자체를 빼앗아간다. 배달의 민족과 쿠팡이츠 앱을 만지며 무엇을 먹을지 결정하는 데 식사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이 소요된다. 몇천 원의 배달비와 라이더의 위험을 품고 도착한 식사를 연 다음, 넷플릭스로 뭘 볼지 리모콘을 누르다 보면 어느 새 밥은 다 먹고 없다. 이런 역설은 소셜미디어에서도, 심지어 과제를 하거나 창작을 할 때도 이어진다. 뭔가를 써내려가는 과정보다 무엇을 써야할지 알고리즘 속에서 헤매는 과정이 더 길어지고, 내적인 갈등을 하기 전에 먼저 어떤 문제를 설정해야 하는 가 방황하는 데 시간을 더 써야 한다. 알고리즘은 그렇게, 인간과 인간 그리고 뉴런과 중추신경 사이에 존재하는 부정성을 제거한 다음 정체된 정동의 흐름을 포식한다. 그런 다음 벼락부자가 될 수 있는 돈벌이로 메타버스나 암호화폐같은 미사여구로 사람들을 매혹하고, 그렇게 벌어들인 미래저당 수익으로 스페이스X, 화성이주 같은 허황된 사회혁신을 실현하기 위해 기술을 개량한다.  자유민과 시민사회는 알고리즘이 욕망하는 평평한 신세계에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이것은 알고리즘에 대한 시민적 감시와 공개를 동시에 요구하는 선언 및 사회 제도의 정착으로 이어져야 한다. 배달의 민족을 둘러싼 인공지능 배차 알고리즘의 갈등과 위협, 소셜미디어의 피드와 홍보 알고리즘의 사회영향평가, 연결과 디바이드가 일어나는 매커니즘에 대한 기술적 공유가 요청된다. 기업들이 이른바 ‘영업 비밀’ 이라고 이야기하는 알고리즘의 숨은 사회적 설계에 대해, 공통의 권리라고 요구할 수 있어야한다. EU의 경우 주요 플랫폼들의 알고리즘 공개를 골자로 하는 디지털 서비스법(DSA)을 합의해 2024년부터 발효할 수 있도록 진행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와 관련해서 본격적인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있도록 시민사회 수준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19세기 노동계급의 공동체는 공장 기계의 매커니즘이 지닌 사회적 분업 효과에 저항하기 위해 러다이즘을 전개했는데, 우리는 이 영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러다이트는 무지성으로 기계를 부수는 반달리즘처럼 보이지만, 역사적으로는 노동계급의 선거권을 요구하는 보편적 시민권 운동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지만 두뇌를 조작하는 기계인 알고리즘도 마찬가지다. 이 기계들의 네트워크가 펼쳐내는 신자유주의 혹은 플랫폼 중심의 각자도생 사회구조를 알아내기 위해선, 먼저 그 설계가 투명하게 공개되도록 해야 한다. 알고리즘 신경망에 연결된 우리는 정동기계가 되어가고 있고, 이 작동의 세계에 대한 설계도를 얻어내야 할 때다. “문제는 지적인 기계가 어떤 감정을 가질 수 있느냐가 아니라, 기계가 아무런 감정 없이 지능을 가질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마빈 민스키) 마빈 민스키 신현우(기술문화연구자, 문화연대 집행위원) 정보기술 공간에서의 노동과 커뮤니케이션에 관해 연구하는 기술문화연구자이다. 플랫폼, 게이밍, 인공지능과 블록체인에 걸쳐진 IT 기술문화를 미디어정치경제학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탐구한다. 문화연대 집행위원, 계간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서울과학기술대학교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예술과 기술, 기술비판이론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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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스포츠] 나화린 선수가 우리 사회에 남긴 것
나화린 선수가 우리 사회에 남긴 것 성전환 여성 사이클 선수에 대한 논란들   이 글에 성전환 선수를 향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 필자의 주된 목적이다. 독자의 이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실패작은 아닐 것이라는 마음으로 펜을 든다. 지난 6월 7일, 숱한 논란을 남기며 강원도민체육대회가 끝났다. 나화린 성전환 여성 선수의 여성 사이클 경기 출전 때문이다. 나 선수는 국내 최초 성전환 여성 선수로 출전해 경륜과 스크래치에서 2관왕을 차지했다. 60~80km 개인 도로에서 2위를 차지해 아쉽게도 3관왕에 오르지는 못했다. 나 선수는 대회 전부터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반응은 뜨거웠다. 출전 소식을 접한 언론은 수많은 기사를 쏟아냈다. 신체조건과 운동 수행능력을 기술하며 나 선수의 유리함을 들었다. 그리고 공정성과 형평성을 논했다. 각 기사에 달린 댓글들도 출전 타당성을 논했다. 익명성 뒤에 숨어 독설을 쓰는 무분별함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이런 논란을 예견한 듯 나 선수는 말했다. “내가 상을 받으면 대중의 공감과 인정을 받지 못하고 결국 명예로울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참고 기사 :  [인터뷰] 트렌스젠더 사이클 선수 나화린 “내 출전으로 불공정함을 말하고 싶었다” 여성신문. 2023.07.01 LGBT: 트랜스젠더 사이클 선수 나화린이 꿈꾸는 '명예로운 우승 BBCnews 코리아. 2023.07.07   스포츠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의 ‘스포츠’는 특정 신체활동을 통해 목적을 이루는 놀이, 즉 재미를 주는 행위다. 그 어원 역시 마찬가지다. 라틴어로 ‘Desportare’는 ‘즐기다’라는 뜻이다. 고대 프랑스어에서는 라틴어의 영향을 받아서 ‘Deport’ 또는 ‘se Desporter’로 바꿔 썼다. 프랑스의 윌리엄 1세가 영국을 지배하게 되면서 영어에 흔적을 남긴 프랑스어 중 하나가 ‘Desport’다. 영어로 ‘Disport’로 바뀌었고 재미나 흥미 또는 휴식을 주는 활동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현재는 Di가 빠진 Sport로 쓰이고 있다.   사전 및 어원적 의미는 이제 접어두고 어느 고대 의철학자의 눈으로 스포츠(운동)를 보자.  검투사들의 의사이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주치의였던 클라우디우스 갈레누스는 명의였다. 아우렐리우스는 갈레누스를 “의사 중 첫째요, 철학자 중 유일무이다”라고 평하며 두터운 신뢰를 보냈다. 갈레누스는 스포츠의 효험에 대해 <작은 공으로 운동하는 것에 대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작은 공으로 하는 스포츠는 신체를 건강하게 해줄 뿐 아니라 영혼을 기쁘게 한다. 이는 신분, 부(富), 시간에 제한 없다.” 갈레누스의 눈에도 스포츠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심신을 건강하고 즐겁게 하는 놀이다.   21세기 스포츠가 자본주의, 물질주의 그리고 미디어와 결합했어도, 본래 모습인 놀이와 즐거움은 그대로다. 다만, 즐기는 대상과 범위가 다양화된 매체를 통해 늘었을 뿐이다. 이제 세계화와 미디어 발전에 맞춰 해외 스포츠를 안방에서 볼 수 있게 됐다. 이러한 추세에 사람들은 좋아하는 해외 선수의 유니폼을 구매하고, 동영상을 시청하며, 따라 한다. 그리고 즐긴다. 또 새벽을 깨워 좋아하는 선수와 팀을 보는 즐거움은 말릴 수 없다.  한 마디로 21세기엔 놀고 즐기는 행위가 세계화되었다.     근육량이 공정성의 유일한 잣대인가   한국 사회는 어느 때보다 정의와 공정을 원한다. 하지만 공정한 사회는 늘 멀리에만 존재한다. 따라서 헬조선이란 신조어가 생겨났다. 불공정한 지옥 같은 조선에서 떠나 더 나은 새로운 삶을 바라는 마음을 투영한 단어다. 하지만 현실은 힘들고 냉정하다. 떠날 수 없기 때문이다. 갑갑하다. 공정한 사회 대체재로 스포츠는 마음을 달래기에 제격이다. 스포츠는 불공정과는 멀어 보이기 때문이다.   나 선수의 등장은 단번에 공정을 앗아간 듯 보였다. 대중의 감정은 긍·부정으로 뒤섞였다. 불공정에 분노한 대중은 나 선수를 불의의 화신으로 낙인찍고 배설 같은 폭언을 뱉었다. 이것도 모자라 나 선수 개인 블로그까지 방문하여 부정한 댓글로 공격했다. 분노의 불은 시민의식까지 태워버렸다. 동시에 응원의 글도 있었다. 응원은 나 선수의 버팀목이었다.   분노엔 언론도 한몫했다. 대다수 언론은 나 선수의 신체조건 즉 180cm의 키, 몸무게 72kg 그리고 골격근량 32.7kg을 나열한다. 그리고 일반 여성의 평균 골격근량이 20~22kg임을 비교한다. 그러나 이는 비교 대상 오류다. 왜냐하면 여성 사이클 선수들의 평균 골격근량과 비교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운동선수와 일반 평균 여성의 골격근량을 비교하면 선수의 골격근량이 월등한 건 당연하다. 언론은 비합리적인 근거로 나 선수가 유리하다고 독자를 유도했다.   골격근량 말고도 다른 문제가 있다. 바로 그들이 사용하는 근육과 그 근육의 분포다. 사이클 선수는 하체 근육이 다른 신체 부위보다 많이 사용한다. 페달링의 반대급부로 균형을 잡아주는 팔, 어깨, 코어 근육도 같이 사용된다. 이는 기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언급 없이 근육량이 많다, 고로 유리하다는 식의 논의는 전성기 시절 아놀드 슈워제네거와 랜스 암스트롱을 비교한 후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근육량이 많으니 사이클 경기에 유리하다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황당한 비교다.   이뿐 아니라 기타 운동 생리학적 요소 역시 언급조차 없었다. 운동은 단순히 근육량과 신체구조만으로 유불리를 따질 수 없다. 운동은 협응력, 근 신경, 균형 감각 등이 하나로 합쳐 수행능력으로 나타난다. 이를 통해 외부조건을 극복한다. 극복한 결과는 기록이다. 이는 배제한 채 근육량과 신체조건만으로 비교하는 것은 일반화의 오류다. 덧붙이자면 위와 같은 이유로 랜스 암스트롱과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가상 대결은 단연 랜스 암스트롱이 승자다. 석판, 파피루스에서 종이를 거쳐 디지털까지, 매체 무게만큼 쓰는 이의 책임도 가벼워졌다.   나 선수가 한국 사회에 던진 화두   성전환 선수인 미국의 수영 선수 리아 토머스, 뉴질랜드의 역도 선수 로렐 허버드, 한국의 나화린 선수의 출전을 대하는 반응들은 모두 공통점이 있다. 여성 경기에 참가한다는 소식과 함께 엄청난 양의 보도가 쏟아졌다는 점이다. 또 언론 대다수와 누리꾼 사이에서는 성전환 선수가 여성 스포츠를 지배하리라는 둥, 여성 스포츠 생태계를 파괴할 것이라는 둥 억측과 불신이 난무했다. 소수 언론만이 그들의 참가를 응원했다. 경기 결과는 다수 언론과 누리꾼의 예측과 달랐다. 리아 토머스와 나 선수의 위력은 특정 레이스에서만 유효했다. 로렐 허버드는 시상대에 서지도 못했다.   차이점도 있다. 두 서양 국가는 성전환 선수의 여성 경기 참여에 대한 논의가 일찍이 시작했다. 정치권까지 가세한 미국의 찬반 양 진형은 극렬하게 대립한다. 뉴질랜드는 미국보단 성전환 선수에 대해 좀 더 포용적이다. 이제 한국 사회도 이 논의를 시작할 때다. 차별금지법도 계류 중인 때에 성전환 선수의 여성 경기 참여 논의는 이른 감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나 선수의 등장으로 미룰 수 없게 됐다.   스포츠는 즐거운 놀이 그 자체다. 놀이에 경쟁과 타이틀이 붙으면서 공정성 문제가 대두됐다. 성전환 선수의 출전은 공정성이라는 믿음에 반한다고 믿는 대중의 분노에 불을 지핀다. 하지만 생물학적 남성성이란 믿음 외에 성전환 선수의 절대 경쟁우위는 아직 과학이 밝히기 어렵다. 따라서 사회적 논의와 합의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덧붙여, 나 선수는 “저의 대회 출전이 이슈가 되길 바랍니다”라고 말하며 냉혹한 사회의 시선에도 물러서지 않고 용기를 내어 대회에 출전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페리 클래스는 “진정으로 용감한 사람은 인생에서 단맛과 쓴맛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아서 앞으로 다가올 일에 물러서지 않는다”고 했다. 나화린 선수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나화린 선수가 우리 사회에 남긴 것]는 스포츠계에 만연한 영웅 서사와 승리 지상주의를 걷어내고 스포츠에서 소외되거나 들리지 않던 다양한 스포츠 서사를 발굴하는 웹진<움직> 2호 _스타트에 실린 글.  글쓴이 _ 자피러스 |  모두의 운동장 저자 (북저널리즘)  [모두의 스포츠] 웹사이트 : https://culturalaction.org/sportsforall [모두의 스포츠]웹사이트에서 웹진<움직>, 호호체육관, 모두의 운동회 전반의 소식을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모두의스포츠 #스포츠권 #청소노동자 #여성노동자 #체육관노동자 #스포츠 #모두의스포츠 #노동자의스포츠권 #호호체육관 #모두의운동회 #차별없는스포츠 #메달보다인권 #대안체육회 #대안스포츠 #스포츠시민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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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권’으로서 공통 인공지능을 상상해야 한다
인과 염으로 창조된 AI의 시대, ‘시민권’으로서 공통 인공지능을 상상해야 한다 반세기 전, 인공지능이 여전히 SF의 영역이라고 생각되던 시대에 로봇공학자인 한스 모라벡은 “진일보한 기술의 시대에 컴퓨터는 인간에게 어려운 것들을 쉽게 처리하게 되겠지만 인간에게 쉬운 작업들은 컴퓨터에게는 어려울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 컴퓨터는 인간의 연산 능력을 쉽게 대체하지만 반대로 땅에 떨어진 물건을 집거나 춤을 추는 등의 간단한 행동을 처리하는 데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의 선견은 역설적인 방식으로 현실화되고 있는데, 최근의 챗 GPT 광풍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인공지능은 컴퓨터에게 어려운 육체 작업이 아닌 지적이고 창조적인 분야부터 대체하고 있는 중이다. 한스 모라백(Hans Moravec) 근육이 아닌 뉴런을 대체하는 것이 오늘날 생성 AI가 도달하고자 하는 특이점일 것이다. 근육을 대체할 자원은 이미 넘쳐난다. 일자리, 주거, 연금, 보험, 사회보장제도 등에서 밀려나 매 순간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는 프레카리아트(precariat)들은 이제 보편적인 생명 양식이 되었다. 비싼 돈을 들여 로봇이나 안드로이드를 개발할 이유가 전혀 없다. 과거에는 노예가, 근대에는 값싼 임노동자들이 그 물리적 에너지를 대신했고 오늘날에는 임금노동에서도 밀려난 수많은 플랫폼 노동자들과 비임금 자영업자들, 하도급과 아웃소싱에 포박당한 프리랜서들이 이를 대체한다. 생성AI는 이러한 육체적, 물리적 한계를 넘어서 모라벡이 설정한 최후의 지형들, 예컨대 예술과 과학의 영역을 정복하고자 한다.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며, 음악을 작곡하는 활동은 문제를 설정하고 대상을 재현하는 인지와 결부되어 있는데, 이 부문을 자동화되는 것이다. 인공지능의 진보는 자동화는 자동화이되 인지의 자동화이며 뉴런을 기계화하는 동시에 생산수단으로 만드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강력한 인지자동화의 전환은 어떤 것들을 대체하게 될까? 수많은 사람들은 소셜미디어에 자신이 챗 GPT와 얼마나 흥미로운 작업들을 했는지 전시하면서 이미 묵시록적인 결론을 얻었다. 문화 창조에 관련된 모든 행위들이 데이터베이스화 되고 패턴화되며 자동화된다. 더 이상 일러스트레이터도, 작곡가도, 성우나 배우도, 디자이너도 스토리텔러도 필요 없어질지 모른다는 기시감. 그것은 아직 생성 AI가 비즈니스화 되지 않는 단계임에도 모두의 뇌리에 박혀 있다. 산업 기계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 뉴런 기계들도 새로운 자본주의의 교외를 만들어낸다. 건당 보수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미세노동자(micro worker)들이 등장했다. 인공지능을 학습시키고 데이터들을 분류하는 작업, 노이즈를 필터링하고 이미지 인식을 반복 숙달시키는 작업, 번역과 설문, 그리고 이 과정을 검토하고 적합한지 채점을 매기는 모니터링에 이르기까지 미세노동자는 건당 1달러 이내의 푼돈을 받으면서 그중 20%를 운영 주체인 아마존과 구글 등이 떼어간다. 아마존은 이들 미세노동을 총망라하는 플랫폼 ‘메카니컬 터크’를 운영하며 엄청난 정보기술 도약을 이뤄냈고, ‘클릭워커’, ‘애픈’ 같은 플랫폼은 실리콘밸리 기업들에게 전 지구의 수많은 미세노동 결과물을 제공하고 있다.  이들 테크 기업들은 미세노동자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는가? 먼저 그것은 임금 형식이 아닌 건당 보수 형식을 취하며, 그것도 아주 작은 패키지 작업 단위로 구성되어 있어 노동과정의 구조 자체가 불투명하다. 미세노동자들은 자신의 작업 결과물이 무엇을 만드는지, 그리고 어떤 기업이 그것을 가져가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이러한 미세노동의 현실을 파헤친 필 존스의 책 『노동자 없는 노동』은 이런 플랫폼에 등록된 사람들의 90%가 건당 0.1달러 이하의 보수를 지급받으며, 이마저도 지급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밝힌다. 또한 상당수의 보수가 ‘보상(prize)’이라는 미명 하에 현금이 아닌 게임화폐, 특정 사이트에서만 쓸 수 있는 마일리지나 포인트 형태로 지급되고 있다. 또한 일은 매번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작업시간보다 긴 대기 시간을 거쳐야지만 얻을 수 있고 마치 게임처럼 할 수 있는 즐거운 활동처럼 포장되어 작업은 언제나 가치 절하된다. 최근 우리가 흥미진진하게 장난감처럼 갖고 노는 미드저니, GPT, DallE 같은 인공지능들은 진공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이처럼 수많은 미세노동자들의 인과 염이 새겨진, 생존을 위해 도박처럼 뛰어드는 ‘잉여’들이 빚어진 결과물이다. 이들 미세노동자들은 소셜미디어와 커뮤니티, 플랫폼 등 빅 테크 자본이 운영하는 광활한 네트의 영토에 여기 저기 널려있는 자원들, 우리가 사진을 찍고 글을 남기고 뭔가를 창조하는 과정에서 남겨진 데이터들을 가지고 작업한다. 그러나 오늘날 이들 생성 인공지능은 천재적인 기업가와 발명가들, 기술 관료들의 기술혁신인 것처럼 포장되고 있다. 전 지구의 시민사회는 이런 혁신담론이 자아내는 환등상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인공지능’이 아니라, 리좀처럼 얽혀진 수많은 인간 뉴런과 피땀어린 노동이 생성한 ‘공통지성’이라고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공지능이란 용어는 마치 과학자들과 기업 회장들이 이 모든 걸 발명했다는 듯 장막을 씌운다. 이 장막을 걷어내야 한다.  전 지구의 민주적 시민사회는 인공지능의 탈을 쓴 공통지성이 어떤 식으로 블랙박스화 되는지, 이 과정에서 어떻게 미세노동이 수탈당하는지 감시하고 이의제기 할 수 있어야한다. 또한 모든 사람들이 제한 없이 보편적으로 접근하고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사용하고, 발전시키고, 향유하는 주체는 사기업이나 경찰국가가 아닌 인과 염을 몸에 지닌 보통의 사람들이다. ‘공통지성’ 이란 개념은 결국 인공지능을 창조하고, 사용하고, 향유하는 데 있어 보편적인 시민권의 영역으로 접근하는 것을 의미한다. 산의 약수터와 우리가 숨쉬는 공기, 공원과 수자원, 삼림처럼 이 리좀화된 기계뉴런들은 공통적이고, 보편적이며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커먼즈(commons)로 인식되어야 한다. 이는 새로운 문화창조와 예술을, 그리고 진보된 리터러시와 민주주의를 상상하는 방식이다. 인공지능을 ‘공통지성의 커먼즈’로 재발명하는 과정은  당연한 시민권을 주장하는 것이며, 인지자동화 시대에 인간 뉴런을 잉여로 만드는 미세노동 수탈에 반대하는 저항이기도 하다.  글쓴이 _ 신현우(기술문화연구자, 문화연대 집행위원)정보기술 공간에서의 노동과 커뮤니케이션에 관해 연구하는 기술문화연구자이다. 플랫폼, 게이밍, 인공지능과 블록체인에 걸쳐진 IT 기술문화를 미디어정치경제학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탐구한다. 문화연대 집행위원, 계간 문화이론 전문지 문화/과학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서울과학기술대학교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예술과 기술, 기술비판이론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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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스포츠] 대한민국 스포츠 담론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대한민국 스포츠 담론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다음 시대로 넘어온 스포츠, 과거로 돌아가려는 대한민국 체육계 국제대회에서 대한민국 국가대표선수가 메달을 따면 가슴이 웅장해지던 시절이 있었다. 애국가가 울려 퍼지고 태극기가 올라가면 머리에 붕대를 묶고 투혼을 발휘한 선수가 복받치는 듯 눈물을 쏟고 온 국민이 함께 훌쩍였다. 오랫동안 스포츠는 대한민국을 세상에 알릴 유일한 기회였다. 멀게는 손기정, 양정모, 차범근으로부터 가까이는 박세리, 박찬호, 박지성, 박태환, 김연아, 손흥민까지. 세계에 대한민국을 알리던 그들은 곧 국가를 상징했다. 어쩔 수 없이 스포츠는 무거웠고 비장했다. 한일전이 벌어질 때마다 경기에 지면 현해탄에 빠져 죽으라는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쏟아내곤 했다. 세월이 흘러 이젠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일본대표팀에 대패한 한국 대표팀에게도 그런 악담을 퍼붓진 않는다. 비록 한국야구의 후진성을 비아냥거리고 KBO의 책임을 탓할지언정 일본에 졌다고 세상이 무너진 양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 만화를 찢고 나온 듯한 오타니를 보면서 부러워하고 강백호의 경박함에 잠시 부끄러워도 그들의 뛰어남이나 우리의 부족함이 나에게 주는 영향은 미미하다. 세상이 그렇게 변했다. 내가 어떤 변화를 감지했던 건 소치올림픽 때 김연아의 인터뷰에서다. 완벽한 경기를 하고도 미심쩍은 판정으로 금메달을 놓친 김연아를 대신해 대한의 열혈 팬들이 밤새 조직위에 항의 청원을 넣었다. 그 청원의 수가 짧은 시간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나자 외신에서 한국인 집단행동의 병리적 원인을 물을 정도였다. 당시 흥분했던 국민과는 달리 당사자인 김연아 선수는 매우 의연한 자세로 은메달에 만족하며 실수 없이 마지막 경기를 마쳐 후련하다는 요지의 인터뷰를 남겼다. 대중이 소위 국뽕이라 불리는 광란의 국가주의에 머물고 있을 때 한 선수는 이미 다음 시대의 스포츠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지 보여주고 있었다. 비슷한 상황이 평창에서도 벌어졌다. 보니 블레어 이후 첫 올림픽 3연패의 기회라는 언론의 의미 부여로 이상화의 500미터 금메달에 대한 기대(라고 쓰고 부담이라 읽는다)가 컸다. 결승에서 만난 이상화와 고다이라는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경쟁해온 라이벌이자 친구로 이상화가 2010년 밴쿠버, 2014년 소치 대회에서 금메달을 차지할 때 고다이라는 이상화를 롤모델로 삼아 스케이트를 탔다. 2018년 평창에선 고다이라가 이상화를 제치고 생애 첫 올림픽 금메달을 따냈을 때 경기를 마치고 엉엉 우는 이상화를 안고 고다이라는 ‘너는 나의 영원한 챔피언’이란 말을 남겼다. 스포츠에는 우리가 죽기 살기로 매달려온 메달보다 숭고한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다음 시대로 성큼 건너갔다.  죽기 살기로 운동하는 시절엔 온갖 반인권적 방법이 넘쳐났다. 욕하고 때리는 건 기본이고 경기력을 올릴 수만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 당시 한국의 훈련 방식을 전문가들은 ‘JJ(조져!) 트레이닝’이라고 불렀다. 빨래를 쥐어짜듯 극한의 상황까지 밀어붙이면 최고의 경기력을 끌어낼 수 있다는 믿음. 훈련 중에 웃으면 신성한 훈련장에서 웃음이 나오냐며 처맞던 시절이다. 국가가 앞장서서 소수의 어린 선수를 선발하고 모든 자원을 집중해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따기 위해 개인을 갈아 넣었다. 갈려 들어가던 선수들이 스스로 스포츠인으로서의 존엄을 선포한 것이다. 국가 주도 메달지상주의 담론의 한계였다.  2019년 조재범 사건 이후 대한민국 엘리트 스포츠에 대한 개혁의 요구가 거셌다. 대통령까지 나서 스포츠계의 일대 변혁을 요구했고 사상 유래 없는 민관합동 스포츠혁신위원회가 구성되었다. 1년간의 활동을 통해 일곱 개의 권고안을 발표했는데 이 새로운 스포츠 담론의 기저에는 ‘모두를 위한 스포츠’라는 철학을 담고 있다. 반세기 이상 대한민국 스포츠를 지배해온 국가주의, 메달지상주의 담론을 대체할 인권 담론을 천명한 것이다. 불행히도 대한민국 스포츠 개혁은 현장에 안착하기도 전에 기존 체육계의 거센 반발과 혁신위 권고안 전면 재검토를 공약으로 내세운 현 정부의 출범으로 위기에 봉착했다. 일례로 학교 운동부의 주말대회 참가와 관련해 단계적으로 줄어가던 출석 인정 결석일 수는 올해 오히려 늘어났다. 목소리를 내야 할 체육계 학자들은 운동권이라는 해괴한 개념을 운운하며 인권 중심 담론의 태동을 막기 바쁘다. 운동권은 공부에 찌든 대한민국 학생들에게 더 많은 운동할 권리를 요구하는 그런 권리가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과도한 훈련으로 학습권을 박탈당한 채 전 세계 최장 시간 훈련을 이어가는 학교 운동부 학생 선수에게 더 많은 운동시간을 허용해 달라는 시대착오적 요구다. * 참고 : 스포츠혁신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2022.6. 문화연대 흔들이슈 4호) ‘모두의 운동장’을 향한 움찔거림을 시작하다 전문체육에 과하게 치우친 대한민국 스포츠계의 기형적 모습을 바로잡고 스포츠의 균형 잡힌 성장을 만들어내고자 일군의 사람들이 그동안 각자의 방식으로 싸워왔다. 그리고 이제, 더 많은 사람이 온전히 스포츠를 향유할 수 있도록 ‘모두의 스포츠’ ‘모두의 운동장’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위기의 시대에, 우선 스포츠에 관심을 가진 모든 시민이 함께 새로운 담론을 상상해야 한다. 말 그대로 시민의 힘, 시민력을 길러야 한다. 그러기 위해 같은 뜻을 품은 사람들이 모이고, 만나고, 함께 활동하며 개별적인 힘도 기르고 팀으로 발휘하는 힘도 키워야 한다. 스포츠 인권 운동과 대안스포츠 운동에 함께할 시민사회단체와 시민들이 꾸준하게 교류하고 협업하는 안전한 커뮤니케이션 환경을 마련하고, 대안스포츠의 상과 스포츠 시민운동의 장기적인 전망을 모색할 때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운동이 있다. 몸을 움직여 땀을 흘리는 운동(exercise)과 마음을 움직여 우리가 발 딛고 사는 공동체를 조금 더 나은 모습으로 바꾸려고 애쓰는 운동(movement). 우리의 제안은 이 둘이 엮이는 지점에서 출발한다. 운동으로 운동하자는 제안. 우선 가장 시급한 것이 스포츠를 바라보는 다양한 언어의 생산이다. 국위선양과 영웅 서사로 점철된 스포츠계의 획일적인 언어에서 스포츠를 다양한 방식으로 즐기고 일상의 한 부분으로 들이는 이야기를 많이 생산하고 널리 퍼트리고 싶다. <움직>은 이러한 담론 형성의 기능을 담당할 것이다. 새로운 시선으로 스포츠를 해석하는 다양한 목소리는 꼭 운동선수나 스포츠 관련 학자가 아니라도 자신의 스포츠 경험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시민 중심의 스포츠 담론 확장을 통해 가능하다.  한편 주류 스포츠 서사에서 보이지 않는 숨겨진 목소리를 담아내는 일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 스포츠 시설물을 청소하고 관리하는 분들이 바로 그 스포츠 시절에서 소외되는 현실을 바꾸고 ‘기본권’으로서의 ‘스포츠권’을 실현하려고 <호호 체육관>을 열었다. 이곳에서 여성 청소노동자들은 요가로 몸을 풀고 배구를 배우며 공을 때린다. 닦고 쓰느라 늘 바닥을 향했던 시선을 마침내 하늘로 치켜들고 공을 기다린다. 그들에게 체육관은 노동의 현장에서 스포츠를 즐기는 삶의 공간으로 바뀐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담론을 실험할 ‘모두의 운동회’.  주류 스포츠장에서 밀려나거나 안전함을 느끼지 못하는 모든 사람이 함께 모여 모두가 즐겁고 안전하게 스포츠를 즐기는 공간이다. 성별, 장애, 인종, 나이로 인해 배제되거나 차별받지 않고 함께 즐기는 스포츠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모두의 운동회>는 성평등한 스포츠, 난민 아동을 위한 운동장, 대안적인 스포츠 교육과 환경, 더이상 환경을 해치지 않는 스포츠 행사 등을 고민하는 모든 시민이 함께 만드는 운동회다. 참고 : 모두의 운동회 가이드북 만약 이 시점에서 누군가 “그래서 그걸 어떻게 할 건데?”라고 묻는다면, 당장은 “어떻게든”이라고 밖에 답하지 못하겠다. 위기의 시기에 어떻게든 모여 아직 존재하지 않은 새로운 스포츠 담론을 상상하고 퍼트릴 생각이다.  우리의 작은 움찔이 모두의 거대한 움직임이 될 수 있도록 함께 움직여 주시길. “우리, 운동으로 운동해요!”  [대한민국 스포츠 담론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는 스포츠계에 만연한 영웅 서사와 승리 지상주의를 걷어내고 스포츠에서 소외되거나 들리지 않던 다양한 스포츠 서사를 발굴하는 웹진<움직> 1호 _워밍업에 실린 첫 번재 글.  글쓴이 _ 문화연대 집행위원, 대안체육회 _ 정용철 |  엘리트 운동선수들의 마음을 다독이다 그들의 반복되는 어두운 이야기에 깊은 빡침을 느끼고 스포츠와 인권, 평화에 대해 떠들기 시작한 문화연대 집행위원.  [모두의 스포츠] 웹사이트 : https://culturalaction.org/sportsforall [모두의 스포츠]웹사이트에서 웹진<움직>, 호호체육관, 모두의 운동회 전반의 소식을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모두의스포츠 #스포츠권 #청소노동자 #여성노동자 #체육관노동자 #스포츠 #모두의스포츠 #노동자의스포츠권 #호호체육관 #모두의운동회 #차별없는스포츠 #메달보다인권 #대안체육회 #대안스포츠 #스포츠시민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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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이태원참사의 기억을 담습니다
10·29 이태원참사의 기억을 담습니다 캠페인즈 미디어를 통해 직접 캠페이너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요! 10·29 이태원참사 기록보존활동, '이태원 기억 담기'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참사현장은 유가족들에게 트라우마 그 자체입니다. 참사의 공간은 애도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참사 이후, 많은 시민들이 참사현장을 찾고 있어요. 이태원역 1번 출구부터 해밀턴호텔 옆 골목을 따라 가벽까지 추모포스트잇과 추모물품이 가득했습니다. 지역 주민과 자원활동가는 작년 12월 말부터 2만 5천여 점의 조화를 비롯해 추모물품을 정돈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22년 12월 23일, 유족과 지역주민, 지역상인, 시민대책회의가 함께 ‘희생자의 온전한 추모와 피해자 지원을 위한 재단장 및 대책 촉구 기자회견’을 연 후,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피해자권리위원회가 공간을 관리해왔습니다. 수많은 메시지를 모두 수거하고 분류하기 위해서 더 많은 사람들의 참여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2023년 3월 11일부터 문화연대는 피해자권리위원회와 함께 시민들이 참여하는 기록보존활동 '이태원 기억 담기'를 시작하였습니다. 활동 소식을 듣고 부산에서 찾아온 한 참여자는 야외 공간에 놓인 추모물들은 금방 훼손되기 쉽상인데, “조금만 방심해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같은 추모 기록을 조금이라도 붙잡기 위한” 우리 활동에 딱 맞는 이름이라고 후기를 남기기도 했지요. △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참사 이후, 많은 시민들이 참사현장을 찾아 추모메시지와 추모물품을 남겨주었다. 기록보존활동 ‘이태원 기억 담기'는 크게 추모메시지 수거 작업, 추모메시지 분류 및 보존 작업, 현장 정비 활동, 추모메시지 공론화 활동으로 구성됩니다. 먼저 현장을 찾아 추모메시지를 수거해요. 많은 시민들이 남겨준 추모메시지를 보존하려는 게 첫번째 목적이고요. 가득 찬 벽에 새로운 추모메시지가 붙을 수 있게 여유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게 두번째 목적입니다. 아카이빙 작업 시엔 몇 가지 규칙을 따라, 메시지를 1차 분류합니다. 그리고 장기보존을 위해 메시지를 고정하고, 제습제와 함께 서류상자에 보관합니다. 현장 정비 활동 시엔 음식, 술, 꽃 등 추모물품을 수거하고 주변을 청소합니다. 또, 추모메시지를 남길 수 있게 필요 물품(포스트잇, 펜, 테이프 등)도 마련해두죠. △ 기억과 안전의 길에서 추모메시지를 수거하는 자원활동가들 △ 2023년 10월 현재까지 수거한 메시지는 십수만장에 달한다. 기록보존활동에는 연구자, 시인, 음악가, 대학생, 다큐멘터리 감독, 문화공간 운영자, 고등학교 교사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평소 다른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활발하게 활동해왔던 참여자도 있지만, 이 활동을 통해 참사가 주는 무력감을 이겨낸 참여자도 있어요.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활동가나 ‘이태원 기억 담기’ 활동 참여자 뿐만 아니라, 주변 상인과 지나가는 시민도 이 공간에 책임감을 느끼며 함께 공간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참사 현장 바로 옆에 있는 편의점 상인은 자원활동가들이 찾을 때마다, 분류 작업할 공간을 내어주고 마실 음료도 선물해주셔요. 바람이 드셌던 어느 날에는 참사 현장을 지나가던 한 시민이 흩날리는 포스트잇을 모아 서울시청 앞 시민분향소까지 손수 가져다준 일도 있었어요. 국가의 방기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각자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추모메시지와 사회적 애도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기억과 안전의 길'에는 참사 현장에 있었던 생존자와 구조자, 그리고 희생자의 유가족과 지인을 비롯해 다양한 시민들이 방문하여 포스트잇에 추모의 말을 남겨주고 있습니다. 추모메시지에는 추모와 애도를 비롯해 미안함, 자책감, 무력감, 분노 등 다양한 감정이 뒤엉켜있어요. 희생자와 참사 현장에 대한 기억이 담겨있기도 하지요. 추모메시지를 작성한 사람들은 희생자가 겪었을 고통과 유가족의 상실에 공감하며, 타인의 삶을 상상하기도 합니다. 희생자의 사라진 미래를 안타까워하며, 사회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책임을 반성하기고 국가의 책임을 묻기도 합니다. 잊지 않겠노라고 되뇌이고, 가만히 있지 않고 행동에 나서겠노라고 다짐하기도 합니다. 메시지를 살펴보면, 떠난 이들을 추모하는 관용구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를 비롯해 "미안하다"는 말이 참 많습니다. 정말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사과하지 않고, 정작 누구보다 가슴 아파하고 있는 사람들이 떠난 이들에게 사과하고 있죠. 왜 살아남은 우리만 사과해야 하는 걸까, 이런 메시지를 볼 때마다 슬픔과 동시에 분노를 느껴요. 아래에 참사 현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와 구조자가 작성한 메시지를 소개합니다. 이 메시지들엔 참사 현장의 풍경을 비롯해 희생자의 마지막 기억과 생존자의 트라우마, 다짐이 담겨있어요. 특히 구조자들의 메시지에서 재난대응시스템의 공백, 그리고 이들이 느꼈던 무력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 가족, 지인을 비롯하여 희생자의 지인들이 그들을 호명하는 메시지는 우리의 마음을 강하게 울립니다. 여기에는 생전에 함께하며 느꼈던 행복감과 희생자가 떠나며 겪게 된 상실감, 슬픔 등 세상 모든 진한 감정들이 녹아 있습니다. 비록 일부 미디어와 시민들이 희생자를 비난하고 왜곡된 이미지를 덧씌운다 할지라도, 희생자들 역시 우리와 같은 공동체에서 살아왔던 평범한 사람이었음을 추모메시지는 알려주고 있습니다. 한편, 한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작성된 메시지도 2할 이상이나 됩니다. 이는 인도네시아, 미국, 일본, 중국, 우크라이나 등 다양한 국적을 지닌 사람들이 추모현장을 찾아 주고 있음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이태원이 다양성을 품고 있는 공간이었음을, 그리고 외국인 희생자도 이곳에 있었음을 기억하게 하지요. 안전사회를 위해, 우리는 기억하고 또 기록해야 합니다 사회적 애도를 위해 아직 해야 할 일은, 정리되지 않은 추모메시지만큼 쌓여 있습니다. 책임자들은 형식적인 사과만 늘어놓고 있으며, 국회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됐지만 아직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지요.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는 기억하고, 또 기록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기록은 우리 사회가 무엇을 함께 기억할지의 문제와 긴밀하게 맞닿아 있을 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참사현장에 발걸음한 시민들이 남겨준 추모와 애도의 메시지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아 안전사회를 위한 기틀을 마련할 수 있길 바랍니다. 글쓴이 _ 문화연대 박이현 활동가 | 앞산의 불을 끄는 일만큼, 너른 삶의 터를 다지는 일이 중요하다고 믿는 활동가. 잠든 감각을 깨우고, 마음과 마음을 잇기 위해 오늘도 부지런히 씨앗을 심고 있다. '이태원 기억 담기' 활동을 비롯해, 기후위기에 대응하여 다양한 문화/예술 실천을 도모하는 한편 청소노동자의 스포츠권을 위해 운동으로 노동운동하고 있다. 이태원 기억 담기 | 매달 2회씩 정기적으로 모여 이태원역 1번출구 앞 '기억과 안전의 길'에서 추모메시지를 수거하고, 이를 아카이빙 및 공론화하는 활동을 진행하는 시민 모임. http://bit.ly/remember_1029에서 참가신청할 수 있다.
10.29 이태원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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