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소통 없이 갈등 키운 원강수 원주시장 1년

2023.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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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원주에서 활동합니다. 요즘은 풀뿌리 팟캐스트 <원주 아는 척>을 진행하고 있어요.

지방자치단체장 한 명의 영향력은 얼마나 막강할까요? 원강수 원주시장 취임 후 1년 동안 지역에서 벌어진 일을 보면서 지자체장 의지에 따라 얼마나 많은 사업이 새로 생기거나 돌연 엎어질 수 있는지 새삼 실감하고 있습니다. 제가 사는 원주가 요즘 시끌시끌한 이유이기도 하죠.

작년 7월 1일 취임한 원강수 원주시장 ⓒ 원주시 시정홍보관


작년 지방선거에서 원 시장이 뽑혔을 때, 다들 어느 정도 변화는 예상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에서 국민의힘으로 12년 만에 정권교체가 일어났으니까요. 현안을 바라보는 관점과 핵심으로 내건 공약이 전임 시장과 차이가 있는 만큼, 새로운 방향으로 지역을 이끌리라 쉽게 짐작할 수 있었죠.

지난 1년을 돌아보면 확실히 색깔이 다른데요. 원창묵 전 시장이 ‘문화・관광’에 집중했다면, 원강수 시장은 ‘경제’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유치’를 제1공약으로 강조하면서, 기업을 끌어들이고 일자리를 만드는 데 모든 역량을 쏟아붓는 중이죠. 특히, ‘세출 구조조정’과 ‘긴축재정’으로 필요 없는 사업을 정리하고 세금 낭비를 막아 지역경제 활성화에 활용한다는 방침입니다.

한마디로 경제를 위해 “아낄 곳엔 아끼고 쓸 곳엔 쓰겠다”는 건데요. 


자의적인 ‘쓸 곳’과 ‘아낄 곳’

5월 31일 경제도시 원주 비전 선포식 ⓒ 원주시 시정홍보관


문제는 어디가 ‘아낄 곳’이고 어디가 ‘쓸 곳’인지를 판단하는 주체가 원강수 시장을 비롯한 원주시정부라는 점입니다. 그 판단 기준은 시정 기조처럼 ‘경제’가 될 수밖에 없는데요.

원 시장은 취임하자마자 예산 363억 원을 들여 ‘긴급재난지원금’으로 시민 1인당 10만 원을 지급했습니다. 시민 생활 안정과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라고 밝혔죠. 또, 연간 230여억 원을 들여 예체능 학원비 등 명목으로 초등학생 1인당 월 10만 원을 주는 ‘꿈이룸바우처 지원사업’도 7월부터 시행 중입니다. 역시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고 지역 경제를 살린다는 취지죠. 이렇듯 경제를 살리는 데 필요하다 싶은 사업은 ‘쓸 곳’이라 판단하고 아낌없이 예산을 투자하는 모습인데요.

반면, 경제에 당장 도움이 안 돼 보이는 사업은 ‘아낄 곳’으로 생각하는 듯합니다. 문화 분야가 특히 그런데요. 전임 시정의 공공 문화 사업을 “세금 낭비다”, “성과가 부족하다”, “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뒤엎으면서 지역 사회 갈등과 분열을 키우는 모양새입니다. 그 과정에서 문화 영역에 대한 몰이해와 함께 관치시대로 돌아간 듯한 구시대적 행정을 보여주고 있고요.


줄줄이 뒤집히는 문화 사업

아카데미극장 철거를 발표하는 원강수 시장 ⓒ 원주시 시정홍보관


대표적 사례가 ‘아카데미극장 재생 사업’입니다. 1963년 세워진 ‘아카데미극장’은 국내에서 원형이 보존된 가장 오래된 단관극장인데요. 2006년 폐관 후 방치됐다가, 시민들이 적극적인 보존 운동을 벌인 덕에 작년 1월 원주시가 매입하고 재생 사업을 추진해 왔습니다. 역사・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2021년 문화재청장상을 수상하고, 작년엔 문화체육관광부 유휴공간 문화재생사업에 선정돼 국・도비 39억 원을 확보하기도 했습니다. 지역 사회에선 공감대가 있는 사업이었죠.

그런데 원강수 시장은 “막대한 예산이 든다”는 이유로 순조롭던 재생 사업을 뒤집고, 올해 4월 극장 철거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 자리에 야외 공연장과 주차장을 짓겠다면서 말이죠. 재생 사업 예산 중 상당 부분을 충당할 수 있는 국・도비까지 포기했습니다. 인근 전통시장의 주차난을 생각하면 주차장을 짓는 게 경제적으로 더 낫다는 판단을 한 건데요. 보존을 지지해 온 시민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시정부는 절차적 위법 논란까지 감수하며 철거를 강행하는 중입니다.

(캠페인즈에서도 '원주 시민의 문화자산, ‘아카데미극장'을 지켜주세요!' 캠페인을 진행 중입니다.)

‘법정 문화도시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역 문화 자산을 활용해 문화도시를 조성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사업인데요, 원주는 2020년부터 이 사업을 진행해 이듬해 ‘최우수도시’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기존의 관 중심에서 벗어나, 시민 주도로 사업을 이끌어가는 점이 좋은 점수를 받았죠.

원 시정은 이 사업도 뒤집는데요. 사업을 수행해 온 원주시 창의문화도시지원센터에 올해 3월 사업 중단을 통보한 거죠. 센터가 ‘보조금 집행 관련 지침’을 위반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고요. 그런데 세출 구조조정 과정에서 시정부가 문화도시 사업 예산 중 일부를 다른 사업에 쓰려다 센터와 갈등이 깊어졌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걸 보면, 사업 중단 결정엔 다른 이유도 있다는 의심이 생깁니다. 문화도시 사업이 관의 통제에 따르지 않는 걸 못마땅해한 게 아닌가 싶은데요.

실제로 시정부는 센터와의 사업 중단을 발표하는 보도자료에서 “시민주도형 문화도시 조성이라는 목표에 지나치게 매몰돼 민관 협력 사업의 본질에서 벗어나 방만하게 운영됐다”는 표현을 쓰기도 했습니다. 문화도시 원주가 높은 평가를 받는 데 공헌한 ‘시민 주도성’을 시정부는 도리어 부정적으로 본 셈인데요. 그래선지 향후 문화도시 사업을 관의 영향력이 강한 원주문화재단이 맡도록 했죠.

(참고로, 원주문화재단은 원 시장 취임 후 정관을 바꿔 공모 없이도 원주시장이 이사 중에서 대표이사를 뽑을 수 있게 했습니다. 그렇게 선임한 대표이사는 인수위원회 출신 인사로, 원 시장 측근으로 꼽히죠. 여기에 재단 사무처장은 이례적으로 원주시 5급 공무원을 파견했고, 새롭게 문화도시 사업을 이끌 센터장 자리에도 6급 공무원 파견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밖에 ‘댄싱카니발’, ‘한지테마파크’, ‘옥상영화제’ 등 활발히 진행돼 온 다른 문화 사업도 비슷한 이유로 줄줄이 위기를 맞았습니다. 지역 사회에서 ‘문화를 효율성 잣대로만 판단해선 곤란하다’, ‘문화 생태계가 관치시대로 역행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죠. 원강수 시장은 “경제가 복지고 문화이자 교육”이라면서 경제 최우선 기조를 고수하는 중이고요.


실종된 토론, 커지는 대립

4월 29일 아카데미극장 보존을 위한 시민행진 ⓒ 아카데미의 친구들


문제는, 이런 ‘문화 사업 뒤집기’가 제대로 된 논의 없이 독단적으로 이뤄진다는 점입니다.

지역 사회 최대 화두인 아카데미극장 철거를 결정하는 과정만 봐도 그렇습니다. 그 흔한 공청회 한 번 열지 않았죠. 원강수 시장이 약속한 공개 여론조사는 여태 감감무소식이고요. 사실상 비공개 간담회, 구성원도 알 수 없는 전문가 TF, 공무원으로 구성된 위원회만으로 철거를 결정한 셈입니다.

더구나 원 시장은 보존 지지 시민들과 첫 비공개 간담회를 진행한 바로 다음 날 극장 철거를 발표했습니다. 철거를 이미 결정해 놓고선 형식적으로 간담회를 열었다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는데요. 실제로 그게 맞다는 원주시 공무원 ‘내부고발’이 나와 큰 파장이 일기도 했죠.

불통 행정에 보다 못한 시민 수백 명이 서명해 조례에 따라 시장에게 정책토론을 청구했지만, 시정부는 그마저도 법령상 근거가 없는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며 사실상 묵살하고 있습니다. ‘주민등록번호가 필요하지 않으니 토론을 수용하라’는 국민권익위원회 권고도 거부했고요.

아카데미극장 보존을 지지하는 ‘아카데미의 친구들 범시민연대’는 극장 맞은편에서 천막 농성을 50일 가까이 이어가고 있습니다. 등록문화재 지정을 요구하면서 대전 문화재청 앞에서 1인 시위도 진행 중이고요.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매입한 극장을 어떻게 활용할지를 두고 지역 사회에서 활발한 상상과 토론이 펼쳐졌는데, 지금은 극장 존폐를 두고 대립하는 씁쓸한 상황입니다.

문화도시 사업, 댄싱카니발, 한지테마파크, 옥상영화제 등도 마찬가지로 시정부가 별다른 토론 없이 일방적 결정을 내리는 바람에 당사자를 중심으로 반발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선택적 소통의 아이러니

작년 11월 22일 시장실 1층 이전 기념식 ⓒ 원주시 시정홍보관


작년 11월, 원강수 시장은 예산 3억 원을 들여 7층에 있던 시장실을 1층으로 옮겼습니다. “시민의 말씀을 더 열심히 청취하겠다는 강한 의지”라고 밝혔는데요. 시장실을 개방해 시민들과 웃으며 사진 찍는 모습을 홈페이지에 게시하기도 했죠. 그만큼 소통을 눈에 띄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 원 시장이 정작 진정으로 소통이 필요한 사안에선 불통으로 일관하니 아이러니합니다. 아카데미극장, 문화도시 사업 등 공공 문화 사업의 방향성을 두고 각계각층 시민이 참여한 심도 있는 토론이 당장 절실한데 말이죠.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어떤 사업이 예산을 ‘쓸 곳’이고 ‘아낄 곳’인지 지역 사회와 함께 공론장에서 합의해 가는 과정이 지금부터라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원 시장은 “시민이 행복한 원주”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죠. 갈등과 분열을 키운 지난 1년처럼, 지자체장의 막강한 영향력을 ‘힘의 논리’로만 밀어붙인다면 당연히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정말로 “시민이 행복한 원주”를 만들고 싶다면, 활발한 소통과 공개적 토론을 바탕에 둔 ‘논리의 힘’으로 원주시정을 이끌어야 합니다. 시간이 좀 걸릴진 몰라도, 어차피 언젠가는 ‘논리의 힘’이 이기게 돼 있으니까요. 남은 임기 3년 동안은 달라진 시정을 보여주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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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취업을 계기로 원주에 살게 된 청년입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원주가 살기 괜찮은 곳이라고 생각해서, 이곳에서 정착한 삶을 상상해보기도 했는데요.. 제가 꿈꾸는 건 창작자의 삶인데, 원주에 있던 창작 지원 체계가 뒤흔들리는 탓에 제 청사진도 망가져버렸습니다. ㅠㅜ 선거가 이렇게 중요합니다. 글에 적어주신 것처럼 사업에 가치가 있냐 없냐를 독단적으로 판단하는 게 가장 큰 문제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주시면 좋겠습니다. 원주 뿐만 아니라 어느 지역에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까요...

원주에서 나서 자라고 직장도 원주에 두고 있는 원주시민으로서 아카데미극장 철거를 앞둔 참담한 현실을 마주합니다.
시장이라서 본인 마음대로 시정을 하는 것을 그대로 두어선 안된다고 보며, 시민의 힘을 보여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역의 경제를 활성화 시키는 것은 바우처나 상품권이 아니라 결국 지역의 고유한 문화인데...정말 안타깝습니다. 원주의 고유한 색을 만들어나가는 시민들을 위한 사업이 지속적으로 진행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정리해주신 걸 읽어보니 지역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시장 혼자서 결정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시장은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닌데 근거도 충분하지 않은 결정을 너무 쉽게 해도 되는 걸까요?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는 시장이 됐으면 합니다.
불통도 불통이지만 대통령부터 지자체장들까지 뭐랄까... 딱히 생각도 주의(主義)도 없으면서 가르치려 들려고만 한다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원주시도 그런 느낌이었군요....
로컬 청년 크리에이터들이 어떤 생각들로 지역에서 활동하고 계실지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응원하며, 힘 보탤 방법을 생각해보겠습니다.
이현배 비회원
문화와 전통을 말살하는 왜구, 일본순사 짓을 하는 원주 시장은 사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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