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성소수자는 당신 주변에 있습니다

2023.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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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철학 연구자. 일어/중국어 교육 및 번역. => 돈 되는 일은 다 함

일본에는 부락민(部落民, 부라쿠민)이라는 사람들이 있다. 에도 막부 때 히닌(非人)이나 에타(穢多)라 불렸던 천민들인데, 메이지 유신 이후 사민평등이 이루어진 후 이들이 사는 곳을 미개발부락, 피차별부락 등으로 부르면서 부락민이라는 호칭이 만들어졌다. 메이지 유신 이후 사람들은 히닌, 에타와 이제 같은 급이 되는 것이냐고 불만을 품었다. 이 때 평민이 된 히닌, 에타를 신평민(新平民)이라고 부른다. 새로 만들어진 호적에 과거에 히닌이나 에타였던 사람들에 대해선 신평민이나 구천민 같은 메모가 적혔다. 또, 천민이었던 사람들인데 메이지 유신 이후 사민평등이 이루어지자 이 사람들에 대한 학살(천민사냥, 非人狩り히닌가리)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의 호적에 그런 메모 같은 것이 적혀있지는 않지만, 조금만 공을 들여서 찾으면 그 조상이 부락민이었는지를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그리고 특정 지역을 두고 과거에 부락이었다고 말하기도 하고, 특정 성씨가 부락 출신을 뜻한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부락이라는 말 자체가 혐오 발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지금은 이 문제를 동화문제(同和問題)라고 부른다. 

우리로 치면 네이버 지식인에 해당하는 야후재팬 치에부쿠로(知恵袋)에 올라온 글이다.

부락 분하고 결혼하신 분 계세요? 제 남친이 부락이에요. 저는 남친과 결혼하고 싶은데, 부모님이 반대해요. 교제도 안 된다고 하면서 올해 안으로 헤어지라고 말씀하세요. 왜 안 되냐고 물어보면 부락이라서, 단지 그것 때문이라서 저는 매일 울고 있습니다. 정말 자상하고 너무 좋아하는 사람인데. 저는 부모에겐 헤어졌다고 말하고 지금부터라도 계속 사귀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차별을 하는 부모가 싫어요. 제 생각이 잘못된 걸까요? 그렇지만 그 사람 없는 삶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2008.11.16.)
부락 출신 남친과의 결혼을 반대당하고 있습니다. 24세 여성입니다. 남친은 27세로 4년간 교제를 거쳐 프로포즈를 받았기에 올해 안에 결혼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남친은 야마구치 현의 시골 출신으로 남친 부모님께도 인사를 했고 매우 화기애애한 가정이었고 저를 대환영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부모님에게도 남친을 인사시켰는데 결혼은 반대하십니다. 이유는 흥신소에서 조사해봤더니 남친이 부락 일족(部落一族)이라서 라고 합니다. 함부로 조사했다는 것 때문에도 화가 났는데 요즘 시대에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반대를 당했다는 것 때문에 분노를 참을 수 없습니다. (2018.07.04.
20대 남자입니다. 애인이 부락 출신인 것 같다고 부모가 결혼을 반대합니다. 부모님은 서로를 위해서라고 말씀하시는데 솔직히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부락 출신이라는 게 대체 뭔가요? (2021.01.03.)

시마자키 도손(島崎藤村, 1872~1943)이 쓴 『파계(破戒, 1906)』라는 소설이 있다. 주인공 세가와 우시마츠(瀬川丑松)는 부유한 부락민이 제돈을 주고 비싼 여관에 묵었다가 쫓겨난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아버지가 말한 계율, 절대 자신의 출신을 말하지 말라는 계율을 떠올린다. 세가와는 부락 출신이었다. 세가와는 소학교 선생님이었다. 그는 남몰래 피차별 부락 해방운동가 이노코 렌타로(猪子蓮太郎)를 사모하며 그의 정보를 스크랩한다. 세가와의 출신을 모르는 주변 사람들은 세가와에게 세가와 선생 같은 상냥한 성품을 가진 지식인은 부락민과는 다르다며 부락민에 대한 혐오의 시선을 드러낸다. 결국 참지 못한 세가와는 아버지의 계율을 깨고 자신의 출신을 밝힌 후 미국으로 떠날 결심을 한다.


이 소설을 읽으며 성소수자의 삶이 떠올랐다. 성소수자에 대해 유화적인 시선을 가진 사람도 있지만 아닌 사람도 많다. 아직도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발언은 계속되고 있고 그런 발언을 한 사람들이 딱히 제재를 받지도 않는다. 성소수자에 대해 유화적이라고 말하면서도 동성혼 법제화에는 반대한다는 사람도 있고 자기 주변에는 없길 바란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나 일터에서 사적인 정보에 대한 질문을 받는 성소수자들 중에는 당혹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애인 있냐”는 질문을 “밥 먹었냐” 수준으로 하는 사람이 많은 한국에서, 성소수자들은 자기 애인의 성별을 바꾸어 말하거나 애인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불쾌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불쾌함까진 아니더라도 당혹감이나 씁쓸함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성소수자임이 밝혀졌다가 왕따나 괴롭힘을 당했고, 그로 인해 해고를 당하거나 퇴사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한국의 노동 환경이나 복지가 이성애 중심적이라는 느낌도 많이 받는다. (그렇게 이성애 중심적인데 출생률이 이 모양인 것도 신기하다) 

성소수자는 여러분 주변에도 있습니다” 같은 말은 도대체 몇 년을 해야 그만 하게 되는 걸까. 

이슈

차별금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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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학 비회원

성소주자는 우리가 함께 살고 있는 우리의 이웃입니다.

문득, ["성소수자는 여러분 주변에도 있습니다."를 그만두는 것]의 의미를 조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억압받고, 억압 받아왔으며, 앞으로도 억압 받을 것으로 전망되는 이들의 존재를 상기시키는 구호가 현실사회에서 그들을 향한 억압이나 차별이 없어지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랄까요 ? 

물론 작성해주신 글의 취지와는 빗겨가는 논지의 고민이지만 말입니다. 

문득 들은 고민이라 주장이 부드러운 댓글을 쓰지는 못하겠지만...

성소수자는 여러분 주변에도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끝없이 반복하고 또 반복해야 할 말일 것 같습니다. ㅠㅠ

일상 속 차별은 없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저 스스로도 차별적인 언행을 했던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반성과 걱정도 드네요?

부락민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낙인찍기'라는 표현이 바로 떠올랐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낙인찍기는 조선시대에 사용되던 형벌의 일종이지만 현대 사회에서 소수자를 차별하고, 배제시키는 방식으로 변했다고 느껴집니다.
써주신 것처럼 성소수자들이 당면하게 되는 일상의 차별이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차별은 성소수자를 조롱의 표현으로 사용하거나, 비하의 표현으로 사용하는 일상의 혐오에서 시작됩니다. 성소수자를 비롯해 다양한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본문에서 언급하신 것처럼 "성소수자는 여러분 주변에도 있습니다"라는 말을 그만할 수 있게,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사라져야 한다는 의미를 명확하게 할 수 있도록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좋겠습니다.

조금씩 그런 공간이 넓혀지는 것을 기대해 봅니다. 디지털 공간에서도, 현실 공간에서도요.

whgkals77

상식에 벗어난 행동이라는 게 무슨 말씀이신지?

성소수자들을 이해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상식에 벗어난 행동을 용인해줘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