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함께 기억] 사회가 기억하고 제도가 기억하게 하라

2024.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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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와 비장애 사이에서 화합을 갈구하는 저시력 시각장애인. 경계는 나누는 것이 아니라 좁혀 나가는 것입니다.

4월 16일을 기억하는 캠페이너들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2013년 10월 30일, 저는 고등학교 1학년 수학여행으로 제주도에 갔었습니다. 교실 내에서 티격태격하던 친구들과 함께 우정도 다지고 한라산도 올라가며 즐겁게 지냈었습니다. 항상 머리 위 높은 곳에서 떠돌던 구름을 바로 옆에서 직관하던 그 황홀한 광경과 정상까지 올랐다는 것에 대한 성취감은 정말이지 잊을 수 없는 저의 소중한 추억이었습니다. 그러고 6개월 후 같은 섬에 가던 단원고 학생들은 전 국민이 보는 긴급 속보 방송 앞에서 300여 명이나 세상을 떠났습니다. 인생 한 번뿐인 이런 추억들을 만들 수 있다는 그들의 기대와 미래에 대한 계획, 소망들은 그렇게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그 당시 TV를 보며 가족들은 “다행이다,” 네가 살아있는 것에 감사하며 살라” 정도의 말만 했지만 저는 슬픔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나와 같은 경험을 가질 수 있었던 그 수많은 동년배들이 왜 그렇게 처참히 희생되어야 했을까? 바다 위에 완전히 누워있는 세월호를 전 국민이 바라보고 있는데 왜 정부는 가만히 있었을까? 학교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있었던 추모 공간을 지나칠 때마다 저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일부 극단적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나오는 망언들을 볼 때마다 저는 분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라도 공감하고 될 수 있는 대로 도와야지 하는 생각에 헌금, 헌화도 해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저의 그 의지와 기억마저도 저물어 갔습니다.

그렇게 10년이 지나고 함께 기억 프로젝트를 통해 잊혀졌던 기억을 돌이켜 보며 저는 기억이라는 단어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함께 기억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모두가 트라우마를 갖고 악몽에 잠을 못 이뤄야 한다는 것은 당연히 아닐 것입니다. 모두가 물이 무서워서 배를 타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고요. 함께 기억한다는 것은 개인 기억의 집합체보다는 사회적 기억으로 봐야 합니다. 사회가 기억하고 제도가 기억해야 세월호 사건과 같은 참사가 일어나지 않게 됩니다.

국가가 기억하지 않으려 하는 상황에서 개인만의 기억과 노력은 한없이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담은 기자들의 증언을 담은 영화 “회색 지대”는 이러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누구는 단순히 특종을 위해, 더 좋은 카메라 구도를 위해 뛰는 기회주의자로 볼 수도 있지만 “가만히 있어 주세요”라는 안내방송과 대비되는 아비규환 속에서 과연 이기주의만으로 이 사진들을 설명할 수 있을까요? “내 동생 돌려내!”라는 유가족의 울부짖음과 아비규환 속에서 가족의 생사를 알고자 하는 몸부림, 이 상황을 하나라도 더 카메라에 담고자 하는 기자들의 고군분투 모두 그 당시 경찰들의 저지 앞에서는 한없이 나약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를 사회적인 기억을 만들라는 그들의 간곡한 부탁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앞서 말했듯 사회적 기억은 개인들의 트라우마만의 집합체가 아닙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하나도 빠짐없이 규명하고 이런 일이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제도를 만들며 이 제도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사회가 공감하고 감시·감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회적 기억이 형성되지 않으면 참사는 되풀이됩니다.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때 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것이고, 세월호 참사 때 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2022년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제는 이 악순환을 끊을 때입니다. 모든 참사의 진상을 낱낱이 파헤치고 관련자 처벌 및 제발 방지 법률의 제정을 강력히 촉구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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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 세월호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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