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전세사기 피해자 연속기고] 6. 전세계약 직후 벌어진 일... 충격적이었던 등기부등본

2024.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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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
더 안전한 살 곳을 바라는 캠페이너들의 이야기를 모읍니다.

"나라는 제대로 된 대책도 없고 더는 버티지 못하겠다." 


2023년 2월 28일, 첫 번째 전세사기 희생자가 남긴 말입니다. 그 후 또 다른 피해자들이 잇따라 세상을 등졌습니다. 피해자들의 죽음, 절규, 투쟁으로 2023년 5월 전세사기 특별법이 제정되었지만 제대로 된 피해 구제와는 거리가 멀고 여전히 많은 피해자가 방치되고 있습니다. 

전세사기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매일 전국 곳곳에서 새로운 피해 소식이 터져나오고, 기존 피해자들은 빚으로 빚을 돌려막거나 빚을 더 내서 피해주택을 떠안고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티고 있습니다. 그러나 4·10 총선을 앞둔 지금도 제대로 된 피해 구제 공약과 대책은 논의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전국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직접 호소하고자 합니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는 피해자들의 요구가 반영된 공약과 대책을 촉구하기 위해 관련 릴레이 기고를 진행합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간절한 목소리에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가 전국 각지의 피해자들의 사연을 접수받아 '전국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답해주세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 전세사기 희생자 1주기 추모문화제 공간에 마련된 분향소 -참여연대 제공-

2020년 다세대주택을 전세로 얻었습니다. 입주하고 한 달 후쯤 우연히 등기부등본을 떼어보니 임대인이 전혀 모르는 주식회사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빌라 수백 채를 가진 임대사업자였습니다. 저의 전세계약 직후 전세가와 같은 금액에 해당 다세대주택을 매매한 것이었습니다. 바로 무자본 갭투기였습니다.

부랴부랴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보증보험에 가입을 알아봤지만 이 주식회사가 블랙리스트에 올라온 악성 임대인이라 가입이 어렵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불안은 점점 커져만 갔습니다. 심지어 얼마 후 다시 떼어본 등기부등본은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근저당이 새롭게 잡혀있었습니다. 채권자는 은행도 아닌 다른 주식회사였습니다. 

새 임대인이 된 주식회사는 제가 살고 있는 주택을 포함하여 총 다섯 채에 근저당이 잡혀있었습니다. 이 또한 근저당 채권자가 임의경매를 신청하면서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 집에 살고 있는 것은 저인데, 막상 집과 관련한 중요한 사실은 알 수 없었습니다. 우연한 계기가 아니고서는 무언가 큰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강박적으로 등기부등본을 떼어보게 되었습니다. 매번 피가 마르는 심정이었습니다.

해결은 더욱 어려웠습니다. 근저당에 묶인 다른 세입자들을 찾아다니고 인터넷이나 법률 상담을 통해 대응 방법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어떤 전문가라는 사람은 "머리에 총 맞은 게 아니라면 그런 집에 들어가지 않는다"라며 저를 질책했습니다. 주식회사 측과 연락이 닿았을 때도 비난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해당 집의 주인으로서 근저당을 잡아놓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며 큰 소리를 쳤습니다. 근저당과 '억' 소리나는 세금 체납으로 집을 압류상태로 만들어놓고 난 모르겠다, 알아서 살라는 것이었습니다.

모두가 주식회사는 합법적으로 투기를 한 것이고 그 투기를 미리 알아채지 못한 세입자가 잘못이라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하면 이를 알 수 있었을까요? 계약했던 임대인이 다른 사람에게 집을 팔았다는 것도, 새 임대인이 체납한 세금이 어느 정도인지도, 근저당 채권에 대해서도 세입자가 미리 알 수 없거나 접근하기 어려운 정보들 뿐입니다. 세입자들은 집을 구하려면 최소한 '관심법'이라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까? 

까딱하다가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큰 자책감에 시달렸습니다. 모아둔 전 재산과 대출금으로 구한 집, 까딱하다가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계약기간이 끝나는 날까지 매일이 지옥과도 같았습니다. 그렇게 간신히 2년이 지났습니다. 물론 이것으로 전세사기 피해가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전세반환청구 소송에는 6개월이 걸렸고, 강제경매 절차는 1년 넘게 이어지고 있어 여전히 사건은 진행 중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TV에서 익숙한 풍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의 임대인을 대리한다던 한 컨설팅 부동산의 사무실이었습니다. 공인중개사 신아무개씨의 얼굴과 목소리가 어제 만난듯이 생생했습니다. 뉴스에 나오기를 그는 여러 악성 임대인을 배후에서 조종한 전세사기 공범이었습니다. 임대인은 이미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었고 재판을 진행하며 신아무개씨와 서로 잘못을 떠넘기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세입자들은 또 뒤늦게 알게 된 것입니다. 저를 포함하여 그 임대인에게 전세사기 피해를 당한 이들 중 경찰, 검찰에게 연락을 받았던 경우는 딱 한 명에 불과했습니다. 또, 한 번은 집 현관문에 이상한 종이가 붙어있던 적도 있습니다. 주택 관리를 인수인계 받은 새로운 법인이라며 본인들한테 연락해서 점유 사실 등을 알리지 않으면 현관 도어락을 따고 들어오겠다는 협박성 쪽지였습니다.

이외에도 저는 여전히 전세사기 피해자로서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은행은 전세담보 대출을 연장해주지 않아 높은 신용대출 이자를 다달이 내고 있으며, 전세보증금으로 인한 빚도 갚아나가고 있습니다. 재판으로 수백만 원의 변호사, 법무사 비용을 부담해야 합니다. 

'전세사기'라는 말도 생기고 전세사기 특별법도 만들어졌지만 여전히 저는 법적 보호장치 없이 홀로 맞서고 있는 기분입니다. 당장 집에서 쫓겨나지 않는다고 해도 피해자가 아닌 것은 아닙니다. 


전국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모여 전세사기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 전국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모여 전세사기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제공 -

전세사기는 명백한 정부의 책임입니다. 정부는 임대사업자로 등록만 하면, 종부세나 양도소득세는 걱정하지 않고, 매매 차익을 거둘 수 있도록 막대한 세금 혜택을 주었습니다. 집값이 폭등하면서 임대사업자들은 주택담보대출 규제도 피할 수 있어 갭투자와 투기를 이어왔습니다. 그러나 이로 인한 부담과 손실은 오로지 세입자에게만 폭탄으로 날아왔습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이런 전세 사기 피해자들을 두 번 죽이고 있습니다. 전세사기 특별법이 만들어진 지 9개월이 지났지만 제대로 된 실태조사 한 번 이루어진 적이 없습니다. 그저 사기꾼들이 떼어먹은 빚을 세입자더러 평생 갚으라는 대책뿐입니다. 대체 정부는 책임질 마음이나 있는 것입니까?

피해자들이 원하는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의 '선구제 후회수' 방안에는 한 푼을 쓰는 것도 아까워하면서 각종 기업과 건설사 살리기 정책을 마구 쏟아내는 것은 대체 무슨 심보입니까?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외면하고 기업형 장기임대주택 활성화, 건설사의 다세대 주택 등 비아파트 주택 매입에는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무엇이 우선순위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민주당과 정의당의 개정안

민주당과 정의당이 국회에서 발의한 전세 사기 특별법 개정안에는 ‘선 구제, 후 회수’ 방안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안은 피해자들에게 전세 보증금을 100퍼센트 보상하는 것이 아닙니다. 경매 시 감정되는 시세가를 기준으로 지급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전세가보다 집값이 싼 깡통전세 피해자 다수는 수천만원 이상의 큰 손해를 감내해야 합니다.

또, 선순위 근저당이 있는 후순위 피해자들은 보증금을 대부분 날릴 수 있기 때문에 개정안에는 보증금을 최소 30퍼센트 이상 보상해 주는 방안이 담겨 있습니다. 이는 전세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는 것보다는 낫지만, 여전히 피해자들이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대의 손실을 볼 수 있어 충분치 않습니다.

이 개정안은 총선 이후 국회 본회의에 부의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물론 본회의를 통과하더라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야당의 이런 안조차 국회에서 여당과의 합의를 거치는 과정에서 후퇴할 공산이 있습니다. 2023년 상반기에 전세 사기 특별법이 누더기가 되는 과정이 정확히 이랬습니다.

피해자들은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이 제대로 된 ‘선구제 후회수’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는 계속 터져 나오는 전세사기, 깡통전세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집없는 서민과 청년을 위한 정책입니다.

“혈세”는 전세 사기 피해자의 피눈물을 닦는데 쓰여야 합니다

전세사기는 근본적으로 오랜 기간 이어져 온 정부의 부동산, 주택 정책 실패로 빚어진 '사회적 재난'입니다. 개인이 조심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혈세"에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피도 들어 있습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피눈믈은 보이지 않는 것입니까. 얼마가 들던 간에 필요한 것이라면 혈세라도 투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정으로 서민을 생각하고 주거복지를 위한다면 피해자 전원, 전액 보상해야 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아무런 조짐이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진정으로 우리 사회에서 전세사기 문제가 종식되기를 바랍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똑똑히 지켜볼 것입니다. 정부가 어떤 대책을 마련하는지, 각 정당과 후보는 어떤 입장을 보이는지 눈여겨 보고 있습니다. 피같은 한 표를 엄중하게 행사할 것입니다. 그리고 선거가 끝난 다음에도 끝까지 투쟁할 것입니다. 전세사기 문제는 끝나지 않을 것이기에 저 역시 마지막까지 외칠 것입니다. 

전세사기는 사회적 재난입니다.
정부와 국회는 전세사기 피해를 온전히 보상하라!


- 부천 전세사기 피해자 서지애 -


※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가 전국 각지의 피해자들의 사연을 접수받아 오마이뉴스에 기고했으며, 캠페인즈에도 중복게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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