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세상을 바꾸는 공론장] 정책과 사회 문제는 어떻게 만날까

2023.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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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활동가들의 문제해결 플랫폼이자, 민간 정책연구소 LAB2050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사회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과 대안 마련을 위해 노력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 공론장이 원활히 작동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중에서도 주요한 공론장의 일원인 학계와 언론의 역할을 중심으로 그동안의 노력과 성과, 한계 그리고 향후 나아가야 할 방향을 되짚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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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형중 LAB2050 대표


다주택 갭투기 전세사기가 처음 화제가 된 시기는 2019년, 이른바 강서구 화곡동 강씨 사건으로 알려진 사건이었다. (한창 주택 가격이 오르는 시점인데도 전세사기가 횡행했다.) 그리고 2022년, 전세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전세사기의 피해는 광범위하게 퍼져나갔다. 정부도 대응하기 시작했다. ‘안심 앱’을 만들어 악성 임대인을 조회하고, 임대인의 세금 체납 등을 확인하도록 하는 정책이 발표되었다. 사후 약방문과 같은 미온적 대응이 아닐 수 없었다.

전세사기가 다시 심각한 사안이 된 시점은 올해 2월부터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사람이 죽었기 때문이다. 5월부터는 국회에서 특별법이 논의되었다. 완고했던 정부도 우선매수권, 대환대출, 조세채권 안분 등 이전에 반대했던 정책들을 내놓기도 했다. 사람이 더 죽었기 때문이다. 특별법이 통과되기까지 시간이 꽤 지연되었다. 전세보증금 반환채권 공공 매입, 최우선변제금 보전 등의 대안을 두고 여야 간 이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전세사기란 사회 문제는 이를 다루는 각종 정책과 올해 5월이 돼서야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5월에도 정치 공론장의 핵심 의제가 전세사기가 되지는 못 했다. 민주당의 돈 봉투 사건,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의 설화, 김남국 의원의 코인 투자 논란 등으로 전세 사기는 우선 순위에밀려난 의제가 되어버렸다.

 ‘민간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회계가 불투명하다’, ‘원장들이 자금을 유용한다’는 것은 이미 오래된 문제였다. 사실 이 문제는 개인의 비리에만 그치지 않는다. 보육의 질이 떨어지는 아주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원장들이 수익을 추구할수록, 또 돈을 유용할수록 아이들을 위해 사용할 재원을 줄어들기 때문. 인건비와 식재료 비용을 최대한 줄이려는 유인이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이 같은 문제가 언제 공론화 되었을까. 2018년 ‘정치하는엄마들’이란 시민단체가 비리 유치원의 명단을 공개하는 운동을 벌였기 때문에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다. 이미 이 문제를 알고 있던 주체는 많았다. 2016년 경기도교육청, 2017년 국무조정실도 감사를 통해 사립 유치원의 비리를 알고는 있었다. 이 정보의 공개를 청구하고, 집요하게 명단 공개를 요구한 ‘정치하는엄마들’이 있었기에 사립유치원의 비리가 세상에 드러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문제를 다루는 대안, 다시 말해 정책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상당히 미온적인 대안이라고 생각하는 ‘에듀파인’, 투명한 회계시스템의 도입이 정책으로 제시되었다.

 사립유치원 비리의 문제는 두 가지 측면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첫째는 원장들의 일탈적 비위만이 쟁점이 될 게 아니라, 공적 재원으로 운영되는 보육시설이 ‘이윤의 원리’로 운영되는 문제 전반이 핵심 의제가 되었어야 했다. 이로 인해 보육의 질이 떨어지고, 종사자의 처우가 열악한 문제가 지속됐다. 둘째는 좀 더 포괄적인 대안, 근본적인 정책을 논의해야 했다. 회계시스템 도입은 미온적인 대응이다. 이 기회에 공공 보육체계를 전향적으로 강화했어야 했다. 2018년에 공공 보육체계를 대폭 확충했다면 그 이후 합계출산율의 대폭 하락도 일부 방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노란봉투법 얘기도 빼놓을 수 없겠다. 사실 노란봉투법 자체가 조금 어렵다. 쉽게 얘기하자면 합법적인 파업의 범위가 제한돼서 쟁의행위가 쉽게 불법화되고, 손해배상 청구는 노동자를 압박하고 노조를 파괴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었는데, 이를 막자는 것이 노란봉투법이다.

 노란봉투법이 다루는 쟁의행위에 뒤따르는 손해배상, 가처분의 문제가 공론화된 시기는 딱 세 번이 있었다. 첫 번째는 2003년 두산중공업의 노동자 배달호씨가 월급마저 가압류되자 분신 사망한 때다. 두 번째는 2013년 쌍용차 노조가 국가와 회사로부터 47억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나오고, 이 뉴스를 보던 세 아이의 엄마 배춘환씨가 노란봉투에 4만 7천원을 담아 시사주간지에 보낸 시기다. 세 번째는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이 일어났던 2022년이다. 매번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거나 죽어나가야 공론화가 되었다. 그리고 공론화가 된 시기에 정책이 제대로 논의되고 입법화가 되지 못하면 같은 문제가 반복 되었고, 다시 사람이 죽기 전까지 정책적 개입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다룬 사례들을 보면 우리의 공론장은 어딘가 참 이상하다. 사회 문제와 정책이 좀처럼 만나지 않는다. 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가 논란이 된 것처럼 누군가를 탓하는 의제는 쉽게 공론화되지만, 이런 의제가 정책적 논의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지엽 말단의 논의만 하다가 여론의 관심사는 다른 의제로 옮겨 가버린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다. 일단 근본적으로 공론장의 연료는 인간의 관심이고, 관심이란 한정된 자원이다. 한 번에 많은 의제들이 깊이 있게 논의되기가 어려운 것이다. 공론화되지 않은 의제는 또 정치권에서 제대로 논의되지도 않는다. 이처럼 공론장 자체의 한계가 이미 존재한다. 따라서 공론장의 핵심 의제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관심 가지고, 이를 조정하려는 움직임들이 필요하다.

 또한 웬만해선 대안을 다루지 않는 공론장 특유의 문화도 한 몫 한다. 우리의 공론장은 매우 뜨겁지만, 누군가의 잘못, 또 그 잘못에 대한 각계 각층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다룬 뒤에 정책과 대안 논의 없이 다른 의제로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바꿔야 할까. 공론장의 상태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늘어야 한다. 지금 공론장의 핵심 의제가 무엇인지, 그 의제가 중요한 것인지, 그 의제에 대한 대안이 논의되고 있는지 등을 관심 갖는 이들이 늘어나야만 한다. 당연히 언론이 그 역할을 하는 중요 주체이지만, 언론만으론 부족하다. 많은 이들이 참여해야 한다.

 또한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이들과 그 문제의 원인을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연구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노란봉투법을 예로 들면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룬 ‘손잡고’란 시민단체가 있었고, 법학자들이 손배 관련 법률의 문제점들을 오랫동안 연구해 왔다. 심지어 보건학자들은 손배를 겪은 노동자들의 신체, 정신 건강 상태를 진단해 논문을 쓰기도 했다. 활동가와 연구자의 협업, 또 연구하는 활동가, 활동하는 연구자들의 역할로 이런 문제들이 공론화되고, 한번 공론화되었을 때 대안 논의로까지 밀고 나가는 동력이 생겼다.

 지금까지 살펴봤듯 그냥 놔두면 공론장에서 사회 문제와 정책은 잘 만나지 않는다. 문제가 심각해져서 사람이 죽거나, 비극적인 일이 발생해야 간혹 정책과 만날 뿐이다. 이런 구조를 바꾸려면 이런 상황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야 하고, 연구자와 활동가, 저널리스트의 체계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그래야 공론장은 사회 문제와 정책이 만나도록 주선할 것이고, 세상을 바꾸는 공론장도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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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네요

언론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네요

제대로 된 공론장이 만들어지지 않는것도 문제지만, 공론장안에서도 또 다른 권력의 영향도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공론장안에서서도 참석자들이 가지고 있는 권력의 힘이 작용하고 있고, 빅마우스들의 이야기만 관철되고 있으니까요...공론장이란 모두의 이야기가 모여야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기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효능감이 떨어져 더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는건 아닌가 싶습니다.

어려운 문제네요. 사회문제에 대한 공론과 실제 정책 결정 사이에 큰 거리가 존재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동의할 듯합니다. 그러나 그 핵심 원인에 대한 진단은 사람마다 크게 다를 수 있을 것 같아요. 가장 좋은 해결책은 각자의 진단에 따라 다양한 해결방안을 시도해보는 것이겠죠. 어떤 노력들이 가능할지 고민해보게 되네요.

사회문제가 정책으로 이어지지 않는 주요한 요인은 의사결정권자들의 시선이 거기까지 이어지지 않는 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문제해결엔 몇달, 몇년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우리 사회에 그렇게 지속적으로 한 이수를 다룰만큼의 에너지는 없습니다.
이슈 자체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도 필요하지만, 이를 다루는 의사결정권자들이 문제해결에 관심을 갖도록 어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누군가를 탓하는 의제는 쉽게 공론화되지만, 이런 의제가 정책적 논의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지엽 말단의 논의만 하다가 여론의 관심사는 다른 의제로 옮겨 가버린다"
"정책과 대안 논의 없이 다른 의제로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

한국사회의 문제 상황에 대한 분석에 격하게 동의하게 되네요. 

"공론장의 핵심 의제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관심 가지고, 이를 조정하려는 움직임들이 필요하다."
"공론장의 핵심 의제가 무엇인지, 그 의제가 중요한 것인지, 그 의제에 대한 대안이 논의되고 있는지 등을 관심 갖는 이들이 늘어나야만 한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이들과 그 문제의 원인을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연구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래야 공론장은 사회 문제와 정책이 만나도록 주선할 것이고, 세상을 바꾸는 공론장도 가능할 것이다. "  

그에 따른 필요에 대한 분석 또한 동의하게 되구요. 

의제 설정/아젠다 세팅의 역할은 전통적으로(?) 언론의 역할로 이야기 되어 왔는데, 이제는 단순하게 그렇게만 말하고 말기는 어려운 상황이 된 것 같아요.

전문가, 연구자들이 전문적인/이론적인/과학적인 지식을 제공하고, 활동가들은 현장에서의 실천적 지식을 제공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양자가 만나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 전문가의 지식이 공허한 지식이 되지 않고, 활동가의 지식이 맹목적인 지식이 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양자를 연결하는 영역이 필요하고, 그 연결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사람들이 '연구활동가'라 불릴만한 사람들이겠지요. 미디어 종사자들도 그 영역에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들이 연구자와 활동가들을 시민들과 연결하는 매개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인터넷이 발전하고, 플랫폼이 발전하고, 다양한 직접적인 소통의 방법이 발전하고 있는만큼 모든 다양한 주체들이 목소리를 내고 서로 의견을 나누고 공론을 모아갈 수 있도록 하는 디지털 공론장을 만들어가는 것은 필수적인 과제일 것 같습니다. 이들이 연구자와 활동가를 연결하고, 이들과 시민들을 연결하여 공론을 형성하고,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 지식으로 벼려낼 수 있을 때, 그렇게 만들어진 정책 지식을 제도정치에 속한 정치인들, 정당과의 협업 속에서 실질적인 변화의 흐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기여할 때 더 나은 사회에 한걸음씩 다가갈 수 있게 될 것 같습니다. 

선거 시기에 정책 관련 보도가 왜 적은가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을 때 "평소에도 정책 보도를 안 하는데 선거 시기에 할 수 있겠어?"라는 이야기를 듣고 생각이 전환된 기억이 났습니다. 비단 언론인뿐만 아니라 사회가 정책과 상시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사건이 벌어졌을 때 타올랐다가 금방 휘발되어 버리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대안은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써주신 것처럼 공론장을 여러 단위에서 잘 만들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도 궁급합니다.

문제를 함께 이야기하는 게 우선 중요하고, 그걸 대안과 정책으로까지 연결시키는 공동의 경험이 생기면 더 힘을 가질 수 있겠네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