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유한양행 창업 이야기, 유일한 정신에 대해

2024.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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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량입니다

국내 ‘유일한 정신’

지난 3월 15일, 유한양행 본사에서 주주총회가 열렸다. 여느 때보다 이목이 쏠렸다. 직원들은 주주총회 안건에 반발해 트럭시위를 벌였고, 유한양행 창업자 고(故)유일한 박사의 손녀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는 미국에서 직접와서 주주총회 안건에 반대 의사를 표했다.

주주총회는 주식회사가 1년에 한 번 주주들에게 회사 주요 사항들을 의결하고, 투표를 통해 결정하는 자리다. 배당금, 이사회 이사 선임, 최고경영자(CEO) 선임 등 주요 사항들을 결정한다. 금번 주주총회에서는 유한양행 정관변경이 핵심이었다. 이 정관 변경이 고(故)유일한 박사의 뜻이었던, 경영과 소유의 분리 원칙을 위반하는 초석이라는 의심이 나온다.

유한양행 직원들의 주주총회 반대 트럭시위에는 “유일한 박사님께서는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 일가족 그 누구도 경영에 참여시키지 않으셨다.”고 쓰여있었다. 유한양행 이사진이 그 뜻을 파괴하고, 필요도 없는 사람을 임명하기 위해 직책을 만들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유한양행, 창업자의 뜻을 계승하기에 존경받는 기업

유한양행은 고(故)유일한 박사가 창업한 제약회사다. 22022년 기준 매출액 약 1조 8천 억원, 영업이익 약 360억 원으로 국내 제약회사 1위다. 또한,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제약회사 부문에 20년 연속 1위로 선정됐다.

고(故)유일한 박사. 출처 : 유일한 박사 온라인 기념관

유한양행이 존경받는 이유는 국내 1위 제약회사여서가 아니다. 창업자 고(故)유일한 박사의 뜻을 계승하고, 유지하기 때문이다. 그의 삶과 경영 철학은 이익이 아닌, 사회에 있었다. 때문에 그를 사회사업가라고 부른다. 고(故)유일한 박사와 같은 뜻은 현재까지도 국내에 전혀 없다.

고(故)유일한 박사 “기업에서 얻은 이익은 그 기업을 키워 준 사회에 환원하여야 한다.”

고(故)유일한 박사는 생전 “기업에서 얻은 이익은 그 기업을 키워 준 사회에 환원하여야 한다.”* 라며 “이윤의 추구는 기업 성장을 위한 필수 선행조건이지만 기업가 개인의 부귀영화를 위한 수단이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고(故)유일한 박사는 자신의 신념과 말을 행동으로 옮겼다. 기업의 이익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신념은, 자신의 재산을 모두 교육기금에 기부한 것으로 실천했다. 그는 생전 재산 중 양복 세 벌과 구두 두 켤레를 제외하고 모두 사회에 환원했다. 자식들에게도 재산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

고(故)유일한 박사. 연세대학교에 주식을 기증하는 모습. 출처 : 유일한 박사 온라인 기념관

1963년 9월에는 연세대학교에 1만 2천 주를 기부했고, 5천 주는 보건장학회에 기부했다.**  또한, “유한양행 주식 14만 941주는 전부 한국 사회 및 교육발전을 위한 기금에 기증한다.”는 유언을 남겼다. 유언대로 14만 941주의 주식은 교육기금에 기부됐으며, 현재는 ‘유한재단’과 ‘학교법인 유한학원’의 재산으로 남아 있다.

고(故)유일한 박사가 교육에 힘쓴 이유는, 일제강점기 해방 직후 나라가 강해지기 위해서는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실제 그는 생전 자신을 경영인보다 교육가라고 말했다. “그가 외국으로 나가서 입국할 때 출입국 신청서 직업란에는 언제나 ‘Educator(교육자)’라는 영문 글자가 쓰여 있었다.”** 

세 학교는 유한양행 주식 배당금을 통해 교육, 장학, 사회복지 사업을 하고 있다. 유한재단은 목적 사업비 90%가 유한양행 주식 배당금에서 나온다. 유한재단은 2022년 유한양행 주식 배당금으로 총 43억 8천 4백 5십 9만 7천 원을 받았고, 배당금으로 장학사업과 사회복지사업, 교육사업, 재해구호 사업 등을 하고 있다.

유한대학교 전경 Ⓒ 한량

고(故)유일한 박사 “기업은 개인 것이 아니라, 종업원과 국민의 것"

장학사업에만 몰두했다면, 고(故)유일한 박사가 여전히 존경받고, 직원들이 나서서 트럭시위까지 벌이 진 않을 것이다. 그는 유한양행이 개인의 것이 아니라, 국민과 종업원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한양행의 첫  주식상장 시에 이를 실천했다.

유한양행은 주식상장으로 “창업 이래 10년간 이어져 온 기업의 개인 경영이 막을 내리고 새롭게 법인체제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것은 그 당시 한국 상황에서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가장 획기적인 건 주식상장의 가격과 배분에 있었다. 고(故)유일한 박사는 국내 최초로 ‘종업원 주주제'를 실시했다. 종업원 주주제란, 종업원이 회사 주식을 특별한 목적이나 방법으로 소유하는 제도를 말한다. 종업원의 애사심을 증진이 주목적이었고, 최근에는 근로자의 재산형성으로 촉진제의 하나로 인식된다. 실제 국내 대기업은 종업원에게 회사 주식을 상여금으로 주기도 한다.

고(故)유일한 박사는 ‘종업원 주주제’를 통해, 회사 주인이 개인이 아님을 말했다. 이를 위해 “종업원들에게도 액면가 10퍼센트 정도의 가격으로 주식을 골고루 분배해주었다.”** 주주 자본주의 하에서 기업의 주인은 주주라고 인식된다. 그 차원에서 보더라도, 회사 주식을 종업원들에게 값싸게 분배했다는 건, 의미가 있다. 한 개인이 회사를 좌지우지하는 것이 아니라, 종업원 주주들과 함께 경영한다는 의미다.

한편, 고(故)유일한 박사는 국민 역시 싼 값에 유한양행 주식을 소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주식상장 당시 시장가의 7분의 1 수준으로 주식 가격을 책정했다.

연만희 전 유한양행 고문은 고(故)유일한 박사와 주식 가격 책정 일화를 소개한 바 있다. 연만희 고문은 유일한 박사가 당시 주식 가격을 100원으로 책정했는데, 이는 당시 시장 가격인 600~700원에 훨씬 못 미치는 가격이라며 만류했다. 그러자 유일한 박사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큰소리로) 내가 돈 벌려고 주식을 상장하는 줄 알아요? 상장하는 이유는 유한이 한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우리 국민의 것이기도 하기에 공개하려는 것입니다. 도대체 정신이 있는 겁니까? 당장 여기서 나가시오.”***

유한양행 주식 상장은 당시 우리나라에 만연했던 부정부패에도 합리적으로 경영되고, 민주적으로 경영된다는 걸 보여주려는 의도도 있었다. 당시 “사회는 어디를 보아도 부정부패가 만연했다. 이에 유일한 가사는 이러한 사회 풍조에 도전하기라도 하듯 유한양행이 합리적으로 경영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주식 공개를 결정"**한 것이다.

고(故)유일한 박사가 정치권의 불법자금을 지원 요청을 단칼에 거절하고, 그에 따라 강력한 세무조사를 받았다는 건 이미 유명한 이야기다. 또한, 세무조사에서 장부가 너무 깨끗하고, 세금을 정직하게 낸 것만 증명되어 모범 납세자로 도리어 상을 받은 건 더욱 유명하다.

출처 : 유한양행

현재 유한양행의 주요 대주주로는 유한재단, 국민연금, 유한양행, 유한학원이 있다. 유한재단 15.7%, 국민연금 10.1%, 유한양행 8.5%, 유한학원 7.7%이다.

회사가 개인 소유와 사익 추구의 도구가 아니란 걸 보여주고, 체계화하기 위해 고(故)유일한 박사는 일가족이 유한양행 경영에 참여할 수 없도록 했고, 이를 위해 유한양행 주식 단 1주도 자식들에게 남기지 않았다. 1969년에는 자신의 큰아들마저도 유한양행에서 내보냈다. 현재도 유한양행 이사진 중 그의 후손은 없다. 경영권도 전문경영인에게 양도했다.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도 국내에서 드문 전문경영인체제를 도입한 것이다.

고(故)유일한 박사, 기업 소유와 경영의 분리 강조, 전문경영인체제 도입


유일한 박사는 제 44대 주주총회에서 회사 경영권을 조권순 당시 전무에게 넘겼다. 회사 소유와 경영의 분리 이념을 완성한 것이다. 출처 : ⟪나라 사랑의 참 기업인⟫ (유한양행/ 1995) p.335

고(故)유일한 박사는 제44대 주주총회에서 회사 경영권을 당시 전무였던 조권순에게 양도했다. 이때부터 회사 내부에서 승진을 거듭해 사장직에 오르는 건 유한양행의 관행이 됐다. 또한, 그 임기조차 3년 중임제로 최대 6년까지만 할 수 있다. 그렇게 임기를 마친 사람들은 회사를 떠나는 게 관행이었다. 그것이 고(故)유일한 박사의 뜻을 이어가던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고(故)유일한 박사의 유산을 사유화하는 유한양행 이사진

고(故)유일한 박사의 뜻은 기업이 개인의 사익 추구 도구가 아니며, 기업의 이익이 사회를 위해 쓰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시스템 마련이 고(故)유일한 박사의 업적이다. 이 업적이 당대 사회 분위기와 정반대되고, 아무도 생각지 못했었다는 점이 그가 존경받는 이유다.

경영과 소유의 분리는 우리나라 지배구조에서 더욱 보기 드물다. 오히려 창업자 일가의 경영권을 강화하는 움직임이 더욱 강하다. 정치권 역시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비합리적” 이라며 소유와 경영의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도 이런데, 독재정권 당시 모든 걸 추진했던 고(故)유일한 박사의 뜻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다시금 깨닫게 된다.

다음 글에서는 고(故)유일한 박사의 뜻이, 최근 몇 년 사이에 어떻게 무너져갔는지 살펴볼 것이다. 이를 통해 3월 15일에 진행된 유한양행 주주총회를 자세히 살펴보며, 유일한 정신이 어떻게 무너져 갔는지 살펴볼 것이다.

*2편 '창업자의 뜻을 지우는, 유한양행 이사진의 위인설관(爲人設官)'

* ⟪위대한 선각자 유일한 박사⟫ (김윤섭, 최상후/ (주)유한양행) p.23, 25

** ⟪유일한 평전⟫ (조성기/ 작은씨앗/ 2005) p.237, 308, 309, 312, 314

*** ⟪유일한을 기억하다⟫ (민석기/ 중앙북스/ 2015)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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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로만 봤던 내용인데요, 과거 이야기까지 잘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서둘러 다음 편도 보러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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