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유일한 대중교통전용지구, 연세로를 지켜야하는 이유
연세로 차 없는 거리가 사라진다? 언제나처럼 업무를 하던 날, 동료 활동가가 기사를 보내주었습니다. 연세로 차 없는 거리를 해제 하겠다는 신임 서대문구청장의 인터뷰였습니다. 올해 서울환경연합은 차 없는 거리를 주제로 활동하며 차 없는 거리를 확대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는데, 확대는커녕 있는 걸 없어지지 않게 지켜야하는 상황이 왔습니다. 연세로는 2011년 말부터 대중교통전용지구 도입 검토를 시작해 최종 후보로 선정하고, 2012년 3월~ 2013년 12월까지 총 2년에 걸쳐 차로를 줄이고 보행로를 넓히는 공사 후 2014년 1월부터 운영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도입부터 운영시작까지 거의 3년 가까이 걸렸고, 2014년부터 지금까지 운영만 10년 가까이 되어왔던 대중교통전용지구에 다시 자동차가 들어오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연세로 대중교통전용지구 해제를 막기 위해, 여러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연세로 공동행동’이 구성되었습니다. 걷고싶은도시만들기시민연대, 기후위기서대문비상행동, 녹색교통운동, 연세로공론장, 청년하다, 체인지워크 등 서대문에서 활동하는 있는 단체 및 교통, 환경 등 다양한 단체가 연대하여 대응하고 있습니다. 작년 8월 즈음부터 시작해 벌써 1년 가까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절차도 근거도 부족한 서대문구 서대문구청은 연세로 차량통행을 허용하기 위해, 우선 차 없는 거리부터 해제했습니다. 대중교통전용지구 얘기하다가 갑자기 웬 차 없는 거리냐고요? 비슷하면서도 다른 차 없는 거리와 대중교통전용지구, 비교해 봤습니다. 명칭 대중교통전용지구 차 없는 거리 특징 버스, 트램 등 대중교통수단만 통행할 수 있음 모든 차량의 통행이 제한됨 지정·해제 권한 서울시 관할구청   연세로 대중교통전용지구가 도입된 이후 서대문구는 연세로를 차 없는 거리로 지정했습니다. 그래서 평일에는 대중교통전용지구로, 금요일 14시~일요일 22시까지는 차 없는 거리로 운영되며 버스의 통행마저 제한되었습니다. 차가 없으니 그 공간은 축제, 공연 등 여러 행사로 채워졌습니다. 자연스레 연세로는 문화의 장으로 대표되었습니다.   하지만 9월 16일, 서대문구 홈페이지에 ‘연세로 차 없는 거리 해제에 대한 행정예고(서울특별시 서대문구 공고 제 2022 - 1219호)’가 올라왔습니다. 대중교통전용지구를 해제할 수 있는 권한은 없으니, 차 없는 거리부터 해제하려고 한 셈이죠. 행정예고 기간은 9월 20일부터 10월 11일까지 21일이었습니다. 행정예고에 관련한 의견을 제출할 수 있는 시간은 단 3주, 그 안에 최대한 많은 반대 의견을 모아야 했습니다. 연세로 공동행동 집행팀에서는 꾸준히 연세로 스타광장 앞에 나가 반대 의견서를 받았습니다. 지나가던 많은 학생, 주민 분들이 동참해 주셨고, 대부분은 차 없는 거리가 해제되는지 전혀 몰랐다고 하셨습니다. 온라인으로는 빠띠를 활용해 연세로와 멀리 계신 분들도 동참해 주셨습니다. 서명한 인원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고, 주소, 이름, 전화번호 등을 안전하고 편리하게 수집할 수 있었습니다. (신촌 연세로 ‘차 없는 거리 해제’ 시행 예고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주세요.) 그렇게 온라인 1,148명, 오프라인 1,280명 총 2,428명의 서명을 모아 서대문구청 교통행정과에 직접 찾아가 제출했습니다.   서대문구청은 처음부터 연세로 차 없는 거리를 해제하기 위해 편파적이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였습니다. 서대문구에서 진행한 설문조사 내용을 살펴보면 창천교회, 현대백화점, 세브란스 병원 등 자동차 이용자가 많은 곳을 중심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해 해제 찬성 의견이 높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습니다. 정작 서대문구 주민의 의견은 알 수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연세대·이화여대·서강대 학생의 90%가 넘게 반대했고, 서울환경연합이 서울시민 1,01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반대의견이 67.5%를 차지했습니다.   차 없는 거리 행정예고에 대한 의견 수렴일은 10월 11일 까지였지만, 차 없는 거리는 10월 9일 22시부터 해제되었고, ‘차 없는 거리 운영 종료’ 문구가 적힌 현수막도 걸렸습니다. 제출한 반대 의견에 대해서도 서대문구 관계자는 ‘행정예고한 것에 대해 무슨 의견이 있는지는 알아야 하니 의견을 내라고 한 것일 뿐, 시민들이 행정예고 기간에 낸 의견이 해제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않는다.’며 절차가 형식에 불과함을 스스로 증명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아직까지도 신촌 상권의 침체 원인이 대중교통전용지구 때문인지 밝혀진 바가 전혀 없습니다. 전문가들은 상권 침체의 원인은 한 곳에만 있지 않으며, 코로나 상황, 임대료, 새로운 상권 생성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서대문구도 우리동네 상권서비스에서 신촌상권의 폐업률이 다른 지역보다 압도적으로 높다는 근거를 들었지만, “대중교통전용지구 해제가 상권 활성화에 얼마나 미칠 지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는 확보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라고 한 언론사와의 통화에서 밝혔습니다. 이성헌 서대문구청장님은 요즘 연일 인터뷰를 통해 "대중교통전용지구 해제로 상권이 살아났다."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코로나 시국이었던 2019년이랑 비교하면 매출이 줄어드는 게 이상한 일 아닐까요?   작년 11월, 연세로 대중교통전용지구 의견수렴을 위한 시민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서울시와 서대문구가 주최했는데, 시와 구가 서로 다른 시기의 자료를 가져와 혼란을 주기도 하였고, 연세로에 차량이 통행하게 되었을 때도 서울시는 많은 정체가 예상된다고 했지만, 서대문구는 괜찮을 것으로 보인다며 서로 다른 예측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이미 행정에서부터 말이 다르니 어떤 말을 믿어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사실 서울시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걷기 좋은 도시 서울은 허울일 뿐인 것 같습니다. 대중교통전용지구가 도입된 이후에도 꾸준히 모니터링하고 보완해야 했지만, 2016년 이후 모니터링은 진행된 적이 없습니다. 연세로 차 없는 거리가 해제될 때도 구청 소관이기 때문에 개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며 슬그머니 발을 빼는 모습이었습니다. 있는 정책마저도 제대로 유지되지 못하는데, 보행친화 도시는 어떻게 추진하려는걸까요? 서울시가 정말로 보행친화 도시를 만들고 싶다면, 해제를 검토하는 게 아니라 시민을 설득하고, 문제는 개선해 대중교통전용지구를 확대해야하지 않을까요?   연세로 공동행동 활동 연세로 공동행동은 다양한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수시로 기자회견을 진행했고, 논평과 성명서를 배포하며, 토론회에 참석하여 해제 반대 의사를 밝혔습니다. 더불어 다양한 행사 및 퍼포먼스도 진행했는데요, 연세로 차 없는 거리 해제를 앞두고, ‘연세로 문화제 - 거리난장, 거리장난’을 개최했습니다. 연세로 롤링페이퍼 쓰기, 보드게임, 버스킹 공연 등등 도로를 즐길 수 있는 경험을 제공했습니다. ‘교통정의 보행정책 기후대응 사망’ 피켓과 ‘차보다 사람이다’만장을 들고 연세로에서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올해 6월 4일에는 연세로를 자동차가 아닌 자전거로 채워보는 ‘제 1회 따릉이 대행진’도 개최했습니다. 또 한 번 후퇴하는 보행정책 이러한 활동들에도 불구하고 차 없는 거리는 결국 해제되었습니다. 주말에도 대중교통이 다니기 시작했으며, 이어 서대문구청은 대중교통전용지구 해제도 서울시에 요청했습니다. 서울시는 대중교통전용지구 운영을 검토해보겠다며 임시로 운영을 중단하였고, 올해 1월 24일부터 연세로에 모든 차량이 통행할 수 있게 됐습니다. 6월까지 통행량, 상권 등을 모니터링 한 후, 7~9월 동안 분석해 10월 중 최종 운영방안을 결정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앞으로 연세로 공동행동은 모니터링 결과와 분석을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요구할 예정입니다. 열린 논의의 장을 통해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하여 납득할 수 있는 대중교통전용지구 운영 방안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자동차는 정답이 아니다 얼마 전 7월 5일에는 ‘연세로 대중교통전용지구 10년 평가와 향후 정책 방향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발제 및 토론자들의 “연세로를 떠나서, 교통정책이 보행 활성화를 위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은 이해하자”는 발언이 인상 깊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자동차로 인한 수많은 문제들을 겪고 있습니다. 서울시 온실가스 배출의 20%는 수송부문이 차지하고 있고, 증가하는 교통혼잡비용, 부족한 주차공간, 불법주정차와 이로인한 교통사고 등 지금도 수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울시 자동차 등록대수는 단 한 번도 줄어든 적이 없고, 2021년 318만 대를 달성했습니다. 서울시 인구는 줄어들고 있는데, 자동차는 점점 늘어나는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겨우 500m 되는 곳에 차량이 안 들어온다고 기후위기 막을 수 있냐!”는 말도 많이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겨우 500m로는 부족합니다. 더 많은, 더 긴 대중교통전용지구와 차 없는 거리가 필요합니다. 2021년 기준 서울시의 도로는 8,328km, 자전거 도로는 1,290km, 보행로는 1,698km입니다. 이미 자동차를 위한 도로는 이렇게 많은데, 그나마 차가 못 들어갔던 곳마저 없애려고 논의하는 사실이 슬프기만 합니다.   연세로 차량통행 허용은 단순히 차가 다니게 되는 것이 아니라, 차를 이용하도록 부추기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자동차 유류세 감면, 대부분 도로건설에 쓰이는 교통에너지환경세, 전기차 보조금 지원까지. 자동차를 위한 정책은 넘쳐나지만 정작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사람들은 대중교통과 자전거를 이용하고 걸어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이들을 위한 혜택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우리에겐 대체교통 이용자들을 위한 더 많은 공간이 필요하며, 서울시 보행도시 전환의 시작은 대중교통전용지구 확대부터입니다. 서울의 유일한 대중교통전용지구 연세로에 많은 관심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기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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