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내 장애인 학대 사건에 면죄부를 준 대법원 판결을 규탄한다!
차별행위에 듣지도 보지도 못한 기준을 제시한 대법원 판결로 인해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중대한 위기에 처했다. - 피해자의 목소리는 지우고 가해자의 항변만을 인정한 ‘기울어진 판결’ - 장애인들이 오랜 투쟁으로 얻어낸 결실인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유명무실하게 만든 결정’ - 수많은 미신고시설과 종교시설 내외 장애인 학대 사건에 또 한 번 ‘면죄부를 준 판단’  2024년 1월 31일 (수) 오전 10시, 지적장애인 사찰노예사건 반인권적 대법원 판결 공동대책위원회(전국장애인부모연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수자인권위원회·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대법원 앞에서 ‘사찰 내 장애인 학대사건에 면죄부를 준 대법원 판결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하였다.  지적장애인 피해자 A 씨는 30여 년간 절에서 당한 학대 사실을 경찰에 고소했다. 그러나 수사기관은 장애인 학대 사건의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가해자에게 오직 단순폭행죄로 약식명령 벌금 500만 원을 내렸다. 단 500만 원으로 세상에 묻힐 뻔하였던 이 사건은 피해자 가족과 장애인단체의 노력으로 가해자가 피해자를 폭행한 것을 넘어 강제근로 및 명의도용까지 한 사실을 밝혀내 검찰이 기소하기에 이르렀다.   1심과 2심에서는 가해자에 대해 각각 1년과 8개월 징역형이 선고되었다. 피해자가 학대를 당한 세월에 비하면 반의반도, 또 반도 안 되는 세월이지만 적어도 원심 재판부에서는 피해자가 한 육체노동이 ‘울력’의 정도를 넘어섰다는 사실, 즉 피해자가 무늬만 스님이었고 실질적으로는 노예나 다름없었다는 것을 분명히 인정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피해자가 30여 년 동안 당한 학대 사실을 모두 부정했다.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2년 동안 12회에 걸쳐 폭행 당한 사실을 ‘일상적인 수준’으로 축소시켰을 뿐 아니라 당사자 동의 없이 주지스님이 명의도용한 사실을 법원이 모두 인지하고서도 가해자의 행위를 오히려 장애인차별금지법 취지와 부합한다며 장애인의 인권을 보장하고 평등을 실현할 법원의 책무를 저버린 판단을 내렸다. ✔ 경기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임한결 변호사,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이후 대법원이 내린 최악의 판결, 법 어디에도 장애인 차별 판단 시 ‘비장애인과 비교’하라는 말은 없어” 임한결 변호사는 “대법원이 가해자의 서면만 읽고는 말도 안 되는 결론을 내린 것”이라며 “법률 해석에 관한 최고사법기관으로서 대법원의 판례는 사실상 구속력이 발생하는데 이번 판결은 한 사건에 대한 단순한 오판을 넘어서 장애인들이 오랜 투쟁으로 얻어낸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유명무실하게 만든 결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판결에서 차별행위를 ‘비장애인과 비교하여 ’ 부당한 취급할 때만 성립된다고 본 점을 이번 판결의 법리적 문제점으로 꼬집었다. 구체적으로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4조는 차별행위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는데 ‘비장애인과 비교’하라는 말은 법 처음부터 끝까지 존재하지 않고 장애인 차별과 관련된 차별구제조치나 손해배상, 국가인권위원회 차별판단 모두 이 요건을 들지 않는다”며 근거 없이 해석을 내린 대법원의 판결을 규탄했다. 이어서 “대법원의 논리대로라면 장애인 차별을 피하기 위해 비장애인도 똑같이 불리하게 대하면 된다. 장애인을 한 대 때리고, 옆에 있는 비장애인도 한 대 때리면 차별이 아닌 것이냐”며 “적어도 수익적 행위가 아닌 침익적 행위에 대해서는 비장애인과 동일하게 취급했는지 여부를 따지면 안 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마지막으로 “이 사건 재판장(권영준 대법관)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본인이 소수종교를 믿기 때문에 오히려 더 소수자를 잘 대변하고 그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겠다고 이야기했지만 그저 말뿐이었다”며 “피해자를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판단했던 원심의 사실관계를 대체 무슨 근거로 대법관이 해석한 것이냐. 일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12차례 폭행을 행사하고, 당사자와 상의도 없이 명의 도용하여 부동산을 매입하고, 1심 선고가 나기도 전에 법인으로 사찰 소유권을 이전하여 집행을 회피한 사람에 대해 자애로운 은덕이라도 베푼 것처럼 봐준 셈”이라고 밝혔다. ✔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백선영 활동가 , “이 사건은 명백하게 장애를 이유로 불리하게 대우한 차별행위, 끝까지 묵인하지 않고 싸워나갈 것” 백선영 활동가는 “대법원에서 생각하는 착취와 차별의 정의가 무엇이었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묻고 싶다”며 “피해자가 일이 느리다는 이유로 폭행을 당하고, 피고인 마음대로 피해자 명의를 도용하였는데 비장애인 스님이었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명백하게 장애를 이유로 한 학대 사건으로 볼 수밖에 없다. 지적장애인이 ‘가스라이팅’형 범죄피해에 노출될 위험이 더 크다는 것을 대법관은 더욱 인지할 필요가 있다”강조했다. 더 나아가 “발달장애인의 특성과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사법 체계가 꼭 필요한 이유”에 대해 설파했다. 이어 “우리 장애인과 장애인 가족에게 차별과 착취의 문제는 삶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이 사건은 피해자 한 사람의 개별 사안이 아니라 누구에게든, 어떤 발달장애인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므로 끝까지 묵인하지 않고 싸워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 법무법인 디라이트 공익인권센터 김강원 부센터장, “조계종, 유사 학대 사례에 대한 전수조사 요청했으나 묵묵부답, 시대에 맞지 않는 전통이 종교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삶과 권리를 억누르고 있지 않은지 성찰 필요해” 김강원 부센터장은 “대법원의 판결을 도저히 수긍할 수 없다. 판시를 보면 가해자인 피고인의 입장만 고려할 뿐 가장 중요한 장애인 당사자 중심의 시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판결 어디에도 장애인의 자기결정권, 폭력과 학대로부터의 자유에 대한 권리는 없었으며 이리저리 재단하고 해석하며 판단하는 대상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피고인은 피해자에 대한 행위를 ‘보호’라고 주장하는데 그가 돌봄서비스와 보호의무를 제대로 제공했겠는가, 만약 복지시설, 거주시설에서 이런 행위가 발생했다면 그 시설은 어떻게 평가받았겠는가”라며 “종교라는 이름으로 장애인을 데리고 복지시설처럼 기능하는 것은 신고하지 않고 복지사업을 하는 것으로서 그 자체가 위법소지가 있고 관할 관청의 관리감독을 받지 않으니 인권침해가 일어날 소지가 높으며 이 사건처럼 오랜 세월동안 묻혀져 있을 위험성이 매우 크다”고 꼬집었다. 김 부센터장은 “이 사건 고발 당시 조계종 측에 유사사례가 없는지 조사해달라는 요청을 직접 종단 사무소를 찾아가서까지 했지만 종단 측은 묵묵부답했으며 이번 판결이 선고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피고인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에 유감을 표하며 이번 판결에 대해서도“장애인차별금지법을 휴지조각으로 전락시킨 법 해석이다. 장애인을 먹여주고 재워주고 여행도 시켜주면 해당 사건의 행위들이 무죄가 된다는 장애감수성에 깊은 유감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조인영 변호사, “장애인권옹호자들이 가열차게 싸우고, 자신의 삶을 내던지며 쟁취하고자 했던 ‘장애인에 대한 차별 금지’라는 가치를 하나의 판결로 무너뜨려” 조인영 변호사는 “이번 판결로 장애인의 권리보장, 차별과 학대 근절이라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장애인복지법의 입법취지를 형혜화시켰다”고 밝혔다. 이어 “노동력착취의 사전적 의미는 생산수단의 사유자가 노동자를 노동시간 이상으로 일을 시켜 성과를 취득하는 일”이라며 “피해자가 한 노동은 가해자가 사찰은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고, 건축공사도 가해자가 세운 계획을 달성하기 위한 것으로 결국 피해자가 한 노동의 성과는 모두 가해자의 이익으로 돌아갔다”고 강조했다. 또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철저히 장애인의 의사결정을 무시했다”며 “사전에 피해자는 스님이 되기 어렵다는 점, 그럼에도 원한다면 노전스님으로 함께 생활할 수 있다는 점, 다른 사찰에서는 노전스님에게 보수를 지급하나 우리는 줄 수 없다는 점, 그럼에도 무보수로 고된 노동을 할 것인지에 대해 피해자가 이해할만큼 설명하고 이를 피해자의 자유의사로 승인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이번 판결의 판단기준, 장애인에 대한 관점은 유엔장애인권리협약과 장애인차별금지법 모두에 반한다고 밖에 평가할 수 없다”며 “이러한 판결이 다른 장애인차별사건에서 그대로 답습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참담하고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 피플퍼스트서울센터 문석영 활동가, “누구나 일을 하면 월급을 받아야 하고 장애인도 노동권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어” 문석영 활동가는 “절에서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이 당사자가 일한 만큼의 월급과 같을 수 있냐”고 말하며 “다른 곳에서 일을 하고 정당한 월급을 받았다면 먹고 자는 비용 뿐 아니라 더 많은 돈을 모아 스스로 자립해서 살아갈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장애인의 노동을 그저 의미 없는 일, 도와주는 일로 치부하지 않고 더 이상 장애인의 보편적인 권리가 지켜지지 않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노태호 소장, “장애인 학대사건이 가진 특수성을 법원에서 경각심을 갖고 판단할 수 있도록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끝까지 투쟁할 것” 노태호 소장은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학대 사건은 수사단계에서부터 진술의 신빙성 등을 인정받기 어려워 기소 자체가 안되는 경우가 허다하고 타인에게 쉽게 의존하는 장애 특성으로 인해 유의미한 증거를 수집하기도 매우 어렵다. 그런데도 단 500만 원으로 세상에 묻힐 뻔하였던 이 사건은 피해자 가족과 우리 연구소 등 장애인단체의 노력으로 가해자가 피해자를 폭행한 것을 넘어 강제근로 및 명의도용까지 한 사실을 밝혀내 검찰이 기소하기에 이르렀다”며 지난했던 소송과정을 밝혔다. 이어 “지적장애인을 돌보아 준다는 명목으로 장애인 수급비를 갈취하고, 장애인의 노동력을 착취하거나, 명의를 도용하여 범행에 이용하는 등의 일들은 연구소에서 수없이 개입해온 다른 장애인 학대 사건의 본질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종교라는 이름으로 면죄부를 주어 온 수많은 미신고 시설과 기도원 등 종교시설 내외 장애인 학대 사건에도 면죄부를 준 셈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대를 역행하는 대법원의 판결에 매우 분노하며 장애인차별금지법의 법리를 잘못 해석적용한 점에 대하여 파기환송심에서 적극적으로 다툴 것임을 알린다. 나아가, 장애인 학대사건이 가진 특수성을 법원에서 경각심을 갖고 판단할 수 있도록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장애인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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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장애인 인권 이슈 톺아보기
2023년 한 해에도 장애계에는 많은 이슈가 있었다.  1월에 유엔에 장애인거주시설의 수용행태를 고발하는 첫 직권조사가 신청된 것을 시작으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이동권 투쟁은 연초부터 1년 내내 사회적인 주목을 이끌었으며, 장애인부모단체의 전국 순회 오체투지 투쟁, 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의 장애인복지시설화를 둘러싼 장애계 내부의 논란과 대립, 그리고 서현역 사건으로 다시 촉발되었던 정신질환자 강제입원 논란 등 다양한 층위에서 장애와 관련된 사회적 의제들이 제기되었다. 그 많은 이슈들 가운데 사회적으로 다시 곱씹어 볼 필요가 있는 6개 분야의 내용을 정리해보았다. 1. 모두가 안전히 이동할 권리를 얻기까지의 지난한 과정 👩‍🦼 학교에 가기 위해, 직장에 가기 위해, 여가 생활을 즐기기 위해 우리는 모두 어딘가로 이동한다. 장애인에게 이동권의 확보란 신체적 불편을 일부 해소하기 위한 편의지원뿐 아니라 타인 및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삶을 영위하는 사회적 일부로서의 기능적인 요소이다. 나아가 이동권은 접근권에 포함된 개념으로 그 자체로 장애인의 일상생활은 물론 자립과 생존에 직결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의 교통약자법에서 장애인 이동권은 모든 교통수단·모든 여객시설 등에 대한 이용을 보장해야 하고, 비장애인과 차별 없이 동등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하며,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적절한 비용으로 이동할 수 있어야 하며, 이동 수단에 관한 선택권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선언한다. 그럼에도 지난 한 해, 연구소에 당신의 이동권을 침해당한 장애인 당사자들의 사례는 끊이지 않고 접수되었다. 불편을 끼칠거라는 짐작만으로 휠체어 이용 장애인의 식당 출입을 거부했던 사례, 위험할거라는 편견만으로 시청각장애인의 헬스장 등록을 거절했던 사례, 장애인편의시설이 전무해 휠체어 이용 장애인의 선박 승선이 불가했던 사례, 휴대용 산소호흡기(POC)의 기내 소지를 임의로 금지하여 호흡기장애인의 비행기 탑승이 제한되었던 사례 등 우리 사회 곳곳에 여전히 만연한 장애인 이동권의 걸림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은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을 이루는 가장 핵심적인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갈 길이 멀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인단체와 장애당사자들이 온갖 비난과 혐오의 말들 속에서도 꾸준히 '지금 이곳에 장애인도 함께 있다'는 외침과 투쟁을 이어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동의 문제는 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들을 포함한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함께 풀어가야 할 숙제이다. 정부는 대부분의 현행 교통체계가 비장애인 중심으로 구축되어 왔다는 사실과 지속적인 체계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인정하고, 법과 제도의 정비에 더욱 더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며, 인프라의 구축과 더불어 인식 개선 등이 함께 추진되어야만 비로소 완전한 이동권 보장을 실현할 수 있다는 본질을 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23년 1월 3일 장애인의 이동권, 교육권 등 확보를 위한 '지하철행동'에 참여한 전장연 활동가가 행동을 마친 이후 다음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지하철을 탑승하려고 하자 이를 온몸으로 막아 제지하는 서울기동대 및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의 모습 ⓒ함께걸음 2. 정신장애인=강력범죄자, 정신질환자=강제입원. 이 도식은 언제 사라질 수 있는가  💊 지난해 여름, 우리는 흉기소지자의 묻지마범죄의 두려움에 휩싸였었다. 특히 8월 대낮, 서현역에서 발생한 흉기난동 사건은 많은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었다. 한편, 서현역 사건의 범죄자가 정신질환 병력이 있었다는 사실이 대중에 알려지며 정신질환자들은 가중된 불안을 경험해야 했다. 걱정했던 것처럼, 작년 8월 4일 법무부는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 이후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와 협의하여, 법관의 결정으로 중증 정신질환자를 입원하게 하는 ‘사법입원제’ 도입 추진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현행 제도가 가족이나 의사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는 면이 있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견 등을 감안하여, 미국, 독일, 프랑스 등의 예를 참고하여 추가적으로 검토하는 것”이라 덧붙였다. 사법입원제도에 대한 논의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흉악범죄의 가해자가 정신질환 이력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던 과거에도 이들의 ‘치료 공백을 메워야 한다’는 취지로 논의된 바 있다. 이로 인해 ‘중증정신질환자들을 격리, 감금해야 한다’는 프레임이 자연스레 우리 사회를 지배하게 되었다. 정신질환자들에게 유독 엄격하게 씌워지는 ‘격리 프레임’의 역사는 중세시대 ‘마녀사냥’부터 1980년대의 ‘형제복지원 사건’까지 상당히 긴 기간 지속되어오고 있다. 보건복지부 2021년 자료에 따르면 비자의입원(강제입원) 비율이 34.8%에 달한다. 치료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무분별한 강압과 비인권적인 치료 환경은 지금 이 순간에도 존재하고 있다.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 프레임으로 사회적인 여론을 몰고 간다면 정신질환자의 감금의 역사는 종결되지 않을 것이며 작년 2월 경기도 용인시에서 정신병원으로 가는 사설 구급단의 이송차량 안에서 강압이 자행돼 정신질환 당사자가 사망했던 끔찍한 사건들이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2023년 12월 8일,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이 만장일치로 가결되었다. 개정안에는 일시적 정신건강 위기를 겪는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지역사회에 거주하며 동료지원인 상담 등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는 동료지원쉼터와 입·퇴원 과정에서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돕는 절차조력인제도 등이 담겼다. 이는 정신장애 영역에서 오랜 기간 투쟁을 이어온 결과이다. 다만, 여러 발의안들에서 중요한 의제였던 보호의무자 입원(강제입원)제도와 동의입원제도 폐지, 가족돌봄 지원, 공공이송체계 확립안 등은 폐기된 아쉬움이 남아있고 22대 국회에서 또다시 싸워야 할 과제들이다. ▲2023년 6월 21일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정신장애인탈원화추진연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등이 모여 '정신건강복지법 개정 방기 국회 규탄 및 연내 개정 촉구를 위한 집중 결의대회'를 진행하는 모습이다. 국회 앞 거리를 가득 메운 정신장애인 당사자 및 활동가들이 병원복을 입고 '국회는 '강제입원제도 폐지와 탈원화에 앞장서라'라고 쓰인 피켓을 들며 행진하고 있다. ⓒ함께걸음 3. 줬다 뺏는 장애인 동료지원 사업,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불투명한 장애인 노동권 👨‍🚒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우리나라 만 15세 이상 등록장애인 중 경제활동참가율은 37.3%이고 고용률은 34.6%에 그친다. 전체 인구의 고용률은 61.2%로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 고용률 격차는 26.6%인 것이다. 이 격차를 줄이기 위해 1991년부터 국기 및 지자체, 상시 근로자 50명 이상을 고용한 사업주는 장애인을 일정 비율 이상 의무적으로 고용해야 하는 고용의무제도를 도입하였다. 그러나 이 제도로 고용 기회를 보장받는 건 대부분 경증장애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증장애인 고용률은 경증장애인의 절반 수준으로 고용의무제도 안에서도 보호를 받고 있지 못하다. 이에 따라 장애계에서는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장애인 권익옹호활동, 장애인 문화예술활동, 인식개선 강사활동 등),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사업(일명 동료지원가 사업) 등을 제도화하여 중증장애인의 고용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여왔다. 특히 동료지원가사업은 2018년 겨울, 장애인들이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사에서 87일간의 농성을 통해 힘들게 만들어낸 일자리 사업으로 중증장애인이 다른 중증장애인을 대상으로 자조모임, 상담 등 동료지원 활동을 통해 취업의욕을 고취하는 것을 목적으로 187명의 동료지원가가 일하고 있다. 동료지원가 사업에 참여하는 이들은 월 89만 원(4대 보험 포함)을 받으며 60시간 일한다. 만약 자신이 상담하는 장애인이 실제 취업지원프로그램에 연계되면 연계수당으로 20만 원을 더 받을 수 있다. 그러나 2023년 9월 1일 정부가 국회에 제출하였던 예산안에는 동료지원가사업 예산 23억 원이 전액 삭감되었었다. 사업비 대부분 노동자 인건비로 소모되므로 이 사업 예산이 삭감되면 187명의 노동자들을 모두 실직자가 된다. 예산이 전액 삭감된 배경에는 ‘실적 저조’로 불용 처리되는 예산이 지속해서 발생한 것과 보건복지부에 비슷한 목적의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 등이 있었다. 이와 유사한 일이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의 자립을 지원하는 ‘정신장애인 자립지원사업’에도 발생했다. 서울의 3개 자립지원센터 사업 예산을 기존 5억 2,000만 원에서 2억 7,000만 원으로 약 50% 삭감하겠다고 서울시에서 발표하였기 때문이다. 본 사업 역시 2019년에 정신장애인의 온전한 사회참여를 위해 도입된 사업으로 많은 정신질환 당사자들이 동료지원가, 활동가로 근무할 수 있도록 취업의 장을 열었던 사업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두 사업 모두 예산 삭감 계획은 철회되고 현행을 유지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수많은 당사자들의 목소리와 절규의 외침이 반영된 결과이다. 그럼에도 마냥 기뻐할 수 없는 것은 장애인의 일자리를 ‘유지’하는 것조차 매우 힘든 현실의 벽과 매년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2023년 9월 18일 오전 7시경, 한국피플퍼스트 소속 활동가들이 '동료지원가 사업(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사업)' 전액 삭감 소식을 듣고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면담을 요구하며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사를 기습점검하였다. 활동가들이 경찰의 제압에 저항하며 서로 팔짱을 낀 채 바닥에 누워있는 모습 ⓒ피플퍼스트서울센터 4. 부실한 통합교육 운영에 희생되는 장애아동과 부모 그리고 특수교사 🏫 2023년 하반기, 유명 웹툰 작가의 자폐성장애 아들이 용인 모 초등학교에서 교사로부터 정서적 학대를 의심(아직 재판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라 장애아동 학대 의심 사건으로 명명) 받은 사건이 세간에 알려져 큰 주목을 받았다. 부모가 교사를 신고한 배경이 교사 동의 없이 자녀의 가방에 녹음기를 넣어 수업내용을 녹음했다는 것이 큰 논란거리가 되기도 했다. 서이초등학교에서 발생한 모 교사의 비극적인 일과 함께 이 사안이 다루어지면서 대중들의 분노가 장애아동의 부모에게로 향해졌지만 장애계에서는 그간 통합교육 현장에서 발생해왔던 수많은 문제를 되짚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특수교사의 입장을 먼저 살펴보면, 우리나라 특수교육법은 장애아동과 교사 비율을 4:1로 규정하고 있으나 2023년 9월 기준 사립학교 4.5명, 공립학교 4,2명으로 법정 기준이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해당 사건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특수학급 내에서 발생한 일에 대해 특수교사뿐 아니라 일반교사, 학교장 등 학교 전체의 협력과 지원이 요구됨에도 실제 교육 현장에서는 학교 차원의 중재 등 거시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조가 부재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용인 초 사건의 중심이 된 특수교사가 장애아동에게 건넨 말과 ‘도전행동’에 대한 교사의 대응방식에 대해서는 낮은 인권감수성과 부족한 전문성이라는 지적과 의심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비장애아동은 물론 장애아동에게 학교는 학습 목적 외에도 공동생활을 통해 사회에서 필요한 규칙과 질서를 배우는 중요한 곳이다. 특수교사와 장애아동 부모가 서로 신뢰를 기반으로 장애아동의 온전한 사회통합을 위하여 함께 고민하며 해결책을 찾아가는 교육의 장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유사한 사안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통합교육 현장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문제를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담당 주무부처와 관계자들은 장기적인 개선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 2023년 8월 7일,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등 18개의 학부모, 교사, 시민사회단체는 정부서울청사 후문에서 교사와 학부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교육부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김대범 피플퍼스트서울센터 활동가가 발언하는 모습. ⓒ전국장애인부모연대 5. 발달장애인 등 문해약자를 고려한 ‘읽기 쉬운(easy-read)’방식이 가져올 변화 🧩 시각장애인은 점자나 음성자료를 통해, 청각장애인은 수어나 문자통역 등을 통해 의사소통을 한다. 그렇다면 인지적 어려움을 겪는 발달장애인을 지원하는 의사소통 방식은 무엇이 있을까.  발달장애인법 제10조에 따르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발달장애인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법령과 각종 복지지원 등 중요한 정책정보를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작성하여 배포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2022년 9월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최종견해에 포함된 내용이기도 하다. 2022년 12월 2일 우리나라 사법부에서 최초로 ‘읽기 쉬운(Easy-Read)’방식을 적용한 판결문이 나왔다. 본 판결은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에서 선고한 사건으로 원고는 수어를 주된 언어로 사용하는 청각장애인이다. 청각장애가 있는 원고는 탄원서를 통해 ‘읽기 쉬운 용어로 판결문을 써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하였다. 이에 재판부는 이는 ‘장애인의 당연한 권리’라는 입장을 밝히고 ‘사법지원가이드라인’과 ‘장애인권리협약’ 제13조 및 UN의 권고의견에 근거해 판결문의 엄밀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읽기 쉬운’ 방식으로 최대한 쉽게 판결 이유를 작성하였다. ‘읽기 쉬운(Easy-Read)’방식은 단문과 동사 위주의 쉬운 문장과 구어체 문장 등을 사용하여 문장 해석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편의를 지원하기 위해 도입된 방식이다. 해당 재판부에서 작성한 ‘읽기 쉬운(Easy-Read)’판결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라는 문구와 함께 ‘안타깝지만 원고가 졌습니다’를 병행함으로써 법률적 용어를 쉽게 풀어 기재하고자 하였다. 해외사례의 쉬운 판결문, 쉬운 정보와 비교했을 때 여러 아쉬운 점과 한계가 존재하지만 기존의 관행을 깨고 사법부가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은 우리 사회 전체에도 큰 영향을 미칠만한 의미있는 작업이라 평가된다. 지난해 6월, 법원행정처는 이지리드 판결서를 늘리겠다며 쉬운 판결서 작성을 위한 시각자료 개발연구 용역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오는 4월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있다. 선거 기간 동안 유권자들이 보게 될 후보자 공약집, 투표용지, 투표결과 등에 대한 정보 역시 발달장애인 등이 이해하기 쉽도록 보장받아야 할 것이다. 이미 홍콩과 대만 등 해외 국가에서는 투표용지에 후보자 사진과 정당로고를 넣고 있으며 영국의 주요 정당은 학습·발달장애를 지닌 유권자를 위한 ‘이해하기 쉬운 선거공약집’을 발간하고 있다. 또 스웨덴은 정부 기관인 ‘접근 가능한 매체기관(MTM)’을 통해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쉬운 사진과 그림 등이 포함된 선거관련 자료를 배포한다. 이처럼 우리 정부도 발달장애인법과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의 권고사항을 충분히 숙지하고 고려하여 누구도 정보에서 소외받지 않고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2022년 12월 2일 서울행정법원에서 '읽기 쉬운 방식'을 적용하여 내린 판결문 ⓒ함께걸음 6. 장애인의 자기결정권 보호를 위해 도입된 후견제도, 결국 장애인의 발목잡는 족쇄되다 🔗 2013년 민법 개정을 통해 금치산과 한정치산을 폐지하고 장애인이나 노인 등 피후견인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기 위해 법정 후견제도가 도입되었으나 시행 10년이 지난 지금, 입법 취지와 달리 후견제도를 이용하는 장애인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사회복지사의 꿈을 안고 사회복지 전문학사를 취득, 사회복지사 2급 자격취득 조건을 갖춘 지적장애인 K씨는 사회복지사 자격증 발급 신청과정에서 사회복지사의 꿈을 포기해야 할 위기에 놓였었다. 현행 사회복지사업법(제11조 2항)은 피성년후견 또는 피한정후견인은 사회복지사 자격을 취득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장과정에서 사기 피해 등 금전적인 피해를 수차례 입었던 K씨는 모친의 제안으로 한정후견을 개시하였지만 각종 자격증을 취득할 때의‘결격조항’으로 인해 직업 선택 앞에서 자기결정권을 존중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럼 후견을 취소하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민법 11조와 14조에 후견종료심판을 청구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후견을 종료할 수 있는 체계가 갖추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한번 개시된 후견은 사실상 종료가 매우 어렵다. 후견 개시 원인은 법률 9조와 12조에서 ‘질병, 장애, 노령, 그 밖의 사유’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장애가 소멸되지 않으면 후견은 종료되지 않는다.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것이 아닌 침해의 소지가 많이 보이는 후견제도에 대해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는 우려를 표하고 성년후견과 같은 대체의사결정시스템을 개별화된 지원을 확보해 장애인의 자주성, 의사, 선호도 등을 존중하는 지원의사결정제도로 전환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선진국에서는 지원의사결정제도를 후견제도의 일부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운용되고 있는데 여전히 국내에서는 이 제도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제도화를 위한 서비스 모형이 발굴되지 않은 현황이므로 깊은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2021년 10월 18일, 후견이 개시된 발달장애인이 결격조항으로 인해 사회복지사 자격증 발급을 거부 당하여 '사회복지사업법 제11조의2'에 대해 헌법소원 제기 및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함께걸음 [총평] 2023년 대학교수들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는 견리망의(見利忘義)였다. ‘눈앞의 이익에 의로움을 잊는다’는 뜻이다. 이미 우리 사회는 그것이 개인이든 기업이든 공공기관이든 간에 나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자본주의적’사회 풍조에 길들여져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 풍조에서 장애인은 쉽게 타자화와 주변화가 된다. 시민으로서 지역사회에서 누구나 동등하게 누려야 할 권리를 ‘동료시민’인 장애인이 어떻게 누릴 지를 함께 고민하기 보다는 우선 내가 누려야 할 권리에 울타리를 치고나서 울타리 밖으로 장애인을 몰아낸 후 때론 측은하게 때론 혐오스럽게 바라보는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애 이슈는 여전히 사회 주류에서 ‘나의 문제’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2024년에도 여전히 ‘동료시민’으로 지역사회에 함께 살아가고자 싸우고 절규하는 장애인들의 몸부림을 일 년 내내 목도하게 될 것이다. 그들의 ‘손상된’신체와 ‘손상된’정신이 사람들 눈앞에 드러날 때마다 올해는 부디 울타리 밖으로 덜 내몰리고 더 강한 연대의 손길이 이어지길 바라본다. 2024년 올해의 사자성어는 견의망리(見義忘利)가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기대하며.
장애인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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