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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이동권 현실 : 지하철과 버스만 문제일까?
장애인의 대중교통 이용이 힘들다는 점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하루에 장애인을 몇 명이나 보는지만 각자 세어보셔도 쉽게 알 수 있지요. 그런데 대중교통만 문제일까요? 가까운 곳을 걸을 때엔 아무 문제가 없을까요?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하면 문제가 해결될까요? 횡단보도 2019년부터 20년까지 장애인들이 직접 서울시 전역을 걸어보며 만든 전수조사가 2021년에 발표되었습니다. 조사결과, 총 74,320건(1km당 44건)이 설치기준에 맞지 않거나 교통약자 보행에 불편을 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설치기준에 맞지 않는 시설 중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 것은 횡단보도로 턱의 높이가 휠체어나 유모차가 오가기 힘들거나 점자블록이 없는 횡단보도가 설치기준 미달 시설 중 40.5%(30,114건)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서울시.2021.04.08.) 경사로 턱 높이의 법적 기준은 2cm입니다. 신호등에 부착된 음향신호기가 문제인 곳도 많았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신호등이 설치되어 있는 횡단보도 117,484개 중 음향신호기가 설치된 횡단보도는 39,811개(34%)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마저도 지역편중이 심해서 세종과 서울은 각각 74.13%, 66.08%로 비교적 많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대구는 8.14%, 울산은 7.8%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최혜영 의원 보도자료) 또, 도로에서 차량이 함부로 인도로 드나들지 못하게 하기 위해 만드는 말뚝인 볼라드도 문제입니다. 볼라드 30cm 앞에는 점자블록이 설치되어 있어야 하지만 이 규정을 무시한 곳이 많고, 볼라드의 규격인 높이 80~100㎝, 지름 10~20㎝, 간격 1.5m 안팎을 지키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매일신문.2022.04.19.) 연신내역에서 저희 집인 동명여자고등학교 근처까지 오는 동안, 총 7개의 횡단보도 신호등을 마주쳤고, 그곳에는 턱의 높이가 지나치게 높은 경우, 장애인 휠체어가 오가는 낮은 턱이나 점자블록을 볼라드가 가로막고 있는 경우, 음향신호기가 고장난 경우는 다행히도 하나도 없었습니다. 다만 7개와는 별도로 폭이 좁은 도로에는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가 하나 있는데 그곳에는 음향신호기가 없어서 시각장애인들이 다니기에는 조금 위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들도 길을 다니시면서 신호등 밑에 있는 음향신호기를 한번씩 눌러봐 주십시오. 그리고 신호기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음향신호기 위에 있는 전화번호 02-120를 통해 이를 신고해 주십시오. 몇초 걸리지 않습니다. 또,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나 음향신호기가 없는 신호등을 보시면 시간이 나실 때 시청, 군청, 구청 등에 민원을 넣어주십시오. 여러분의 작은 관심이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장애인 콜택시 2022년 3월 31일,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이 MBC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장애인 콜택시라고 있긴 하지만 그것을 위해선 출근길은 아예 포기해야 되고 2시간 이상 기다려야 될 때도 많고요. 그건 사실 저도 직접 겪었던 일입니다"라고 말하자(MBC.2022.03.29.), 연합뉴스는 보란듯이 “서울 평균 32분 대기…2시간 이상 기다린 비율 2019년 6.1%→작년 1.1%”라는 내용의 팩트체크 기사를 냈습니다.  서울시각장애인 생활·이동지원센터는 일별 장애인 복지콜 접수건수와 탑승건수, 평균 대기시간 등을 집계하고 있다. 이 센터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21일부터 25일까지 하루 평균 접수 건수는 1천348건, 탑승 건수는 1천51건, 탑승률은 78%다. 이 중 79%(830건)는 30분 이내 배차가 완료됐다. 30분 이상 1시간 이내는 16%(168건), 1시간 이상 2시간 이내는 4.9%(51건)다. 접수한 지 2시간이 넘게 배차되지 않으면 접수는 자동으로 취소된다. 배차가 완료된 뒤 장애인이 택시에 실제 탑승하기까지는 평균 19분이 더 걸린다. 접수했으나 실제로 탑승하지 않은 161건은 접수자가 택시 호출을 취소한 경우다. (연합뉴스.2022.03.31.) 데이터에서는 32분이라고 말했는데 왜 두 시간이라고 했느냐, 팩트가 틀렸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미디어오늘의 윤유경 기자는 “기사는 데이터에만 의존하면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보여줬다. 장애인 콜택시를 기다리다가 포기한 경우를 보여줄 수 있는 취소율, 대기시간에 대한 예측가능성이 현저히 낮은 문제점을 간과했다. 비장애인이 타는 일반택시의 호출 대기시간과 비교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라고 비판했습니다. 김예지 의원도 이에 대해 “취소율은 당사자들이 기다렸다가 포기한 비율을 뜻한다”, “사실상 탑승 포기율”, “이용자들은 실제로 배차를 기다리는 동안 대기자가 너무 많아서 중간에 취소하고 기다렸다가 재신청하기를 몇 번 반복한다”고 말했습니다. 몇 시간 동안 계속 신청과 취소를 반복하다가 대기한 결과 마지막 신청의 대기 시간이 30분이 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김준우 송파솔루션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도 “대기 시간 두 시간이 넘으면 자동 취소되는데, 그런 취소되는 콜들을 다 제외하니까 평균 32분이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윤 기자는 서울시관리공단 장애인콜택시 운영처에 전화를 해, 취소율에 대한 데이터가 없음을 확인했는데, 이에 대해서도 김예지 의원실은 “통계가 없다고해서 팩트체크를 하지 않는 게 아니라, 통계가 없는 것에 대해서도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장애인 콜택시의 중요한 문제점 중 하나는 대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홍윤희 장애인 협동조합 ‘무의’ 이사장도 “5분이 될지, 2시간이 될지 모르는 배차시간에 대한 불확실성이 가장 큰 불안 요소”라고 말하며, “이번 콜을 취소하면 두 시간 있다가 올 수도 있다라는 불안감이 있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콜택시를 부르는 게 아니라, 콜택시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맞춰야하는 것”이라 말했습니다. (미디어오늘.2022.04.05.) 또, 장애인 콜택시는 장거리 이동이 불가능하다는 점도 있습니다.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장거리 이동을 하기 위해서는 이동 전날에 예약을 해야 하는데, 예약 대수는 각 지역에서 보유한 장애인 택시 차량의 30%만큼만 선착순으로 가능합니다. 장애인들은 여행은 커녕 출장이나 경조사 참여도 힘든 것입니다. (KBS.2022.04.20.) 장애인 택시 안에는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차량과 불가능한 차량이 뒤섞여 있고, 그 안에 휠체어 탑승 가능 차량의 비율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숫자 만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야말로 눈가리고 아웅인 격입니다. 근본적인 문제 장애인 이동 현실이 좋아지지 않는 문제의 근본 원인은 장애인 복지 문제를 시혜적인 입장에서 접근하기 때문입니다. 돈이 있으면 해주겠지만 돈 없으면 굳이 그것까지 해줄 건 없다는 태도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런 태도는 비장애인들이 원거리 여행을 하듯이 계획을 세워서 장애인들이 외출을 해야만 하는 현실을 만들었습니다. 복지가 되었건 뭐가 되었건 간에, 장애인들이 현실에서 배제되는 현실을 우리는 직시하고 이것을 개선해야 합니다. 시위가 아니어도 우리는 장애인들에게 우리 사회의 일원임을 보여주는 관용을 보여준 적이 없습니다. 장애와 장애인의 현실에 대해 무지했고, 장애인들의 현실 문제에 대해 찬반은 커녕 거론 자체를 하지 않는 무관심으로 이 문제들을 대해 왔습니다. 이것은 비단 이동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관계와 노동, 교육, 정치참여, 형사사법 같은 사회 문제 뿐 아니라 의식주 같은 인간의 기본적인 영역에서도 우리는 장애인들의 문제를 지나치게 시혜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어떤 개인의 기본적인 생활을 시혜적으로, 그리고 동정심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매우 큰 오만이고 더 나아가서는 비윤리적인 일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태도는 우리 모두가 동등한 시민이며, 동등한 시민이어야 한다는 정치적, 법적 질서 하에서도, 우리 모두가 동등한 인간이며 동등한 생명체라는 생물학적, 윤리적 입장 하에서도 모두 그른 일입니다. 세상이 각박해서 어쩔 수 없다는 탓만 하지 마시고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알아 가려는 노력을 기울여 주십시오. 생각보다 엄청난 공력이 드는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장애인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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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스러운 : 23년 1월.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
1월 2일 저녁에 잠에 들려고 오늘 뉴스를 뒤적이다가, 글자를 읽는데 눈에 불이 튀었습니다(..) - 시위 중인 사람이 탄 전동휠체어의 전원을 꺼? 전동휠체어의 컨트롤러를 손상시키는 방식으로 시위를 막았다? - 진압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효율적인 방식의 대응이라고 생각했을까요. 진압당하는 입장에서 생각하니 치가 떨리게 모욕스러웠습니다. 어쩌면 관심 없는 대중들에게 기준점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정부의 입장과 대처가 고작 이 정도라니. 정부가 지키지 않은 약속은 뉴스에서 크게 나오지도 않더라고요. 서울시장은 1분만 늦어도 큰일 나는 서울의 지하철이라고 우스운 호들갑까지. 오히려 최근 끊이지 않는 서울교통공사의 사고빈도수와 인력감축, 그리고 지금의 정부가 재난 아닌가 싶었습니다. (오전 7시 34분경에도 지하철 궤도장애로 인한 지연이 있었지만 이 부분은 실시간으로 고지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시민들은 전장연과 시위에 함께 하기도, 전장연을 향해 욕을 퍼붓기도 했다고 들었습니다. 백 번 양보해봤습니다. 우리 사회는 이미 각박해질 대로 각박해져 각자의 생존투쟁만으로 바쁘고, 좁은 시야의 세상에서는 나의 생존투쟁만 보이는 법이니까요. 공론장에 숙고한 의견을 던지기엔, 우리의 하루가 너무 빠르게 끝나버리는 것도요. 그날은 정말 오만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세상은 나아졌을까? ㅡ 제 동생은 지체장애 1급이고, 저는 그런 동생과 (독립하기 전까지) 24년쯤 같이 살았습니다. 가끔은 시혜적일 수 있는 누군가의 손길도 고마울 때가 있었고요. 그럴 땐 그 사람을 곡해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세상의 마지노선을 고려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어요. 민주주의 사회에서 개개인 모두의 올바름은 일치할 수 없고, 어쩌면 일치해서도 안되는 법이니까요.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어디가 문제일까. ㅡ 일단, 장애인도 지하철을 타야 한다는 것, 모두가 이동권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에 비동의하는 시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시위 방식에 대하여는 출근시간을 지나서, 5분 이상을 지연시키지 않을 것은 전장연도 동의한 사실이고요.) 무엇보다 이동권은 모든 권리의 기초에 있습니다. 이동권을 보장받지 못하면 교육권이고 노동권이고 나발이고 다른 모든 권리가 어불성설이라는 건 모두가 동의하실 거예요. 헌데 아직도 여기라니. 처음 저상버스가 도입되고 몇 년. 제가 대학교 3학년 때였던 것 같습니다. 동생과 영화를 보려고 '그래, 우리 동네엔 저상버스가 있다!' 하는 생각에 동생을 따뜻하게 입혀서 정류장으로 향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땐 세상을 꽤 호락호락하게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버스 세 대가 그냥 우릴 지나쳤습니다. 한 대는 "지금 시간이 밀려가지고 미안해요." 하셨고, 다른 한 대는 "이 차는 이거 안 쓴 지 오래돼서 안 내려가요. 미안해." 하고 가셨어요. 마지막 차는 그냥 사람들이 타느라 우리가 밀렸습니다. 먼저 올라간 다른 남자분이 도와줄까 말까, 운전기사분에게 우리가 아직 타지 못했다고 말할까 말까 고민하는 것 같았지만 이내 문은 닫혔고요. 바람이 차갑더라고요. "상혁아, 우리 못 가나 봐." 사람이 존엄과 권리를 잃어간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습니다. 날이 추웠습니다. 다음부터는 굳이 저상버스를 이용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3시간을 기다려도 교통약자 택시를 불렀어요. 주로 사람이 없는 조조를 보러 갔으니, 동생이 새벽 6시에 일어나서 택시를 예약했습니다. ㅡ 동생과 사는 일상에서는 항상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당연하다는 듯이 '보통' 밖으로 쉽게 밀려났고, 간간히 누군가의 선의에 기대어 우리를 확인해야만 했습니다.  동생은 사람들의 시선이 싫어서 꼭 '정상 신체'를 갖고 있는 누나와의 동행을 원했습니다. ㅡ 그리고 (운이 좋게도) 우리의 가정에 아버지가 돌아오면서부터 동생의 이동권은 조금 보장받기 시작했습니다. 동생은 크게 신체가 자라지 않았지만, 몸 전체의 근육이 굳어 꽤 무겁거든요. 통나무만큼이나 뻣뻣하고 무거워요. 그래서 이후로는 아버지가 동생을 도맡았습니다. 가정으로 돌아온 가부장분 덕에 우리는 종종 여행이라는 걸 다닐 수 있었습니다. 물론 휠체어 약자 시설이 되어있지 않은 지역이 많아 동생은 주차장에 있어야 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한 번은 배를 타야 하는데, 항구까지 계단이 족히 200개는 되어 보였습니다. 아버지는 결심한 듯이 동생을 둘러업었고 나와 엄마는 휠체어를 들었어요. 배의 출발 시간은 임박해 오고, 내딛는 아버지의 다리가 점점 미세하게 떨려오는 것도 보였습니다. 땀이 흐르는 것도 보였고, 길 가던 사람들의 멈춰 선 시선도 느껴졌습니다. 통통배의 갑판에는 선장님과 사람들이 나와 우리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고요. 어쩌면 내 동생은, 가정에서 동생의 권리 보장을 분담해주고 있기에 상황이 나은 셈입니다. 하지만 지금 아버지는 66세고, 이 체력도 몇 년 안 남았다는 걸 압니다. ㅡ 작년에 한창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로 신문과 sns가 시끄러울 적엔 사람들이 그런 소리를 많이 했습니다. "세금으로 혜택 받는 놈들" 이런 얘기. 역시 모욕적입니다. 사실 관계를 따져보지도 않고, 단 한 번도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을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세금의 혜택'은 동정이 아닙니다. 불쌍해서 던져주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애초에 기초적인 권리의 보장은 가정 단위의 역할이 아니기도 하고요. 사회에서 1인분의 정상성을 인정받기 위한 노동은 필수고, 아까도 말했지만 노동권을 보장받으려면 가장 기초적인 이동권과 교육권을 보장받아야 합니다. 이동권과 교육권을 박탈당한 삶에는 사회적 네트워크가 없습니다. 생길 수가 없으니까요. 딛고 있을 지반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사람의 존재를 증명해 줄 타인은 고작 혈연 가족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저는 ㅡ명화원에서 일했던 엄마를 통해ㅡ 일찍이 혈연 가족에게 버려지는 사람들을수없이 봤습니다. 그래서 기초적인 권리의 보장은 가정 단위의 일이어서는 안 됩니다. ㅡ 또한 사회적 약자는, (우리 모두 알다시피) 태어날 때부터 본질적인 '약자성'을 가졌다는 의미가 아니지 않습니까. 누군가의 특정 요소를 '약자성'으로 구성해 내는 것은 우리 사회의 기준과 제도입니다. 모두가 기억하는, 우리 사회와 도시는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유럽에선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많은 부랑자와 사회적 약자, 소수자들이 제한적 공간에 수용되기 시작했고요. 사회의 효율과 편의를 위한 명분은 당시의 의료와 정신분석의 영역이 담당했습니다. 그래서 사회는 이들의 권리를 보장해야만 합니다. 효율을 위해 사회가 박탈한 개인의 권리이기 때문에, 이들은 세금의 혜택이 필요합니다. 그들이 소수라는 이유로 사회적 시스템이 부족하다면, 사회는 적극적으로 그 시스템을 합의해 나가야 합니다. ㅡ 적어도 '무정차 통과'라는 방법으로 공론장을 폐쇄하지 않았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 공론장에서 목도해야만 하는 사실이 있고, 마주친 존재에 대해 생각해야 하며 이 사회적 불화에 대한 각자의 결론을 도출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좁은 지하철 플랫폼에 수백의 경찰을 데려다 놓고 대립구도를 키우고, 시민들에게 재난문자 따위로 상황을 고하지 않았어야 합니다. ㅡ 그것이 올바른 방향일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올바른'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이유는, 앞서 언급한 '약자성', 이 '소수자성'은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끔 인정하기 싫을지라도.) 신체 장애인은 단지 그 소수자성이 시각적으로 신체의 전면에 부착되어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신체 기능의 장애'라는 소수자성이 '아주 특정한 결함과 손실'로 여겨지는 이유 역시 사회에 있지 않겠습니까? "당신도 장애인이 될 지도 모르는데, 장애인의 권리 보장에 앞장서야죠." 라는 말의 전제가 틀린 이유이기도 하고요. 신체 기능의 장애를 치명적인 결함으로 여길수록, 우리 사회가 가진 신체기능에 대한 이데올로기가 아주 강하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렇다면, 그에 반해 '모자란' 신체기능은 더욱더 부각될 수밖에 없고, 그건 우리 사회가 가진 조건 역시 매우 편협하다는 반증이죠.  다시 한 번, '장애'는 '결함'이 아닙니다. 비신체장애인이 가진 다른 소수자성이 단지 상대적으로 덜 부각될 뿐입니다. 자본의 정도/직업의 유무/노동의 계급/성별/인종/퀴어/노동조건/육아/출산/외모/연령/질병/상태/학력/지역/연봉/신체기능의 다름/정상가족/ … 얼마나 많게요. 이렇듯 비장애인 역시 수많은 카테고리에서 탈락당할 수 있는 다양한 소수자성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아마 탈락이라고 여기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나마 상대적으로 보장받은 권리의 영역에서 각자 노력하고 노력해서 각 스탯을 커버해 나갈 수 있을 뿐일 거예요. 이렇듯 장애도 본질적 결함이 아닌, 이 모든 것들과 다르지 않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소수자성은 다르지 않습니다.  만약 여전히 누군가의 소수자성이 '결함'으로 느껴진다면, 그리고 '결함'이 맞다는 정치적 의견을 고수한다면 다음 사회 안전망에서 밀려나는 건 내 차례가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정말 많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미래에 잃게 될지도 모르는 우리의 존재 위치는, 그 연결이 지켜줄 것입니다. 당신 권리의 연장선상에 내 권리가 닿아있다는 이야기와 같습니다. 아무리 각자의 생존투쟁이 치열해도, 우리가 그 연결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적어봅니다. 누군가의 선의를 믿을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고, 올해에도 그 선의의 마지노선이 우리 사회의 많은 합의를 구성해 나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덧붙여, 그래서 저는 전장연 활동가 분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일상에서 우리를 서로 마주치게 하는 그 소란스러운 투쟁이 자랑습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그 존재의 자리를 지키는 투쟁에 응원을 보냅니다. -  위 글은 1월 3일자에 개인적으로 작성했던 글을 옮겼습니다 :)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장애인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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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존재가 함께 살아가는 방법
안녕하세요? 시민36입니다. 오늘은 우리 사회가 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기 위해 글을 준비해 봤습니다. 전장연의 요구는 ‘사람답게 살아갈 권리’ 2021년 12월부터 시작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시위가 그 목표를 이루지 못해 2023년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 이유이자 요구나느 ‘장애인 권리 예산’ 증액입니다. 장애인의 이동할 권리, 탈시설과 지역사회 공존의 권리, 노동할 권리, 교육받을 권리 등 ‘사람답게 살아갈 권리‘를 요구하는 것입니다.(2023.01.03. 경향신문) 1년 넘게 전장연이 지하철 출근길 시위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장애를 가진 소수자가 사회에서 함께 공존하기가 아직까지 불가능하기 때문이겠지요. 누군가는 소수자의 권리를 위해 다른 다수의 시민들이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장애를 가진 소수자를 위해 비장애인이 ‘불편’을 감수한다는 것은, 그만큼 기존의 비장애인이 누리던 ‘일상’이 사실, ‘기울어진 권력’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소수의 권리가 다수의 불편과 충돌한다는 것은, 그 불편의 크기만큼 소수자의 고통과 불평등이 기반이 된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장연의 격렬한 출근길 시위 덕분에, 우리 사회는 장애인, 교통약자와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질문은, 과연 ’어떻게 서로 다른 존재가 공존을 모색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각자는 서로 너무나 다른 존재입니다. 서로 다르다는 것은 때로는 권력관계에 기반하여 함께 공존하기 위해서는 다른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서로의 배경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것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올바른 숙의이자 문제 해결 방식입니다. 소수자 권리, ‘누가’ ‘어디까지’ ‘어떻게’? 최근 전장연은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면담, 공개토론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오세훈 시장도 이를 받아들였으나 ‘공개토론’ 형식을 거부하며 면담 방식을 둘러싼 이견으로 면담 일정을 확정짓지 못하고 있습니다.(2023.01.12. 세계일보) 그리고 전장연이 서울시장과의 면담을 전제로 1월 19일까지 지하철 시위를 중단했지만, 서울시는 전장연의 박경석 대표를 상대로 6억원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지요. 또한 전장연 단체에는 지하철 시위로 인한 피해보상으로 5천 145만원을 소송 청구했습니다.  소수자의 권리를 요구하기 위한 시위가 법의 판단 앞에 섰습니다. 이제 소수자 권리를 위한 목소리는 판사의 잣대로 평가받게 됩니다. 생애 주기 동안 자유로운 이동을 박탈당하는 이동약자들의 권리 요구가 법적 영역으로 들어가는 상황을 보며 저는 ’위기‘를 느꼈습니다.  과연 이런 상황, 이런 사회분위기 속에서 또 어떤 약자가 권리를 위해 집회, 시위와 같은 방법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까요. 혹자는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끼치는 방식’이 문제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소수자 권리 요구는 집회, 시위가 아니라면 어떤 방법으로 목소리를 내고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다정함을 보여줘” (feat.에브리씽 에브리웨얼 올 앳 원스) 지금까지 전장연 집회시위자들이 출퇴근 지하철 시위를 하면서 그 현장에 얼마나 있었을까요. 거기에서 마주치는 무수한 시민의 눈빛을 그들은 견뎌야 했을 것입니다. 또한 집회시위 이후, 활동가들은 생명을 위협하는 협박에 시달렸습니다. (2022.02.18 아시아경제) 일 년이 넘도록 욕설, 폭력과 살해 협박에 노출된 환경에서 집회시위를 하는 심정은 어떤 심정일지, 과연 누가 알 수 있을까요.  저는 이동약자가 자유롭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환경이 보장된 사회를 원하고, 우리 사회가 그렇게 나아가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더 많은 약자들이 집회, 시위라는 방식으로 우리 사회와 소통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방식이 일 년 넘게 진행되는 지하철 시위라면, 왜 그렇게까지밖에 목소리를 낼 수 없도록 우리 사회가 만든 것일까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장연의 시위 방식으로 출근길 지각부터 중요한 일정에 늦거나 급한 사정을 처리하지 못하는 등 심한 피해를 입은 개인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왜 내가 이런 부당함을 겪어야 하는지 분노하는 것도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그 분노의 방향이 더 나은 우리 사회를 위해 문제해결의 방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반 시민들이 입는 피해를 막는 방법도 소수자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공존을 모색을 통해 마련됩니다.  소수자와의 공존은 법치, 행정주의, 손해배상청구에 있지 않습니다. 공존은 소통에서 비롯되며, 소통은 ‘헤아림’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소통한다고 한 장소에 모았는데, 알고 보니 특정 집단에게는 물리적 접근조차 어려운 장소, 가슴 높이까지 올라오는 높은 책상 등으로 불편함을 유발하는 것을 유의해야겠지요.  권리를 박탈당한 이들이 목소리를 낼 때, 이를 ‘헤아리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 수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우리는 서로가 너무 다른 존재니까요. 그러나 서로에 대한 이해와 헤아림이 없다면 우리 사회는 불편과 혐오만 남게 될 것입니다.  제가 최근 가장 감명깊게 본 다니엘(콴, 쉐이너트)감독의 ’에브리씽 에브리웨얼 올 앳 원스‘ 영화를 인용하며 글을 맺어보겠습니다. “제발 다정함을 보여줘. 특히 뭐가 뭔지 혼란스러울 땐“. - 웨이먼드 (키 호이 콴)
장애인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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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연 시위를 보는 시선들
? 한국 장애인 운동의 역사 ? 전장연의 요구사항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장애인 이동권 관련 요구사항은 2018년 5월 22일의 기자회견에서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서울시내버스 완전공영 정책 실시 2. 지하철 전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확보할 것 3. 서울시 시내 저상버스 2025년까지 보급률 100>#/b### 4. 특별교통수단 (장애인콜택시) 이용개선 대책 마련 5. 장애인 단체 활동·여행 時 접근가능 전세버스 마련 및 공공운영 (이상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2018.05.23. 서울시장선거를 앞둔 기자회견) ?️?️ 시선1: 다른 장애인 단체들의 시선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한국장총) 측은 2022년 3월, 전장연 시위를 비난한 이준석 대표에 대해 사퇴하라고 요구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 대표의 눈에는 여성, 장애인 등에 대한 배려와 기회의 평등, 적극적 우대조치 등이 모두 특혜로 보이겠지만 사회적 약자들의 소득과 학력, 건강수준의 격차는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여전하다.” “시위는 애당초 다수의 불편을 초래하는 일이다. 소수든 다수든 불편을 초래하지 않는 시위는 없다. 이 대표가 비문명적이라고 비난하는 시위 방식은 서구문명사회에서도 지속돼 온 비폭력 시위다. 미국 등 장애운동의 역사 또한 비폭력 점거, 시위 등의 연속이었다. 장애인차별철폐운동만이 아니라 여성차별철폐운동, 인종차별철폐운동이 그랬다. 이 대표 논리는 다수의 출근 권리는 보장되어야 하지만 소수의 출근 권리는 희생돼도 무방하다는 세계관이다. 이준석 대표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의 언어가 아니라 편협한 세계관으로 혐오를 조장하고 선동하였다.” “(이준석은) 연일 시위 방식만 지적하며 전장연이 대화할 자세가 안 되어 있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시위 방식이 잘못됐다고 전장연이 제기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준석 대표는 공당의 대표, 여당이 될 대표로서의 역할과 영향력을 망각했다. 남성vs여성, 특정지역 서민, 장애인vs비장애인, 법정vs비법정 장애인단체를 갈라치기하며 지지자와만 소통하겠다는 편협한 사고, 고압적이고 반성 없는 태도로 일관하는 모습에 263만 장애인과 가족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만 남았다.” “이준석 대표의 지금까지의 행보는 개인 이준석의 생각이어도 손가락질 받을 일이다. 하지만 정당 대표로서 이준석 대표는 자질이 없기에 정중히 사퇴를 촉구한다.” (2022.03.31.전국장애인총연맹 입장 발표) 비슷한 시기, 한국지체장애인협회는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면서도 한국장총과는 다른 입장을 보였습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장기간 국민을 볼모로 한 각종 불법시위가 그 도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이동권 보장 요구에 우리 협회도 인식을 같이 하며, 다만 이를 주장하는 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우리 협회는 전장연이 지난 20년 넘는 세월동안 과격한 시위를 이어왔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전장연이 취해 온 강경투쟁이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불편을 주었고, 장애인식개선에 악영향을 미쳤습니다.” “선량한 시민사회에 전장연의 불법 및 강경투쟁이 전체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고착화 시키고 있습니다. 이는 장애인은 물론 장애인복지 증진을 위해 노력해 온 장애인단체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엄중한 행위라는 점을 분명히 밝혀두고자 합니다.” “국민들이 이해할 수 없는 시위는 멈추어 주십시오. 정당성 있는 과정과 방법으로 우리의 호소력을 높여야 합니다.” “사회적 약자를 공격하는 것이 온당치 못하다 여기는 분위기로 몰아가는 여론에도 우리는 결코 동조하지 않습니다.” “사회적 동의와 국민의 지지를 무시한 장애인 운동은 결국 설자리를 잃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국민의 불편을 야기하는 특정 단체의 극단적인 행태에 깊은 유감을 금치 못하며, 정부와 국회는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위한 실제적인 활동과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천해줄 것을 촉구합니다. 장애계 그리고 정치권은 국민들이 눈살 찌푸리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2022.03.29.한국지체장애인협회 성명) ?️?️ 시선2: 정치권의 시선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에 대한 정치권의 발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발언일 것입니다. 그는 “지금까지 우리 당의 정치원로들이나 아니면 다른 지금까지 정치 문법에 있어서 애초에 장애인 관련 문제 같은 것은 건드리지 말라는 문법”이라고 말하면서 “이런 것들에 대해서 앞으로 적극적으로 정치권이 개입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한겨레.2022.03.31.) 2022년 4월 13일, JTBC에서 이 전 대표와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라이브 토론을 벌였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한민국에는 장애인 이동권 못지않게 중요한 우선순위 사업들도 있어 조율이 필요하다” “지하철 막은 다음에 악플을 안 받길 기대하셨나” “탑승 시위 그 자체는 반대하지 않는다. 지하철을 마비시키는 방식으로 다수의 불편을 야기해서 결국에는 뜻을 관철시키려고 한 거 아닌가” “그래서 그 부분을 비문명적이라고 한 것이고 꼭 출입문을 닫지 않게 하는 방식으로 했어야 했나” (2022.04.13.) 이준석 전 대표에 대한 비판도 있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의원 "이 대표는 혐오의 발언을 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왜 그렇게 많은 이들이 비판하고 불쾌해하는지 알아야 한다" "이 대표가 여성,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태도의 결과치가 이 대표의 발언이 지탄을 받는 이유" (매일경제.2022.03.28.)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 "장애인단체 시위로 인한 시민의 불편과 갈등은 정치권이 이용할 소재가 아니라 해결해야 할 과업" "장애인단체의 이동권 보장 요구에 인질, 볼모, 부조리를 운운하며 서울경찰청에까지 조치를 요구하는 모습에 새로운 (윤석열) 정권에 대한 깊은 두려움이 생긴다" (오마이뉴스.2022.03.28.)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 "정말 큰 사고가 있어야 누가 사망하거나 중상을 당해야 그제야 언론에서 주목하고, 언론에서 주목해야 그제야 정치권에서 관심을 가져왔다" "헤아리지 못해서, 공감하지 못해서 죄송하고 적절한 단어 사용이나 적절한 소통을 통해서 여러분과 마음을 나누지 못해 정말 죄송하다. 정치권을 대표해서 제가 대표로 사과드린다" (오마이뉴스.2022.03.28.) 이준석의 뒤를 이어 국민의힘 대표가 된 권성동 의원도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법치국가로부터 지원을 받은 단체가 법치를 뒤흔드는 거듭된 모순을 끊어내야 한다. 불법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처벌밖에 없다” “전장연을 비판하면 일부 야권 인사들은 혐오와 차별이라고 낙인찍는데, 다른 의견을 도덕적 파탄으로 몰아세우며 정치적 지분을 확보하려는 선동” “사회적 약자의 어려움을 자신의 이윤 창출 수단으로 삼는 전형적인 갈등산업 종사자의 모습” “정부는 엄정한 법과 원칙에 따라 불법 시위를 예방하고 엄단해주시기 바라고, 국회는 장애인 복지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동시에 반복된 불법행위를 주도한 시민단체에 대한 국고 보조금을 제한하는 입법이 필요하다는 국민 목소리도 경청해야 한다” (세계일보.2022.09.14.) 2022년 12월 말부터 전장연의 시위에 대한 경찰과 서울교통공사의 대응이 강해지자,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서울교통공사가 자행하는 장애인 시위에 대한 보복성 무정차 통과는 그 어떤 시민의 복리에도 기여하지 않으며 오로지 권력의 입맛대로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의 이동권을 침해하는 폭거일 뿐” “10.29 이태원 참사에서 무정차 통과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사를 받던 서울교통공사 직원이 의원실에 찾아와 무정차 통과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구구절절 늘어놓던 며칠 전이 생각난다” “시민을 지키는 무정차 통과는 그렇게도 어렵더니 시민을 억압하는 무정차 통과는 어찌 이리 쉽나” (주간조선.2023.01.04.) 오세훈 서울시장은 최근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오전 서울경찰청장과 논의를 마쳤다. 서울교통공사에서 요청하면 경찰이 지체 없이 신속하게 대응할 것” “서울시정 운영 기조인 ‘약자와의 동행’이 불법까지도 용인하겠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불법에 관한 한 이제 더 이상의 관용은 없다” (세계일보.2022.12.27.) “내일부터 지하철을 연착시키게 되면 민·형사적 대응을 모두 동원해 무관용으로 강력히 대응할 것” “1년간 (열차 지연으로) 손해를 본 것이 6억원 정도” (매일경제.2023.01.01.) “전장연을 만나기는 하겠으나 (전장연이) 전체 장애계의 입장이 아니란 점을 분명히 하고 만나겠다”  “장애인 단체의 의견을 면밀히 검토해 바람직한 방향으로 민원을 제기하는 분들이 손해보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신경쓰고 장애인의 편의와 권익증진에 노력하겠다” (경향신문.2023.01.09.) ?️?️ 시선3: 나무위키의 시선 나무위키는 전장연 시위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동열차 운행방해 사태라 명명하고, 이 문서를 범죄 카테고리에 두고 있습니다. 전장연 시위는 배우 곽도원의 음주운전, 작곡가 돈 스파이크의 마약 범죄, 이기영의 살인 범죄, 기타 성매매, 아동성폭행, 학교폭력 등과 같은 범주 안에 있습니다. (나무위키 <2022년 범죄> 항목) 그리고 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굵은 글씨는 실제 문서와 동일합니다다) “2020년 1월 22일부터 진행중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운행방해 불법 시위이다.” “해당 시위는 형법상으로 철도안전법, 업무방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감염병예방법, 교통방해죄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있다.” “찬성 측에서는 그동안 수많은 정권에서 교통약자 관련 정책을 등한시했다는 이유를 들어, 장애인들의 현실 상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의견을 내세우고 있지만, 반대 측에서는 이를 위해 그들은 무고한 시민들에게 명백히 금전적 손해를 포함한 여러 피해를 끼치고 있고, 개인 및 지자체 등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시간적, 경제적 피해를 입혔다는 점에서 다른 사람들이 수인하고 있는 피해의 규모와 등가성이 맞지 않고, 또한 그들은 미신고 불법 집회를 하고 있다는 점, 철도역에서 벌이는 노숙, 음주 술판 등 집회의 명분과는 전혀 관계없는 무질서행위를 저지르기에 이르렀다는 점을 피력하고 있다고 여러 근거를 들어 반박했다.” “전장연은 21년간 쌓아 온 장애인으로서의 억하심정과 그간 5명의 대통령들의 행동에 대한 불만을 모두 현 정권에게 풀어내고 있다.” “그 수단으로 정부에 대한 항의가 아닌 죄없는 시민들에게 정부가 굴복할 때까지 피해를 입히는 도덕적으로, 사회적으로, 법적으로 용납되기 힘든 방법을 쓰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이 보이는 이런 비타협적 태도,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들 스스로의 요구에 대한 이상할 정도의 무지는 이들이 애초에 진심으로 정책을 토론하고 실현시키는 데 관심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때문에 이들의 테러와 같은 과격집회는 사회적인 정당성을 완전히 결여하며, 정책이 아닌 금전이 제1의 목적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뒤돌아서면 행인에게 행패를 부리는 노숙자 집단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앞에서 아무리 화려한 미사여구를 동원하고 자신을 희생양으로 치장한다 한들 그 진정성을 신뢰하기 힘들다. 기본적 에토스(Ethos)의 문제이다.” “전장연은 장애인 중에서도 일부 소수의 사람들로 구성된 일개 이익집단일 뿐이다.” “전장연 사태에서 언론은 잠재적인 전장연의 협력자로 기능해 왔다고 해도 좋을 만큼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중략) 언론들이 조선일보의 일부 고발 기사를 제외하고는 전장연의 진짜 시위 목적인 탈시설 관련 문제를 전혀 언급하지 않고, 전장연의 주장대로 이동권 문제가 그들의 목적이라고만 보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언론들이 시민들을 현혹하게 되면서, 이번 시위에서 전장연이 요구하는 예산 대부분이 이동권 예산이 아니며, 이동권 예산이 2배로 증액되었지만 아직도 전장연이 시위를 계속하기를 택했다는 일련의 사실들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민들은 이번 시위가 이동권 문제이며 그들의 목적만은 옳다는 중대한 착각을 하고 있다.” (이상 나무위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동열차 운행방해 사태> 항목) 나무위키는 장애 당사자인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에 대해 이렇게 기입해 놓았습니다. (굵은 글씨는 실제 문서를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변재원 활동가가 김예지 의원의 비서관인 이가연의 남편인데다 전장연의 정책국장이어서 김예지 의원이 연고관계 때문에 전장연 편을 든다는 논란이 일어난다. 이준석이 이 점을 비판하자 변재원은 페이스북 글로 논의에 참여해 이준석에게 '오해를 풀고 소통하고 싶다'는 글을 올려 자신이 현재는 전장연 소속이 아님을 밝히고, 교통 문제에 관심이 많다던 이준석이 협상 자리에서 졸기나 했다며 비난했다. (중략) 김예지 의원 비서관의 남편이 인터넷에 알려진 것처럼 단순히 전장연 소속일 뿐 아니라, 한때 전장연측의 입장을 대표하러 토의 자리에 나오는 중요한 직위의 사람이었다는 것이 된다. 게다가 김예지 의원의 비서관 이가연은 사실 전장연 기관지인 비마이너에서 활동하던 인물이었다. 이에 이준석은 "오해에 대해 소통하고 싶다면서 내가 졸았다고 비난하느냐. 그런 말 나올까봐 자신은 누구와 만날 때 꼭 배석자를 둔다(그렇지 않았다는 증인이 있다), 당신 글 내용으로 전장연의 목표가 어디에 있는지 스스로 밝힌 셈이 되었다"고 반박했다. 전장연의 정계 유착 및 비리, 장애인 인권유린 등의 각종 부정적 이슈를 추적 보도하고 있는 조선일보의 최모 기자에 의하면 자기가 김예지 의원 비서관 및 그 남편의 전장연과의 관계에 대해 질의하려고 접촉을 시도하자 이가연 비서관은 자신이 변 정책국장의 아내라는 것을 부정하고 더 이상의 취재를 거부했고, 남편인 변재원 정책국장은 아예 자신의 페이스북을 닫아버렸다고 한다. (이상 나무위키<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동열차 운행방해 사태> 중 <김예지> 항목) ?️?️ 글쓴이의 감상 한국지체장애인협회 등의 일부 장애인 단체, 이준석 대표 등 국민의힘 의원들, 나무위키에 흐르는 공통적인 시각은 이것입니다. “과격한 시위는 공감받기 어렵고, 장애인인 이미지만 해친다” 이런 이야기를 장애인이 해도 동의를 할까 말까인데, 비장애인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면 진짜 머리가 핑 도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께 평소에 장애인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갖고 계셨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계셨는지 묻고 싶습니다. 이런 태도에는 기본적으로 시위의 형식만 보고 왜 시위를 하는지는 보지 않으려는 태도가 깔려 있습니다. 물론 형식/방식도 중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그들은 과격한 방식을 택할까요? 왜 시위는 과격해질까요?  시위도 개인과 사회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입니다. 장애인의 이동권에 대한 대중의 시선, 정부의 대응, 경찰의 대처가 전장연의 “과격한” 시위를 촉발한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2001년입니다. 22년이 지났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바뀌었습니까? 전장연 시위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자주 들고 오는 근거는 “서울 지하철역의 엘리베이터 설치율이 94%이며, 이는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히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와 리프트는 뻑하면 고장이 나고 사람들은 장애인에게 양보를 해주지 않습니다. 환승구간을 연결하는 승강기가 없어서 환승을 못하는 경우도 많고, 승강장과 열차 사이의 간격과 단차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장애인 콜텍시는 50분을 기다려야 겨우 오고, 저상버스 보급은 오래전부터 100%를 약속했지만 아직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한겨레.2022.04.29.) 이 세상에 100%가 쉽냐, 이 정도도 대단한 거다, 이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 물론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숫자만 채우면 이 문제가 끝날까요? 이동수단의 질에 대해서는 왜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을까요? 여기에는 장애인을 동료 시민이 아니라 시혜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깔려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약칭: 장애인차별금지법)에는 이런 조항이 있습니다. 제19조(이동 및 교통수단 등에서의 차별금지) ①「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 제2조제5호 및 제6호에 따른 교통사업자(이하 “교통사업자”라 한다) 및 교통행정기관(이하 “교통행정기관”이라 한다)은 이동 및 교통수단 등을 접근ㆍ이용함에 있어서 장애인을 제한ㆍ배제ㆍ분리ㆍ거부하여서는 아니 된다. <개정 2010. 5. 11.> ②교통사업자 및 교통행정기관은 이동 및 교통수단 등의 이용에 있어서 보조견 및 장애인보조기구 등의 동승 또는 반입 및 사용을 거부하여서는 아니 된다. ③교통사업자 및 교통행정기관은 이동 및 교통수단 등의 이용에 있어서 장애인 및 장애인 관련자에게 장애 또는 장애인이 동행ㆍ동반한 보조견 또는 장애인보조기구 등을 이유로 장애인 아닌 사람보다 불리한 요금 제도를 적용하여서는 아니 된다. ④교통사업자 및 교통행정기관은 장애인이 이동 및 교통수단 등을 장애인 아닌 사람과 동등하게 이용하여 안전하고 편리하게 보행 및 이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필요한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여야 한다. ⑤교통행정기관은 교통사업자가 장애인에 대하여 이 법에 정한 차별행위를 행하지 아니하도록 홍보, 교육, 지원, 감독하여야 한다. ⑥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운전면허시험의 신청, 응시, 합격의 모든 과정에서 정당한 사유 없이 장애인을 제한ㆍ배제ㆍ분리ㆍ거부하여서는 아니 된다. ⑦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이 운전면허시험의 모든 과정을 장애인 아닌 사람과 동등하게 거칠 수 있도록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여야 한다. ⑧제4항 및 제7항을 적용함에 있어서 그 적용대상의 단계적 범위 및 정당한 편의의 내용 등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이 법은 2017년 7월 26일부터 시행된 법입니다. 우리는 이 법 앞에서 장애인들의 이동권이 침해받지 않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까? 왜 이 법은 이야기하지 않을까요요? 한국에 온 외국인들이 자주 이야기하는 것 중 하나가 한국의 거리에선 장애인을 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2021년 기준, 한국의 등록장애인은 264만 5,000명으로 전체 인구대비 5.1%입니다. 이 중에서 중증장애인은 37.2%이고, 지체장애인은 45.1%를 차지합니다.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꽤 많은 숫자죠. 그런데 여러분은 평소에 길을 다니면서 중증장애인을 몇 명이나 마주치시나요?  과격한 시위는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는 제도적 문제와 아직도 만연한 대중의 차별적인 시선이 낳은 결과입니다. 정치인과 정부는 이미 거센 불길에 기름을 더 붓고 있습니다.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사회에 깔려있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인 문화, 불평등을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이 문제는 절대 해결되지 않습니다.
장애인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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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민생’이 다치고 아프니까 : 민생입법과제에 장애인국가책임제법
이미지 출처 : @pixabay 꽃동네를 아시나요 ‘건장한’ 몸으로 기독교 미션스쿨을 다닌 사람이라면, 아마 찾아간 적 있을 것이다, 장애인시설 ‘꽃동네’. 나는 봉사활동을 하러 간다는 선생님의 말을 듣고서 전교생과 버스를 타고 꽃동네에 갔다. 아무렴 ‘봉사’는 너무 ‘착한’ 말이었고, 여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건 학생으로서 너무 ‘나대는’ 짓인 것 같아 어떤 섬짓함을 속으로 삭였다. 비장애인인 내가 봉사자로서 장애인과 ‘대화’하고 식사를 돕고 잡일을 ‘체험’하도록 기획된 이 활동에 감사하기보단 오히려 죄스러워 고개가 숙여지는 마음이었다. 일과가 끝난 저녁엔 강당에 모여서 꽃동네의 철학과 정신에 대해 들었다. 이곳에서 평생 살다 돌아가신 어느 장애인의 나눔과 섬김을 수녀님의 입을 통해 강의받았다. 그러나 다양한 몸을 가진 꽃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곳에서 들을 수 없었다. 오직 꽃동네를 운영하는 수녀님들께서 우리를 강당에 모아 이곳의 좋음을 알려주셨으니, 내가 가진 정보는 꽤 불균등했을 것이다. 여기까지가 꽃동네에 관하여 기억하는 어렴풋한 내용이다. 소화하지 못한 찜찜함을 남기고 꽃동네 ‘봉사’활동을 마쳤다. 그땐 시혜적인 만남이 배움은 아니란 생각뿐이어서 우리 학교의 방향성에만 툴툴대었다. 그런데 지난 8월 31일, 더불어민주당이 ‘정기국회 22대 민생입법과제’ 중 하나로 선정한 ‘장애인국가책임제법’을 살펴보다 장애계가 꽃동네를 비판하는 더 넓고 정확한 입장을 알게 됐다. “꽃동네는, 장애인수용시설로서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위배된다.”   장애인국가책임제법에 포함된 세부 법안은 6가지이다. (더인디고 2022.9.1.) ▲(장애인 평생교육기관 설치, 장애인평생교육사 양성 등) 장애인평생교육법 ▲(장애인고등교육센터 설치 등)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청각장애인 정보 접근 확보 등) 장애인복지법 ▲(교통약자 서비스에 대한 운전자 교육 등)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 ▲(장애인전용주차구역 의무화 등) 공간정보의 구축 및 관리법 ▲(탈시설지원기관 설치 및 운영 등) 장애인 탈시설 지원법 '장애인 탈시설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에서는 제안 이유로 "장애인에 대한 시설보호는 장애인을 지역사회로부터 분리된 채 획일화되고 집단적인 생활을 하도록 강요하고 있"음을 제시한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서도, 탈시설-자립생활 권리를 장애인의 기본적 권리로 규정하고 있다. 아무리 따뜻하고 '착한' 시설에 거주한다한들 장애인이 선택하여 탈시설하고 자립할 수 있는 상황과 여건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협약 제19조는 “이 협약의 당사국은 모든 장애인이 다른 사람과 동등한 선택을 통하여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동등한 권리를 가짐을 인정”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협약 일반논평 5는 “백 명 이상이 거주하는 대규모 시설도, 5~8명이 사는 작은 그룹홈도, 심지어는 혼자 사는 집도 시설 또는 시설화의 요소를 분명히 가지고 있다면 자립적 주거 형태로 볼 수 없다”고 못 박고 있다. (비마이너 2022.8.16.) 그런데 꽃동네를 비롯한 장애인수용시설은 거주자가 밖에 나갈 수 없는 시설 속에서 생활하게 함으로써, 그들이 다양한 선택과 개성의 주체로 살아가지 못하게 하여 지역사회와 분리하는 효과를 낳는다. 이러니 현실적인 대책과 지원체계를 마련한 탈시설을 정치의 중요한 과제로 삼을 필요 있다.   인간이 원래 다치고 아프니까 현재 필자의 시간은 새벽 4시 24분을 가리키고 있다. 사람들은 이 시간을 무엇으로 보내고 있을까. 누군가는 피곤한 단잠에 빠져서 고생할 내일을 까맣게 잊었을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어깨가 들쑤셔 잠과 현실의 경계를 헤매고 있을지도, 그리고 누군가는 미친 우울감에 포효하며 이불을 쥐어뜯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뼈저린 신체의 고통으로 이젠 하루를 그만 나고 싶다고 신에게 애원할 것이다. 나이 든 가족을 둔 사람이라면 아마 지켜봐왔을 장면들이다.   다치고, 미치고, 아픈 우리는 각자의 몸에 맞는 ‘하자’를 갖고 산다. 신체적인 지병이 아니더라도 상시적인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시민이 더러 있다. 먹거리로, 수면부족으로, 성장에 대한 압박으로 병을 주는 시대에 무언가 앓고 있지 않다면, 그건 그것대로 아픈 것이다. 내 눈엔 몸도 마음도 아프지 않은 건강함이야말로 기이한 ‘증상’이 되어버리는 독한 세상이다. 이처럼 다들 각자의 몸에 맞는 '비정상성'과 아픔을 갖고 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장애와 시설의 감각을 모른 채, 자신을 비정상성으로부터 분리하고 '하자 없는' 몸인 듯이 살아간다. 나이가 들고 병이 깊어져 요양병원에 맡겨질 날이 찾아와서야, 간신히 아픈 몸의 감각과 시설에 갇히는 불안함을 떠올린다. 사실은 누구나 항시 병들 가질 가능성이 있는 개체다. 그 가능성을 지금의 나로부터 분리하고 탈시설과 장애의 문제를 멀리하는 것보다는, 모두를 위한 시의적인 과제로 다루는 것이 더 공익적일 것이다. 인간의 신체로는 살면서 여러 번 장애와의 교차점을 지난다. 온 평생 장애의 길을 달리는 사람과, 장애와의 교차점만을 스치는 사람은 분명 다른 감각에서 살겠지만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모든 인간이 이해하는 아픈 몸과 장애와 시설이 만나는 교차점만이, 장애와 비장애의 극명한 경계를 흐리고 장애를 사회 안으로 들여 이해해 나가는 열쇠가 된다. ‘장애인국가책임제’는 ‘민생’입법과제에 포함된 것이다. 이제 장애인의 권리 향상이 보편적인 서민들의 더 나은 삶(즉 민생)과 연결된다는 감수성에 이르렀다. 아픔은 우리가 함께하는 재료로 쓰이고, 이 감수성으로 옳음을 향하여 나아가기를 소망한다.
장애인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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