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페미니즘의 동물윤리: 돌봄의 생태공동체를 향해

2023.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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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주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페미니즘학교 팀장, 연구활동가

수백 년 전, 여성들은 왜 동물에 관심을 가졌을까?

몇 차례 <동물권행동 카라>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나는 주로 페미니즘 이론을 강의하기 때문에 수강자 대부분이 여성인 것에 익숙하다. 그래서 <카라>에서 동물권을 주제로 강의할 때 성비의 특성에 좀 둔감했다. 수십 명이 참여하는 동물권 교육프로그램에 남성은 고작 서넛이었다. 얼마 뒤에 우연히 에코페미니스트 수전 그리핀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이런 일은 한국에서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인터뷰의 첫 질문이 환경단체나 동물권리운동 단체에 남성보다 여성이 훨씬 더 많은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였다. 그러게, 왜일까?

최초의 페미니스트 중 한 명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1787년과 1788년에 쓴 교육에 관한 책에서 동물에 대한 존중과 연민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페미니스트 마거릿 풀러는 1845년 저작에서 여성적 문화가 통합된 더 나은 사회는 동물 도살을 포함한 모든 폭력이 종식되고 채식을 하는 사회라고 언급했다. 프랜시스 파워 코브는 1875년 최초의 동물보호운동단체인 <생체실험동물보호협회>를 설립했고, 1898년에는 <생체실험폐지를위한영국연합>(현 Cruelty Free International)을 설립했다. 샬롯 퍼킨스 길먼의 1915년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소설 『허랜드』는 동물들이 착취도 수탈도 감금도 당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 여성들의 세계를 다룬다.

프랜시스 파워 코브
프랜시스 파워 코브(1822-1904), <Cruelty Free International>의 설립자이자 여성참정권운동가

제1물결 페미니스트들은 주로 여성의 참정권과 교육받을 권리, 직업을 가질 권리 등에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여러 제1물결 페미니스트들이 채식주의를 주장하고 동물원 동물의 해방 캠페인을 벌였다. 이들은 계몽주의 철학의 영향을 받았지만 남성 철학자들이 동물을 이성 능력도 영혼도 없는 기계로 여겨 실험과 조작의 대상으로 보았던 반면, 페미니스트들은 동물이 지닌 감각과 감정에 초점을 맞추어 윤리적으로 대우할 것을 주장했고, 더러는 동물이 고유의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페미니스트들은 어째서 그렇게 일찍부터 동물의 고통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을까?

19세기의 영국 반생체실험 운동을 연구한 코럴 랜스버리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줄에 묶인 채 생체실험자의 칼을 받는 모든 개나 고양이는 여성들에게 그들 자신의 조건을 떠올리게 한다.” 현대의 여성들은 18-19세기의 여성들보다는 많은 권리와 자유를 확보했고, 현대의 동물들은 더 이상 마취도 하지 않은 채 해부를 당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둘 다 여전히 폭력과 차별, 착취에 노출되어 있다. 여전히 동물과 관련된 강연이나 캠페인에는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현대의 여성들도 동물들에게서 자신을 보는 것일까? 에코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이 동물문제에 더 관심을 갖는 이유가 ‘비슷한 처지’ 때문만이 아니라, 여성들이 역사적으로 책임져왔던 노동이 생명체를 낳고 기르고 보살피는 일들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강제급식
체포된 여성참정권운동가가 단식으로 저항하자 강제급식을 하는 모습이 담긴 선거 캠페인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관점으로서 에코페미니즘

가부장제나 자본주의는 생명체를 노동력이나 자원, 소유물이나 정복의 대상으로만 보는 가치체계를 가지고 있다. 차별받는 집단인 여성은 이 체계 안에서 꼭 필요하지만 저평가된 일을 할당받았다. 임신, 출산, 육아, 가사노동, 돌봄노동은 본능이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아무 대가도 없이 혹은 최저 수준의 임금만 받고 여성이 해야만 하는 일로 여겨졌다. 이런 노동의 영역은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의 주요한 장소이다. 하지만 이곳은 또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가치들을 담고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내가 아닌 타자를 낳거나 기르거나 돌보는 노동에 익숙한 사람은 다른 존재의 감각, 감정, 필요와 욕망을 더 빠르고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고, 다른 존재에게 더 쉽게 공감할 수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더 깊이 있고 책임 있는 관계를 만들고 유지할 수 있다. 남성에 비해 여성이 이런 일들을 더 많이 훈련해 왔고, 이 역량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종과의 관계에서도 발휘된다. 이런 역량의 체득과 실행이야말로 지금 지구가 처한 위기상황의 관건이다.

기후위기를 중심으로 하는 생태위기 속에서 아무 책임도 없는 수많은 동물종이 멸종되고 서식지를 잃는 등 삶의 조건을 빼앗기고 있다. 인간도 예외는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문제를 과학자와 행정관료와 정치인이 결정할 문제라고 치부한다. 하지만 이 전문가들이 어떤 기술을 어떻게 사용해서 어떤 정책과 제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지 결정하려면, 우리가 민주적 대화를 통해 협의하고 동의하는 관점이 필요하다. 어떤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의 방향을 설정해야 할까? 기후위기를 일으킨 사고방식과는 다른 관점이어야 하지 않을까? 고차원적인 이성을 지닌 인간이 다른 모든 종보다 우월하다는 생각, 그래서 인간이 다른 동식물을 소유하고 통제하고 조작할 권리를 갖는다는 생각, 다른 생명체들을 인간의 필요에 따라 처분할 수 있다는 생각과는 반대되는 사고방식이 필요한 게 아닐까? 다른 동물들의 육체와 여성의 육체는 완전히 도구화해도 된다는 생각을 거부하는 관점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태적 돌봄을 생각하는 페미니즘

에코페미니즘은 페미니즘 안에서 그런 새로운 관점과 틀을 발견해왔다. 그것은 바로 돌봄윤리이다. 다른 사람이나 다른 종의 육체와 필요, 욕망을 이해하고 충족시키며, 나 자신을 포함해 이 육체들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유지하고 풍요롭게 길러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윤리, 관계 속에서 자신의 책임을 다 하려고 하는 윤리가 돌봄윤리다. 페미니즘의 돌봄윤리는 인간은 독립적인 개인이고 필요에 따라 모여서 사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죽을 때까지 서로에게 의존하고 서로를 돌봐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한다. 돌봄윤리는 윤리적 행위가 원칙과 의무에 매이기보다는 맥락과 관계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고 본다. 윤리적 행위는 내가 관계 맺고 있는 존재가 나와 함께 잘 살기 위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행위이다.

이것은 단지 나와 가까운 사람들만 고려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지구 공동체 전체와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름 모르는 여성 노동자가 백혈병에 걸리면서 만든 반도체가 든 스마트 기기를 사용하고, 동물의 서식지를 불태워 만든 밭에서 생산된 밀을 먹으며, 내가 배출한 쓰레기는 중국이나 필리핀 등지에 수출되어 가본 적 없는 지역의 생태계를 파괴하고 아동 노동자들의 건강을 해치고 있다. 이 문제들은 단지 우리가 서로의 권리를 보장하거나 침해하는 문제가 아니다. 이 문제들은 나의 삶의 방식이, 그리고 내가 속한 사회의 여러 구조적 조건들이 다른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고려하여, 더 나은 삶의 양식과 사회적 조건을 만드는 데 개입하는 책임의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돌봄윤리는 또한 정치학이다. 돌봄윤리는 사회구조 안에서의 다층적인 권력관계, 차별과 배제의 맥락을 고려하고, 돌보는 자와 돌봄을 받는 자 사이의 위계를 살핀다. 누구에게 돌봄이 전가되고 누구는 돌봄을 받기만 하면서도 받지 않는 척 할 수 있는지, 각자가 놓인 성별, 계급, 인종, 장애, 연령 등의 맥락에서 어떤 돌봄이 어떻게 수행되고 분배되어야 하는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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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에 캘리포니아에서 설립된 그룹 <Feminists for Animal Rights>의 시위장면

다른 종들과 함께 생태공동체의 동등한 구성원이 되길

가장 유명한 동물윤리학자인 피터 싱어와 톰 레건은 모두 동물윤리가 동물에 대한 사랑이나 연민 등 감정에 의한 것으로 비춰질 것을 걱정했다. 이들은 동물윤리는 철저히 합리적인 철학적 성찰에 근거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사랑은 단지 비합리적이고 그저 개인적 감정에 불과한 것일까? 수전 그리핀에 따르면 “만약 무언가를 사랑한다면 당신은 그것을 통제하려고 그것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를 창출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참된 앎은 사랑에서 비롯된다는 말이겠다. 돌봄윤리는 사랑에서 비롯된 참된 앎과 책임 있게 관계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윤리적 의지, 이를 잘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합리적 판단능력, 관계 맺고 있는 이들과 함께 잘 살기 위해 공동체의 문제들에 개입하는 정치적 적극성을 요구한다. 개인의 윤리적 행위의 원칙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복잡한 관계망의 맥락과 다양성을 중심에 놓고 사고하는 종합적 판단능력도 요구한다. 자기희생의 돌봄이 아니라 자기 자신도 관계의 구성원으로서 함께 돌보는 것도 중요하다. 불평등하고 폭력적인 관계를 끝내는 용기도 돌봄의 일환이다.

현재 우리가 다른 동물종과 맺고 있는 관계는 어떤가? 일방적인 폭력과 착취의 관계에서 주인 노릇을 하는 대신 돌봄을 주고받는 생태공동체의 동등한 구성원이 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여성에게, 비주류 인종에게, 빈곤한 이들에게 값싸게 떠넘겨왔던 돌봄노동을 모두가 나눠지고 그 가치와 의미를 재평가하는 것이 그 지름길이 될 것이다. 돌봄의 관계 당사자에 다른 종들과 생태계 전체를 포함시킬 때라야 우리 자신도 진정으로 돌볼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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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해주신 페미니즘과 생태주의(종평등주의) 뿐만 아니라 장애학이나 탈식민주의, 퀴어 운동까지 기존의 기계론적 세계관에 대항하는 유기론적 학문 운동의 흐름이 '돌봄 윤리'라는 개념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 추상적으로만 그려지던 생각들이 차분히 정리되는 느낌이네요. 흥미로운 글 감사합니다.
생태, 기후, 동물과 관련된 주제로 이야기를 꺼내면 때로 '너는 참 감정과 사랑이 풍부한 사람이구나.' 라는 반응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온전히 맞는 말도 아니라 조금은 서글펐는데 앞으로는 이 글을 소중히 꺼내 권해주려 합니다. 좋은 글 감사해요.

불평등과 폭력으로 향하는 눈과 태도도 닦을수록 연마되는 것 같아요. 점점 더 공감과 문제의식이 깊어지고 확산되기를 바랍니다. "다른 종들과 함께 생태 공동체의 동등한 구성원이 되길" 함께 외치고 갑니다!

에코 페미니즘을 중심으로 여성과 동물의 권리가 돌봄의 윤리로 연결되어 있음(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초반에 언급해주신 카라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선생님의 강의를 인상깊게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젖소 등 동물의 인위적 출산 노동이 여성(암컷)을 수동적, 번식의 본능으로 전제하며 재생산을 통제한다는 해석에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 글에서도 적어주신 것처럼 가부장제 사회에서의 성차별이 종차별주의와 맥락이 같다는 관찰은, 나도 모르게 항상 불편했던 감정이 정확한 언어를 통해 해소된 느낌입니다. 감정에만 얽매이지 않고 해결을 위한 고민으로 이어나가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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