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네? 남성 섹슈얼리티요? 지금? 여기서요?

2023.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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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과 '남성성' 의제로 활동하는 페미니즘 단체입니다.
0화 <네? 남성 섹슈얼리티요? 지금? 여기서요?> by 남함페 이한
벌거 벗은 남자들 : 새로 쓰는 남성 섹슈얼리티 

• 이 프로젝트는 기존 남성 섹슈얼리티의 재탕이 아니라, 새로 쓰는 남성 섹슈얼리티다.

• 편견과 왜곡, 위계와 대상화로 가득한 남성 섹슈얼리티의 실체를 고발하고 비판해야 한다.

• 그 자리를 더 나은 질문과 고민을 통과한 남성 섹슈얼리티의 탐구로 채워야 한다.

• 그러기 위해서는 남성의 내부고발, 실제적인 경험, 고민과 성찰이 필요하다.

* 이 글에는 인터넷 용어 또는 혐오 표현을 직접 인용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나, 차별과 혐오의 재생산이 아닌 비판에 그 목적이 있으며, 가급적 사용을 지양하려 노력하였음을 미리 밝힙니다.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이하 남함페)은 남성과 남성성을 주요 의제로 활동하는 페미니즘 단체다. 남성연대에 균열을 내고 함께 페미니즘을 공부, 실천한다는 목표로 다양한 정체성의 사람들이 함께 활동하고 있다. 2017년 독서모임으로 시작하여 불법촬영 시청가해 규탄 캠페인과 성차별·성폭력 반대 집회, 페미니즘 인식 개선 교육, 남성성 연구, 서로 돌봄을 위한 네트워크 등 성평등을 실천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2022년, 남함페는 서울시 청년허브의 지원을 받아 남성의 섹슈얼리티를 탐구하기 위해 8명을 인터뷰 하고 자료집 남성 섹슈얼리티 현실 말하기: 지배적 남성성과 불화하는 개인의 경험을 중심으로 를 집필했다. 그 과정에서 가부장제하에 왜곡된 지배적 남성성과 성역할 고정관념이 만들어내는 현실과 불화하는 개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2023년, 작년의 연구 경험을 토대로 남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고민과 생각을 풀어내보고자 한다. 남함페 활동가 4인(이한, 정민, 연웅, 태환)으로 구성된 필진은 각각의 주제를 가지고 서로 대담을 진행한 후, 그 내용을 각자의 방식으로 정리하여 돌아가며 발신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기획된 남성 섹슈얼리티 탐구 주제를 살짝 소개하면 이런 내용들이다. 남성들이 말하는 ‘잘’하는 섹스는 무엇일까? 기나긴 시간? 엄청난 힘과 크기? 상대를 오르가즘에 이르게 하는 것? ‘정력’이라는 말로 많은 이야기들이 떠다니지만, 막상 그것이 정말 즐거운 섹스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나? 그렇게 치면, 사실상 그 어떤 남성도 싸구려 딜도보다 오래가지 않고 어떤 여성용 자위기구는 3분 안에 오르가즘에 이르게 한다는데 과연 그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남성이 있을까? 스포일러가 될 지 모르니 소개는 여기까지 하고 본격적인 연재에 앞서, 대체 왜 지금 남성의 섹슈얼리티를 이야기하는지, 지난 연구보고서에 담은 글을 프롤로그로 준비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애정 어린 비판을 바라며, 대망의 <벌거 벗은 남자들 : 새로 쓰는 남성 섹슈얼리티> 연재를 시작해보려 한다.



<네? 남성 섹슈얼리티요? 지금? 여기서요?>
_이한(남함페, 성평등 교육 활동가)

   남함페 활동은 느리고 미약하지만 그래도 조금씩 남성연대에 균열을 만들어내고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고 믿는다. 지금도 그 믿음에 변함은 없지만 우리의 활동에 비해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는 거대해져만 가는 듯 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계속해서 터져나오는 뉴스는 마치 이 폭력과 차별의 굴레가 끝이 없을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그 와중에도 동시대 페미니스트를 가장 경악하게 했던 일은 이른바 ‘N번방 사건’으로 불리는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일 것이다. 가해자는 각종 방법으로 여성을 협박하고 속여 그들의 성을 착취하는 등 각종 폭력을 일삼았다. 유례 없이 많은 남성들이 이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어 있었다. 연령과 직업, 지역 불문 수만 명에 달하는 남성들이 모니터 뒤, 익명에 숨어 성착취, 성폭력에 가담했다. 이제 더 이상 ‘일부’라 선 긋고 외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남성들은 조심스레 혀를 차며, 저것은 ‘너무’ 심했다고 말했으나, 그것은 뒤늦은 변명이고 반성 없는 회피였다. 가해자를 악마화 하는 것, 그것은 우리 사회 구조의 문제를 일부의 일탈로 축소하고 자신의 안온한 세상에 변화를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 표명일 뿐이다. 이 ‘너무 심한’ 사건은 어느 날 갑자기 진공 속에서 발생한 유별난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쌓아온 여성을 향한 멸시, 혐오, 폭력을 놀이처럼 치부하고 피해자를 탓해 온 역사가 만들어 낸 비극이다. 해당 사건 이전에도 우리 사회는 여성 연예인을 비롯한 수많은 여성의 불법 촬영물을 이른바 ‘국산 야동’이라 부르며 죄책감 없이 시청하고 공유하는 일이 만연했다. ‘웹하드 카르텔’이라는 말이 사용 될 정도로 수많은 업체가 불법으로 촬영, 유포 된 여성의 몸으로 부를 쌓았으며 수많은 보편의 남성들은 이를 통해 우정을 다지고 남성연대를 공고히 했다. 혹여나 이에 문제를 제기해도, 가해자에게는 ‘남자가 그럴 수도 있지’라는 면죄부를, 피해자에게는 ‘그러게 왜 그런 영상을 찍었냐’며 책임을 전가 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우리 사회의 왜곡되고 뒤틀린 욕망은 기어코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만들었다.

   이러한 문제가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제대로 질문하고 탐구해야 한다. 처벌 강화와 함께 이러한 문제가 반복되어 온 남성연대와 그 문화 전반에 대한 성찰과 개선을 위한 목소리, 행동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남함페는 가장 먼저, 남성들의 섹슈얼리티에 질문을 던졌다. ‘남성들의 성욕은 컨트롤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고 위태롭기에 여성들은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성폭력 문제를 바라보던 시선이다. 하지만 수많은 페미니스트가 성폭력 처벌법 개정 운동을 비롯한 활동으로 성폭력이 비단 성적인 욕구의 문제가 아닌, 젠더 권력에 기반한 폭력임을 이야기해 왔다. 이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의 가해자들은 사람과 또 그 사람을 대상으로 한 폭력을 자신의 성적 욕구를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켰다. 허나 그 안에 ‘성적 욕구’는 보이지 않고 그저 폭력과 지배욕, 여성을 향한 멸시와 혐오만 가득할 뿐이었다. 

   이들은 왜 폭력과 지배, 억압을 자신의 성적 욕구로 이야기하고 있는가? 그 왜곡된 성적 욕구, 남성성에 대한 갈망은 어디서 기인했는가? 남성들의 섹슈얼리티는 이미 흔하게 이야기되는 듯 하다. 어디에서나 음담패설하는 남성을 찾아볼 수 있으며, 게임과 영화, 만화 등 수많은 미디어에서 남성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있다. 허나 이것이 정말 남성들의 본능적이고 자연스러운 욕구인가? 남성은 항상 섹스와 성욕에 환장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실로 남자 학교에 강의를 하러 갈 때면, 복도에서부터 아무런 이유 없이 “섹스”를 외치는 남자 청소년을 수두룩하게 만날 수 있다. 허나 동시에 이상하게도 기혼 남성의 섹스는 ‘의무방어전’으로 이야기 되고 샤워를 하는 아내와 두려움에 떠는 남편은 흔한 유머 코드로 쓰인다. 일상에서 발기부전이나 조루 등 섹슈얼리티에 고민이 있어도 이를 토로하는 남성을 찾아보기는 어렵지만, ‘6.9’라는 한국남성의 성기 길이를 조롱하는 미러링 언어에는 누구보다도 발끈하며, ‘정력’과 조금이라도 상관이 있다고 하면 장어부터 복분자, 각종 이름 모를 곤충과 식물까지 씨가 마를 정도로 먹어 치운다. 

   남성들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말들은 실체 없이 떠돌고, 그 안에 남성들의 실제 고민과 경험, 즐거움에 대한 탐구보다는 능력주의와 자격지심,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하다. 이 남성들의 취약한 섹슈얼리티는 쉽게 왜곡되어 폭력과 결부된다. 허나 우리는 남성이 결코 동일한 집단이 아니며, 변화 불가능한 상수가 아닌, 시대의 변화에 공명하고 함께 운동하는 주체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남함페는 이들과 함께 고민하고 더 나은 질문을 제시하며 문제의식을 확장하는 것이 견고한 남성연대에 발생하고 있는 균열을 더 크게 만드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미흡하게나마 남성의 섹슈얼리티를 탐구하고자 했다. 많이 부족하지만 이 활동을 기록하는 게 변화를 만드는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본격적인 남성 섹슈얼리티 탐구 활동의 문을 연다.


[참고] 본 글은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이 작성하여 미디어 플랫폼 '얼룩소'에 동시 연재되고 있습니다.

얼룩소 0화 원문 주소 : https://alook.so/posts/70tmk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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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연재를 잘 읽어보면서 저도 함께 고민해보겠습니다!
'남성 연대'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그 바탕이 되는 여성 혐오적인 시각들을 정리한 대목이 인상깊었습니다. 결국 그 연대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를 정리하고, 공유하고, 해결하는 게 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앞으로 어떤 글이 올라오게 될 지 기대되네요.
성적 욕구와 폭력과 지배, 억압을 분리하는 게 첫걸음이 될 수 있겠네요. 이걸 분리해서 생각하도록 교육하지 못한 사회의 패착이라고도 생각됩니다.

저에게도 많은 공부가 될 것 같아요! 너무 유익한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심한’ 사건은 어느 날 갑자기 진공 속에서 발생한 유별난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쌓아온 여성을 향한 멸시, 혐오, 폭력을 놀이처럼 치부하고 피해자를 탓해 온 역사가 만들어 낸 비극“이라는 문장에 너무나 공감합니다!!!

너무너무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젠더 문제는 이후에 점점 더 큰 사회문제로 자리잡을 것 같아요. 이미 규정되어 버린 모습에서 벗어나기 힘듬에도, 주체적인 모습에 대한 고민을 하는 모습에 관심이 갑니다. 더 많은 여성과 남성들이 해당 모임에 관심을 가지면 좋겠어요~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특히 "우리는 남성이 결코 동일한 집단이 아니며, 변화 불가능한 상수가 아닌, 시대의 변화에 공명하고 함께 운동하는 주체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문장이 마음을 울립니다. 앞으로의 연재가 기대되네요. 좋은 기획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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