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빠띠온김에세계일주] 부엔 비비르(Buen Vivir)한 볼리비아 이야기

2023.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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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주민이 제일 좋아하는 와인을 샀다. 오늘도 잔치다. 동료 호르헤는 코카잎을 씹으며 코카 한 줌과 와인 반 잔을 마당에 뿌리며 ‘파차마마(Pachamama)’를 위하여, 라고 외친 뒤 이제 본인의 와인잔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은광산이 있는 포토시 광산에 갔다. 한창 작업중이던 광부를 위한 담배, 코카잎, 도수 95도의 술을 선물로 챙겨갔는데 갱도를 따라 가장 안쪽에 있는 ‘엘 티오(El tio)’에게 먼저 나누어주었다. 엘 티오(El Tio)와 파차마마를 위해서란다. 

볼리비아에서 가장 좋아했던 작가 마마니 마마니(MAMANI MAMANI)는 안데스 문화의 토속적인 요소를 담아 볼리비아와 볼리비아 원주민 아이마라족의 세계, 잉카 문명을 다채로운 색깔들로 표현해낸다. 마마니 마마니 세계관의 중심엔 당연하게도 파차마마가 있다. 

이쯤되면 안 궁금해질 수 없다. 대체 파차마마가 뭔데?


부엔 비비르(Buen Vivir)한 볼리비아 이야기

볼리비아엔 세상에서 가장 높은 수도가 있다. 세상의 거울이라는 유명한 관광지 ‘우유니 사막(Salar de Uyuni)도 있다. 그리고 세계 최초로 자연의 권리를 명문화한 어머니 지구법(Law on the Right of Mother Earth)이 있다! 

이미지. Roberto Mamani (1962, Bolivia) / "Pachamama"

이미지. Roberto Mamani (1962, Bolivia) / "Pachamama"

이미 눈치 채셨을 수도 있지만, 파차마마(Pachamama)는 원주민어로 어머니 지구를 뜻한다. 볼리비아는 다수의 국민이 가톨릭신자이지만 라틴 아메리카에서도 국민의 65%가 원주민인 원주민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로 원주민들의 토속 신앙과 종교가 공존한다. 

볼리비아 국민은 파차마마, 어머니 지구의 보호 아래 안식과 평화를 찾을 수 있음을 믿으며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고 균형을 이루는 삶의 방식과 철학을 이해한다. 

다시 돌아와 볼리비아는 파차마마, 어머니 지구를 위한 법을 만들었다. 2011년 최초로 ‘신헌법’에 자연과 생물의 법적 권리를 인정하는 ‘자연권’을 어머니 지구법으로 명문화한 것이 바로 그 법이다.  

볼리비아는 어머니 지구법을 통해 어머니 지구는 권리를 가진 생명체 시스템으로 보며, 자연과 인간의 공존과 생태적 균형, 모든 생명체의 안녕을 증진하기 위한 권리 존중이 필요함을 법으로 명시하고 관련 국가 정책을 어머니 지구의 권리를 중심으로 구현하고 실행하고있다.

볼리비아는 왜 어머니지구법을 제정하게 되었을까. 

그 질문을 거슬러 올라가면 많은 이유들 중에 부엔 비비르(Buen Vivir)가 있다. 

부엔 비비르(Buen Vivir)는 ‘좋은 삶’, ‘잘살기’, ‘참살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몇 세기 전 안데스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던 에콰도르의 케추아, 볼리비아의 아이마라 원주민들은 각자의 언어로 ‘충만한 삶’이라는 뜻을 담고 인간이 자연과 동등한 관계를 맺어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사는 것을 뜻하는 수막 카우사이(Sumak Kawsay), 수막 카마냐(Sumak Qamaña)에 원주민의 지식, 실천, 조직을 아울러 담았다. 그리고 이는 현대에 와서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는 ‘좋은 삶’, ‘잘살기’, ‘참살이’라는 뜻을 가진 부엔 비비르(Buen Vivir) 또는 비비르 비엔(Vivir Bien)로 번역되었다.

볼리비아는 다국민국가로 세계에서 공용어가 37개로 가장 많은 국가다. 볼리비아에 그만큼 다양한 원주민 공동체가 있지만 볼리비아 원주민은 가장 소외받는 취약 계층으로 이전까지 보호와 지원 정책이 거의 전무하다 싶이 하였다. 그러나 2000년대 세계 금융 위기와 맞물려 볼리비아의 상황이 점점 악화되며 무분별한 개발로 삶의 터전을 잃고 생계의 위협마저 느낀 원주민들은 국가에 보호와 지원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분노와  반발이 점점 거세어 지던 2006년, 볼리비아 국민의 변화 요구에 부응하듯 볼리비아 아이마라족이자 코카재배 농민이었던 에보 모랄레스(Evo Morales)가 최초의 원주민 대통령으로 집권하게 되었다.
(참고로 그는 2019년 부정선거로 사임하기 전까지 무려 13년동안 장기 집권을 하였다!) 

사진. 에보 모랄레스 전 대통령 (출처: 좌파 대통령 모랄레스, 군부 쿠데타로 쫓겨나다 ,노동자연대, 2019.11.12)

사진. 에보 모랄레스 전 대통령 (출처: 좌파 대통령 모랄레스, 군부 쿠데타로 쫓겨나다 ,노동자연대, 2019.11.12)

원주민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Evo Morales)와 소속 정당인 사회주의운동당(MAS, Movimiento al SocialismoInstrumento Por la Soberanía de los Pueblos)은 원주민 보호와 생태계 보전, 사회정의 실현을 고민했다. 볼리비아의 계속되는 정치, 사회적 불안정, 극심한 빈곤과 불평등의 역사를 회복하고 천연자원을 보유했지만 무분별한 자원 추출로 생태계가 파괴되고 지역주민의 터전이 위협받는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이 필요했다.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본인들의 삶의 방식과 지식, 철학인 부엔 비비르는 그런 의미에서 자연스럽게 국가 철학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다.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방법으로 오랜 전통을 상기했고 이어가기로 한 것이다. 

원주민의 삶의 방식과 철학을 담은 부엔 비비르를 국가와 국민을 위한 담론으로 채택하고. 볼리비아 중장기 국가 계획에 부엔 비비르를 명시하고 관련 정책들을 구현하고 실행했다. ‘어머니 지구법’은 그 계획의 일환으로 부엔비비르와 가장 관련 깊은 법이라고 할 수 있다.

부엔 비비르를 더 깊숙히 들여다보면 주요한 세가지 원칙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공동체주의’, ‘ 균형’, ‘상호보완’이다. 각각의 원칙들은 다음과 같다. 

‘공동체 주의’는 개인을 귀속시키는 것이 아닌 사회적 연대를 강조하며 전체 사회의 관점에서 개개인이 행복해지는 방향을 이야기 한다(구경모 외, 2016). 
‘균형’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 목가적인 생활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더 오래 살거나 더 많이 가지는 것이 중요한 것으로써의 성장이 아닌 균형을 추구하고 강조한다(Pablo Solon, 2018).
‘상호보완’은 우리 모두 절대로 같아질 수 없으며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존중하고, 오히려 각각의 차이와 개성으로 인한 다양성이 전체 균형을 이루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다(Pablo Solon, 2018).

부엔 비비르의 ‘공동체 주의’, ‘균형’, ‘상호보완’의 세가지 원칙을 통해 살펴보니 부엔 비비르야말로 기후재난, 생태계 파괴, 공동체 해체, 분열된 국제 사회가 현재 주목하고 논의와 실천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생태적 전환 담론이라는 생각이 든다. 

볼리비아는 파차마마의 보호 아래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이루어가기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실천을 이어가고 있고 부엔 비비르 자체를 생태적 전환 담론으로 바라보고 논의와 실천을 해나나가는 학자와 활동가들이 늘고있지만  아직 가야할 길이 멀어보인다. 

이 멋진 담론에 대해 무궁무진한 이야깃거리와 가능성이 숨겨져 있는데 말이다!

파차마마로 시작해 부엔 비비르로 글을 맺긴 하지만, 파차마마의 정체성으로 부엔 비비르. 즉, 좋은 삶, 참된 삶을 이루어나가는 것을 보면 모든 것은 어머니 지구 아래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부엔 비비르가 원주민 공동체 기반의 삶의 방식과 철학이라는 기원과 라틴아메리카 태생이라는 지역적 한계를 넘어 생태적 전환 담론으로써 더 활발한 논의와 실천을 이어가기를 바라며 지금 이 순간, 당장의 코카와 와인은 없지만 크게 외쳐본다. 

‘파차마마(Pachamama)’를 위하여!

[참고문헌]

  • 구경모 외. (2016). 「라틴아메리카 원주민의 어제와 오늘 : 라틴아메리카 원주민의 역사와 세계관」. 부산. 산지니
  • 파블로 솔론 외. (2018). 「다른 세상을 위한 7가지 대안」. 서울. 착한책가게.



여러분의 '좋은 삶', '참된 삶' 부엔 비비르(Buen Vivir)는 무엇인가요? 
'좋은' 삶과 '참된' 삶이 막연한 이야기 같기도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여러분에게도 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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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chamama를 위하여!

다른 문화권에 대한 정보를 보면 늘 흥미로운 것 같아요. 볼리비아가 공용어가 37개라는 사실은 처음 알았네요. 좋은 삶이라는 게 꼭 정해진 답이 있지 않다는 걸 또 느끼네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삶은 멈춰서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삶인 것 같아요.

‘공동체주의’, ‘ 균형’, ‘상호보완’이라는 중요한 키워드들이 '부엔 비비르'라는 단어로 묶이다니 정말 기분 좋은 단어로 느껴져요. '하쿠나마타타'를 처음 봤을 때 그런 느낌..! 우리에게 중요한 것들을 자주 상기하고, 외쳐야겠습니다.

저에게 있어 좋은 삶이란, 이런 좋은 것들을 일상 속에서 실현하고 이어가는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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