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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종목이건, 입시이건 학부모와 자녀 그리고 선생(코치)의 존중과 믿음이 필요한 듯 합니다. 우리 아이가 남들보다 뛰어나야만 된다는 의식이 배드 케미스트리를 만들 게 분명함을 이 기사에서 지적하고 있네요.

“더위와 학습 능력에 대한 연구에서 우리는 학기 중 평균 기온이 똑같이 1도 오를 때 흑인과 히스패닉 학생들은 두세 배 더 큰 타격을 받는다는 점을 밝혀냈다. 이들은 같은 도시에 살더라도 백인 학생에 비해 학교나 집에 작동되는 에어컨이 없을 가능성이 크다. 반면 집과 학교의 에어컨 작동률이 높은 동네에서는 더위가 학습 능력에 미치는 차이가 거의 없었다. 우리의 추산에 따르면 더운 날씨는 이미 인종 간 학업 성취도 차이에 5% 정도 기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시정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 차이는 앞으로 더욱 벌어질 것이다.”


이렇게 미묘하고 복합적인 격차와 사회적 비용을 고려했을 때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채 깊어지는 불평등이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큰 사건이어도 시간이 지날수록 잊혀지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가정하는 것처럼 주관적인 의견이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게 되었고
앞으로 어떤 주제든 깊이 합의하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과학과 숫자, 데이터.."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지식과 대화가 우월적인 권력을 갖게 된 현대 사회에서 많이 보이는 설득 언어이지만, 교묘하게 우리의 판단을 흐리는데도 사용되는 것 같아요.

"조사위원회가 구체적인 사실들을 밝혀냈음에도, 참사에 대해 종합적인 사회 구성원의 이해를 이끌어내는 데에 실패했다고 판단한다. "는 기사의 문장처럼,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학적인 검증을 넘어있는 것 같아요. 그럼, 무엇이 필요할까요?..

이런 말은 조심스럽지만,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음모론을 만들어내기도 했던 것 같아요. 객관성을 잃지 않으면서 데이터를 통해 균형있게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에도 연습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진상 규명’의 임무를 받은 조사위원회들은 정작 ‘어떤’ ‘진상’을 규명할 것인지에 대해 토론하고 합의하는 과정에는 소홀했다"

읽다가 가슴이 뜨끔하는 글이었어요. 계급사회는 어딜가나 있군요. 어디서든 차갑구요. 누구나 생존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막연히 바라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