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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교육보다 안전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4.16 세월호 참사로 인해 강화된 안전교육의 의미 4.16 세월호 참사 가족 협의회는 “철저한 진상규명, 강력한 책임자 처벌, 근본적이고 지속적인 참사 재발방지대책 수립,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끝까지 책임지는 대한민국의 건설”만이 304명의 죽음을 거룩한 희생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 말을 근거하여 생각해 보면, 주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안전교육‘은 안전사회로 가는 길목의 지극히 작은 부분일 뿐입니다. 이 사회가 안전한 사회로 가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은 이 밖에도 너무 많다고 생각됩니다. 왜 아이들이 안전교육을 받아야 하는 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기 전에, 막연한 사회적 공포감을 근거로 한 이런 교육만으로는 한계가 너무 분명해 보입니다. 반복되는 안전 교육에는 빠진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참사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또 이와 관련하여 하위 공무원 몇 명이 처벌을 받는 것으로 거의 대부분이 마무리되는 것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더불어 그야말로 피해자였고, 앞으로도 그런 위험에 놓여질 아이들을 대상한 ‘안전교육’도 꾸준히 반복되고 있습니다. 현재, 유치원과 초중고 학생은 학기당 51시간 이상, 교사는 연간 15시간 이상 안전교 육을 의무적으로 받도록 규정했습니다. 모든 초등학생은 의무적으로 생존 수영도 배우고 있습니다...김병욱 국민의미래 의원이 2022년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국에 수영장을 보유한 초등학교는 81곳으로 전체 학교(6157개) 대비 1.3%에 불과합니다. 생존 수영 이론 및 실습교육에 참가한 초등학생은 전체의 57%에 불과했고 물에서 실기교육을 이수한 학생은 전체의 2%뿐이었습니다. (경향신문 2024.4.1. 보도 자료) 이와같이 안전교육이 이론 위주의 반복적인 교육형태만으로 남아지게 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정말 보호해야 할 이들은 피해자인데, 누군가를 보호하려고, 은밀히 그리고 넌지시 ‘너희들이 스스로를 지키지 못한 점이 제일 큰 잘못이야’라고 반복하여 주문을 거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 반복 주문 행위는 앞으로도 쭉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세월호 사건 당시, 충분한 탈출 가능시간이 있었음에도(약 2시간) 승객들은 "움직이면 위험하니 가만히 있으라"는 무책임한 방송을 듣고 서서히 죽어갔습니다. 이와같이 정작 중요한 안전법칙을 무시한 체, 각자도생의 방법만을 가르치는 안전교육은 우리에게 여전히 ‘너희들이 잘못한 것이다. 그것만을 기억해라, 오로지 너희들이 잘못한 것이다. 누구도 책임질 사람은 없다’는 주문을 외우게 하는 것입니다. 세월호 사건은 인명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던 문제가 리더들의 판단착오와 책임감 부재로 만들어진 분명한 인재(人災)입니다. 사고 당시 해경에 구조요청을 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시기적절한 유효 조치가 없었다는 점, 선장 이준석 등 선박직 승무원들이 승객들을 뒤로 하고 1차 탈출했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현재와 같은 반복적인 안전교육만으로는 세월호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중요한 점을 놓치게 된다고 봅니다. 심지어, 세월호 선원들이 침몰사고 직전 자신들만 아는 통로를 이용해 배에서 탈출했다는 정황이 드러났고, 당시 청와대에서는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의 명시적 규정에 따라 국가위기상황에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했어야 했다는 점도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 아이들에게 제공되는 ‘안전교육’은 각자 도생을 근본으로 하는 재난 탈출 방법을 배우게 하는 것인데, 이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일까? 크게 2가지 의문이 듭니다. 하나는 정작 배워야 할 사람은 따로 있다는 점, 또, 아이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배워야 할 게 이것 말고 또 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를테면 사회구조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이들이 몰래 도망하는 형국에서 그들의 무책임한 행동에 대해서 항의하는 일이 진정한 용기이며,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이런 불의한 일을 대면할 때에 그렇게 많은 용기를 갖지 않은 채로도 당당히 담담히 ‘아니다’, ‘그건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라는 말이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도록 격려하는 일이 더 우선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안전교육”보다 더 중요한 “안전사회를 만드는 일”에 진심인 분들의 소리에 답이 있습니다. (사) 4.16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의 정식 명칭은 “(사) 4.16 세월호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 가족협의회”입니다. 그분들의 목표는 이런 겁니다. “다시는 국가가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포기하는 일이 없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만 내 아이에게 덜 부끄럽고 덜 미안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반복하여 안전교육을 실시함과 동시에, 진정으로 이 땅에 안전사회가 이루어지길 바라는 이 분들의 소리를 정확히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정기적으로 꼭 주어지길 기대합니다. 그래야만 안전교육이 반복 구호로 전락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생생한 소리를 전달받을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안전교육을 받는 아이들에게 이 사회가 아직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함께 일깨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분들의 이야기 속 어디에도 “우리 아이가 미처 안전교육을 잘 받았더라면...”, 혹은 “우리 아이가 인공호흡법을 미리 잘 알았더라면...”이런 말은 찾을 수가 없습니다. 꿈같은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아주 잠시만이라도 그 우리가 늘상 해 오고 있는 안전교육 시작 전에 “진상규명은 어디까지 되었으며, 책임자는 어느 정도 처벌을 받았고, 참사 이후로 국가는 근본적이고 지속적으로 어떤 대책을 수립하여 시행하고 있는지” 에 대한 설명이 꼭 주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미완이면, 미완인 채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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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기억] 개인의 아픔에서 공동체의 기억으로, - 세월호 참사를 애도하는 한 시민의 상황에서
안녕하십니까, 이 글을 적으면서 10년 전의 기억을 떠올려 봅니다. 그때 저는 대학교 학생으로서 대학 생활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학과 공부를 마치고 레포트를 준비하며 여러 시험과 토론, 논술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대학 생활을 하는 시점에 수업을 듣고 나오는데 저의 스마트폰에서 지속적인 재난 문자 알림이 오더라고요. 지금은 관련 지역만 뜨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전국적으로 떴으니까요. 그 당일에는 저도 잘 몰랐고, 수업 끝나고 쉬는 시간이라 뉴스 속보를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고 확인을 하려는데 굉장히 슬픈 소식들이 연이어 올라오더라고요. 그 시점쯤 됐을 때 저 역시 상황을 인지하고 제 몸과 마음이 반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저시력 시각장애인이었고, 진행성으로 인해 그때 당시에 막 중증 장애로 진행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장애인 당사자로서 이 사건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대한민국 사회는 중증장애인의 재난대피에 대해 무관심한 상황입니다. 세월호 사건을 통해 한국 사회가 얼마나 재난에 취약한지 더 많이 느끼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당시 수학여행을 아이들과 함께 가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이동하여 참사를 피했다는 그 학교 장애 학생분들의 이야기를 어느 경로를 통해 알고 있습니다. 장애 학생들의 그 마음은 어떨까요?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일단 자신들이 이 상황에서 자신들이 배제됨으로 인하여 안전을 확보했다는 것으로 인해 희생자들을 포함해 그곳에 갔던 수많은 사람에게 대한 부채감과 죄책감으로 시달리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저는 중증의 시각장애인 당사자로서 그 학생들의 감정을 공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코로나 재난 시기 거주 시설에서 집단생활로 인해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들이 집단으로 사망하는 일이 여러 지역에서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직 대한민국 사회는 매우 위험하고 장애 당사자가 스스로 이야기하고 해야만 그나마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지는 상황입니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면서 모든 이의 인권이 보편적으로 지켜지면서 안전하여지는 사회, 그리고 가장 약하고 소수인 사람들이 존중받는 사회를 말하며 중증의 최중증 복합 장애인에게 여러 이유로 이 한국 사회 자체가 여러 차례 침몰해 가는 선박과 같은 재난사회였었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안전을 공감의 언어로 이야기하며 세월호와 관련된 주변인들의 아픔들이 그 심리적이고 사회적인 정신적, 신체적 고통이 잘 보듬어지기를 바라며 이 글을 보냅니다. 기억하겠습니다. 이야기하겠습니다.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이 구호를 다시 한번 모든 사회문제에 대입해 봅니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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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 일본에 당당하게 사과를 요구하려면
일본에 당당하게 사과를 요구하려면 (2024-04-15) 이동석 | 재일동포 지난해 10월29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필자가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과 함께 일본에 있는 조선학교 고교무상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김창섭 제공 나는 1952년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동포 2세다. 일본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18살에 조선 사람임을 자각하게 됐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조선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많은 고민 끝에 재일동포 동급생과 일본학교 내에 ‘조선문화연구회’를 만들고 그때까지 썼던 일본 이름을 버리고 조선 사람으로 살기로 결심했다. 조선문화연구회에서 조선 고등학교 학생하고 교류하며 일본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포 학생들의 모임에도 참가했다. 그 과정에서 조선 사람으로 살려면 우리말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 한국 유학을 결심했다. 1971년 처음으로 서울에 왔고, 1973년 한국외국어대학 프랑스어과에 입학했다. 1975년 11월 보안사 요원이 하숙집에 와서 영장 없이 나를 연행했다. 40일간 보안사에 감금된 채 고문과 협박으로 자백을 강요당하고 나는 ‘간첩’이 됐다. 우리말과 우리 역사를 배우고 싶어서 가입했던 조선문화연구회에서 총련계 사람을 만나 이야기했다는 게 ‘간첩’이 된 주요 혐의였다. 재일동포 17명이 구속된 이른바 ‘재일교포 학원침투 간첩단 사건’이다. 나는 5년형을 받아 대전교도소에서 옥살이를 하게 됐다. 그러한 나를 지원해주고 격려해준 건 일본 사람들이 조직한 ‘구원회’였다. 구원회 사람은 재판을 방청하고 격려하기 위해 서울에 몇번이나 왔고 대전에도 여러 차례 면회를 왔다. 광고 나는 구원회가 없었더라면 건강한 정신으로 못 있었을 것이다. 내가 석방되어 1981년 일본에 돌아온 후에도 전두환 독재정권하에서 재일동포 간첩 사건이 많이 일어났다. 구속된 재일동포의 가족을 만나서 격려하고 구원회와 함께 지원 운동을 했다. 내가 많은 사람의 지원을 받았으니 이번에는 내가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동운동에 관심이 있던 나는 한국의 양심수가 거의 석방된 1990년대 후반에 ‘재일고려노동자연맹’(고려노련)에 가입했다. 고려노련은 우리나라에 뿌리가 있는 재일동포라면 남북 관계없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노동조합이었다. 그 조합에서 재일동포에 대한 노동차별 개선, 한국 노동자 지원과 교류를 위해 활동했다. 비록 감시를 받긴 했지만 2000년대 들어 한국에 올 수 있게 됐고, 일본과 한국 노동자의 교류 과정에서 통역을 맡아 여러 번 한국에 왔다. 광고 광고 2005년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생겼으나 일본에 사는 우리가 그 존재를 알게 된 건 한참 후였다. 국가권력으로부터 고문을 받고 교도소 생활을 오래 한 재일한국인 양심수는 국가기관인 진실화해위를 믿지 못했고 처음에는 진상규명 신청을 망설이는 분위기였다. 나도 그랬으나 진실화해위는 한국의 민주화 투쟁의 성과라고 생각해서 2011년에 진상규명을 신청했다. 그 뒤 법원이 재심에서 ‘고문으로 강요한 자백은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해 2015년 무죄가 확정되었고 배상금도 받았다. 배상금은 국가 잘못을 인정하기는 하지만 돈을 줄 테니 더는 국가 책임을 묻지 말라는 것이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대학에 재입학하기로 했다. 2017년 외국어대학에 들어가 나보다 젊은 교수님한테서 배우면서 2020년 2월에 졸업했다. 대학 생활 동안 좋은 한국 사람을 많이 알게 되어 졸업 후에도 한국에서 살고 싶어졌다. 4년이 지난 지금도 서울에서 살면서 재일한국인 양심수의 재심을 지원하고, 한국 내 난민 문제나 외국인 노동자 문제,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 등에 관심이 있어 모임이나 집회에 참가하고 있다. 한국은 일본 식민지하의 아픔을 경험했고, 해방 후 4·3 사건으로 많은 난민이 생겨 일본으로 건너갔으며, 한국인도 노동자로 외국에 일하러 간 역사가 있다. 한국에 있는 외국인이나 난민을 대하는 한국 정부나 국민의 태도를 보면 너무 안타깝다. 한국이 국가의 잘못을 인정해 수정하고, 외국인이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권을 보장해야만 ‘위안부’나 ‘징용공(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일본의 사과를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다. 또 재일동포 차별을 없애라고 외칠 수 있다. 내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연대 활동을 하는 이유는 잘못한 역사는 고쳐야 하고, 좋은 사회를 만들 책임이 한국인으로 사는 내게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나는 언제나 약자의 입장에 서서 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http://hcroh.org/support/ '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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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정] 커먼즈는 어떻게 좌절되는가?
커먼즈는 어떻게 좌절되는가? 커먼즈의 정의 – 자원을 장기간 돌보기 위한 사회 체계로서, 공유된 가치들과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보존한다.– 자기조직된 체계로서, 이 체계에 의해서 공동체들이 자원을 (고갈될 수 있는 자원과 고갈되지 않는 자원 공히) 시장이나 국가에 의존하지 않거나 최소로 의존하며 관리한다.– 우리가 함께 물려받거나 창출한 부를 가리키는데, 이 부를 우리는 감소되지 않은 채로 혹은 더 증가된 채로 우리의 자식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우리의 집단적 부에는 자연의 선물들, 사회 기반시설들, 문화 생산물들, 전통들, 지식이 포함된다.– 경제(그리고 삶!)의 부문으로서, 대체로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는 방식으로 가치를 창출한다. 이 방식은 종종 시장/국가에 의해서 위험에 처하기도 한다.- 커먼즈의 총목록이란 없다. 어떤 공동체가 자원을 집단적인 방식으로, 균등한 접근 및 사용 그리고 지속 가능성에 특별히 초점을 두어 관리하고 싶다고 결정할 때마다 커먼즈가 생기기 때문이다.- 커먼즈는 자원이 아니다. 자원 + 윤곽이 뚜렷한 공동체 + 필요한 자원을 관리하기 위해 그 공동체가 고안해내는 프로토콜들, 가치들, 규범들이다. 대기, 대양, 유전자 지식, 생물다양성과 같은 많은 자원이 커먼즈로서 관리될 절실한 필요가 있다. 출처 : 커먼즈란 무엇인가, 커먼즈 번역 네트워크 http://commonstrans.net/?p=24 먼저 나의 연구는 문학 / 다큐멘터리 분야 창작을 위한 것임을 밝힌다. 일반적인 학계 연구에 포함되지 않을 내용이 다수 있지만나라는 개인에게 중요한 논의들을 포함시키고자 한다. 민족지학 분석을 통해 분석한 나라는 유령 존재 부모님과 어린 시절의 나는 1993년까지 서울 금호동에 살았다. 당시 금호동은 재개발 열풍으로 자신의 삶과 공동체가 파괴된 철거민들의 투쟁이 한창이었다. 우리 가족은 철거민이었는가. 나는 그 질문에 답하지 못했었다. 부모님은 서울에서 10여곳의 집을 돌아다녔고, 나 또한 6년간 세 곳의 집에 살았으나 마지막 집은 무너지지 않았고, 부모님은 단순히 경제적으로 더 나은 삶을 꿈꾸며 부산으로 이사했다. 그러나 용역이 직접 집을 부수지 않았어도 내가 태어난 곳이 세상에서 사라졌음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나의 성장과정은 부모님의 빈곤과 거기서 느껴지는 수치심으로 억눌려 있었다. 계급이라는 이름으로 나의 가족을 해석하지 못했고, 공부를 통해 부산을 벗어나는 것을 희망으로 삼았다. 가족과 상관없는 단독자가 되기를 간절히 원했다. 내가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 건 고등학교 때였는데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직업에 대한 책을 보며 그들이 세상을 유랑하는 자라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나는 집과 가족을 떠나 어딘가에 발을 딛지 않고 유령처럼 떠돌기를 바랐던 것 같다. 공동체에 대한 관심 스무살에 나는 서울로 돌아왔고 공동체를 꿈꿨다. 아직 유령이 될 준비가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내가 낭만적인 공동체로 생각했던 것들은 ‘내가 나 본연의 모습으로 받아들여지는 장소’를 의미했다. 배제되지 않음을 찾아다녔고, 우연히 그런 곳을 만났을 때의 편안함과 기쁨이 컸다. 그러나 모든 현실의 공동체가 그렇듯 그것들은 시간의 경과에 따라 무너지고 변화하였다. 공동체는 공간 위에서 세워졌고, 공간은 늘 영원하지 않다. 이러한 경험에서 느꼈던 것은 첫번째, 자본주의의 논리는 반드시 공간과 공동체의 배제를 만들고 소멸을 이끈다는 것, 두번째, 낭시가 말했듯 공동체를 위한 인위적인 노력도 독재와 공동체의 파괴로 흐른다는 것, 세번째, 인간이 존재론적으로 공동체인 것과 현실의 공동체를 만드는 문제는 분리되어 있다는 것 등이 있겠다. 즉, 공동체에 속하고 싶은 혹은 만들고 싶은 내 노력은 반드시 실패할 일인데 그럼에도 나는 그걸 늘 지금도 마음 속 깊이 원하고 있다. 이 모순이 내 안에 굴러다닌다. 내가 연구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건 이러한 스스로에 대한 민족지학적 반성을 통해서였고, 그러한 생각과 내가 처하고 있는 세계에 대한 분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창작자/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고 연구는 이것들을 돕기 위한 수단으로 파악했다. 내가 아직도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이러한 연구와 학습 과정이 어떻게 창작으로 연결될 수 있을지에 대한 것이다. 공간과 공동체, 커먼즈 지난 3년간 주거관련 사회적 기업에 다니며 공적 재원을 통한 주거개발, 기획 업무를 하였다. 주거복지가 필요한 계층을 위해 제안서를 작성하고 공유공간을 설계했다. 별개로 공유부엌이나 서점을 직접 운영했으며, 스쾃과 커먼즈 활동을 여러 경로로 접했다. 집 앞 산책로에서 빈 땅을 발견했고 (청량리동 950) 불온하고 무용한 이 땅이 왜 나의 마음에 들어왔을까 고민했다. 그건 빈 땅이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으나 아직 발현되지 않은 - 자본주의적인 의미에서도 아니면 공동체적으로도 - 곳이었으며 그 덕분에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상상하게 만드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곳을 지배하는 어떠한 종류의 관습과 규칙이 존재하지 않아 아무것도 배제되지 않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존 버거의 말에 의하면 그 땅은 ‘부재의 땅’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혹은 ‘도래하는 땅’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과거 자료에서 제기동의 재개발 이주민을 이 공간에 일종의 수납하려던 시도를 발견하기도 했다. 그 땅을 관찰하며 아무런 용도로도 사용되지 않는 이 빈 땅을 시민의 공유지/커먼즈로 활용할 수는 없을까 생각했다. 학습을 통해 커먼즈가 단순히 자원이 아니라 공동의 것을 만드는 활동과 과정인 커머닝을 포함하는 것이라는 개념이 내게 그나마 숨통을 틔게 해준 것 같다. 자원으로 접근했을 때 어떤 땅은 소유권이 명확하고 소유자의 자본 혹은 공적인 목표를 충족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것이 적합하다. 그러나 어떤 땅이 커머닝의 과정, 공유화의 과정을 거친다면 시민의 의견이 반영되고 공적인 목표에도 시민의 필요가 반영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나의 생각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대한민국에서 그러한 시도가 잘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경의선, 배다리, 송현동 땅, 빈집 등 커먼즈 시도가 있었으나 결국 오래 지속하지는 못했다. 나는 이러한 커먼즈/커머닝이 현재 우리에게 쉽지 않은 문제일 때 그 이유가 무엇일지, 장애물이 무엇일지를 연구과정을 통해 알아보고 싶었다. 질문들 이러한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나에게 남은 질문들을 되새겨보자. 그동안 시도되었던 수많은 공동체들, 그들은 어떻게 시작되어 어떻게 소멸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스쾃과 커먼즈는 임시적인 공동체를 생성했지만 소멸이 예정된 그것들이 결국 남긴 건 무엇일까. 커먼즈 과정을 어렵게 만드는 난제들은 무엇인가. 어떤 종류의 자원이 필요하고 어떤 과정이 필요한가. 의사결정 과정, 정보의 부족, 자본주의적 압력 등 여러 과정을 고민해보자. 특히 나에게는 해외와 비교하여 우리나라의 재산권에 대한 보호가 과도하고 커먼즈에 필요한 시민적 합의를 만드는데 어려움이 있지 않나라는 가설을 세워본다. 이를 위해 필요한 학습지도를 만들어보았다. 연구를 위한 유력한 학문 계열로 인문지리학 / 공간 철학 / 도시사회학 / 도시정책학 등을 탐구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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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정] 분산에너지 활성화, 지역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본 게시물은 <연구원정 부트캠프>에 참여 중인 대원님의 연구과정을 정리한 글 입니다. 분산에너지란?   분산에너지는 에너지가 사용되는 지역 인근에서 생산되고 소비되는 에너지를 의미한다. 법적으로는 전기사업법 제2조제21호에서는 ‘전력수요의 지역 인근에 설치하여 송전선로의 건설을 최소화할 수 있는 (1)40MW 이하의 모든 발전 설비 또는 (2) 500mw 이하의 집단에너지, 구역전기, 자가용 발전설비 ’라고 정의하고 있다. 법적 정의에서 알 수 있듯이 발전설비 뿐 아니라 ESS 등 수요지 인근에서 에너지 생산, 저장, 잉여 전력 해소 등에 기여할 수 있는 다양한 자원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분산에너지가 주목받고 있는 이유를 대략적으로 우선 기존에는 대규모 발전소에서 에너지를 생산한 후 실제 사용되는 지역까지 끌어오기 위해 장거리 송전망을 건설해야 했다. 그러나 밀양 송전탑 건설 사례 등과 같이 지역 내 대규모 발전원과 송전탑이 건설되는 것을 우려하는 주민들의 반대로 사회적 갈등이 있었다. 전력을 소비하는 곳 인근에서 전력을 생산하게 되면 대규모 송전시설을 신규로 확충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한편, 탄소중립 이행을 위해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활성화되고 있으며, 전력 수요량이 증가하고 있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필수적이지만 신재생에너지는 기상 여건이나 계절의 영향에 따라 생산량이 불규칙한 간헐성이 있어, 이에 대응하기 위한 전력 시스템 변경이 필요하다.   분산에너지 확산, 지자체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을까?   그간 분산에너지와 관련한 논의는 관련 기술 개발과 전국 단위에서의 전력시장 구조 개편을 중심으로 주로 이루어져 왔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실제로 에너지를 생산하고 사용하게 되는 지역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많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분산에너지 활성화를 위해서는 지역에 있는 자워을 활용하고, 주민 수용성을 확보하는 등 지역 차원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그리고 최근에는 분산에너지 활용을 통해 지역 경제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는 논의도 있는 만큼 지역의 주도적인 역할이 중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다만 지자체가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시작되는 단계이다. https://www.wowtv.co.kr/NewsCe...   이에 국내 관련 정책 현황과 함께 먼저 분산에너지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해외 정책 사례 등을 파악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분산에너지 활성화를 위한 지자체 차원의 정책 대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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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정] 교육-노동시장 넘나들기: 선취업 후진학자의 생애경로와 딜레마
*본 게시물은 <연구원정 부트캠프>에 참여 중인 대원님의 연구과정을 정리한 글입니다. 1. 들어가며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선택을 합니다. 매일의 일상 속 작고 사소해보이는 선택은 물론이고, 진학이나 직업 선택, 결혼과 같은 커다란 결정을 내리면서 살아가죠. 만일 여러분이 열여섯살이 되던 해 내렸던 한번의 선택이 향후 당신의 삶의 경로를 크게 좌우한다면 어떨까요? 더 나아가 그 선택에 예상치 못한 차별과 배제가 내재되어 있다면 말이죠. 여기, 열여섯의 나이에 특성화고등학교로 진학을 선택했던 청년들이 있습니다. 대부분은 경제적 어려움에 대응하는 전략으로 충분히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진학을 선택했지만, 특성화고 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의 선택지는 좁고 얕기만 합니다. 특성화고 학생들은 교육 체계 안에서 ‘일반적인’ 교육과정과 분리돼 배제와 소외를 경험할 뿐 아니라, 코로나 19의 여파로 무색해져버린 현장실습과 취업난, 진학난이라는 삼중고를 겪고 있습니다. 특성화고는 학생 개인의 소질과 적성에 맞는 교육을 통해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고 좋은 일자리에 취업할 수 있도록 지원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고등학교*를 일컫습니다. 그러나 공고한 학력주의 사회 속, 특성화고는 단순 고등학교라는 일반적 특성이 아니라, 특성화고 출신이라는 일종의 사회적 정체성을 덧씌우는 조건으로 작동합니다. 사회 진출 이후에도, 이 청년들에게 따라붙는 이름표가 있습니다. 바로 ‘고졸’입니다. ‘대학에 못 간 사람’, ‘일반계 고등학교에 갈 내신 실력에 못 미쳐 특성화고를 선택한 사람’이라는 편견도 함께 따라오곤 하죠. 결국 청년들은 일터에서 ‘20대 초반에 대학 졸업장을 가져야만 나머지 인생이 좌우되는 현실’, ‘대학 학력이 없으면 능력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사회에서 피부로 느끼며, (울며 겨자먹기로, 또는 전략적으로) 대학 진학을 결정하게 됩니다. 그렇게 선취업 후진학자가 되는 것이죠. 그러나 선취업 후진학자로 살아가기란 만만치 않습니다. 우리 사회는 생애경로의 다양성에 약하기 때문입니다. 고졸 청년은 마치 성공하면 안 된다는 듯이 ‘고졸 성공신화’라는 이름으로 호명되곤 합니다. 대학 재학생들에게는 '왜 대학에 갔느냐'고 묻지 않으면서, 대한 비진학 청년과 선취업 후진학자에게는 ‘왜 (그동안) 대학에 안 갔느냐’고 묻습니다. 선취업 후진학 제도의 일환으로 추진된 평생교육단과대 사업에 대해, 이화여대, 동국대에서는 ‘학위장사’라며 학생들이 반대 시위를 벌였던 적도 있죠. 에브리타임(대학교 커뮤니티)에서는 ‘야간대’, ‘미융대(미래융합대)’ 애들과 우리(주간대)는 입갤(대학 입학 점수)부터가 다르다며 댓글마다 분리정책(Apartheid)이 펼쳐지는 모습도 심심찮게 보여집니다. 선취업 후진학 ‘제도’는 있지만, 여전히 이 제도 속에서 살아가기(go through)를 선택한 ‘사람’들의 ‘삶’은 녹록치 않습니다. 대학교 역시 아직은 비전통적 학습자에 대해 그리 친화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선취업 후진학 전형을 운영하는 대학은 여전히 소수이고, 전공도, 교수진도 매우 한정적입니다. '가장 보통의 대학'을 찾아 대학에 진학했지만, 여전히 대학에서는 다른 형태의 차별을 경험하게 됩니다. 대학 비진학 청년일 때에는 대학 진학 청년들에 비해 소수라는 이유로, 선취업 후진학자가 되어서는 일반적인 대학생에 비해 소수라는 이유로 관심과 담론에서 배제되어 왔던 것이죠.  그래서 제가 하고자 하는 연구는 선취업 후진학 제도에 대한 정책 타당성 연구가 아니라, 선취업 후진학자의 삶에 대한 경험적 연구입니다. 교육과 노동시장이라는 두 지대를 끊임없이 넘나드는 이 청년들의 삶에는 어떤 딜레마(모순)가 놓여있을까요. 이 딜레마는 결코 ‘개인의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네 교육이 처한 사회적 딜레마 그 자체라는 사실을 주지하면서 말이죠. * 본 연구에서 '선취업 후진학자'란 a. 특성화고등학교 또는 마이스터고등학교를 졸업자로서 b. 산업체에서 3년 이상 근무한 자가c. 지원할 수 있는 대학 특별전형인 '선취업 후진학 전형', '재직자 전형'을 통해 후학습을 경험한 성인학습자로 정의합니다.[문제 깊이읽기](Youtube) 씨리얼. 특성화고 학생들이 정부에 따질 수밖에 없는 이유. 2020. 11. 28. https://www.youtube.com/watch?... (Youtube) 씨리얼. 25년차 특성화고 선생님이 말하는 특성화고의 실체. 2020. 12. 11. https://www.youtube.com/watch?...(Aritcle) [특성화고, 교육과 노동의 중간 지대에서-3]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라. 2021.11.07. https://chunchu.yonsei.ac.kr/n...(Aritcle) 갈 길을 잃은 특성화 고졸 취업생들. 2019.12.18. https://www.kueherald.co.kr/ne... [가설 들여다보기] 2. 연구 목적 그리하여, 제가 하고자 하는 연구는 비전통적 성인학습자인 선취업 후진학자의 삶과 학습경험을 이해함으로써, 생애경로로서 선취업 후진학의 의미와 모순점을 포착하는 것입니다.   ‘생애경로’가 사회구조와 개인의 선택 속에서 교차적으로 만들어지는 시간의 연속체이듯이, 학습생애경로 역시 학습자 개개인의 자율적 선택과 학습자가 놓여있는 거시적 맥락(교육정책과 제도, 학습문화 및 사회문화적 이데올로기 등) 간의 상호작용으로 구성됩니다. 선취업 후진학자의 학습경험과 학습경로는 개인적 학습의 의미를 넘어서서, 체계화, 조직화된 교육정책과 상호작용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구성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취업 후진학자가 고등학교에서, 일터에서, 나아가 부푼 꿈을 가득 안고 진학한 대학에서 마주한  이중구속적 상황이 있다면, 그건 곧 사회구조와 교육제도 안에 담긴 모순율일 것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연구는 특성화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선취업하고, 재직자 전형을 경유하여 고등교육체제로 이행(후진학)한 성인을 연구참여자로 삼으며, 이들의 학습경험에 관한 질적연구를 수행할 계획입니다. 본 연구가 질적연구를 통해 선취업 후진학자의 학습경로와 학습경험이라는 미시적 단위를 포착한다고 해서, 이것이 교육 체제와 선취업 후진학 제도라는 구조적·거시적 단위를 도외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궁극적으로 선취업 후진학자가 살아온 생애경로와 지닌 학습경험의 틀이 제도적 맥락 위에서 탄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치·경제적, 사회·문화적 필요에 의한 선취업 후진학 제도의 도입은 선취업 후진학이라는 학습생애경로를 배태했고, 이는 개인에게 사회문화적으로 장려 혹은 배제되어왔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본 연구는 먼저 선취업 후진학 경로를 살아내는 선취업 후진학자의 학습경험과 맥락을 이해하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교육 제도와 학습자의 경험이 교차되는 지점에서의 ‘사회적 모순’을 포착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본 연구에서 다루고자 하는 구체적인 연구문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3. 연구 문제 첫째, 선취업 후진학자는 ‘어떻게’, 그리고 ‘왜’ 선취업 후진학이라는 학습경로에 진입하게 되는가?  이 질문은 선취업 후진학자가 자신의 학습생애경로를 선택하게 된 계기와 맥락, 그를 통해 실현하고자 했던 삶의 특정한 목적을 이해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이 질문은 ① 특성화고등학교로의 이행단계 ② 선취업으로의 이행단계 ③ 후진학으로의 이행단계의 맥락을 시계열적으로 구분하여 묻고자 합니다. 이 질문의 해석과정에서 연구자는 연구참여자가 선취업 후진학이라는 학습경로를 어떻게 의미화하고, 어떠한 목적을 위해 이행하고 있는가에 주목합니다.  둘째, 선취업 후진학자들이 마주하는 학습경로상의 모순과 학습경험의 딜레마는 무엇인가? 선취업 후진학 경로 안에서 경험한 학습경험의 특징과 어려움을 구조화합니다.  셋째, 선취업 후진학자들의 학습경험과 학습경로 속에 내재한 모순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결론적으로 선취업 후진학자의 학습경험이 작동하고 있는 구조성, ‘선취업 후진학’ 구조의 의미와 모순점을 비판적으로 고찰할 계획입니다. 
교육 공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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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정] 시설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들어가며 해당 시설에서 근무한 진정인은 시설 관계자들이 장애인들이 대소변을 가리지 못한다며 피해자의 허리를 이동식 변기에 끈으로 묶어 변기에서 움직일 수 없도록 고정하는 등 인권침해를 했다며 인권위에 진정했다. 진정인은 시설에서 피해자들이 다른 피해자의 대소변 처리와 변기통 세척, 화장실 청소, 식품창고 청소, 식사 준비를 하도록 노동을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또 하루 2회 예배를 할 것과 헌금도 강요했다고 인권위에 밝혔다. 시설 종사자와 시설장은 인권위에 “일부 피해자를 화장실에 묶어놓거나 방치한 것은 시설 운영인력 부족 때문에 이용자의 청결을 위해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주장했다. 또 주방일, 화장실 청소 등 노동 부과한 것은 이용자의 자립 훈련을 위해서였다고 답변했다. 예배에 참석하고 헌금을 내도록 한 것도 “이용자에게 용돈으로 5000원씩 나누어 주면 이용자들이 헌금을 낸 것으로 강요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대소변 못 가린다고 변기에 묶었다… 장애인시설, 아직도 이런 일. 한겨례. (2022년 9월 2일). 저에게는 발달장애인 동생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미래에 동생이 성인이 되고, 할머니가 되었을 때 어떤 형태로 어떻게 살게 될까에 대해서 많이 그려보고 고민을 해오곤 했습니다. 어렸을 당시에는 위와 같은 장애인 시설의 인권침해 사례들을 종종 마주하면서도 좋은 시설이 있다고 생각 혹은 믿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장애인 시설의 운영자, 종사자가 나쁜 사람이라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고 생각하고는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계속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습니다. ‘나쁜 개인’이라고 생각되는 이들이 법적인 처벌을 받고, 교육을 받고, 문제가 되었던 시설이 폐쇄가 되었음에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시설에도 비슷한 양상의 문제가 지금까지 계속 반복되어 오는 것을 목격하며 사람의 문제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대학교에서 장애학 강의를 듣게 들으면서 사회로부터 분리되어 시설에 산다는 사실 자체가 어색한 감각으로 다가왔습니다.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기회를 타인이 박탈하고 획일화되고 집단적인 삶을 강요한다는 시작점에서부터 “좋은” 시설은 존재할 수 없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지금까지도 시설 입소를 선택하는 장애인들이 있는지, 장애인에게 탈시설이 쉽게 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지에 대해서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탈시설과 관련된 논의 주제와 관련된 논의를 찾아보면서, ‘탈시설’이라는 짧고 간단한 세 단어 안에 너무 광범위한 영역과 이야기들이 포함되어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결국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 수 없으니 시설 입소 (혹은 탈시설 포기)를 결정하게 된 것인데, 그렇다면 현재 장애인이 대한민국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에 어떤 기반이 부족하고 어떤 것들이 마련되어야할지에 대한 연구 문제를 제기하게 되었습니다. 1. 주거  장애인 시설에서 나와 당장 살 공간을 구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주거와 관련된 문제로는 직접 주택을 마련할 때 비용적인 부담이 있다는 점입니다. 서울시의 1인 가구 장애인에 대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자신의 장애에 맞게 지어진 집이나 집수리를 하게되면 막대한 지출이 발생하여 충분히 개조를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전세나 월세에 사는 경우 집주인의 허락없이는 설치하지 못하는 문제들도 함께 보고되고 있습니다. 임대주택을 구하는 것에 있어서도 어려움은 있습니다. 장애인을 위한 공공 또는 민간 임대주택에 거주할 수 있는 기회가 넓지 않다는 점과, 장애인이 임대주택 보증금 지원을 받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또한 그룹홈, 체험홈과 같이 중간 단계 거주시설은 현재 정부에서 다양하게 제공하려 하지만, 결국 장애인들이 최종적으로 정착할 형태의 주거가 부족합니다. 더불어, 탈시설하기 전 단계부터 임대차 계약을 체결할 때까지 전반적인 과정을 책임지고 도와줄 수 있는 지역서비스가 부족하다는 점도 함께 제기되고 있습니다. 2. 소득 2020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이 가장 필요로 하는 서비스가 소득보장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장애인은 근로소득이 낮고 장애로 인한 추가비용이 발생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보니, 시설에서 거주한던 때와 다르게 지역사회에서 거주하게 된다면 더 많은 재정지원이 필요할 것입니다. 현재 탈시설정착금이 제공되고 있지만, 지역별 편차와 사용처 제한 등으로 문제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또한 비수급자인 장애인에게는 정착금을 주지 않는 곳도 있다고 보고되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장애로 인한 소득손실과 추가비용에 대한 조사나 분석이 실시된 적이 없어 이를 바탕으로 한 급여수준 책정이 필요합니다. 3. 돌봄과 일상생활 지원 발달장애 자녀를 살해한 후 극단선택을 시도하는 비극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부분이 발달장애 자녀 간호에 지쳐 어려움을 호소하다 비극적 선택을 하게되는 경우다. 전문가들은 국가와 사회가 제대로 된 시스템을 갖추지 않으면 관련 사례가 되풀이 될 것이라 경고한다.. -사회적 타살… 발달장애 자녀 살해 후 극단선택 시도 잇따라. 이로운넷. (2023년 2월 17일). 코로나를 지나면서 이와 비슷한 뉴스를 많이 보았습니다. 장애인의 탈시설 문제에 있어서 돌봄의 문제는 가장 실감하면서도 풀기에 가장 어렵다고 느껴졌습니다. 돌봄의 영역이 개인과 가족이 책임을 져왔던 시간이 길었기에, 정부에서 돌봄의 부담을 책임진다는 것이 잘 상상이 가지는 않지만 탈시설과 위 사례와 같은 장애인 가족들의 불행을 막기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돌봄과 관련하여 정부에서 장애인에게 활동지원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현재 제공되고 있는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이 적당한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것으로 보입니다. 공적 돌봄이 제공됨과 동시에 사적 돌봄제공자에 대해서 별다른 지원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원에 앞서 돌본 제공자에 대한 실태조사도 구축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라, 이들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4. 직업 및 주간활동 장애인이 시설에서 나온 이후, 주간에 마땅히 할 일이 없다면 다시 사회에서 고립될 위험이 있습니다. 따라서 탈시설 이후 장애인이 다양한 주간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장애인의 취업과 고용문제도 함께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중증장애인도 그들의 강점을 고려한 일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확대하고 지원해야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어떤 형태와 방식으로 이를 마련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또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학습 계획 장애인의 탈시설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살펴보는 과정은 마치 공기를 분해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이전에는 공기처럼 느끼지 못했던, 제가 사회 구성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게 지탱하는 요소들이 무엇인지 의식적으로 꺼내어 분석하고 이름을 붙이는 과정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넓게 펼쳐놓았던 장애인 탈시설 논의에서 더 집중하고 제가 잘 소화할 수 있는 영역을 선택해서 더 파고들고자 합니다. 크게 분류했던 영역 중에서는 돌봄과 관련해서 가장 공감이 가고 여러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아서 이쪽으로 더 발전시켜볼 예정입니다.
장애인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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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정] 더불어사는 사회를 위해, 불평등 문제를 연구합니다
*본 게시물은 <연구원정 부트캠프>에 참여 중인 대원님의 연구과정을 정리한 글 입니다. 1. 불평등한 사회를 연구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한국 사회 내 불평등 문제가 심각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에 공감할 것입니다. 그러나 불평등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는 단순히 ‘소득 격차가 커졌다’나, ‘계층 상승이 어렵다’ 정도의 이야기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경제적 수준에 따라 누군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누군가는 교육, 보건, 문화 등 삶의 전반적인 영역에서 불평등한 경험을 할 수밖에 없으며, 더 나아가서 누군가는 당장의 생존권을 위협받을 수도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불평등 문제는 단순히 누군가가 더 많이 벌고 누군가가 더 적게 번다로 정의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아주 다차원적이고 복잡하게 작용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한 차원에서의 불평등이 필연적으로 다른 차원에서의 불평등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 상의 문제라는 것이죠. 먹고 살기 급급한 사람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형편도 되지 않고, 문화생활을 즐길 여유도 누릴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부족한 경험을 할 수밖에 없는 이 사람은, 더 고소득의 직장을 가지기도 어렵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개천에서 용 날 수가” 없는 것이죠. 이런 현대 한국 사회를 잘 반영하고 있는 한국의 신조어가 하나 있습니다. 흙수저, 금수저와 같은 “수저”입니다. 부모님의 경제적 능력과 같이, 한 개인의 배경을 가지고 계층을 나누는 용어이지요. 몇 년 전부터 SNS는 물론, 뉴스나 TV 예능에서도 이 용어는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용어가 유행하는 만큼, 한국 사회에서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배경이 한 개인의 삶에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지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불평등 문제를 함께 이야기해야 합니다. 개인의 역량만으로 이 불평등한 구조를 벗어날 수 없기에,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이 구조를 깰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요? 우리 사회의 불평등한 사회 구조는 점점 더 탄탄해지고 있습니다. 2020년 이후 새로 창출된 42조 달러의 재산 중 거의 3분의 2를 상위 1%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향후 5년간 전 세계 정부의 4분의 3이 부에 대한 세금을 늘릴 계획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대신에 건강, 교육, 사회적 안전망에서의 복지 예산을 약 7.8조 달러 줄일 예정이라고 합니다. 불평등이 논의되기는커녕, 온 세계가 나서서 부는 점점 부를 극대화하고, 가난은 가난을 더욱 극대화하는 사회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불평등을 연구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왜 우리는 이 무시무시한 사회 구조를 무시하는가? 왜 우리는 더불어 사는 사회와 점점 멀어지고 있는가? 이에 대한 원인을 연구해보면서 어떤 지점에서 어떤 이야기들을 해야 우리 사회 전체가 이 문제를 함께 이야기할 수 있게 될지 알고 싶었습니다.   2.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왜 우리가 불평등을 불평등으로 생각하지 못한다고 말하나요? 비슷한 문제의식을 저 혼자만 가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라는 책을 쓰기도 했고요, 여러 사회학자나 인문학자들이 불평등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지적을 해주었습니다. 바우만은 현재 우리 사회는 한 개인이 불평등으로 겪은 불이익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더욱 심한 불평등을 생산해내야만 하기에, 점차 이 구조가 견고해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조형근 사회학자는 “불평등 논의에서 빠져 있는 것 중 하나는 불평등 문제의 주체이자 당사자다. 이들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 논의가 상대적으로 적다. 불평등 문제조차 주류화한 방식으로 논의된다는 게 불평등 문제를 다룰 때 가장 간과되는 지점이다.” 라고 하며, 불평등의 직접적인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못하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차별하는 구조 차별받는 마음>의 저자 이주희는 이미 불평등한 구조가 고착화 되어있어, 이에 벗어나려 할 경우 그에 따른 위험 비용이 너무 커지고, 불평등의 당사자가 이 구조에 체념하고 순응해버린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많은 학자들이 지적한 원인은 바로 “능력주의 신화” 였습니다. 성공도 실패도, 모두 개인의 책임이라는 것이죠. 실제로, 지난 2022년 연세대학교 학생들이 청소·경비노동자의 학내 집회를 학습권 침해로 형사·민사 소송을 제기했던 사건이나, 2020년에 인천국제공항사가 보안검색요원 1900여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밝히자 정규직 노조가 거세게 반발했던 사건 모두 능력주의 정신이 밑바탕에 깔린 사건들입니다. 더 열심히 노력(공부)해서 시험 성적 등에서 자신들이 더 나은 결과를 보였으니, 그에 비례한 보상을 받아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능력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불평등을 불평등으로 보이지 않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물론 더 노력했으니, 더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그러나 같은 정도의 노력을 해도 한 사람의 배경에 따라, 누군가는 더 쉽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고, 누군가는 그것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결과밖에 내놓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 누군가는 노력할 기회조차 받지 못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구조적인 차별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능력주의는 이 구조를 모두 지워버리고 모든 것을 개인의 역량으로 환원해버리고, 사회 구조에 대한 논의가 사라지게 만듭니다. 그래서 저는 이 “능력주의”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왜 능력주의를 긍정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연해졌는지, 그리고 이것이 우리 사회를 어떤 식으로 더 “불평등”하게 만들고 있는지 파악하려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논의를 이어나가야 할지 알아보고 싶습니다.   3. 앞으로 어떤 공부를 해야하나요 지금까지 저는 “불평등이 불평등으로 인식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에 대해 어떤 논의들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정리하고, 이를 가지고 구체적으로 제가 무엇에 집중하여 불평등 문제에 대한 고민을 이어나갈지 결정하였습니다. 이제, 조금 더 학구적으로 넘어가야 할 차례겠지요. 사회문제라는 것이 한 학과에서만 다루는 문제는 아니겠지만, 저는 여러 학과들 중에서도 사회학과와 철학과, 그리고 경제학과에서 불평등과 능력주의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알아보고 있습니다. 연구자들이 어떤 모델과 어떤 이론을 이용하여 이 문제를 분석하고 있는지, “불평등”이나 “능력주의”와 같은 추상적인 개념을 어떻게 정량화하고 있는지, 그리고 논의를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가고 있는지 공부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저만의 “지수”를 만들고, 사람들을 직접 연구해보아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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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정] 난 누군가 인생에 엑스트라로 평범하게 살고 싶었을까?
*본 게시물은 <연구원정 부트캠프>에 참여 중인 대원님의 연구과정을 정리한 글 입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24년 상반기 사회문제해결 부트캠프 과정에 참여 중인 후보 대원입니다. 제가 연구하고자 하는 분야는 ‘교육’이며 세부 주제로는 '진로교육'입니다. 현재 까지 연구 주제에 대해 정리해 본 한 줄 소개를 말씀리자면, 저 그리고 제 주변과 그 넘어 연결 되어있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각자가 원하는 ‘Extra+Ordinary=Extraordinary’한 방법으로 잘 사는 방법을 연구하고 싶습니다. 아래 본문을 읽고 보완했으면 하는 제안이나 건강한 피드백은 언제든 수용하고 감사 마음을 미리 전합니다:)        [난, 과연 누군가의 인생에서 엑스트라로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을까?] Ⅰ. 현황 및 실태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청년 정책 연구실 조사에 따르면 청년 (만18세 ~ 34세)들 대상으로 고등학교 재학 당시 진로 및 직업 관련 프로그램을 학교에서 받고 경험이 도움 되는 정도를 조사한 결과에서도 대구시 기준 진로, 취업 상담을 받은 경험에 66.6%가 그렇다고 응답했으며 도움이 되는 정도에는 보통이다가 41.2%로 전체 항목 중 가장 높은 수치로 결과가 나왔다. 진로, 직업 프로그램 체험을 한 경우는 32.9%가 그렇다고 응답했으며 도움 정도에서는 보통이다가 45.8%로 전체 항목 중 가장 높은 수치를 나타내었다. 투입 예산은 2021년도 대구 교육청 기준 예산 총 3조 3497억원이 투입했고 전년도 대비 715억 감소되었다. 인천 교육청 4조 1974억, 경북 교육청 5조 4057억에 비해 적은 편이며 직업 교육 편성 예산 역시 대구는 727,900만원인데 비해 인천과 경북은 각 960,100만원과 1,585,100만원으로 편성 비율 역시 높았다. 전국적으로 광주를 제외한 나머지는 예산이 삭감되었으며 코로나 19로 인한 긴급 편성임을 감안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진로 교육에 대한 우선순위 인식이 높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교육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함께 실시한 4,168명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전공을 다시 정할 수 있다면 현재의 전공을 다시 선택할 것인가?’ 설문조사에 따르면, 현재와 다른 전공을 택하겠다는 응답이 39.9%로 응답했으며 이외에 다시 동일 전공을 택하겠다는 비율이 38.7%, 잘 모르겠다가 21.5%로 응답했다. 이로 우리는 거의 40% 정도의 대학생이 전공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동일한 맥락으로 취업 시장에서도 진로 고민을 엿볼 수 있다. 한국개별연구원(KDI)에서 발표한 ‘전공 선택의 관점에서 본 대졸 노동시장 미스매치와 개선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OECD 조사결과 전문대학 졸업 이상 학력을 가진 25-34세 임금 금로자 가운데 전공과 현 직업이 관련 없는 경우 50%로 집계되었으며, 참여 국가 전체 평균이 39.1%에 비해 11.9%나 평균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공과 무관하게 직업(직종 등)으로 진로를 정하는 비율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회에 진입할 예정 학생들에게도 기존 진로 교육으로 향후 사회에 진출 했을 때 안정적인 진입은 어렵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점점 꿈이 없어지는 경기 학생들…“실질적 진로 교육 지원 절실”[출처] 경기신문 (https://www.kgnews.co.kr) 단순히 진로교육을 '취업, 창업'으로만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진로교육은 취업교육과 달라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성인으로서 독립해야 할 과정을 배워간다는데 의의가 있는데 심심치 않게 어려움을 겪는 사례들도 볼 수 있다. “월급 190만원 딸에 생활비 60만원 받으면 이상한가요?” “올해 취직한 딸 대신 청소·빨래해줘…30만원 달라고 했는데 딸 입 나왔지만 60만원 받고 싶어”   청년 캥거루족 530만 시대, 부모는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자식에게 생활비를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사회초년생 딸을 둔 어머니가 생활비 30만원을 요구했다가 갈등을을 빚었다는 사연이 전해졌다.   최근 온라인에서 ‘딸에게 생활비 받는 게 이상한가요’라는 제목의 글이 주목받고 있다. 글에 따르면 올해 50세로 사회초년생 딸을 두고 있는 A씨는 생필품과 집안일 등을 명목으로 딸에게 생활비를 내라고 했다가 딸의 불만에 부닥쳤다.   A씨는 “딸이 올해 취직했고 월급을 190만원 정도 받는다“고 상황을 전하며 “딸의 방을 청소하거나 옷을 대신 세탁해주는 것에 이제 지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 기사 원문 중 일부 발췌 Ⅱ. 문제인식 진로교육법 제 4조 1항을 보면 ‘진로 교육은 변화하는 직업 세계와 평생 학습 사회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스스로 진로를 개척하고 지속적으로 개발해 나갈 수 있는 진로 개발 역량의 함양을 목표로 한다.’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위의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진로교육의 목표인 '스스로 진로를 개척하고 지속적인 개발해 나갈 수 있는 진로 개발 역량의 함양을 목표로 한다' 했을 때, 과연 이 교육 효과성과 목표 달성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품게 하고 있다. 진로 교육은 단순히 나에게 맞는 직업(직종)을 찾는 것을 잘하는 교육이 아닌 변화하는 세상에서 어떠한 방향으로 살아가는 것이다.즉, 사회 초년생 때 어떻게 사회 진입을 성공적으로 안착하며, 안착 한 그 이후에 각종 변수에 대응하고 살아가는 '나만의 다양한 방식, 회복탄력성' 기르는 것을 중심으로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에 대한 교육을 모두 제공해한다. Ⅲ. 연구 방향  사람마다 '잘(Well, Good)'이라는 개념은 달라서 그 '잘 산다'는 지표를 일률적으로 설정하고 성과를 측정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다듬어지는 중인 주제들을 보다 더 뾰족하게 만들어서 연구를  해볼 계획이다. 주제질문 1 : 만약, 경제적인 어려움이 없다면 진로 교육 진행 및 학습에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확률이 증가할까? 주제질문 2 : 만약 주요 양육자가 ‘진로’ 교육에 대해 정확한 방향성이 있다면 모든 사람은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랄 수 있는가? 주제질문 3 : 다양한 소통 창구를 통해 ‘진로’ 교육 관련 도움(방향성 제고, 방법 등)을 받을 수 있다면 다양한 사회인으로 구성 될까? 주제질문 4 : 누구에게나 동일한 기회, 경험이 있다면 현재 살아가는 것 보다 훨씬 더 본인에게 맞는 진로로 방향을 설정하고 사회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데 어려움은 없을까? JTBC 드라마 청춘시대에서도 시대상을 반영한 대사가 있다 어렸을 적 나는 세상의 중심이었다.   내가 잠들면 세상도 움직임을 멈추는 줄 알았다. 세상은 나를 위해 움직였고 나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 시절, 세상 모든 것은 나를 사랑하기 위해 존재했다   언제부터였을까? 나 없는 곳에서도 세상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더 이상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그저 수많은 사람 중에 하나라는 것을 진심으로 깨닫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다른 사람을 내 세상의 중심에 놓기 시작한 것은.   간절히 원해도 가질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분한 마음에 차라리 나를 미워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오늘 나는 다시 아프게 깨닫는다. 내가 누군가를 미워할 수 있는 것처럼, 나 역시 누군가에게 미움받을 수 있다는 것을.   누군가 나를 미워하고 있다.  -청춘시대2 6화 중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내 인생 주인공이 아닌 누군가의 세상에서 엑스트라로 살아갈 평범하게 산다고 믿을 누군가에게 나만의 주인공으로 살아갈 시간을 선물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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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정] 안전한 이별은 정말 여성만의 문제일까요?
들어가며 지난 여성운동의 노력으로 우리 사회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호주제 폐지부터 불법 촬영 법률 제정까지 여성운동을 통해 여성의 인권에 대한 제도와 인식은 긍정적으로 변화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 만큼 새로운 여성혐오 문제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현상이 있습니다. 바로 친밀한 관계(연인, 부부) 간에 일어나는 폭력(신체 폭력, 언어폭력, 폭행, 성폭력, 강간 등) 문제입니다. 데이트폭력, 스토킹 등의 문제로 대표되는 친밀한 관계 폭력은 여성의 건강을 침해하고 일상의 불안감을 높이는 주요 원인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한국여성의전화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친밀한 남성이 죽인 여성은 최소 138명입니다. 19시간에 1명의 여성이 살해되거나 살해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범죄의 동기로 “(피해 여성이) 이혼이나 결별을 요구하거나 가해자의 재결합 및 만남 요구를 거부해서”가 1위를 차지하죠. 그만큼 친밀한 관계 내에서 여성의 ‘거부 의사'는 살해를 정당화하는 주요 이유가 됩니다. 2022년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이후 스토킹 범죄에 대한 문제의식이 높아지고 있으나, 여전히 여성의 교제는 안전하지 않습니다. 경찰청의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스토킹 범죄 신고 건수는 2만 9565건으로  전년 신고 대비 2배 이상 증가한 수치입니다. 스토킹 처벌을 위한 관련 법과 제도는 발전하지만, 여성이 느끼는 일상의 불안감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이제 20~30대 여성들은 “안전한 이별"을 일상의 권리로 인식합니다. 젠더 폭력을 일상에서 여실히 체감하는 것이죠. 그런데 문득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왜 남성들은 “안전한 이별"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까요? 남성들에게 “안전한 이별은" 상관없는 문제일까요? 여성이 경험하는 차별과 폭력은 왜 남성의 문제로 연결되지 않을까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서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문제가 일어날까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폭력’에 대한 사전 탐구가 필요합니다.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은 왜 일어날까요?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우선 원인부터 살펴봤습니다. 크게 4가지 영역을 꼽을 수 있는데요. 인식과 문화 교육 법과 제도 언론 첫 번째 인식과 문화 영역에서는 통제와 폭력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위계적 남성 문화와 여성을 도구화하는 성차별적 문화로 세분화해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교육 영역에서는 제도적으로 시행하는 인권/성교육의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교육 제도 특성상 충분한 교육 시간이 주어지지 않고, 상대를 존중하며 관계 맺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교육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또 하나의 분야로 법과 제도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폭력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제도와 조치는 미비하고, 가해자를 처벌하는 제도는 부족한 것이 현실이니까요. 마지막으로 언론이 폭력을 보도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가해 사실을 자극적으로 묘사하거나, 사적 관계에서 일어나는 문제 정도로 축소하고 왜곡하는 뉴스나 기사 말이죠. 써놓고 보니 새삼 놀랍습니다. 하나의 사회 문제에 이렇게 많은 분야가 원인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요. 솔직히 말하면 맥이 탁 풀렸습니다. 이렇게 많은 원인이 있는데 연구는 어디에서부터 시작하지? 연구로 해결이 가능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말이죠. 한숨은 나오지만, 꾹 참고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이 미치는 영향들을 적어봤습니다. 모든 사회문제는 그 자체로도 문제지만 그 이후에 더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니까요.  이 문제를 연구 주제로 고민하게 됐던 가장 큰 이유가 여성의 일상 불안감이었습니다. 젠더 폭력은 여성의 생명과 정신/신체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뿐더러, 사회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까지 이어집니다. 사회적 안전망(경찰, 법 제도)에 대한 신뢰도가 하락하는 것은 물론이고요. 이렇게 한 번 낮아진 신뢰도를 다시 회복하기까지는 사회적 비용이 더 많이 필요합니다. 폭력을 자극적으로 보도하는 언론을 통해 유사 범죄가 증가하고, 이것이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혐오 문화가 퍼지는 결과를 만들기도 합니다. 보이지 않는 사람, 들리지 않는 사람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매우 빠르게 번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성의 불안감이 증가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폭력의 경험은 한 사람을 다르게 바꾸어 놓습니다. 친밀한 관계에서 폭력을 경험한 여성은 그 이후의 새로운 친밀한 관계에서도 어려움을 경험합니다. 어쩌면 아예 새로운 관계를 맺기 두려울 수도 있고요. 그런데 관계는 늘 상호적입니다. 친밀한 관계에 놓인 파트너가 불안감을 호소하면 그 영향은 동시에 상대 파트너의 문제가 됩니다. 이것이 여성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남성이 폭력 문제를 심각하게 느껴야 하는 이유입니다. ‘너’의 문제는 ‘우리'의 문제이고, 동시에 ‘나’의 문제니까요. 이 부분에서 연구하고 싶은 주제의 방향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잠깐!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을 연구하기에는 생각보다 정의 내려야 하는 범위가 넓습니다. 우선 ‘친밀한 관계’에도 종류가 많습니다. 친구, 연인, 부부 관계를 생각하면 쉽지만, 가족과 파트너 등등 다양한 인간관계 형태를 고려했을 때 더 구체적으로 범위를 좁혀야 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연구의 주제 키워드를 ‘교제폭력'으로 수정했습니다. 교제폭력은 데이트 관계에서 발생하는 언어적·정서적·경제적·성적·신체적 폭력을 말합니다. 그럼 왜 데이트폭력 대신 교제폭력으로 설정했을까요? 한국여성의전화에 따르면 ‘데이트폭력’이라는 표현은 공권력이 개입하여 처벌해야 할 범죄의 심각성을 희석하여 연인 사이에 발생하는 불미스러운 일로 가볍게 비칠 우려가 있어 ‘교제폭력’으로 용어를 바꿔 사용한다고 합니다. 선행 연구 등 연구를 위한 자료를 찾아보면 ‘데이트폭력'이라는 키워드가 훨씬 더 많이 등장합니다. 다만 제가 하고자 하는 연구는 사회 운동에 기여하는 연구입니다. 어떤 언어로 문제를 부르는지에 따라 그 영향력은 크게 달라지죠. 나름 ‘세상을 구할 연구'를 계획하고 있느니 운동적 의미를 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저의 연구는 여성의 교제폭력으로 인해 겪는 불안감이 남성의 교제 만족도에 어떠한 부정적 영향을 주는지 연구하고자 합니다.  그동안 어떤 연구가 있었을까? 모든 연구는 크게 새로운 것이 없다고 합니다. 대학원에서 공부하다 보면 “네가 생각하고 있는 연구는 이미 누군가가 했을 거다"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되죠. 대신에 기존의 연구를 탐구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나의 연구 문제를 뾰족하게 다듬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제폭력'에 대해 어떤 학문 분과에서 어떤 연구를 해왔는지 키워드 중심으로 찾아봤습니다. (교제폭력, 데이트폭력, 불안감, 친밀한관계폭력, 젠더폭력, 관계만족도) 교제폭력을 연구하는 학문 분과는 많지만, 그중에서도 크게 5가지가 있습니다. 여성학: 젠더와 여성에 대한 연구 주제를 전반적으로 다루는 학과입니다. 교제폭력을 연구하기 위한 기초 자료가 가장 많습니다. 법학: 주로 데이트폭력에 대한 처벌 규정과 사례를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교제폭력을 신고하고 가해자 처벌을 위한 법체계를 경유하는 여성의 경험이 담긴 연구자료들이 있습니다. 사회심리학: ‘친밀한 관계'에 대한 정의를 가장 잘 찾아볼 수 있습니다. 관계에서의 경험이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 자료가 많습니다. 사회복지학: 세부 연구 분야로 여성복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로 ‘가정폭력'을 중심으로 선행 연구가 많습니다. (보건)간호학: 여성이 경험하는 신체적/정신적 폭력에 주목한 연구가 있습니다. 이렇게 조사하고 보니, 각 학문 분과마다 ‘교제폭력'을 중심으로 특색있는 연구들이 나뉩니다. 여성학과 사회심리학은 제가 하고자 하는 연구를 위해 가장 많은 선행 연구를 참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학습 계획 그럼 앞으로 어떻게 조사를 이어나갈까요? 우선 연구 주제가 ‘관계'에 맞춰져 있는 만큼, 여성과 남성의 친밀한 관계(교제 관계)의 만족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찾아볼 예정입니다. 특히 과거의 경험이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말이죠. 그리고 더 크게 확대해 한 사람의 생애 중 폭력 피해 경험이 추후 인간관계에 미치는 영향도 탐구할 계획입니다. 전반적으로 ‘과거 경험 → 요인 형성 → 현재 관계 형성→ 관계 영향'의 구조에 대해 조사하겠네요. 마무리하며 왜 여성이 겪는 문제는 여성만의 것으로 인식될까요? 우리는 일상에서 관계를 맺으며 살고, 서로 연결되어 사회가 구성되는데 말이죠.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도 변화를 인지하고 행동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연구하려고 합니다. 행동까지 가기 전에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발견하고 알리기 위해서요. 제가 하고자 하는 연구가 세상을 단번에 바꿀 수 없을지라도, 변화를 위한 땔감 또는 성냥불 하나 정도는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참고문헌] “지난해 친밀한 남성이 죽인 여성 최소 138명… 공식 통계도 없다” <여성신문> 2024.3.8 “‘스토킹 범죄 신고’ 2년 연속 최고치 찍나···처벌 강화했는데 왜?” <경향신문> 2023.9.14 한국여성의전화. 데이트폭력 대응을 위한 안내서. 2018 
젠더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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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정] 탄소 가격 책정 메커니즘의 성공적인 도입과 실행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에 대한 연구
**본 게시물은 <연구원정 부트캠프>에 참여 중인 대원님의 연구과정을 정리한 글 입니다.** 탄소 중립으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각 국가가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정책을 성공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각 국가는 이러한 정책의 성공 여부에 대해 다른 결과를 보이고 있다. 스웨덴은 탄소 세를 도입하여 효과적으로 실행되고 있으며, 이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적인 사례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한편 프랑스는 탄소 세를 도입하려 했지만, 노란 조끼 운동과 같은 국민의 반대로 인해 계획이 실패로 끝나게 되었다. 한국은 아직 탄소 세를 도입하지 못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프랑스와 스웨덴의 사례를 비교하여 그 차이점을 분석하고, 한국에 대한 시사점을 도출하고자 한다.   스웨덴과 프랑스는 모두 탄소 가격 책정 메커니즘을 도입하고 있지만, 그 배경과 결과는 다르다. 스웨덴은 실제로 탄소 세를 도입하여 지속적으로 시행되고 있으며, 이는 세계적으로도 모범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1990년대 초에 도입된 스웨덴의 탄소 세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진적으로 상향 조정되어 왔다. 스웨덴의 탄소 세는 온실 가스 배출을 감소시키는 동시에 청정 기술 혁신을 촉진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반면 프랑스는 2014년에 '기후 에너지 기여금(CCE)'으로 알려진 탄소 세를 도입하려 시도했으나, 이는 노란 조끼 운동과 같은 저소득층의 반대로 인해 중단되었다.   스웨덴과 프랑스의 사례를 통해 탄소 가격 책정 메커니즘의 성공적인 도입과 실행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을 탐구하는 연구 질문은 다음과 같다:   "스웨덴과 프랑스의 사례를 통해 탄소 가격 메커니즘의 성공적인 도입과 실행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은 무엇인가?"   이 연구 질문은 탄소 가격 이니셔티브의 결과를 형성하는 데 있어 대중의 인식과 정책 설계의 역할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환경적 맥락과 같은 다양한 요인을 탐구할 수 있다. 이 연구는 우선 기존 문헌 연구를 통해 탄소 중립으로의 전환을 위해 필요한 정치, 경제, 사회적 요인을 파악하고, 이러한 요인이 스웨덴과 프랑스에서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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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정] <나의 연구학습계획> 높아져만 가는 비만율,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1.     제가 연구하고자 하는 문제는 무엇인지 소개해드립니다. 제가 이 문제에 고민하게 된 이유는요!    ‘비만‘, 사회적 문제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비만‘이 사회적 문제라고 생각하는 1인 입니다. 우리나라의 ’비만 유병률‘은 증가추세 이구요, ’비만‘은 우리가 두려워하는 각종 질환(대사증후군, 고혈압, 심혈관 질환, 당뇨병, 불임, 수면무호흡증, 암 등)의 원인이 되어 사회를 병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비만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의 출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국민건강지식센터)    제가 이 문제를 고민하게 된 것은 만병의 근원인 ‘비만‘이 지속 증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래 <그림>은 제가 연구원정을 지난 3주간 참여하며 정리해본 생각의 흐름입니다. 질문 자체의 난이도는 누구나 던질 수 있는 매우 쉬운 수준이라 생각함과 동시에, 우리가 평소 쉽사리 답하지 못했던 사각지대의 질문들이었다고 생각하는데요. 이 <그림>을 통해 <나의 연구학습계획>을 보다 탄탄하게 세워나가 보고자 합니다. 함께 응원해주실거죠? <그림1>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의 흐름 2.     자, 그렇다면 ‘비만’ 문제에 대해 어떤 논의들이 이루어지고 있을까요?    ‘비만‘이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해 ’질병‘으로 등록된 지는 꽤 오래됬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무려 50년이 지났습니다.건강과 관련된 학계, 산업계에서도 그만큼 오랜기간 동안 ’비만‘문제 해결을 위해 고민을 해 왔는데요. 가장 최근 ’비만‘과 관련해 이슈가 되었던 사례는 바로 아래 사례입니다.    이외에도, 국내에서는 ‘대한비만학회‘에서 ’비만‘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정부가 ‘비만‘문제 해결을 위한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까요? <사례1> 비만은 국가가 관리해야 하지만 급여는 수술뿐? 비만은 국가가 관리해야 하는 만성 질환으로, 비만 진료 급여화가 필요하다는 학계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중략)…최근 10년간 국내에서 체질량지수(BMI)가 25kg/㎡ 이상인 비만 인구는 지속적으로 증가한 것으로 보고된다. …(중략)…비만은 만성적이고 재발하며 진행하는 질환으로, 만성 대사질환과 암, 골관절염, 정신질환 등 다양한 질환을 유발해 개인과 사회에 큰 부담을 준다. 이 때문에 지속적이면서 체계적인 비만 치료와 돌봄이 필요하다. 기사 출처: http://www.mo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0417 (메디컬 옵서버, 2024)     ‘비만’ 문제와 관련된 학계를 살펴보았는데요, [1] 사회경제학의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 [2] 정책학의 ‘보건정책’ [3] 행정학의 ‘공공보건의료’, ‘사회역학’이 있습니다. 세 가지 모두 ‘비만’을 ‘문제의 대상‘으로 보며 각 학문분야가 가진 전문성을 살려 ’비만문제를 해결‘하려는 학문적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역시, ’비만‘문제는 현대사회의 특성인 (VUCA; Volatility 급변성, Uncertainty 불확실성, Complexity 복잡성, Ambiguity 모호성)이 골고루 반영된 사회적 문제인 것 같습니다. 아래 <표>를 통해 비만과 VUCA를 살펴보세요. 여러분의 의견도 궁금합니다. <표> VUCA의 Scope로 ‘비만 문제‘ 살펴보기    뿐만 아니라, 제가 최근 ‘비만’과 관련해 눈길이 갔던 연구는 다음 사례와 같습니다. 미래세대를 위협하는 ‘비만’, 꼭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요? <사례2>  부모 모두 비만이면 자녀 중년에 비만 될 확률 6배 높다 부모가 모두 비만인 경우 자녀가 중년이 돼서 비만이 될 확률이 6배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노르웨이 트롬쇠 북극대 연구팀은 2천여 명의 부모와 자녀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이렇게 나타났다고 밝혔습니다. 연구 결과, 부모와 자녀의 중년기 체질량지수 사이에는 강한 연관성이 있었으며 부모가 모두 중년에 비만인 자녀는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중년기 비만이 될 확률이 6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부모 중 한 명만 비만인 경우에도 자녀가 중년기에 비만이 될 확률은 3배 이상 높았습니다. 기사 출처: https://science.ytn.co.kr/program/view.php?mcd=0082&key=202403081625154992 (YTN 사이언스, 2024.3.) 3.     저는 ‘비만’ 문제를 연구하기 위해, 앞으로 아래와 같이 학습해나갈 계획입니다!     저는 앞으로 남은 연구원정 프로그램을 통해 저는 제가 가진 질문의 범위를 점차 좁혀나가 보고자 합니다.지난 3주간 프로그램을 통해 제가 가진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찾아나가며 연구질문을 러프하게 도출해 내보는 시간을 보냈다면, 이제는 그 연구질문에 대한 답에 가장 근접할 수 있는 학계분야의 선행연구들을 찾아보며 연구의 방식, 연구 결과, 한계점 등을 체계화 시키는 작업을 해보려 합니다.    지난 3주간의 시간을 브리핑 해보았는데요, 가장 어려웠던 점은 ‘비만을 사회적 문제로 보는 것에 대한 공감대 형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접근해 나갈 것인가?’였습니다. 아무래도 문제가 가지는 복잡성과 제 마음 속 조바심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제가 연구해보려 하는 주제에 관심과 응원 부탁드리며, 새로운 인사이트가 있다면 가감없이 공유 부탁드리겠습니다.긴 글 읽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끝으로, 연구원정 파이팅!
이슈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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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정] 선원의 환경교육이 해운산업의 지속가능성, 개도국의 환경인식 개선의 불씨가 될수 있을까요?
2024년에 선원이란? 저는 작년까지 외항선 기관사로 해운산업에 종사했습니다. 선원이라고 하면 농사와 같이 고대 부터 인류문명 발현부터 함께 해온 익숙한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리스토텔리스는 세상엔 세가지 사람이 있다는 구문을 남겼습니다. 산자, 죽은자, 바다에 나간자. 아직까지도 이어지는 바다에서의 폐쇄성과 단절을 잘 보여주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2024년에 선원은 어떤 의미일까요? 더이상 탐험할 바다나 육지는 없고 개발지와 미개발지로 구분됩니다. 하지만 많은 기술발전으로 다양한 운송수단이 개발됨에도 아직까지 90% 이상의 세계 무역은 선박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데에 그 필요가 존재할것 같습니다. 안타깝게도 증기기관의 등장부터 지속되어온 화석연료를 사용한 선박운항에 항해의 낭만보다는 환경오염의 위험성이 더 많이 숨어있습니다. 제가 목격한 안타까운 장면들은 그 일부겠지만 선박 접안시 부두에서의 대기오염, 육지와 인접한 해협에서 어구나 생활쓰레기들이 끝없이 부유하던것, 개도국 항만 노동자들의 환경의식 부재, 발트해 폐수 유입 등이 있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인지하지 못했지만, 선박에서 발생하는 생활 폐기물, 각종 슬러지나 화학약품 잔여물, 선체 업무과정에서 많은 환경오염을 유발할 수 있는 요소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상황속에서 환경문제에 관한 선원들의 교육, 동기부여를 통한 작업습관의 변화를 어떻게 이끌어 낼수 있을지 고민할수 있었습니다. 해운산업에서 중요한 가치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안전하고 정확한 시간안의 프로덕트 운송, 개인의 차원에서는 선박 안전 운항의 책임감, 경제적인 부분도 있을것 같고요. 여기에 더해서 선원들은 국제 무역의 최전선에 있으며 모든 행동이 해양환경에 직접 영향을주며 그곳이 일터인 직업으로 해양환경 보전에 대한 가치 역시 지금보다 훨씬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 라는 개인이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연구를 할수 있을까. 사실 환경오염에 대한 경험을 통해 직관적으로 선원 교육에 대해 고민하게된것은 아닙니다. 그 고민의 과정도 공유하고 싶은데요. 먼저 기후위기에 대한 관심이 생겼던것 같습니다. 실제로 날씨가 조금 바뀌거나 공기가 조금 나빠지는것이 아닌 산업의 구조자체가 바뀌고, 우리 삶의 방향이 바뀌어야 할수도 있다는 생각, 지구의 자생력을 초과해 예측불가능한 결과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는 각 환경 요소 임계점의 존재들을 접하게 되면서 어떤 대의나 거창한 목표를 위한것이 아닌 내가 살고있는 집인 지구에 문제가 생기면 나도 살수 없잖아? 같이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소한 이유가 동기가 되었고 이것을 계속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거창한 목표나 대의를 품는것 역시 중요하지만 개인의 입장에서 혼자서 해결할수 없는 거대한 문제, 원인을 명확히 파악할수 없는 복잡한 문제들에 잠식되거나 무기력해지는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저의 첫 연구주제로써의 접근은 제한된 시간안에 한정된 자원과 인력으로 기후위기를 극복해야하는 현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효율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나의 경험과 세상의 필요가 만나는 점을 찾아 큰 얼개를 국제 선박 운항으로 인한 해양환경 오염으로 짠 후에 어떤 영향과 원인이 있는지 정리를 해 보았습니다. 선박운항으로 인한 어떤 환경오염의 요소로 1. 극지방 환경오염, 2. 기름유출 사고, 3. 환경 규제로 인한 운임, 물류비 상승으로 개도국의 소외나 비용전가, 4. 생태계 교란 선박운항으로 인한 해양환경오염을 야기시킨 원인으로는 크게 1. 무분별한 화석 연료사용, 2. 배출량 지분이 큼에도 관심이 적은점. 3. 무한 성장의 경제 시스템으로 인한 무역증가, 4. 온난화로 인해 북극 통행이 가능해진 점. 이러한 확산의 과정을 거치고 실제 기사들과 관련한 많은 자료들로 더 디테한 부분들을 메꾸어 가며 제 단 하나의 연구주제는 뭘까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정보를 얻으면 얻을수록 단순한 원인 결과의 현상이 아닌 국제관계, 경제, 정치등 너무 많은 분야가 연결되어있어 특정하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러다 내린 결론이 다시한번 거창한 목표가 아닌 그냥 내 경험 하나에 집중해보기 였습니다. 이 단순한 결론 내리기가 제 3주간의 활동중 가장 어려웠던것 같습니다. 나의 고민과 삶의 철학을 관통하는 이거다! 하는 그런 주제를 기다리고 찾는것 보다. 기후위기 해결이라는 큰 방향성안에서 일단 내가 발걸음을 떼어보는것에 의의를 두려고 합니다 설령 그 주제가 생각했던것보다 가슴뛰거나 임팩트를 주지 않아도 꾸준함으로 만들어낸 결과가 훨씬 값질수 있겠다 라는 믿음에서요.  결론적으로 제가 초점을 좁히게 된 주제는 선박 운항 중 발생하는 환경 문제에 대한 선원 교육 및 훈련의 역할, 지속 가능한 해운을 위한 선원의 작업 습관 변화 동기부여 방안 입니다. 바다라는 폐쇄적 상황의 특수성으로 많은 사고나 재난들이 인재로 인해 일어나고, 훈련과 교육으로 그저 기술의 적용이 아닌 산업의 분위기를 바꿀수 있을것이라 기대합니다. 또한 교육과 훈련을 제공하여 개인의 책임감만이 너무 부각되는것은 부족하므로 어떤식으로 동기부여나 해양 환경보전에 기여를 하고있는지를 느끼게 할수 있는지 연구해보고 싶습니다. 안타깝게도 환경교육에 관한 대한민국에서의 현위치는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됩니다. 승선을위해 진행하는 필수 교육 중에서도 소방과 안전 관련해서는 납득할만한 시스템이 있는데에 반해 환경오염과 관련해서는 해양 기름유출에 관한 주의를 강조하는것 이외에 뚜렷한 교육이 없는것이 굉장히 아쉽습니다. 먼저 관련주제 조사를 위하여 필요한 정보는 1.교육학 그중에서도 환경 교육을 어떻게 정의할것인가, 어떻게 접근할것인가, 환경 문해력 (지식, 태도, 동기부여), 그리고 환경 정보를 어떻게 전달할것인가에 대한 방법론에 대해 조사해볼 것입니다. 관련해서는 Wei-Ta Fang, Arba'at Hassan, Ben A. LePage 저자의 The Living Environmental Education: Sound Science Toward a Cleaner, Safer, and Healthier Future 도서가 해외의 최신 환경교육 정보를 얻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2. 해양과학, 그중에서도 해양 오염 관련하여 선박에서 어떤 오염의 가능성이 있는지 자세한 분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그런 확실한 분류를 바탕으로 교육과 훈련이 수반된다면 연구나 조사로써는 찾아내기 힘든 실무, 필드로 부터의 새로운 문제제기나 방지책이 나오는것을 기대합니다. 관련해서는 Cambridge University Press 에서 발간된 Environmental impact of ships 자료가 제가 참고해본 모든 자료 중 가장 전문적이고 세분화되도록 환경에 대한 선박의 영향들을 기술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3. 마지막으로 국제 해사기구 IMO 의 국제규제, 환경규제와 선원 인권 및 교육을 담당하는 파트 별로 나누어 최신 정책들을 꾸준히 follow up 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해운산업 선원들의 비중은 선진국들에서는 사양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업무의 강도나 고립에 의한 심리적 취약성 등 많은 부정적 영향때문이라고 추측 되는데요 그렇기에 현재 가장 많은 선원을 배출하고 있는 필리핀, 그 뒤로 중국, 러시아 아시아 동유럽 등 환경인식에 대한 수준이나 탄소중립 실천도가 비교적 높지않은 나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기에 체계화된 환경교육이 그들에게 더 큰 기회를 줄수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더 큰 비전으로 환경인식이 많이 부족한 나라들에게 해운산업으로 부터 비롯된 해양환경 보전의 불씨가 일반 대중들에게 번질수 있는 효과까지 기대해볼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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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정] 장애인 노동권을 보장하는 수단으로서 장애인 고용의무제의 현황과 한계
**본 게시물은 <연구원정 부트캠프>에 참여 중인 대원님의 연구과정을 정리한 글 입니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회문제는 복잡다단하죠.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은 문제들을 사회적 난제,  Wicked Problem 이라고 부릅니다.” 연구원정 부트캠프에 소개글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많은 사회문제를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Wicked problem, 즉 ‘사악한 문제’입니다. 다음 문장은 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하면 이렇게 서술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우리가 직면한 사회문제에 대한 ‘연구’가 필요합니다 (…) 하나의 명약을 찾아내려는 것이 아닙니다. 연구를 통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파악하고 대안을 탐구하며 계속해서 변이하는 이 문제들에 대한 우리만의 방어체제, 면역체계 ****Immune System ****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동의하면서도 한 군데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표현이 있습니다. “근본적 해결”입니다. ‘급변성, 불확실성, 복잡성, 모호성’(VUCA) 등의 특징을 가진 현대사회의 사악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싶은 것입니다. 물론 ‘근본적 해결’을 위한 ‘하나의 명약’을 찾는 프로젝트는 아니라는 취지를 분명히 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오해는 없습니다.) 연구원정에서 다루는 문제는 아마 모두 ‘사악한 문제’에 해당할 것입니다. 제가 관심을 갖고 있는 장애인 고용 혹은 일자리 문제 또한 그러합니다. 장애인에게 더 많은 일자리가 주어져서 일하는 장애인이 많으면 좋겠다는 견해는 매우 강력한 지지를 받을 것입니다. 복지관대성에 관한한 한국은 매우 소극적인 국가에 속하고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라는 접근은 복지국가가 본격적으로 발전한 이후에도 정당성을 쉽게 얻고 있으니까요. 이동권과 기타 장애인 권리 보장을 요구하면서 지하철역에서 시위하는 장애인에 차가운 눈길을 주는 시민도 장애인에게 일할 기회를 줘야 한다는 주장에는 흔쾌히 동의할 것입니다. 이렇듯 폭넓은 대중적 지지를 받고 있고 국가가 나름 다양한 정책을 통해서 보장하려고 하는데도 장애인 고용의 현실은 썩 개선되지 않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사악한 문제’와 관련된 전형적인 모습일 것입니다. 장애인 고용은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크게 개선되지 않을까? 어떤 접근이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이 이 주제에 대한 연구 관심사의 바닥 층위에 있습니다. 사전에 따져 볼 수 있는 질문이 있습니다. 왜 장애인이 꼭 일을 해야 하는가? 일을 하지 않을 권리는 없는가? 장애인 고용을 강조한다면 일하고 싶어도 일하지 못하는 장애인을 한 번 더 배제하는 접근 아닌가? 장애, 장애인은 도대체 어떤 상태와 어떤 대상을 지칭하는 개념인가? 장애 정의도 크게 다르고 장애의 상태에 따라 일자리, 노동 관련성이 크게 다른데, 장애인 고용으로 통틀어서 이야기하는게 정당한가? 실제 장애인 고용률이 그렇게 개선되지 않고 있는가? 여러 정책이 동원되고 있는데 통틀어서 얘기할 게 아니라 구분해서 따져봐야 하는 것 아닌가? 어떤 정책이 어떤 효과를 가져오거나 혹은 효과가 없는지? 이러한 질문은 모두 따져보고 연구해야 할 중요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다양한 방식으로 연구되고 있고 이에 대한 문헌도 방대합니다. 다만 나의 연구에서는 이를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기로 합니다. 한 사람의 연구자가 새롭게 제시할 수 있는 지식이나 사회에 대한 기여는 매우 작을 수 밖에 없는데 그걸 위해서라도 선택과 집중은 불가피하니까요. 선택과 집중의 대상은 “장애인 고용의무제”입니다(지난 1991년부터 국가와 지자체, 상시근로자 50인 이상인 민간 사업자에게 일정 비율의 장애인을 고용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그 비율은 2024년 기준 공공 3.8%, 민간 3.1%.). 한국에서 장애인 고용에 대한 공적 접근을 대표하는 정책이니까요. 실제 고용의무제 대상 인원으로 산정된 장애인이 전체 고용상태에 있는 장애인 중에서 차지하하는 비중이 그리 큰 편은 아니지만, 고용의무제는 고용 인원을 넘어서서 갖는 의미가 큽니다. 무엇보다 장애인 고용의무 미이행 사업체가 내는 고용부담금은 장애인 고용정책을 펼치는 주용한 재원입니다(장애인 고용의무 미이행 공공기관과 상시 노동자 100인 인상 기업은 고용부담금을 납부해야 한다. 부담기초액은 고용 수준에 따라 달라지는데 미이행 1개의 일자리에 대해서 월 1,237,000~ 2,060,740원이다.) 장애인 고용의무제는 많은 국가에서 장애인 고용을 위한 중요한 정책으로 활용되고 있지만 이 제도가 없거나 혹은 폐지한 국가도 있습니다. 그런 국가에서도 다른 정책 수단을 통해서 장애인 고용의 활성화를 꾀합다. 장애인 고용정책은 여러 프로그램과 정책 수단의 믹스다. 이런 점이 특정 정책의 효과성 판별을 어렵게 만듭다.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판별하기는 쉽지 않지만 일반적인 결론을 내릴 수는 있습니다. 장애인 고용정책은 그 어떤 구체적 정책 수단을 쓰더라도 그 어떤 국가에서도 장애인 고용률을 눈에 띄게 개선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사실 그리 놀랍지만은 않은 현입니다. 대부분의 복지선진국은 일반적으로 고용률을 높이기 위해서 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고용을 담당하는 핵심 주체인 민간 기업의 고용 결정은 국가의 정책적 노력 보다는 경기 등 경제와 시장 자체의 맥락이 훨씬 더 큰 영향을 받기 때문입다. 장애인 고용정책의 효과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구체적 정책의 효과를 판별하기는 힘들다. 고용의무제의 경우 장애인 고용 이슈를 환기시킨다거나 관련 정책 수행을 위한 재정 조성 등에서 그 기능을 찾기도 합니다. 장애인 고용정책은 나름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해 왔고, 고용의무제 역시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세부 정책 프로그램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이러한 장애인고용정책의 발달과 변화에 대한 연구도 꾸준히 수행되어 왔습니다. 주로 사회복지학, 장애인복지학, 행정학, 정책학, 사회학 분야에서 이를 다루고 있습니다. 학계 바깥에서는 주로 장애인 당사자단체에서 장애인 고용문제를 꾸준히 다루면서 개선책도 제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관련 논의가 상대적으로 덜 활발한 편이고 제시되는 논지나 대안도 재활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신선한 접근이나 새로운 이슈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그런 지점을 연구자의 시선으로 포착하려는 것입니다. 최근 한국의 장애인 고용의무제는 어떤 방식으로 발전(진화)하고 있는가? 그 양상은 무엇이고, 원인은 무엇인가? 고용의무제의 변화는 장애인 고용의 궁극적 목적인 장애인의 직업세계와 노동시장으로의 포함(inclusion), 일자리를 통한 소득 보장, 사회권 등 인권 보장 등의 관점에서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까지 관찰한 바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잠정적으로 내려 볼 수 있습니다. 장애인 고용의무제는 1980년대 후반 도입 논의와 발전 과정에서 장애인 노동권을 보장하는 획기적 수단으로 주목받았습니다.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서 도입되었지만 그 이후 정책의 대상, 재정, 사업범위 등이 지속적으로 확대되었습니다. 2000년 큰 폭의 법개정이 있었고 그 이후로는 그 틀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재정적인 측면에서도 부침이 있었는데 지금은 안정적입니다. ‘안정’은 다면성을 가진 표현인데, 한편으로는 변화의 가능성이 줄어들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장애인고용의무제는 지금 전반적으로 안정적입니다. 크게 변화를 가져 올 계기를 찾기 힘듭니다. 오히려 고용의무제의 변화는 고용의무제 자체의 기준을 충족시키는 방향을 택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고용의무 이행으로 인정되는 고용 형태 중에는 일종의 편법으로 볼 수 있는, 장애인고용브로커를 통한 재택근무나 간접근무 방식이 채택되고 있습니다. 장애인 고용을 돕기 위해서 배치되는 ‘근로지원인’제도도 발달장애인에게까지 확대되고 있는데 그 실행 현실을 보면 장애인 근로자의 업무 독립성 증진에 도움이 되지 않음에도 장애인 일자리와 사회적 일자리를 동시에 창출한다는 점에서 확대되고 있다고 판단됩니다. 이처럼 장애인 고용의무제는 제도 자체의 경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미세조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제도가 유지될 때 주어지는 수확, 편익을 관련 행위자들이 나눠 갖고 있는 셈입니다. 이 경로가 아닌 어떤 새로운 경로가 있을까요? 고용의무제보다 더 나은 대안도 쉽게 떠올리기 힘든 것도 사실이니까요. 편익을 나눠 가고 있기 때문에,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에 고용의무제는 장애인의 노동권의 온전한 보장이란 측면에서는 결함이 많음에도 유지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대안적 접근이 없는 것은 아닙디다. 장애인 일자리 뿐 아니라 노동에 대한 패러다임적 전환을 요구하는 시도로 볼 수도 있습니다. 먼저 일자리 개념의 확장이다. “이것도 노동이다!”는 관점에서 장애인의 권리 증진 활동을 권리 중심 일자리로 지원하는 정책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는 서울시의 경우 오세훈 시장 취임 이후 폐지되었습니다. 또 다른 대안은 일개념의 확장입니다. 자원봉사, 돌봄 등의 활동을 일에 준하는 사회적 참여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는 탈노동(post-work) 패러다임입니다. 이러한 대안적 접근은 지나치게 이상적이거나 그 적용범위가 제한적이어서 고용의무제를 대체하거나 변화를 자극하는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큰 변화는 작은 변화의 축적으로 인한 결과이기도 해서 이런 변화의 의의를 간과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장애인 고용정책, 특히 고용의무제를 둘러 싼 다양한 변화의 양상을 파악하고 그 원인과 의의 등을 추적하는 것을 연구의 방향으로 삼고 있습니다.
장애인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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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생에너지업계 그리고 국가보조금 - 어차피 자식도 부모로부터 독립해야 하는 거니깐.
** 제가 이 텍스트를 '조세정의'로 분류한 것은, 기후를 위해 무엇을 해야한다, 라는 아이디어라기보단, 관련한 정책이 대부분 세금으로부터 조달된 보조금으로 운영되는데도 이렇다, 는 문제의식에서입니다. I. 결국 내 세금인데 이렇게 쓰이는 건 싫다 저는 신재생에너지업계에서 근무했던 적이 있습니다. 미국 회사 특유의 프로페셔널함을 상상하던 제게 회사의 분위기는 다소 충격이었습니다. 매출의 99%가 국가보조금임에도 불구하고, '국고니깐 더 깐깐히 써야지'가 아니고, '언제 끊길지 모르니깐 한 푼이라도 더 땡기자'는 마음으로 다들 지나친 연봉을 받고 오후 4시 퇴근의 라이프를 누리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물론, 가정을 꾸린 마당에 정의를 논할 수 있냐,고 한다면 저는 아무 할 말이 없습니다. 게다가 저는 청년수당 국가장학 등 국가에서 주는 혜택엔 해당사항이 되어본 적이 없었기에 더더욱 국가보조금에 대해 '어련히 잘 쓰이겠지', '다 필요한 분들이 받아서 잘 쓰고 계시겠지'라고 막연히 믿(고싶)었습니다. 그렇게 순수했던 한 청년의 기대가 어제 산 스마트폰에 아직 강화스티커도 붙이지 못한 채 콘크리트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지는 순간이었습니다. 3여년이 채 안되는 기간이었지만, 이를 계기로 저는 현금성 정책, 그 중에서도 업계에 보조금을 주는 정책에 대해 관심의 주파수를 높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6년만에 다시 신재생에너지 업계에 발을 들입니다. 확실히 10년 전보다는 기후 위기에 대해 시민의 관심도가 높아졌고, 정책적 논의도 활발합니다. 저는 기후 이슈를 개개인의 단위에서 저는 일회용품을 더 쓴다고 너는 비윤리적이야, 라고 하고 싶진 않습니다. 그보단 텀블러를 든 분들이 훌륭하다고 봅니다. 텀블러는 마음만 먹으면 당장 지금부터라도 시작할 수 있죠. 개인의 행동양식은 이렇게 간단히 적은 비용으로도 '의지'로 바꿔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산업 단위로 가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적은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닐 뿐더러 짧은 시간 내에 해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냉정하고 치밀한 계산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완벽하게 계량할 수 없어도, 계량해보기 위한 치열한 시도가 계속되어야 합니다. 숫자가 그나마 서로의 입장차를 좁히기 유용한 수단이니깐요. 이 계량은 자금 조달을 하는 단계와, 자금이 쓰이는 단계에서 각각 진행되어야 합니다만은, 저는 우선적으로 자금 조달 단계에서 지금이 최선인가? 라는 질문을 던져봅니다. 국고보조금이 더 많이 쓰이면 쓰일수록 뒷단의 편익에 대한 논의도 더욱 첨예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II. 계산을 해봅시다 저는 최근까지 투자업계에서 근무했습니다. 코로나와 초저금리라는 초유의 사태를 몸소 경험하며 사모펀드 환매 대란, 부동산 자금 경색, 전세 대란, 건설사 파산이라든가 부정 IPO(상장) 등의 사례를 실전으로 겪어냈죠. 이 과정에서 제가 배운 건, 1. 사람들의 관심을 모아내기 위해서는, '돈'이라는 매개로 풀어내는 게 확률적으로 사람들이 귀를 기울일 가장 높은 접근법이라는 씁쓸하지만 직시해야하는 현실, 2. 아무나에게 '돈을 벌 수 있다'는 환상을 주지 않고, '비용을 감당할 여력이 되는' 사람(기업)을 초대해야 망해도 사회적 비용이 높지 않다는 점, 3. 나랏돈은 굳이 이미 자본이 충분한 자에게 충분히 지급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HUG 보증이 있으면 금융기관에서는 아무리 똑똑한 사람을 채용해두더라도 다른 조건에 대한 검토를 다소 부실하게 하고 (부실 사업장이든 뭐든 HUG가 처리해주겠지~) 투자를 진행하게 됩니다.  예나 지금이나 보조금이라 함은, 불특정 다수라는 즉 여러분이나 제가 낸 세금을 국회의원 및 공무원이 편성해 분배되는 형식입니다. 솔직히 지급 과정상 시민이 간섭할 여지는 제로에 수렴합니다. 물론 하나하나의 과정에 대한 깐깐한 검토와 감사 방식도 유효하지만, 애당초에 적게 지급되는 것으로 시선을 바꿔볼 수 있지도 않을까요? 어차피 자본이 있고 이윤을 전제로 하는 주체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것은 기본조차도 누릴 수 없는 이들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전자의 정책을 위해서는 현금성 보조금 지급보다 경쟁에 대한 조정이라든가 세금 감면 등으로도 충분한 혜택을 기대해볼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의 신재생에너지 관련 정책이 핫 이슈가 된 배경엔 시장 조성보다 보조금 지급이 우선적으로 진행되고, 보조금 지급 방식이 사후에 효율성에 대한 측정 없이 진행되어온 것 때문도 높다고 생각합니다.  신재생에너지도 '업계'입니다. 까페를 창업할 때와 대단히 다른 논리가 적용될 이유는 없습니다. 은행에서도 대출을 받고, 자영업자 보조금을 구청에서 받는다고 가정합시다. 하지만 그 어떤 자영업자도, 보조금 딱 그만큼을 목표로 창업하지 않습니다. 이를 토대로 "훨씬 큰" 수익을 창출할 것이라 기대될 때 리스크를 쓰는 것이죠. 그 리스크의 일부를 국가가 같이 지는 것이구요. 신재생에너지도 마찬가지입니다. 뒷단의 그 모든 이야기는 차치하고 우선 맨 앞단에서, 직접적인 현금성의 국가보조금은 줄이면서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감당하게 하는 자금조달은 무엇인가, 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현재 이미 시행되고 있는 직접적 보조금 외의 각종 정책에 대해서 분석해보고, '대출성'과 '투자성'으로 나누고, '세금 감면' 측면과 '현금 지급' 측면으로 나누어 살피고자 합니다. 돈은 될 업계입니다만 돈이 별로 모이지 않는 이유 국가보조금이 적어진다면 그만큼 민간에서 투자자금을 모아야 합니다. 가장 처음 들어야 할 생각은, "국가보조금이 적어지면 여기 왜 투자해?"겠죠. 부침은 있다고 해도 세계는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는 만큼 '돈'도 이 곳으로 몰리고 있습니다. 관련한 기술은 파고 들어가다보면 AI, 반도체, 배터리 등 지금 핫한 그 모든 것들이 연관되어 있죠. 한국에서 많이 더딜 뿐 금융업에서 Green fund, Climate fund 등 기후와 관련한 펀드는 펀드 하나에서 750억 달러를 유치해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선 과거에 하나금융그룹에서 1,900억원, 최근에 이지스자산운용에서 500억원을 모은 정도 외엔 기후나 신재생에너지 관련한 큰 행보는 보이지 않아 아쉬운 바입니다. 국민연금도 해외 최고 운용사들에는 수조원의 '녹색' 펀드에 투자 중이지만 막상 국내 금융기관에는 투자할 전문 운용사도 마땅치 않고 투자처도 모호한 상태입니다. 이런 자금들이 더욱 풍부해진다면 당연히 국고보조금의 필요성은 더 줄어들겠지요! 따라서 현재 국내외 민간에서 조달하고 있는 각종 그린 펀드 관련한 현황을 알아보고, 한국에서 유난히 부진한 배경에 대해서 각종 자료를 비롯해 업계 사람들의 인터뷰를 청취해나갈 계획입니다. 특히 최근 한국에서 원자력을 강력히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그 정책 자체를 옳고 그르다라고 하는 것 이전에 세계적인 글로벌 운용사들이 만든 펀드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에 원자력 발전 기술이 포함되어 있는지 아닌지를 보는 것이죠. 왜냐하면 그런 펀드에는 세계 최대 국부펀드들이 투자하고 있기에 기준이 아주 까다롭기 때문입니다. 국민연금을 비롯해 각종 유력 기관투자가들의 그린펀드 투자 기준과 각 그린펀드의 상세한 투자 기준에 대해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다른 업계가 돈을 버는 데에도 도움이 되는데 시너지를 못내는 이유 한국의 전력소비량은 571.93TWh로서 2020년 기준 세계 7위 (출처: https://tips.energy.or.kr/statistics/statistics_view0903.do)로서, 1인당 전력소비량은 2019년 기준 아이슬란드, 미국에 이어 3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출처: https://www.index.go.kr/unify/idx-info.do?idxCd=4291) 이 소비량은 가정보다는 산업 부문의 전력 사용으로 기인하였고, 오히려 가정은 전력 사용량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적은 편이라고 합니다.이러한 점은 우리가 '전기를 아껴쓰자'는 방식으로 에너지 정책에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기업의 경제 집중도가 옳고 그른지에 대한 논의는 우선 차치하고, 현상만을 볼 때 2021년 기준 100대 기업의 경제기여액이 명목 GDP의 60%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이 중에서 1위인 삼성전자가 160조원을 기록해 대한민국 GDP의 7.8%을 차지했습니다. (출처: https://m.khan.co.kr/economy/industry-trade/article/202207200806001/amp) 이는 전력에서도 마찬가지인데요, 같은 기간 삼성전자의 전력 소비량이 26.95TWh로 가장 많았습니다. 다만 2위에서는 경제 기여도는 현대자동차가 2위를 기록한데 비해 전력소비는 SK하이닉스가 2위(23.35TWh), LG디스플레이가 3위(15.37TWh)를 보였는데요, 이 또한 한국의 가장 유력한 수출종목으로 생각하는 반도체 생산이 전력소비가 높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기업들도 잠재적인 신재생에너지 자금조달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아직 생각이 다소 막연하지만 혹시나 이러한 시너지를 창출해낼 제도나 움직임은 없는지 알아보는 것도 흥미로운 작업일 것입니다. III. 결론 다소 중언부언되고 결론이 모호해보이는 이슈 제기입니다만, 기후 관련해 신재생에너지가 단순히 국고보조금을 타먹는 수준에선 탈피해야 합니다. 지금의 아이돌 비즈니스, 반도체 산업처럼 하나의 큰 장이 될 수 있고, 그렇다면 훨씬 막대한 민간 자금이 유입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여러가지 정책 중, 자금 조달이라는 직관적 측면에서 신재생에너지 업계가 더욱 효율적이고 '똑똑한' 분야로 나아가길 바라는 바입니다.  제가 놓치고 있거나 더 알아보면 좋겠다는 점 그 무엇이든 환영입니다!
조세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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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잘 듣고' 있을까요?
2010년 05월 06일, 가능하다면 평생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이 제 삶 속으로 들려왔습니다. “암인 것 같은데, 빨리 병원에 가 보는 게 좋겠습니다. 꽤 진전이 많이 된 것 같아요.” 난생처음 듣는 말인데다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말이라 정신이 혼미했습니다. “내가 암이라고? 다음 달이면 조기 취업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 이게 말이 돼?” 그러나, 피할 수 없는. 받아들여야만 하는 가혹한 현실이었습니다.  그 후, 총 4곳의 대학병원에서 같은 진단을 받았습니다. “3기 후반입니다. 20대 초반이라 암 전이 속도가 무척 빠르니, 수술이 시급합니다.” 믿기지 않는 현실에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쏟아내던 어느 날, 가만히 앉아 생각에 잠겼습니다.  “나 왜 암에 걸린 거지? 도대체 뭐 때문이지?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그런데 그 순간 지금껏 내 몸이 보내온 작은 신호들이 떠올랐습니다. 매일매일 미세한 열이 지속되었고, 계속 잠이 몰려왔고, 끝도 없이 피곤했으며, 감기약을 먹어도 좀처럼 감기 증상이 호전되지 않아 힘들었습니다. 내가 내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그 시간만큼 암은 진행되어왔고, 암 세포의 크기가 점점 커졌단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나는 내 몸과 소통하지 못했습니다. 내 몸의 소리를 가볍게 여기며 무시했고, 듣지 않았습니다. 그랬기에 듣지 않았던 시간만큼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오래도록, 많이 아파야 했습니다. 크게 아프고 나자, 세 가지 교훈이 가슴에 남았습니다. 삶에 어떤 순간이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니, 그때 그때마다 하고 싶은 말과 마음을 후회 없이 잘 전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 몸의 소리, 마음의 소리, 타인의 소리 등을 “잘 들으며” 살아야 한다는 것 남 탓/상황 탓하지 말고, 나의 현실을 오롯이 인정 및 수용하며 변화를 위해 노력할 것 삶의 유한함을 깨달은 후, 나는 위 3가지 교훈을 잊지 않으려 적극적으로 노력했습니다. 그러자 삶에 작은 파문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부당한 것들에 대해 용기 낼 힘이 생겼고, 불편한 것들을 변화시켜야겠단 의지가 생겼으며, 내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이런 제 모습을 지인들은 낯설게 느끼거나 당황했습니다. 그러나 변화가 꽤 오랜 시간 지속되자,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저의 변화가 사회의 공고하고 단단한 벽을 만났을 때, 기성 질서와 부딪혔을 때- 변화는 갈등을 촉발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 2024년 3월의 어느 날, 동묘 앞 다이소에서 경험한 일입니다.  다이소에서 구매한 물건을 교환하기 위해 줄을 서고 기다리던 중이었는데, 내 차례가 되어 교환할 물건을 계산대에 올려놓던 순간! 갑자기 뒤에서 중년 남성 한 분이 새치기를 시도했습니다. 본인의 물건을 다이소 점원에게 건넨 후, 빨리 교환해달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저는 당황&멈칫하며,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라고 나지막이 불편함을 표현했습니다. 그랬더니 대뜸 그 남성은 제게 “말이 많다.”고 했습니다. 남성의 태도에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물러서지 않으며 “함부로 말씀하지 마시라!” 단호하게 대응했고, 이후 제게 돌아온 말은 “그 입 닥치라” 였습니다. 상황이 이 정도에 이르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습니다. “본인 행동이 부끄럽지 않으세요? 왜 자꾸 함부로 말씀하시는 건데요! 왜 제가 입을 다물어야 하는데요! 함부로 말씀하지 마시란 말이에요!”라고 크게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분에 못 이기는 얼굴로 “그 입 안 다물어? 어린 게 어디서”라는 말과 함께 손찌검이 날아오려던 순간, 다이소 직원분이 급히 달려오셨고 주변 손님들도 한마디씩 하시자 그 남성은 조용히 다이소를 나갔습니다. 만약 그 남성으로부터 손찌검을 당했다면, 직접적 폭력을 경험했다면, 그날 그 상황은 제게 어떤 기억으로 남았을까요? 다시 그 장소에 갈 수 있을까요? 앞으로 제게 생기는 부당한 일들에 대해 두려움 없이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요? 저는 그 날, 듣지 않으려는(듣고 싶지 않은) 마음이 어떻게 폭력으로 발현되는지를 목격했습니다. 이 사회에서 자신보다 약자라고 생각되는 이를 함부로 대하며, 자신의 위치성을 공고히 하길 원하는 심리가 내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2월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졸업식에서 일어난 일명 ‘입틀막’ 사건 당사자 신민기씨는, 4월 9일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습니다. 신씨는 당시 자신이 발언을 하지 못하도록 강요당했고, 대통령 연설이 끝날 때까지 다른 방에 가둬져 있는 등 헌법상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와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며 헌재의 판단을 요구했습니다. 또한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권력에 의한 기본권 침해를 구제받기 위해, 나를 비롯해 대한민국의 누구도 다시는 겪어서는 안 되는 사건이기 때문에 헌법소원을 청구한다.”는 자신의 의견을 밝혔습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권력을 가진 가해자가 문서와 역사적 서사를 독점한 상황에서 힘없는 피해자들의 경험과 목소리는 배제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진실에 대한 공개적 인정과 정의 실현도 가능했습니다. 생존자의 권리가 공개적으로 옹호되고 은폐되어 있던 잘못들이 공개적으로 인정되는 과정은, 정의로 나아가는 첫 걸음을 표상하기 때문입니다.  신민기씨의 말을 들으며, 다시 한 번 생각해봅니다. ▶ 제 삶에 강렬한 순간을 남긴 그 남성에겐, 최은정이란 사람이 어떤 기억으로 남았을까요? ▶ “함부로 말씀하지 마시라!”는 제 목소리가, 그 남성의 귓가에 조금이라도 닿았을까요? ▶ 조금이라도 본인의 잘못을 인지하게 되었을까요? 그는 자신의 행동이 폭력임을 알았을까요?  ※ 그런데 이것이 제 삶에만 일어난 특별한 경험일까요? ※ 현재 우리 사회에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문제와 이슈들이 제가 목격 및 경험한 것들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면, 우리는 지금부터 어떤 이야기를 함께 나눠야 할까요? 4.10 선거를 앞두고, 각 당의 후보들은 한껏 몸을 낮추며 유권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읍소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넙죽 큰절을 올리기도 하고, 자신들이 부족했으니 기회를 달라며 간절히 호소합니다. 더 낮은 자세로 경청할 것이라고, 국민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왜 선거가 끝나면, “진정으로 듣고자 하는” 국민의 대표는 잘 보이지 않는 걸까요? 국민의 뜻을 받들어, 국민을 대신하여 정치를 하도록 했지만, 우리의 대리인들은 국민의 목소리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잘 듣기”가 되지 않아서 지금 우리 모두가 아픈 건 아닐지, 몸 속의 암세포가 자라듯 대한민국이 점점 병들어가고 있는 건 아닐지 생각해 봅니다. 저는 책 ‘진실과 회복(저자: 주디스 허먼)’ 중 일부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며, 이 글을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부당한 사건들 앞에 ‘머 세상 일이 원래 그렇지’라고 자조하는 사람들은 이미 방관자가 된 이들이다. 폭력의 생존자들에게 방관자들의 공모와 침묵이 더 큰 배신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즉 우리가 피해자가 되면 친구들, 친척들, 이웃들의 무관심과 공모가 직접 당한 피해보다 더 큰 상처가 되어 돌아온다는 말이다. 독재의 규칙도 공동체의 암묵적인 허락과 동의에서만 가능하다. 즉,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생존자 정의의 제1원칙은 공동체가 피해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비가시화되고 암묵적으로 용인해온 각종 폭력을 공동체가 인정해야만 정의가 설 수 있다.” “우리 안에 너무나도 깊이 박혀 있는 억압 체계들을 해체, 마치 숨 쉬는 것처럼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무의식의 세계로 녹아든 억압 체계들을 낯설게 보고 불편하게 만들고 의식의 영역으로 끄집어내는 것. 모든 사람을 존중하고, 모든 사람을 포함하고, 모든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새로운 체계들을 창안하는 것” 제게 이번 4.10 선거는 그동안 자행된 폭력과 억압에 대한 불편함과 부당함을 표현하고 모아내는 장으로서의 의미를 지닙니다. 투표라는 국민의 목소리를 통해 공동체가 입은 피해와 상처를 적극적으로 인정하며 국민의 목소리를 회복하는 순간이 오길, 위태롭게 흔들리는 공동체의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길 염원하고 있습니다.  투표를 통해 표현될 대한민국의 현재를 모두가 겸허히 인정하고, 그 안에 내재된 목소리들을 듣고, 모든 사람을 포함하며 모든 사람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새로운 체계가 무엇일지 끊임없이 고민하며, 그렇게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를 향해 한 걸음 더 전진할 수 있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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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남자들] 페미니즘 글에는 왜 꼭 “너만 힘드냐”는 댓글이 달릴까?
성평등 교육을 시작한 지 벌써 5년이 흘렀다. 직장인부터 시민사회단체 구성원, 초·중·고등학교 청소년과 군인 등 다양한 참여자를 만났다. 막상 어마무시한 저항이 있는 경우는 흔치 않지만 꼭 참여자 표정이 굳기 시작하는 대목은 있다. 바로 여성이 경험하는 차별을 이야기 할 때다. 한 초등학교 교실에서 한 여성 어린이가 자신의 가족 제사 때 겪은 성차별을 이야기했더니, 옆자리 남자 어린이가 "너는 대신 군대 안가잖아!"라고 소리치는 모습을 봤다. 의아해진 나는 남자 어린이를 진정시키며 물었다. "혹시 저 어린이가 군대에 보낸건가요…?" 여성 차별에 "너만 힘드냐"라니 이런 사례가 결코 적지 않다. 페미니즘 관련한 글, 아니 꼭 페미니즘이 아니더라도 여성이 경험하는 차별과 폭력에 대한 글마다 '남성도 힘들다!'는 댓글로 가득하다. 남성의 삶이 어렵지 않다고 이야기한 것도 아니고, 누군가의 고통이 다른 이의 고통을 상쇄해 주는 것도 아닌데, 대체 이게 무슨 생뚱맞은 이야기일까? 뉴스에서 흑인을 향한 폭력, 장애인을 향한 차별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자신을 '잠재적 가해자' 취급하는 거냐며 발끈하는 경우가 드문데, 왜 젠더 문제에 대해선 그런 반응이  흔할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실제로 모르기 때문이 크다. 나도 학창시절, "성차별은 옛날 일"이라고 생각했다. '당장 학교만 봐도 똑똑하고 대학 잘 가는 여자애들이 이렇게 많은데, 무슨 성차별이냐'는 생각이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22년 국가성평등보고서'에 나타난 '성평등한 사회참여 영역 분야별 성평등 수준 현황'에 따르면, 학교 같은 교육·직업훈련 영역은 94.5점이다. 그러나 문제는 다음부터다. 경제활동영역 76.4점, 의사결정영역은 38.3점으로 처참한 수준이다. 고용률만 봐도 그렇다. 20대 때까지는 비슷하다. 하지만 30대에 접어들고 여성이 임신·육아·출산을 경험하는 시기에 엄청난 격차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우리나라 100대 기업 임원 비율은 여전히 6.8% 수준이다. 누구도 이를 제대로 가르쳐준 적 없으니 각인된 오해가 쌓이고 쌓여 오늘날의 성별인식격차가 됐다. 인권은 뺏고 빼앗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모르면 알아가면 그만인데, 왜 알려고 하기보다 화부터 낼까? 인권을 '제로섬 게임'으로 여기며 여성의 인권이 올라가면 남성의 인권이 추락할 것을 생각하며 불안에 떨기 때문이다. 나아가 성폭력을 오직 '피해자'와 '가해자'의 문제로만 치부하고 자신은 피해자가 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장애 이동권을 위해 생긴 지하철 엘레베이터가 모두에게 편리함을 줬듯, 인권은 함께 증진될 수 있다. 성폭력은 권력의 문제이기에 남성도 피해자가 될 수 있고 우리는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하는 동반자로 나아가야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남성들이 이러한 이해 없이 페미니즘에 학을 뗀다. 어떨 때는 이런 남성들의 분노가 일종의 비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남성의 어려움 어디에서 왔는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교육 현장에서 듣게 되는 이야기나 글에 달리는 댓글을 찬찬히 살펴보면 결론이 비슷하다. 군대에 가야해서, 연애나 결혼할 때 경제적으로 부담이라, 더 위험하고 어려운 일에 내몰려서 '힘들다'는 이야기다. 힘들 수 있다. 실로 더 많은 남성들이 일터에서 사망한다. 2022년 자살률 역시 남성이 여성보다 두 배 이상 더 높다. 그러나 드러내지 못한다. 나약하다고, 남자답지 못한 '하남자'라고 낙인 찍힐까봐 염려하느라 꽁꽁 숨기고 산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감정은 분노다. 그래서 그렇게 길 잃은 엉뚱한 분노로 자신의 비극을 발산한다. 그러나, 이런 방법으로 불행 배틀은 할 수 있을지언정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남성들이 꽃다운 나이에 군대에 가게 된 원인이 무엇인가? 연애, 결혼에서 남성이 더 경제적인 부담을 지는 이유는?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만 운다는 말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모두 옆에 앉은 여성 때문이 아닌, 우리 사회의 성별고정관념과 성차별적 문화에서 비롯된 비극이다. 그리고 그 비극을 끝내기 위해 목소리 내는 사람들이 바로 페미니스트다.  늦지 않았다. 문은 언제든 열려있다. 지금껏 그랬듯 세상은 더 나은 쪽으로 변할 수 있다. 언제까지 '너만 힘드냐!'며 불행에 머물 것인가. 문제의 원인을 찾으며 함께 구렁텅이에서 벗어날 것인가. 당신은 언제나 선택할 수 있다.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은 남성연대에 균열을 내고 함께 페미니즘을 공부·실천하고자 교육, 연구, 집회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벌거벗은 남자들> 시리즈는 그간 가부장제 아래 왜곡된 남성성에 변화를 만들고자 남함페 활동가 5인이 남성 섹슈얼리티, 관계, 돌봄 등 남성의 삶 전반을 페미니즘적 시선으로 톺아보려 합니다. 본 글은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의 이한 활동가가 작성하여 여성 신문에 동시 연재되고 있습니다. 여성신문 원문 주소 : https://n.news.naver.com/m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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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기억] 당신에게 세월호란
당신에게 세월호란? -현(hyun) 질문자 : 현 장소: 니트생활자 사무실 *인터뷰이: S, H(닉네임으로 작성했습니다)  *인터뷰이는 니트컴퍼니 모임 닛커넥트 에서 만난 멤버들로, 2시간 가량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니트컴퍼니 : 무업 청년들이 모인 가상회사로, 해마다 상/하반기 기수를 모집하고 있으며 온라인/오프라인에서 업무 인증과 주간 회의, 전시 등의 활동을 합니다. Q1. 10년 전 4월 16일, 그 날 여러분은 어떤걸 하고 있었나요? S: 미국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했다. 주변 지인들로부터 세월호 참사에 관한 연락을 받았고, 도서관에서 내내 기사에 대해 찾아봤다. 토론 시간마다 세월호가 소환됐다. 언론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분노했다. 묻고 싶은 것이 많은 외국인들 앞에서 나는 한국인으로서, 저널리스트를 꿈꾸는 사람으로서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H: 그 날은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던 첫 날이었다. 하루 종일 정신없이 일하고 퇴근 길에 참사 소식을 듣게 되었고, 한 주가 우울했다. 아무것도 못 하고 참사를 목도할 수 밖에 없어서 충격이 컸다. Q2. 어떤 것을 기억해왔나요? 어떤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S: 유학 시절 기숙사 화재경보기 알람이 울렸을 때, 모두 1층으로 내려가는데 나는 안전불감증이라 알람이 꺼질 때까지 귀를 막고 잠을 잤다. 그 정도로 안전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세월호를 겪고 나서 내 태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요즘은 건널목에서도 멀리 떨어져서 기다릴 만큼 다가오지 않은 일에 대해서도 걱정한다.  H: 말도 안 되는 참사가 계속해서 일어나는 이유는 참사 원인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등 여러 참사를 지나며 생겨난 리본을 4개나 봤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리본을 달게 될지 무섭다. S: 이태원 참사 때 주변에 있었다.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참사 소식을 접했다. 그날, 밤새도록 SNS에서 여과 없이 노출된 참사 현장을 봤다. 근처에 있었던 것만으로도 살아있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들었다.  Q3. 세월호 참사는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H: 국민을 지켜야 할 국가가 없구나, 각자도생 사회구나,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구나, 어른들의 탐욕으로 아이들을 바다에 수장시킨 참사로구나. 수장이라는 표현이 세게 다가올 수도 있지만 이 단어만큼 세월호를 잘 표현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에 416재단에서 만든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가 문을 열어 개소 강좌를 듣고 왔다. 김일란 영상감독, 홍은전 기록활동가, 그리고 김승섭 교수님이 와서 이야기를 들려주셨고, 올해가 세월호 10주기라 책도 많이 나오고 영화도 많이 나올 테니 관심을 갖고 함께 해달라고 하셨다. S: 요새 친구들이 출산을 앞두고 있다. 살아있는 사람도 지켜주지 않는 나라에서 아이를 낳으라고 종용한다. 축하한다는 반응조차 나오지 않는다.   Q4. 세월호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세월호를 어떻게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S: 내 내게도 일어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럼에도 학교에서는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의 의미를 제대로 알려줘야 한다. 또한, 생명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정치가 묻을 수 없다.  H: 앞서 들었던 김승섭 교수님 강연에서 해주신 말씀으로,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 했던 말을 인용한다. "사람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지 않아서 저희 오빠가 죽은 거잖아요. 여러분들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으면 꼭 용기를 내주세요" 이 말을 듣고 교수님이 책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하셨다. 세월호를 이렇게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 담지 못한 인터뷰 비하인드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습니다. 여과없이 참사 현장을 전하는 SNS의 보도윤리에 대해 이야기 나눴을 뿐만 아니라 여성들에겐 일상 곳곳이 참사로 이어질 수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남성 위계에 의한 여성 피해자의 사망사건과 더불어 여전히 이름도 직업도 알 수 없는 여성들의 죽음이 가려지는 이유와 문제도 짚어보았습니다. 참사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하느냐를 떠올린 시간이었습니다. 작년 사회적으로 충격을 준 신림역• 서현역 칼부림, 동작역 침수사고는 큰 참사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문제는 아직도 문제의 원인을 제대로 해결되지 못한 채 덮어둔지라 언제 사고로 이어질 지 몰라 두려웠습니다. 해결되지 않고 넘어간다면 안전한 사회는 멀어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안전을 원한다면 참사를 기억하라’   작년 이태원 참사 1주기 기억식에 나온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모두의 안전을 위해선 책임을 좌시해선 안될 것입니다.
4.16 세월호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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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기억] 🎗 시민이 기억하는 모습, 시민이 해야 할 질문
🎗 시민이 기억하는 모습, 시민이 해야 할 질문 기억하자는 말에서 출발한 질문 2014년 이후 4월 16일마다 “기억하겠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고 궁금했다. 무엇을 기억하겠다는 걸까?, 어떤게 미안하다는 걸까?  기억하자와 미안하다는 말에 주어가 없는 느낌이었다. 기억하겠다는 사람이 많을 수록 내 의문은 더 많아지고 깊어졌다. 그 의문은 두 개로 좁혀졌다. 저 말로 참사를 막을 수 있을까? 참사 원인을 드러내고 있을까?  세월호를 기억하는 이유는 참사 방지다. 만약, 기억하겠다와 미안하다는 말이 참사 원인에 접근도 못 하고, 제거도 못 하고, 행동하게 하지 못 한다면, 우리는 같은 참사를 또 겪을 게 뻔하다. [함께 기억] 프로젝트로 세 편의 글을 썼다. 그 중 두 편은 인터뷰였다. 모임도 참여했다. 인터뷰를 진행하고 모임에 참여한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세월호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알고 싶었다. 둘째, 기억하자는 말에 무엇을 떠올리는지 알고 싶었다. 셋째, 그 기억이 참사 예방에 도움이 되는지 알고 싶었다.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결론을 내렸다. "그들의 기억은 참사 예방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이번 글은 이렇게 생각한 이유와 내가 생각하는 세월호 참사 원인, 시민이 기억해야 할 것에 대한 내용이다. 시작은 떠내려오는 아이들부터다. 떠내려 오는 아이들 두 사람이 강가에서 소풍을 즐기고 있었다. 갑자기 강 쪽에서 다급한 외침 소리가 들렸다. 어린아이가 물에 빠진 것이다. 아이는 온 힘을 다해 “살려주세요.”라고 외쳤다. 소리를 들은 두 사람은 서둘러 아이를 구했다. 그런데 숨 돌릴 틈도 없이 또 다른 아이가 도움을 요청했다. 이번엔 한 명이 아니었다. 물속에서 허우적대는 아이들이 보이고, 보이고, 또 보였다. 아이들이 계속 떠내려오고 있던 것이다. 두 사람만으로는 구하기 벅찰 만큼 많은 아이들이었다. 그때 한 친구가 물 밖으로 나와 어디론가 향했다. 물에 있던 사람이 “너 어디가?!”라고 물었다. 친구가 답했다. “상류(Upstream)로 올라가서 아이들을 물속에 던져 넣는 놈을 잡으려고.” 업스트림, 문제의 근본 원인을 찾아가는 여정 해당 사례는 행동 경제학자 댄히스가 ⟪업스트림⟫에서 소개한 사례다.1) 업스트림이란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거나, 그 문제로 인한 피해를 체계적으로 줄이는 것이다. 반면, 다운스트림은 문제가 발생한 뒤에 대응하는 것을 말한다. 댄 히스는 업스트림으로 올라가며 문제 원인을 찾고,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1) 문제 발생 후 해결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애초 문제가 발생하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 탓하는 게 아니라, 소가 왜 탈출하려고 했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의미다. 앞선 사례는 아이들이 떠내려오는 상류(Upstream)로 올라가서, 애초 밑(Downstream)에서 아이들을 구할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예시다. 참사 발생 이후 인명 구조, 피해자 수습, 책임자 처벌에만 집중하지 말고, 참사 근본 원인을 찾아 사전에 방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피해자 수습, 배 인양, 책임자 처벌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자체가 참사를 예방하는 건 아니다. 문제불감증, 업스트림으로 가는 길에 마주하는 방해물 업스트림으로 올라가는 여정은 어렵고 오래 걸린다. 원인을 찾는 과정에서 감춰진 문제와 원인이 보이고, 그 위에 또 다른 문제와 원인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문제불감증'이다. 문제불감증이란, 부정적 결과가 자연스럽고 통제할 수 없으며, 바꿀 수 없다는 믿음이다. 어떤 문제에 무지할 때, 마치 그것을 날씨 대하듯 “어쩔 수 없지"라며 어깨를 으쓱하고 마는 것이다.1) 문제를 당연시하는 태도는 문제와 원인을 못 보게 한다. 원인이 그대로인데, 문제가 사라질 리 없다. 때문에 문제불감증은 업스트림으로 가는데 가장 먼저 알아차리고, 해결해야 할 과제다. 기억하자는 말은 참사 당시 우리의 문제불감증을 기억하고 경계하는 구호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산재한 문제를 볼 수 있다. 기억의 현주소를 보는 건 그래서 중요하다. 문제를 제대로 보고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기억의 현 주소 모임에 참여하고, 인터뷰하며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답변은 ‘그렇다’였다. 무엇을 기억하냐고 물으면, 참사 날짜, 타고 있던 사람들, 목적지, 언론 오보, 정부 대처, 선장의 탈출 시점과 선내 상황 등이었다. 또한, 참사 당일 자신들이 하던 일을 기억한다고 말했다. “수업 듣고 있었다, 일하고 있었다, 카페에 있었다. 낮잠을 잤다. 식사 준비를 했다” 등등 다양했다. 선명하고 깔끔한 기억이었다.  그 외 기억은 그날의 감정이었다. 분노와 슬픔, 비참함, 죄책감 등이다. 한 사람은 “우리 사회의 민낯을 알게 됐어.”라고 말했다. 다른 한 사람은 “그 당시 아무것도 할 수 없던 것에 죄책감을 느꼈어.”라고 말했다. 표정은 침울했고, 일부는 울었다. “2024년 4월 16일에, 세월호와 같은 참사가 발생하면, 뭘 할 거야?” 내가 던진 질문이다. 답변하는 사람은 없었다. ‘할 말이 없다’가 더 정확할 것이다. 참사 현장에 없는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드물다. 직장인은 일을, 학생은 수업을, 부모는 자식을 위한 식사 준비를 해야 한다. 잠시 멈출 수는 있겠지만, 그 외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일부는 팽목항에 간다고 할지도 모른다. 서울시청부터 팽목항까지는 약 420km다. 시속 80km로 가도 5시간이 걸린다. 물에서 숨을 가장 오래 참은 기록은 24분 33초다. 도착했을 때 생존자가 있을까. 아마 도착해서 10년 전과 똑같이 분노와 슬픔, 죄책감만 느낄 것이다. 참사 후 느낀 감정은 참사의 원인이 아니다 참사 후 느낀 감정과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 건 참사 예방에 아무 도움이 안 된다. 원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참사 희생자가 나온 뒤 느낀 감정과 참사 이전 상황은 인과관계가 없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이유는 참사 방지다. 때문에 참사 후 감정이 아니라, 참사 원인과 막지 못한 이유를 기억해야 한다. 혹자는 시스템 부재를 원인으로 말한다.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 큰 원인은 참사 이전 누구도, 시스템 부재를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이다. 시스템 부재를 눈치챘다면, 우리는 배가 뒤집혀도 바로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을 것이고, 304명의 희생자가 나오지 않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당연하다” 시스템 부재를 눈치 못 챈 문제불감증 앞서 "2024년 4월 16일에 세월호와 같은 참사가 발생하면 뭘 할 거야?"라는 질문에 기대한 반론이 있었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 그런 일이 있으면 안 돼지."였다. 그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이상하다. 또다시 참사를 마주해서, 2014년 4월 16일의 괴로움을 느끼지 않기 위해 세월호를 기억하겠다고 하는 것일텐데. 왜 이런 질문을 그대로 받아 들일까. 기억하겠다 하면서도 마음 속으론 참사는 발생해, 라며 체념한 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한 체념 속에서, 질문 자체가 '발생하면'을 가정했으니,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질문이 발생하면인데, 당연하다 반문할 수도 있다. 그 당연하다는 태도가 문제 불감증이다. 시스템 부재를 눈치 못 챈 이유는, ‘시스템이 당연히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대비됐고, 작동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작동 안 했는지, 없었는지 모를 시스템을 우리는 굳게 믿고 있었다. 그 믿음 자체가 문제임을 알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그 시스템이 있었고, 작동했나? 답은 바로 나온다. 문제불감증은 “눈앞의 문제가 문제인지 모르는 무지”1)에서 비롯된다. 문제를 모르면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고,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이 태도는 세월호 이전부터 만연했고 참사 후 드러났다. 다큐멘터리 <그레이존>이 보여준 모습이다. 세월호 오보는 왜 발생했나 다큐멘터리 <그레이존>은 세월호 전원 구조 오보 상황을 보여준다. 전원 구조로 보도하라는 지시가 있었고 그대로 보도됐다. 자막을 쓴 사람도, 보도를 본 기자도, 누구도 의심치 않았다. <그레이존>에서 가장 심각하게 들렸던 대사는 “정부가 다 구했대.” “그래서 그걸 믿었죠.” 였다. 상부 지시와 정부 발표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상부 지시는 당연히 맞겠지 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결과다. 질문하고 확인했다면 막을 수 있었지 모르는 오보였다. 우리 주변에 이를 막을 신호가 없었을까? 국내 언론은 세월호 이전부터 질문하지 않았다. 2010년 방한한 오바마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국내 기자들에게 질문하라고 했다. 손을 든 건 중국 기자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국내 기자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며, 국내 기자에게 손들어 질문하라고 했다. 손든 기자는 없었다. 질문권은 중국 기자에게 돌아갔다.  강남순 교수는 이를 보고 “질문하기가 삶의 방식이어야 하는 저널리스트조차도, 왜 제대로 질문권을 행사하려고 하지 않는가.”2)라며 비판했다. 모두가 똑같이 행동했다는 건, 그게 당연한 문화였다는 것이고, 누구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걸 방증한다. 외부에도 질문 안 하는 기자가, 내부 지시에 질문할 리 없다. 국민도 다르지 않았다 당연하다는 태도가 기자만의 문제였을까? 아니다. 국민도 다르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보도를 보고 처음에 의문을 제기했던 사람은 없었다. 언론 보도가 당연히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세월호 구조 오보가 충격적이었던 이유다. 만약, 2010년 질문하지 않는 기자들을 보고 “왜 질문하지 않냐”, “내부에서 질문하지 말라고 했냐”,  “질문하지 않는 걸 문제라고 생각한 적 있냐”, “질문하지 않는 문화는 언제부터 왜 만들어졌냐”고 물었다면 오보를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레이존> 출연 기자들에게 질문하고 싶었다. ①왜 지시에 대해 의심하고 질문하지 않았는지. ②질문하지 않는 것에 의문을 갖거나 문제라고 생각한 적 있는지. ③질문하지 않는 모습은 어디에서부터 만들어졌는지. ④같은 참사가 있을 때, 더는 오보를 안 내도록 바뀌었는지. 세월호 이후 기자들은 ‘기레기(기자+쓰레기)’로 불렸다. 항상 붙는 말은 “기레기 니들이 그렇지"다. 이는 문제를 당연시하는 태도다. 문제가 뭔지 알았으면 원인이 뭔지 찾고 바꿔야 한다. 그렇지 않고, “원래 그렇지"라는 말에 머무는 건 방관일 뿐이고, 쓰레기가 쌓이는 걸 지켜만 보겠다는 말이다. 시스템 부재가 문제일까? 부재에 무지했던 게 문제일까?  어떤 게 참사를 예방하는 기억일까? 세월호 참사로 구조 시스템이 없었고, 작동하지 않았다는 게 드러났다. 이 자체로 큰 문제다. 더 큰 문제는 부재를 몰랐다는 것이다. 시스템 부재를 알아차렸다면, 시스템을 만들고, 대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시스템 부재를 모르면, 당연히 있다고 생각한다. 혹은 애초 시스템이 뭔지도 모르게 된다. 시스템이 있다고 믿으면, 참사가 벌어질 때까지 부재를 모르고, 참사가 발생해야 알아차린다. 비극이 있은 뒤에야 대비되어 있지 않았다는 걸 깨닫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여전히 시스템 부재를 눈치 못채고 있다. 그게 세월호 행사여도 말이다. 화재 발생시 대피 경로가 무엇인가요? 누가, 어디로, 어떻게 대피시키나요? 장애인, 비장애인, 남녀노소 중 누구를 최우선 순위로 대피 시키실 건가요? R&R 어떻게 분배되어 있나요? 세월호 행사에 가면 묻는 질문이다. 답변하는 사람들은 한 명도 없었다. 행사 기획자와 참여자 모두 생각지 못한듯 당황한다. 난 이게 진짜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4월 16일마다 노란리본을 달고, 세월호를 기억하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게 현실이 아니라, 시스템이 없는데, 아무도 그 부재를 눈치 못채는 게 진짜 현실이라 생각한다. 세월호가 이렇다면 다른 행사는 불보듯 뻔하다. 개인적으론 안전이나 대피 계획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이 대피하지 못해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만 생각해도 충분히 계획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거창필 필요도 없다. 119에 누가 신고할 것인지, 누가 비상구로 안내할 것인지, 장애인이나 노약자 혹은 부상자가 있다면 누가 전담할 것인지 등만 사전에 대비하고 R&R만 분배해도 되는 일이다. 그 어느 조직과 개인도 하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 후 10년이 지났는데도 이렇다면, 대체 우리 사회가 10년 동안 뭘 배우고, 변한건지 의문이든다. 만약, 안전부터 신경 쓴다면 어떤 모임이든 참여자 모집부터 달라질 것이다. 특이사항으로 장애나 부상 등 도움이 필요한 점을 반드시 남기게 했을 것이다. 누가 오는지 알아야, 그에 맞게 준비할 수 있다. 그렇게 도움이 필요한 참석자가 파악되면, 행사 좌석 배치 부터 달라질 것이다.  기억의 주소는 감정과 상황이 아니라 부재를 몰랐다는 것, 부재를 몰라서 예방하지 못했다는 것 세월호 참사는 배만 안 뒤집히면 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드러나지 않은 문제점들을 살피고, 개선해서, 새로운 유형의 참사를 예방하자고 말한다. 문제 원리를 알면 어떤 문제도 풀 수 있지만, 유형만 알면 다른 유형을 풀 수 없다. 핵심 원리는 안전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대비 시스템 부재를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이 원리를 기억하고 모든 유형의 참사에 대비해야 한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모습은 ①시스템의 부재 ②시스템 부재를 못 봤다는 점 ③ 시스템 부재를 못 본 이유, 이 세 가지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시스템 부재를 못 본 이유는 크게 다섯 가지다. ① 문제가 문제인지 몰랐던 무지 ② 문제가 있는지 보려고 하지도 않은 무관심 ③ 만연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체념 ④ 만연한 문제에 대한 방관  ⑤ 내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 ①~④번은 무능함이고, ⑤번은 비겁함이라고 생각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10년 간 우리의 모습이다. “무능하고 비겁한 어른들이 많나요?” [함께 기억] 프로젝트 중 성현이 내게 한 질문이다. 그렇다는 답변에 성현은 다시 물었다. “어른들은 뭘 했나요? 10년 동안.” 10년 동안 발견하지 못하고, 놓친 위험요소가 얼마나 많았을까. 그 위험 요소들을 봤었다면, 우리는 얼마나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었을까. 그렇게 놓친 기회가 몇 번일까. (사)4・16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총괄팀장 장동원 씨는 이태원 참사 뒤에 “유가족들에게 미안했어요. 참사를 만들지 않겠다고 싸웠는데, 결국 또 희생자가 나왔잖아요.”라고 말했다. 미안해야 할 건, 기억하겠다고 한 모든 사람이지, 가장 앞에서 싸우는 한 사람이 아니다. 안전은 일부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는다. 세월호를 기억하겠다고 한 말이 진심이었다면, 일부에게만 맡겨서 안 된다. "기억하겠다, 위로한다, 안전에 투표하겠다"에 멈추고, 그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하는 건, 세월호 유족과 일부 법조인, 정치인, 기자가 해결할 거라며 맡겨 놓는 것과 다르지 않다.  어느 정치인도 내가 서 있는 곳의 문제와 위험요소를 모른다. 故노무현 전 대통령 사후 발간 된 책, ⟪운명이다⟫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기 종료 후 고향인 김해에 내려가 화포 습지를 복원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엉망이 된 화포천을 보고 탄식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은 말했다. "어디 화포천만 이렇겠는가. 온 나라가 다 이럴 것이다. 대통령을 하면서 강의 지천과 실개천, 습지들이 이토록 처참한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몰랐다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3) 가장 많은 권한을 가진 대통령도 가장 밑의 현실은 알지 못한다. 대통령이, 국회의원이, 시의원이, 구의원이 아무리 국민과 내 지역을 생각한다고 말 해도,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의 문제는 알 수가 없다. 내 주변 문제를 알고, 알아차려야 하는 건 나 자신이다. 참사는 일상에 있다. 기억하겠다고 말한 사람들은 일상의 참사 위험요소를 알아차려야 한다. 그 문제를 알아차리기 위해 가장 쉬운 실천은, 질문이다. 일상에 녹여야 할 세월호를 기억하자는 말과 질문 “현실 세계의 변화는 단순한 해답을 가져오는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좋은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져 왔다. 좋은 질문을 통해서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았던 문제들에 대해 각자의 정황을 새로운 눈으로 들여다보게 된다. 좋은 질문은 사건의 진실에 접근하게 하고,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생각하게도 이끄는 강력하고 효과적인 장치가 되어준다.”2) 앞서 세월호 행사에서 대피경로와 우선순위를 질문했을 때, 비로소 그 어떤 안전 시스템도 없다는 게 드러났다. 이처럼 질문은 보이지 않던 문제를 드러나게 한다. 드러난 문제는 해결하고 예방해야 하며, 그 순간마다 "세월호를 기억하자"는 말을 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세월호를 기억하자고 말해야하는 순간 5가지는 이렇다. ①문제가 없다고 생각할 때 ②문제가 없는지 의심이 들 때 ③문제 인식을 못하고 있을 때 ④문제 개선 중에 “이렇게까지 해야 돼?”라고 할 때 ⑤ ①~④을 다 알고도 스스로 아무것도 안 할 때. 세월호와 그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한번에 의미와 중요성을 전달할 수 있는 표현은 많지 않다. 세월호를 기억하자는 말은 그 일을 해내는 소중한 표현이다. 안전한 사회를 위해서도 이 표현을 자주 써야 한다. 1년에 한번 말하는 “세월호를 기억하자”가 아니라, 일상에서 말하는 “세월호를 기억하자”는 말이 304명의 죽음에서 반성하고, 기억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태도다. 은유 작가는 “우리가 의심 없이 행했던 일을 의심하는 순간 해방의 바람은 불어오고 있을 것입니다.”4)라고 말했다. 2014년 4월 16일 이후의 우리들이 더욱 안전하기 위해서는 “나쁜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신호를 찾아서 그 신호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1)  세월호 유족에게 가장 모욕적인 말은 “지겹다"가 아니라, “어차피 참사는 또 발생해"라는 말이며, 가장 모욕적인 태도는 ‘문제를 알고도 행동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의심 없이 행하는 것에 원인이 있다. 그것들에 의심하고 질문하면, 10년 뒤 우리는 더는 세월호를 떠올리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부디 세월호를 기억하면서, 10년 뒤 아직도 무능하고 비겁한 어른들이 많냐는 질문과 10년 동안 뭘했냐는 질문에, 10년 동안 우리 사회가 정말 안전해졌고 모두가 일상의 위험을 알아 본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1) ⟪업스트림⟫ (댄히스/ 웅진지식하우스/ 2021) p.15, 41, 140 2) ⟪질문 빈곤 사회⟫ (강남순/ 행성B/ 2021) p.63, 65 3) ⟪운명이다⟫ (노무현, 노무현재단/ 돌베개/ 2022) p.311 4) ⟪해방의 밤⟫ (은유/ 창비/ 2023) p.250
4.16 세월호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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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기억] 참사와 함께 살아가기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래?” 이것은 내 기억 속에 찌꺼기처럼 남은 문장. 나는 고등학생이었고, 참사가 일어난 지는 꼬박 2년이 지났었고, 검고 촌스럽기로 유명했던 우리 학교 교복, 내 재킷에는 노란 리본 배지가 매달려 있었다. 누가 내게 저런 말을 했었는지는 사실 기억나지 않는다. 블러처리 된 영상을 보는 것처럼 흐린 얼굴의 누군가가 내게 저 말을 건넨다. 어쩌면 입에 담지 못할 말들을 짓고 빻던 동창일 수도, 너희가 지금 뭘 할 수 있느냐며 공부나 하라던 선생일 수도 있을 것이다. 기억 속에 찌꺼기처럼 남은 문장은 언젠가부터 새로운 질문이 되어 나를 두드린다. 언제까지 이렇게 슬퍼야만 하느냐고, 언제쯤이 되어서야 4월의 한가운데에서 시간이 종종 멈추는 일을 그만할 수 있느냐고.   오랫동안 나를 두드리는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아니 답하지 않았다. 대답을 하기 위해서는 자꾸만 참사의 순간으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야 했으니까. 그렇지만 오늘에서야 짧은 대답을 하고자 한다. 참사가 일어난 뒤 몇 년간은 참사 자체에서 오는 비통함도 있었지만, 참사로 인해 생긴 슬픔과 애통, 분노의 감정들에 자꾸만 어떤 의도가 있다는 듯 덧씌워 비난하는 말들을 바라보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다. 입에 담기는커녕 생각조차 함부로 할 수 없는 말들을 쏟아내는 이들을 보면서 그들과 내가 같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공포스러울 때도 있었다. 그러나 더욱 피부에 와닿는 공포는 그런 상황을 목격하며 ‘언제까지 슬퍼할 거야.’ 하며 점잖은 체를 하는 이들이었다. 언제까지라니, 우리가 제대로 슬퍼할 수 있었던 순간도 없었는데. 참사가 일어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노란 리본을 다 떼겠다느니, 노란 리본을 이용한다느니 하던 기억들은 모두 휘발된 채 멈춰있을 수 없다며, 산 사람은 살아야 함을 운운하는 이들을 보며 막막한 심정으로 자문했다.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그리고 생각했다. 우리는 여전히 참사와 함께 살아가는 법에 대해 모르고 있다고.   자크 데리다는 애도는 어떤 순간을 두고 멈추는 것이 아니라, 상실된 대상을 떠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치 유령처럼 존재하지 않지만, 그 존재를 문득 느낄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우리가 애도의 대상으로부터 멀어져, 이들을 잊고 살아가는 순간부터 우리는 애도에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실패한 애도의 부채는 파도처럼 우리에게 밀려온다. 그것이 분노나 원망의 이름을 빌리는지, 혹은 감당할 수 없는 무력감이라는 이름을 달고 오는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반드시 돌아와 우리를 무너뜨릴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참사 앞에서 너무나 빨리 애도를 거두어 왔다. 심지어는 ‘애도 기간’이라는 이름으로 제대로 된 시작도 전에 끝을 정해두기도 했다. 이 또한 우습고 비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리석은 짓의 결과는 늘 참사로부터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이들의 상처로 귀결된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날 선 비판을 지껄인 주제에 나 역시 지난 몇 년간 참사와 오롯이 함께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여전히 4월 16일이 되면 버릇처럼 착잡한 마음을 끄적이고, 시간이 멈춘 듯한 하루를 보냈지만, 마치 그날의 의식처럼, 연례행사처럼 지나갔을 뿐이다. 10년이 지났다. 이제는 언제까지 할 것이냐 비아냥거리는 이들도 떠난 참사의 자리에서 여전히 애도의 부채와 맞서는 이들이 있다. 우리는 참사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 몇 년이 더 지나고 나면 이 슬픔과 비통함을 오롯이 아로새길 수 있을까. 대답을 하겠다는 다짐이 무색하게도 나는 여전히 답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나 기억의 잔재에 남아있던, 이 오랜 질문의 원본에는 이제야 답할 수 있겠다. 우리는 더 많이 기억하고, 더 많이 이야기하고, 더 많이 슬퍼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참사에 온전한 애도를 보내고, 언젠가 이 참사와 함께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 말이다. 
4.16 세월호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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